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케이프 해전 Battle of the North Cape Das Seegefecht vor dem Nordkap Unternehmen Ostfro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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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일부 | ||
침몰하는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샤른호르스트, Charles David Cobb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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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
1943년 12월 26일 | ||
장소 | ||
노르웨이 국가판무관부 노스 케이프 북쪽 해안 | ||
교전국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나치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지휘관 |
[[틀:깃발|
브루스 프레이저 [[틀:깃발| ]][[틀:깃발| ]][[틀:깃발| ]] 로버트 버네트 |
]][[틀:깃발| ]][[틀:깃발| ]] [[틀:깃발| 에리히 바이† | ]][[틀:깃발| ]][[틀:깃발| ]]
결과 | ||
영국의 승리 | ||
전력 |
전함 1척 중순양함 1척 경순양함 3척 구축함 9척 |
전함 1척 구축함 5척 |
피해규모 |
전사 11명 전함 1척 손상 중순양함 1척 손상 경순양함 1척 손상 |
전사 1932명 전함 1척 침몰 |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중 1943년 12월 26일에 벌어진 영국 해군과 독일 해군 크릭스마리네 사이의 전투. 이 전투로 인해 독일 해군은 당시 운용가능한 상태로 남아있던 2척의 전함 중 하나인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샤른호르스트를 잃게 되었으며[1] 독일 해군에겐 단 한 척의 전함만이 남게 되었다.또한 이 해전은 영국 해군과 크릭스마리네의 전함 사이의 마지막 교전이었으며, 지구 반대편의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 이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전함 간 포격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해전 중 하나로 남았다.
2. 배경
바렌츠 해 해전 이후로도 나치 독일은 영국과 소련 사이의 렌드리스 물자보급을 위한 북극 수송 항로를 지속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1943년 12월에 전함 샤른호르스트를 노르웨이에 배치하였다. 당시 소련으로 향하고 있던 수송선단 JW 55B와, 무르만스크에서 물자를 내려놓고 영국으로 돌아오는 길의 RA 55A가 그들의 목표였다. 1943년 12월 22일, 루프트바페의 항공기가 수송선단을 포착하였고, 3일 뒤인 12월 25일, 샤른호르스트는 4척의 1936년형 구축함들인 Z29, Z30, Z33, Z34, Z38과 함께 해군 소장 에리히 바이의 지휘 아래 노르웨이 알타 피오르에서 출항하였다.한편 영국 측의 브루스 프레이저 제독은 수송함대 항로의 가장 큰 걸림돌인 이 독일 전함을 없애버릴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프레이저 제독은 독일 전함이 수송함대 JW 55B를 공격하러 올 것이라 봤고, 독일 함대가 수송함대에 도착하기 전에 이들을 포착, 킹 조지 5세급 전함 HMS 듀크 오브 요크를 필두로 하는 본 함대와 돌아오는 수송함대 RA 55A를 호위하던 해군 중장 로버트 버네트 휘하 경순양함인 타운급 경순양함인 HMS 벨파스트(Belfast)[2]와 HMS 셰필드(Sheffield), 카운티급 중순양함 HMS 노포크(Norfolk)와 함께 공격한다는 작전을 내세웠다. 이윽고 12월 20일에 JW 55B가 영국에서 출발했고, 항공기로 수송함대를 탐지한 독일군이 샤른호르스트와 휘하 구축함들을 수송함대 공격작전을 위해 노르웨이에 배치한다는 독일군의 암호가 영국측에 의해 해독되면서, 샤른호르스트가 수송함대를 공격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프레이저 제독은 기함인 전함 HMS 듀크 오브 요크(Duke of York), 경순양함 HMS 자메이카(Jamaica), 구축함 HMS 사베지(Savage), HMS 스콜피온(Scorpion), HMS 소머레즈(Saumarez), HNoMS 스토드(Stord)[3]와 함께 샤른호르스트를 잡으러 가기 위해 출항하였다.
