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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회 원내 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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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이시바 내각 (2024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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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여당 | |||||||||
자유민주당 115석
19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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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당 27석
24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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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 |||||||||
입헌민주당 39석
14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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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유신회 21석
3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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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민주당 9석
2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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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공산당 11석
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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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신센구미 5석
9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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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정당 1석
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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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당 2석
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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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보수당 0석
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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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14석
12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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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245석 • 465석 • 공석 3석 • 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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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좌익정당 | ||||
창당 | → | 일본공산당 | → | 현재 |
[ruby(日本共産党, ruby=にほんきょうさんとう)] | 일본공산당 | |
<colcolor=#db001c><colbgcolor=#f5f5f5,#2d2f34> 슬로건 |
新しい風, 希望をあなたと共に 새로운 바람, 희망을 당신과 함께 |
영문 명칭 | Japanese Communist Party[1] |
약칭 | 共産党(공산당), 共産(공산), 共(공) |
창당일 | 1922년 7월 15일 ([age(1922-07-15)]주년)[2] |
이념 |
공산주의[A] 민주사회주의[A] 비동맹주의[B] 진보주의[B][7] 반제국주의[B] 평화주의[B] 탈원전 |
정치적 스펙트럼 | 좌익 ~ 극좌[10][11] |
당 색 |
빨간색 (#DB001C)
|
주소 |
도쿄도
시부야구 센다가야4초메 26-7 (東京都渋谷区千駄ヶ谷四丁目26番7号) |
의장[12] | 시이 가즈오 / 11선 ( 중, 40~50대) |
위원장[13] | 다무라 도모코 / 초선 ( 중, 50대) |
서기국장[14] | 고이케 아키라 / 4선 ( 참, 18~20, 23~25대) |
국회대책위원장 | 시오카와 데쓰야 / 9선 ( 중, 42~50대) |
청년조직 | 일본민주청년동맹 (약칭 민청) |
국제조직 |
|
참의원 |
11석[15] / 248석 (4.4%)
|
중의원 |
8석[16] / 465석 (1.7%)
|
도도부현의회 |
138석[17] / 2,688석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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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정촌의회 |
2,503석[18] / 29,762석 (8.4%)
|
당원 수 | 약 280,000명 |
정책연구소 |
일본공산당중앙위원회 부속 사회과학연구소 |
기관지 | 신문 아카하타 |
공식 사이트 | |
SNS | |
기호 | |
당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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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발표 포스터 - Change 희망을 당신과 함께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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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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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しい風, 希望をあなたと共に
새로운 바람, 희망을 당신과 함께
일본의
공산주의 정당.새로운 바람, 희망을 당신과 함께
일본 의회에 의석을 보유한 원내 정당들 중 좌파 성향이 가장 뚜렷한 정당[20]이며, 현존하는 일본의 정당들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정당[21]이다. 1922년 7월 15일 창당되었기 때문에 역사가 무려 [age(1922-07-15)]년에 이르며, 2022년 창당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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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빌딩. 도쿄도 시부야구 센다가야 위치.[22] |
일본에서 현재 활동하는 정당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정당이다. 일본 제국 시절부터 활동했는데, 공산당답게 일본 정치사에서 잦은 탄압을 받기도 했으며 설립하기 전부터 관련자가 체포되거나 억압을 받았다.
상기되어 있는 당기는 하나로 합쳐진 4개의 적기로 민주주의혁명·민주통일전선·국제통일전선·일본공산당 건설을 상징하고 벼와 톱니바퀴는 농민과 노동자를 상징한다.
2.1. 풀뿌리 민주주의
일본공산당의 특징은 중앙정계보다 지방선거에서 영향력이 강하다는 점이다. 2010년대 후반 기준으로 일본공산당은 여러 지자체장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 숫자만 총 63명에 달했으며 그 중 일본공산당 출신 시정촌장은 6명이었고 공산당 소속 기초의원 의석수는 공명당(약 2,700석), 자유민주당(약 2,100석)에 이어서 3위를 차지하며 이는 혁신 진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인 입헌민주당보다 2배 정도 많은 것이다. 도도부현 광역의원 의석수도 자유민주당, 공명당에 이어 3번째로 많다.이런 공산당의 지자체장 지원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55년 체제의 성립 이후 반세기 가까이 자민당이 장기집권하면서 그 부작용으로 흔히 말하는 정경관 유착이 일어나고 이에 일본 특유의 좋게 말해 독립적인(나쁘게 말하면 폐쇄적인) 지역 사회 분위기가 맞물려 지방의 유지나 토호가 이 유착 구조의 말단 구조로 포섭되면서 그 반작용으로 일어난 현상이다. 지역의 유력자들이 느슨하지만 강력한 정경관 유착체의 힘을 등에 업게 되자 이들의 부패나 부조리, 모순을 비판하는 시민 사회 운동가들 역시 이에 상응하는 후원세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 역할을 한 것이 (자유법조단이나 일부 부라쿠민 운동단체 등과 긴밀한 관계였던) 일본공산당이었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꿈의 도시(無理)>에서도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지역 유지들의 나눠먹기식 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인물을 두고 '공산당과 관계가 있다'고 험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협력관계로 인하여 일본공산당은 지방정계에서 직접적인 당세[23]에 비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며 정부에서 주는 당 보조금을 거부하는데도 결코 파산하지도 않고 파산할 이유도 없다. 일본 전국의 수많은 소수자·약자들이 일본공산당에 정치후원금을 내고 있어, 자민당에 이은 정당 후원금 2위의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덕분에 노동조합을 세력 기반으로 삼았던 일본사회당이 전성기에는 일본공산당보다 훨씬 큰 세력을 자랑했으나 정치구도의 변화 이후 순식간에 몰락한 데 비해, 일본공산당은 세력의 부침은 있어도 기반 붕괴는 겪지 않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후 한국의 사민주의 계열 진보정당이 노동조합을 세력 기반으로 삼아 대다수의 의석을 비례대표에 의존하여 일본공산당과는 반대로 중앙정계에 주로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과도 비교점이 있을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이 2020년 사민당의 분열로 좌파진영 헤게모니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3. 성향
(좌측)
★ 메이데이 만세!
민족 성별 연령에 따른 차별 반대
동일 노동에는 동일 임금으로!
(우측)
★ 메이데이 만세!
조선 대만 만주와 타 식민지
반(半)식민지 민족의 완전한 독립!
1930년대 노동절을 기념하여 배포된 일본공산당 선전물
★ 메이데이 만세!
민족 성별 연령에 따른 차별 반대
동일 노동에는 동일 임금으로!
(우측)
★ 메이데이 만세!
조선 대만 만주와 타 식민지
반(半)식민지 민족의 완전한 독립!
