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 Collins Discograph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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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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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 Value 1981.02.13 |
Hello, I Must Be Going! 1982.11.05 |
No Jacket Required 1985.01.25 |
...But Seriously 1989.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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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h Sides 1993.11.08 |
Dance into the Light 1996.10.21 |
Testify 2002.11.11 |
Going Back 2010.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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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 제네시스 디스코그래피 |
필 콜린스 관련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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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콜린스의 소속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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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콜린스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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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그래미 어워드 | |||||||||||||||||||||||||||||||||||||||||||||||||||||||||||||||||||||||||||||||||||||||||||||||||||||||||||||||||||||||||||||||||||||||||||||||||||||||||||||||||||||||||||||||||||||||||||||||
올해의 레코드상 | ||||||||||||||||||||||||||||||||||||||||||||||||||||||||||||||||||||||||||||||||||||||||||||||||||||||||||||||||||||||||||||||||||||||||||||||||||||||||||||||||||||||||||||||||||||||||||||||||
제32회 ( 1990년) |
→ |
제33회 ( 1991년) |
→ |
제34회 ( 19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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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 Beneath My Wings - 베트 미들러 | → | Another Day in Paradise - 필 콜린스 | → | Unforgettable - 나탈리 콜(With 냇 킹 콜) | ||||||||||||||||||||||||||||||||||||||||||||||||||||||||||||||||||||||||||||||||||||||||||||||||||||||||||||||||||||||||||||||||||||||||||||||||||||||||||||||||||||||||||||||||||||||||||||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 ||||
주제가상 | ||||
제71회 ( 1999년) |
→ |
제72회 ( 2000년) |
→ |
제73회 ( 2001년) |
When You Believe 스티븐 슈왈츠 ( 이집트 왕자) |
→ |
You'll Be in My Heart 필 콜린스 ( 타잔) |
→ |
Things Have Changed 밥 딜런 (원더 보이스) |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 ||||
주제가상 | ||||
제45회 ( 1988년) |
→ |
제46회 ( 1989년) |
→ |
제47회 ( 1990년) |
프랭크 프레비트, 존 드니콜라, 도날드 마코위츠 - (I've Had) The Time of My Life ( 더티 댄싱) |
→ |
필 콜린스, 라몬트 도지어 - Two Hearts[1] (버스터)/칼리 사이먼 - Let the River Run (워킹 걸) |
→ |
앨런 멩컨,
하워드 애쉬먼 -
Under the Sea ( 인어공주) |
제56회 ( 1999년) |
→ |
제57회 ( 2000년) |
→ |
제58회 ( 2001년) |
셀린 디옹,
안드레아 보첼리 - The Prayer ( 매직 스워드) |
→ |
필 콜린스 -
You'll Be in My Heart ( 타잔) |
→ |
밥 딜런 - Things Have Changed (원더 보이스) |
역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 ||||
최우수 팝/록 남성 아티스트 수상 | ||||
제17회 ( 1990년) |
→ |
제18회 ( 1991년) |
→ |
제19회 ( 1992년) |
바비 브라운 | → | 필 콜린스 | → | 마이클 볼튼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ccc> |
브릿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수상작 '''[[틀:브릿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수상작(1977년~1999년)|Brit Award for Album of the Y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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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1977년 | 1982년 | 1983년 | 1984년 | 198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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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 Kings of the Wild Frontier | Memories | Thriller | Diamond Life | |
비틀즈 | 애덤 앤 디 앤츠 |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마이클 잭슨 | 샤데이 | |
<rowcolor=#fff> 1986년 | 1987년 | 1988년 | 1989년 | 199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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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Jacket Required | Brothers in Arms | ...Nothing Like the Sun | The First of a Million Kisses | The Raw and the Cooked | |
필 콜린스 | 다이어 스트레이츠 | 스팅 | 페어그라운드 어트랙션 | 파인 영 카니발스 | |
<rowcolor=#fff> 1991년 | 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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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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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 | Seal | Diva | Connected | Parklife | |
조지 마이클 | 실 | 애니 레녹스 | 스테레오 엠씨스 | 블러 | |
<rowcolor=#fff> 1996년 | 1997년 | 1998년 | 1999년 | ||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 Everything Must Go | Urban Hymns | This Is My Truth Tell Me Yours | ||
오아시스 |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 버브 |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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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보기 : 영국 - 앨범, 싱글, 남성, 여성, 그룹, 신인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ccc> |
