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20:00:19

이안(영화감독)

이안 감독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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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
'''[[틀: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Academy Award for Best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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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1929년)
제2회
(1930년)
제3회
(1931년)
제4회
(1932년)
제5회
(1933년)
코미디:
루이스 마일스톤
( 미인국 2인 행각)
드라마:
프랭크 보제이지
( 제7의 천국)
프랭크 로이드
( 정염의 미녀)
루이스 마일스톤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노먼 터로그
( 스키피)
프랭크 보제이지
( 나쁜 여자)
제6회
(1934년)
제7회
(1935년)
제8회
(1936년)
제9회
(1937년)
제10회
(1938년)
프랭크 로이드
( 캐벌케이드)
프랭크 카프라
(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존 포드
( 밀고자)
프랭크 카프라
( 천금을 마다한 사나이)
레오 맥캐리
( 이혼 소동)
제11회
(1939년)
제12회
(1940년)
제13회
(1941년)
제14회
(1942년)
제15회
(1943년)
프랭크 카프라
( 우리 집의 낙원)
빅터 플레밍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존 포드
( 분노의 포도)
존 포드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윌리엄 와일러
( 미니버 부인)
제16회
(1944년)
제17회
(1945년)
제18회
(1946년)
제19회
(1947년)
제20회
(1948년)
마이클 커티즈
( 카사블랑카)
레오 맥캐리
( 나의 길을 가련다)
빌리 와일더
( 잃어버린 주말)
윌리엄 와일러
(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엘리아 카잔
( 신사협정)
제21회
(1949년)
제22회
(1950년)
제23회
(1951년)
제24회
(1952년)
제25회
(1953년)
존 휴스턴
(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
조셉 L. 맨키위즈
( 세 부인)
조셉 L. 맨키위즈
( 이브의 모든 것)
조지 스티븐스
( 젊은이의 양지)
존 포드
( 말 없는 사나이)
제26회
(1954년)
제27회
(1955년)
제28회
(1956년)
제29회
(1957년)
제30회
(1958년)
프레드 진네만
( 지상에서 영원으로)
엘리아 카잔
( 워터프론트)
델버트 만
( 마티)
조지 스티븐스
( 자이언트)
데이비드 린
( 콰이 강의 다리)
제31회
(1959년)
제32회
(1960년)
제33회
(1961년)
제34회
(1962년)
제35회
(1963년)
빈센트 미넬리
( 지지)
윌리엄 와일러
( 벤허)
빌리 와일더
(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로버트 와이즈
제롬 로빈스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데이비드 린
( 아라비아의 로렌스)
제36회
(1964년)
제37회
(1965년)
제38회
(1966년)
제39회
(1967년)
제40회
(1968년)
토니 리차드슨
( 톰 존스의 화려한 모험)
조지 큐커
( 마이 페어 레이디)
로버트 와이즈
( 사운드 오브 뮤직)
프레드 진네만
( 사계절의 사나이)
마이크 니콜스
( 졸업)
제41회
(1969년)
제42회
(1970년)
제43회
(1971년)
제44회
(1972년)
제45회
(1973년)
캐럴 리드
( 올리버!)
존 슐레진저
( 미드나잇 카우보이)
프랭클린 J. 샤프너
( 패튼 대전차군단)
윌리엄 프리드킨
( 프렌치 커넥션)
밥 포시
( 카바레)
제46회
(1974년)
제47회
(1975년)
제48회
(1976년)
제49회
(1977년)
제50회
(1978년)
조지 로이힐
( 스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대부 2)
밀로스 포먼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존 G. 아빌드센
( 록키)
우디 앨런
( 애니 홀)
제51회
(1979년)
제52회
(1980년)
제53회
(1981년)
제54회
(1982년)
제55회
(1983년)
마이클 치미노
( 디어 헌터)
로버트 벤튼
(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로버트 레드포드
( 보통 사람들)
워렌 비티
( 레즈)
리처드 애튼버러
( 간디)
제56회
(1984년)
제57회
(1985년)
제58회
(1986년)
제59회
(1987년)
제60회
(1988년)
제임스 L. 브룩스
( 애정의 조건)
밀로스 포먼
( 아마데우스)
시드니 폴락
( 아웃 오브 아프리카)
올리버 스톤
( 플래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마지막 황제)
제61회
(1989년)
제62회
(1990년)
제63회
(1991년)
제64회
(1992년)
제65회
(1993년)
배리 레빈슨
( 레인 맨)
올리버 스톤
( 7월 4일생)
케빈 코스트너
( 늑대와 춤을)
조나단 드미
( 양들의 침묵)
클린트 이스트우드
( 용서받지 못한 자)
제66회
(1994년)
제67회
(1995년)
제68회
(1996년)
제69회
(1997년)
제70회
(1998년)
스티븐 스필버그
( 쉰들러 리스트)
로버트 저메키스
( 포레스트 검프)
멜 깁슨
( 브레이브 하트)
안소니 밍겔라
( 잉글리쉬 페이션트)
제임스 카메론
( 타이타닉)
제71회
(1999년)
제72회
(2000년)
제73회
(2001년)
제74회
(2002년)
제75회
(2003년)
스티븐 스필버그
( 라이언 일병 구하기)
샘 멘데스
( 아메리칸 뷰티)
스티븐 소더버그
( 트래픽)
론 하워드
( 뷰티풀 마인드)
로만 폴란스키
( 피아니스트)
제76회
(2004년)
제77회
(2005년)
제78회
(2006년)
제7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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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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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제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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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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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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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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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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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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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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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제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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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리
( 베라 드레이크)
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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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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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제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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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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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크백 마운틴)
마틴 스코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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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제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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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제21회
(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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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션)
이안
( 와호장룡)
주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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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만 금마장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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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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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제30회
( 1993년)
제31회
(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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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 결혼 피로연)
차이밍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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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회
( 2006년)
제44회
( 2007년)
제45회
( 2008년)
진가신
( 퍼햅스 러브)
이안
( 색, 계)
진가신
(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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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李安 | Ang Lee
파일:external/richestnetworth.org/Ang-Lee-Net-Worth.jpg
이름 이안(李安 , Lǐ Ān, Ang Lee)
국적 파일:대만 국기.svg 대만[1]
출생 1954년 10월 23일 ([age(1954-10-23)]세)
타이완 성 핑둥 현 차오저우 진
학력 뉴욕 대학교 (MFA)
데뷔 1991년 영화 <쿵후 선생(推手)>
가족 부인 제인 린(林惠嘉), 장남 한 리(李涵), 차남 메이슨 리(李淳)