1930년대 노동절을 기념하여 배포된 일본공산당 선전물
다른 정당이 우경화를 외치고 있을 때 여기는 반대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24], 원전 폐쇄, 자위대의 국방군 전환 반대, 간접세 증세 반대 등을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당의 강령 중엔 2004년까지 천황제 폐지, 자위대의 해산이 공식적으로 존재했을 정도였으나 이러한 정책에 대하여 여론이 시큰둥했었다. 이후에 2004년 당 대회에서 강령을 철폐하고 천황제와 자위대를 인정했다. 기관지 아카하타 1면의 날짜부에는 서력과 함께 일본 연호를 병기하고 있다. 다만 천황제의 존치 여부는 향후 대중의 뜻에 따라 결정하기로 했으며 자위대는 점진적인 군축 및 평화헌법 9조 수정에 의한 군대 전환을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 대표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정당이며 현재 유럽 여러 국가의 공산당과 비슷한 정치ㆍ경제적 포지션을 띄고 있고, 예전부터 차량 유세 등에서 자본의 위험성을 강조해 왔다. 일본공산당에 반전주의자들이 있다 보니 가끔씩 자위대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이 나오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후지노 야스후미 전 공산당 정책위원장의 "방위비는 살인 예산"이 있다.
참고로 일본공산당은 마오이즘을 신봉하는 일본공산당(마오이즘)과는 별개의 정당이다. 그 정당은 1966년에 일본공산당으로부터 제명당한 후쿠다 마사요시가 창설한 정당으로, 자신들이 진짜 정통 공산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제명 사유는 중국 정부의 지령을 받으며 별도의 간첩 활동을 벌인 것이다. 하지만 2001년에 후쿠다가 노환으로 사망한 후 거의 활동 중단 상태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방문하여 둘러본 뒤 헌화하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방문하고 일본에 약탈된 한국의 문화재를 반환하는데 힘쓰는 등의 모습을 보여왔다. # 애초 일본공산당은 일본 제국 시절에도 당 기관지에서 일제의 중국 침략을 고발하는 기사를 쓰는 등 전쟁 반대, 식민지 처우개선 또는 독립을 꾸준히 호소해 왔다.
부락민 해방동맹(部落解放同盟)과는 1965년부터 노선의 차이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당 수정주의자, 우익 사민주의자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부락민 차별 자체를 찬성하는 게 아니므로 이 점은 가려서 봐야 된다. 부락민 해방동맹은 사회당- 사민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대신 부락민 해방동맹에서 갈라져 나온 전국부락해방운동연합회(全国部落解放運動連合会)가 일본공산당과 가까이 하고 있다.
일본공산당의 입장은 "부락민 차별 철폐운동 지지"이지만 주요 부락민 해방 운동 단체인 부락민해방동맹(部落解放同盟)이라는 특정 단체와 단체 대 단체 입장에서 불편한 관계인 것. 사회운동사에 최소한의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두 단체가 서로를 '반당 수정주의자', '우익 사민주의자' 라고 공격한다는 점에서 이 둘이 원래 한 편이었다가 노선 갈등 문제로 갈라섰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노선갈등 자체가 같은 지향점을 가진 조직이나 개인끼리 그 수단에 대한 입장이 다를 때 벌어지는 것이고, 지향점부터 다르면 그건 노선갈등이 아니라 그냥 대립이다.
주일미군 철수 및 미일동맹 해체를 통한 독자노선을 주장했으며, 2004년 강령개정 당시 목표를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사회 진전 및 주요 생산 수단의 소유 • 관리 • 운영을 사회 손으로 옮기는 생산 수단의 사회화로 명시하고 있다. 단 소련식 국유화와 통제 경제는 부정하고 있으며 시장경제를 통한 사회주의의 실현이 일본에 맞는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통제한다기보다는 사회 구성원의 참여라고 봐야한다. #
강령 내용을 확인해보면 "지금 미국 제국주의는 세계의 평화와 안전, 나라의 주권과 독립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그 패권주의, 제국주의 정책과 행동은 미국과 다른 독점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사이에도 모순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경제의 '세계화'를 명목으로 세계 각국을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에 통합하려고 하면 경제적 패권주의도 세계 경제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물론 무장투쟁 노선은 이미 1950년대에 쓴 맛을 본 후 포기한지 오래다. 지금은 미일관계에 대해서 불평등에서 평등한 관계 즉, 동일한 직위의 국가 대 국가의 미일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야마조에 타쿠 참의원의 인터뷰에서 미일관계를 미국의 시다바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파칭코와 같은 카지노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2016년에 카지노 관련 법률이 의회에서 통과되었을 때도 정당 중 가장 크게 반발하기도 하였다. 또 부부별성 선택적 제도와 동성결혼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편이라 시민결합 같은 파트너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현재 입헌군주제인 일본에서 쓰는 연호에 대해서 중국에서 유래한 만큼 서력에 맞춰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
한편, 일본공산당이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를 환영하고 양국이 서로 화해하고 화합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입장을 표명했으니 한계가 있거나 우경화에 편승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공산당이 이런 입장을 낸건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의 반발이 있기 전의 일이었고 일본공산당은 한국에 대한 금전적 보상과 사과를 일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자민당 집권 시기 내내 한국에게 보상하고 사과해야 된다는 공산당의 의견은 여당에게든 다른 야당에게든 철저히 무시당했다.(출처: 지금 일본공산당 - 시이 가즈오 지음.)
그러다가 2015년이 되어서 보상이 이루어졌으므로 공산당 입장에선 '드디어 우리 당이 추구하던 강령이 이루어졌고, 한국과의 관계를 회복할 신호탄이 되었다.' 하면서 기뻐한 것이다. 그러니까 자민당 아베 내각은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이제 돈 주고 합의했으니까 다신 위안부 얘기 꺼내지도 마라.' 정도라면, 공산당은 '일본이 피해자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하는 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까 사양 말고 받아주었으면 좋겠다.'인 것이다. 결국 자민당과 공산당의 동상이몽 때문에 일어난 오해.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있다.[25] 한편으론 최종적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간다는 강령 역시 아직 유지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정치이념이고 공산주의는 경제이념이므로 둘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공산당의 주장이다. 생산수단을 국유화·집단화하여 국민의 소비생활을 획일화한 구소련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며 일본 사회에 맞는 공산주의를 연구할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모호함 때문에 일각에서는 '일본공산당이 구상하는 공산주의 사회란 것은 결국 무엇인가'라고 지적받기도 한다. 사실 확언을 안 해서 그렇지, 소거법으로 해석하면 사실상 민주사회주의 지향이나 다름없다. 다만 분열을 우려해서인지 구체적인 논의는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레이와) 시점에서 보면 타국의 공산당보다 꽤 우경화(좋게 말하면 온건화)한 편으로, 때문에 한국의 일부 자유주의, 민족주의 성향 네티즌들이 ‘진정한 진보정당’이라며 호의적으로 보는 반면 사회주의자들은 개량주의 정당이라고 놀려먹는 경우도 있다.
