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7:01

양심적 병역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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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제도 병역법 · 병역제도 · 병역제도/한국역사 · 징병제 · 징병제/시행현황 · 징병제/폐지현황 · 모병제 · 대한민국의 모병제 도입 찬반 논쟁 · 병역판정검사 · 장애인 징병 · 여성 징병제 · 징집소집통지서 · 대체복무 · 국방세 · 군가산점 제도 · 병역기피자 공개제도 · 입영판정검사
관련 문서 병영국가 · 군국주의 · 반군국주의 · 군사화 · 병역기피 · 양심적 병역 거부 · 병역비리 · 징병제/반대활동 · 군백기 · 묻지마 징병
관련 사건 Fuck the Draft · 뉴욕 징병거부 폭동 · 혈세잇키 · 병역문제대책위원회 사건 · 유승준 병역기피 사건 · 2016년 대한민국 대체복무 폐지 논란 · 2022년 뇌전증 병역비리 적발 사건 }}}}}}}}}


1. 개요2. 종류3. 역사4. 논란5. 각국의 사례6. 병역 거부자7.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난민
7.1. 난민으로 수용한 국가7.2. 관련 사이트
8. 대체역 신청 지침9. 관련 문서

1. 개요

Conscientious Objection(CO)

양심적 병역거부 종교적,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군 복무[1]나 무장을 거부하는 행위다. 영문 용어인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의 번역어로, '양병거'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2]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대한민국 헌법 제19조에 보장된 ' 양심의 자유'를 근거로, 에 입대하는 것에 대하여, 또는 병역의 의무 전반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하는 행위를 이른다.

대한민국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대체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2. 종류

  • 보편적 거부: 모든 형태의 전쟁 수행을 거부하는 것.
  • 선택적 거부: 특정 전쟁 수행을 거부하는 것. 예를 들어, A전쟁, B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 C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이는 선택적 거부라고 볼 수 있다. 이라크 전쟁 당시 해당 전쟁이 국제법상 불법임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한 군인들이 이러한 사례에 해당된다.
  • 집총 거부: 군복무 자체는 받아들이지만 총기를 다루는 것을 거부하는 것. 대표적으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집총 거부자였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의무병으로 활약한 데스몬드 도스가 이에 해당한다.[3][4]
  • 회색 거부: 해외 국적 취득, 비전투병과 지원 등의 방식으로 합법적으로 군복무를 혹은 집총을 피하는 것. 이것이 "확장된 의미의 병역거부"다. 20세기 초반에도 병역 거부는 군 복무 자체를 거부하는 단순한 개념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선택적 거부와 회색거부의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유명 기업가 일론 머스크가 이 사례에 해당한다. 그가 17살이던 당시 그의 모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징병제 국가였으나, 캐나다 국적을 취득해 합법적으로 군복무를 피했다. 일론 머스크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아래에서 복무하고 싶지 않았었다고 밝혔다.[5]
  • 완전 거부: 군복무뿐만 아니라 대체복무까지 거부하는 것.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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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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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각국의 사례

5.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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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북한

당연히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종교주체사상 제외를 믿을 자유 자체가 보장되지 않는 체제로 인해 신앙에 따른 병역거부 사례가 발생한 경우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그 외 병역 거부자들에 대해서는 형법으로 2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을 적용하고 있다. 물론 북한의 폐쇄성,배타성 탓에 이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열악한 인간 이하의 대우와 명시된 형보다 더 길고 가혹한 형을 받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6]

다만 한국 전쟁 직전에는 징집된 재림교회 교인들이 집총을 거부하자 귀가조치 시킨 바가 있다고 한다. 전쟁 발발 후 이들 중 일부는 재징집되었는데, 결국 비전투 병과에 복무시켰다고 한다. # 사실 당시에는 남북 할 것 없이 군사주의적 성향도 약했고 통제도 잘 안 되고 해서 오히려 현대보다 병역거부에 더 관대했던 시대였다.