브릿 어워드 올해의 노래상 수상작 '''[[틀:브릿 어워드 올해의 노래상 수상작(1977년~1999년)|Brit Award for Song of the Y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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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1977년 | 1982년 | 1983년 | 1984년 | 198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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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hemian Rhapsody | Tainted Love | Come On Eileen | Karma Chameleon | Relax | |
퀸 | Soft Cell | Dexys Midnight Runners | 컬처 클럽 | Frankie Goes to Hollywood | |
<rowcolor=#fff> 1986년 | 1987년 | 1988년 | 1989년 | 199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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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 | West End Girls | Never Gonna Give You Up | Perfect | Another Day in Paradise | |
티어스 포 피어스 | 펫 샵 보이즈 | 릭 애스틀리 | Fairground Attraction | 필 콜린스 | |
<rowcolor=#fff> 1991년 | 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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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the Silence |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 Could It Be Magic | Pray | Parklife | |
디페시 모드 | 퀸 | 테이크 댓 | 블러 | ||
<rowcolor=#fff> 1996년 | 1997년 | 1998년 | 1999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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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for Good | Wannabe | Never Ever | Angels | ||
테이크 댓 | 스파이스 걸스 | All Saints | 로비 윌리엄스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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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보기 : 영국 - 앨범, 싱글, 남성, 여성, 그룹, 신인 | }}}}}}}}} |
역대 브릿 어워드 | ||||
영국 최우수 남성 솔로 아티스트 수상 | ||||
제 5회 ( 1985년) |
→ |
제 6회 ( 1986년) |
→ |
제 7회 ( 1987년) |
폴 영 | → | 필 콜린스 | → | 피터 가브리엘 |
제 8회 ( 1988년) |
→ |
제 9~10회 ( 1989년~ 90년) |
→ |
제 11회 ( 1991년) |
조지 마이클 | → | 필 콜린스[2] | → | 엘튼 존 |
작곡가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이름 |
필 콜린스 PHILL COLLI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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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 | (개인자격) | ||
입성 연도 | 2003년 출처 참조 | }}} |
선정 가장 위대한 드러머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롤링 스톤이 2016년 가장 위대한 드러머를 선정한 순위다.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존 본햄 | 키스 문 | 진저 베이커 | 닐 피어트 | 할 블레인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클라이드 스터블필드 & 존 자보 스타크스 | 진 크루파 | 미치 미첼 | 알 잭슨 주니어 | 스튜어트 코플랜드 |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베니 벤자민 | 찰리 와츠 | D. J. 폰타나 | 링고 스타 | 버디 리치 | |||||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빌 브루포드 | 테리 보지오 | 지기 모델리스테 | 토니 윌리엄스 | 버나드 퍼디 | |||||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이안 페이스 | 레번 헬름 | 엘빈 존스 | 스티브 갯 | 얼 팔머 | |||||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대니 케리 | 데이브 그롤 | 카마인 어피스 | 칼튼 바렛 | 클리프톤 제임스 | |||||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로저 호킨스 | 제임스 갯슨 | 토니 앨런 | 미키 하트 & 빌 크로이츠만 | 프레드 벨로 | |||||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스티브 스미스 | 제프 포카로 | 짐 켈트너 | 티키 펄우드 | 잭 디조넷 | |||||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카터 보포드 | 빌 워드 | 필 콜린스 | 제리 앨리슨 | 빌리 코범 | |||||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데이비드 가리발디 | 데이브 롬바르도 | 존 프렌치 | 비니 콜라이우타 | 코지 파웰 | |||||
51위부터는 출처 참고 | |||||||||
같이 보기: 명반, 명곡, 앨범 커버, 아티스트, 송라이터,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1 / 2, 베이시스트, 드러머, 듀오 |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1위 – 100위 ] {{{#!wiki style="margin: -6px -1px -16px" |
※ 2019년 빌보드가 발표한 빌보드 Hot 100 차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순위다. 얼마나 많은 곡들을 차트에 높은 순위로 진입시키고 유지했는가를 기준으로 산정한 리스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싱글을 많이 낸 뮤지션들이 더 유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 | ||||
<rowcolor=#fff>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비틀즈 | 마돈나 | 엘튼 존 | 엘비스 프레슬리 | 머라이어 캐리 | |
<rowcolor=#fff>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스티비 원더 | 자넷 잭슨 | 마이클 잭슨 | 휘트니 휴스턴 | 리아나 | |
<rowcolor=#fff>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드레이크 | 롤링 스톤스 | 폴 매카트니 | 비 지스 | 어셔 | |
<rowcolor=#fff>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시카고 | 슈프림즈 | 프린스 | 홀 앤 오츠 | 로드 스튜어트 | |
<rowcolor=#fff>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테일러 스위프트 | 올리비아 뉴튼 존 | 아레사 프랭클린 | 마룬 5 | 마빈 게이 | |
<rowcolor=#fff>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케이티 페리 | 필 콜린스 | 빌리 조엘 | 브루노 마스 | 다이애나 로스 | |
<rowcolor=#fff>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포 시즌스 | 템테이션스 | 도나 서머 | 비치 보이스 | 라이오넬 리치 | |
<rowcolor=#fff>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닐 다이아몬드 | 카펜터즈 | 저스틴 비버 | 잭슨 파이브 | 보이즈 투 멘 | |
<rowcolor=#fff>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코니 프랜시스 | 브렌다 리 | 더 위켄드 | 비욘세 | 크리스 브라운 | |
<rowcolor=#fff>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케니 로저스 |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브라이언 아담스 | 셰어 | 블랙 아이드 피스 | |
<rowcolor=#fff>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조지 마이클 | 핑크 | 바비 빈튼 | 존 멜렌캠프 | 레이디 가가 | |
<rowcolor=#fff>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쓰리 도그 나이트 |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 | 글로리아 에스테판/마이애미 사운드 머신 | 본 조비 | 처비 체커 | |
<rowcolor=#fff>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레이 찰스 | 포리너 | 쿨 & 더 갱 | 글래디스 나이트 앤 더 핍스 | 리키 넬슨 | |
<rowcolor=#fff>66위 | 67위 | 68위 | 69위 | 70위 | |
듀란 듀란 | 저스틴 팀버레이크 | 코모도스 | 이글스 | TLC | |
