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작전 독일어: Unternehmen Wilhelm 영어: Operation Wilhe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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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소전쟁의 일부 | ||
▲ 소련 육군 제28군을 포위하려는 독일 육군 제6군 | ||
기간 | ||
1942년 6월 10일 ~ 15일 | ||
장소 | ||
소련 우크라이나 SSR 하르코프 서쪽, 볼찬스크 일대 | ||
교전국 | [[틀:깃발| | ]][[틀:깃발| ]][[소련| ]]|
지휘관 |
[[틀:깃발| (남서 전선군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드미트리 랴비셰프| ]] (제28군 사령관) |
]][[틀:깃발| ]][[세묜 티모셴코| ]]
[[틀:깃발| (남부 집단군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 (제6군 사령관) |
]][[틀:깃발| ]][[페도르 폰 보크| ]]
결과 | ||
볼찬스크 돌출부 제거 소련 육군 제28군 탈출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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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 ||
독일 육군 제6군의 하계 공세 준비 완료 | ||
피해 규모 |
포로 24,300명 전차 232대 야포 153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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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빌헬름 작전은 제1기갑군이 진행한 프리데리쿠스 II 작전과 함께 하계 공세 이전에 선행한 2개의 공세 중 하나이며 목표는 볼찬스크 근처의 소련 제28군 섬멸이었다. 공세 결과, 28군을 밀어내고 큰 타격을 입히면서 차후 공세에서 유리한 시작 지점을 차지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소련군이 이전과 달리 무작정 전선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포위되기 전에 미리 퇴각하면서 예상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2. 전투 서열
2.1. 독일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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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집단군 ( 사령관 :
페도르 폰 보크 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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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군 ( 사령관 :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기갑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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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소련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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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 전선군 ( 사령관 :
세묜 티모셴코 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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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랴비셰프 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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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개
남서 전선군은 제2차 하리코프 공방전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전선군 사령부[5]는 10일 이내로 독일군이 반격에 나설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7개 소총사단, 2개 전차군단, 4개 전차여단을 증원받았지만 사라진 병력 대비 그렇게 큰 규모라고 보기 힘들었다. 독일군의 반격 작전은 6군과 1기갑군이 각각 진행할 2개로 구성됐으며 이 중 6군이 진행할 빌헬름 작전은 6월 7일에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6일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3기갑군단과 4항공군단은 작전이 불가능할 것이라 보고했고 10일까지 밀리게 된다.▲ 소련 제28군을 포위하려는 독일 제6군 |
독일군은 북쪽의 8군단과 남쪽의 3차량화군단이 양익 포위를 시도할 예정이었고 10일부터 공세를 개시했다. 첫 날 공세는 순조로웠다. 8군단은 도네츠 강을 건너 오후 늦게 볼챤스크(Volchansk)에 도달했고 3차량화군단도 벌루크 강(Burluk)을 건너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1일부터 비가 다시 많이 내리면서 땅이 진흙이 되자 3차량화군단의 진격 속도는 급격하게 느려졌다. 8군단은 보병으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에 영향을 덜 받아 3차량화군단과 만나기로 한 예상 지점인 벨리 콜로데즈(Belyy Kolodez)에 도달했다. 3차량화군단은 아직 약속 지점에서 48km 떨어져 있었다.
11일 밤에 6군 사령부에 와 있던 보크는 소련군이 포위망을 벗어나기 위해 퇴각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고 3차량화군단은 명령에 따라 12일에 하루 종일 교전을 피하고 달려 13일 오전에 마지막으로 포위망을 뚫으려는 소련 전차 부대와의 교전 후 8군단과 만나는 데 성공했다. 포위망 내부는 15일까지 정리됐다. 이미 많은 소련군이 빠져 나간 상태여서 포로는 25,000명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