5.3. 기타 국가

한국을 제외하면 역사적으로 군대를 '안 가는 것'보다 '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컸다. 국민개병제의 원형이라 불리는 프랑스 프랑스 혁명기에 30만명의 징병령이 내려진 후, 광범위한 농민들의 저항에 부딪혀야 했다( 방데 전쟁 참조). 특히나 개인의 자유를 숭상하는 영국 1차 세계대전이 될 때까지 징병제의 도입을 미뤘고 전쟁이 끝나자 바로 폐지되었다. 다만 1차대전 당시 원래 징병제를 시행 중이던 프랑스는 전쟁에서 밀리자 대상을 45세까지 확대하고 예외도 거의 두지 않는 등 징병을 심하게 강행했다. 이 때문에 대학생들까지 끌려가 전후에는 학자들이 부족해지는 등 폐해가 많았다. 일본도 메이지 유신 후 징병제가 시행되었으나, 오카야마현, 카가와현 일본 서부의 일부 지방을 중심으로 한 몇몇 지방에서는 반발로 징병사무소 불타기도 했고( 혈세잇키) 징병 대상에 포함된 젊은이들이 당시 신 개척지였던 홋카이도로 도망가는 바람에 [7] 지방 모병관들이 곤란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자신이 살던 집 옆에 개집같은 움막을 하나 짓고, 그 집을 면사무소에 등기 등록하여 자신을 호주로 등록시킨 뒤, "내가 이 집 장손이다. 그러므로 나는 군대에 못 간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던 사례도 있었다.

현재 징집 거부에 따른 처벌 기록이 확인되는 국가는 튀르키예[8] 등 8개국, 미확인된 국가는 북한, 이집트, 수단 등 이다.

그런데 남한 같이 징병을 엄격하게 적용해 20대 남성 대부분을 입영시키는 나라는 드물다. 튀르키예는 대학생에게 복무기간을 줄여 주고, 해외에 나가서 3년 이상 생활하거나 돈을 내면 병역을 면제해준다. 병역 거부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체감으로 다가오는 징병제의 임팩트는 남한과 다르다. 튀르키예가 인구의 평균 연령이 매우 젊으면서 고학력 인구가 적어 이런 혜택을 더 잘 준다.

사실 한국도 젊은 남성이 넘쳐나던 1950~80년대에는 징병률은 40~50%에 불과했다. 신체검사에서 조금만 이상소견을 보여도 쉽게 면제를 줬고, 신체검사가 아니더라도 병역 감면, 면제 규정을 많이뒀었다. 신체검사에서 갑종[9]이 나왔는데도, 병무청에서 현역 입영자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방위병으로 빼주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행정절차가 부실하던 시절이라, 일반인들도 동네 예비군 동대장에게 3개월치 월급을 뇌물로 주는 등의 방식으로, 손쉽게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의 현역 복무 이행률이 일반인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이유는 그들이 젊었던 시절에는 면제를 받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였냐하면 1973년에 병역법 위반 등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고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가 '입영률 100% 달성' 명령을 했을때 민주화 운동을 한 학생과 여호와의 증인이 강제로 현역으로 징병되었는데도 현역 징병률은 40%에 불과한 정도이다.

오히려 21세기에 저출산으로 인해 젊은 남성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과거에 존재했던 병역 감면, 면제 규정들을 없애고, 신체검사 현역 합격 기준을 낮춰 옛날같으면 면제받았을 인원도 현역으로 징병하기 시작했다. 물론 병영 내 가혹행위 같은 문제점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되었으나, 제도로서의 징병제는 오히려 21세기에 들어와 더 빡빡해진 감이 있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나치 독일에서도 있었던 일로, 당시 병역거부자들은 '국방력 파괴(Wehrkraftzersetzung)'라는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갔고, 전쟁말기에는 친위대의 약식재판에 따라 반역자라는 글귀가 적힌 팻말을 달고 교수되거나 총살된 채 시체가 전시되었다. 나치 독일에서 병역거부는 최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으며 1만 명 이상의 병역거부자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이 중 상당수가 사망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 중 31개국은 민간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대규모 감군[10]이 시행되면서 2000년부터 대체복무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1년월의 군복무를 거부할 경우 1년 2개월 동안의 대체복무를 해야 한다. 독일은 1949년부터 헌법에 병역거부권이 명시되었으며 1960년부터 대체복무법이 시행되었다. 다만 원래 동원이 많지 않았으며 2011년 7월에는 아예 폐지하였다. 핀란드에서는 6개월의 군복무를 거부할 경우 2배인 1년 동안 대체복무를 해야 한다.