3.1. 천황제에 대한 인식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공산당은 패전 직후 천황이 여전히 일본을 통치하던 '대일본제국헌법'이 있는 와중에 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을 발표했다. 자세한 것은 일본인민공화국 참고. 1961년 강령은 일본국 헌법 중 천황 조항에 대해 민주주의 혁명 속에서 군주제를 폐지한다고 했다. 그러다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한 2003년의 강령 개정을 계기로 현재 일본공산당은 군주제도 공화제에도 속하지 않는 과도적인 상태라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일본공산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일본 제국 의회의 개회식의 형식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이유 등으로 천황이 참석하는 국회 개회식에 오랜 기간 불참해왔으나, 2016년 1월 4일에 열린 2016년 첫 정기 국회에선 처음으로 개회식에 참석했다. 이 배경엔 아베 신조 정권 이후 우경화된 일본 사회에서 그나마 당시 아키히토 덴노가 평화헌법을 직간접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많이 했기 때문에, 즉 천황보단 아베 정권의 우경화 정책과 싸우는 게 더 급선무인 연유도 있었다. 사실 막상 일본 우익 국가 이데올로기의 알파이자 오메가요 정점이자 꽃인 천황가 본인들이 막상 군국주의, 재무장에 대해 은근하지만 일관적으로 계속 반대하며 우경화의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는건 우익으로서도 복창 터질만큼 답답한 상황이지만, 이데올로기상 원칙적으론 공화주의와 왕실, 국교 같은 '봉건제'와 불구대천의 관계인 공산주의자들 입장에서도 달가울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2019년 나루히토의 즉위식에는 불참하였다. 신화를 기반으로 한 즉위식이 정교분리에 위배된다는 이유였다. # 자세한 것은 천황 항목 참고.
3.2. 대외 정책
3.2.1. 한반도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독립 문제 등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공산당에 가입한 바 있었다. 조선공산당 일본총국과 협력 관계였으며, 독립 후 1950년대 초까지 재일 조선인들과 합쳐서 재일 조선인에 대한 권리 신장을 같이 투쟁하기도 했다.3.2.1.1. 북한과의 관계
당명이 일본공산당이다 보니 이름만 들어보면 한국에서는 북한과 깊은 연관이 있고 북한과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에 관련이 있어보이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하지만 북한과의 관계는 당내외 정치적ㆍ사회적 입장 때문에 교류는 전혀 없고 오히려 적대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다. 북한 조선로동당과는 창당 때부터 티토주의적 노선으로 창립 이념부터 차이가 있었고 친밀도만 보자면 일본공산당보다는 일본사회당이 북한과 더 친밀했다. 그러나 의지하고 있던 일본사회당부터, 연대관계인 유럽지역 사회주의 정당이 북한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이들 때문에라도 아예 교류가 없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방북단을 보내기도 했지만 북한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1968년에 일본공산당 방북단이 묵고 있는 객실에 도청기를 숨겨놨다가 딱 걸렸다. 21세기 시점에서도 그렇지만 일본공산당은 창당 이후부터 일본 경찰과 공안조사청의 편집증에 가까운 감시에 단련된 사람들이라 도청이나 감시에 눈치가 빠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방북은 종결,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는데 1983년에 북한의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이 벌어지자 일본공산당은 공식적으로 일체의 교류를 단절했다. 게다가 이후 북한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주체사상 쪽으로 물꼬를 틀어버리면서 그나마의 끈도 사라진 셈이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서 산케이 신문과 후지 테레비 등 메이저 언론사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에 일본공산당이 관여되어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자, 일단은 북한과 교류가 단절됐다고 알려진 일본공산당은 발칵 뒤집힌다. 이들은 언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한편, 그 동안 무시로 일관해왔던 북한에 대해서 어느 정도 비판적인 입장을 표출하기 시작한다. 특히 발사체가 일본 상공을 지나간 1998년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 실험 사건 이후부터는 극도로 험악해져서 그 이후부터는 북한을 비판할 때 과격한 발언들이 속출한다. 그 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역시나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 강도 높은 비난과 국제사회에 대한 제재를 조치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전문
전반적으로 친북 정당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민당의 주요 정치인들보다는 유화적인 편이다.
3.2.1.2. 남한과의 관계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관심이 있어서 민주화운동가를 지원한 적 있고, 지금도 공산당 내에서 가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관한 연구모임을 가진다.공산당 홈페이지의 영토 분쟁 관련 입장을 보면 "식민지 지배에 관해 한국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가 우선되어야만 영토 분쟁 해결을 위한 테이블을 마련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을 때 이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일본 국회에서 채택하자 사민당과 공산당만이 반대표를 던졌다. 다만 "일본이 독도를 1905년 1월에 편입시킨 것은 역사적 근거가 있으므로 독도는 원칙적으로는 일본 영토이지만, 그때는 이미 일본이 제1차 한일 협약을 통해 한국의 외교권을 사실상 빼앗았으므로 한국이 이러한 독단적인 결정에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나중에 공동의 역사 연구를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1905년에 근대적 의미의 영토가 되기 이전까지는 양측 누구도 독도의 협소함과 기술적인 문제로 독도를 제대로 파악 하지 못했다는 전제가 일본 정부의 주장과는 다른 점. 물론 접근법에 차이는 있으나 결국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교섭을 통해 독도를 찾아와야 한다는 당론이다. 좌익이라고 해서 독도 문제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일본에 없다.[26] 한국 정계에 과거사 해결보다 한일 우호를 우선시하는 정치인은 가끔 있어도 독도 문제에 대해 양보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정치인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야마모토 타로도 과거 방송에 다케시마를 한국에 줘 버리라는 말을 했다가 나중에 '진짜로 줘버리라는게 아니라 되찾지도 못하면서 말만 번드르르 하게 할거면 관두라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과 영주권자 외국인의 지방참정권 부여 추진 등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도시전설로 떠돌아다니던 731부대의 실체를 밝히는데 진력하여 대중적으로 알렸던 사람들이 바로 일본공산당원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일제 통치기의 전반적인 사과를 일본 내에서 꾸준히 주장해온 정당이다.
한국의 주류 언론들도 많이 주목하고 있는데 중앙일보( #1), 조선일보( #2), 연합뉴스( #3)가 시이 가즈오 대표를 인터뷰하기도 했고, 경향신문은 공산당이 ' 자민당에 강렬한 브레이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하기도 했으며, 한국일보는 '아베 정권의 독주를 막는 유일한 정당'이라 보도하기도 하는 등 여러 언론들이 당세에 비해선 제법 많이 보도하고 있는 편이다.
