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06:47:40

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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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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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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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弓) 시(矢) 국궁, 각궁, 목궁(교자궁), 죽궁, 쇠뇌 편전(애기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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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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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제독검(提督劍), 본국검(本國劍), 쌍검(雙劍), 마상쌍검(馬上雙劍), 월도(月刀), 마상월도(馬上月刀), 협도(挾刀), 등패(藤牌)
4권 치는 무기 권법(拳法), 곤방(棍棒), 편곤(鞭棍), 마상편곤(馬上鞭棍), 격구(擊毬), 마상재(馬上才)
1:흔히들 왜검교전이라고 이야기하나 무예도보통지에는 '교전' 이라고만 되어 있다. }}}

파일:DmrO7C0.jpg
파일:dlgev5H.jpg

파일:별기대.png
편곤을 패용한 마병 또는 기사의 모습. 등 쪽에 보이는 1자가 좌우반전된 모양의 막대기가 편곤이다.

파일:bluekb_211908_4[289681].jpg
마상편곤.

1. 개요2. 특징3. 상세
3.1. 용법
4. 역사5. 현재6. 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파일:external/muye24ki.com/24_pyungon_02.gif

편곤()은 중국 서방 이민족의 기병 무기로부터 기원했다고 알려진 장병기이다.

2. 특징

기본적인 형태는 길고 짧은 두 개의 곤봉을 쇠사슬로 엮은 형태로, 복잡하고 다양한 움직임을 포기한 대신 간편한 사용법과 묵직한 타격력에 집중한 형태의 장병기로 볼 수 있다. 크게 보병이 사용하는 보편곤(步鞭棍), 기병이 사용하는 마편곤(馬鞭棍)으로 나뉘며 서양에 비슷한 무기로 플레일(Flail)이 있다.

무예도보통지 4권에 있는 〈편곤〉 편은 도리깨와 비슷한 형태의 무기와 그를 사용하는 무술 기법을 칭하고 있으며, 중국이나 서양의 유사한 무기들과 조선의 무기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사슬 무기와 장병기의 조합, 잡는 부분이 타격하는 부분보다 월등히 길다는 점은 전쟁병기로서 편곤이나 플레일 종류의 무기들이 갖는 특징이다. 이는 유사해보이지만 호신용에 국한되어 사용된 쌍절곤이나 삼절곤과는 다른 모습으로 이들 무기에서 자주 발생하는 제어 불능상황이나 자신이 자신을 치는 단점을 없애준다. 단, 편곤은 장병기이자 날붙이 무기가 아닌데다가, 원심력과 무게를 이용해서 타격력을 발휘하는 병기이기 때문에 공간이 확보되어야 파괴력을 발휘 \할 수 있는 무기이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중국식 편곤과 한국식 편곤을 분리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중국 것은 자편과 모편 사이 쇠사슬이 상당히 긴 데 반해, 한국식은 위 그림에 나오듯이 자편과 모편 사이 쇠줄의 길이가 짧아 기존의 쇠도리깨와 비슷하다. 이는 상대와의 교전 중 사슬이 상대의 무기가 얽히는 걸 방지하는 한국의 편곤만이 가진 특징이기도 하다.

무예도보통지에 서술된 편곤 기예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논란이 많다. 다만 기록상 창처럼 긴 자루를 가진 도리깨형 무기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딱히 없고, 임진왜란 때 명기병들이 편곤으로 큰 성과를 올린 이후에 조선에 편곤이 도입됐다는 기록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볼 때, 기다란 편곤을 사용하는 기예는 중국이 기원으로 추정된다. 사용법 자체는 곤방과 매우 유사한데, 곤방 자체는 조선 초기 팽배수들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고 이 또한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철(=쇠)로 만든 60㎝ 정도의 작은 쇠도리깨(혹은 편곤이나 쌍절곤)로 치마 속에 숨길 수 있는 작은 무기로 조선시대 여형사들인 다모들이 썼다고 말한다. 조선시대 포졸, 무인 혹은 한량들이 일종의 보조무기 비슷하게 사용했던 무기라고 알려졌는데 이 경우에도 아무래도 소형 편곤 쪽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자면, 막대와 추 사이의 사슬이 매우 짧은 도리깨는 중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국의 쇠도리깨가 가진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파일:luN4fMa.jpg

쇠도리깨, 고들개 철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은입사로 예쁘게 만든 것도 있다. 링크

편곤이 수입되기 이전에도 한반도에 도리깨형 병기들은 존재했다. 고구려 국내성에서는 서양의 프레일(flail)과 흡사한 도리깨형 타격 병기가 출토되었고, 신라 경주 능지탑지 12지신상 중 미(未)상에는 조선 시대 편곤과 형태가 매우 흡사한 도리깨를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편곤이 한국 고유의 무기체계였다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기록을 살펴보았을 때 고려, 조선 전기의 편제에는 편곤과 유사한 장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삼국시대 이후 명맥이 끊겼다가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중국으로부터 다시 편곤이 도입되고 국내 실정에 맞게끔 개량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1]

3. 상세

편곤의 유래에 대해서 송나라 태조 조광윤[2]이 전쟁통에 쓰던 곤봉이 부러져 급한 대로 줄로 묶어 싸웠는데 그게 더 효과가 좋았던 것이 기원이라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융족의 무기가 전래된 것이라는 설이 더 우세하다. 한국에 전래된 것은 임진왜란 때 명군을 통해서이다.

