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10px 10px; background:#e55401"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0; border-radius:5px;" {{{#!wiki style="margin: 0 -5px -0px; {{{#fdfc4c,#fdfc4c {{{#!folding [ Discography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tablewidth=100%> | |||
Fresh Cream 1966 |
Disraeli Gears 1967 |
Wheels of Fire 1968 |
Goodbye 1969 |
}}}}}} ||
진저 베이커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
|
<colbgcolor=#000><colcolor=#fff> 진저 베이커 Ginger Baker |
|
|
|
본명 |
피터 에드워드 베이커 Peter Edward Baker |
출생 | 1939년 8월 19일 |
영국 잉글랜드 런던 루이셤 | |
사망 | 2019년 10월 6일 (향년 80세) |
영국 잉글랜드 켄트 캔터베리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싱어송라이터, 음악가 |
소속 그룹 | 크림(1966년 ~ 1968년) |
장르 | 록, 재즈, 블루스, 아프로비트 |
악기 | 드럼, 타악기, 보컬 |
활동 | 1954년 ~ 2015년 |
링크 |
[clearfix]
1. 개요
진저 베이커는 "드럼의 마왕"으로 불리는 영국의 전설적인 드러머이다. 전설적 슈퍼밴드 크림의 드러머로서 활약했다.2. 음악성
그는 키스 문마냥 탐탐을 엄청나게 많이 쌓아두고 연주를 하는 196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드러머로 당시의 드럼 연주법을 유행시킨 인물이다.[1][2]진저 베이커는 역사상 최고 드러머를 뽑을 때 키스 문, 존 본햄과 함께 절대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보통 크림하면 기타 에릭 클랩튼만을 떠올리지만, 진저 베이커 또한 역사에 길이 남을 락 아티스트임은 부정할 수 없다.[3] 그는 1960년대 헤비메탈 드럼의 선구자로 거의 모든 헤비메탈 밴드의 드러머들이 베이커의 연주에 영향을 받았다. 다만 진저 본인은 평생 스스로를 록 뮤지션이 아니라 재즈 뮤지션으로 생각했다.[4]
베이커의 스타일은 존 본햄, 피터 크리스, 닐 피어트, 필 콜린스, 스튜어트 코플랜드, 이안 페이스, 테리 보지오, 데이브 롬바르도, 토미 알드리지, 빌 브루포드, 알렉스 반 헤일런, 닉 메이슨을 포함한 많은 드러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3. 생애 및 활동 내역
1960년대 '블루스 인코퍼레이티드(Blues Incorporated)'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 때 잭 브루스를 만나게 되는데, 둘은 이 때부터 의견 충동이 잦았다 한다. 허나 이후 '그레이엄 본드 오거니제이션(Graham Bond Organization)'이라는 밴드에서 다시 리듬 섹션 멤버로 만나게 되는 등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5]1966년 ~ 1968년까지 3인조 록 밴드 크림에서 드러머로 활동했다. 자세한 사항은 크림 참조.
크림이 해체한 후에는 에릭과 함께 베이시스트 릭 그레치, 키보드 연주자 겸 보컬리스트 스티브 윈우드를 섭외해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라는 또 다른 슈퍼그룹을 조직하지만 블라인드 페이스 역시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고 해체된다.
이후에는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Ginger Baker's Air Force라는 퓨전 그룹을 조직하여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두 장의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였다.
1971년에는 나이지리아로 건너가 당시 수도였던 라고스에 녹음 스튜디오를 설립하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여기서 사하라 사막을 거쳐서 라고스로 가는 종단 계획을 세우고 다큐멘터리 감독 토니 파머를 초대하여 그 여정길을 촬영해달라고 부탁한다. 이후 진저는 마침내 라고스에 스튜디오를 설립했고, 바타코타(ARC) 스튜디오라는 이름의 해당 스튜디오는 70년대에 걸쳐 폴 매카트니를 비롯한 여러 뮤지션들의 녹음 스튜디오로 활약했다.
동시에 펠라 쿠티 등의 뮤지션과도 협업을 하고, 폴 & 에이드리언 거비츠 형제과 베이커 거비츠 아미라는 밴드를 조직하여 활동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라고스 스튜디오 프로젝트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결국 스튜디오 프로젝트를 접은 진저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한 올리브 농장으로 거처를 옮겨 1980년대 초반을 보낸다. 이 때 당시에는 올리브 농사에 전념한 듯 보이며, 이렇다 할 음악 활동도 딱히 없었다고.
그렇다고 해서 음악을 아예 접은 것은 아니며, 1980년에는 호크윈드의 세션 멤버로 잠깐 활동했고 1985년에는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의 앨범인 Album에 드러머로 참여했다.
1990년대에는 다시 음악 활동을 활발히 하기 시작했는데, 우선 1992년 미국의 하드 록 밴드 Masters of Reality[6]의 앨범에도 참여하고, 1993년에는 옛 동료인 잭 브루스, 그리고 게리 무어와 함께 BBM이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짧게나마 음악 활동을 했다. 이외에는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 기타리스트 빌 프리셀과 함께 진저 베이커 트리오를 결성하여 재즈 음악을 다시 하기도 했다.
