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인민해방위원회| 러시아 인민해방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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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52b1e><colcolor=#FFF> 성격 | 나치 독일의 괴뢰국 |
성립 배경 | 러시아 내전 | 제2차 세계 대전 | 독소 전쟁 | |
주요 이념 | 파시즘 | 반소주의 | 반자본주의 | 러시아 내셔널리즘 | |
주요 인물 | 요제프 괴벨스 | 하인리히 힘러 | 헬무트 폰 판비츠 | |
안드레이 블라소프 | 표트르 크라스노프 | 표도르 아브라모프 | 세르게이 부냐첸코 | 표도르 트루힌 | 이반 코노노프 | 미하일 스코로두모프 | 보리스 시테이폰 | ||
군사조직 | 러시아 해방군 | 15 SS 카자크 기병군단 | 러시아 보호군 | |
주요사건 | 러시아 해방운동 | 프라하 봉기 | 소련의 나치 독일 부역자 재판 | }}}}}}}}} |
<colbgcolor=#fff> 러시아 해방군 Русская освободительная армия Russian Liberation Arm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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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1] | 엠블럼 | |
창설일 |
1942년 (비공식) 1944년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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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일 | 1945년 | |
국가 |
[[러시아 인민해방위원회| |
|
규모 | 120,000~130,000명 (1945년 4월) |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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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소전쟁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소련군 포로와 자원자들로 만들어진 괴뢰정부 러시아 인민해방위원회의 군대.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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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육군복을 입은 소련인 부역자들로 구성된 러시아 해방군. 오른쪽의 키 큰 사람이 지휘관 안드레이 블라소프 장군이다. |
그들에 의하면 그들의 정통성은 러시아 내전 당시 백군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저 나치 독일이 행했던 수많은 선전선동을 위해 이용되었을 뿐이었다. 이들은 명목상 '악독한 스탈린과 소련 공산당 체제로부터 러시아 인민들을 구하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러시아 정부를 수립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돌프 히틀러가 중간에 슬라브인을 끌어들이거나 일부 인사의 경우 봐주기는 했어도 공식적으로는 소수 노예화, 다수 제거였으니 이들의 바람은 결론적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친독일적인 소련인들이 모두 러시아 해방군에 속한 것은 아니고,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징집한 우크라이나 자원병, 비슬라브계로 구성된 동방부대(Osttruppen), 이들과 달리 육군 소속이 아닌 카자크로 구성된 SS 카자크 기병군이 따로 있었다. 어쨌든 이들은 모두 독일을 위해 싸웠다.
그러나 독일군은 이런 부역자 부대를 만들어 놓고도 믿지 못해서 1944년까지 이들을 실전에 투입하지 않았고, 기껏해야 선무방송이나 심리전에 투입되었다. 또한 이들을 믿지 못한 독일군은 이들을 소련과 싸우게 하는 대신에 동유럽의 파르티잔을 토벌하는데 동원했다. 특히 카자크 부대는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지휘하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과 싸우는데 동원되었는데, 그 잔인함으로 악명을 떨쳤다.[2]
이는 시대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이 패배하고 세계 각국으로 망명을 떠난 당시 백계 러시아인들은 그래도 같은 러시아인인데 소련과 완전히 적대하지는 말자는 공감대가 퍼져 있었다. 표트르 브란겔의 뒤를 이어 러시아 전군연합의 의장이 된 인물이 내전 당시 러시아 북부 임시정부[3]의 수장이었던 예브게니류드비크 밀러였는데, 이 사람은 내전 시절부터 국내외의 평판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군연합의 대소 첩보활동을 아니꼽게 본 NKVD는 아프베어 요원들로 위장해서 1939년 밀러가 망명해 있던 프랑스 파리에서 그를 납치, 화물선으로 소련에 끌고 가 고문하고 처형한다. 이에 크게 경악한 백계 러시아인들은 이를 갈며 나치건 뭐건 반공 성향이면 협력하게 된다.[4] 결국 나중에 NKVD에서도 밀러의 처형은 도를 넘은 무리수였으며, 득보다 실이 큰 실책이었다고 인정했다.
