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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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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B2A30><colcolor=#ffffff> 주성치
周星馳|Stephen Chow
파일:주성치.jpg
이름 주성치 (周星馳[1], Stephen Chow Sing-Chi)
출생 1962년 6월 22일 ([age(1962-06-22)]세)
영국령 홍콩 구룡반도[2]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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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5cm|67kg|O형
가족 아버지, 어머니 능보아 (凌寶兒)
별칭 星爺/星爷(씽예)[3]、星仔(씽자이)[4]、阿星(아씽)[5]
활동시기 배우: 1980년 ~ 2008년[6]
감독: 1994년 ~[7]
영화 데뷔 1988년 <벽력선봉>
종교 무종교 ( 불가지론)

1. 개요2. 일대기3. 패러디4. 성격5. 일상생활에서의 모습6. 출연/감독한 영화, TV 시리즈7. 수상 내역8. 연애사
8.1. 나혜연8.2. 주인8.3. 막문위8.4. 우문봉
9. 여담
9.1. 삼합회 관련설?9.2. 짐 캐리와 비교9.3. 주성치의 팬9.4. 데뷔시킨 배우9.5. 주성치 사단9.6. 주성치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사람들
10. 사건 사고 및 논란
10.1. 장효기(장샤오치,张晓祺)에 의해 조작된 허위 열애설10.2. 중국과의 관계 설정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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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콩 영화감독이자 각본가 영화배우.[8]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홍콩 영화를 대표한 배우 중 한 명으로, 특히 유머스런 코믹 연기의 달인으로 알려져있다.[9]

어딘지 B급 영화 분위기를 풍기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관(作品觀)으로 좋은 의미의 괴작 또는 명작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언더독 혹은 루저의 미학이 담겨 있다고 평하는 평론가도 있다. 김정영(전 인츠닷컴 영상사업팀장)은 씨네21에 투고한 원고에서 동북아 루저들의 별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

2. 일대기

주성치는 1962년 6월 22일에 영국령 홍콩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능보아(凌寶兒)는 중국 대륙에서 사범 전문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고[10] 그의 외할아버지는 법관이었다. 하지만 그의 외할아버지가 감옥으로 끌려가고 그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홍콩으로 이주한다. 그 후, 그의 어머니는 상해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주성치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고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낳는다. 주성치는 그 중 둘째다. 당시 주성치의 가정은 무척 가난했고, 그의 어머니는 하루종일 밖에서 일을 해야했다. [11] 그러나 1970년, 주성치가 8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의 불륜으로 그의 부모는 이혼한다.

주성치의 어머니가 회고하길, 어린 시절의 주성치는 하루종일 창가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멍때리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 이때부터 혼자서 상상력을 펼쳤던 것 같다. 그렇게 내성적이고 말수가 없는 주성치는 7살 때 부모와 처음으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하나 보게 되는데, 그 영화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게 된다. 그 영화는 바로, 이소룡의 < 맹룡과강>. 그때부터 소심하고 어린 주성치는 이소룡처럼 멋진 액션배우가 되기를 꿈꾸게 된다.[12]

그는 중등학교를 졸업한 후[13] 1979년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 양성소였던 TVB의 배우 훈련반에 오디션을 보려간다. 이때, 오디션을 혼자 보러 간 것이 아니라, 16살 무렵에 만난 친구 양조위와 같이 간다.[14] 양조위는 오디션을 볼 생각도 없었지만 주성치가 연기 연습을 할 때 상대역을 맡는 등 그를 자주 도와주었기에 이 때도 주성치를 도와주기 위해 갔다가 얼떨결에 오디션을 봤는데 정말 재밌게도, 양조위는 붙고 주성치는 떨어진다..... 시험 내용이 슬픈 연기를 해야 했는데 양조위는 우수에 찬 눈빛으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서 오디션을 아주 쉽게 통과한 반면 주성치는 너무 과장된 연기를 한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심사관은 주성치를 오디션에서 탈락시키면서 "슬퍼야 하는데 왜 웃음이 터지냐"라는 코멘트를 남겼다고 한다.

오디션을 떨어진 주성치는 1981년 홍콩 RTV(現 aTV)의 드라마인 무협제녀화, 여와행동[15] 등에서 엑스트라라도 잡아서 처음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다. 그리고 1982년, 먼저 합격한 양조위의 도움으로 TVB 야간훈련반에 가수 부문[16]으로 겨우 들어가게 된다. 먼저 합격한 양조위는 1년만에 '왕자'라는 칭호를 얻으며 큰 인기를 얻었고, 어렵게 야간훈련반이라도 들어간 주성치는 7년 동안 엑스트라 생활을 하게 된다.[17] 당시 주성치는 자신의 친구들( 양조위, 유덕화)이 주연한 영화의 엑스트라 역할을 자주 맡았는데 눈 앞에서 그들이 주연으로 발탁되어 명성을 얻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또 뒤에서도 언급할 내용이지만, 주성치의 영화에 개입하려고 하는 성격은 엑스트라 시절부터였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맡은 엑스트라 역이 주인공의 공격에 맞고 죽는 역할인데 여기서 주성치는 엑스트라가 눈 앞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그냥 보고만 있다가 맞아 죽는 것보다는 두 손으로 한 번 막고 난 다음 죽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감독[18]에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절당하였다.

여담으로, 희극지왕에서 첫 장면은 주인공 사우(주성치)가 바다를 향해 "노력! 분투!"라고 소리 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는 그가 엑스트라 시절, 꿈을 포기하고 싶을 때 거울을 보면서 '힘내자!'라고 외쳤다는 말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성치가 성공한 후 '임전'이라는 중국 기자가 주성치에게 그의 사진을 내밀면서 기념으로 몇 줄 적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때 주성치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참을 생각하더니 초서체"为什么坚持,想一想当初。(為什麼堅持,想一想當初)" 라고 적었다고 한다. 뜻은 '왜 버티는가, 처음을 생각하자.'
파일:주성치의 글씨..png
▲ 기자에게 써줬던 "왜 버티는가, 처음을 생각하자."
파일:external/post.phinf.naver.net/15.jpg
▲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할 당시의 주성치
이렇게 주성치는 TVB에서 제작한 드라마의 보조출연자와 단역을 전전하는 동시에 1982년부터 1986년까지 430천사기(430穿梭機)라는 유명 어린이 교양 프로그램에서 출연하며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430천사기에서 맡은 역할은 아이들에게 짖궃은 장난을 치는 악동 캐릭터였는데 주성치는 어린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데다 이때도 스스로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내면서 어린이 프로그램 방향을 이상하게 꼬아놨다고 한다. 그래서 제작진과의 불화가 심했고 결국 1986년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된다. 주성치가 430천사기에서 하차하자 후임으로 유덕화가 해당 프로그램에 들어오게 된다.

1988년에는 중국 대륙 방송에 출연하여 보통화로 我是中国人(나는 중국인)이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그 후 1988년, 드디어 감독 겸 배우인 이수현의 눈에 띄어[19] 영화 <벽력선봉>의 조연으로 출연, 금마장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이수현을 은인이라 생각하며 소림축구로 상을 휩쓸었을 때까지도 이수현을 언급하며 감사하다고 했다.[20] 남우조연상을 받은 계기로 주성치는 드디어 TVB 드라마 타래자강호(他來自江湖)와 개세호협(蓋世豪俠)에서 주연을 맡게 된다. 이력지 감독, 오맹달과의 긴 인연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주성치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은 것은 1990년 < 도성>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부터였다. 도성은 주성치의 첫 코미디 영화로 당시 각본가로 일하고 있던 유진위가 감독을 맡고[21] 지존무상, 도협 등을 감독하며 홍콩 도박 영화의 원형을 제시한 왕정이 직접 제작을 맡아서 당시 유행하던 홍콩의 도박 영화들을 소소하게 패러디한 영화이다. 특히, '라면 먹여주기' 패러디, '등장 시 슬로우 모션' 패러디 등이 압권이다. 이 영화를 계기로 주성치는 8년 동안의 무명 시절을 극복하고 스타로 일어서게 된다.

도성의 성공 이후, 주성치는 <정고전가>, 도성타왕, 신 정무문, 도학위룡, 신격대도, 녹정기, <무장원 소걸아>, <심사관> 등의 모레이타우 (無厘頭, nonsense talk) 코미디 영화들[22]로 자신만의 맛을 확고히 하며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 당시 주성치의 인기는 정말 대단해서 그는 1991년 1992년 단 2년 동안 무려 12편의 영화에 출연하였고 주성치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가 나오기만 하면 역대 홍콩 박스오피스 기록이 갱신될 정도였다.

이렇게 주성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당연히 돈줄인 주성치에 대한 삼합회의 간섭과 협박은 심해져만 갔고, 결국 최정상의 인기를 날리던 중인 1993년, 주성치는 돌연 캐나다로 이민을 추진한다. 그러나 캐나다 정부에서 "당신이 탈세를 목적으로 캐나다에 오려고 한다는 첩보를 받았다. 혹시 삼합회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 아니냐"면서 주성치의 비자 발급을 거부하여 실패로 끝난다.(삼합회가 주성치를 묶어두기 위해 캐나다 이민국에게 주성치에 대한 거짓 정보를 퍼뜨렸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진다.) 그러자 주성치는 아예 자신이 직접 동료 사업가들과 함께 홍콩에 영화사 채성전영공사(彩星電影公司)를 차리게 된다.

당시 자신이 대중들에게 그저그런 코미디 스타로만 비춰지는 것과 삼합회의 간섭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주성치는 1993년 말, 영화사를 설립한 후 자신의 코미디 데뷔작인 <도성>을 감독한 유진위에게 연락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하였고 절친 왕가위 감독을 보고 자극을 받아 서유기를 소재로 한 대작 코미디 영화를 구상하고 있던 유진위 감독은 주성치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여 두 사람의 협업이 성사되었다. 때마침 주성치가 캐나다로의 이민을 추진하던 시기에 찍어뒀던 당백호점추향, 파괴지왕, 구품지마관 등의 영화들이 개봉하여 홍콩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석권할 정도로 인기를 끈 결과 채성전영공사는 6000만 홍콩 달러라는 거액의 제작비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1994년, 주성치는 서유쌍기의 프리 프로덕션에 참여하는 동시에 이력지(李力持) 감독과 공동으로 자신의 주연작인 < 007 북경특급 (國產凌凌漆: From Beijing With Love>을 감독하면서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007 북경특급은 1994년 9월 14일 홍콩에서 개봉하였고 준수한 흥행을 기록하였지만 주성치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기존의 코미디 영화들과 달리 강도를 제압하는 장면에서 범인의 얼굴에 칼이 꽃히고 등장인믈이 피범벅되는 장면이 나오는 등 잔인한 내용이 많이 담겨있었기에 대중들과 평론가들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1994년 7월 말, 도성에 이어 주성치와 유진위가 다시 협업한 작품이자 채성전영공사의 첫 작품인 서유쌍기가 1995년 춘절 개봉을 목표로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유진위 감독은 그의 절친인 왕가위 감독의 작업 스타일에 영감을 받아 일단 대략적인 시놉시스와 캐릭터만 미리 생각해두고 배우들을 섭외한 후 크랭크인에 들어갔고 영화 촬영장에서 배우들과 함께 대본을 수시로 수정해가면서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영화는 1994년 12월에 가까스로 모든 제작이 완료되었다.

당초 계획대로 1995년 춘절에 개봉한 서유쌍기는 영화 평론가들에게는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정작 영화 두 편이 연속적으로 개봉한다는 것을 낮설어한 홍콩 관객들 때문에 5400만 홍콩 달러라는 저조한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서유쌍기는 주성치가 코미디 배우로 데뷔한 이래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들 중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영화였다. 이 여파로 서유쌍기를 제작한 영화사이자 주성치가 처음으로 설립에 관여한 영화사 채성전영공사는 파산했다.

재정적 손실을 매꾸기 위해 주성치와 유진위 감독은 1995년, 다시 의기투합하여 저예산으로 호러 코미디 영화 회혼야(回魂夜)를 만들었고 주성치는 왕정이 제작한 영화 백변성군(百變星君)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한편으로 주성치는 여러번 같이 협업한 바 있었던 각본가 곡덕소와 공동으로 007 북경특급 2를 감독하며 본격적으로 영화 감독일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1996년, 주성치는 서유쌍기의 제작자 중 한 사람이었던 영화 제작자 양국휘(楊國輝)와 함께 새 영화사 성휘해외유한공사(星輝海外有限公司)를 설립하였고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식신, 희극지왕을 영화 감독 스승인 이력지와 함께 감독하면서 코미디 영화 감독으로서의 감을 갈고 닦았다. 한편,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제작비와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성치는 가유희사 1997, 산사초(算死草), 행운일조룡(行運一條龍), 천왕지왕 2000[23] 등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그 결과 주성치의 첫 단독 감독 영화인 2001년 소림축구 2005년 쿵푸허슬이 홍콩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 해외에 개봉한 역대 홍콩 영화의 흥행을 갈아치우며 주성치는 전 세계적인 스타 감독 및 코미디 배우로 떠오르게 된다. 한국에서는 소림축구가 2002년 5월 한국에 정식 개봉하면서 주성치가 방한하기도 하였다. 당시 주성치는 명보극장에서 열린 5개관에서의 동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각 관을 돌며 팬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축구공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24] 이런 대대적인 시사회는 최근 들어 자주 주최되는 할리우드 스타 등이 내한하여 코엑스 메가박스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레드카펫 행사를 펼쳐서 홍보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소림축구 쿵푸허슬의 성공으로 주성치는 할리우드에 진출할 기회를 얻었는데, 실제로 영화 그린호넷의 감독으로 발탁되기도 했었다. 또한 쿵푸허슬이 크게 성공을 거두자 할리우드에서는 주성치에게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2편을 찍을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전부 무산된다. 이와 관련해서 여러 루머들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신빙성 있는 추측은 몸값 높은 할리우드의 배우들과 스탭들이 주성치의 강압적이고 독단적인 영화 연출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성치가 영어를 너무 못해서 무산됐다고 하는 얘기도 있는데 이 영상(현재 삭제됨)을 보면 주성치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주성치는 중국에서 다른 영화를 찍는데 그게 바로 2008년 개봉한 장강7호다. 이 영화는 주성치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라는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주성치는 어릴적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지 못했었다. 그런 그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영화를 만들고 심지어 아버지 고향인 저장성 닝보에서 촬영을 한 것을 보면,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한 것으로 추측된다. 장강7호에서 가난한 아버지가 아들이 갖고 싶다 했던 장난감을 사주지 못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자신의 경험과 관련있다고 그가 인터뷰에서 여러번 언급했다. 주성치와 부모님이 장을 보다가 자기가 엄청 갖고 싶어하는 장난감이 있어서 사달라고 했더니 어머니는 안 된다고 했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그냥 하나 사줘' 라고 했다고 한다.

장강7호 이후, 주성치는 자신의 명작 중 하나였던 서유쌍기의 후속편 서유항마편의 제작에 돌입히면서 전업 감독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사실 서유쌍기는 개봉 당시 영화 두 편이 연속적으로 개봉한다는 것을 낮설어한 홍콩 관객들 때문에 주성치가 코미디 배우로서 데뷔한 이후 처음으로 저조한 흥행 성적을 낸 영화였다. 또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기에 서유쌍기를 제작한 영화사이자 주성치가 처음으로 설립에 관여한 영화사 채성전영공사는 파산하기까지 했다. 서유쌍기 개봉 당시, 주성치는 영화가 흥행할 것임을 확신했는데 흥행성적이 처참하자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1996년 베이징전영학원에서 연기 실습 용 교재로 채택된 후 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을 탄 것을 계기로 1998년 중국 대륙에서 공식적으로 개봉하게 되고, 동시에 비디오로 여러 나라에 전해지면서 명작으로 꼽히자 주성치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게 되어 기뻤다고 한다. 그리고 극장에서의 흥행성적이 좋지 않은 것에 대한 한으로 다시 서유기 시리즈를 촬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유항마편은 2013년 2월 2일 홍콩에서 개봉하였고[25], 역대 홍콩 박스오피스를 갈아치우며 흥행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중국 베이징시 제3 중급인민법원(지방법원)에 따르면 서유항마편 흥행수익 배분 과정에서 8,610만 위안(약 151억 원)이 아직 미지급됐다며 주성치가 주주로 있는 와이잉(崴盈)투자에서 영화 제작사인 화이브라더스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

2015년 서극과 손을 잡고 서유항마편의 속편 서유복요편을 제작 중이라는 기사가 떴다. 주성치는 자신의 신작인 미인어를 감독하느라 바빠서 서유복요편의 제작만 담당하고 감독은 서극이 맡는다고 발표했다. 2017년 설날 개봉 # 당심장 역은 문장에서 EXO 출신의 크리스 우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

2016년 2월 8일, 주성치의 신작 미인어가 개봉했다. 개봉 4일 만에 10억 위안을 돌파하였고 # 역대 홍콩 박스오피스를 갈아치우며 흥행에 성공하였다.