또한 2013년에는 사단법인 한국 영화감독조합 공동 부대표 정윤철이 '일본공산당은 한국인들과 가장 친한 친구이며 강력한 연대 세력 일본공산당만이 조선의 해방을 주장했다'고 기고하기도 하였다.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 중 MBC 김장겸 사장 퇴진과 관련해서 아카하타에서 기사로 보도하기도 했다. 또,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의 실태를 보도하는 등 #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 당시에는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제헌절에도 주한일본대사관에서의 리셉션 행사에 참석했다. # 또, 일제강점기 시절 징병제의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 최승호 감독의 영화 공범자들을 예로 들면서 언론의 자유를 역설하기도 했다. #
게다가 일본의 대한 수출 규제 이후에 아베의 잘못이라는 주장하고 있으며, 화이트리스트 제외도 반대하고 있다. # 같이 불거진 아이치현에서 열린 표현의 부자유전(表現の不自由展)에 전시된 위안부 소녀상에 대한 전시 중단에 대해서 헌법 21조를 들어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보통 장관들에게 하는 질의에서도 공산당 의원들에게 이러한 성향이 두드러지는편.
최근 들어서 불거지는 근대 세계문화유산의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해서 유네스코 등재는 필요하나 일본 정부가 강제노동 사실을 인정하라는 입장을 취했다. #
3.2.2. 러시아와의 관계
상술된 한국과의 독도 영토분쟁 관련 입장과는 정반대로 러시아와의 쿠릴 열도 분쟁에 있어서는 가장 강경한 입장이다. 일본 정부에서 주장하는 이른바 북방 4개 도서 중 하보마이와 시코탄 2개는 애시당초 쿠릴 열도(일본명 치시마 열도)가 아니라 홋카이도의 부속 도서이므로 당연히 일본 영토라는 입장이고, 나머지 쿠나시르(구나시리)와 이투루프(에토로후) 2개의 섬뿐만 아니라, 쿠릴 열도 전체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건 홋카이도의 지역 정당인 신당대지(다이치)도 그렇다. 분위기가 이렇게 다른 이유는 2가지가 있다. 크게 보면 한국 상대로는 일본이 제국주의적 가해자였으니 신중하고 온건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독도와는 달리[27] 쿠릴 열도는 1875년 상트페트르부르크 조약으로 주권국끼리 평화적으로 영토를 교환한 전적이 있으며 또한 소련-러시아는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등 구 일제의 피해국이 아니고 도리어 1941년 맺은 소일 불가침조약을 불법적으로 파기하고 쿠릴 열도를 탈취한 가해국이기에 이들에게는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는 논지이다. 현실적으로는 분쟁 당사지인 홋카이도 자체가 공산당을 비롯한 일본 반자민당 혁신 진영의 중요 거점 중 하나이며 러시아에 점령된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 출신의 히키아게샤들이 현 공산당의 주 지지 기반인 홋카이도와 도호쿠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3.2.3. 중국과의 관계
중국공산당의 권위주의적 독재와 인권탄압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20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일본 주요 정당들은 축전 메세지를 보냈는데, 일본공산당은 유일하게 보내지 않았고 시이 가즈오 위원장은 위구르와 홍콩에서의 인권 침해를 언급하며 "중국공산당은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맹공했다. #3.3. 권위적 정당 운영
일본 중앙정계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정당임에도 당무 운영 방식이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 유럽과 달리 아시아의 공산당 계열 정당은 대중적인 성향이 적다. 일본공산당도 마찬가지이다.2021년 제49회 중의원 총선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는데도 선거를 총지휘한 시이 가즈오 위원장을 향해 제대로 책임론을 제기하는 이가 없었으며, 오히려 "(선거 결과는) 유감스럽지만 우리의 방침은 틀리지 않았고, 책임질 필요도 없다."는 반응을 내놓으며 말 그대로 어이 없는 상황을 연출했다. #
특히 시이 가즈오 위원장은 실질적 당대표 직책인 위원장직을 2000년 이후로 20년 넘게 연임해오고 있다. 정권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당권을 정권에 비유하면 영락없는 장기 집권인 셈. 다만 그만큼 시이 위원장에 대한 당원들의 신임과 지지가 절대적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에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문제는 문제인 것이, 시이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고령층 당직자들 외에 당을 이끌어갈 차기 청년층이 부족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당 서기국장 고이케 아키라나 유일한 지역구 3선 의원 아카미네 세이켄 역시 고령자로 분류된다. 이들 세대가 은퇴하면 당을 이어받을 후세대에서 인물난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
시이 위원장이 20년 이상 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국민의 상식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하며 전당원투표를 제안했던 당원이 제명되는 일도 있었다. 그 주인공은 당의 안보외교부장을 맡았던 마쓰타케 노부유키. # 마쓰타케는 일방적 제명으로 당에서 쫓겨난 뒤 나가사키 신문에 이를 비판하는 사설을 투고하였으며, 당은 이것에 항의하다가 논란이 일자 결국 사과했다. # 그러나 마쓰타케의 주장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효고현 미나미아와지 시의회에서 활동 중인 난코 도모히코 시의원을 제명하는 등, 내부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모습에 또 다시 비판이 제기되었다. #
각종 비판과 설화에도 무려 23년여 동안 당 위원장으로 재임하던 시이 가즈오는 2024년 1월 18일 실권 없는 명예대표격인 의장으로 물러났으며, 실권을 쥔 당대표 격인 위원장에는 다무라 도모코 정책위원장이 후임으로 취임하였다.
4. 역사
자세한 내용은 일본공산당/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5. 역대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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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 가즈오 | 다무라 도모코 |
5.1. 2차 대전 이전 당수
5.1.1. 총무주석간사
5.1.2. 중앙위원장
- 초대: 사노 마나부 (1927년~1929년)
- 2대: 타나카 세이겐 (1929년~1930년)
- 3대: 카자마조 오키치 (1931년~1932년)
- 4대: 야마모토 마사미 (1933년)
- 5대: 노로 에이타로 (1933년)
5.1.3. 중앙위원
- 초대: 미야모토 켄지 (1933년)
- 2대: 하카마다 사토미 (1933년~1935년)
5.2. 전후
5.2.1. 중앙위원회 의장
1958년에 신설된 직책으로 줄여서 당의장 또는 의장이라고 한다.
공식적인 당수에 해당하며, 지금도 간부회 위원장, 서기국장과 함께 '당 3역'이라 불리지만, 전직 위원장[28]을 예우하기 위한 명예직의 성격이 강해서 실권은 거의 없다.
5.2.2. 중앙위원회 서기장 (폐지)
1945년부터 1970년까지 실질적인 당수 역할을 하던 직책이다.
1970년에 간부회 위원장과 서기국장으로 지위와 권한이 분할되면서 폐지되었다.