<rowcolor=#fff>71위 | 72위 | 73위 | 74위 | 75위 | |
폴 앵카 | 에미넴 | 배리 매닐로 | 디안 워윅 | 넬리 | |
<rowcolor=#fff>76위 | 77위 | 78위 | 79위 | 80위 | |
하트 | 포스트 말론 | 아리아나 그란데 | 에벌리 브라더스 | 칸예 웨스트 | |
<rowcolor=#fff>81위 | 82위 | 83위 | 84위 | 85위 | |
바비 다린 | R. 켈리 | 제임스 브라운 | 폴라 압둘 | 켈리 클락슨 | |
<rowcolor=#fff>86위 | 87위 | 88위 | 89위 | 90위 | |
앨리샤 키스 | 에드 시런 | 린다 론스태드 | 리처드 막스 | 데스티니스 차일드 | |
<rowcolor=#fff>91위 | 92위 | 93위 | 94위 | 95위 | |
셀린 디옹 | JAY-Z | 미라클스 | 디온 | 플리트우드 맥 | |
<rowcolor=#fff>96위 | 97위 | 98위 | 99위 | 100위 | |
밥 시거/실버 불릿 밴드 | 닐 세다카 | 브루스 스프링스틴 & E 스트리트 밴드 | 포인터 시스터스 | 존 덴버 | |
출처 | }}}}}}}}} |
Heart 선정 영국 최고의 음악가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영국의 라디오 방송국 Heart가 'Best of British: Musicians'를 선정.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비틀즈 | 비 지스 | 엘튼 존 | 퀸 | 케이트 부시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스팬도 발레 | 유리드믹스 | 필 콜린스 | 듀란 듀란 | Wham! |
}}} ||
}}} ||
Lieutenants of the Royal Victorian Order[3] 필 콜린스 Phil Collin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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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092B44><colcolor=#fff> 본명 |
필립 데이비드 찰스 콜린스 Philip David Charles Collins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
출생 | 1951년 1월 30일 ([age(1951-01-30)]세) | ||
영국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
미들섹스 치스윅 (現 영국 그레이터 런던 하운슬로) |
|||
거주지 | 스위스 베니앙 보 | ||
직업 |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배우 | ||
소속 |
제네시스 (1970 – 1998)[4] 무소속 (1998 – 2021) 제네시스 (2021 – 2022)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92B44><colcolor=#fff> 배우자 |
안드레아 베르토렐리 (1975 ~ 1980) 질 타벨만 (1984 ~ 1996) 오리엔 시비 (1999 ~ 2008) |
|
자녀 |
총 3남 2녀 딸 릴리 콜린스 |
||
신체 | 168cm, 65kg | ||
종교 | 기독교 ( 성공회) | ||
학력 | 치스윅 스쿨 (졸업) | ||
버클리 음악대학 (음악학 / 명예 박사) | |||
활동 기간 |
1963년 –
2011년 2015년 – 2022년 |
||
사용 악기 | 드럼, 피아노, 보컬 | ||
장르 | 팝, 팝 록, 펑크, 포스트 디스코, R&B, 프로그레시브 록, 재즈 퓨전, 블루 아이드 소울 | ||
링크 |
[clearfix]
1. 개요
|
그의 대표곡인 "In the Air Tonight" (1981) |
2. 상세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자랑하는 드러머이며,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예스와 더불어 세계 4대 프로그레시브 록밴드라고 불리는 제네시스의 드러머로 재적한 아티스트이다. 밴드의 리더인 피터 가브리엘이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투어 이후 탈퇴하자 필 콜린스는 제네시스에서 드러머 겸 메인 보컬로도 활동하였다.대중적으로는 1980년대의 솔로 활동이 더 잘 알려져있다. 솔로 활동으로 무려 1억 5천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이는 솔로 아티스트 기준으로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수치이다. 빌보드 차트의 레드 오션이었던 1980년대 중반 무려 7곡의 빌보드 핫 100 1위 곡을 냈으며, 1980년대 사상 3번째로 많은 음반을 판[5] 아티스트이다. 이 시기에는 전위적인 프로그레시브 록보다는 보다 더 대중적인 팝 음악을 추구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그는 프로그레시브 록 드러머라기보다는 팝 가수로서의 인지도가 더 높다. 비슷한 시기 제네시스에서의 활동도 활발히 하여[6] 제네시스 소속으로도 1억장 가량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아티스트였다.
솔로 활동 당시 1970년대에 비해 실험성이 옅어지고 대중성에 비중을 둔 음악으로 인해 동료 음악가들과 평론가들에게서는 안좋은 평을 얻었다. 그럼에도 그의 곡 중에서는 발매된지 40년 가까이 된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명곡들이 많다.
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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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가브리엘 재적 시기의 모습 (1973년) | ▲ 제네시스 2기 당시의 모습 (197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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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 활동 시기의 모습 (1985년) |
3.1. 초기 활동
1951년 영국 잉글랜드 남부의 미들섹스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보험 대리인이었고 어머니는 연극 배우로 일했다.5살 때 부모님에게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어린이용 드럼 키트를 접하면서 드럼을 시작했다. 그의 장난감 드럼 세트는 점점 규모를 불려나가더니 청소년기에는 제법 그럴듯한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때에는 드럼 연주 면에서 링고 스타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악보를 보는걸 지루해해서 자신만의 기호를 만들어놓고 그에 맞춰 음악을 연주했다는데,[7] 현재는 이것을 후회한다고 한다.
14살에는 전문 연기 학교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한다. 그 이전에도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다름아닌 비틀즈가 주역으로 출연하는 영화 A Hard Day's Night이었다. 프로 뮤지션 데뷔는 1970년 조지 해리슨의 솔로 앨범인 ' All Things Must Pass'에 퍼커션 세션으로 참여한 것이다.[8]
3.2. 1970년대 : 제네시스의 드러머로서
주간 '멜로디 메이커' 지에 게재된 제네시스의 멤버 오디션 광고를 본 것이 계기가 되어 제네시스의 드러머로 들어가게 된다. 오디션에 필 콜린스가 응했을 때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필 콜린스는 순서상 가장 늦게 드럼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이전에 연주하는 다른 드러머들의 리듬을 전부 캐치하여 자신의 연주에서 그것을 완벽히 재현했고 그 모습을 본 제네시스 멤버들이 곧바로 밴드에 가입시켰다. 제네시스에 가입한 이후 필 콜린스는 특유의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리듬을 바탕으로 스티브 해킷과 함께 제네시스의 사운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이후 제네시스는 천재 뮤지션 피터 가브리엘의 주도 하에 Foxtrot,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등 프로그레시브 록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을 발매하였고, 그들의 음악은 꽤 유명해져서 핑크 플로이드, 예스, 제쓰로 툴, 킹 크림슨,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등 전설적인 밴드들과 함께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을 이끌어가는 주축이 되었다. 당연히 제네시스의 드러머인 필 콜린스도 이때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에게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드럼 연주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던 도중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투어를 앞두고 리더이자 보컬이었던 피터 가브리엘이 느닷없이 탈퇴 의사를 밝혔다.[9] 이후 새로운 보컬을 뽑기 위해 수백명의 면접을 보는데 아무도 마음에 안들어서 고민하던 차에, 콜린스가 직접 신곡 Squonk를 불러본 것이 멤버들에게 가장 좋은 평가를 얻어서 얼떨결에 보컬이 되어버렸다고(...). 1976년 제네시스는 A Trick of the Tail을 발매하는데 이 앨범에서 중심이 된 필 콜린스는 피터 가브리엘의 공백을 완벽히 메운다.