2019년 2월 5일, 주성치 감독의 신작이자 희극지왕의 여성 버전인 신희극지왕이 개봉했다. 미화 8백만 달러로 제작되어 주성치 영화 중 가장 저예산 영화로 손꼽혔고 흥행 수입은 미화 1억 달러를 넘겨 미인어보다 훨씬 저조하나 흥행에는 성공했다.( 영문 위키백과 신희극지왕 항목)

2020년에 주성치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었던 주택을 담보로 2000억에 이르는 거액의 대출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관련 기사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유행으로 인한 자금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주성치 감독이 자신의 신작이자 소림축구의 후속작 소림여족에 출연할 여배우를 뽑기 위해 글로벌 오디션을 개최한다는 기사가 떴다. # 주성치 감독은 오디션 개최 소식과 함께 ‘소림여족’의 각본 초고가 담긴 영상을 함께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정보에 의하면 해당 영화는 소림축구의 여성 버전으로 제작될 예정이며 2024년 크랭크인을 목표로 제작 준비 중이라고 한다.[26]

3. 패러디

이소룡의 열광적인 팬이기에, 홍콩 소룡회라는 이소룡 팬클럽의 명예 회장을 맡고 있다. 홍콩에서 '이소룡 기념관'을 건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존경하는 사람은 이소룡, 동경하고 있는 것은 성룡[27] 아무튼 이 때문에 이소룡을 기리는 패러디를 자주 한다. 첫 주연작인 '도성'에서 이미 이소룡을 연상케 하는 액션을 선보였고 이후 신정무문 시리즈. 천왕지왕에서도 뜬금없는 이소룡 패러디가 나오며, 쿵푸허슬도 이소룡의 오마쥬로 봐야한다. 소림축구, 쿵푸허슬에 출연한 진국곤도 이소룡과 닮은 외모에 꽂혀 배우로 데뷔시킨 바 있다. 심지어 이소룡 주연의 영화 맹룡과강도 '태극'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할 예정이었는데, 취소되었다.[28]

위에서 언급했듯이 주성치는 원래 이소룡을 동경하여 액션배우로 거듭나려고 매우 노력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선생님에게 자신의 강점은 무술이라고 언급했을 정도였다고. 주성치의 영화 쿵푸허슬에 나오는 꼬마가 책을 보면서 무술을 익히는 모습은 자신의 어릴적 모습이었다고 한다. 2012년 杨澜访谈录라는 인터뷰를 보면 그가 무술에 대해 얼마나 큰 열정을 가졌는지 알수 있다. 하지만 그는 무술에 큰 재능이 없었고, 무술보다는 코미디로 인정받았기에 언젠가는 꼭 무술 영화를 찍는 꿈을 가졌다. 오랜 기간 꿈꿔왔던 그의 소원이 이뤄진 영화가 바로 쿵푸허슬. 중국에서 쿵푸허슬 DVD를 구매하면 수록으로 딸려오는 주성치의 친필 편지가 있는데,[29][30] 그 내용이 "쿵푸에 대한 영화를 찍는 것은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많은 훌륭한 분들과 합작하여 영화를 찍고 제 꿈을 이룬 것은 저에게 큰 행운입니다. 이 영화가 많은 분들의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이 영화에 심혈을 기울인 많은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중국 쿵푸의 정신을 음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다. 주성치는 이 영화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기에, 더욱 완벽하기를 바랐고, 그와 관련해 여러 사람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대표적으로는 홍금보. 주성치는 쿵푸허슬을 제작했을 때 홍금보에게 무술 감독을 맡겼는데 홍금보와 주성치의 의견 차이로 홍금보가 얼마 안 가서 그만두고 인터뷰에서 "주성치는 전혀 무술에 재능이 없으며, 이소룡을 어설프게 따라하려하는 얼간이"라고 깠다.[31]

김용 소설도 워낙 좋아해서 김용 소설을 자주 패러디한다. 도협(1990)에서는 최면에 걸린 주성치가 소오강호 노래를 직접 부르는 패러디를 하였다. 식신은 일종의 '주성치 판 신조협려'다. 머리가 하얗게 샜다든가 요리를 하는데 뜬금없이 무공들을 사용한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본 독자라면 웃으며 까무러칠 정도. 녹정기는 영화 자체가 소설에 대한 패러디인데, 각색의 요소도 있겠지만 '쌍아'를 정말 쌍둥이로 설정한 점이라든가, 신룡교주와 교주 부인을 합쳐서 한 임청하 하나의 인물로 만들었다든가... 나중에는 아예 김용과 만나며 친분을 쌓았다.

녹정기는 촬영 시 주성치 스스로도 즐거워했다고 하며, 일설에 의하면 주성치의 지인들 사이에서 주성치의 최고의 작품을 녹정기를 뽑고 있는데, 그 이유는 위소보와 주성치 특유의 모레이토우 연기의 환상적인 궁합 때문이다. 심지어 왕정 감독은 원작자인 김용 노사가 위소보 역으로 주성치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직접 평가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김용의 녹정기 소설 팬들도 주성치의 위소보를 보면 다른 배우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잘 어울린다고 인정할 것이다. 주성치의 위소보 연기를 보고 있으면 말 그대로 소설 속 위소보가 튀어나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완벽하게 잘 어울린다. 다만 영화 녹정기는 각색이 많이 되어 있고, 좀 짧고 개그 위주로 진행되는 면 때문에 원작 팬들 맘에 들지 않을 순 있다.

미인어에는 TVB의 1983년 버전 사조영웅전의 주제곡이었던 '세간시종니호(世間始終你好)' 라는 곡을 주제곡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원래는 나문과 견니가 합창하였던 곡인데, 영화에 사용된 곡은 정소추와 막문위가 재녹음을 하였다. 참고로 1983년 버전 사조영웅전에는 주성치가 개방의 거지떼 중 한 명으로 단역 출연하기도 했었다.

쿵푸허슬과 소림축구를 포함해서 그가 감독한 영화엔 일본 만화의 오마쥬 연출도 많은 편이다. 주성치 본인이 일본 만화를 즐겨 본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일본의 영화감독들도 해내지 못한 일본 만화식 연출을 실사에도 무리 없게 재현해내며, 연출 능력 면에서도 재조명받게 된다. 파괴지왕이라는 영화는 허가를 얻은 건 당연히 아니지만[32], 좌우지간 내용,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며 상관관계, 결말 등 만화 캠퍼스 파이터와 모든 것이 똑같다.

주성치의 서유쌍기는 당시 홍콩 영화들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동사서독에서 인상 깊은 대사 몇 가지를 가지고 왔으며, 음악 자체를 가지고 온 경우도 있다. 유명한 노래 Only You를 삼장이 부르기도 한다.[33] 서유쌍기는 주성치를 코미디 스타로 만들어준 도성의 감독이자 왕가위 감독과 절친한 사이로 중경삼림, 동사서독의 제작에 참여한 유진위 감독의 역작이지만 주성치도 이 영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내용을 같이 구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성치만의 느낌이 진하게 묻어나온다.[34] 서유쌍기 제작 당시 유진위 감독은 일단 대략적인 시놉시스만 미리 생각해두고 배우들을 캐스팅한 후 크랭크인했으며 영화를 촬영하면서 주성치와 함께 서유쌍기의 각본을 완성해 나갔다고 한다.

할리우드 영화를 본 딴 것도 많은데, 홍콩 마스크 같은 경우엔 주성치가 치약, 변기(...)로 변신하기까지 한다. 역시 괴작 중 하나인 홍콩 레옹의 경우엔 레옹의 분장을 하고 귀신을 잡는다. 가장 괴작이라고 한다면 역시 홍콩 마스크와 홍콩 레옹. 그렇지만 매니아들은 이들을 최고로 치기도 한다. 정고전가 또는 홍콩 마스크에서는 가제트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의 작품을 패러디하는 경우도 많다. 신정무문 초반부는 대놓고 자신이 나온 도성을 패러디했다.[35] 도학위룡 3에서는 아예 도성, 도협의 악역들이 까메오로 출연해 배우개그를 친다. 주성치의 007 시리즈나 식신에서는 주성치 사단 등을 이용해서 이전 영화에 나왔던 장면을 패러디하는 경우가 있다. 쿵푸허슬 초반부에서는 '축구는 끝났다'는 말을 한다.(...)

4. 성격

예전부터 성격에 대한 부정적인 루머들이 많았던 배우이다. 일단 주성치가 톱스타다 보니 홍콩 언론의 먹잇감이 된 것도 있고, 인터넷이 없었던 90년대 시절 루머 퍼뜨리기로 소문난 홍콩 기레기들의 '찌라시 퍼뜨리기'로 나온 수많은 루머가 21세기 인터넷의 보급화에 따라 확산되어, 2020년대까지 인간성이 나쁜 것처럼 평가되고 있는 것. 21세기 이후로도 주성치의 침묵 성격으로 인해 루머들이 사실처럼 오인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화권 현지에서도 주성치의 인성이나 사생활에 대한 인식은 나쁘다. 2021년 드라마 아시세월니시성진에서 여주인공이 당백호점추향을 시청하며 "어렸을 때부터 주성치란 배우를 좋아했는데 작품 속에서는 정말 재밌는 배우지만 작품 밖에서의 사생활이 아쉽다."라는 평가를 할 정도.

그렇다면 주성치는 어떤 성격을 가졌는가? 영화에서 그는 말이 빠르고 적극적이며 활발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실제 성격은 영화 속 모습과 딱 정반대라고 한다. 주성치는 촬영 중간에 애드립도 많이 칠 것 같은 즉흥적이고 기분파적인 캐릭터로 보이지만, 사실 그는 촬영 전에 자신이 연기해야 할 역할과 장면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완벽하게 계산된 연기를 펼치는 배우라고 한다. 감독으로서도 배우들에게 애드립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정극 시스템을 지향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고.[36] 영화 속 그의 모습들을 보면, 연기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 할 정도로 캐릭터를 잘 살려내기 때문에 실제로 그가 이런 성격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이처럼 주성치는 영화상의 모습과 실생활에서의 모습이 180도 다른 배우로 유명하다. 실제로 인터뷰를 하던 중 기자가 주성치에게 "영화에서는 항상 웃고 있는데 사석에서는 왜 한 번도 웃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주성치의 답변은 "내 상처를 드러내며 남을 웃기는데 내가 어떻게 웃을 수 있겠습니까"였다.

주성치의 어머니 능보아는 주성치가 어려서부터 말수가 적고 자신을 잘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배우가 되고 나서도 이어졌는데, 다음은 <대화서유>의 감독 유진위의 인터뷰를 가져온 것이다.
他经常被人误会扮大牌耍酷,其实他是一个非常怕丑(害羞)的人。拍《大话西游》的时候,我见过他拿着扫把跟民工一起扫地。有次收工想跟我谈戏,还偷偷往我酒店房间门下塞纸条。其实星仔平时害怕接触陌生人,不够主动,所以容易被人误会。”
위 문장을 해석하자면, “사람들은 주성치를 쿨한 척한다고 오해하고 있는데 사실 그는 엄청 부끄러워하는 성격이다. <대화서유>를 찍을 때 나는 그가 빗자루를 들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청소하는 모습을 봤다. 언제 한 번, 그가 나에게 영화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 몰래 내 호텔방의 문 밑으로 쪽지를 건네는 식을 택했다. 사실 그는 평소에 낯선 사람과 만나기를 무서워하고, 적극적이지 않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빚는다. 당시 인터뷰 영상

참고로 그가 홍보차 내한했을 때, 개그 전문 배우로 편안하게 생각하고 주성치를 보러온 사람들이 날카로운 눈빛에 말도 없고 카리스마 쩔게 무서워서, 다들 당황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주성치가 코미디 영화로 승승장구하고 난 후, 영화 속의 그와 현실의 그를 동일인물로 착각해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들이 주성치를 방송에 섭외한 적이 종종 있었다. (대륙도 있고 홍콩에도 있었고 심지어 일본, 독일에서도.) 그러나 주성치는 이러한 방송에 출연했을 때 개그 따위는 치지 않고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말을 이어나갔다. 오히려 주성치가 너무 차분하고 조용하게 있어서 냉기가 흐를 정도였다.[37]

하지만 예전 정고전가 홍보로 내한했을 때는 전혀 이렇지 않았다.( 관련 영상(현재 삭제됨)은 쉽게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이런 날카로운 눈빛과 카리스마는 감독으로 데뷔한 1994~1995년부터 시작된다.[38]

이에 대해 영화 감독으로서 주성치의 말솜씨가 주성치 자신의 두뇌회전을 못 따라가서 본인의 생각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다보니 울화통이 터진 주성치가 촬영장에서 사람들에게 계속 화를 냈고 결국 배우들이나 스탭들이 주성치를 날카롭고 무서운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자신의 영화사업을 더 이상 홍콩에서 하지 않고 대륙으로 옮기게 되면서, 안 그래도 잘 못하는 보통화로 대륙 배우들에게 설명해야 하다보니 더더욱 그런 이미지가 박혔다는 것. 하지만, 서유항마편이나 미인어의 제작영상을 보면, 그저 엄격하고 완고한 태도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풀 때는 풀어주면서 촬영장 분위기를 다 같이 으쌰으쌰하는 훈훈한 분위기로 만드는 주성치 감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이처럼 인간관계를 크게 중시하지 않고 몹시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성치는 친구가 별로 없다. 몇 년 전 주성치는 자신의 생일에 혼자 호텔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고 한다. 주성치의 주변 인물들이 전부 떠나갔다는 소문 또한 그의 독단적인 성격과 관련이 깊다. 더군다나 주성치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것이나 자신에게 퍼져있는 루머에 대해 항상 침묵으로 일관한다. 주성치 성격상 언론에 자신의 인간관계를 내비치는 것을 싫어하기에 그렇다.

2014년에는 주성치가 중화권 영화인들 사이에서 왕따라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홍콩과 베이징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수많은 영화인들이 주성치에 대해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그와 친하지 않다.”거나 “그는 별로 좋은 친구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는 루머. 문제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는 동료들이 양조위, 유덕화 등 대부분이 홍콩 영화계의 거물급에 해당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주성치가 왕년에 양조위, 유덕화와 친구였음에도 현재 왕래를 하지 않는다는 근거와, 주성치의 침묵을 이유로 저런 루머를 사실로 믿고있다.

이후 등광영[39]과 함께 삼합회 출신의 영화 제작자로 유명한 향화강(向[40]華強; 1948~)[41]의 아내 진람이 주성치에 관한 소문에 대해 글을 올렸는데 그녀가 올린 글에 의하면 주성치가 최근 주변 이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주성치가 남편을 포함한 홍콩 영화계 인사들을 맹비난하고 인신공격 해왔던 것에 대한 집단 반발이라고 한다. 향화강은 홍콩 삼합회 조직 중 하나인 신의안(新義安) 창설자 향전(向前)의 아들로 배 다른 동생인 향화승(向華勝; 1950.~2014.11.20.)[42]과 함께 초기 주성치의 영화룰 제작했던 영화사 영성전영공사(Win's Movie 프로덕션)의 설립자이자 제작자였다. 주성치는 해당 영화사와의 계약 때문에 1991년과 1992년이라는 단 2년 동안 총 12편의 영화에 쉴 틈없이 출연해야만 했다. 이 향화강의 주장에 장가휘와 임달화가 '주성치와는 잘 아는 사이가 아니지만, 향화강 부인은 좋은 사람이니 그녀의 의견에 동의한다.' 라고 언급했다. 이에 막문위는 주성치는 남을 배려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반박하며 그를 영원히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유덕화도 SNS에서 소문이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하였다. #

하지만 이렇게 소문이 나도 주성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주성치는 이에 대해 공개적인 언론에서 직접적인 비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향화강 부인의 맹비난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극적인 그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려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그의 인생과 같은 ‘ 영화’다. 주성치의 많은 영화들을 보면 감독은 다 다르지만 모든 영화에서 주성치만의 느낌을 받는데, 그 이유는 주성치가 영화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는 배우 시절부터 자신이 찍는 모든 영화에 개입하여, 감독이 아님에도 어떻게 하면 더 웃긴 장면을 찍을 수 있을까 연구하고 실천에 옮겼다. 그래서 그의 은인이었던 배우이자 감독 이수현은 주성치가 영화 촬영 시에 감독의 고유 권한을 너무 침범한다고 생각해 주성치의 면전에다 대고 "개처럼 일하는 새끼"라고 욕했다. 결국 주성치는 90년대 중반부터 친구인 이력지 감독과 함께 공동으로 감독을 맡아서 영화를 직접 찍기 시작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성치는 엑스트라 배우 시절부터 더 좋고 더 재밌는 장면을 찍기 위해 영화 내용에 개입하여 수없이 다시 찍으려고 했는데 본격적으로 감독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특유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더욱 더 강해져서, 완벽한 장면으로 찍힐때까지 무한 반복해서 찍는다고 한다. 콤비인 오맹달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성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주성치가 영화를 감독할 때 집요하게 완벽을 요구하며 같은 장면을 여러번 반복해서 찍는 것에 대해 많은 배우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그를 확실히 코미디 영화의 거장으로 인정하고는 있다.