1. 개요2. 활동3. 작품 특징4. 필모그래피5. 기타

[clearfix]

1. 개요

금마장 관련 영상 1
금마장 시상 관련 영상 2

중화민국 타이완 성 핑둥 태생의 영화감독[2]이다. 중국어 이름은 李安 (Li An)이고 영어 이름은 Ang Lee이다.[3]

한국에서는 그의 중국어 이름의 한자 표기를 우리나라 식대로 읽어 '이안' 감독이라고 부른다. 대만 영화계를 넘어 미국 영화, 영국 영화 등 세계 영화계의 정상급 아시아계 감독 중 한 명이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는 유일하게 아시아인 감독이 맡은 영문학 고전 주제 영화이다.

전세계를 뒤져 봐도 찾기 힘든 화려한 수상기록을 가진 감독이다. 무려 베를린 영화제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각각 2번씩 수상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감독상을 2번 수상했다. 아시아인 감독 최초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4]

미국 할리우드, 영국 영화계의 큰 자본이 들어가는 영화를 만들수 있는 몇 안 되는 아시아계 감독 중 하나다. 음식남녀 이후 한 작품이 주로 미국 영화, 영국 영화와 같은 영미권 영화이다.[5][6]

2. 활동

초기 작품인 《쿵후 선생》, 《 결혼 피로연》, 《 음식남녀》까지는 대만을 베이스로 하여 찍다가 할리우드로 건너가 1995년에 제인 오스틴의 원작 소설을 엠마 톰슨이 각색을 하여 영화화한 《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감독했는데, 이 작품은 베를린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까지 수상하며 단박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후 2000년 《 와호장룡》이 북미에서만 1억 달러나 버는, 할리우드의 외국어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을 하면서 할리우드 영화계에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고, 2006년에는 《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까지 수상하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아시아인 영화감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7] 이는 아시아 출신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첫 사례였다.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 라이프 오브 파이》로 두 번째 감독상을 수상, 기립박수를 받았다. 문제는 해당 작품의 CG 외주업체가 가격 후려치기로 인해 도산했고 시상식장 밖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이에 대해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진 못할 망정 CG 비용에 대한 절감을 주장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CG 업계 종사자들에게 한동안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고 한다.[8]

2016년에는 빌리 린스 롱 하프타임 워크라는 영화를 120fps로 촬영해서 개봉시켰는데,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120fps란 이유로 혹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고 혁신적이라 당분간은 2D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한다. #

차기작으로 무하마드 알리 관련 영화인 '스릴라 인 마닐라'도 라이프 오브 파이, 빌리 린스 롱 하프타임 워크처럼 3D로 제작한다고 한다. 그 이전에 먼저 제리 브룩하이머X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협업한 SF 스릴러 제미니 맨 연출을 맡는다.

3. 작품 특징

전반적으로 1990년대 등장한 감독들 중에서도 고전적인 성향이 강하며, 만능형 감독에 가깝다. 서부극에서 에로틱 스릴러, 홈 드라마, 사극, 무협에 슈퍼 히어로 영화까지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포괄하며, 대중적으로도 먹힐만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

그리고 영화 속 캐릭터들의 감정적인 부분을 잘 표현하는 걸로 유명하며 영상미 역시 훌륭하다. 초창기 대만에서 촬영한 결혼 피로연이라던가 음식남녀도 전통 문화와 서구화의 대조, 신세대들이 겪는 감정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받았다. 단점이라면 작품의 수준에 다소 기복이 있다는 것. 이런 면에서는 리들리 스콧과 닮았다.

편집과 촬영 등에서의 기교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색감을 담백하면서 풍부하게 담아내는 편이다. 그리고 자연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내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며, 브로크백 마운틴 라이프 오브 파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안 감독의 뛰어난 영상미로 잘 담아낸 작품들이다. 샘 멘데스처럼 빛을 잘 사용하는 감독으로, 아름다운 영상미의 비결은 이런 담백한 색감과 빛의 사용에서 도드라진다. 특히 이런 영상미는 라이브 오브 파이에서 정점을 찍는데, 바다에 비춰지는 푸른 빛깔과 해가 뜨는 장면에서 이를 아름답게 연출해내 극찬을 받아냈다.

제임스 카메론처럼 CG를 활용한 영상미에도 상당히 능하며,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라이프 오브 파이 이후에 기술에만 신경 쓴 나머지 각본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이 지적되고 있다. 이런 비판은 빌리 린스 롱 하프타임 워크 제미니 맨에서 많이 생겼다. 그래서 차기작은 3d로 촬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색, 계에서 양조위 탕웨이 섹스신을 11일 동안 촬영했다고 한다. 헐크 (2003) 제작 때도 순수 헐크의 모습을 위해 바지까지 찢어버려 나체로 제작하려 했던 사람이다.[9]

이안 감독 특유의 부드럽고 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잘 도드라지진 않지만, 수위 높은 작품을 꽤 만드는 편이며, 표현에 관해서도 높은 수위를 거리낌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는 동성 섹스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편이며, 그 유명한 색, 계는 무려 NC-17[10] 받을 만큼 베드신의 수위가 굉장히 높다. 위에서 언급한 완벽주의와 더불어서, 높은 수위 때문에 두 주연 배우가 고생했는데, 특히 여주인공을 맡은 탕웨이가 그랬었다고 한다. 여배우라서 안 그래도 베드신이 더욱 민감했을 부분이었을텐데, 촬영하다가 기절하고, 내내 울기도 하는 등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고 한다.