이러한 징병제 국가들에서 징병을 경험한 사람들은 병역거부자들의 문제를 "나와 상관없는 문제"로 취급한다. 이는 비단 국가 전반의 지배적인 분위기뿐만 아니라, 그만큼 국가에서 충분한 대우와 보상을 해주기 때문이다. 허울뿐인 군 가산점 제도 같은 것 말고, 실제로 병역을 이행하는 인원들에게는 급여뿐만 아니라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 제도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해외 징병제 국가 출신 예비역에게 한국에선 병역거부자들은 무조건 감옥에 간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놀라는 경우도 있다.

한국과 함께 전세계에서 가장 징병제를 강하게 행하는 이스라엘에서는 여성에 한해서 완전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다. 원래 여성은 양심적 사유 말고도 온갖 예외규정이 있어서 작정하면 피할 수 있다고는 한다. 남성도 종교적 이유로 징집되지 않을 수 있다. 2013년 기준 전체 징병대상자 중 26%가 군대에 가지 않았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인 13.5%는 종교적 이유였다. 또한 침공이나 팔레스타인 관련 전투를 거부하는 '선택적 병역거부자'들도 있다. 과거 중동전쟁 때는 일부 거부자들이 수감되기도 했으나 상당한 병역거부운동이 일어난 이후 처벌을 받지 않고 다른 임무에 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6. 병역 거부자