비슷한 시기인 1974년에는 재즈 록 성향의 프로그레시브 밴드인 브랜드 엑스(Brand X)라는 밴드에서도 활동했다. 원래는 빌 브루포드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데이비드 알렌의 Gong의 라이브 세션에 참여하면서 대신 들어오게 된 것이다. 훗날 둘은 제네시스 라이브에서 만나게 된다.
3.3. 1980년대 :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팝으로
|
솔로 시절의 대표곡인 "Take Me Home" (1985). |
1981년 그는 첫 솔로 데뷔 앨범인 " Face Value"를 발매했다. 이 음반은 아트 록을 기반에 둔 가운데 팝 음악을 수용한 음반이었고, 필 콜린스의 성향 변화를 암시하는 기념비가 된다. 한편 이 음반에 수록된 곡 " In the Air Tonight"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드럼 연주로 인하여 평론가들에게서도 인정을 받았고, 빌보드 핫 100 19위에 오르며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후일 GTA 바이스시티의 스핀오프였던 Grand Theft Auto: Vice City Stories에는 필 콜린스가 직접 이 곡을 연주하는 콘서트 이벤트로도 나오면서 한국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소소한 인기를 얻었다.
1982년작 음반 Hello, I Must Be Going!도 상업적으로 중박을 치면서 성공했다. 같은 연도의 싱글 You Can't Hurry Love는 UK 차트 1위에 오르며 그의 첫 차트 1위 싱글이 되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1980년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가 된 것은 1984년 영화 'Against All Odds'의 동명 주제곡이 빌보드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이다. 이 노래는 후대에 머라이어 캐리가 커버하여 다시 히트시킨 바 있고, 라이브 에이드에서도 부른 그의 명실상부한 대표곡이다.
이후 발매한 음반인 No Jacket Required는 그야말로 초대박을 쳤다. 총 판매량이 3,000만장에 가까웠고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의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수록곡인 One More Nights와 Sussudio는 빌보드 핫 100 차트의 1위를 차지하였고, Don't Lose My Number가 4위, Take Me Home이 7위로 그야말로 초대박을 친다. 이 음반에는 한때 숙적이자 라이벌이었던 피터 가브리엘이 필 콜린스와 화해하고 레코딩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피터 가브리엘은 이 음반의 큰 성공에 충격을 받고 그의 음반 So에서 기존의 아트 음악에 팝을 첨가하여 대중적, 평론적으로 모두 성공했다. So의 레코딩에도 필 콜린스가 참여하였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 때에는 참여 아티스트 중 영국과 미국 공연에 연달아 참여하기 위해 콩코드 여객기를 이용할 정도로 그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라이브 에이드는 같은 날 동시에 런던과 뉴욕에서 벌어진 공연이었는데, 양쪽 공연을 모두 참석한 케이스는 필 콜린스가 유일하다. 참고로 콩코드기는 런던-뉴욕을 3시간 만에 주파한다. 물론 운임은 일반 제트기의 10배 이상. 아무나 타는게 아니다. 1988년 Never Gonna Give You Up 공연 세션에서 기타 연주자로 브라이언 메이와 함께, 드럼 연주자로 참여하였다. 1991년에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1989년에도 " ...But Seriously"가 연속 히트를 쳐 그래미 어워드를 7회 수상했다. 이 음반 역시 2,000만장 넘게 팔린 메가히트작이다.[11] Another Day in Paradise 싱글은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4주 연속 올라 그의 커리어 사상 마지막 1위 곡이 되었다. 피터 가브리엘, 에릭 클랩튼 등 그와 친한 뮤지션들도 대거 레코딩에 참여해 그야말로 빵빵한 구성을 보여줬다.
한편으로는 제네시스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 시기 제네시스는 1970년대 피터 가브리엘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나, Abacab 음반부터는 필 콜린스의 취향대로 팝 음악을 추구하였다. 제네시스의 활동으로도 크게 성공한 편이다. 총 음반 판매량이 1억장에 달하고, 1980년대 중반에도 그 인기를 굳건히 유지했다. Land of Confusion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비난하는 재미있는 뮤직 비디오로 MTV 어워드의 올해의 뮤직비디오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고[12] Invisible Touch는 제네시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빌보드 1위 곡이 되었다.[13][14]
이 시기에는 드러머로서의 역량이 많이 줄어들었으나 레드 제플린의 보컬로 유명한 로버트 플랜트의 드러머로도 활동하면서 드러머로서의 명성을 이어나갔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는 에릭 클랩튼, 레드 제플린, 스팅의 무대에서 드러머로 섰으며, 다이어 스트레이츠와 같은 밴드와도 협업하면서 최고의 인기를 달렸다.
다만, 이 시기 무지막지한 인기를 끈 것과 달리 평론적 평가는 크게 하락했다. 필 콜린스를 좋아하지 않는 노엘 갤러거는 그를 두고 앨범이 많이 팔린다고 해서 좋은 앨범이 아니라는 대표적 사례로 들 정도였다.
