<colbgcolor=#000><colcolor=#fff>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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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
사망 | 1427년 (향년 ?세) | ||
재위기간 | 왈라키아 보이보드 (1기) | ||
1421년 5월 ~ 11월 | |||
왈라키아 보이보드 (2기) | |||
1423년 여름 | |||
왈라키아 보이보드 (3기) | |||
1424년 10월 ~ 1426년 5월 | |||
왈라키아 보이보드 (4기) | |||
1427년 1월 ~ 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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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미르체아 1세 어머니: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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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 드라큘레슈티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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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왈라키아 공국 제10대 보이보드. 별칭은 프라즈나글라바(Praznaglava, 빈 머리 또는 대머리).2. 생애
왈라키아 공국 제6대 보이보드 미르체아 1세의 사생아다. 형제로 미하이 1세, 블라드 2세, 알렉산드루 1세 알데아, 안나[1], 아리나[2]가 있었다. 1421년, 제9대 보이보드 단 2세를 상대로 반기를 들어 몰아낸 뒤 보이보드 직위를 획득했다. 단 2세는 추종자들을 끌어모은 뒤 반격을 가해 그해 11월 라두 2세를 축출했다.라두 2세는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한 뒤 오스만 제국 술탄 무라트 2세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왈라키아가 오스만 제국의 확실한 속국이 되고 다뉴브 강 남쪽의 도브로게아를 오스만 제국에게 내주는 걸 받아들이겠다고 서약했다. 1423년 여름, 라두 2세가 오스만 제국군의 지원에 힘입어 단 2세를 몰아내고 보이보드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단 2세는 군대를 끌어모아 반격을 가해 오스만 제국군을 격파하고 라두 2세를 도로 몰아냈다.
1424년 12월, 라두 2세는 3번째로 오스만 제국군의 지원을 받아 단 2세를 밀어내고 권좌를 되찾았으며, 사전에 약속한 대로 도브로게아를 오스만 제국의 소유물로 인정했다. 이에 단 2세는 헝가리 왕국의 지원을 받아 반격을 가해 1426년 5월 라두 2세를 몰아내고 보이보드에 복위했다. 오스만 제국은 단 2세를 몰아내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지만, 단 2세는 많은 수의 불가리아 군인을 용병으로 고용해 오스만군을 격파했다. 그러나 1427년 1월 라두 2세가 재차 오스만군의 지원을 받고 쳐들어오자 물러났다.
1427년 봄, 단 2세는 헝가리군과 왈라키아 추종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라두 2세를 다시 몰아내고 오스만 제국군을 격파했으며, 지우르지우 요새를 탈환했다. 이후 라두 2세는 기록상에서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데, 일부 학자들은 라두 2세가 단 2세에게 체포되어 처형되었을 거라고 추정하나 불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