5.2.3. 중앙위원회 간부회 위원장
- 초대: 미야모토 켄지 (1970년~1982년)
- 2대: 후와 테츠조 (1982년~1987년)
- 3대: 무라카미 히로무 (1987년~1989년)
- 4대: 후와 테츠조 (1989년~2000년)
- 5대: 시이 가즈오 (2000년~2024년)
- 6대: 다무라 도모코 (2024년~현직)
1970년부터 실질적인 당수 역할을 하고 있는 직책으로 줄여서 당위원장 또는 위원장이라 불린다.
공식적인 서열은 당의장보다 아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의장은 명예직이며 실제 당 운영은 위원장이 주도하고 있다.
5.2.4. 중앙위원회 서기국장
- 초대: 후와 테츠조 (1970년~1982년)
- 2대: 카네코 미츠히로 (1982년~1990년)
- 3대: 시이 가즈오 (1990년~2000년)
- 4대: 이치다 타다요시 (2000년~2014년)
- 5대: 야마시타 요시키 (2014년~2016년)
- 6대: 고이케 아키라 (2016년~현직)
1970년에 신설된 당의
사무총장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일본 내 다른 정당의 간사장에 대응된다.
공식적으로는 의장, 위원장에 이은 서열 3위지만, 의장이 명예직이며, 실질적으로는 당의 2인자로 간주된다.
6. 소속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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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정당과 국회 내 소속 회파(会派)는 다를 수 있음 | ||||
다무라 다카아키 | 다무라 도모코 | 다쓰미 고타로 | 모토무라 노부코 | 시오카와 데쓰야 | |
시이 가즈오 | 아카미네 세이켄 | 호리카와 아키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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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정당과 국회 내 소속 회파(会派)는 다를 수 있음 | ||||
가미 토모코 | 고이케 아키라 | 니히 소헤이 | 다이몬 미키시 | 야마조에 타쿠 | |
야마시타 요시키 | 이노우에 사토시 | 이와부치 토모 | 이토 가쿠 | 쿠라바야시 아키코 | |
키라 요시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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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지 기반
전국적으로 큰 편차 없이 6~10%대 고정 득표율을 얻고 있다. 때문에 중의원 지역구 소선거구제에서는 고전하고 있다. 지역구에서 공산당 후보들이 중복 입후보를 하지 않기 때문에 단독으로 비례대표 후보들이 많이 당선된다. 그렇기 때문에 참의원에서는 1인 선거구가 있는 지역은 입헌민주당, 사회민주당과의 연대를 통해 단일 후보를 선출한다. 주요 지지층은 60이상이다.
상대적으로 선전하는 지역은 총선 기준으론 오키나와현과 간사이 지방인 교토부, 오사카부 등이 거론된다. 특히 교토는 민주당계 정당-자민당-사민당이 연합해서[29] 공산당 후보와 대결을 하는 동네이다. 이에 대해 교토의 전통적인 수공업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면서 공산당과 연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 지방에서 강력한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끼치는 교토대학은 옛날부터 일본 좌파 지식인들의 성지이자 아성 같은 기관이기도 해서 학계나 문화계에서 입김이 쌘 좌파 대학교수 지식인들의 힘도 강하다. 게다가 자민당의 전신인 유신정부가 도쿄로 사실상 천도하는 바람에 천년고도 교토 사람들이 여기에 반감을 가진 것도 있고. 그러다 보니 천년고도의 보수적 기운도 있을법한 교토가 노동자, 지식인들의 탄탄한 조직력을 등에 업고 오히려 공산당의 안방을 자처하는 희한한 현상을 보이고 있고, 그래서 안티들에겐 무슨 빨갱이 꼰대들 천지라는 식으로 비하당하기도 한다.
다만 2010년대 들어 오사카는 지역 정당인 일본유신회의 부상으로 과거보단 영향력이 줄어든 상태이다.[30] 또 상기했듯 풀뿌리 민주주의로 인해 중앙정계보다도 지방선거에서 더 영향력이 강한 편인데, 나가노현, 고치현, 미야기현, 홋카이도 등이 선전 지역 중 하나. 그렇기 때문에 시정촌에는 꼭 1석 정도는 지키고 있다. 그 외에는 주로 대도시 권역에서 지지도가 있는 편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턴 선명성과 투명성, 블랙기업 정책, 여성의 정치 참여 장려 등을 내세워 혁신 진영의 의제 선점과 선거 연대 등을 리드하고 있다는 인상도 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어 제1야당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20년대 이후로는 레이와 신센구미와 경쟁한다는 인상이 강하며, 제50회 중의원 의원 선거에서 일부 지역에서 뒤쳐지고 있다.
급진적인 넷 좌익들 또한 주요 지지 세력 중 하나이다.
8. 여담
- 문장이 공산주의의 상징 중 하나인 낫과 망치가 아니다. 대신 상징하는 것은 동일하다. 낫과 망치에서는 낫이 농민을, 망치가 노동자를 상징하고 여기서는 벼 이삭이 농민을, 톱니바퀴가 노동자를 상징한다.
- 시이 가즈오 위원장이 쓴 <지금, 일본공산당>이 2013년 5월에 한국에 번역되었다.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라 어느 정도 가감의 여지는 있지만 일본공산당이 해온 행적과 정책 방향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 공산당 후원회원수는 무려 340만 명이라고 한다. #
- 2000년대 후반엔 일본의 경제난 때문에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가진 청년들이 매달 1,000명씩 폭발적으로 공산당에 입당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
- 1945년 일본 제국이 패망한 뒤에는 일본인민공화국이라는 공산정권을 세우려고 시도했다. 천황 제도를 폐지하고 전쟁을 금지하는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일본인민공화국 헌법 초안"을 발표했으나 GHQ로부터 무시되었다. 한국에서도 광복 직후에 조선인민공화국을 세우려 했으나 일본인민공화국과 똑같이 미국으로부터 무시당해 실패했다. 만일 세워졌다면 일본 황실이 폐지되고 국가원수로 주석이나 대통령을 세웠을 것이다. 군사 관련에 대해서도 군대 없이 국경경비대급의 준군사조직만 조직하여 " 아시아의 코스타리카"로 만들었을 것이고, 과거사 청산을 확실히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31]
-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큰 키로도 유명한 방송인 타카미 놋포[32]라는 사람이 일본공산당의 열혈 지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일본의 우파 성향 기성세대들과 네티즌들이 충공깽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본명은 타카미 요시아키(高見嘉明)이며, 구 예명은 타카미 에이(高見映)였으나 '데키루카나'에서 '놋포상'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후 지금의 예명을 쓰고 있다. '놋포'라는 말 자체가 키다리라는 뜻. 타카미 놋포가 공산당 지지자라는 것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당시 기성세대들과 넷 우익들이 어렸을 적 교육TV에서 했던 '데키루카나'라는 만들기 프로그램[33]에서 자주 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치면 김영만 교수같은 인물이 소수의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다만,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타카미 놋포는 전쟁 세대(1934년생)로서 일본군이 저지른 전쟁 범죄 및 온갖 병크들을 직접 체감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 쿠로야나기 테츠코의 창가의 토토의 삽화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이와사키 치히로(1918~1974) 역시 1946년에 입당해 활동한 바 있다. 그뒤 3년후인 1949년에 일본공산당 활동 중에 같은 당의 정치인 마츠모토 젠메이와 알고 지내게 되는데, 그 다음해에 젠메이와 재혼했다.