1944년이 되어서 병력이 부족해지자 독일군은 이들을 무장시켰으나 그때는 이미 독일의 패전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이들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반나치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체코로 파견되었으나, 이들은 서방 연합국 군대에 항복하거나 무장친위대를 공격했다. 프라하는 해방되었으나, 소비에트 공산당의 영향을 강하게 받던 체코 파르티잔 부대는 이들의 체코 망명을[5] 거부했고, 이들은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여 미 육군 제3군에 항복했다.
그러나 이미 이들의 운명은 얄타 회담에서 결정되어 있었고, 미국은 소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들을 모두 소련으로 송환하였다.[6] 소련군 특무기관인 스메르시는 모든 소련 포로들을 심사하여 독일 측에 복무했다는 혐의가 있으면 반역죄로 체포하였다. 이렇게 걸린 사람들 중에는 전쟁 말기 독일군에 강제 편입된 포로 출신도 많았다고 한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재판에서 ROA의 고급 장교들은 재판에 넘겨져 그 중 블라소프를 포함한 12명이 반역죄로 1946년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나머지는 징역을 선고받고 시베리아의 굴라크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한 후에야 사면을 받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독일에 부역자한 자들은 대부분 처형되거나 운 좋으면 굴라크로 끌려가 강제노역에 종사하였다. 하지만 석방되고 나서도 강제징용 등으로 인해 정상참작의 여지가 어느 정도 있는 다른 부역자들과 달리(이들도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거나 직간접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블라소프 군대' 부역자라는 타이틀은 소련 체제가 지속되는 동안 씻을 수 없는 매국노 낙인으로 남았다.
3. 군가
3.1. 가사
절 | 러시아어 | 한국어 번역 |
1 |
Мы идем широкими полями На восходе утренних лучей. Мы идем на бой с большевиками. За свободу Родины своей. |
우리는 넓은 들판으로 가네 해가 뜨고 여명의 빛이 비칠때. 우리는 볼셰비키들과 싸울 것이라네 우리 조국의 자유를 위해. |
후렴 |
Марш, вперед, сплочёными рядами. В бой за Родину, за наш народ! Только вера двигает горами, Только смелость города берет! |
전진하라, 단결의 대오[7]여. 조국과 민족을 위한 전투로 오직 믿음만이 산을 움직이고, 오직 용기만이 도시를 차지한다! |
2 |
Мы идем вдоль тлеющих пожарищ В годы тяжких бедствий и войны. Приходи и ты к нам в полк, товарищ, Если любишь Родину, как мы. |
우리는 연기가 나는 불들을 따라 걷네 끔찍한 재난과 전쟁의 나날에서. 우리 연대에 입대하라, 동지여, 자네도 우리처럼 조국을 사랑한다면! |
3 |
Мы идем, нам дальний путь не страшен, Не страшна суровая война. Твердо верим мы в победу нашу, И твою, любимая страна! |
우리는 가네, 우리는 긴 여정이 두렵지 않고, 잔혹한 전쟁도 두렵지 않네. 우리는 굳건히 우리의 승리를 믿으며 그대의 승리와, 사랑하는 조국을 믿는다네! |
4 |
Мы идем, над нами флаг трехцветный, Льётся песня по родным полям. Наш напев подхватывают ветры, КИ несут к московским куполам. |
우리는 우리의 삼색기 너머로 가네, 이 노래는 고향의 대지 위로 흐른다네. 우리의 노래는 바람이 싣고, 모스크바의 돔까지 옮겨지네! |
4. 전투력
45년 2월 동부전선에 투입되기 전에는 주로 선전이나 포로 심문, 파르티잔 토벌과 같은 2급 일만 하였으므로 무기는 그저 그랬다. 노획한 소련제 무기가 주무장이었으며 1차대전 때 쓰이던 독일제 무기로 무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후 압수한 프랑스제 무기들을 대량으로 공급받은 적도 있었고 차량도 소련제 트럭이 대다수다. 퀴벨바겐이나 쉬빔바겐, 심지어 노획한 미제 지프 트럭도 있었다. 파르티잔 토벌 임무를 맡은 부대는 소련제 BT 전차와 T-26, BA-10M 장갑차 등으로 무장했으며 나중엔 독일제 Sd.Kfz. 251/16과 Sd.Kfz. 234/4 Pakwagen, 헤처까지 지급받아 나름의 전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하지만 현실은 다시 나치를 배신해 프라하에서 무장친위대와 시가전을 벌일 때에도 당시 체코 주둔 친위대는 이미 전투력이 고갈되어 2선급 부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8] 러시아 해방군을 상대로 거의 대등한 전투를 벌였으며 오히려 일부 지역에선 러시아 군단이 친위대에 반격당해 포위, 괴멸 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군에 투항하기 위해 시간이 촉박하던 친위대는 체코 저항군에서 보내온 휴전 제안을 승낙하였고 미련없이 프라하에서 철수했다.