3.4.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음악 시장이 많이 바뀐만큼,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고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필 콜린스는 필 콜린스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도 많은 돈을 벌었다. 이 시기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재즈 빅 밴드 활동이 한 원인이었다. 자신의 히트곡과 제네시스 곡들을 재즈 버전으로 편곡하여 연주했다. 1999년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타잔의 주제가 ' You'll Be in My Heart'로 아카데미 주제가상 수상과 더불어 인기를 회복하고 이후 2002년에는 타잔, 브라더베어 등 OST를 담당한 것으로 디즈니사로부터 디즈니 영화에 대한 음악적 공로를 인정받아 디즈니 레전드 칭호를 부여받았다.1997년 총선에서 보수당을 지지했던 그는 노동당이 이기자 이에 반발해 영국을 떠나 스위스로 이민가 현재까지 살고 있다. 그러나 노동당의 총선 승리는 명목상의 이유일 뿐이고 실질적인 이유는 토니 블레어 총리의 정책이었던 세금 인상으로 인해 돈을 뜯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국 언론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수많은 팬들이 단지 돈 문제 때문에 부자 가수가 자신의 조국을 버렸다며 필 콜린스를 비난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게임 ' GTA 바이스 시티 스토리즈'의 특정 미션에 본인이 주인공인 본인 배역(필 콜린스)으로 출연하여 열연을 펼치기도 했다.
2010년 커버 앨범 'Going Back'을 끝으로 척추 수술의 후유증 때문에 드럼 연주가 불가능해지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2015년에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은퇴를 번복하였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솔로 앨범과 길지 않은 투어를 계획 중이며 동아시아와 호주에서 스타디움 공연을 할 것이라고 한다. 2016년부터 개인 투어를 재개하여 이어나가고 있으나, 척추 문제로 주로 의자에 앉아서 공연을 진행하고 급격히 노쇠한 신체 상태로 키를 매우 낮춰 노래하였다. 배철수도 이런 필 콜린스의 모습을 보고 방송에서 안타까움을 피력하였다.
2020년 3월 제네시스 재결합 투어 계획이 발표되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021년 4월로 연기되었다가, 다시 9월로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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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제네시스의 재결합 투어에 참여하였으나, 건강 문제 때문에 아쉽게도 드럼은 치지 못했다. 드럼을 대신 친 것은 그의 아들이다. 피터 가브리엘도 불참했기에 사실상 반쪽짜리 재결합인 셈. 필 콜린스의 건강 악화 때문에 마지막 투어가 될거라는 우려도 있다
2022년 3월 26일, 영국 런던에서의 마지막 콘서트를 끝으로 기나긴 음악생활에서 은퇴했다.
4. 음악성과 평가
4.1. 드러밍
사실 필 콜린스는 그 엄청난 드럼 실력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를 대표하는 팝스타였기 때문에 그 실력에 대해선 관심이 적은 편이다. 존 본햄 사후 코지 파웰, 카마인 어피스와 더불어 가장 유력한 레드 제플린 드러머로 거론되기도 했다. 로버트 플랜트의 솔로 1~2집 앨범 레코딩 시 드럼 세션을 담당했던 메인 드러머가 필 콜린스였다. 코지 파웰은 1집에서 두 곡에 세션으로 참여. 이후 1985년 라이브 에이드 때 레드 제플린의 곡을 실제로 연주하기도 했다. 데뷔 때부터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세션 활동 경력을 자랑한다.
필 콜린스 드러밍의 특징은 완벽한 리듬 구사다. 다양한 종류의 탐과 심벌을 통해 만들어 내는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리듬은 변박의 제왕이라 불리는 빌 브루포드[15]와 더불어 당대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드러밍의 파워도 엄청나서 하드락 뮤지션들의 스튜디오 레코딩과 라이브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라르크 앙 시엘의 드러머인 유키히로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이 필 콜린스이며 존 본햄은 자신의 아들 제이슨에게 드럼을 가르칠 때 필 콜린스의 리듬 구사 능력을 높이 평가해 그의 드러밍도 같이 가르쳤다.
그렇다고 자신의 전문 분야인 팝이나 프로그레시브 록에서만 잘 치는것도 아니다. 다음은 필 콜린스가 세션으로 참여한 앨범 중에서 장르가 다른 앨범 중 몇 가지를 나열한 것이다. (장르는 아티스트 바로 뒤에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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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플랜트(
하드 록)
- Pictures at Eleven(1982): 로버트 플랜트가 레드 제플린 해산 후 발매한 첫 솔로 앨범으로 코지 파웰도 참여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사람들이 필 콜린스와 코지 파웰을 존 본햄의 후임으로 생각한 건 이 앨범 때문이다. 로버트 플랜트는 레드 제플린 결성 이전에 밴드 오브 조이라는 그룹에서 존 본햄과 같이 있었고 그를 레드 제플린에 들어오게 하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에 사람들은 로버트 플랜트가 세션 드러머를 누구로 기용하는지 앨범 발매 전부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 The Principle of Moments(1983) - 에릭 클랩튼( 블루스 록) - Behind the Sun(1985), August (1986)
- 브라이언 이노( 아트 록) - Another Green World(1974)
- 알 디 메올라( 재즈) - Scenario(1983)
- 토미 볼린( 하드 록, 블루스) - Teaser(1975)
- 필립 베일리( 소울??) - Chinese Wall(1984): 필립 베일리는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인기 펑크(Funk) 밴드인 Earth, Wind & Fire의 리드 보컬. 필 콜린스는 이 앨범의 프로듀서도 같이 했다. 이 앨범의 대표곡이 그 유명한 팝 넘버 Easy Lover다.
그야말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두들겨 대는 드럼 세션의 본좌라 할 수 있다.
그의 대표곡인 In the Air Tonight의 드러밍은 모든 드러밍의 기본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 곡이다. 러시의 YYZ, 밴 헤일런의 Hot for Teacher, 레드 제플린의 Moby Dick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드럼 연주곡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실력과는 별개로 드럼 칠때의 자세가 나쁜 편으로, 스네어의 위치를 낮게 잡아두고 치는 것을 선호했다. 이로 인해 커리어 내내 척추에 무리가 가해져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 만성적인 허리 통증이 발생하여 더 이상 드럼을 칠 수 없게 되었다. 참조. 영상에 나온 것처럼 스네어를 낮게 설치하고 연주하다 보니 원활한 연주를 위해 등을 구부리는 모습이 보인다.