다만 서융의 무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족이 이 무기를 도입한 이후에는 되려 한족이 더 편곤을 잘 다루게 되었다. 이는 수렵민족이었던 서융족과 달리 한족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라 그들이 자주 쓰는 도리깨와 비슷했기 때문이라 한다. 훗날 편곤을 받아들인 조선도 쓰기 쉬운데 위력이 강하다는 점을 똑같이 높이 평가했다.

자편과 모편 사이의 쇠사슬이 길면 잘 엉키고, 짧은 것이 실용적이라고 한다. 무예24기 덧글 참조.

3.1. 용법





곤을 사용하는 용법이 비슷하므로 곤방과 비슷한 세법이 주를 이룬다.

구조가 간단하여 만들기 쉽고 튼튼하여 보급이 용이하다 보니 제식 병기로서 매우 유용했고, 굳이 오래간 훈련을 받지 않아도 다루기 쉬워서 그냥 양손으로 들 수만 있어도 실전에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이는 편곤과 같은 장병 타격무기가 가지는 최대의 장점이다.

양손으로 휘두르는 장병기인 만큼 타격력은 무시무시하고 그냥 단순히 휘두르는 것으로 모든 공격 동작이 귀결되기 때문에 공격 방식이 직관적이다. 그러나 대신 앞으로 쏠린 무게중심과 이리저리 흔들리는 추 때문에 기민한 움직임이나 재빠른 방어 같은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형태의 무기다.[3] 이러한 무기 형태의 특성에 의해 편곤의 타격은 상대방과 정면으로 대치한 상황에서도 상대의 뒤통수나 등을 가격할 수 있을 정도로 공격 반경이 넓으며, 거기에 더해 공격을 시작하여 타격이 완료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 방어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 타격무기의 장점을 극대화한 물건…인 대신 장병기의 단점도 극대화. 일단 방어 같은 것은 꿈꾸면 안 되고, 휘두르는 데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밀집한 상황에서는 활용도가 극도로 떨어진다. 결정적으로 제대로 타격을 주기 위해서 필요한 동작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공격이 빗나가거나 막히면 그 다음엔 오히려 사용자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공격이 실패하면 답이 없는 구조의 무기인 만큼 당파 삼지창같이 무기를 걸어버리는 식으로 공격을 차단하는 무기에 약하다. 사실 당파는 대부분의 장병기에 대해 우세를 보이는 카운터 병기로, 편곤에 대해서도 역시 강점을 보인다. 구조를 생각해보면 간단히 눈치챌 수 있는데, 삼지창의 창첨 사이에 편곤을 끼워서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키거나 아예 부러뜨려버리면 편곤과 같은 장병기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사실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동양에서 당파를 비롯한 폴암으로 무장한 병사들은 적의 무기를 받아내며 싸워야 한다는 이유로 용맹한 자들을 선발해 투입했다.

편곤의 가장 큰 메리트는 역시 사슬 끝에 달려 있는 추 부분으로, 동일한 길이의 장병기여도 추 부분이 상대의 방어 너머로 머리를 가격할 수 있다. 게다가 통제가 어려운 쌍절곤과 달리 편곤은 손에 쥐는 장대의 비율이 길어 사슬 무기 범주에 속함에도 쉽게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이런 특성과 함께 농경민족들에게는 그네들에 익숙한 도리깨질의 용법이 쉽게 익숙해지기도 하여 굉장히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서양의 플레일 역시 농민이나 농민 출신들이 애용하던 병기였다.

종합하면 편곤은 당시 농경국가에서는 기본적인 사용방법만 익혀도 훌륭한 위력을 선보일 수 있는 무기라, 제대로 된 무기 사용법을 익히지 못한 일반인도 손쉽게 다룰 수 있기 때문에 널리 사용될 수 있었다고 보면 된다.[4] 다만 특성상 대규모 밀집진형 같은 정규전에서 보병이 전열을 지탱하며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많기 때문에, 소규모 접전이나 기세를 실어 단숨에 치고 들어가는 공격에 사용되었다.

4. 역사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은 새로 징집한 병사들이 을 쓰는 데 능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류성룡이 중국에서 쓰는 '쇠 편곤(철 회편)'이 매우 좋다며 추천하여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파일:조선의 흔한 농민.jpg

당시에 류성룡은 고양에 '명회(命會)'란 사람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일본군에게 살해당하자 격분, 편곤 한 자루만 들고 일본군을 400명이나 척살했다는 예를 들었다. 선조도 마침 조선의 농민들은 도리깨를 자주 쓰니 이와 용법이 비슷한 편곤을 무기로 쓰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곧바로 채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당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에 실제로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

직관적이고 단순한 움직임, 그리고 강력한 타격력은 일격을 먹이고 이탈하는 방식의 용도로 활용하기 용이했고 이는 편곤이 기병의 백병전 무기로 널리 쓰이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기수가 휘두르는 타격력에 더해 기마의 속도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살인적인 위력의 공격이 가능했고, 공격이 실패하면 바로 난감해지는 보편곤과 달리 그대로 속도를 살려 이탈해버리면 그만이라 편곤 자체의 단점도 상쇄할 수 있었다. 이때 기병이 사용하는 마상편곤은 양손으로 휘두르는 장병기에 속하는 보병의 편곤과 달리 기병이 마상에서 휘두르기 쉽게 한 손 무기처럼 짧아진 것이 많다.

