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02:36:29

학살/목록



1. 개요2. 한국3. 그 외 국가4. 가공매체에서의 학살

1. 개요

학살 사건들을 정리한 문서. 테러 사건이나 제노사이드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작성시 시대순으로 정리할 것.

2. 한국

3. 그 외 국가

☆: 한국과 관련된 국외 발발 학살들

4. 가공매체에서의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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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00년 신종 3년 4월 경남 진주에서 공•사노비들이 향리들의 탄압과 착취에 반발하여 난을 일으켰는데 엉뚱하게도 이 난리통에 집이 불탄 정방의가 난의 주모자로 오해받아 옥에 갇혔다가 아우에 의해 구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형제는 노비 반란을 등에 업고, 불평분자들을 끌어모아 진주 고을을 흽쓸고 다니며 무려 6400여명을 학살했다고 전해진다. 기가 막힌 것은 이때 정방의 일당에게 끔찍한 피해를 입은 진주 백성들이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일개 도적떼 무리에게 의탁하여 정방의 세력과 대결했지만 패퇴해 전멸했고 정방의는 더더욱 날뛰면서 경남 지방을 휘젓고 다니다가 이듬해 3월에 가서야 진주 사람들에 의해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2] 목호의 난 공민왕 집권 당시의 고려에서 원나라와 관련된 '목호'들이 명나라에 말을 바치는 것을 반대하며 저항하자 최영, 염흥방 등이 지휘하는 고려군이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다. 그러나 진압 와중에 목호들과 연루되어 많은 수의 제주도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을 고려판 4.3 사건이라고 하기도 한다. 더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3] 제노사이드의 성격을 띄는 사건 [4] 현 파주시 파평면이다. [5] 당시 78세였던 주민이 언론에서 얘기하길, 산속에서 한쪽 팔을 제대로 못 가누는 사람이 내려와서는, 쇠스랑을 빌려달라 했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되묻자 자신은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인데, 인민군이 철수하면서 자신의 처자식은 물론 마을 주민들과 청년들을 세워두고 기관총으로 사살했으며, 자기 자신은 운 좋게 팔 관통상으로 끝나, 확인사살을 피하기 위해 죽은 척 하고 살아남았다며 사정을 얘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학살의 생존자가 알려준 지점으로 가보니 시체 썩는 냄새가 참혹하다 못해 코가 삐뚤어질 지경이었고, 인민군의 잔혹함에 주민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고 증언한 기록이 남아있다. [6] 좌•우익 대립에 의한 민간인 학살 [7] 국군과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8]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9] 북한군의 자국민 학살 [10] 김정일의 사치 때문에 북한 전체가 마비되어 수백만명이 죽는 결과를 낳았다. 후술할 대약진 운동, 벵골 대기근과 같은 인의적인 대기근. [11] 양주에서만 80만 이상, 광주에서 70만 이상이 학살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변발을 거부했다가 학살당하기도 했다. #1, #2 물론 과장일 가능성도 있고 상당수의 희생자는 명말-청초 사이의 혼란기에 발생된 희생자 전체를 포함한 것이다. 이 혼란기에 지역을 떠난 유민들의 많은 수가 명이 멸망한 뒤 청이 제대로 안정된 뒤에야 나타났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이 시기 많은 명나라 유민이 조선과 베트남, 일본으로 이민을 가기도 했다. [A] 한국인 희생자 발생 [A] [14] 한국인 공식 사망자 1명, 비공식 사망자 28명. [15] 장애인에 대한 국가기관의 학살. [16] 다른 이름으로는 간도 참변이며 강조하여 경신 대참변이라고도 한다. 1920년 일제가 마적 토벌이라는 명분 하에 독립군을 소탕할 목적으로 간도 지역의 조선인들을 대거 학살한 사건. 봉오동 전투에서 일제가 패배하자 일제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훈춘 사건(중국 마적단과 내통하여 훈춘시에 있는 일본 영사관를 고의로 습격한 사건)을 조작하여 이를 빌미로 만주에 군대를 출동시켜 간도에 있는 조선인들을 학살한 사건. [17] 프랑스 그래뉴에서 미 공수부대원들이 백기를 들고 투항하여 자비를 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에게 즉결처분당해 학살당한 사건이다. [18] 스코틀랜드의 글렌코 지역에서 잉글랜드군이 스코틀랜드의 맥도널드 가문 일원 78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A] [20] 숙청과 고려인 강제이주 과정에서 희생자 발생. [21] 터무니 없는 계획으로 일어난 의도하지 않은 참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마오쩌둥은 자국의 인민이 굶어죽어 감을 분명히 직시했음에도 이를 방관하고 오히려 자신의 체면을 위해 조기에 전국적으로 풀면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던 곡물을 수출하고 외국에서 식량을 수입하지 않는 악행을 저질러 수천만의 인민을 굶겨죽였다. 