4.2. 송라이팅과 이에 대한 비판
수준 높은 드러밍과 별개로, 필 콜린스는 인기에 비해 송라이팅 실력이 좋지 않은 대표적인 음악가로 자주 비판받곤 한다. 물론 이러한 비판들이 모두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필 콜린스가 1980년대에 그야말로 슈퍼스타였고 그만큼 안티들도 많았기 때문. 하지만 필 콜린스의 음악성은 드러밍과 달리 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사상 최악의 음악가" 투표를 할때 언제나 순위권에 오르내릴정도로 호불호가 갈리는 음악가이다. 사실 이런 류의 투표에서는 원디렉션이나 방탄소년단, 저스틴 비버 등 안티들이 많은 최신 아티스트들이 많이 오르내린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필 콜린스의 사례는 꽤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와 1970년대 함께했던 동료 음악가들도 필 콜린스를 부정적으로 여긴다. 데이비드 보위는 자신의 1980년대 커리어를 "필 콜린스 시기"라고 했던 적이 있고[16] 로저 워터스도 필 콜린스의 음악을 쓰레기같은 팝송이라고 비난했다. 후대 음악가인 리암 갤러거는 필 콜린스의 음악이 너무 지루하다고 그를 비판했던 적이 있다. 그의 형인 노엘 갤러거는 아예 보수당을 뽑으면 안되는 이유로 필 콜린스를 꼽았고 한 인터뷰에서 앨범이 많이 팔렸다고 다 좋은 앨범이 되는 건 아니라는 요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앨범이 많이 팔린다고 해서 좋은 앨범이 된다면 필 콜린스는 씨x 갑 중의 갑이겠네, 안 그래?" 라는 말로 필 콜린스를 돌려 깐 적도 있다.[17] 평론가들에게서도 그렇게 좋은 평을 받지는 못한다. 어클레임드 뮤직에서 올타임 아티스트 순위 600위권대 후반에 위치해있을 정도.[18]
주된 이유로는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을 배신하고 팝 음악에 붙었다는 프로그레시브 록 팬덤의 분노[19], 분위기가 모두 같고 특색이 없는 곡들, 그리고 상업성만을 좇느라 진지한 음악적 고찰이 없게 된 것 등이 꼽힌다. 필 콜린스 특유의 창법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듯하다.
이 때문에 필 콜린스는 막대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에게서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하고 대부분의 음악 리스트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다만 1980년대 대표 음악가라는 위상을 감안하면 너무 평가가 낮은 것이 사실이며 RYM 등의 일반인 평론 사이트에서는 평론지보다는 높은 평을 내린다.
4.3. 관련 아티스트
- 스팅 : 베이스, 백보컬 등 다양하게 레코딩을 도왔다. 둘의 음악 성향이 어느정도 비슷하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는듯 하다.
- 에릭 클랩튼 : ...But Seriously 앨범에서 기타 세션으로 필 콜린스의 앨범 레코딩에 참여했고, 반대로 필 콜린스가 라이브에서 에릭 클랩튼의 드럼 연주자로 활동한 적도 있다.
- 피터 가브리엘 : 필생의 라이벌이지만 사이는 나쁘지 않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레코딩에 참여한적이 상당히 많다. 피터 가브리엘의 대표작인 "Biko"에서 드럼 연주는 필의 작품이다. 반대로 No Jacket Required에 수록된 Take Me Home의 백킹 보컬은 바로 피터 가브리엘이 스팅과 함께 부른 부분이다.
5. 디스코그래피
제네시스 시절 앨범은 제외.5.1. 앨범
- Face Value (1981)
- Hello, I Must Be Going! (1982)
- No Jacket Required (1985)
- ...But Seriously (1989)
- Serious Hits... Live! (1990): 1990년 투어 라이브 앨범(CD)인데 아래에서 소개하는 빌보드 1, 2위 곡 전부를 비롯 10위 안의 싱글 15곡이 수록되어 있다. 심지어 Easy Lover도. 이거 한 장이면 80년대 그의 히트곡 대부분을 들을 수 있다. Easy Lover의 경우 필립 베일리의 노래로 간주하여 국내에서 앨범으로 출시된 적이 없으며 싱글 발매를 하지 않았던 국내 사정상 이 노래를 한국에서는 에어플레이 말고는 들을 수 없었다. 이 노래 하나 때문에라도 이 CD를 구매한 필 콜린스 팬들이 제법 된다.
- Both Sides (1993)
- Dance into the Light (1996)
- Tarzan (1999)
- Testify (2002)
- Brother Bear (2003)
- Going Back (2010): 5~60년대 모타운 히트곡들을 필 콜린스 버전으로 녹음한 커버 앨범이다. 50년대~60년대 사운드를 현대적인 녹음으로 재현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퀼리티가 좋다.
5.2. 싱글
5.2.1. 빌보드 핫 100 1위
-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 (1984): 영화 어게인스트 주제곡.
- One More Night (1984)
- Sussudio (1985)
- Separate Lives (Duet with Marilyn Martin) (1985): 영화 백야의 주제곡.
- A Groovy Kind of Love (1988)
- Two Hearts (1988): 영화 버스터의 주제곡. 주제곡만 부른 것이 아니라 직접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도 했다.
-
Another Day in Paradise (1989): 세계의
홈리스들을 위한 노래다. 노래를 듣고 싶으면 음악 말고 유튜브 등지에서
뮤직비디오를 반드시 찾아서 볼 것. 특히 자막.