3. 진행
당시 전투 진행상황도 |
3.1. 첫번째 포격전
다음 날인 12월 26일, 북극해의 날씨는 매우 좋지 않았다. 바이 제독은 수송함대를 찾을 수 없자, 수색 정도를 넓히기 위해 휘하 구축함들에게 남쪽을 정찰하라고 지시했다. 이로써 샤른호르스트는 호위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한편 프레이저 제독은 독일 함대가 있을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서 RA 55A와 JW 55B 수송함대를 멀어지도록 지시하고, 이 수송함대를 호위하던 구축함 4척[4]을 버네트 제독 휘하 함대와 합류하도록 했다.이윽고 9시에 샤른호르스트는 버네트 제독 휘하 함대와 조우하고 교전에 들어간다. 이 교전에서 영국 순양함들의 함포가 샤른호르스트에 2발이 명중, 샤른호르스트의 레이더가 작동불능이 된다. 그리고 이 작동불능은 샤른호르스트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후 샤른호르스트는 조준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레이더 고장으로 순양함들이 포를 쏠때 포구에서 나오는 섬광만을 보고 조준해야 했으나 노포크를 제외한 나머지 두 순양함은 섬광이 나지 않는 탄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5] 바이 제독은 자신이 적 전함과 조우하였다고 판단했고, 이들을 자신이 공격할 수송선단에서 떼어내기 위해 남쪽으로 배를 돌렸다. 그 후 바이 제독은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순양함들을 돌아서 수송함대 습격을 노렸다. 버네트 제독은 이들을 쫓지 않고 수송선단과 발을 맞추기로 결정했다. 샤른호르스트를 쫓지 않은 결정을 일부에선 비판했지만, 프레이저 제독은 이 결정을 지지했고 결국 샤른호르스트가 다시 한번 습격을 가하면서 옳은 결정이었음이 드러났다.
3.2. 두번째 포격전과 추격
정오에 바이 제독은 다시 한번 습격을 시도하고, 버네트 제독 휘하 함대와 교전한다. 다시 시작된 전투에서 샤른호르스트의 탄이 노포크에 명중, 노포크는 함포와 레이더에 피해를 입었다. 수송함대를 호위하다 합류한 영국 구축함들이 샤른호르스트에게 뇌격을 시도하려 했으나 기상악화로 구축함들이 제 속도를 낼 수 없어 접근에 실패하였다. 바이 제독은 이 교전 이후 회항하기로 결정하고, 독일 구축함들에게 유보트가 보내온 수송함대 위치로 가 그들을 공격하라고 지시했지만 그곳에 수송함대는 없었고 구축함들은 그들을 놓쳐버렸다.이후 영국 순양함들은 회항하는 샤른호르스트를 쫒았지만 노포크와 셰필드는 엔진에 이상이 발생, 빠르게 도망가는 샤른호르스트에 뒤쳐졌고[6] 벨파스트 혼자 단신으로 샤른호르스트를 쫒는 위험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러나 이미 고장난 레이더와 기상악화로 인해 샤른호르스트는 누가 쫓아오는지조차 알 수 없었고, 벨파스트는 추격을 계속하여 프레이저 제독 휘하 함대에 샤른호르스트에 관한 지속적인 정보를 주었다. 16시 40분 벨파스트의 레이더에 프레이저 제독의 함대가 포착됨으로써 두 함대가 조우하는 것에 성공한다.