자신의 우상인 이소룡을 통해 주성치는 영화에 대한 야망을 품었고 영화에 모든 정신을 쏟아부었다. 그렇기에 그는 영화가 완벽해질 때까지 찍고 또 찍고, 연구하고 또 찍는 것이다. 한 기자가 주성치에게 주변 사람들이 당신이 감독으로서 너무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주성치는 "만약 감독이 찍었던 장면을 계속해서 찍고 또 찍는다면 나였어도 매우 짜증날 것"이라고 대답했다. 즉, 본인도 자신의 이런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영화의 완성도를 우선 순위에 두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주성치가 실제로 어떤 성격이고 어떻게 이기적인지는 영화와 관련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항상 사회의 최하층민들이었고 꿈을 가졌으며 노력하고 성공을 했다는 것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처럼, 그는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킨 진정한 동북아 루저들의 별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영화를 사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주성치는 항간에 떠도는 자신의 소문들에 대해 대응할 가치를 못 느껴 적극적으로 해명한 적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의 침묵이 곧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소문들을 훑어보면, 항상 다른 사람이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그가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다. 주성치 자신이 나서서 이야기하거나 해명하거나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욕을 먹어도, 근거없는 소문들이 퍼져도 가만히 있는다.

그런 그가 딱 한 번 명예훼손으로 소송까지 건 루머가 있는데, 홍콩 언론《壹周刊》이 보도한 '주성치가 쿵푸허슬 촬영 후 상해에 가서 성매매를 했다'는 기사다. 주성치는 언론에게 사과를 요청했고 법원은 당연히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관련해 재밌는 사건이 있는데, 이를 통해서도 주성치가 이 부분으로 얼마나 민감하지 알 수 있다. 장국영 주연의 19금 영화 색정남녀는 원래 감독 이동승이 주인공으로 주성치를 생각하고 각본을 짰었다. 그런데 주성치 본인은 19금 베드신을 찍는 것이 무서워서 거절하고 말았다. 감독은 부득이하게 새로운 사람을 찾았고 결국 장국영이 주인공을 맡았다. 하지만 애초에 주성치를 생각하고 쓴 각본이었기에 영화의 주인공의 이름은 아싱(阿星) 그대로다.

5. 일상생활에서의 모습

홍콩 기자들과 파파라치들이 가장 찍기 힘든 연예인으로 꼽을 때 주성치는 항상 언급된다. 예전에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해서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까지 자전거를 탔는데, 온갖 파파라치들이 몰려들어서 그만두었다. 당구도 좋아하고 수영도 좋아한다고 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일할 때나 정말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아니면 집 밖으로는 코빼기도 내밀지 않을 정도로 두문불출 중이다.

옷차림이 항상 트레이닝복 세트 혹은 편한 평상복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장 좋아하는 옷은 흰 티셔츠로, 트레이닝복 안에 항상 흰 티셔츠를 입는다. 그리고 신발도 항상 운동화를 신는다. 심지어 정장에도! 주변 사람들은 다 파티복인데 주성치 혼자 트레이닝복에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 찍힌 적도 있었고 기자들에 의해 홍콩애서 주성치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택시를 타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가난한 생활을 했기에 절약하는 습관이 배어 있어서라고.

이렇게 보면 마냥 자린고비 같은 짠돌이 스타일 같지만, 주변인들의 증언을 들어 보면 주성치가 돈에 인색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일 뿐 촬영장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 촬영진들에게 매번 비싼 밥을 대접하는 등 타인에게는 퍼다 주는 타입인 듯.

본인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체질인지는 몰라도, 공/사석에서 찍힌 사진들을 보면 20대 후반부터 일찍이 새치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과거에는 염색을 했는지 어쨌는지 최소한 영화에서는 새치가 안 보이게 커버를 했었는데, 쿵푸허슬 촬영이 끝난 다음부터 머리를 장발로 기름과 동시에 새치도 그냥 내버려 둔다. 본인은 자신의 흰머리가 마음에 드는지, 2013년 1월 15일 마윈과 함께 가졌던 토론 자리에서 자신의 사진을 한 번 보더니 자신의 머리카락은 흰색인데 왜 검은색으로 염색해 놨냐고 물었다.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마음에 들어하는 듯.

피부가 굉장히 좋은 편이어서, 그와 촬영을 했던 사람들 모두 인터뷰에서 그의 피부에 대해 한 번씩은 꼭 언급한다. 나무위키 프로필 사진에도 보이듯 제법 나이 든 현재까지도 엄청 매끈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최근 함께 했던 크리스 우 임윤, 나지상 또한 그의 피부를 언급하며 칭찬한 바 있다.

2022년 10월, SNS를 개설했다. 60대에 접어드는 나이임에도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140만을 넘길 정도로 인플루언서다. # 사족으로, 2008년 유명한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진관희, 장백지 둘 다 주성치를 팔로우하고 있다.(...) 사실 장백지야 데뷔 초부터 주성치랑 함께 하며 연이 깊은 편이긴 하다.

6. 출연/감독한 영화, TV 시리즈

주성치 감독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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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ng of Comedy Logo 2.png 파일:Shaolin Soccer Logo.png 파일:Kung Fu Hustle Logo.png
파일:CJ7 Logo 2.png 파일:Journey to the West Conquering the Demons Logo.png 파일:The Mermaid Logo.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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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링크 열기
  • 포풍한자 (捕風漢子, He Who Chases After The Wind, 1988)
  • 벽력선봉 (霹靂先鋒, Final Justice, 1988)
  • 소자병법 (最佳女婿, Faithfully Yours, 1988)
  • 경찰본색 (刑警本色, The Last Conflict, 1988) - TV 영화. 견자단과 함께 출연했다.
  • 용재천애 (龍在天涯, Dragon Fight, 1989) - 이연걸과 함께 출연한 유일한 영화
  • 흑전사 (義膽羣英, Just Heroes, 1989) - (단역[43])
  • 자웅쌍혈 (流氓差婆, Thunder Cops II, 1989)
  • 개세호협(蓋世豪俠, The Final Combat, 1989) - 주성치가 주연을 맡은 최초의 작품이자 오맹달과의 첫 협업작. TV 드라마로 여주인공은 나혜연이 맡았다.
  • 타래자강호(他來自江湖, The Justice of Life, 1989) - TV 드라마
  • 망부성룡 (望夫成龍, Love Is Love, 1990)
  • 지존소자 (一本漫畫天涯, My Hero, 1990)
  • 쌍용쟁패 - 용봉가족 (龍鳳家族, 龍鳳茶樓: Lung Fung Restaurant, 1990) - 막소총, 오맹달[44], 진아륜, 진가령 등과 함께 출연한 영화.[45][46]
  • 풍우동로 (風雨同路, The Unmatchable Match, 1990)[47]
  • 성전강호 (咖喱辣椒, Curry And Pepper, 1990)
  • 경시종횡 (小偸阿星, Sleazy Dizzy, 1990)
  • 귀경출사 (師兄撞鬼, Look Out, Officer!, 1990)
  • 도성 (賭聖, All For The Winner, 1990) - 주성치가 최초로 주연을 맡은 영화이자 첫 코미디 영화. 주성치의 출세작으로 주성치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품.
  • 무적행운성 (無敵幸運星, When Fortune Smiles, 1990) - 진우가 감독 겸 주연을 맡아 주성치와 호흡을 맞춘 영화.
  • 강호 최후의 보스 (江湖最後一個大路, Triad Story, 1990) - 사실상 주성치의 마지막 범죄액션 영화.[48]
  • 도협 (至尊無上 III - 睹俠: God Of Gamblers II, 1990)
  • 정고전가 (整蠱專家, Tricky Brains, 1991)[49]
  • 도성타왕 (龍的傳人, Legend Of The Dragon, 1991)[50]
  • 도패 (賭覇, Top Bet, 1991)[51]
  • 신 정무문 (新精武門 一九九一, Fist Of Fury 1991, 1991)[52]
  • 도학위룡 (逃學威龍, Fight Back To School, 1991)[53]
  • 도협 2 : 상해탄도성 (賭俠 II 之上海灘賭聖, God Of Gamblers III: Back To Shanghai, 1991)
  • 신격대도 (神擊大道, The Magnificent Scoundrels, 1991)[54]
  • 호문야연 (毫門夜宴, The Banquet, 1991)
  • 신정무문 2 - 뇌전영웅 (漫畫威龍, Fist Of Fury 1991 II, 1992)[55]
  • 가유희사 (家有喜事, All's Well, Ends Well, 1992)[56]
  • 도학위룡 2 - 첩혈위룡 (逃學威龍 2, Fight Back To School II, 1992)[57]
  • 심사관 (審死官, Justice, My Foot, 1992) - 송세걸 역
  • 녹정기 (鹿鼎記, Royal Tramp, 1992) - 위소보
  • 녹정기 2 - 신룡교 (鹿鼎記 II, 神龍敎, Royal Tramp II, 1992) - 위소보
  • 무장원 소걸아 (武壯元 蘇乞兒, King Of Beggars, 1992)
  • 군성회 (君星會, The Thief Of Time, 1992)[58]
  • 도학위룡 3 - 용과계년 (逃學威龍 三之 龍過鷄年, Fight Back To School III, 1993)[59]
  • 당백호점추향 (唐伯虎點秋香, Flirting Scholar, 1993)[60]
  • 심사관 2 - 제공 (審死官續集 - 濟公: Mad Monk, 1993) - 청룡 역
  • 파괴지왕 (破壞之王, Love On Delivery, 1994)[61]
  • 구품지마관 (九品芝麻官 白面包靑天: Hail The Judge, 1994)[62]
  • 007 북경특급 (國產凌凌漆, From Beijing With Love, 1994) - 이력지와 공동 연출. 주성치의 감독 데뷔작.
  • 서유기-월광보합 (西遊記 第壹伯零壹回 之 月光寶盒, A Chinese Odyssey Part One - Pandora's Box, 1995)
  • 홍콩 레옹 (回魂夜, Out Of The Dark, 1995)
  • 홍콩 마스크 (百變星君, Sixty Million Dollar Man, 1995)
  • 007 북경특급 2 (大內密探 零零發, Forbidden City Cop, 1996)[64] - 곡덕소와 공동 연출. 앞의 북경특급과는 내용상 아무 관련없다.
  • 식신 (食神, God Of Cookery, 1996) - 이력지와 공동 연출.
  • 가유희사 1997 (97 家有喜事, All's Well, End's Well '97, 1997)[65]
  • 산사초 (算死草, Lawyer Lawyer, 1997)[66]
  • 럭키가이 (幸運一條龍, The Lucky Guy, 1998)[67]
  • 희극지왕 (喜劇之王, King Of Comedy, 1999)[68] - 이력지와 공동 연출.
  • 빅 타임 (琉璃樽: Gorgeous, 1999)[69]
  • 천왕지왕 2000 (千王之王 2000, The Tricky Master, 1999)[70]
  • 반칙왕 (The Foul King, 2000)[71]
  • 소림축구 (少林足球, Shaolin Soccer, 2001) - 최초의 단독 연출작 (이후 개봉한 모든 영화는 주성치 단독 감독작이다.)
  • 쿵푸허슬 (功夫, Kung Fu Hustle, 2005) - 아성
  • 장강7호 (長江7號, CJ7, 2008) - 배우로서 마지막으로 출연한 영화. 이후 주성치는 감독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 서유항마편 (西遊降魔篇, Journey to the West: Conquering the Demons, 2013)
  • 미인어 (美人鱼, The Mermaid, 2016)
  • 신희극지왕 (新喜劇之王, The New King of Comedy, 2019)[72]

21세기 이후 한국에서 인지도가 있는 작품은 소림축구 쿵푸허슬이지만[73], 일반적으로 대중들이나 팬들 양쪽 모두에게 가장 좋은평을 받고 인기 있는 주성치 영화는 주성치식 모레이타우 (無厘頭, nonsense talk) 개그에 웃다가 울게 만드는 희비극적인 요소가 어우러진 유진위 감독의 ' 서유기-선리기연'이다. 다만, 이전부터 주성치 개그를 좋아하는 골수팬들에게는 주성치 특유의 B급 병맛 테이스트가 약하다는 평도 받는다.

김용 작가 소설을 함께 보는 이들에게는 녹정기 시리즈도 재밌게 볼 수 있다. 케이블에서 가끔 방영해주기도 하는 무장원 소걸아도 흔치 않은 거지 주인공이 개방 무공을 쓰는 영화라 볼만하다. 개그로만 치면 당백호점추향도 손꼽을 정도로 웃기다.[74] 구품지마관에서 수다 겨루기 특훈하는 만화 같은 장면도 웃기기로 유명하다. 여성들은 은근히 007 북경특급 2를 좋아한다. 거의 유일하게 주성치가 애처가로 나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주성치가 다루는 작품의 주요 스토리는 주로 둘 중 하나다. 밑바닥 서민으로 시작해 온갖 개고생 후에 인생 꽃 피거나, 성질 더러운 상류층(혹은 악당)이 몰락하고 나서 개과천선하는 스토리가 그것이다. 특히, 찌질이같은 주인공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성장한다는 플롯이 자주 나온다. 부모가 어릴 때 이혼한 본인의 성장기를 참고했는지 주인공이 한부모가정인 배경도 자주 나온다. 초반 주성치 영화들은 주성치가 가진 게 없는데 열심히 노력하여, 예쁜 여성들과 잘 되는 스토리가 많고[75], 중반 주성치 영화들은 여주인공들이 주성치를 사랑하여 그를 개과천선시키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76] 후반부로 가면 여주인공들이 주성치를 사랑하거나 둘이 같이 사랑하거나 한다.[77]

한국에서는 과거엔 성우 김환진이 모두(KBS, SBS) 전담했었으나, KBS에서는 정고전가부터 성우 김승준이 그의 전담 성우를 맡고 있다. 소림축구 방영 당시 이를 모르던 일부 팬들 사이에서 김환진이 하는 게 당연한데, 주성치 목소리가 갑자기 바뀌어서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주성치의 실제 목소리엔 김승준이 가깝지 않느냐란 평이 많아 이러한 반응도 수그러든 편. 참고로 MBC 서유쌍기에서는 당연하게도(...) 안지환이 맡았다.

7. 수상 내역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88년 제25회 금마장 남우조연상 벽력선봉
1992년 제37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남우주연상 심사관
1996년 제1회 홍콩금자형장 남우주연상 서유기 2 - 선리기연
2002년 제21회 홍콩금상장영화제 작품상 소림축구
감독상
남우주연상
제7회 홍콩금자형장 작품상
감독상
2005년 제42회 금마장 작품상 쿵푸허슬
감독상
제24회 홍콩금상장영화제 작품상
제10회 홍콩금자형장 작품상
2017년 제35회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 은까마귀상 미인어
주성치는 막강한 티켓 파워를 가진 스타 배우임에도 그의 영화들이 코미디라는 이유로 으레 홍콩금상장을 받지 못했다. 주성치는 정말 금상장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렇게 영화를 많이 찍고 흥행을 해도 후보에만 오르고 도통 상이 주어지지 않았다. 제 10회 금상장 시상식부터 주성치의 남우주연상 도전기가 시작되었는데, 제 10회 금상장 남우주연상은 아비정전 장국영이 받았고[78] 1992년 제11회 금상장 남우주연상은 '쌍성고사'의 증지위가 받았으며,[79] 1993년 제12회 금상장 남우주연상은 '92흑장미 대 흑장미'의 양가휘가 차지했다.[80][81] 제14회 금상장 남우주연상은 중경삼림 양조위가, 제15회 금상장 남우주연상은 '여인사십'의 교굉이 받았다.[82] 그렇게 남우주연상 부분과는 인연이 없는 듯 싶더니 2002년 21회 금상장에서 '소림축구'로 생애 첫 남우주연상을 받았다.[83]

8. 연애사

아직 미혼으로, 주성치 본인은 열애설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어서 정확한 사실 관계는 본인 외엔 장담할 수 없지만, 일단 바이두에서는 그와 사귀었던 사람으로 4명을 꼽는다. 언론에 잘 나서지 않는 주성치가 직접 부정했던 연애설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야 한다.

