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자유, 평등, 우애(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는 프랑스 혁명과 그 결과 건국된 프랑스 공화국의 국시(national motto, 국가 표어)이다. 문구는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가 지었으며, 프랑스어로는 각각 '리베르테[libɛʁte]', '에갈리테[eɡalite]', '프라테르니테[fʁatɛʁnite]'라고 부른다.2. 역사
프랑스 혁명 시기의 구호이기는 하나 특별히 다른 구호에 비해 많이 쓰이지는 않았다. 이것이 국가 표어로 자리잡은 것은 프랑스 제3공화국 시절이다.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기 전 모든 공권력은 왕, 귀족 그리고 성직자가 가지고 있었다. 백성은 권리를 무시당하는 편이었으며, 정부의 결정에 의해 구류, 추방, 처형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자유와 평등은 앙시앵 레짐의 모순에 종지부를 찍었다.모든 프랑스 국민은 공화국을 기반으로 평등한 신분이 되었다. 이에 따라 자유, 평등, 박애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다. 우애는 법적으로 강요될 수 없는 연대를 뜻한다. 이 세 가치는 하나의 표어로 결합하면서도 각각의 의미를 지닌다. 평등없는 자유에서 가장 강한 것은 법이다. 자유없는 평등은 모두에게 똑같다. 우애없는 자유와 평등은 개인이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다른 이들은 챙기지 않는 국가를 만든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행하지 말고, 항상 자신이 원하는 선사(善事)를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
1795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1795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우애는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로 많은 자유주의 정당 강령에 핵심 이념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으며, 또한 사회주의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현재 독일 사회민주당의 경우에도 당강령에 ' 연대'를 넣고 있다.
C’est un texte international qui énumère les libertés essentielles de tous les êtres humains, sans exception. Il a été approuvé en 1948 par l’ONU, l’Organisation des Nations Unies, au lendemain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Traumatisés par les horreurs de la guerre, les pays du monde ont voulu écrire noir sur blanc les droits fondamentaux de l’homme. La Déclaration de 1948 s’inspire de textes anciens de plusieurs pays. Comme par exemple la 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de 1789 pour la France.
위는 예외없이 모든 인간에게 필수적인 자유를 열거한 국제적인 본문이다. 이는 1948년 세계 2차 대전 다음날 UN을 통해 승인되었다. 끔찍한 전쟁에 충격을 받아 지구 상 국가들는 인간의 기본권을 명백하게 기술하길 원했다. 1948년의 성명은 몇몇 국가의 고문에서 착상되었다. 프랑스를 위한 1789년도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장전이 그 중 하나이다.
3. 프라테르니테(fraternité)
3.1. 정의
과거 '프라테르니테(fraternité)'에 대응하는 이념은 일본어 명칭을 중역한 ' 박애( 博 愛)'라 불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한자어에 대응하는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견해에 따라 '우애'로 정정되고 있다. 당초 '박애'라는 표현은 일본의 근대화 시기 1세대 번역가들이 'fraternité'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잘못 번역하였는데, 이러한 번역체가 일제강점기 그대로 한국에 수입된 뒤 오늘날까지도 계속 사용된 것이다.프랑스어와 어휘론적으로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는 영어 어휘로 번역한다면 좀 더 직관적인데, 나머지 두 이념이 각각 'liberty', 'equality'에 대응하듯이 'fraternité'도 영어의 'fraternity'에 대응한다. 이 단어도 프랑스어와 마찬가지로 '형제애', '동지애'를 의미한다.
혁명 당시 'fraternité'는 넓은 사랑과 자비를 이르는 것이 아니라, '동지간의 협력, 계급간 갈등을 초월한 연합'을 뜻했다. 쉽게 말해서 시민계급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방해하는 것에서 벗어나 결집해서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이데올로기로, 차라리 ' 연대' 또는 '우애'로 번역하는 것이 올바르다. 프랑스 혁명에서 피터지게 싸우던 시민들은 이 'fraternité'에 따라 결집하고 이에 반하는 왕정세력을 숙청했던 것이다.
3.2. 번역사
처음 이를 한자어로 번역했던 사람은 메이지 시대의 민권운동가 나카에 초민(中江兆民, 1847 - 1901)과 그의 제자로서 나중에 무정부주의자가 된 고토쿠 슈스이(1871-1911)였으며, 다나사와 나오코(棚沢直子) 등은 " 메이지 유신 당시 프랑스에서는 부르주아 계층의 자선 활동이 활발했기 때문에 Fraternité에 '박애'라는 의미가 들어간 것으로 보고 그렇게 번역했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링크 현대에는 일본 내 매체에서도 대부분 '우애'로 수정된 번역어가 통용된다.한국에서도 주로 언론과 전문 서적, 일부 프랑스철학 및 정치학 논문을 중심으로 '박애'를 '우애'로 수정하는 사례가 발견되나, 보다 대중적인 방송이나 잡지, 교양서에서는 아직까지도 프랑스 혁명의 3대 이념이 '자유, 평등, 박애'라고 표기하는 사례가 지배적이다.
한편, 진보 계열의 논설에서는 이를 ' 우경화된 한국 사회의 정치적 현상'으로 규정하는 견해가 있다. "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프랑스 혁명을 가르치면서도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맞설 세력 구축을 저지하려 오역을 수정하지 않고 인류애로 계속해서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레 미제라블의 중반부 이후의 1832년 6월 봉기 이야기는 생략하고, 장 발장이 빵을 훔치는 장면만 각색하여 출판되었다' 등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한편으로는 "우경화와 관계없이 박애가 우애에 비해 품위 있게 들린다는 이유로, 오역 후 여러 작가들이 그 오역을 따랐고, 이에 박애라는 오역이 너무 많은 곳에 쓰여 바꾸기가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