-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일본공산당의 특성이 선거를 투쟁으로 간주하다 보니, 정치적 이념과 상관없이 가끔씩
자민당과 공동전선을 꾸리기도 한다. 2010년대에 같은 간사이 지방이 텃밭인
일본유신회에 대항하기 위해 자민당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자민당 후보를 지원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보면 자민당도 일본유신회 뒤통수 때린 격그러나 오사카부, 오사카시 자민당과 아베 신조는 아베와 중앙당 세력들의 친유신회 행보 및 유신회의 오사카도 구상 밀어붙이기, 극장 정치로 인하여 심각하게 사이가 나쁜 편이다. 공산당 소속의 지방 의원은 오키나와현을 제외하고 지방의회에서 여당으로 활동이 없다 보니 홋카이도 같은 경우에는 자민당과 같은 야당이라는 상황도 있다.
- 2018년 이후부터 지지율 저하, 당원 고령화 등 심각한 문제들이 외부에서 제기될 정도로 정체 현상이 발생하자 그동안 부정하던 일본 천황제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돌아서서 일본 국민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실제로 2019년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를 위한 정당간 토론에서 일본 정치인들이 갑자기 공산당의 입장 변화에 대해서 물어보는 장면도 나왔는 데 이때 현장에 있던 책임자가 밝힌 바에 의하면 "현 황실은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제국주의 청산에 적극적으로 노력했기에 우리들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 Hearts of Iron IV에는 일본공산당이 집권하는 포커스 트리가 있다. 근데 민주일본 트리에선 한국과 만주국이 독립하는데 공산당 트리에선 그대로 일본제국 영토라서 민주 트리보다 내전을 치르기 힘들다. 게임에서는 민주주의 중점을 타면 군국주의 시절과 다르다는 걸 대외적으로 표방할 겸 한국과 만주를 독립시킨다는 중점 설명이 있다. 공산주의 중점을 탈 때는 플레이어가 직접 조선을 독립시켜야 하는데 괴뢰국으로 독립시키지 않으면 민주주의로 독립한다. 만주국도 정복한 뒤 괴뢰국으로 만들면 종주국인 공산 일본을 따라 공산국가가 된다. 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하면 천황제를 완전히 폐지하며[34] 재벌을 국유화한다. 만주국으로 도주한 일제 잔당을 섬멸한 뒤 중점 선택지에 따라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과 연합해 아시아 공산주의 연대를 구축하거나 코민테른에 가입할 수 있다.
- 아사히신문과 도쿄대학에서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직후 일본 유권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일본공산당이 '앞으로 절대로 투표하고 싶지 않은 정당' 부문에서 43%의 득표율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 참고로 2위는 공명당. 당시 야당 중 중의원 최다 의석을 확보한 입헌민주당은 최하위인 걸 보면 상당수의 자민당 지지자들이 싫어하는 정당으로 당시 제1야당이 아닌 공산당을 골랐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선 기본적으로 한국보단 일찍 겪은 제도적 민주주의 덕분에 일본 시민 사회에서 이념적 스펙트럼이 한국보단 넓고 일견 자유주의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전반적인 사회는 완고한 전후 반공국가라는걸 느낄수 있다. # 그래서 당명을 바꾸자는 제안이 여러 번 나오기도 했지만, 전부 거절했다. 현재 일본 최고(最古)의 정당이라는 정통성도 있거니와 안 그래도 합법화 이래 여러 번 분열 위기가 일어났었는데 아예 당명을 바꾸는 수준의 대개혁을 했다간 다시 한 번 분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계 가장 왼쪽에 위치한 정당의 딜레마며 게다가 2020년 교토시장 선거에서 현직 시장 지지단체들이 공산당의 시장은 No!라고 신문에 재개되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 아베 신조 총리도 공산당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
- 좌익 정당이지만 40대 이하에서는 일본공산당이 되려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당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 다만 일본공산당이 정치사상적으로 보수주의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층들이 체감하기에 개혁과 거리가 멀다는 이미지에 가깝다.[35] 보수파 정당이 변혁을 주장하고, 연공서열제가 이미 뿌리박혀 있는 일본 사회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일본공산당은 충분히 좌익적이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공산당이라는 강경좌파스러운 당명과는 달리, 일본공산당은 지속되는 고령화의 영향도 받고 있고, 대중화 작업을 거친 상태라 어떻게 보면 굉장히 온건하고 수정주의적인 성향이 있다. 하지만 일본도 양극화가 지니 계수가 한국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으로 심각한 나라다보니 강경한 사회변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올수 밖에 없어서 좌측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컬트 종교식 운영이라고 비아냥받는 레이와 신센구미가 의외의 돌풍을 보이는 것도 공산당의 이런 문제의 영향이라는 평가도 있다.
- 일본에서 반정부적 성향을 가진 스타로 꼽히는 코이즈미 쿄코가 여기에 당원 가입을 하고 참의원 선거를 준비중이라는 가짜 뉴스가 돌았었다.
- 정당 수입 (정부 보조금 제외) 중에서 자민당에 이어서 2위를 차지했다. # 제1야당 입헌민주당과 비교해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에 대해 통일교의 반공주의로 인해 극도로 혐오하고 있다. 60년대부터 지금까지 통일교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베 신조 피살 사건으로 통일교과 관계가 주목받던 와중에 이 부분이 잠시 주목받았다. 그리고 당 내에 추궁팀을 발족시켰다. #
-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관하여 제도권 내 중 사민당과 함께 반대하는 정당 중 하나이다. 근거 사설 그렇다고 오염수 용어에 대해 쓰고 있으나 용어 혼동을 일으킬만한 것(오염물고기)은 반대하고 있다. #
- 엉뚱하게도 야인시대 합성물중 하나인 왜인시대에서도 언급되었다. 인트로에서 나레이션 양반의 대사를 통해 '제공해 주지 않는' 스폰서들 중 하나로 언급되었는데 문제는 또 다른 스폰서가 대정익찬회다.(...) 정황상 오프닝 BGM이 보병의 본령을 개사한 들어라 만국의 노동자라서 이런 괴상한 전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8.1. 아카하타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일간 기관지. 자세한 내용은 아카하타 문서 참조.오소마츠 군 / 오소마츠 상에 등장하는 하타보가 원래는 이 기관지에 연재되는 만화의 주인공이었다. 머리에 꽂힌 기는 이때에는 일장기가 아니라 적기(赤旗)였다.