5. 편제
- 제1보병사단(제600보병사단)[9] - 세르게이 부냐첸코 소장
- 제2보병사단(제650보병사단)[10] - 그리고리 즈브레프 소장
- 제3보병사단(제700보병사단)[11] - 미하일 샤팔로프 소장
- 제15코사크 기병군단(SS 제15코사크 기병군단) - 헬무트 폰 판비츠 중장
- 러시아 보호군[12] - 보리스 시테이폰 중장[13]
- 제1동방전투편대 (1943-1944)[14]
- 제2야간폭격편대 (1945)[15]
- 러시아 인민해방위원회 공군[16]
- 제1코사크사단
- 제2코사크사단
6. 계급
계급 | 견장 | |
병 Солдат |
파일:ROA_Soldier.png | |
상등병 Ефрейтор |
파일:ROA_Corporal.png | |
부사관 Унтер-офицер |
파일:ROA_Non-comissioned_.png | |
상사 Фельдфебель |
파일:ROA_Feldwebel.png | |
위관급 | ||
소위 Подпоручик |
파일:ROA_Second_Lieutenant.png | |
중위 Поручик |
파일:ROA_Lieutenant.png | |
대위 Капитан |
파일:ROA_Captain.png | |
영관급 | ||
소령 Майор |
파일:ROA_Major.png | |
중령 Подполковник |
파일:ROA_Lieutenant_Colonel.png | |
대령 Полковник |
파일:ROA_Colonel.png | |
장성급 | ||
소장 Генерал-майор |
파일:ROA_Major-General.png | |
중장 Генерал-лейтенант |
파일:ROA_Lieutenant-General.png | |
대장 Генерал |
파일:ROA_Genenral.png |
7. 대중매체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서 독일동부군의 동방부대 지휘관을 선택하면 ROA 마크가 달린 러시아 해방군을 전장에 호출할 수 있다. 동방부대의 설명문에서도 볼 수 있지만 개개인의 전투 능력은 매우 뒤떨어진다. 하지만 충원비가 게임내 보병중 제일 저렴하고, 엄폐 시 명중률이 크게 상승하기 때문에 정면에서 엄폐물을 끼고 버티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본 게임 내의 정규군 보병 중 최약체에 속한다. 저렴한 양성 비용이 큰 이점이지만, 피격율 페널티가 매우 큰 편이라 1순위로 공격당하기 쉬운 대전차포, 중기관총 등의 화기를 노획하기에 효과적이지 않다.캠페인 배경인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도 등장하는데 1944년까지 총 한 번 잡아보지도 못한 이들이 당연히 1942년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했다는 것은 명백한 고증오류이다. 게다가 캠페인 도중 소련군이 독일어(...)를 쓰며 살려달라고 하는 ROA 포로를 처형하는데, 역사왜곡까지 할 정도로 소까 성향이 강한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의 작위적인 연출이라 볼 수 있다.[17]
특전대 zbv에서 독일군 야전병원에 러시아 해방군 병사가 누워서 러시아어로 잠꼬대를 하다가 적으로 오해한 아슈에게 목을 졸린다... 나중에 독일 위생병이 와서 말리고 나머지 독일군 부상병들은 그런 아슈를 보고 웃어재낀다.
스틸 디비전 2의 바그라티온 작전 캠페인에서 대거 등장한다. 각종 러시아제 노획장비로 무장했으며 독일군 입장에서 적당히 쓸만한 부대이다. 2편 캠페인에선 서유럽이 아니라 러시아 땅에서 싸우고 있어서인지 사기저하 패널티가 없고 전투력이 쓸만하다.
007 골든 아이의 006 알렉 트리벨리언의 부모가 러시아 해방군이라는 설정이고 자기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악당인 러시아 장군에 붙었다.