진저는 1990년대를 미국에서 보냈는데, 미국 이미그레이션에서 그의 마약 복용 경력으로 인해 차질이 생기자 1999년에 콜로라도 주 파커에 있던 그의 재산을 정리하고 남아프리카로 건너가 생활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에릭 클랩튼의 주도로 크림(밴드)의 일시적 재결성이 의논되었는데, 진저는 여기에 응해 해체 후 약 35년만에 잭, 에릭과 함께 크림의 멤버로 공연하기도 했다. 이후 색소포니스트 알프레드 엘리스, 베이시시트 알렉 댕크워스, 퍼커셔니스트 아바스 두두와 함께 Ginger Baker Jazz Confusion이라는 재즈 그룹을 결성해 투어를 하면서 2013, 4년을 보내고 2014년에는 Why?라는 제목의 앨범도 냈다.
이후 2019년 10월 6일 노환으로 사망하면서 활동이 마무리 되었다. 그의 사망으로 크림 멤버들 중 생존자는 에릭 클랩튼밖에 없게 되었다.
4. 여담
- 여담으로 이름 진저는 그의 머리가 붉은색임에 기반하여 붙여진 별명이다.[7]
- 음악적으로 재즈계의 거장 드러머 엘빈 존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둘은 드럼 배틀을 하기도 했다.
- 젊은 시절부터 헤로인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다 아프리카로 건너갈 때 쯤에는 어떻게든 끊었으나, 그것도 작심삼일에 불과했다고 하며, 1980년대 초 이탈리아로 건너갔을 때 본격적으로 끊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 위의 헤로인과는 별개로, 오랜 시간 흡연을 해온 탓에 2013년 경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앓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퇴행성 골관절염으로 인한 만성 요통도 앓았다. 결국 2016년에는 중증의 심장질환 진단을 받고, 예정되어 있던 공연도 모두 취소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서 본인은 상심이 컸는지 블로그에 "방금 진료를 받고 왔는데, 너무나 큰 충격이다. 공연을 더 못한다니... 다른 곳은 몰라도 심장이 문제가 될 줄은 몰랐는데..."라며 비탄하기도 했다. 다행히 최신 기술로 발전된 수술을 받아 회복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 자신의 음악성에 대한 정체성과 자부심이 뚜렷한 편이다. 그의 유명한 발언 중에 "난 록 음악 연주를 한 적이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즈 드러머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느끼는 편이며, 크림조차도 "즉흥 연주가 90%인 재즈 밴드"라고 한 바 있다. 또한 존 본햄이나 키스 문 등의 드러머와 비교되는 것을 거절하기도 했다.[8] 이에 대해서는 에릭 클랩튼 역시 "진저는 본햄이나 키스와는 전혀 다른 드러머였다"라고 하며 동의의 의견을 보였다.
- 위에서 서술한 록 음악보다 재즈 음악을 선호하는 성향 때문인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밴드들을 향해 악담을 퍼부은 적이 많다. 비틀즈, 롤링 스톤스의 음악을 한번도 좋아한 적이 없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https://faroutmagazine.co.uk/why-ginger-baker-hated-the-beatles/
- 이와 별개로 키스 문과 어느 정도 교류는 있었던 듯하다. 진저와 키스 모두 록 드럼 연주에서 더블 베이스 드럼 구성의 키트를 대중화시킨 드러머로 뽑히는데, 실제로 둘이 같이 듀크 엘링턴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당시 엘링턴의 밴드 드러머였던 샘 우드야드의 드럼 키트를 보고 영감을 받아 둘이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이후 키스 문은 드럼 세트 두 개를 구매해 이어붙이는 식으로, 진저 베이커는 Ludwig 사에 커스텀 주문을 해 받는 식으로 각자의 더블 베이스 드럼셋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1]
반대로
존 본햄의 경우 이런 탐탐들을 엄청나게 줄여 키트를 극 간소화시키고 거기서 영혼의 드러밍을 선보여 현대 드럼 주법을 완벽히 확립하였다.
[2]
다만 진저 베이커는 키스 문처럼 탐탐을 20개정도 쌓아 연주했다기보다는 더블 베이스에 탐탐 2개, 플로어 탐 2개의 조합에 다양한 심벌즈를 설치해서 규모를 커 보이게 한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3]
사실 크림의 세 멤버는 모두 각 분야에서 전설이 된 인물들이다.
[4]
따라서 그는 크림 역시 "즉흥 연주가 90%인 재즈 밴드"로 정의하기도 했다.
[5]
에릭 클랩튼 역시 이 때 잭과 진저의 합주를 공연을 통해 들은 바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훗날 진저가 에릭에게 크림 결성을 제안했을 때 에릭이 잭의 가입을 조건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6]
동명의
블랙 사바스 앨범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다만 원판에는 단수형(Master)으로 되어 있는데 복수형(Masters)으로 잘못 인쇄된 판을 보고 따왔다는 듯.
[7]
영어권에서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은 다수가 '진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8]
인터뷰에서 "
존 본햄은 테크닉이 있는데 스윙을 전혀 못 한다"라고 했으며 "사실 그건
키스 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