3 million homeless in America, 100 million homeless in the world
5.2.2. 빌보드 핫 100 2위
- Easy Lover (Duet with Philip Bailey) (1984): GTA 바이스 시티 스토리즈의 라디오 채널인 플래시 FM에서 나온다.[20]
5.2.3. 빌보드 핫 100 3위~10위
- You Can't Hurry Love (1982)
- Don't Lose My Number (1985)
- Take Me Home (1985)
- I Wish It Would Rain Down (1990)
- Something Happened on the Way to Heaven (1990)
- Do You Remember (1990)
5.2.4. 빌보드 핫 100 11위~20위
- In the Air Tonight (1981): 필 콜린스의 솔로 데뷔 첫 싱글로, 그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이다. 라이브에서는 곡 후반부 클라이맥스부터 필 콜린스가 직접 드럼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21] 데드 스페이스 3의 트레일러 삽입곡으로 쓰였다. 행오버에서 마이크 타이슨이 부른다. 또한 GTA 바이스 시티 스토리즈에서는 필 콜린스 본인이 직접 출연하여 공연하는 미션이 있는데 여기서 이 노래가 라이브 버전[22]으로 나온다.
- I Missed Again (1981)
5.2.5. 그 밖의 싱글
- If Leaving Me Is Easy (1981)
- Thru These Walls (1982)
- I Don't Care Anymore (1983)
- Don't Let Him Steal Your Heart Away (1983)
- Why Can't It Wait 'Til Morning (1983)
- I Cannot Believe It's True (1983)
- In the Air Tonight" (Remix) (1988)
- That's Just the Way It Is (1990)
- Hang in Long Enough (1990)
- Who Said I Would (1991)
- Both Sides of the Story (1993)
- Everyday (1994)
- We Wait and We Wonder (1994)
- Dance into the Light (1996)
- It's in Your Eyes (1996)
- No Matter Who (1997)
- Wear My Hat (1997)
- The Same Moon (1997)
- True Colors[23] (1998)
- You'll Be in My Heart (1999)
- Strangers like Me (2000)
- Son of Man (2000)
- Two Worlds (2000)
- Can't Stop Loving You (2002)
- The Least You Can Do/Wake Up Call (2003)
- Look Through My Eyes (2003)
- No Way Out (2003)
- (Love Is Like a) Heatwave (2010)
- Going Back (2010)
6. 수상경력
6.1. 그래미 어워드
- 1985
- 1986
Best Male Pop Vocal Performance - No Jacket Required (1985)
Producer of the Year, Non-Classical - No Jacket Required (1985) Together with Hugh Padgham
- 1989
- 1991
- 2000
6.2.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 1991
Favorite Male Artist (Pop/Rock) - But Seriously (1989)
- 2000
6.3. 아카데미 시상식
- 2000
6.4. 골든 글로브 시상식
- 1989 Best Original Song Two Hearts* Buster (1988)
- 1999 Best Original Song You'll Be in My Heart - Tarzan (1999)
7. 여담
-
에릭 클랩튼,
믹 재거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는 영국 출신의 연예인으로서는 드물게[24] 보수당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노동당이 집권했다는 이유로 영국을 떠났다고도 알려져 있는데, 필 콜린스를 싫어하는
노엘 갤러거는 노동당을 찍어야 할 이유로 필 콜린스의 일화를 들기도 했다. 한편 그와 한때 앙숙 관계였던
피터 가브리엘은 노동당 지지자이며, 영국 음악계의 대표적인 진보주의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과는 별개로 미국 공화당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널드 레이건을 비판하는 곡도 쓴 적이 있고,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의 곡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다.
사실 그는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투표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자신의 정치 성향을 밝힌 것도 자신이 관심이 없는 분야에서 싸움을 하게 되었다고 후회한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 그가 영국 보수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단순히 영국의 계급투표 정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중산층과 상류층은 보수당을, 노동자 계층은 노동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한데 중산층 출신인 필 콜린스도 자연스럽게 보수당을 지지하게 되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25]
-
레논-매카트니,
재거-리처즈처럼 제네시스의 쌍두마차였던
피터 가브리엘과 필 콜린스는 자주 비교되는 대상이다. 필 콜린스가 솔로 시절 팝 음악을 주로 추구한 반면 피터 가브리엘은 아트 음악을 유지하면서, 아트 음악에 팝, 포크, 월드뮤직 등의 요소를 받아들여 오히려 제네시스 시절의 음악을 더욱 발전시켰다. 또 음악성과 상업성에 대한 관점도 달랐는데 필 콜린스는 제네시스 시기 상업성 있는 프로그레시브 록을 추구하려고 하였으나 피터 가브리엘이 음악성이 우선이라고 주장했고 결국 큰 싸움으로 번져 피터 가브리엘이 밴드를 탈퇴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1980년대 중반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면서 현재는 제법 친해졌다. 서로의 음반에 레코딩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피터 가브리엘은 필 콜린스의 성공을 의식해
So 음반에서 팝 음악의 요소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둘다 사이좋게 탈모가 왔다
- 2016년 앨범 리마스터링 재발매 당시 자신의 얼굴이 찍힌 앨범 아트를 모두 현재의 자신으로 바꿔 다시 찍는 기행을 했다.
- 음색이 한국의 성우 김환진과 비슷하다.
7.1. 가족 관계
3번의 결혼 및 이혼 경력이 있으며, 자녀는 총 5명을 뒀다. 두 번째 결혼 당시 낳은 딸이 영화 백설공주와 옥자, 그리고 무려 에밀리, 파리에 가다로 유명한 배우 릴리 콜린스다.세 번째 부인 사이에 낳은 아들 니콜라스 콜린스는 2001년생으로, 현재 필 콜린스의 투어에서 드럼 세션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현재는 드럼을 칠 수 없게 된 아버지를 대신하여 제네시스에서 드럼을 치고 있기도 하다.
7.2. 대중매체에서
- 사우스 파크 제작진들이 매우 싫어하는 음악가인 것으로 추정된다. 작품 내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오면서 까인다. ADHD에 대한 치료 약물 남발을 비판하는 에피소드에서는 ADHD 치료약을 파는 약사들이 약물 남용이 뭐가 문제냐며 따지다가 "약을 복용한 아이들이 필 콜린스 음악을 즐겨듣는다"는 말을 듣자 우리가 뭘 한거냐(...)라면서 치료법을 모색한다. 해당 에피소드 내에서 필 콜린스는 인기 록밴드의 명성을 흠집내고 분열시키려하는 매우 쪼잔한 인물로 그려진다. 필 콜린스의 팬이라면 상당히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이다.[26][27]
-
Grand Theft Auto: Vice City Stories에 출연한 적이 있다. 목소리는 본인이 담당. 심지어 지나가는 캐릭터가 아닌, 본인이 제2의 주인공인 미션도 있다!