저명한 역사학자 디쾨터 교수는 마오쩌둥 집권기의 기근 희생자들은 마오 정권에 의한 학살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일부 지역에서는 비협조적이거나 터무니없는 생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인민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가혹행위와 학살이 자행되었다. [A] [23] 학살도 많았지만 정확히는 대 반달리즘. [24] 1928년 12월 6일, 콜롬비아의 바나나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이 더 나은 처우를 요구하며 벌인 파업을 군인을 동원하여 진압한 학살이다. [25] 1929년 2월 14일, 경찰관으로 위장한 알 카포네 파 조직원들이 라이벌인 조지 모런 파 조직원들을 살해한 사건. [26] 1958년 남베트남 정권이 푸로이 수용소에 있던 베트민 죄수들을 독살 및 총살한 사건이다. 6,000명의 죄수들 중 최소 1,000명이 학살당했다. [27] 직접 학살한 것은 아니지만 영국의 주요 식민지 정책인 이간질이 사태를 수습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28] 1943년 7월 14일, 시칠리 침공 당시 71명의 이탈리아군 포로와 독일군 포로 2명이 미군에 의해 사살된 사건. [29]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시기, 대통령 임기 시작일을 1일 앞두고 대통령 당선인이자 팔랑헤당이라고도 부르는 친미·친서방·친이스라엘 기독교 민병대 카타엡(Kataeb)당의 대표인 바시르 게마옐(بشير الجميّل, Bachir Gemayel)이 시리아 정보원에 의해 암살당하자 제대로 빡친 팔랑헤가 레바논에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봉쇄 후 학살한 사건. 목표는 테러리스트 제압이었다고 하지만 이미 이 사건은 작전 수일 전에 노출되어서 남자들은 모두 탈출한 뒤였고, 부녀자와 아이들만이 남아있었음에도 3일간에 걸쳐서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 학살을 이스라엘군은 묵인하다 못해서 조명탄까지 쏴주면서 부추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다시 국제적 비난이 쇄도하였다. 학살의 원인인 바시르의 암살을 일으킨 시리아는 아에 모른척 무시했다. 바시르와 왈츠를이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30] 공산주의 테러집단인 일본 연합적군이 자신들의 멤버들 중 12명에 린치를 가해 살해한 사건 [31] 肅清大虐殺.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에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이 2월 18일에서 3월 4일 사이에 싱가포르에 거주하던 중국인 화교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32] 벨기에 슈노뉴 마을 근처에서 미군이 독일군 포로를 학살한 사건, 말메디 학살의 일로 역으로 보복한 것이지만 상대 상대인지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33] 1차 세계대전 중 일어난 학살로 오스만이 동원한 비정규군 + 쿠르드족이 주도했다. [34] 프랑스군이 저지른 학살이 대부분이지만 알제리인들이 프랑스인들을 학살한 사건도 있었다. 그나마 알제리인들이 보복 학살은 상대적으로 옹호 받는 편이다. [35] 단, 이 경우는 당시의 전쟁법 기준으로는 전쟁범죄가 아니다. [A] [A] [A] [39] 내전 초기 당시 한국인 희생자 발생. 또 한국인이 필리핀에서 ISIL 연계조직 아부 사야프에 의해 피랍되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40] 1960년대 수하르토의 쿠데타 이후 공산당 토벌을 빌미로 10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 [41] 2차대전 때 세르비아에서 일어난 학살. 체트니크 항목도 참조. [42]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같은 편인 독일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43] 1943년 이탈리아 카니카티에서 미군에 의해 민간인이 살해당한 사건. [44]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버마의 칼라공에서 벌인 학살. [45] 특히 방데 전쟁 진압 과정에서의 학살은 근대적 학살, 제노사이드의 효시로 보는 시각도 있을 정도로 잔혹했다. 해당 항목 참조. [46] 1932년 일본군이 게릴라 토벌을 벌인다며 중국에서 저지른 학살.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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