6.1. 대한민국

  • 오태양 - 2001년 평화주의적인 신념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병역거부자들은 이전에도 무수히 있어왔지만, 오태양의 병역거부 선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가 한국에서도 시작되었다. #
  • 이예다 -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운데 어쩌면 가장 유명한 사람.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유로 프랑스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
  • 김경환 - 언론에 공개된 첫 병역거부 난민이며 캐나다에서 난민자격 인정을 받았다. #
  • 김인수 - 호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유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 #
  • 공현 - 본명은 유윤종. 서울대학교 학벌주의의 정점이라고 비판하고 서울대를 자퇴한 인물이다. 2011년 11월 29일에는 입대 예정일임에도 불구하고 군대에 가지 않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11] 선언문에서 획일적인 국가주의에 반감을 가졌고, 오정록, 오태양 등 초창기 병역 거부자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12] 병역거부를 이유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2012년 4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수감 생활을 했다.
  • 강의석 - 군복무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군복무를 거부함으로써 2011년에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으며 그 전에 제2연평해전의 전사자들에 대한 비하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13] 그는 군대 무용론을 신봉하는 인물로 군대 무용론자가 병역을 거부한 케이스이기도 하다. 그는 복무면제에 해당하는 형량의 처벌을 받는 다른 죄를 저지르는 형태의 비리를 저질러 군복무를 피한게 아니라 군복무를 거부한 죄로 콩밥먹기를 했다. 원래는 병역비리에 연루된 인물들 항목에 있었지만 비리를 저질러 군복무를 피한게 아니라 군복무를 거부한 죄로 콩밥먹기를 하다보니 병역거부 전력이 있는 인물들 항목으로 옮겨졌다.[14]
  • 임태훈 - 병역거부를 실행하기 전에는 동성애자를 위한 단체의 회원이기도 하였는데, 군형법 계간 처벌규정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는 징병검사규칙에 반대하기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행했다. 이것으로 2004년에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2005년까지 복역했고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특사로 만기출소 2개월 전에 석방되었다. 석방 이후에는 군인권 실태 조사등을 통해 군부대에서 매복, 경계근무 등의 병영체험을 하면서 군복무중인 병사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이후 군인의 인권문제를 전담하는 단체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법무법인과 법률사무소의 변호사와 함께 군인권센터를 설립했다.
  • 임재성 - 2019년 10월부터 KBS 1TV 시사직격 진행자를 맡고 있는 변호사.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민변 과거사위원회,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TF 변호사,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한겨레신문 정기칼럼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환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에서 젊은 시절 임재성 변호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의 모습도 필름에 담겨 있다.
  • 김경묵 - 독립영화를 제작한 영화감독으로 종교적인 이유 외에도 폭력적인 병영문화를 이유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들의 목소리도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행했다. 그는 병역거부 관련 재판 소견서를 통해서 "병영부조리의 비극이 자신의 것으로도 다가왔고, 폭력이 만연한 군대는 본능적으로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밝혔는데 정신과 치료로 세 차례 병역 재신체검사를 받아야 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입대를 했다면 예정된 A급 관심병사였을 것이며, 군체제의 희생자가 된 이들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는 처지였다.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유무형의 폭력을 보고 겪으면서 "맞더라도 때리지는 말자"고 다짐한 자신에게 폭력이 만연한 군대는 유년시절에는 본능적으로 갈 수 없는 곳"이라고도 밝혔다.( 관련기사, 재판 소견서)
  • 조대호 - 특이하게 육군3사관학교 사관생도로서 임관을 거부했다. 국제법상 불법적인 전쟁인 이라크 전쟁에 파병함으로 인해 국군의 헌법적 존립 근거가 사라졌다는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행, 육군교도소에 투옥되었다.
  • 강철민 - 2003년 당시 육군 현역병이었으나 이라크 전쟁 파병이 철회되지 않는 한 군복무를 할 의사가 없다며 부대복귀를 거부하였다. 이 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 이길준 - 전투경찰로서 2008년 촛불시위 진압에 투입되었으나, 시민을 상대로 폭력진압을 할 수 없다며 진압명령을 거부했다. 이길준은 이등병부터 다시 복무해도 좋으니 의경이 아닌 육군으로 바꿔달라고 행정소송을 냈으나 기각되었고, 항의 차원에서 병역을 거부하였다. 이 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 양원준, 양원욱, 양원석 - 성우 양지운의 아들들로 종교적인 이유( 여호와의 증인)로 병역거부를 해 양원준과 양원욱은 유죄판결을 받고 형을 복역하였으나, 막내 양원석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무죄판결을 받았고 곧 대체복무를 할 예정에 있다. 관련기사
  • 백종건 - 대한민국에서 사법고시에 합격 후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던 최초의 변호사이다. 수감되기 전부터 수백 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무료로 변론하였다. 출소한 이후 대한변협의 변호사자격의 재등록을 받아 계속해서 법조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관련기사, #

6.2. 일본

  • 미쿠니 렌타로: 다른 사건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중에 징집영장을 받았을때 경찰이 군대에 보내려고 훈방 조치를 취했지만 의미 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죽이기 위한 훈련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때문에 일본열도 탈출계획을 세우고 일본열도 탈출계획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어머니가 경찰에게 밀고하는 바람에 체포되었고, 형무소를 가는 대신에 군복무를 했다.
  • 야베 키요시: 후쿠시마현 출신의 교회목사이며, 일본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러일전쟁 시절이던 1905년에 병역거부 후 2개월(!)의 금고형 처벌을 받았지만, 이후 일본군 의무병으로 복무하였다.
  • 이시가 오사무: 번역가이자 고등학교 교사로 활동하였고 1934년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는 국제단체에 가입했다. 1943년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행했다.