미션 In The Air Tonight에서 실패 시 그는 정말 In The Air Tonight했습니다 라고 뜨는건 덤.이런 인연 때문인지 Grand Theft Auto V에서는 가상의 라디오 방송국인 "Los Santos Rock Radio"의 플레이리스트에 "I Don't Care Anymore"가 수록되어 있다.
- 마이애미의 두 형사에서도 카메오로 출연한 바가 있고, 음악도 In the air tonight도 수록되어 있다.
[1]
공동 수상
[2]
2년 연속 수상
[3]
로열 빅토리아 훈장(LVO) 수훈자. 이름은 멋지지만, 실제로는 여왕을 많이 만나면 뿌리는 상이다. 특이하게도 영국을 대표하는 음악가임에도 영국 왕실 훈장을 수여받지 못했다.
[4]
중간에
제쓰로 툴에 세션 드러머로 소속된 적이 있었다.
[5]
1위는 마이클 잭슨, 2위는 마돈나
[6]
제네시스도 이 시기 팝 록으로 성향이 변화했다.
[7]
사실 프로 뮤지션중에서 이런 경우가 상당히 많다.
프레디 머큐리,
에디 밴 헤일런,
데이브 머스테인,
에릭 클랩튼 등.
폴 매카트니는 지금은 악보를 읽을 줄 알지만 비틀즈 시절에는 그저 감에 의지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8]
Art of Dying이라는 곡에 참여했다고 했다. 2000년 All Thing Must Pass 30주년 기념 앨범 발매 때 조지 해리슨이 언급해 알려졌지만, 2016년 필 콜린스가 자신이 참여한 세션은 음반에 실리지 않았다고 정정했다. 사실 녹음은 했었는데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폐기되었는데, 필이 조지에게 왜 자기 콩가 연주가 잘렸냐고 묻자 조지 본인도 기억이 나지 않아 모르겠다며 믹싱 테이프를 주고 들어보라고 했다. 근데 믹싱 테이프에 실린 콩가 연주는 엉망이었고, 필 콜린스은 왜 폐기했는지 알 것 같다고 납득했지만 사실은 조지 해리슨이 장난으로 필을 골탕먹이려고 다른 연주자를 시켜 끔찍한 콩가 연주를 녹음해서 넣어놨다고..
[9]
정확한 탈퇴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피터 가브리엘의 인터뷰를 참조하자면 밴드 멤버들과의 갈등, 음악성과 대중성 사이에서의 갈등, 그리고 당시 첫 아이를 낳은 아내에 대한 내조 같은 개인적인 고민 등이 종합된 것으로 보인다.
[10]
Wham 활동까지 합치면 비등하긴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제네시스까지 합쳐서 필 콜린스가 더욱 우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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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해외 아티스트의 음반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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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명작으로 불리지만 정작 상은 하나도 타지 못했다. 이유는
피터 가브리엘의
Sledgehammer가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그 해의 모든 뮤직비디오 어워드를 싹쓸이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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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주간 1위를 차지했다. 이후
피터 가브리엘의
Sledgehammer에 1위 자리를 빼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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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레시브 록 아티스트들의 빌보드 핫 100 1위 곡은 그야말로 손에 꼽는다.
예스의
Owner of a Lonely Heart,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등. 물론 Invisible Touch는 프록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는 앞의 두 곡도 마찬가지다.
[15]
전성기의
예스,
킹 크림슨을 거쳐갔던 드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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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는 데이빗 보위의 최대 침체기로, 어설프게 록 음악과 팝 음악을 결합했다며 혹평을 받았는데 그런 점에서 필 콜린스 같다고 가만히 있던 필 콜린스를 디스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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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는 필 콜린스가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구가한 아티스트임을 인정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18]
그의 라이벌인 피터 가브리엘은 120위권대이다. 피터 가브리엘과 필 콜린스의 인기 차이를 감안해보면(둘의 음반 판매량 차이가 10배 가까이 난다) 필 콜린스가 크게 낮은 것이다.
[19]
사실 피터 가브리엘, 예스 등 다른 음악가들이 팝 음악의 영향력을 수용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좀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피터 가브리엘은 월드뮤직과 아트 음악을 버리지는 않았고 오히려 팝과 적절히 융합시켰다는 점에서 필 콜린스와 비교되기 부당한 면이 있고, 예스의 경우 1980년대 커리어는 프로그레시브 록 팬덤들 사이에서 필 콜린스만큼이나 혹평을 받는다.
[20]
여담으로 필립 베일리(Philip Bailey)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보컬이다.
[21]
라이브 영상들을 보면 그가 드럼 세트를 향해 걸어갈 때부터 관객들이 환호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22]
1985년 텍사스에서 한 No Ticket Required 버전을 사용했다. 1984년을 작중 시점으로 삼은 게임에 맞춘 걸로 추정됨.
[23]
신디 로퍼의 노래였는데 필 콜린스가 리메이크했다.
[24]
대다수의 국가들이 마찬가지지만, 연예계와 문화예술계, 스포츠계 유명인들은 정치 성향이 진보적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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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믹 재거와도 비슷하다. 어쨌든
에릭 클랩튼 같은 극우파와 동일 선상에서 보는건 곤란하고 중도우파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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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사우스 파크는 작품 특성상 작중에 등장하는 유명인을 모조리 비난하는 것으로 유명한지라 실제 제작진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다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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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파크 극장판의 수록곡인
Blame Canada가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부문 후보에 올랐는데, 필 콜린스의
You'll Be in My Heart에 밀려 수상 실패했기 때문에 악감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