일부 평론가들은, 중화권 현대극부터 미국 서부극, 중화권 사극부터 영국 고전극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장르를 어색함 없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감독은 이안 감독 말고는 찾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그래서 음식남녀, 결혼 피로연 헐크와 같이 상반된 장르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4. 필모그래피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181818><tablebgcolor=#181818>
이안 감독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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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제목 역할 비고
제작 연출 각본 편집 기획
1992 쿵후 선생 O O O O
1993 결혼 피로연 O O O 카메오 출연
1994 음식남녀 O O O
1995 센스 앤 센서빌리티 O
1997 아이스 스톰 O O
1999 라이드 위드 데블 O
2000 와호장룡 O O
2003 헐크 O
2005 브로크백 마운틴 O 2018년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
2007 색, 계 O O
2009 테이킹 우드스탁 O O
2012 라이프 오브 파이 O O
2016 빌리 린스 롱 하프타임 워크 O O
2017 아이 앰 히스 레저 조연 -본인 역
2019 제미니 맨 O O
미정 이소룡 전기 영화 O O

5. 기타

음식남녀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버지가 중국 장시성 출신이고 국공내전 당시 중공군의 박해를 피해 피난을 갔다고 한다. 즉, 외성인 2세다. 그리고 핑둥으로 가족들이 피난온 후 본인이 태어났다고 했다.

교사와 큰 관련이 있는 인물인데, 부인은 미생물학자이자 생물교사[11]이고, 아버지와 할아버지 역시 청나라 시기와 민국 시기 당시 고등학교 교사와 교장을 역임했다. 이들이 대만으로 피난온 후에도 교편을 잡았다.

6년 간 살림을 도맡아 하며 시나리오만 집필했으며, 당시 교사였던 아내가 생계를 꾸려 나갔다고 한다. 저명한 미생물학자인 아내 제인 린은 '당신은 영화감독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니,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해.' 라고 이야기했고, 그 후 대만 영화계 최고의 영화감독이 되어 선견지명 아내의 성원에 확실히 보답했다.

아들인 메이슨 리는 1990년생으로, 영화배우로 활동 중이다. 주연을 맡은 영화는 없고, 루시와 행오버 2에서 조연을 받은 바 있다. 2016년경 대만으로 옮겨 거기서는 좀더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영화천재 이안》(원제: Being Ian)과는 상관없다. 캐나다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으로, 한국에서는 EBS에서 방송하였다.

디즈니로부터 뮬란 실사판의 감독제안을 받았으나 본인이 스케줄 때문에 고사했다고 한다. 전 포커스 피처스 CEO었던 제임스 샤머스가 자주 그의 영화들에 각본 작업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처럼 대만인으로서 세계를 알린 공로로 2013년에 정부가 경성훈장을 수훈하였다. 경성훈장은 수상자 목록보면 대부분 정치인들이 받는 훈장이라는 감안하면 민간인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받은 셈이다. 단순히 명감독이라서 받은 것보다는 금마장 회장을 하면서 대만 영화를 세계에 알리고 미래 인재를 키우려고 한 공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

세계 3대 영화제 중 베를린, 베니스에선 각각 2번이나 최고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지만 칸 영화제와는 인연이 없다. 그렇지만 아카데미상, BAFTA 영화상에서 큰 주목을 받은 중화권 영화인 중 한 명이다.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대만에서는 거의 처음이다.[12]

SJW가, 그가 대만인인데 센스 앤 센서빌리티, 브로크백 마운틴, 라이프 오브 파이 대만 배경이 아닌 다른 나라 문화 관련 영화를 찍는다고 문화적 전유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13]

최근 제작을 준비 중인 이소룡 전기 영화에 무리하게 아들인 메이슨 리를 이소룡으로 캐스팅하는 통에 중화권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다. 서구 이소룡 팬들에게도 전혀 안 닮았고 메이슨 리가 그동안 영화배우 경력을 봐도 주연으로 이소룡을 맡기는 걸 반대할 정도로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내 아들도 무술 교육을 받고 있다라고 밀어붙이고 있다.[14]