6.3. 미국

  • 데스몬드 도스: 집총거부자이자 명예훈장 수여자. 사람을 살린다는 신념으로 총을 들지 않고 2차 대전에 참전하여 의무병으로서 험난한 태평양 전선에서 최소 50명은 되는 수많은 전우들을 구출한 공로로 명예 훈장을 받았다. 그의 일화가 영화 핵소 고지로도 만들어졌다.
  • 무하마드 알리: 미국의 전설적인 권투선수. 베트콩과 싸우기보다는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운다는 말을 남기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이 때 했던 유명한 말이 "내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내 조국에서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데 남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라고요? 베트콩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우릴 무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지구 반대편의 이름 모를 사람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합니까?"이다. 이로인해 챔피언 벨트까지 박탈되고, 징역 5년의 실형 선고를 받게 되었지만 수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 토마스 베넷: 집총거부자이자 명예 훈장 수여자. 월남에 의무병으로 참전했으며 전사했다.
  • 조세프 라포인트: 집총거부자이자 명예 훈장 수여자. 베넷처럼 의무병이었고 역시 전사했다.
  • 인트래피드의 4인 #: 1967년 미 항공모함 인트래피드가 요코스카에 기항 중이던 때, 4명의 수병들이 병역 거부를 목적으로 탈영했다. 베트남 전쟁의 불합리함을 들어서 "이 전쟁은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들은 당시 일본의 반전 시민운동 단체 베헤이렌의 도움을 받아서 밀항에 성공한다. 이들은 소련을 거쳐 스웨덴에 망명한다.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들: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에 반발해, 미국 정부의 징집명령을 거부했다. 미국이 일본계 미국인의 권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데, 무엇하러 미국을 위해 희생해야하냐는 것이 이유였다. 이로 인해 300명 가량의 일본계 미국인 청년들이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었다. 훗날 해당 일화는 존 오카다의 소설 No-no Boy의 배경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영문 위키피디아

6.4. 영국

  • 존 스토트: 기독교 복음주의의 대가로 꼽히는 그 영국 성공회 신부. 병역거부 후 잉글랜드 성공회 사제가 되면서 합법적으로 면제받았다. 한편 한국은 신부도 군대로 보낸다
  • 존 버닝햄: 영국의 그림동화 작가.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병역기피하게 되었다고 한다
  • 존 콘스(John Cornes): 퀘이커 교도이자 의사. 1954년부터 1956년까지 한국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한 공로로 한국정부로부터 수교훈장을 받았다. 한국에서의 의료봉사활동은 사실 병역거부자였던 존 콘스에게 부과된 대체복무였다.
  • 톰 스티븐슨 (Tom Stephenson; 1893-1987): 영국 저널리스트. 제1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16년에 양심적 병역거부로 3년형을 선고받고 1919년 출소했다. 1915년에 Royal College of Science 지질학과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출소 뒤 제적당해 학업의 길은 막히고 평생 고졸로 살아야했다. 1987년 사망 전 랭카스터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7.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난민

7.1. 난민으로 수용한 국가

독일, 캐나다, 호주, 프랑스 등에서 한국인 병역 거부자들을 난민으로 받아주었다. 이들 국가는 일정한 난민 심사를 거쳐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로 인정된 경우를 받아준다.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사례는 캐나다에서 병역 거부 난민으로 인정되어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된 김경환 #, 호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5개월만에 난민 인정을 받은 김인수 # 프랑스 정부에 망명이 인정된 이예다 #가 있다. 기사에 따르면 세 사람 모두 망명 신청 때 각국의 정부는 병역을 수행 중인 대한민국 장병들의 생활 수준뿐만 아니라,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탄압에 대해서도 크게 놀랐으며 이는 망명을 받아들인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병역 거부를 사유로 난민 신청에 성공한 사례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국제법에 의해 난민들의 개인 정보는 철저하게 보호하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이를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령 성소수자 병역거부자들의 경우에는 국내와의 인연을 끊고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난민으로 정착한 뒤 아예 이름을 바꾸고 생활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사례는 공식적으로 현지 언론에서 보도된 바 있다.