컴 앤 씨에서도 독일군 마을 학살 씬에서 러시아 해방군 엠블럼을 달고 있는 러시아인 출신 독일군들이 등장한다.[18] 이들도 주민들을 괴롭히고 희롱하는데 동참하다가 나중에 파르티잔들에게 몰살당한다.
[1]
러시아 인민해방위원회의 깃발(지금의
러시아 해군 깃발) 또한 사용됐다.
[2]
원래
카자크는 그 잔인함과 용맹함으로 전유럽적으로 악명이 높았다.
[3]
아르한겔스크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임시정부 중 하나로 휘하 군대의 군기를 잡는 데에 성공하여 대민 물의를 막아 민심을 잘 수습해서 결속력도 나쁘지 않았고 세간의 평가도 좋았다.
[4]
물론
안톤 데니킨,
게오르기 스타르크, 미하일 레비토프처럼 정치에 관심을 끊었거나 러시아의 해방은 러시아인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5]
어차피 소련군의 진주로 '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지니 이들이 체코에 망명해봤자 소련에 체포되는 건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6]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놀랍게도 오직 소국
리히텐슈타인만이 독일군 소속 러시아인 패잔병에 대한 송환요구를 대놓고 거부한다. 백군 망명객 출신
보리스 스미슬롭스키 장군이 이끄는 '제1러시아국군' 장병 500여 명의 망명 요청을 받아준 것이다. 이들은 리히텐슈타인 정부와 적십자의 도움으로 상당수가 아르헨티나 등 제3국으로 떠나거나 리히텐슈타인에 남을 수 있었고(소련행을 택한 200여명은 블라소프 군대와 마찬가지로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스미슬롭스키 장군은
파두츠에서 천수를 누리고 90세로 사망한다.
기념비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개별적, 비공식적으로 러시아 해방군 장병을 받아준 경우는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대놓고 배짱부린 경우는 리히텐슈타인이 유일하다.
[7]
сплочёными рядами는 종종 железными рядами(강철의 대오)로 바뀌기도 한다.
[8]
차량도 절반 이하에도 그나마 남은 기갑장비도 독소전 초반에나 쓰였던
3호 돌격포 A형이었다.
[9]
카민스키 여단은 해산 이후 이쪽으로 편입되었다. 가장 무장이 잘 된 사단이었으며 위에 서술된
프라하 봉기에 참전한 사단이었다. 총 병력은 20000명.
[10]
창설이 완전히 되지 않은 사실상 반쪽자리 사단이었다, 총 병력은 11856명.
[11]
창설 도중 소련군에게 괴멸됨, 총 병력은 10000명.
[12]
Russisches Schutzkorps. 백군계열 러시아인 출신 자원부대. 주로 동남부 유럽의 치안을 담당하는 부대였으며 특히 파르티잔 토벌에 주로 참여하였다. 1944년에 러시아 해방군에 편입되었으며 45년에는 동부전선에 투입되었다. 종전 즈음에는 러시아인 말고도 다른 국적자들이 대거 편성되었고 가장 인력이 많을 때는 15,000여 명에 달했다. 대부분 러시아 제국 국적자가 아닌 법적으로 타국으로 이민한 러시아인이었기 때문에 소련으로 송환되지 않았다.
[13]
초대 사령관
미하일 스코로두모프 소장
[14]
러시아 해방군 공군의 으뜸이었다. 밑에 서술돼있는 다른 2개의 편대와는 다르게 1943년부터 1945년 패망까지 많은 소련군 출신의 전향한 에이스 조종사들이 이 쪽에서 활동하였다., 대표적으로
세묜 바이츄코프가 있다.
[15]
처음에는 이름만 이렇지, 사실상 훈련 편대였지만, 이후, 전쟁 말기 악명 높은 무차별 야간 폭격 편대가 되었다.
[16]
이름만 이렇지, 공군은커녕 편대에도 못 미치는 규모였던 데다가, 실전도 제대로 한 번 치러 보지 못했다.
[17]
그러나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러시아인 자원자들이 러시아 해방군 패치를 달고 비전투 임무에 투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8]
모든 러시아인 부역자들이 러시아 해방군 엠블럼을 달고 있지는 않다. 보조경찰이나 친위대 소속 통역병, 국방군 소속 부역자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