한편, 주성치의 팬들은 주성치가 누구를 가장 사랑했는지도 궁금해한다. 보통은 첫 연인인 나혜연이나 이후의 주인을 꼽는 편인데, 주성치가 2012년[84] 인터뷰에서 “저는 제가 운이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바쁘게 살지 않았을거예요.“ 라고 한 말이 바쁘다고 밀쳐냈던 나혜연을 향한 것인지, 주인을 향한 것인지에 대해 중국 팬들조차 의견이 5:5로 엇비슷하게 갈리고 있다. 확실한건 대상이 누구든 주성치는 사랑을 놓친 것에 대해 후회를 하고 있다는 것.

8.1. 나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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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성치와 나혜연이 같이 찍은 사진
주성치의 첫번째 연인은 그가 명성을 얻기 전인 1988년부터 사귀기 시작해서 한창 인기를 얻고 있을 즈음인 1992년에 헤어진 나혜연(罗慧娟)이다. 주성치가 공개적으로 밝힌 첫 연인이자, 결혼 얘기도 확실히 오고 갔던 연인이었다. 당시 유진위 감독과 <도성>을 찍었던 주성치는 유진위 감독에게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쉽게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그녀와 결혼할 예정이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유진위 감독 인터뷰 영상(현재 삭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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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성치의 1989년 k100인터뷰 장면
1989년, 주성치는 K100 인터뷰에서 나혜연과 같이 연기하다가 바나나를 밟고 넘어졌는데, 나혜연이 넘어질 때 두 팔 두 다리가 하늘로 향해서 엄청 웃겼다고 즐거워하면서 말한다. 주성치 인터뷰 중 흔치 않게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후 그의 영화에서는 바나나를 밟고 넘어지는 장면이 수시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헤어졌다. 왜 헤어지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소문들이 많다. 나혜연은 주성치와의 관계에 대해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다가 루머가 너무 많아지자 한 인터뷰를 통해 "주성치에게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했더니 주성치가 "미쳤니?"라고 대답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내가 주성치와 사귀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며 주성치에게 크게 상처를 입었음을 밝히며 주성치를 비난했다. 당시 주성치가 드디어 명성을 얻기 시작하고 배우로서 커리어 하이를 찍을 때라 너무 바빠서 결혼이 우선순위에 밀려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면박을 준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단히 실망한 나혜연은 곧 주성치에게 이별을 선언했다고 한다. 이 인터뷰를 제외하고 나혜연은 사망했을 때 까지 주성치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결별 이후 주성치의 영화 속에서 나혜연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억지라고 주장하기에는 너무도 잘 들어맞기에 많은 팬들은 주성치가 오랜기간 나혜연을 잊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먼저 서유쌍기의 유명한 대사인 “나는 진정한 사랑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그것을 잃고 난 다음에 비로소 후회를 했소, 인간사의 가장 큰 고통은 후회요, 하늘이 내게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겠소. 사랑에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는 중경삼림의 대사[85]를 바탕으로 주성치 본인이 직접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보면서 생각해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 감정이 들어있다고 언급했다. 그 당시 그는 주인과 막 헤어진 상태였으니 이 대사는 헤어진 지 얼마 안된 주인을 붙잡기 위해 생각해낸 말이거나, 과거 첫 연인이었던 나혜연을 잊지 못해 그 때 헤어진 것을 후회해 생각해낸 대사일 것이다.

<희극지왕>에서는 사우(주성치)가 두연아(막문위)에게 애절한 대사를 하는데, “연아”이름을 계속 부르면서 '괜찮아질거야, 나는 그 동안 너무 많은 고난을 겪었는데 너까지 잃으면 나는 견디지 못할거야.'라고 한다. 이때 부르던 이름의 “연’자가 나혜연의 ‘娟’이며 나혜연의 애칭이였다.

1999년, 나혜연은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청력을 잃었다. 그리고 2005년 쿵푸허슬의 여주인공은 농아로 나왔다. 영화 소림축구에서 주성치의 번호는 10번, 나혜연의 생일은 10월 10일이다.

나혜연은 청각장애인이 된 후 삶을 비관하여 몸을 돌보지 않다가 췌장암에 걸려 2012년 6월 30일, 46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했는데 그녀가 사망하기 직전인 2012년, 주성치가 몰래 나혜연이 입원해있는 병원에 가서 병문안을 하고 왔다고 한다.

2013년에 개봉한 서유항마편에서 단소저는 현장에게 당신과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현장이 했던 말이 “미쳤니?”. 마지막에 현장은 결국 자신이 단소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후회를 한다. 그 때 피 흘리며 죽어가던 단소저를 보면서 현장이 말한 대사는 위에서 나온 서유기의 유명한 대사와 일치한다.

서유쌍기 OST인 일생소애가 서유항마편에서도 사용되었는데 가사가 바뀌었다. 특히, “从前直到现在 爱还在”라는 구절이 있는데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랑은 아직 존재한다’라는 뜻이다. 이는 나혜연을 잊지 못한 주성치의 마음이라는 설이 있다.

주성치가 감독을 했던 영화 미인어의 촬영지는 나혜연이 생전 스쿠버다이빙을 즐겨하던 장소라고 한다.

나혜연과의 결별 후 주성치의 성격이 시크하게 변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상기된 것처럼 나혜연과 사귀고 있을 당시 인터뷰들을 보면 주성치는 이후보다 더 잘 웃고 표정도 다채로운 편이었다.

2023년 주성치는 본인 인스타그램에서 나혜연이 아직도 그립냐는 팬의 질문에 "네" 라고 짧게 답한바 있다.

8.2. 주인

두번째 연인은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사귀었던 주인이다. 주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주성치는 공개적으로 밝힌 바가 없다. 주인과 처음으로 공동 출연한 <도학위룡 2>가 개봉한 후 인터뷰에서 "<도학위룡 2>에 대해 기억나는건 주인 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한 신문기자가 주성치에게 왜 주인과 헤어졌는지 물었을 때는 “시작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끝맺음이 있죠?’라고 대답하며 주인과의 관계를 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인이 인터뷰에서 주성치와 사귀었던 당시를 회상하며 주성치와 연인 사이였음을 강하게 어필했고 주성치가 주인과 헤어지고 찍은 영화들 속에서 주인과 관련된 장면이 간간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사귄 것은 맞다고 보는 추세이다.[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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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인터뷰 기사
주성치와 주인이 공동 주연한 서유기-선리기연은 1995년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실패했다가[87] 1996년 베이징전영학원에서 연기 실습 용 교재로 채택된 후 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을 탄 것을 계기로 1998년에 대륙에서 다시 개봉하며 비로소 명작으로 꼽히게 되었는데 영화가 명작으로 꼽히면서 주인공 지존보, 자하선자, 백정정을 맡은 배우들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자하선자를 맡은 주인이 폭탄 발언을 한다. 내용인 즉, 주인과 주성치는 서유기-선리기연을 찍으면서 사귀었는데, 어느 날 주인이 주성치를 보러 그의 호텔방으로 찾아갔더니 도통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방문이 열리고 주인은 다른 여자가 주성치가 묶고 있는 방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주인은 주성치가 다른 여자와 바람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그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껴 3년 동안 슬프고 괴로워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주인의 진술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그도 그럴것이 서유기-선리기연이 큰 인기를 끈 이유는 바로 애절한 사랑이 영화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주인은 인터뷰에서 '제 3자'가 누군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홍콩 언론은 주성치의 세번째 여인인 막문위가 그 '제 3자'라고 생각하며 기사를 퍼뜨린다. 이에 대해 막문위는 강하게 부정했고 주성치는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침묵했다. 관련 영상과 인터뷰 내용.

그럼에도 파문이 계속 커져만 가자 결국 주성치는 주인에 대해 한마디를 남기게 되는데[88] 바로 "그녀는 나보다 덜 멍청해요."라는 말이었다. 의도를 짐작할 수가 없는 말인데, 중국팬들은 주성치는 주인과 단순한 사랑을 하길 원했지만 실제 두 사람의 연애는 너무 복잡다단했기에 이런 말을 하게 된거라고 추측한다.

이후 주인은 인터뷰에서 주성치가 자신의 결혼에 대해 아무런 축하도 해주지 않아서 서운하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90년대 찌라시가 퍼지고 21세기 인터넷 보급화에 따라 위 사건은 한국에서 엄청나게 부풀려졌었다. 그 소문을 나열하자면, 주성치가 주인과 캐나다로 가서 결혼하려고 했는데 서유쌍기 촬영 중 주성치가 주인을 배신하고 막문위와 사귀었고 지신이 없을 때 주인이 막문위를 괴롭혔다는 말을 들은 주성치가 주인에게 촬영장에서 대놓고 면박을 줬으며 이에 주인이 굉장히 화가 나서 촬영 중간에 촬영을 그만뒀다. 이로 인해 스태프들이 주성치와 막문위를 손가락질하자 주성치와 막문위가 야반도주를 했고 감독인 유진위는 전재산을 쏟아부은 영화가 엎어지면 안 된다고 주성치에게 사정시정해서 주성치가 사비로 영화를 찍기로 결정하고 처음찍은 주인과의 선리기연 영화를 끝맺기 위해 막문위 주연으로 주성치가 다시 찍은게 월광보합이라는 등 정말 엄청나게 부풀려진 찌라시들이 퍼졌다.

루머를 해명하자면 먼저 주인과 막문위는 처음부터 유진위 감독이 직접 섭외해 배역을 주었다. 즉, 월광보합에는 막문위가, 선리기연에는 주인이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구상은 처음부터 유진위 감독이 의도한 구상이라는 것. 무엇보다 주인은 영화 촬영 중간에 촬영을 그만두고 뛰쳐나오지 않았다. 주인이 화나서 촬영을 그만둔 바람에 주성치가 막문위를 데리고 월광보합 내용을 찍어 덧붙인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유진위 감독은 서유쌍기 제작 당시 그의 절친인 왕가위 감독의 작업 스타일에 영감을 받아 일단 대략적인 시놉시스와 캐릭터만 미리 생각해두고 배우들을 섭외한 후 크랭크인에 들어갔고 영화 촬영장에서 배우들과 함께 대본을 수시로 수정해가면서 영화를 찍었다고 밝혔으니 세 사람의 관계가 영화에 영향을 끼쳤을 순 있다.

유진위 감독이 서유쌍기에 투자한 제작비가 6000만 홍콩달러인데, 촬영이 중단돼 주성치가 사비로 서유쌍기를 찍었다는 루머는 서유쌍기가 주성치가 처음으로 설립에 참여한 영화사 채성전영공사(彩星電影公司)의 첫 작품이었고 영화의 흥행 실패로 영화사가 문을 닫았다는 사실이 와전된 듯 하다. [89] 관련 내용은 중국 바이두나 중국어 위키백과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바이두 링크 중국어 위키백과 참조

8.3. 막문위

세번째 연인은 정말 깔끔하고 쿨하게 헤어진,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사귀었던 막문위다. 사실 막문위과의 열애설도 언론에 정확히 인정한 바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정보라고 모두 생각하고 있다.

주성치와 막문위는 결별하고도 계속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막문위는 주성치 영화에 꽤 많이 출연했는데 <홍콩 레옹>의 짭 마틸다 역[90]을 시작으로 <식신>의 히로인인 화계 역, <희극지왕>에서 스타 여배우 두연아 역을 맡았다. <소림축구>에서는 여자 축구팀 일원으로 카메오 출연하기도 했으며 <미인어>의 OST도 불렀다. 재녹음 주성치와 막문위가 노래를 부르면서 엄청 즐거워한다.

사실상 현재까지 주성치가 사귀었던 연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논란이 없고 관계도 좋은 편이다.[91]

8.4. 우문봉

네번째 연인은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사귄 우문봉이다. 그녀는 홍콩 건설협회 회장이자 홍콩의 부동산 재벌로 유명한 우징보 회장의 딸로 1997년부터 주성치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주성치의 재테크를 도와주었고 2002년부터는 주성치가 주주로 있는 투자회사인 와이잉(崴盈)의 재정자문과 투자지문을 맡았다.

그러다 우문봉은 2010년 3월, 13년의 열애 끝에 주성치와 결별하였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같은 해 5월, 주성치가 그 동안 자신을 통해서 부동산 재벌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그에게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며 주성치에게 8000만 홍콩달러(약 116억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이 시작된지 10년만인 2020년 12월 23일, 홍콩 고등법원은 최종적으로 주성치의 손을 들어주며 우문봉의 수수료 지급 소송을 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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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여담

  • 배우 전성기 시절엔 후술되어있듯 흔히 "주성치 사단"이라고 불리는 자주 나오는 조연 배우 라인업이 있었다.
  • 90년대 초부터 홍콩의 독보적인 인기 배우 중 한 명이었음에도[92] 정작 당시 홍콩 영화 붐이 일던 한국에서는 90년대 초반 도성, 도학위룡 등이 반짝 흥행한 것 외엔 대중적 인기가 적은 편이었다. 게다가 중반 이후 홍콩 영화가 침체기에 이르자 대부분의 영화들이 극장 흥행에서 밀리면서 비디오용으로 돌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전화위복이 되어 그를 추종하는 컬트 집단(...)이 음지에서 드문드문 생기기 시작한다. 우연히 한 번 봤다 어이없는 전개에 황당해하다가도, 어느 새 거기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종국엔 주성치빠가 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93] PC통신이 유행하던 시절, 주변 오프라인에서 비슷한 사람을 찾지 못해 온라인을 뒤지던 이런 사람들이 '주성치 전영공작실: 성치넷'으로 옹기종기 모였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도 그를 지지하는 매니아 층이 활동하게 되고, 이들을 비롯한 주성치 지지자들에 의해 점차 인터넷을 통해 그의 인기가 전파되게 된다.[94][95]
  • 워낙 코미디 배우 느낌이 강하다 보니 어느 정도 묻혀지긴 했지만, 젊었을 때는 미남 배우였다. 그러나 60대 접어들면서 세월의 흐름인지 주름도 생기고 흰 머리가 되어서 꽤나 늙었다.[96] 이는 상술한대로 본인이 딱히 동안 외모를 유지하기를 원하지 않아서, 혹은 본인 얼굴을 구태여 가꾸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배우로서는 사실상 이미 은퇴한 상태여서 더 이상 얼굴을 가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런 걸로 보인다. 물론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중이라 미노년이라고 좋아하는 팬들도 있다.
  • 1990년대 동성서취에 출연한 왕조현 양조위가 코미디 연기를 어려워하자 영화의 감독인 유진위를 응원하러 촬영장에 방문한 주성치가 두 배우에게 코미디 연기를 가르친 일화가 있다. 영화에서 저 두 배우의 연기에 주성치 스타일의 연기가 보이는 이유가 있다.
  • 주성치의 영화는 보는 맛을 극대화시킨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면 소림축구에서는 거의 장풍을 연상케 하는 슈팅이라든가[97] 쿵푸허슬은 한 술 더 떠서 고금파동권[98]이나 두꺼비 권법 등 권법이 묘기 수준이 되어 연출된다. 당백호점추향에서도 당인(주성치)이 그림을 그려주는 장면은 이건 완전히 서커스 그 자체다. 작품의 완성도도 뛰어난 편이지만 주성치는 영화의 시각적인 부분에서 완성도가 매우 높다. 그리고 이 중 쿵푸허슬은 그야말로 보는 맛이 정점에 달한 영화이다.
  • 그의 작품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의 또 다른 특징이 일단 나오면 십중팔구는 망가진다는 것.(...) 사실 남녀불문 다 망가진다 식신의 막문위나 소림축구의 조미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예외도 있어서, 도성, 도학위룡, 무장원 소걸아의 장민은 망가짐이 없는 편이다. 도성에서 장민은 총도 쏘고 무술을 하는 등 멋있게 나온다. 물론 주성치는 어김없이 망가진다.
  • 흔히 쉽게 접할 수 있는 표준 중국어판은 주성치 전문성우인 대만인 성우 석반유가 더빙을 했다고 한다. 왠지 모르게 북경어판이 너무 오버스럽게 들리는 것은 그 때문. 그러나 오히려 그렇게 오버하는 더빙이 주성치 영화의 코믹한 분위기에 더 잘 맞아서, 고전 팬들 중 일부는 (특히 비디오로 주성치의 영화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석반유의 목소리를 더 좋아하기도 한다. 참고로 석반유와 주성치는 초기에는 서로 얼굴도 몰랐다가, 90년대 중반 우룽차 CF를 찍을 때 만나서 그 후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김환진, 안지환이 주로 더빙을 맡았다가 이후엔 김승준이 연기하는 경우가 늘었다. 다시 보니 선녀 같다 짤방으로 유명한 영화 당백호점추향에서는 김환진이 더빙했다.
    일본어 더빙은 고정 성우가 정해진 것은 아니고 호리우치 켄유, 타카기 와타루, 히라타 히로아키, 오노사카 마사야 등 여러 성우가 더빙을 했었는데, 2000년대 이후 작품은 거의 야마데라 코이치[99]가 주성치의 전담 성우로 자리잡았다. 야마데라는 주성치가 일본에 방문했을 때 직접 대면한 적도 있다.
    광동어는 웬만하면 주성치 본인이 더빙하는데, 이수현 주연의 <흑전사> 등 일부 영화에서는 전문 성우가 더빙 하였다.
파일:쿵푸허슬 사인.jpg }}} ||
▲ 영화 쿵푸허슬 개봉 당시의 사인
  • 홍콩에서는 워낙 사인회를 많이 열고 사인을 뿌려대서 사인의 희소가치가 없는 연예인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두시탈출 컬투쇼 2010년 2월 22일 방송에서 정찬우, 김태균이 주성치가 내한했을 때 사인을 받았는데, 연예인들 중 가장 성의 없는 사인이었다고 말을 했다. 지렁이 하나 달랑 그려줬다고... 그래서 나중에는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는 쿵푸허슬 제작기념 편지, 즉 위에서 언급한 수록된 친필 편지에도 똑같은 지렁이 싸인이 그려져 있다. 즉 실제 사인이 그렇다는 것.
  • 주성치는 배우 주윤발의 리즈 시절 많은 주윤발 영화에 보조 출연자로 출연했다. 그러다 주윤발 주연의 89년 영화 도신의 패러디물 90년 도성에도 주연으로 출연함으로서 스타덤에 올랐다. 게다가 두 사람이 성도 똑같이 周씨여서 90년대 초반에 막 주성치가 떴을 때에는 "주성치? 주윤발 친동생인가?"라고 생각한 홍콩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 다만, 주성치가 영화 영웅본색 초반의 풍림각 총격전에서 총 맞아 죽는 조직원 중 한 명의 역할로 출연했다는 루머는 잘못된 정보다. 영웅본색의 IMDb 리스트 캐스팅 목록에 주성치의 영문명인 Stephen Chow가 나와있긴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가 아닌 영화의 IMDB 영화 정보에는 오류가 매우 많으므로 IMDB 내용을 근거로 삼기는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100] 되려 과거의 루머를 토대로 누군가가 IMDB에 정보를 추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중국어 위키백과나 바이두의 주성치 출연작 정보에는 영웅본색이 없다. 유튜버 B급리뷰에서도 이에 대해 해당 단역배우의 다른 장면의 모습들을 근거로 순간적으로 옆 모습만 비슷할 뿐 주성치가 아니라고 확인한 바 있다.
  • BLACKPINK 멤버 중 리사를 좋아한다. 인스타그램에서 팬의 질문에 대답한 내용이다. #
  • 말레이시아 팬이자 인플루언서인 유저가 주성치를 보고 싶다고 인스타에 글을 남기자 주성치가 그 팬에게 홍콩에 올 수 있냐고 말했다. 팬이 당장이라도 간다고 해서 갔고, 홍콩에서 그 팬은 주성치와 직접 만나서 같이 식사도 하고 사인도 받았다. #
  • 의외로 송강호와 인연이 있는데, 2000년 반칙왕이 홍콩에서 개봉했을때 주성치가 송강호 역의 성우를 맡았다. 그러다가 23년이 지나서 2023년 10월 14일, 제20회 홍콩아시안영화제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한 송강호와 주성치가 서로 만나면서 무려 23년만에 만남이 성사되었다. 여기서 본인이 제작하는 소림여족 캐스팅 제의를 하기도 했다. #