[1]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다. [2]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많은 영화팬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 자식들도 모두 미국 태생의 대만계 미국인으로 대만 국적도 갖고 있다. 대만 복수국적 허용국이라 미국 시민권과 중화민국 국적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재한화교 한국 시민권과 중화민국 국적을 같이 갖고 있으며, 일부는 대만에 호적을 등록한 후 대한민국 여권 대만 여권을 같이 보유하고 있다. [3] 발음으론 '앵 리'가 된다. 앵그리(Angry)와 발음이나 표기가 유사한 탓에 솔직한 예고편 헐크(영화) 편에서 "Don't make him Ang Lee" 드립을 친다. [4] 이후 7년 동안 아시아인이 감독상을 수상하지 못하다가, 봉준호가 2번째로 수상한다. 그 후 1년 뒤 나온 아시아인 수상자는 클로이 자오. [5] 이외의 아시아계 감독으로는 제임스 완, 저스틴 린, M. 나이트 샤말란 등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하지만 이들은 인종만 아시아인일 뿐 모두 어릴 때부터 미국, 호주 등 서양 국가로 이민해 성장하여 영어, 서구권 문화에 익숙했으며, 때문에 이안 감독을 비롯해서 뒤늦게 미국, 영국 영화계에 진출한 아시아 출신 감독들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6] 각각 4,000만 달러와 6,000만 달러로 큰 스케일의 설국열차 옥자를 만든 순수 한국 국적의 봉준호 또한 여기에 포함된다. 오히려 이쪽은 능력은 충분하지만 본인이 한국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기를 원해 할리우드 자본의 영화를 만들지 않는 케이스에 해당한다. [7] 다만 해당 작품으로 작품상까지 받을 것이라고 보는 시선도 많았으나, 크래쉬가 작품상을 수상하며 불발. 크래쉬도 좋은 영화지만 이 영화가 브로크백 마운틴을 꺾고 작품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의아하게 보는 시선도 많다. 아마도 동성애를 다룬 영화다보니 보수적인 당시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주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8] 사실 이 건에 대해서는 이안 감독은 좀 억울한 부분이 없지는 않은데, CG 외주업체가 도산한 이유는 라이프 오프 파이 때문이 아니라 그 이후에 진행했던 < R.I.P.D.> 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그 영화를 진행하면서 모종의 이유로 현금 흐름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결국 도산하게 된 것. 사실 그 업체는 예전부터 업계에서 직원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대우를 후하게 주기로 유명했고 계약직이 아닌 정식 스태프는 거의 공무원 수준의 철밥 그릇으로 모두의 부러움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경쟁이 심화된 업계가 다들 살빼기에 노력하는 와중에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태되어버린 대표적인 케이스. 물론 그 업체가 진행한 라이프 오프 파이가 아카데미를 휩쓸던 절묘한 시기에 도산을 하고 그 명백히 대비되는 미묘한 분위기를 무시한 채 경솔한 발언을 한 이안 감독에게도 책임은 있지만, '업체를 쥐어짜서 만든 영화로 자신만 아카데미 상을 받았다' 라는 항간의 소문은 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9] 여담으로 데이비드 핀처 스탠리 큐브릭 역시 완벽주의자로 분류되곤 한다. [10] 17세 미만 관람불가. 청소년 관람불가에 속하는 등급인데, 비단 상업 영화로 보이는 청불 등급의 작품은 성인을 동반하면 볼 수 있는 R등급인데, NC-17을 받으면 관이 제한되어서 흥행이 힘든 등급이라 받기 어려운 등급이다. 이런 등급으로 적지않은 예산과 제작을 밀 수 있었던 것을 보아, 당시 전성기인 이안 감독의 위상을 알 수 있는 점. [11] 음식남녀에서 주 사부의 장녀인 주가전이 화학교사였다. [12] 홍콩 영화, 싱가포르 영화 영어권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미리 인지도를 높였다. [13] 그러나 이안 감독이 미국, 영국에 진출하기 전에는 대만에서 활동했다. 이안이 미국 영화, 영국 영화 시장에서 주목받은 이유가 대만 영화 시장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14] 메이슨 리는 결혼 피로연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