미국에선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캐나다로 3만 명에 달하는 미국인 징병 회피자(Draft dodger)들이 이주했다. 이 사람들은 캐나다에 모여서 징병제 반대를 위한 회의와 운동을 전개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이들을 모두 사면했다.

대한민국에도 병역 거부로 인한 난민 신청자가 있다. 수단 공화국에서 전쟁 반대 활동을 하던 목사가 한국에 와서 난민 신청을 했다가 퇴짜를 맞자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 2심을 연거푸 이긴 사례가 있다(인천지방법원 2014구합30385→서울고등법원 2014누52093). 이 소송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이 난민 신청은 자국의 병역제도를 훼손하는 사례에 해당되므로 심사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법원이 병역거부 행위가 정치적 의견을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때는 '박해'의 원인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난민 신청의 사유로 삼았다고 하여 심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7.2. 관련 사이트

시민단체
  • War resisters' international #
  •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
  • 전쟁없는세상 #
  • 징병거부 운동연합

8. 대체역 신청 지침

한국은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와 그에 따른 대체 복무 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으나 2018년 6월에 헌법재판소에서 대체복무 관련 내용이 없는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이 나고, 2018년 11월 1일에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중 종교적 신앙에 근거한 병역거부가 무죄가 나오고, 2019년 12월 말에 대체복무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서 본격적으로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2020년 6월 30일 오전 9시부터 대체복무요원 편입 신청을 받고, 실제 복무 시작은 2020년 10월부터이다.

해당 내용들은 대체역 심사위원회와 전쟁없는세상 등에 나와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대체역심사위 FAQ
전쟁없는세상 안내자료
  • 본인이 신청 자격에 부합하는지를 먼저 확인할 것.
신청 자격: 현역병의 경우 입영 5일전까지, 사회복무요원(일명 '공익')의 경우 군사교육소집 5일전까지, 예비군의 경우 예비군 편성 5일전까지이다.
또한 중요한 점이 병역거부 사유로 난민신청하러 떠나는 경우와 유사하다.

1. 본인이 병역거부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해오고,
2. 어떠한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설사 그 불이익이 사형과 같이 내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일 지라도)
나는 병역거부를 하겠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느냐이다.
이에 더해서, "병역이 싫다"와 "병역을 거부함으로서 받는 어떠한 페널티가 있더라도 나는 이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완전히 다른 명제이다, 왜냐하면 전자의 '병역이 싫다'라는 말은 두 가지 해석으로 나뉘어 지는데, '싫어도 어쩌겠냐 입대하겠다'와 '병역을 거부함으로써 받는 대가를 감수하더라도 병역을 거부하겠다'로 나뉘어지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라.
  • 서류와 면접에 대한 대비
대체역 심사위원회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이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해 사실 조사를 한다.
서류 준비의 경우, 기본적으로 '대체역 편입신청서'와 '본인진술서'가 있다. 그 외에도 '3인의 주변인 진술서[15]', 신청인 본인, 주변인 3인의 각각 신분증 사본(운전면허증도 가능하다), 중,고 생활기록부(2021.05월 부로 초등학교 생기부 삭제됨), 범죄수사경력회보서가 있으나, 결정적으로 병역거부자인지 판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본인진술서'다. 추가적으로 요구되는 서류는, 종교적 신념에 근거하여 병역거부를 하는 경우에는 '신도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고, 정치적&사상적&개인적 신념(이하 '개인적 신념')에 근거하여 병역거부를 하는 경우에는 '시민단체 활동기록 혹은 개인적으로 병역거부와 관련된 기록 등'[16]을 제출해야 한다. 아래 내용에 본인 진술서 작성방법이 있다. 대체역심사위원회 홈페이지 민원서식에 본인진술서 서식이 있는데 서식 내용을 갖고 온 것이다.
본인 진술서는 자신이 대체역 편입신청의 이유가 되는 양심(이하 "양심")의 구체적 내용, 양심을 갖게 된 경위 및 그러한 양심에 따른 주요 활동내용(활동내용은 요약하여 간단히, 추후 사실조사 때 육하원칙에 의하여 자료 내면 된다) 등을 작성한다.
양심의 구체적 내용은 양심이 종교에 따른 것인 경우 종교의 구체적 교리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관련근거를 제시하며, 그러한 교리가 현역, 보충역 또는 예비역의 복무와 어떻게 배치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작성한다. 양심이 개인신념에 따른 것인 경우 신청인이 갖고 있는 신념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념(정관)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작성하고, 그러한 신념 또는 이념(정관)의 내용에 따라 현역, 보충역 또는 예비역의 복무를 할 수 없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작성한다.
양심을 갖게 된 경위는 신청인이 성장과정, 가정환경, 학교생활 또는 사회경험 등의 전반에서 그러한 양심을 갖게 된 과정과 계기를 구체적으로 작성한다.
양심에 따른 주요 활동내용은 신청인이 양심에 근거하여 종교단체,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했던 이력을 육하원칙에 따라 구체적으로 작성한다.