9.1. 삼합회 관련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 근거없는 찌라시다.

우선, 과거 홍콩 영화계가 삼합회와 관련이 깊었던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많은 홍콩 영화 관계자들이 알게 모르게 피해를 봤으며, 주성치 역시 종국에는 삼합회의 횡포에 질려 캐나다로 이민을 갈 계획까지 세웠으나 이민 직전에 캐나다 정부에서 거부하여 무산되고만다. 이민 거부사유는 주성치가 삼합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라는 제보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삼합회가 주성치의 이민을 막기위해 일부러 뿌린 거짓정보로 추측되며, 이는 주성치 삼합회 관련설이 생기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홍금보나 주성치 등이 삼합회 조직원이라는 명확한 근거는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이 두 사람들은 당시 영화계에 뻗친 삼합회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거나 법적인 대응까지 해 가며 그들에게 저항했던 대표적인 홍콩 영화배우들이었다. 즉, 홍콩의 유명 배우들이 삼합회의 간부였다는 소문은 90년대 찌라시에 불과하다.

2014년에 주성치가 중화권 영화인들 사이에서 왕따라는 기사가 난 후 삼합회 조직원이자 영화 제작자인 향화강(向華強; 1948~)의 아내 진람이 "주성치가 최근 주변인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는 것은 그동안 주성치가 남편을 포함한 홍콩 영화계 인사들을 삼합회와 관련지어 맹비난하고 인신공격해왔던 것에 대해 홍콩 연예계가 집단으로 반발하는 것이다."라고 증언했을 정도로 주성치는 루머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삼합회를 싫어하는 대표적인 홍콩 배우이다.

1980~9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홍콩배우들의 필로그래피를 살펴보면 90년대 초반에 유독 배우들이 다작을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대부분 삼합회 및 조폭들에 의해 강제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으로, 이 시기에는 한 배우가 어떤 캐릭터로 뜨면 비슷한 캐릭터로 수십 편의 영화를 찍어야만 했다. 주성치의 경우 용성영화사와 계약하면서 1991년과 1992년 단 2년 동안 무려 12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당시 삼합회가 홍콩 영화계에 끼쳤던 영향이 어마무시했던 탓에, 배우들은 삼합회 출신의 영화 제작자들과 불공정한 계약을 하고 영화를 찍을 수 밖에 없었다. 주성치 본인도 사람이니 어떻게든 살고자 울며겨자먹기로 꾸역꾸역 영화를 찍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101]

9.2. 짐 캐리와 비교

주성치 영화 홍콩 마스크에 " 짐 캐리와 한 판 붙고 싶다"라는 멘트가 써 있는데, 실제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 둘이 동갑내기인 1962년 생이다.
  • 둘 다 얼굴 개그를 많이 했다. 워낙 얼굴 개그를 많이 하다 보니 미남임에도 외모에 대한 언급도는 덜한 편이다.
  • 둘 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 둘 다 이른 나이에 연예인으로 데뷔하였지만 30대가 된 이후 뒤늦게 코미디 배우로서 스타덤에 올랐다.[102]
  • 둘 다 무명시절에 보조출연자로 근근이 활동을 이어갔다.
  • 둘 다 흥행 실적에 비해 상복이 없다.
  • 둘 다 사생활이 복잡하다.
  • 둘 다 긍정적이면서 따뜻한 작품을 많이 했다.

다만, 두 사람의 연기 방식은 정반대다. 짐 캐리는 촬영 중간에 애드립을 많이 치면서 촬영장의 분위기를 리드하는 즉흥적인 면이 강한 배우인 반면에 주성치는 촬영 전에 자신이 연기해야 할 역할과 장면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완벽하게 계산된 연기를 펼치는 배우이다. 또 짐 캐리 영화는 텐션이 폭발할 정도로 감정이 매우 풍부한 편이지만, 주성치 영화는 감정보다는 어이없고 말도 안되는 상황(모레이터우)으로 웃기는 편이다.

물론 사생활 면에서도 차이점이 있는데 짐 캐리는 47살에 외할아버지(!)가 된 반면 주성치는 60살이 넘어서도 미혼이다.

9.3. 주성치의 팬

  • 구교환 - 주성치의 상대역을 꼭 해보고 싶다. 그렇게 주성치와 같은 프레임에 있고 싶다. 어떤 모습으로든 서로 연기를 주고받는다면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궁극의 캐릭터가 아닐까. 주성치의 모든 영화를 좋아해서, 그와 나오고 싶은 특정 영화를 꼽기는 어렵다. 하나만 얘기하면 주성치의 다른 영화들이 질투할 것 같다. “주성치 좋아한다. 수많은 롤모델 중에 큰 파이를 차지한다.
  • 권교정
  • 김구라 - 파괴지왕을 인상깊게 봤는지, 채널CGV의 영화토크프로 '무비 스토커'에서 주성치의 병맛개그패턴을 설명하며 엄청 웃기다고 칭찬했다.
  • 김남길 - 열혈사제 종영 후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은 주성치의 B급 코미디가 자신과 잘 맞아서 제2의 주성치가 되고싶었다고까지 말했다.
  • 김병만 - 본인의 책에서 주성치나 성룡같은 배우가 꿈이었다고 언급했다.
  • 김준호 - 1박 2일에서 전자우편으로 그에게 한국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내용을 보낸 적이 있었다.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도남선 - 언론인,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문화골목'에서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대표작 리뷰를 했다.
  • 루나 - 루나파크의 저자
  • 리도동동 - 요리 컨텐츠를 할 때 외국인 캐릭터를 잡고 연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인 컨셉을 잡은 영상에선 주성치풍의 코미디연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 박수홍
  • 스노우캣
  • 요조 - 슈팅스타라는 곡에서 주성치가 등장한다. 중랑천에서 무술 연습하던 주성치가 좋은 노래 없냐고 해서 요조가 노래를 들려준다는 이야기. 참고로 곡을 완성한 후 주성치 사무실에 요조가 CD를 부쳤다고 한다.
  • 유병재 - 페이스북 커버가 식신 스틸 컷. 그의 개그를 보면 주성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느낄 수 있다.
  • 유세윤 - 스포츠조선 기자들이 건넨 '예능고사' 중 '유세윤이 생각하는 세상에서 제일 웃긴 사람'을 선정하는 문제에서 유세윤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주성치'라고 적었다.
    "저는 주성치가 가장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주성치처럼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유세윤 스타일 영화요. 뭐, 그런 게(유세윤 스타일)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광고백이 좀 안정이 되면 영화도 도전을 하고 싶어요. 2편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허접하더라도 한 편은 만들어 보고 싶어요."




    2015년에 LG U+ 광고에서 주성치를 떠올리게 하는 코믹 연기를 선보인 적도 있다. 심쿵지왕: 헌폰구원기
  • 유희열 - 라디오에서 수시로 언급한다. 가장 좋아하는 주성치 영화로는 희극지왕을 꼽는 듯. 동북아 루저들의 별이라는 표현도 라디오에서 곧잘 한다. 성치님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 아라카와 히로무 - 강철의 연금술사의 원작가로 "실사판 감독은 주성치가 좋겠어."라는 폭탄발언을 한 적이 있다. 담당: 대체 무슨 영화를 만들려고!!
  • 양파 - 가수 활동을 쉬는 동안 힘들었던 기간에 주성치의 영화들에서 위로받았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 이동진 - 주성치에 대해 "위대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
  • 이현민 - 자신의 만화에 주성치 영화의 느낌이 나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파괴지왕'을 200번 정도 본 거 같다고 한다.
  • 채사장 - "주성치와 떠나는 깨달음 여행" 주제편에서 서유기만 20번 이상을 봤다고 언급했다.
  • 하세 세이슈 - 일본의 하드보일드 소설 불야성의 작가. 필명인 하세 세이슈를 한자로 쓰면 馳星周, 즉 주성치의 이름을 거꾸로 쓰고 이를 일본어로 읽은 것이다.
  • 허팝 - 주성치와 닮았는지 평소에도 주성치를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고 다녔다 하고, 지금도 존경하는 인물이자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밝혔다. 영상.
  • 9bul - 영화 리뷰 전문 유튜버. 주성치 작품을 상당히 많이 리뷰했으며, 리뷰 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주성치에 대한 팬심을 자주 드러낸다.
  • B급 리뷰 - 9bul과 마찬가지로 주성치 영화 리뷰가 매우 많은 편이다. 주성치 영화만 특별 대우를 한다.

9.4. 데뷔시킨 배우

  • 진국곤
    1975년생으로 단지 이소룡을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림축구에서 없는 배역을 일부러 만들어 출연시킨 것을 계기로 데뷔시켰다. 덕분에 본래 직업은 안무가 였지만 진국곤은 이소룡 전문 배우가 되었다.
  • 황성의
    주성치가 오디션을 통해 뽑아 데뷔시킨 여배우로 여우같이 섹시한 외모와 악동같은 연기를 잘 구사한다. 그러나 주성치 사단과는 맞지 않아서 얼마 안 가 독립한다.
  • 서교
    장강7호에서 데뷔한 여자 아역배우. 그런데 장강7호에서 맡은 배역이 남자아이였다. 더 무서운건 진짜 남자처럼 보인다는 것.
  • 임윤
    1996년생으로 주성치는 미인어의 여자 주연을 기존의 배우가 아닌 신인 배우로 뽑을 생각에 오디션을 대대적으로 개최했는데 이 오디션의 경쟁율이 12만대 1에 달했다. 그 경쟁을 뚫고 캐스팅된 배우가 임윤이다. 경쟁율이 경쟁율이니만큼 엄청 미인이다.

9.5. 주성치 사단

  • 황일비(黃一飛): 1946년 홍콩 출신. 심사관, 심사관 2, 여룡공무, 파괴지왕, 구품지마관, 007 북경특급, 007 북경특급 2, 홍콩 레옹, 홍콩 마스크, 소림 축구에 출연했다. 소림 축구의 대사형 역이 유명하다.
  • 노웅(盧雄): 1947년 홍콩 출신 배우 겸 성우. 구품지마관의 형부상서, 홍콩 레옹의 보안대장을 맡았으며 도협 2와 도학위룡의 황 국장의 광동어 더빙 성우를 맡았다.
  • 진백상(陳百祥): 1958년 광동성 광주 출신 배우. 신정무문 시리즈, 녹정기 시리즈, 무장원 소걸아, 도학위룡 3, 당백호점추향에 같이 출연했다.
  • 오맹달(吳孟達) 1952년 중국 푸젠성 샤먼 시 출신의 배우. 소림축구까지만 해도 주성치의 페르소나로 거의 모든 작품을 같이 할 정도로 친했던 배우. 2021년 간암 투병 중 타계.
  • 전계문(田啟文): 1961년 홍콩 출신. 1994년작 구품지마관에서 주성치와 인연을 맺었다. 시체검시소 촬영씬에서 시체 역을 맡은 전계문에게 주성치가 집게로 그의 코를 꼬집는 장난을 쳤는데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그를 꾸준히 섭외하게 되었다. 소림축구의 삼사형과 쿵푸허슬의 도끼파 비서로 상당히 비중 있는 조연도 해보았다. 구품지마관, 식신, 희극지왕, 소림축구, 쿵푸허슬, 미인어, 신희극지왕 출연. 현재까지도 주성치와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들 중 한 명. 실생활에서는 주성치의 비서 겸 대변인 역할도 맡고있다.
  • 서금강(徐錦江): 1961년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출신. 옥보단 출연으로 인해 이른바 홍콩의 이대근으로 유명한 인물. 녹정기의 왕야, 구품지마관의 허당 고수, 홍콩 마스크의 대학 교수 등으로 출연했다. 키 186cm 라 꽤 큰 편이다. 아들 휘고 서(figo tsui) 역시 아버지를 닮아 장신인데 2000년 1월 1일 생이다. 딸 서비(1994년 생)는 중국 조정 국가대표 선수다.
  • 이건인(李健仁): 1961년 홍콩 출신. 주성치와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로 지냈으며 코파는 여장남자역으로 주성치 영화의 약방 감초역을 맡았던 배우. 당백호점추향의 여장강도역을 시작으로 구품지마관의 여화, 007 북경특급의 모텔주인, 홍콩 레옹의 공포 교육 조교, 홍콩 마스크에서 주성치에게 괴롭힘당하는 친구, 007 북경특급 2의 후궁, 식신의 여학생, 소림축구의 미용실 주인 등으로 출연했다.
  • 정동(程東): 1961년 홍콩 출신. 도협 시리즈에서 초능력자 대군으로 출연하여 처음 호흡을 맞췄다. 도협, 도협 2, 구품지마관의 척씨네 하인역으로 출연.
  • 원경단(苑瓊丹): 1963년 홍콩 출신. 도학위룡의 양선생, 당백호점추향의 추녀 석류, 구품지마관의 기녀원 마담 삼고(三姑), 007 북경특급 2의 기녀원 마담, 식신의 점쟁이 아줌마 역을 맡았다. 주성치 영화에서 주제 모르는 추녀 기믹을 맡지만 젊을 때는 한 미모 했던 배우. 구품지마관에서는 과정 설명이 생략돼서 그렇지 주성치가 맡은 주인공 포룡성의 아이를 임신한다! 주성치가 안 나오는 영화에서는 미녀로 나오기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초급학교패왕의 엄마 춘리.[105]
  • 황일산(黃一山): 1964년 홍콩 출신. 황일비와 이름이 비슷하여 형제 혹은 아들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 작가로 커리어를 시작했다가 코미디 배우로 데뷔한 케이스. 도학위룡 시리즈, 당백호점추향, 파괴지왕, 구품지마관 등에 출연했다.
  • 임설(林雪): 1964년 중국 천진 출신. 15세에 홍콩으로 이주했다. 파괴지왕, 홍콩 레옹, 식신의 불량배 일당, 럭키 가이의 삼합회, 쿵푸허슬의 도끼파 부두목으로 출연.
  • 곡덕소(谷德昭): 1965년 홍콩 출신.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영화 감독, 시나리오 작가와 배우를 겸업하고 있으며 주성치와의 인연이 깊다. <가유희사>의 각본을 맡은 것을 계기로 주성치와 협업을 하게 되었다.[106] 곡덕소는 당백호점추향, 파괴지왕, 007 북경특급, 007 북경특급 2, 식신, 장강7호의 각본가였으며 주성치와 함께 007 북경특급 2의 공동 감독을 맡았다. 배우로는 당백호점추향에서 당백호와 시 대결을 하다가 각혈하고 쓰러지는 영왕의 부하, 파괴지왕의 아우(阿牛), 007 북경특급 2의 의사, 식신의 악역 당우, 소림축구의 산동두부팀 주장을 맡았다.
  • 장민(張敏): 1968년 상하이 출신. 주성치의 히로인 역으로 제일 자주 나왔다. 도성, 도협, 도협 2에서 주성치를 홀딱 반하게 한 기몽역 및 기몽과 얼굴만 똑같은 바 주인 몽라 역을 맡았으며 여룡공무, 도학위룡 시리즈의 하선생, 녹정기 1편의 가짜 태후, 무장원 소걸아의 여상, 구품지마관의 척씨 며느리 진소련 등으로 나왔다.
  • 막문위(莫文蔚): 1970년 홍콩 출신. 본 문서에 상세히 적혔듯이 주성치의 전 연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본업은 가수. 주성치와는 서유쌍기에서 처음 호흡을 맞추었으며 서유쌍기의 첫번째 히로인인 백정정(白晶晶), 홍콩 레옹의 히로인 아군(阿群), 식신의 히로인 화계(火雞)와 관세음보살, 산사초의 여인(呂忍), 희극지왕의 두연아, 소림축구의 준결승전의 장백지와 남장여자 축구선수 역을 맡았다.
  • 풍면항(馮勉恆): 1970년 홍콩 출신. 희극지왕에서 장백지가 맡은 류표표를 배신한 첫사랑 역으로 처음 합류. 희극지왕, 소림축구의 불량배 축구단 주장, 쿵푸허슬의 안경잡이 회사원, 장강7호의 체육교사 등으로 출연했다.