8.2. 카쿠산부
카쿠산부일본공산당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특설 사이트이자 캐릭터 시리즈. 카쿠산, 오텐토SUN, 포켄 스승 등의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다.
아래 순서는 캐릭터 소개 페이지의 왼쪽부터.
- 시사: 오키나와 담당 부원. 공식 홈페이지에선 시이 씨와는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올라왔는데, '시사'는 장음 표기로 'しいさあ'라 표기하는 걸 이용한 말장난이다.
- 타와라 코메타로: 반TPP 담당 부원. 이른바 '온후한 덩치' 포지션이지만 TPP만은 참을 수가 없다고. 한국 농민들이 FTA에 대해 보인 반응을 생각하면 된다.
- 오텐토SUN: 탈원전(反原発) 담당 부원.
- 가마구짱: 절세[36] 담당 부원.
- 카쿠상: 부장. 본명은 '카쿠 산시로(賀来三四郞)'.
- 코소다테 이쿠코: 육아•교육 담당부원. 아이들이 10명(모두 연년생) 있으며 업은 아이는 막내 쥬난(十男). 이쿠코의 표정에 반응해 같은 표정을 짓는다고.
- 포켄 스승: 헌법 담당 부원. 일본어로 권법과 헌법이 같은 발음이라 무술가라는 설정이다.
- 고용의 요코(雇用のヨーコ)[37]: 고용 담당 부원. 수많은 직장을 전전한 수수께끼의 여성.
9. 역대 선거
9.1. 중의원 의원 총선거
횟수 | 연도 | 의석수 | 정수 | 득표율 |
22회 | 1946 | 5 | 466 | 3.85% |
23회 | 1947 | 4 | 466 | 3.67% |
24회 | 1949 | 35 | 466 | 9.76% |
25회 | 1952 | 0 | 466 | 2.54% |
26회 | 1953 | 1 | 466 | 1.90% |
27회 | 1955 | 2 | 467 | 1.98% |
28회 | 1958 | 1 | 467 | 2.55% |
29회 | 1960 | 3 | 467 | 2.93% |
30회 | 1963 | 5 | 467 | 4.01% |
31회 | 1967 | 5 | 486 | 4.76% |
32회 | 1969 | 14 | 486 | 6.81% |
33회 | 1972 | 38 | 491 | 10.49% |
34회 | 1976 | 17 | 511 | 10.38% |
35회 | 1979 | 39 | 511 | 10.42% [38] |
36회 | 1980 | 29 | 511 | 9.83% |
37회 | 1983 | 26 | 511 | 9.34% |
38회 | 1986 | 26 | 512 | 8.79% |
39회 | 1990 | 16 | 512 | 7.96% |
40회 | 1993 | 15 | 511 | 7.70% |
41회 | 1996 | 26[39] | 500 | 12.55%/13.08% [40] |
42회 | 2000 | 20 | 480 | 12.08%/11.23% |
43회 | 2003 | 9 | 480 | 8.13%/7.76% |
44회 | 2005 | 9 | 480 | 7.25%/7.25% |
45회 | 2009 | 9 | 480 | 4.22%/7.03% |
46회 | 2012 | 8 | 480 | 7.8%/6.1% |
47회 | 2014 | 21 | 475 | 13.30%/11.38%[41] |
48회 | 2017 | 12 | 465 | 9.02%/7.90% |
49회 | 2021 | 10 | 465 | 4.59%/7.25% |
50회 | 2024 | 8 | 465 | 6.81%/6.16% |
9.2.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횟수 | 연도 | 개선의석/비개선의석 | 정수 | 득표율(지역구/비례구) |
1회 | 1947 | 4/0 | 250 | 3.74%/2.87% |
2회 | 1950 | 2/2 | 250 | 5.65%/4.76% |
3회 | 1953 | 0/1 | 250 | 0.945%/1.09% |
4회 | 1956 | 2/0 | 250 | 3.87%/2.09% |
5회 | 1959 | 1/2 | 250 | 3.32%/1.87% |
6회 | 1962 | 3/1 | 250 | 4.85%/3.14% |
7회 | 1965 | 3/1 | 250 | 6.92%/4.43% |
8회 | 1968 | 4/3 | 250 | 8.27%/4.98% |
9회 | 1971 | 6/4 | 252 | 12.1%/8.06% |
10회 | 1974 | 13/5 | 252 | 12.0%/9.37% |
11회 | 1977 | 5/11 | 252 | 9.96%/8.41% |
12회 | 1980 | 7/5 | 252 | 11.7%/7.28% |
13회 | 1983 | 7/7 | 252 | 10.5%/8.95% |
14회 | 1986 | 9/7 | 252 | 11.4%/9.47% |
15회 | 1989 | 5/9 | 252 | 8.81%/7.04% |
16회 | 1992 | 6/5 | 252 | 10.61%/7.86% |
17회 | 1995 | 8/6 | 252 | 10.38%/9.53% |
18회 | 1998 | 15/8 | 252 | 15.66% [42]/14.60% |
19회 | 2001 | 5/15 | 247 | 9.87%/7.91% |
20회 | 2004 | 4/5 | 242 | 9.84%/7.80% |
21회 | 2007 | 3/4 | 242 | 8.70%/7.50% |
22회 | 2010 | 3/3 | 242 | 7.29%/6.10% |
23회 | 2013 | 8/3 | 242 | 10.64%/9.68%[43] |
24회 | 2016 | 6/8 | 242 | 10.74%/7.26% |
25회 | 2019 | 7/6 | 245 | 7.37%/ 8.95% |
10. 역대 포스터
역대 포스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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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자유와 평화 |
2021년 8월 무엇보다, 생명 |
2020년 12월 어려운 사람에게 상냥한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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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삶에 희망을 |
2017년 1월 힘 합쳐서, 미래를 펼치다 |
2016년 3월 힘 합쳐서, 미래를 펼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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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폭주 스탑! 정치를 바꾼다 |
2013년 4월 스탑 증세 삶을 지킨다 | 다른 버전 |
2012년 11월 제안하고, 행동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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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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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81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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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칭 JCP
[2]
합법화된 시기는 1945년 12월
[A]
창당 초기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주의를 기본으로 한 혁명정당이었으나 1945년 합법화 이후 점차 온건화되어 현재는
유럽의 공산당과 비슷한
유럽공산주의 내지는
민주사회주의 정당이라 분류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다만 유럽의 정당이 아니고 일본공산당도 자신들의 노선이 유럽공산주의와 다르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단순 '공산주의'로만 표기한다. (외교에서는 보통의 유럽공산주의 정당에 비해 더 강경/반제국주의적이지만 내치에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A]
[B]
일본공산당 강령
[B]
[7]
일본공산당은 독자노선을 가지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일본 정치 맥락에서 매우 진보/혁신적인 정당이라고 평가받는다.