이 과정에서 대체복무 신청자가 제출한 서류의 진위심사와 면접 등을 통한 사실조사가 동반되므로, 대체복무 신청자의 경우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모든 심사는 대전에 위치한 대체역심사위원회에서 이루어진다. 사실조사는 병무청 대체역 심사위원회 소속의 조사관과 면접으로 이루어지며, 이후 4~5인의 병무청+민간 심사위원과 면접 형태로 심사가 이루어진다. 심사는 주로 본인진술서에 대해 다룬다. 이후 심사위원 전원이 참여하는 전체회의를 통해 최종결정된다. 전체회의에는 여호와의 증인 같이 종교적,집단적 차원의 병역거부의 경우는 특별한 결격사유[17]가 없으면 출석하지 않는다. 개인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의 경우 출석하여 몇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아래는 해외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심사위원회나 한국의 병역거부 재판 과정에서 자주 나온 질문들이다. 심사관들 역시 아래와 유사한 질문들을 할 가능성이 높다.
-언제, 어떻게 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까?
-왜 당신의 양심과 병역을 병행하지 못하십니까?
-무엇이 당신의 병역을 방해합니까?
-당신은 싸우거나, 무력을 쓰는 것을 두려워합니까?
-당신은 군대를 폐지하고자 합니까?
-"군대는 우리를 지키려고 있는거지, 다른 사람을 해치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신이 공격당한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공격당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면 어떤 기분이 듭니까?
-정확히 무엇이 폭력입니까?
-무력을 쓸 바에야 차라리 피해를 감수하시겠습니까?
-당신의 신념은 무엇입니까?
-당신 자신을 평화주의자라고 보십니까?
-무엇이 당신의 생각과 감정이 옳다고 확신하게 만들었습니까?
-당신이 그토록 양심적이라면, 왜 감옥에 가지 않으셨습니까?
-건강 문제로 병역을 피할 생각은 없으셨습니까?
-당신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생각이십니까? 혹시, 그 평화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입니까?
-당신의 자녀들이 공격당할 때 누가 보호해줍니까?
-당신은 가족의 도덕적 가치를 따릅니까?
-어떤 책을 읽으십니까?
-당신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당신은 리더, 추종자, 외톨이 중 어디에 속하십니까?
-병역거부를 함으로서 당신이 희생하는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특정 시민운동에서) 시민들이 무장투쟁을 벌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독립운동당시 독립운동가 당사자들이 무력을 사용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 사람들이 주로 생각하는 평화('주로 북한이 없어지는것, 통일이 되는것')하고 국제적 의미에서의 평화(주로 '무력 사용의 중지')는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결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대체역 신청을 하려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위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평화학 관련 글들이나 국제정세, 그리고 여러 국가의 특정 법률 등에 관해 심도 있게 알아두면 훨씬 유리하다.

# # # #

또한 대리인이 없는 경우 본인 스스로 모든 신념을 면접으로 증명해야하기에 말로 표현하는 것을 많이 연습해둘 필요가 있다.

예시1-이 링크의 경우 예비군 훈련 거부를 택한 사례.