3.3. 마지막 교전과 침몰
한편, 프레이저 제독 휘하 함대는 벨파스트에게서 정보를 받아 샤른호르스트에게 어뢰를 발사할 위치에 도착하였다. 곧 그들 스스로도 16시 15분경 레이더에서 샤른호르스트를 포착한다. 이윽고 벨파스트가 섬광탄을 쏘아올리자 샤른호르스트의 모습이 듀크 오브 요크에게 훤히 드러났고, 듀크 오브 요크는 샤른호르스트를 향해 전탄발사, 무방비였던 샤른호르스트[7]는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는다. 첫 번째 일제사격은 샤른호르스트의 "A" 포탑을 파괴했고, "A" 탄약고의 탄약의 폭발은 "B" 탄약고에도 이어졌다. 탄약고는 부분적으로 침수하여 불이 꺼졌다. 바이 제독은 급히 북쪽으로 배를 돌렸지만 이미 그쪽엔 샤른호르스트를 따라온 노포크와 벨파스트가 있고, 남쪽엔 듀크 오브 요크와 자메이카가 있어 갇히게 된 상태였다.바이 제독은 동쪽으로 이동하며 포격하면서 영국의 함선들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듀크 오브 요크와 샤른호르스트는 포격을 주고받는다. 듀크 오브 요크의 최장거리사격이 샤른호르스트의 현측 장갑을 관통, 보일러실에 피격되면서 샤른호르스트의 속도가 10노트까지 크게 줄어든다.[8] 샤른호르스트의 11인치 포는 듀크 오브 요크의 마스트를 맞히면서 레이더와 사격 통제 장치 사이의 연결선을 끊는 등의 피해를 입힌다. 다만 샤른호르스트는 이것을 알지 못했다. 이로 인해 듀크 오브 요크의 사격이 멈춘다. 샤른호르스트의 보수반은 보일러 복구를 통해 다시 속도를 22노트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하지만, 줄어들었던 속도에 의해 영국 구축함들의 어뢰 공격에 노출된다. 18시 50분, HMS 스콜피온과 HNoMS 스토드가 6발의 어뢰를 발사, 샤른호르스트는 어뢰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우측으로 전타하고 이 과정에서 어뢰 한 발에 피격된다. 다시 HMS 새비지와 HMS 소머레즈가 12발의 어뢰를 발사하고, 이때 3발의 어뢰에 더 피격되면서 속도가 다시 10노트 이하로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소머레즈는 샤른호르스트의 격렬한 부포 사격에 의해 11명의 전사자가 발생한다.
이후 19시께, 속도가 줄어든 샤른호르스트의 앞에 듀크 오브 요크와 경순양함 자메이카가 10km까지 접근해 포격을 가했고, 샤른호르스트는 듀크 오브 요크와 격렬한 포격을 주고받는다. 바이 제독은 침몰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할 수 있을 때까지 싸우겠다."라고 독일 해군 사령부에 무전을 보낸다. 이때 샤른호르스트의 속도는 5노트까지 떨어졌다. 독일 승조원들은 양탄기가 고장나자 군가를 부르며 탄약고에서 283mm 주포탄을 인력으로 날라 장전하고 모든 주포탑이 파괴되자 부포탑과 대공 기관총으로 끝까지 저항했다. HMS 머스커티어, HMS 매츨리스, HMS 어퍼튠, HMS 비라고우가 샤른호르스트의 양쪽에서 접근하여 19발의 어뢰를 추가적으로 발사, 대략 5발 정도가 맞은 것으로 추정되며, 어뢰 명중으로 인한 폭발이 일어난다. 결국 19시 45분, 샤른호르스트는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배에서 솟아오르는 연기와 함께 침몰하게 된다. 이 연기로 인해 섬광탄이나 서치라이트로도 배가 보이지 않아서 직접 샤른호르스트가 침몰하는 것을 본 영국 군함은 없다고 한다. 침몰 직전까지도 샤른호르스트의 보조화력은 거칠게 사격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구축함들이 접근해 생존자들을 구조하고, 프레이저 제독은 함대를 무르만스크로 향할 것을 명한 뒤 사령부에 '샤른호르스트 격침'을 송신하면서 전투는 종료된다.
4. 결과
구조되어 포로로 잡힌 샤른호르스트의 생존자들 |
이 전투 이후 프레이저 제독은 듀크 오브 요크의 선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적수였던 샤른호르스트를 치하했다.
“Gentlemen, the battle against Scharnhorst has ended in victory for us. I hope that if any of you are ever called upon to lead a ship into action against an opponent many times superior, you will command your ship as gallantly as Scharnhorst was commanded today.”