9.6. 주성치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사람들

  • 이수현(李修賢): 주성치가 자신을 배신한 배은망덕한 인물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수현 사단의 대표적인 배우 성규안[107]도 "주성치 걔가 이수현 형님한테 그렇게 굴면 안 되는거지." 라고 주성치를 대놓고 디스하기도 하였다. 이수현은 주성치가 영화의 쓸데없는 부분까지 개입한다며 "개처럼 일하는 배우"라고 욕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성치는 이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 만재량(萬梓良): TVB에서 무명 시절 고생할 때부터 보살펴준, 주성치에게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배우. 원래 희극지왕에서 오맹달이 연기하였던 역할은 만재량이 연기하기로 했었는데, 주성치가 촬영 스케줄이 바뀐 걸 만재량에게 통보해주지 않는 바람에 만재량은 아무도 없는 촬영장에 혼자 남아 스태프들을 기다리다가 결국 분노하며 집으로 돌아갔고 그대로 영화에서 하차하였다. 주성치는 만재량 대신 오맹달을 캐스팅하였고, 오맹달은 만재량의 연기톤을 그대로 따라하였다. 주성치는 만재량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영화 엔딩 크레딧에 "만재량 형님에게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 나혜연 (羅慧娟) : 주성치가 명성을 얻기 전인 1988년부터 사귀기 시작해서 한창 인기를 얻고 있을 즈음인 1992년에 헤어진 주성치의 연인이었다. 주성치가 공개적으로 밝힌 첫 연인이자, 결혼 얘기도 확실히 오고 갔던 연인으로 당시 유진위 감독과 도성을 찍었던 주성치는 유진위 감독에게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쉽게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그녀와 결혼할 예정이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1992년에 주성치와 헤어졌고 나혜연은 주성치와의 관계에 대해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다가 주성치와 관련된 루머가 너무 많아지자 한 인터뷰를 통해 "주성치에게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했더니 주성치가 "미쳤니?"라고 대답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내가 주성치와 사귀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며 주성치에게 크게 상처를 입었음을 밝히면서 공개적으로 주성치를 비난했다. 이 인터뷰를 제외하고 나혜연은 췌장암에 걸려 2012년 6월 30일에 46세라는 젊은 나이로 사망할 때 까지 주성치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 오맹달(吳孟達): 소림축구까지만 해도 주성치의 페르소나 수준으로 많이 출연했고, 그만큼 사적으로도 친밀했던 배우. 그러나 주성치가 쿵푸허슬 촬영을 준비할 때 오맹달은 당연히 자신의 배역이 있을 줄 알고[108] 생애 처음으로 단독 주연으로 캐스팅된 드라마의 출연을 거절했는데[109], 쿵푸허슬에 자신이 캐스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는 같이 일하지 않겠다고 발언하며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두 사람이 화해하였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2021년 2월 오맹달이 사망하기 전에 주성치가 병문안을 왔다고 한다. 동년 3월 7일 장례식이 열렸는데, 이 때도 주성치는 화환을 보냄과 동시에 조문했다. 그리고 둘의 불화설도 오맹달 별세 후 사실이 밝혀졌는데, 두 사람의 사이가 나빠졌다는 루머와는 달리 오맹달의 가족과 배우이자 각본가 임자총의 증언에 따르면 두 사람은 계속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주성치를 배은망덕하다고 욕 먹게 만들었던 불화설 역시 찌라시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맹달 본인조차 불화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러나 쿵푸허슬건 때문에 잠깐 감정이 상했던 것만큼은 사실인 듯.
  • 두기봉(杜琪峰): 1992년 크게 흥행한 심사관과 제공을 주성치와 함께 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의견 차이로 촬영장에서 두 사람의 사이가 무척 험악했다고 알려져있다. 실제로 두기봉은 심사관 개봉 당시 주성치가 촬영 현장에서 자신이 쓴 각본을 읽은 후 재미가 없다면서 내용을 바꾸자고 했다는 이유로 주성치를 비난했다. 또한 주성치가 1993년 제12회 금상장 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언론매체에서 '남우주연상은 주성치가 확실히 받을 것이다' 라는 식의 기사가 보도되었을 때 두기봉은 '후보에 올랐다고 바로 상을 받는다는 법은 없다'며 주성치를 디스했다. 그리고 실제로 주성치는 상을 받지 못했다.
  • 주인(朱茵): 홍콩의 여배우. 도학위룡2 촬영 중 처음 주성치와 만났고 이후 주성치와 연인 사이가 되었다. 주성치 주연의 영화 서유기-선리기연의 히로인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서유기 선리기연> 촬영 중에 주성치가 제3자와 불륜을 저질러서 그와 헤어졌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매우 큰 상처를 받었다고 공개적으로 주성치를 비난했다. 또 주성치를 용서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 이훼(李卉): 소림축구 제작당시 신인 여배우를 뽑는 공개 오디션이 있었고, 이훼는 7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되었다. 선발 당시 많은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으나 정작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은 도입부와 결말부에 바나나를 밟아서 넘어지는 단역이었다. 이 작품 이후 출연작은 2개뿐이라서 주성치를 원망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불공정한 계약으로 사이가 안 좋아진 듯하다.
  • 홍금보(洪金寶) : 쿵푸허슬에 무술감독으로 참여했지만, 주성치와의 트러블로 중도하차했다. 주성치는 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열심히 했지만 홍대형이 날 제자로 대우해 주지 않고 되지도 않는 훈련으로 가혹행위만 받았다."고 반 농담삼아 얘기했는데, 이에 홍금보 역시 "주성치는 과거에 자신과 작업한 배우들 중에서 왕민덕[110]과 함께 가장 무술에 재능이 없는 배우였다. 주성치는 기본을 열심히 갈고 닦지도 않으면서 이소룡을 어설프게 따라하려하는 얼간이에 불과하다."며 비난했다.
  • 우문봉(于文鳳): 홍콩 건설협회 회장이자 홍콩의 부동산 재벌로 유명한 우징보 회장의 딸. 홍콩 부동산 업계의 큰손이다. 1997년부터 주성치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주성치의 재테크를 도와주었고 2002년부터는 주성치가 주주로 있는 투자회사인 와이잉(崴盈)의 재정자문과 투자지문을 맡았다. 2010년 3월, 13년의 열애 끝에 주성치와 결별하였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같은 해 5월, 주성치가 그동안 자신을 통해서 부동산 재벌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그에게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며 주성치에게 8000만 홍콩달러(약 116억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 소송이 시작된지 10년만인 2020년 12월 23일, 홍콩 고등법원은 주성치의 손을 들어주며 우문봉의 수수료 지급 소송을 기각하였다. #
  • 황성의(黃聖依) : 한국인에게는 2000년대 주성치 감독의 영화 < 쿵푸허슬>에서 '벙어리 사탕 소녀'로 알려진 배우다. 주성치가 직접 황성의를 섭외했는데 당시 300:1의 확률을 뚫고 발탁됐다고 한다. 쿵푸허슬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황성의는 주성치가 만든 소속사 '싱후이'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2005년 황성의가 소속사와 의논없이 섹시 컨셉 화보를 찍었는데, 이를 계기로 청순한 이미지를 원했던 소속사가 황성의의 활동을 전면 중단시키며 다툼이 생기게 된다. 황성의는 기자회견을 열어 '그 동안 소속사와 위협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활동을 해 왔고 영화 계약도 강제로 맺었다'고 폭로를 하였다. 덧붙여 '소속사가 자신의 활발한 성격을 보고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며 울먹이기도 하였다.
  • 임자총(林子聰) : 주성치가 만든 소속사 '싱후이'에 소속되어 있었던 시나리오 작가 겸 배우. < 소림축구>를 통해 배우로서 데뷔했고 < 쿵푸허슬>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쿵푸허슬의 촬영이 완료된 후 임자총은 인터뷰를 통해 "주성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며 자신의 커리어에만 신경을 쓰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주성치를 비난하는 동시에 소속사 '싱후이' 역시 "오로지 주성치의 매니지먼트에만 집중하고 있고 회사의 운영도 엉망"이라면서 비판했다. 임자총은 주성치의 영화에서 뚱보 역을 맡아 대중들에게 유명해졌지만 사실 그의 원래 직업은 각본가로서 주성치의 영화에는 주성치의 권유로 어쩌다 출연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임자총은 영화 배우보다는 각본가로서의 일에 충실하기를 원했고 이와 동시에 '싱후이'에다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고 싶다는 것을 계속 어필했지만 소속사에서는 항상 이를 무시했다고 한다. 결국, 임자총은 유덕화의 도움을 받아 2006년에 자신의 감독 입봉작 <득간음차>를 찍을 수 있었다. # 이후 임자총은 주성치와 화해했는지 < 장강7호>, < 미인어>에 조연으로 출연하였다.
  • 육소령동(六小齡童): 본명은 장금래(章金萊)로, 많은 사람들이 향수를 느끼며 고전 명작으로 인정하는 86년작 드라마 서유기에서 손오공을 열연한 배우로 유명했었다. 가문 대대로 원숭이극을 해 왔던 장인 집안인지라 연기가 뛰어났고, 다른 서유기 관련 작품들에서 워낙 손오공의 디자인이 구렸기 때문에 그가 연기한 손오공은 넘사벽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손오공이라는 배역으로 뜨자 거기에 부심이라도 느낀 건지, 정통파를 자처하면서 주성치의 작품이 원작파괴라고 자주 비난했다. 급기야는 가는 곳마다 주성치의 영화를 천편일률적으로 디스하는 퍼포먼스[111]를 선보이는 등, 얀데레스러운 모습을 보인 탓에 결국 한 때 그를 옹호하고 존경하던 중국인들도 추해졌다며 등을 돌리는 중. 게다가 소위 정통파라는 것도 당시 보수적인 시대상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만한 파격적인 내용이 없었을 뿐이지, 원작 고증에 충실했던 건 아니기 때문에 원작 빠들에게서도 배척받았다. 이 사람의 프로필 중에서 손오공을 제외하면 그나마 유명한 역이 연성결에서 나오는 소인배 악역인 화철간인데, 오죽하면 이 화철간이 육소령동의 본성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 이런 행실 때문에 주성치를 비판했던 인사들 중에서 제일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다.

10. 사건 사고 및 논란

10.1. 장효기(장샤오치,张晓祺)에 의해 조작된 허위 열애설

2021년 8월, 홍콩의 언론들은 주성치가 42살 연하의 여성 장효기(장샤오치,张晓祺)[112]와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 파파라치에 찍혔다고 보도했다. # 이후 주성치 측에서는 그녀와는 서로 모르는 사이라며 선을 그었으며[113] 이틀 전에 먼저 여자들이 주성치를 찾아가서 말을 걸었지만 주성치는 상대하지 않거나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주성치가 주최한 파티도 아니고 요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면서 있었는데 왜 이렇게 기사를 썼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

8월 20일 주성치 측 변호인은 "최근 주성치가 모 여인과 '친한 사이'라는 내용이 보도된 것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며 "각 언론사와 인터넷 매체에 글을 게재하거나 리트윗 등 잘못된 진술을 중단할 것을 권고함과 동시에 루머를 유포하는 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라고 했다. #

9월 3일 주성치 측 변호인은 이번 열애설 루머 이슈의 원인을 일으킨 장효기(장샤오치, 张晓祺) 측에 서한을 보냈다. # 이유인즉슨 장효기가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다. 그 약속이라 함은 주성치는 상대측뿐만 아니라 파티에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사진촬영 금지와 함께 SNS 업로드를 하지말자는 것(구두계약)이었다.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사생활 노출에 상당히 민감하고 그 동안 소문에 시달렸던 주성치의 삶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항이다. 상대 측을 포함한 참석자 전원이 약속에 동의를 하였기 때문에 상대 측이 올린 사진은 SNS에 올라와있는게 아니어야하며 설령 찍었더라도 본인 휴대폰에만 있어야했다. 하지만 장효기는 이를 무시하기라도 하는듯 버젓이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올려버린 것이다.

주성치 측 변호인은 이번 사건이 누군가의 의해 조작되었다고 판단되어[114] 이를 근절하기 위해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서한을 보낸 것이라고 했다. 상대 측에게 이 문제를 즉시 해결하기를 요구했고 이미 올린 사진을 내리라고 경고했다. 삭제하지 않거나 제 3자에게 유포할 시 즉각 법률행동을 취할 것이며 이로 발생하는 모든 법률 비용과 지출을 상대측에게 요구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장효기는 이를 무시하기라도 하는 듯 내리지 않았다가 9월 6일 루머 열애설 상대측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 주성치 측으로 부터 서한을 받은것을 인정했으며 "자신은 그저 사진이 잘 나와서 올린 것 뿐이며 이렇게 일이 크게될 줄 몰랐다." 라고 구두계약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다소 어이없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미 루머가 터진 지는 보름 이상이 되었고 주성치의 이미지에는 타격이 왔으며 본인은 이목을 집중받아 인지도가 올라간 뒤였다. (장효기는 이미 첫 열애설 루머가 발표됐을때도 별다른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고 심지어 프로필 사진도 기사 사진으로 바꾸는 등 다소 시선을 즐기는듯한 반응을 보이곤 했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구두계약을 위반하고 사진을 웨이보에 올린 장효기의 잘못이 명백히 크며, 제대로 된 취재없이 주성치가 42살 연하의 모델과 사귄다며 주성치의 명예를 손상시킨 홍콩 찌라시 언론들의 잘못도 장효기 못지 않게 크다. 결국 주성치는 뜨고싶어 하는 장효기와 홍콩 찌라시 언론에 의해 명예가 손상된 셈이다.