예시2-이것도 예비군 훈련 거부를 택한 사례.

참고로 2019년도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라 하더라도 절도나 몰래카메라 촬영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 받은 전과가 있다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 해당 케이스는 해당 여증 신도가 몰카로 여성 신체를 촬영하다가 여증 내에서 "제명"당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받지 못한 케이스이다. 당연히 이딴 행동 하다 전과 기록이 남은 경우에는 해외 망명 신청도 안 받아준다.

대체역심사위원회 홈페이지의 대체역 신청 민원 서식 링크.

9. 관련 문서



[1] 국가에 의한 징병과 선택에 의한 모병 전체. [2] 용어 '양심'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양심적 병역거부/논란 문서에서 자세히 다룬다. [3] 한국도 1950년대까지는 재림교회 교인들이 입영 후 집총거부를 행사했고, 당시 국방부는 이들을 위생병(현재의 의무병)이나 기타 비전투병과에 배치함으로서 배려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 오히려 당시의 방침이 더 융통성 있었는데, 박정희 정부 들어서 군사국가화가 진행되면서 막장이 된다. [4] 이 사례는 21세기에 들어와 핵소 고지라는 영화로 다루어졌으며, 양심적 집총거부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으므로 참고하면 좋다. [5] 출처: <<Elon Musk: Tesla, SpaceX, and the Quest for a Fantastic Future>> [6] 물론 북한에서 종교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양에 거주하며 재산이 많은 얼마 안 되는 핵심계층뿐이므로 병역 거부 선언할 바에 그냥 뇌물 주고 면제되면 된다. [7] 당시 홋카이도는 미개척지가 많아서, 홋카이도 주민은 노동력 부족을 이유로 징병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8] 튀르키예의 경우 국방세(한화로 환산하면 800만원 정도 된다.)를 내면 병역 대상에서 제외됨에도 불구하고 병역기피자가 있다. 가난한데 군복무는 하기 싫은 사람들이다. [9] 신체검사 1급과 유사한 등급이다. [10] 과거에는 2,000만 명의 인구로 2년 2개월의 군복무를 통해 60만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90년대 후반부터 감군을 시작해 40만 명, 현재는 30만 명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11] “나는 소수자다” 병역거부자 “국가의 부속품 아니다” 주간경향 # [12] 관심 끌려고 병역거부? 감옥을 누가 좋아한다고… 양심적 병역거부로 입감한 유윤종씨 # [13] 상술되어있듯 그들의 죽음을 개죽음에 비유했는데, 강의석 본인의 의도와 100% 일치하는진 모르겠으나, 굳이 옹호하자면 개죽음 발언은 긴장, 대립 관계 속에서 양쪽 권력자들이 민중을 억압하고 이득을 챙기는 사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서 그저 난 애국자라는 사회분위기에 세뇌되어 소모품식으로 죽어가는 일반사병들의 죽음이 허무하다는거다. 물론 말 자체가 앞뒤 보충문구 없는 오해받기 딱 좋은 발언이긴 했고, 조심히 발언해도 모자랄 주제에 대해 굳이 그렇게 극단적인 표현을 대놓고 쓴 시점에서 애초에 좋은식으로 해석될수도 없었지만. [14] 애초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자 중 특히 대체복무를 주장하는 자들을 병역기피자에 분류시킨다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군대에서 복무를 하는 것만 문제가 되지, 군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수행하는 복무는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군복무는 병역의무에 포함되는 것 중에 하나이므로 이들과 서로 다르다. 게다가 이들은 기초군사훈련 때문에 병역특례를 거부하는 것이다. 물론 극단적 아나키스트 같은 경우 국가의 간섭 자체를 권위주의로 보고 신념에 따라 거부할 수도 있지만. [15] 기존엔 부모 진술서가 있었으나 주변인 3인의 진술서만 제출로 변경 [16] 심사에 영향을 주지만 필수는 아니다, 그러나 자료가 많을수록 좋다. [17] 범죄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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