"제군. 이 해전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만약 제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을 상대로 배를 지휘해야 할 때가 온다면, 오늘의 샤른호르스트와 같이 용맹하게 싸워주기를 바란다."
"제군. 이 해전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만약 제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을 상대로 배를 지휘해야 할 때가 온다면, 오늘의 샤른호르스트와 같이 용맹하게 싸워주기를 바란다."
한편 노르웨이 해군 소속 구축함 Stord는 1500미터 거리까지 접근하여 뇌격을 시도하고, 이후 함포를 발사하여 샤른호르스트의 상부구조물에 피해를 입히는 등 아주 용감한 활약을 펼쳤다. 프레이저 제독도 전투가 끝난 뒤 그들을 칭찬했을 정도다.[9]
레이더의 중요성이 드러난 해전이다. 샤른호르스트의 레이더가 초장에 박살이 나버렸기 때문에 샤른호르스트는 유리한 상황에서도 적에게 타격을 주는것이 힘들었고, 특히 벨파스트의 레이더를 통한 끈질긴 추격이 없었다면, 혹은 샤른호르스트가 레이더로 벨파스트의 존재를 알아채고 벨파스트를 뿌리칠 수 있었다면 샤른호르스트가 도주할 기회가 생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레이더의 부재가 샤른호르스트를 눈뜬 장님으로 만들었던 셈이다.
이후 독일 수상함대는 활동이 더더욱 위축되어 사실상 수송함대 타격이 불가능해졌고, 1944년 마지막으로 남은 크릭스마리네 최후의 전함도 노르웨이 항구에서 은둔하다 그 운명을 다하게 된다.
5. 외부 링크
영문 위키피디아런던 가제트, 1947년 8월 5일자
NF propellants 관련 자료, navweaps
[1]
샤른호르스트의 자매함이었던
그나이제나우도 남아있긴 했지만, 당시
바렌츠 해 해전에서의 패배로 분노한
히틀러가 주포 변경 계획을 중지시켜 버리고 그 상태로 폐기되었기 때문에 운용 가능한 상태는 아니었다. 자세한건
그나이제나우 참조.
[2]
해당 함대의 기함이었으며, 이 해전의 사실상 주인공으로 할 수 있을만큼 가장 활약해준다.
[3]
원래 영국 해군 소속 HMS 석세스(Success)였으나 노르웨이 해군에게 양도되었다.
[4]
HMS 매츨리스(Matchless), HMS 머스킷티어(Musketeer), HMS 오퍼튠(Oppertune), HMS 비라고(Virago).
[5]
영국 해군에서 NF propellants라고 불린 트리플 베이스 화약. 133mm 구경 이상의 포에 경우 기술적 문제로 인해 이 무연화약을 사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133mm 구경 이상의 포 중 이것을 사용한 포는 화약의 성분을 약간 다르게 해 사용한 6인치(152 mm) Mark XXIII 포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포를 HMS 벨파스트와 HMS 셰필드가 사용하고 있었다.
[6]
노포크는 교전시에 발생한 화재를 무릅쓰고 속도를 냈었으나 결국 처리를 위해 속도를 줄였고, 셰필드는 오른쪽 스크류가 작동하지 않아 속도가 느려져서 이탈했다. 노포크의 경우는 17시경 함대에 합류했지만 셰필드는 이미 해전이 끝난 21시에나 합류할 수 있었다.
[7]
이때 샤른호르스트의 함포는 앞뒤로 정렬되어 있었다고 한다. 즉 현측에서 나타날 듀크 오브 요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8]
이게 엄청난 럭키샷이었던게, 샤른호르스트의 터틀백 구조에는 1m 정도의 아주 작은 수직부가 있는 걸 알 수 있는데, 절묘하게도 여기가 뚫리면서 그대로 보일러실이 털렸다. 샤른호르스트 입장에서는 정말 지지리도 운이 없었던 셈.
[9]
전투 후 사령부에 "Stord는 전투에서 매우 용감하게 나섰으며 난 그들이 자랑스럽다고 노르웨이 해군 사령부에 전해달라"라고 했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