장효기(장샤오치,张晓祺)는 주성치와의 열애설 이후 인지도가 올라 인스타그램 급증해 한때 팔로워가 수십만을 넘었으나 주성치의 강력한 반발로 대다수 언론이 장효기를 주성치와의 열애설을 퍼뜨려 소위 주성치의 여자로 주목받아 인지도를 올리려고 하는 것으로 보면서 연예계 활동이 크게 제약되었다. 실제로 장효기는 2021 미스 홍콩에 참가했으나 최종 후보 명단에도 들지 못했으며 미스 홍콩은 송완영(宋宛潁)이 1위, 량개청(梁凱晴)과 소초(邵初)가 각기 2위와 3위를 했다. # 장효기는 주성치와의 열애설 이후 미스 홍콩에 참가한 것이 알려지면서 급격히 오른 팔로워 수를 발판으로 무난히 본선에 진출했으나 이후 주성치의 강력 반발로 장효기가 주성치와의 열애설을 퍼뜨려 인지도를 올리고 미스 홍콩에 참가한 것이라는 네티즌들의 비판이 제기되면서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고 팔로워가 급감하면서 네티즌들의 투표 수에 크게 밀리면서 최종 후보에도 들지 못했다. #

이후 장효기는 자신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하여 10월 19일 인터뷰를 요청하여 자신과 주성치는 평범한 친구 사이로 열애를 한 적 없으며 파티에서 주성치가 참석자들에게 자신과 찍은 사진이나 얘기를 인터넷에 올리지 말라고 하고 동의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직접적으로 미스 홍콩에 입선할 목적으로 주성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주성치와 자신이 함께 파티에 있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으로 유명세를 타고 싶었다고 인정하여 미스 홍콩에 입선할 목적으로 해당 사진을 게시할 의도였음을 애둘러서 인정하였다. 또한 자신의 어머니가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생활비로 한 달에 10만 위안[115]을 받을 정도로 유복한 가정이라며 부자가 되려고 주성치와의 열애설을 이용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였다. #

미스 홍콩에서 낙마할 때도 십만은 넘었던 팔로워가 인터뷰에서 자신이 의도적으로 주성치와의 열애설을 조작했다는 것을 인정했으며 장효기 본인은 고의가 아니라 주성치의 팬이라서 스타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과시하고 싶은 철없는 행동이라고 사과했다. 이 인터뷰 이후 다시 팔로워가 대폭 감소해 3만명을 겨우 넘었으니 대다수 홍콩인들은 장효기의 말을 믿지 않은 것이다.

이후 장효기는 홍콩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사건 1년 뒤인 2022년 8월 인스타그램에 남자친구가 자신을 떠났다는 글을 올리고 그것이 기사화가 되었는데 정작 기사는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글과는 다른 장효기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비키니 사진과 그녀의 미모를 찬양하는 기사였다. 또한 해당 기사는 장효기가 주성치와 열애를 했다며 그 이후 장효기가 인터뷰에서 밝힌 자신이 열애설을 조작했다는 사실은 보도하지 않아 마치 장효기가 주성치의 전 연인인 것처럼 소개했다. 1년 전 주성치와의 열애설의 당사자로 재주목받았지만 본인이 주성치와의 열애설은 가짜라고 인정하였던데다 떠났다는 남자친구는 주성치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글을 올리면서 홍콩 네티즌들에 의해 인지도를 올리려고 지랄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해당 언론도 찌라시라고 비난받았다. 대다수 홍콩 네티즌들은 장효기가 잠잠해지니 인지도를 올리려고 돈만 쥐어주면 기사를 써주는 찌라시에 의뢰를 했을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현지에서도 전형적인 중2병으로 여겨지고 있다. #

장효기는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주성치와의 열애설로 인지도를 상승시키려고 죄 없는 주성치를 계속 이용하다가 홍콩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으면서 사실상 연예계로 진입하는 것은 요원해졌으며 현재는 인스타그램 활동에 치중하고 있다.

10.2. 중국과의 관계 설정 부분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주성치는 홍콩(더 나아가면 대만 등 중화권)과 중국(정확하겐 정부)의 미묘한 정치 갈등 속에서 현재까진 중립, 병먹금, 아웃사이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몇몇 행적에선 팬이나 안티 모두에게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는데, 일단 2013년 1월 중국 국정 최고 자문기구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광둥성 위원에 선출된 적이 있었다. 당시 주성치는 5년 임기의 광둥성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때문에 당시 홍콩인들에게는 친중 정치인으로 변신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중국인들에게는 정협 위원으로써의 자격이 있냐는 비판을 받으며 양쪽에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만 영화 발전에 도움이 될까 해서 그냥 참여했을 뿐이라는 말도 있다. 실제 활동 기간 동안 딱히 정치적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은 없었다. 사실 직능 대표의 일환으로 홍콩 코미디 영화의 전설인 허관문[116]이나 중국 배우 진도명[117]도 정협 위원을 지낸 일이 있는 걸 보면 주성치만 특이하게 맡은건 아니다.

이 외엔 한동안 조용하다, 2022년 홍콩반환 25주년을 축하하며 난 영원한 중국인이라는 말을 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 다만 이건 문장 전체의 맥락을 보면 뉘앙스 차이는 있는데, 전체 맥락은 "홍콩은 줄곧 변화하고 있다. 기회도 많고, 이유도 많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홍콩은 세계적인 금융의 중심지이고, 문화의 중심이다"면서 "나 같은 경우, 나는 영원히 중국인이다. 홍콩과 중국은 문화가 같고 혈통이 같다. 그러니 (반환일인) 7월 1일을 영원히 축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주성치는 홍콩이 중국과 외부를 연결하는 중심에 있다며, 중국과 홍콩 영화계가 서로 돕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그는 "홍콩의 젊은 영화인들은 지역적 이점을 이용해 중국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방대한 시장을 활용해 발전을 이끌 수 있다"면서 "홍콩의 미래가 중국의 지지 아래 계속 창의적이고 새롭고 활력이 넘치길 바라며, 함께 미래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초에 이게 논란이 되는 것은 중국-홍콩 관계에 대한 몰이해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있다. 좋든 싫든 홍콩 반환 이후 홍콩인들의 국적은 중국인건 사실이고, 주성치는 식민지인의 딜레마를 겪은 사람으로 자신을 중국인으로 여기는 것이 당연한 세대기도 했다.[118] 홍콩이건 대만이건 중국인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21세기 들어서 신세대를 중심으로 강화되는 경향이고 20세기 출신들에게는 당연히 홍콩인이고 대만이면서 동시에 중국인이었다.[119]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조차 홍콩의 독립에 대해서는 철저히 부정하고[120] 그저 중국의 자치령으로서 민주주의 체제의 완전한 보장만 주장한다는 점에서 보듯이, 홍콩인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중국인이라고 여기는 일은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닌데 이 사정을 모르는 한국에선 홍콩인이나 대만인이 자신의 중화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으면 홍콩/대만판 민족반역자, 중공 추종자로 기승전결말을 내는 성급한 일도 벌어지곤 한다.