이후 편곤의 중요성은 인조 때까지 강조되어 적진을 뚫는 데는 편곤만 한 게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5]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아예 환도 없이 활과 편곤만 장비하는 기병도 많았다. 하멜 표류기에도 언급된 이야기다. 영조대의 승정원일기에서는 마상편곤과 마상총을 결합해서 기병용 총검의 편곤 버전을 만들자는 논의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

고고학 자료로는 고구려 국내성 유적에 둔기 타격부로 추정되는 유물이 나온 적 있어 사실 비슷한 무기류는 이미 이때부터도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당시 삼국이 전쟁이 격화하고, 중장화하면서 화살촉도 관통 능력이 좋은 형태로 변하는 양상이 관찰된다.

5. 현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만 같은 편곤이지만 의외로 써먹기가 편해 현대에도 깨알같이 사용되고 있다.

파일:external/archivenew.vop.co.kr/7618204.jpg

과거 광주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전투경찰 소위 전남 중대에서 사용한 편곤 형식의 진압봉이다. 경찰에서 정식으로 지급한 물품은 아니고 당시 전대협에서도 전투력 № 1이었던 오월대와 녹두대를 상대하던 일선 경찰들이 부러진 진압봉들을 전깃줄 등으로 연결해서 만든 급조 자작품이다. 장봉에 단봉을 엮은 것으로 추정된다. 진압봉 항목에 적혀 있지만 장봉은 속이 비고 가벼워 낭창거려 길이에 비해 타격력이 약해 방호구를 잘하고 있다면 타격을 주기 곤란한데 반해 단봉은 단단하고 무거워 타격력이 좋다. 어찌 보면 단봉과 장봉의 장점과 단점을 상호 보완하는 형태일 지도. 편곤이란 무기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없는 상태로 시위대와의 백병전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다. 전경들도 그냥 쇠도리깨 혹은 쌍절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파일:external/archivedr.vop.co.kr/05032001_ch5.gif

경찰특공대 쌍용자동차 사태 에 관한 폭력 시위자들을 제압하는 장면. 빨간 원 안 속에 쇠도리깨라고 표현한 편곤이 보인다.

6. 매체에서의 등장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고려 거란 전쟁에서도 검차로 거란의 기병을 저지한 뒤 고려의 보병들이 장창과 더불어 기수를 제압하는데 사용한다. 작중에서는 쇠도리깨라고 부른다.
  • 엠파이어즈 근대사회의 여명의 대한민국 문명에서 조선 도리깨병 이라는 이름의 기병이 등장한다. 당시 외국산 RTS게임 치고 조선의 복식 또는 무기에 대한 고증이 대단했던 걸 감안하면 편곤기병이 아닌 게 아쉽다는 게 유일한 단점. 근거리에 접근해 일반적인 기병처럼 편곤으로 내려친다. 능력치는 보통의 기병 수준.
  • 태왕북벌기에서 담덕이 암살자들을 상대로 사용했다. 자주 산책 다니는 숲길 아래에 편곤을 묻어놨었고 이를 찾아내어 싸운다. 암살자중 하나는 나무 뒤에 숨으며 숲속 같이 좁은 곳에서 편곤을 쓴다며 비웃었지만 편곤의 추가 반동으로 돌면서 암살자의 얼굴을 박살내는 장면이 나온다.


[1] 중간에 명맥이 끊긴 무기 체계가 후대에 부활하는 사례는 여럿 있다. 조선 초의 팽배수 병과가 세조 이후로 폐지되다시피했다가 임진왜란 후 기효신서의 영향을 받아 등패로 재도입되기도 했고 장검도 쓸 줄 아는 이가 거의 없다가 월도로 재도입되었다. [2] 무술의 달인이다. 당대에 곤법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권법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의 권법 '송태조 32세장권'은 훗날 조선의 무예도보통지에도 수록되었다. [3] 물론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 숙련된 무사가 사용한다면 다채로운 공격/방어 움직임을 수행할 수는 있다. 그러나 편곤으로 그런 짓이 가능한 고수라면 훨씬 기민하고 융통성 있는 다른 장병기를 드는 편이 오히려 더 강하다. [4] 이는 철퇴나 곤방과 같은 일반적인 타격무기들과도 공유하는 특성이다. 이들 무기류는 호신용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5] 실제로 인조 정권은 이괄의 난 당시 편곤으로 무장한 이괄 휘하의 기병들에게 탈탈 털린 경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