[B]
[B]
[10]
Jou, Willy; Endo, Masahisa, eds. (2016). Generational Gap in Japanese Politics: A Longitudinal Study of Political Attitudes and Behaviour |Generational Gap in Japanese Politics: A Longitudinal Study of Political Attitudes and Behaviour. Palgrave Macmillan. p. 16.
[11]
대외적으로는 극좌 정당이라고 보는 시각과 단순 좌익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모두 있다. 일단
전공투 시절과 일본 사회주의 운동의 쇠락을 겪으며 폭력혁명 노선을 포기하여 이전과 같은 성향은 거의 없어졌다. 다만 애초에 폭력성 같은 것은 핵심이 아니며 현대 민주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부정하는(공산당은
인민민주주의를 주장) 정당은 거의 예외없이 극우나 극좌로 분류된다.
[12]
공식적인 당수이나 실권은 없으며, 전임 위원장 예우의 명예 직책 성격이 강하다.
[13]
실질적으로 당수의 역할을 하는 직위이다.
[14]
타국의 전통적인
서기장 직위와 달리 일본공산당의 서기국장은 일본 내 타 정당의 간사장, 한국으로 치면
사무총장에 해당한다.
[15]
지역구
4석, 비례대표 7석
[16]
지역구 1석, 비례대표 7석
[17]
한국의 광역의회에 해당한다.
[18]
한국의 기초의회에 해당한다.
[19]
포스터의 인물은 일본공산당
다무라 도모코 위원장
[20]
원외 정당들까지 포함해 범위를 넓혀보면
신사회당,
노동자공산당,
노동의 해방을 목표로 노동자당 등 훨씬 급진적인 극좌파 정당들이 활동 중이므로 이들보다는 온건한 편이다.
[21]
해산된 정당들까지 포함한다면
1906년 사회당 및 그보다도 6년 더 오래된
입헌정우회, 이외에도 일부 정당들이 존재한 바 있으나 현존 정당으로서는 일본공산당이 가장 오래되었다.
[22]
위 사진은 측면사진으로, 정면으로 보면 상당히 큰 건물이다. 주변에 공산당 당사보다 큰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 언젠가는
여당이 되겠다는 야망으로 크게 지었다고 한다.
[23]
예를 들어 일본공산당 출신 시정촌장
[24]
카를 마르크스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가 국가가 다른 국가를 착취하는
제국주의라고 봤고,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서 이것을 동시다발적으로 뒤집어야 했다고 봤기 때문에 (더불어
블라디미르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이러한 만국의 노동자의 단결을 통한 동시다발적 국제혁명을 식민지의 존재가 가로막고 있어 이를 해방시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본적으로 공산주의는 반제국주의 성향이 대단히 강하다. 후술되어있듯 식민지 시절엔 많은 조선인들이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이 때도 조선 독립이나 조선인들에 대한 처우 개선 등을 주장한 이들은 우익보단 좌익 계열 사람들이 압도적이었다.
후세 타츠지 선생이 대표적이다.
[25]
1976년 임시대회에서 채택
[26]
야마모토 타로 문서 등에서도 언급된 부분이지만, 한 국가의 정치인, 또는 정치집단이 해당 국가의 공식적 입장, 특히 '국가 주권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영토권 주장에 대한 입장'을 부정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정치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일본의 정치인 중 친한적인 입장, 또는 과거사에 대해 반성적인 입장을 가진 정치인이라도 "독도는 한국의 정당한 영토이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부당하다" 라고 말하는 정치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정치인이 몇이나 있을지도 의문이며, 설령 이런 입장을 가진 정치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입장을 공공연히 주장할 경우 십중팔구 다음 선거에서 낙선하여 더 이상은 정치인이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일본 정치권에서 보여주는 독도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이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뜻을 보이기 위해 영유권을 공공연히 주장하지는 말자." 정도의 선을 벗어나기 힘들다.
[27]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지만 과거사, 대한관계에 있어 일본 메이저 정치, 사회집단 중 가장 전향적이고 반파시스트적인 일본공산당에서도 독도는 '어쨌든 원칙은 일본 땅'이 '상식'으로 통하고, 사실 평당원 차원에 내려가면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이자 구 추축국으로서 반성해야 한다는 당의 큰 대외관, 역사관에는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독도는 그거와 무관한 영토분쟁 아니냐는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기가 찬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아무리 좌파 성향인 사람이라도 일본에선 독도가 자기들 땅이 맞다는 인식이 일반적인 것.
[28]
1970년 이전까지는 전직
서기장
[29]
일본은 지방선거에선 이런 식의 좌우 연합이 생각보다 흔한 편이다.
[30]
일본 젊은이들 중엔 공산당을 보수정당으로 생각하고 일본유신회를 좌익으로 생각하는 다소 황당한 케이스도 있다는데, 늙어가는 공산당과 신생정당인 유신회가 대비되는 효과 때문인듯. 우익/좌익보단 안주/개혁 정도로 봐도 될지도. 그리고 2016년 이후 유신회는 보수정당보다는 오사카 지역주의 정당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31]
다만 독도 영유권 문제는 위에서 언급되었듯 자신들의 영토라는 관점을 고수했을 가능성이 꽤 있다. 일본에서는 좌파 진영도 대부분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생각하기 때문.
[32]
高見のっぽ, 2022년 9월 10일 사망.
[33]
1970년부터 1990년까지 방영했고 2013년까지 후속작격인 '만들며 놀자(つくってあそぼ)'가 뒤를 이었다.
[34]
민주 루트에선 다시 히로히토를 천황으로 옹립하며 입헌군주제 국가가 된다. 황족도 소련처럼 모두 숙청하는데 황족을 숙청하지 않으면 살아남은 황족들은 만주국으로 망명한다.
[35]
사회당이 몰락하고 지금의 민주당 계열이 탄생한 이후의 세대들은 전통적인 보수-혁신 구분에 익숙하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36]
여기서 절세는 '감세'와 비슷한 뉘앙스로 쓰였다. 35년 융자로 집을 장만한 탓에 정부의 '대책없는(ムダな)' 증세에 불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37]
코요노 요코(こようのようこ). 한국 이름 느낌으로는 '고용순' 같은 이름.
[38]
원내 4당, 지지율 3당.
공명당의 약진 때문.
[39]
소선거구 2 + 비례 24
[40]
사민당을 꺾으며, 자민, 신진, 민주의 뒤를 이은 제4당
[41]
바로 전 선거와 득표율, 의석 수를 비교하면 대약진
[42]
공명당을 꺾은 제3당
[43]
반등의 계기를 잡은 첫 전국 선거, 유신회, 민나노당과 공동 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