별개로 정협위원직을 지내기도 했으나 주성치가 친 중공 성향이라는 증거도 없다. 주성치는 활동 기간 성룡이나 견자단처럼 중공 충성 드립을 친 적도 없고, 독재를 찬양한 적도 없다. 홍콩 민주화 운동에 있어서도 딱히 찬반 의견을 피력한 적이 없다. SNS 남중국해 항미원조같은 내용도 없다시피한데, 애초에 60대에 접어든 2022년 10월에야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할 정도로 본래 주성치는 SNS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121]
[1] 주성치의 이름은 표준중국어로 저우싱츠, 광동어로 자우쎙치로 발음하며 그의 어머니가 왕발(王勃)의 시 《등왕각서(滕王閣序)》의 구절 ‘빼어난 고을들이 안개처럼 늘어져 있고, 준걸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활약하는 곳이다. 누대와 성 안의 연못은 화하(중원)와 이민족( 초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누대를 찾은 손님들과 주인들은 모두 동남쪽의 훌륭한 인물들이다.(雄州霧列,俊彩星馳,臺隍枕夷夏之交, 賓主盡東南之美)’ 에서 따온것이다. 두번째 구절 뒤 두글자. [2] 참고로 본적은 저장성 닝보시이다. [3] 홍콩 영화계의 아웃사이더라며 붙여진 칭호. 팬들은 본명보다 이 별칭을 압도적으로 많이 부른다. 장국영을 꺼거라고 부르는것과 비슷하다. [4] 젊은 시절의 칭호 [5] 주성치의 첫 주연 대히트작이었던 도성에서의 캐릭터 이름. 이후로도 간간히 주성치 작품에서의 캐릭터 이름으로 쓰였다. [6] 2008년 본인이 직접 감독했던 장강7호를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배우로서는 활동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배우로서 은퇴 선언을 했는지는 확인불가. [7] 데뷔작은 007 북경특급. 지금도 감독으로는 꾸준히 활동중이다. [8] 사실 90년대나 2000년대까지도 배우로 훨씬 유명했지만, 나이가 든 2010년대 이후부턴 사실상 배우 은퇴 수준으로 영화 출연을 자제하면서 감독이나 제작자로 더 이름을 날리고 있다. [9] 때문에 배우 분류 상 코미디언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정극도 잘하는 편이다. [10] 그래서 주성치 이름도 시 구절에서 따왔다. [11] 쿵푸허슬에서 나오는 삼면으로 이루어진 빈민가 건물은 실제 주성치가 어렸을 때 살았던 건물을 재현한 것이다. [12] 그는 소림축구와 쿵푸허슬로 상을 휩쓸 때, 이소룡 선생께 가장 감사하다고, 그가 없었으면 지금의 내가 없다고 언급한다. [13] 당시 영국령 홍콩은 미국식 학제를 따르는 한국, 대만, 미국, 일본과는 달리 영국식 학제를 따라서 중학교, 고등학교가 나뉘어져 있지 않고 중등학교로 통합된 7년제였다. (엄밀하게는 5+2 학제로 되어있었는데, 해리포터 시리즈의 호그와트가 이 영국식 학제를 따른다.) 2012년부터 미국식 6-3-3 학제로 변경되었다. [14] 양조위의 아버지는 도박 중독자였고, 양조위가 8살 때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그와 여동생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때문에 양조위는 일찍 몇 학년을 건너뛰고 15세에 고등부를 조기졸업 했다. 흔히 알려진 중학교 중퇴는 사실이 아니다. Delia Memorial School을 졸업했고 유치부-초등부와 중등부-고등부가 있는 국제학교를 다녔으며 15세에 조기 졸업을 한 것이다. (영국식 학제이기 때문에 월반하여 졸업한 나이를 대강 가늠 할 수 있다.) 당시 양조위는 삼촌 집에 얹혀 살며 잡일을 해주는 처지에 같이 어울릴 만한 친구 한 명 없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자신도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했다며 주성치가 먼저 말을 걸었고 두 사람은 이후로 절친한 친구가 됐다고 한다. 둘이 동갑일 뿐만 아니라 생일도 고작 일주일밖에 차이가 안 났다. [15] 女媧行動. 거대한 권력에 의해서 시민의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억압, 말살시킨다는 홍콩에서 민감하게 여기는 소재를 여과없이 담아서, 방영 당시 홍콩에서 상당한 논란을 낳았던 작품이다. [16] 명칭은 배우 훈련반이지만, 원래 홍콩의 연예계 자체가 직금의 우리나라 아이돌처럼 배우들에게 만능 엔터테이너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 다양한 부문의 오디션을 진행한다. [17] 1982년 버전 천룡팔부에서 거란군 병사로, 1983년 버전의 사조영웅전에서는 송나라 병사와 개방의 거지패거리 등을 맡았다. [18] 그 당시 감독이 두기봉이었다. [19] 참고로 주성치가 이수현의 눈에 띈 계기는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로 유명한 연예인인데 나이트클럽에서 너무 잘 놀아서라고 한다(...). 그리고 이수현 주연의 <벽력선봉>에서 나이트클럽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이 재현(?)되었다. [20] 한국에서는 이수현이 '주성치가 나를 배신했다'고 말한 것이 알려져있어서 주성치를 인정없는 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뒤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수현이 먼저 주성치를 '개처럼 일한다'고 욕했다. 따지고보면 주성치가 이수현에게 휘둘리다가 코미디 영화로 성공하여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주성치는 이수현에게 욕을 들어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21] 유진위 감독은 무명 배우였던 주성치를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 제작사에게 "영화가 망하면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큰 소리쳤고 그 결과 주성치는 도성의 주연으로 캐스팅될 수 있었다. 즉, 유진위는 주성치를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해준 은인이다. 그래서 주성치는 평소 성격이 까탈스럽기로 유명하지만 유진위 감독 앞에서만큼은 매우 공손한 태도를 취한다고 알려져 있다. 쿵푸허슬 촬영 시에 주성치가 감독으로서 너무 변덕을 부려 영화 촬영이 계속 지체되고 결국 무술 감독이었던 홍금보가 주성치와의 불화로 인해 영화에서 하차해버리자 초조해진 영화의 제작진들이 주성치의 코미디 스승 유진위를 영화 촬영장에 모시고 오는 강수를 뒀고 유진위 감독이 영화 촬영장에 도착해서 영화 제작과정을 지켜보기 시작하자 주성치의 태도가 겸손하게 바뀌어서 겨우 영화 제작이 원만하게 마무리됐다는 일화가 매우 유명하다. [22] 희극과 비극이 괴상망측하게 뒤섞이고 말도 안되는 상황이 지속되며 웃기는 홍콩의 코미디 영화를 통칭한다. 비단 코미디 영화 뿐만 아니라 모레이타우는 90년대 홍콩에서 유행한 일종의 '문화 풍조'였다. 천안문 6.4 항쟁을 중국공산당이 무력으로 진압한 것을 지켜본 후 부터 홍콩 주민들 사이에서 홍콩의 중국 반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크게 유행했다. # [23] 제목애는 2000년이 들어가지만 실제로는 1999년에 개봉한 영화다. [24] 당시 주성치를 소개하는 MC로는 임하룡과 이경규가 나섰다. [25] 한국에선 '서유기 : 모험의 시작'이란 타이틀로 2015년 2월에 개봉되었다. [26] 참고로 여담 문단에 후술되어있듯 송강호랑 만나 소림여족 캐스팅 제의를 하기도 했다. [27] 실제로 자신의 우상인 이소룡과는 다르게, 주성치는 점점 성룡을 닮아갔다. 두 사람 모두 영화 감독으로서는 완벽주의자로 유명해서 같은 씬을 50번 이상 찍어서 제작비를 탕진하는 경우가 많았고 영화의 감독이 아닌 경우에도 주연 배우로서 자신들이 출연하는 영화에 개입하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 보조출연자 경력까지 판박이이다. 성룡은 이소룡의 용쟁호투에서 이소룡에게 덤비는 잡졸들 중 제일 마지막에 덤비는 잡졸 역할을 하는 보조출연자였으며 주성치 역시 여러 영화의 보조출연자를 전전한 적이 있다. 성룡과 주성치는 서로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 적도 있다. 성룡의 영화 빅 타임에 주성치가 카메오로 출연해준 적이 있어서 성룡이 보답의 의미로 주성치의 영화 희극지왕에 카메오로 출연하였다. [28] 잭 블랙 앤 해서웨이를 캐스팅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취소된 지 한참 뒤에 네이버 영화에서 뒤늦게 영화정보로 띄웠고, 많은 이들이 취소된 줄도 모르고 미치도록 기대하는 덧글들을 달았다.(...) 현재는 네이버 영화정보에서도 지워졌다. [29] 파일:쿵푸허슬 사인.jpg [30] 한국에서는 그냥 빈칸이다...... [31] 홍금보는 비록 성격이 불같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주성치가 존경하는 이소룡이 일찍이 홍금보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생전에 많이 아껴준 인물이다. 원규 감독에 의하면 이소룡은 액션 안무를 기획할때 무조건 홍금보를 반드시 데려 오라고 했을정도였다고 한다.(나중에 사망유희에서는 홍금보가 무술감독 겸 극중 격투기 대회에서 칼의 상대선수로 단역 출연했다.) [32] 당시 홍콩에는 저작권 개념이 없어서, 할리우드 영화든 일본 만화든 마구 아이디어를 가져다가 차용해서 영화를 찍어냈다. [33] 영화에서 삼장이 'Only You를 부른 이유는 삼장이 월광보합을 이용하여 먼 미래, 즉 현대의 세계에도 갔다 왔다는 걸 암시하는 복선이다. [34] 쿵푸허슬에선 중경삼림에 나온 Mamas and Papas의 Californian Dreaming을 개사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35]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슬로우모션 개그를 오맹달과 함께 재연한다. [36] 다만, 쿵푸허슬은 예외적으로 배우들의 애드립이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왜냐하면 쿵푸허슬의 무술 감독이었던 홍금보가 주성치와의 불화로 영화 촬영 중간에 영화에서 하차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 이후 주성치는 영화에 출연한 나머지 선배 스턴트 배우들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들에게 액션 장면의 설계를 전적으로 맡겼고 완성된 영화에서 그들이 펼치는 무술 동작들 중 70%는 그들의 애드립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37] 주성치의 평소 말투를 듣고 싶다면 그의 여러 인터뷰를 찾아보면 된다. 영화에서의 모습과 달리 인터뷰때는 엄청 느리고 생각도 많이 하고나서 말한다. 보통화를 하는 인터뷰보다는 광둥어로 된 인터뷰를 찾아보는 게 더 좋다. 왜냐하면 주성치는 보통화를 잘 못하기 때문에 보통화로 말하면 안 그래도 느린 말투가 더 느려지고, 간결한 말이 더 간결해진다. [38] 번외로, 사실 유명 개그맨이나 개그 전문배우들은 대부분 사석에서 보면 동일인물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과묵하다고 한다. 정극 배우였지만, 맹구 역할 코미디언으로 훨씬 유명했던 이창훈도 실제로는 아주 점잖고 과묵한 편이었고, 90년대 최고 인기 코미디언, 배우였던 김국진도 비슷한 케이스. 이건 개그만화가들도 비슷하다고 한다. 짧은 컷 내에서 독자를 웃기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하는 특성상 작가 본인은 굉장히 예리한 경우가 많다고. [39] 왕가위를 발굴한 삼합회 간부 출신의 영화 제작자. (자세한 얘기는 아비정전, 동성서취 항목 참조.) 이 쪽은 진짜 삼합회 간부였던 항화강, 향화승 형제와 달리 아버지가 삼합회 간부였을 뿐 조직의 일에는 별로 관여하지 않았고 영화 매니아로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조직의 자본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배우 겸 제작자로서 활동했다. 1993년 영화계에서 은퇴했고 2011년 과체중으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40] 성씨로 쓰일 때 으로 발음한다는 말은 와전이고 영어 이름은 찰스 흥(Charles Heung). [41] 삼합회 간부라는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비즈니스적으로 자신의 영화사가 영화판에서 유리한 입장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홍콩 영화계를 배후 조정한 인물이다. 그래도 겉으로나마 영화계 사람들에게 늘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협조를 구했기 때문에 의외로 홍콩 영화계에서 평판이 좋고 오랫동안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자신이 제작한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42] 형인 향화강과 함께 삼합회 간부로 활동했으며 겉으로는 영화 제작자로 행세하면서 신의안 조직의 돈세탁을 담당했다. [43] 빚에 시달리고 있던 장철 감독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헌정 영화로 영화의 수익금을 장철 감독이 가져갔다. 오우삼, 서극, 정소동, 이수현, 강대위, 적룡, 오마, 성규안, 진관태 등 장철 감독의 제자들이나 동료들, 그리고 당시 난다 긴다하는 홍콩 영화인들이 이벤트성으로 총출동 했던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오우삼 감독의 이름을 내세웠지만 오우삼의 단독 연출작이 아니라, 오마와 공동 연출을 했는데, 오우삼과 오마는 알려졌다 싶이 장철의 조감독으로 장철에게 영화를 배운 사람들이다. 주성치는 이 영화에서 조직의 부하로 나와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도 영웅본색처럼 엑스트라 수준이 아닌 조금 비중이 늘어난 배역이자 주성치의 멀쩡한(?)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인데 후반에 뜬금없이 죽는 것이 함정. [44] TV 드라마가 아닌 영화에서의 호흡을 맞춘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다. [45] 도성 개봉일이 1990년 6월 10일이고, 쌍용쟁패 - 용봉가족의 개봉일이 1990년 4월 26일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 영화는 주성치가 도성을 시작으로 추후에 여러 코미디 영화 및 패러디 영화 전문 배우로 거듭나기 이전 사실상 마지막으로 출연한 웃음기 없는 영화이다. [46] 영화의 OST는 유덕화가 불렀다. [47] 언더커버물. 벽력선봉 출연진 대거 출연. [48] 도성의 초대박 흥행으로 이후 코메디 영화 출연으로 방향을 바꾼다. [49] 촬영은 90년, 개봉은 91년 2월. [50] 주성치가 당구천재 촌뜨기 무도인으로 나온다. 무술과 스포츠를 접목했다는 점에서 소림축구의 전신인 셈이다. [51] 특별출연 [52] 이소룡의 정무문 오마쥬..라고는 하지만 도장 이름, 동아병부 현판 깨기 정도 말고는 오마쥬라고 할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 도성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53] 2013년에 방송된 SBS 런닝맨에서 은지원이 4자성어 퀴즈 답을 이걸 적었다. 이걸 보고 지석진이 이 영화를 봤다고 말했다. [54] 90년작인 무적행운성, 91년작 도성타왕과 함께 보면 더 재밌는 작품. 전체적으로 도성타왕 제작진들이 다시 뭉쳐서 만든 작품이며, 옥보단으로 유명한 엽자미도 출연했다. [55] 촬영은 91년, 개봉은 92년 1월. [56] 촬영은 91년, 개봉은 92년 1월. 바람둥이인 인기 라디오 DJ로 나온다. [57] 주인과 함께한 첫 영화 [58] 특별출연 [59] 촬영은 92년, 개봉은 93년 1월. [60] 다시 보니 선녀 같다로 유명한 짤방의 원작. 여기서 추향 역을 맡은 배우는 공리. [61] 촬영은 93년, 개봉은 94년 2월. 희극지왕과 헷갈리기 쉽다. [62] 촬영은 93년, 개봉은 94년 3월. [63] 94년 동시 촬영. 월광보합은 95년 1월 21일, 선리기연은 95년 2월 4일 개봉. [64] 촬영은 1995년 11월 23일에 개시하여 1996년 1월에 완료. 개봉은 1996년 2월 16일. [65] 촬영은 96년, 개봉은 97년 2월. [66] 법정을 주제로 한 사극 코미디 영화로 주성치는 변호사로 나온다. [67] 원제는 '행운일조룡'. 촬영은 97년, 개봉은 98년 1월. 한국에서는 <식신2>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 극중 주성치는 빵잡의 요리사로 등장하며 연애에 박식한 사람으로 나온다. 식신의 정식적인 후속작이 아니여서 초능력을 쓴다거나 그런 거 없다. [68] 촬영은 98년, 개봉은 99년 2월. [69] 특별출연 [70] 링을 패러디한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다. [71] 홍콩 개봉판 대호 목소리 역 [72] 장백지가 내레이션으로 참여. [73] 케이블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틀어주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74] 사실 이력지 감독과 같이 한 작품들이 굉장히 병맛(...)이다. 당백호점추향은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대적인 느낌이 매우 강하다. 주성치가 힙합을 하는 장면이 압권.(...) [75] 도성, 도협, 신정무문, 당백호 점추향. [76] 서유기, 홍콩 마스크, 식신. [77] 희극지왕, 소림축구, 쿵푸허슬. [78] 당시 주성치의 득표순위는 3위였다고 한다 [79] 증지위는 수상소감에서 대놓고 주성치에게 약간 조롱성이 섞인 사과를 날리기도 했다. [80] 주성치가 주연을 맡은 '심사관'은 흥행에서 대박이 났지만 막상 12회 금상장 시상식에서는 단 한 개의 상도 건지지 못했다. 같은 장르의 영화인 '92 흑장미...'는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특히 이 회차에서 남우주연상을 못 받은 것에 대해 국내외팬들의 불만이 종종 보이는데 '심사관' 흥행스코어의 반 밖에 안 되는 코미디 영화가 수상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화권 동영상 사이트에 '92 흑장미..'관련 동영상을 보면 팬들의 분노섞인 댓글이 종종 보인다. 하지만 당시 양가휘는 '92 흑장미..'에서 진짜 흑장미와 가짜 흑장미 사이를 연결하는 경찰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했다는 찬사를 받았었고 함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서극,엄호 감독의 '기왕(체스킹)'에서는 허무주의에 빠진 천재 바둑왕 왕일생 역할을 사실적으로 연기해 애당초 양가휘가 둘 중 하나로 받을 확률이 주성치가 받을 확률보다 더 높았었다고 한다. 당시 홍콩 연예계에서는 주성치 출연작이 박스오피스 기록을 갱신하였고 '심사관'에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기에 영화계에서도 이를 참고하여 남우주연상을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주었으나 결과로는 득표에서 5명의 후보중 4위였다는 비하인드가 있다. [81]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매염방은 '완령옥'의 장만옥에게 근소차로 밀려 수상하지 못했다. [82] 사실 후보에 올랐어도 막상 수상할 확률은 낮았었다. 그나마 15회 금상장에서 득표순위 2위였으나 1위와의 표차가 아주 컸고 교굉의 뛰어난 연기력만으로도 수상이 확정이라는 평이 자자하다. [83] 덤으로 신인감독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참고로 해당 회차의 남우주연상 시상자는 바로 양가휘 매염방. [84] 나혜연이 사망한 해이기도 하다. [85]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유통기한이 없기를 바란다. 만일 유통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 년으로 해야지." [86] 주인과 관련된 장면이라는 것이 억지 주장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위의 나혜연처럼 잘 들어맞는다. 대표적으로 주성치와 주인의 첫 영화인 < 도학위룡2>에서 주성치가 주인과 유도연습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주성치가 주인을 안은 장면이 < 쿵푸허슬>에서 주성치가 황성의를 안는 모습과 똑같다. [87] 주성치가 코미디 배우로 데뷔한 후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영화였다. [88] 이 내용 또한 위 신문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89] 서유쌍기의 흥행이 실패한 후 주성치와 유진위 감독이 재정적 손실을 매꾸기 위해 1995년, 다시 의기투합하여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가 호러 코미디 영화 회혼야(回魂夜)이다. [90] 정말로 레옹의 마틸다와 똑같이 하고 나온다. [91] 주성치가 사귄 나머지 연인들은 모두 주성치를 비난했으며 우문봉은 심지어 소송까지 걸었다. [92]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는게, 이미 주성치는 90년대 초부터 홍콩에선 성룡, 이연걸 등보다 흥행 성적이 훨씬 좋았다. 성룡은 80년대가 전성기였고 주성치와 동시기에 활동한 이연걸은 홍콩 내에서 주성치보다 흥행성적이 좋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홍콩 박스오피스 1위는 주성치 차지였다. (90년 도성, 91년 도학위룡, 92년 심사관, 93년 당백호점추향이 1위.) 특히 1992년은 주성치의 최전성기. 이 외에 1999년에도 자신의 감독작인 희극지왕으로 홍콩 박스오피스 1위를 하였다. 즉, 1990년대 홍콩 영화계는 말 그대로 주성치의 시대였다. 당시 영화계에선 흥행 스타 주윤발, 주성치, 성룡을 한데 묶어 쌍주일성이라 부르기도 했다. 1990년대 홍콩영화 흥행성적을 물가상승률을 고려해서 매겨보면 도성, 심사관, 도협, 가유희사, 도학위룡, 도신2, 홍번구, 용형호제2, 파호, 녹정기, 폴리스스토리4, 무장원소걸아 순이다. 주성치 작품만 12개 중 무려 7개나 된다. [93] 여담으로 주성치의 영화들은 B급 코미디 영화가 대부분이어서 유치한 영화로 곧잘 폄하되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유치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홍콩 영화 붐이 일어난 90년대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유덕화, 장국영, 주윤발, 양조위, 이연걸 등 정극이나 액션으로 이름난 배우들을 좋아했지(물론 이들도 코미디 연기 하라고 하면 곧잘 하긴 했다) 코미디 영화만 주로 찍는 주성치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서 코미디 영화라 하면 영구와 땡칠이 이런 어린이용 영화가 흥행하던 시절이니.. 다만 오늘날 와선 딱히 코미디 영화라고 폄하되진 않는다. [94] 해당 사이트의 메인 배너에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영화가 있다. 주성치가 나오는 영화와 주성치가 나오지 않는 영화.」라는 문구가 명기되어 있다. [95] 다만 사이트는 현재 더 이상 운영을 하지 않고 네이버 카페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당장 사이트를 들어가 봐도 옛날 사이트 티가 확실히 난다. [96] 참고로 동갑인 연예인이 톰 크루즈, 짐 캐리, 양조위, 최민식, 최수종이 있다. [97] 상대 골키퍼가 이거 맞고 옷이 다 찢어져서 나체가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골키퍼는 그 슈팅으로 실점했다. [98] 이건 진짜로 장풍이다. [99] 소림축구, 쿵푸허슬, 장강7호를 더빙했다. [100] 일례로 IMDB의 한국 영화 정보의 경우, 동명이인이거나, 비슷한 이름을 가진 배우들의 출연작 정보가 엉망진창이다. [101] 다만 오늘날 와서 보면, 이게 역설적으로 어지간히 망작만 아니면 전성기 작품이 많다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102] 다만 짐 캐리는 애초에 코미디언으로 연예계에 데뷔했고 주성치는 정극 배우를 지망하여 연예계에 데뷔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103] 정확히 말하면 중국 광둥성의 전통극인 월극(粵劇) 배우다. 경극처럼 똑같이 화장을 진하게 하고 하이톤으로 연기를 하는 극이라 한국에서는 경극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으나 일단 언어가 광둥어인데다가 화장도 경극 화장보다 훨씬 더 짙은 편. [104] 광동어로 읽으면 대충 다빈치가 된다. [105] 이 작품은 특이하게 장기에프가 안 나오는 대신 춘리가 2명 나온다. 딸 춘리는 구숙정이 담당했다. [106] <가유희사>를 찍을 당시 곡덕소가 처음 갖고 온 각본을 읽은 고지삼 감독은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곧, 각본을 읽은 주성치가 "아무리 내가 다작을 하고 영화에 스타급의 주연들이 출연한다지만 이런 허접한 각본은 용납할 수 없다." 라고 불만족스러운 의견을 내며 촬영을 보이콧하였다. <가유희사>는 촬영 기한이 1달밖에 없는데다가 다른 주연 배우들의 스케줄 문제도 있어서 촬영 시기가 정해져 있었고 주성치는 당대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코미디 배우여서 제작사는 주성치를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곡덕소는 <가유희사> 각본가에서 강판될 위기에 처했고 이에 오기가 생긴 곡덕소는 당시 주성치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들을 밤을 새서 모두 보고 분석해서 일주일 후 에펠탑 키스 등의 명장면이 담긴 새 각본을 들고 왔다. 그리고 주성치는 이 각본을 보고 매우 만족해함과 동시에 곡덕소의 재능과 열정을 마음에 들어하며 이후로도 곡덕소와 협업을 이어나가게 된다. [107] 험악한 인상 탓에 주로 악역으로 자주 나온 배우다. 첩혈쌍웅이 대표적. 성규안은 주성치와 도협, 무적행운성 등을 같이 찍었다. [108] 쿵푸허슬에서 돼지촌 주인부부의 남편으로 캐스팅 예정이었다고 한다. 결국 스턴트맨으로 유명한 원화가 배역을 맡았다. [109] 사실 이전에도 한 번 단독 주연으로 드라마 제의가 왔었지만 지병이 심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거절했었다고 한다. 이후 다시 들어온 제안을 쿵푸허슬 출연 문제로 거절한 것. [110] 이 쪽 역시 홍금보를 대놓고 싫어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과거에 홍금보에게 무술을 배울 때 엄청나게 인격모독을 당했다고. [111] 주성치의 영화에서 손오공이 아주 건방진 자세로 여의봉을 목 뒤에 얹은 포즈. [112] 인스타그램 [113] 對此,周星馳的助理否認戀情,回應2人根本不熟,「那天船上還有一大群人,前2天女生都有主動找星爺去玩無繩滑水,但星爺都沒理她和沒有回覆她,因為大家都不熟,一大票人出海玩水也不知道為什麼可以寫成這樣. [114] 주성치는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장효기가 인지도를 올려 연예계 활동을 쉽게하려는 것으로 보았다. [115] 대략 한화 1700만원에 달한다. [116] 1996년, 1997년, 2002년에 선거회의위원으로 지냈다. [117] 진도명은 정협 위원을 지내는 동안에 정치적인 발언을 한마디도 하지 않아서, 딱히 정치꾼들 사이에서 까이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 [118] 영국령 홍콩 시절에도 주성치는 중국인이면서 영국 여왕 생일에 쉬는 홍콩인들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블랙코미디를 넣은 바가 있다.(도학위룡) [119] 대만의 경우에는 21세기 들어서는 거의 전멸했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자신을 대만인이 아니라 그저 중국인으로 여기는 비중도 상당했다. 21세기 들어서도 주류는 중국인이면서 동시에 대만인으로 여기는 것이었고 2010년대 중국 정부의 폭주와 양안관계의 악화로 대만인으로만 여기는 비중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120] 물론 중공 당국이 홍콩 시위대를 독립분자, 반란군 운운하며 폭력 진압할 여지도 있기에 이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주요 홍콩 정치인 중에선 대놓고 독립을 주장하는 경우는 잘 없지만, 네티즌들 중에선 독립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121] 이연걸도 비슷한 케이스인데, 그도 SNS에 딱히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진 않는 편이며 애초에 이미 국적을 여러번 바꿔 지금은 중국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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