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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2024 시즌 코칭스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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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colbgcolor=#000><colcolor=#fe5a1d> 감독 | 83 아베 신노스케 | |
1군 |
76
니오카 토모히로(헤드코치 겸 타격수석코치) · 74
무라타 요시노리(종합코치) · 81
스기우치 토시야(수석투수코치) 77 우츠미 테츠야(투수코치) · 78 카와이 마사히로(내야수비코치) · 79 카메이 요시유키(외야수비·주루코치) 88 사네마츠 카즈나리(배터리코치) · # 아나부키 이쿠오(트레이닝코치) |
||
2군 |
73
쿠와타 마스미(2군 감독) · 75
안도 츠요시(헤드코치) · 71
야마구치 테츠야(수석투수코치) · 72
오타케 켄(투수코치) 85 와키야 료타(내야수비·주루코치) · 82 스즈키 타카히로(외야수비·주루코치) · 87 하시모토 이타루(타격코치) · 89 카토 켄(배터리코치) # 이시모리 타카시(트레이닝코치) |
||
3군 |
70
코마다 노리히로(3군 감독) · 86
후루키 시게유키(타격코치) · 100
미사와 코이치(수석투수코치) 104 노가미 료마(투수코치) · 105 요시카와 다이키(내야수비코치) · 103 킨죠 타츠히코(외야수비·주루코치) 102 이치카와 토모야(배터리코치) · 108 박석민(육성코치) · # 존 터니(트레이닝코치) |
||
순회 | 84 쿠보 야스오(순회투수코치) · 110 젤러스 휠러(순회타격코치) |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선수 | |||
틀: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돌아가기 다른 NPB 팀 명단 보기 |
아베 신노스케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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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노스케의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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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노스케의 수상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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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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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 2009 | 2012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c7bc69 우승반지}}} |
2009 |
키시 타카유키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 |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이마에 토시아키 ( 치바 롯데 마린즈) |
2012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최우수 선수(MVP) | ||||
아사오 다쿠야 ( 주니치 드래곤즈) |
→ |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블라디미르 발렌틴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2002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포수 부문 베스트 나인 | ||||
후루타 아츠야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 |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야노 아키히로 ( 한신 타이거스) |
2007~2014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포수 부문 베스트 나인 | ||||
야노 아키히로 ( 한신 타이거스) |
→ |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나카무라 유헤이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2002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 ||||
후루타 아츠야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 |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야노 아키히로 ( 한신 타이거스) |
2008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 ||||
타니시게 모토노부 ( 주니치 드래곤즈) |
→ |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타니시게 모토노부 ( 주니치 드래곤즈) |
2013년~2014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 ||||
타니시게 모토노부 ( 주니치 드래곤즈) |
→ |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나카무라 유헤이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2012년 센트럴 리그 수위타자 | ||||
초노 히사요시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토니 블랑코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
2012년 센트럴 리그 최다 타점 | ||||
아라이 타카히로 ( 한신 타이거스) |
→ |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토니 블랑코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
2012년 센트럴 리그 최고 출루율 | ||||
토리타니 타카시 ( 한신 타이거스) |
→ |
아베 신노스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블라디미르 발렌틴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아베 신노스케의 보유 기록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일본프로야구 보유 기록 |
포수 시즌 최고 타율 (0.3404, 2012년) | |
좌타자 통산 최다 사구 (152개) | |
연속 수비기회 무실책 (1709회) |
센트럴 리그 보유 기록 |
포수 최초 통산 400홈런 및 350 2루타 달성 |
최다 상대 투수 홈런 (233명) |
교류전 최다 홈런 (60개) |
WBC 보유 기록 |
1이닝 2홈런 (2013) |
아베 신노스케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fe5a1d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10번}}} | ||||
히로사와 카츠미 (1997~1999) |
→ |
아베 신노스케 (2001~2019) |
→ |
저스틴 스모크 (2021) |
|
{{{#fe5a1d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80번}}} | |||||
고토 코지 (2019) |
→ |
아베 신노스케 (2020~2023) |
→ | 결번 | |
{{{#fe5a1d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83번}}} | |||||
하라 타츠노리 (2019~2023) |
→ |
아베 신노스케 (2024~) |
→ | 현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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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d5a1e> 요미우리 자이언츠 No.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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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노스케 阿部慎之助 | Shinnosuke Abe |
|
출생 | 1979년 3월 20일 ([age(1979-03-20)]세) |
치바현 히가시카츠시카군 우라야스초 (現 치바현 우라야스시)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야스다가쿠엔 고교(安田学園高等学校) 주오대학 |
신체 | 180cm, 97kg |
포지션 | 포수, 1루수 |
투타 | 우투좌타[1] |
프로입단 | 2000년 드래프트 1라운드 (요미우리)[역지명] |
소속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1~2019) |
지도자 |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감독 (2020~2021)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작전·수비치프코치 (2022)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수석·배터리코치 (2023)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 (2024~) |
등장곡 | Earth, Wind & Fire - September |
응원가 |
요미우리 초창기(01~07)[3] 요미우리 중반기 이후(08~19)[4] |
[clearfix]
1. 개요
|
개인 통산 400홈런을 달성한 모습 |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포수이자 현재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슬러거 포수 였으며, 타카하시 요시노부를 이은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인 요미우리 순혈 슈퍼스타.[5] 다만 한국에서는 국대 경기때마다 털리는 호구 이미지가 왠지 강한 편(…)[6]. 그래도 이승엽이 요미우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던 2006~7시즌을 비롯 요미우리 소속 선수 시절 내내 요미우리의 주전 포수였고 주로 이승엽의 다음 타석인 5~6번 타자로 많이 출전했기 때문에 당시 국내에 꾸준히 생중계 되었던 이승엽 출전 경기를 종종 보았던 팬들은 잘 알고 있는 선수이다.
2. 아마 시절
주오대학 시절부터 도토 대학야구리그에서 타격으로 주목받았다. 대학시절에 이미 1998 방콕 아시안게임, 2000 시드니 올림픽 등 프로-아마 통합으로 구성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될만큼 실력을 인정받았으며,[7] 결국 2000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에 1순위로 지명됐다. 당시 받은 계약금은 10억엔(한화 약 100억)으로 MLB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계약금으로 4년간 1,510만달러(188억원)를 받기 전까지 세계 아마야구 최고 금액이었다.3. 프로 경력
신인시절의 야구 카드.
옆에 있는 선수는 마쓰이 히데키.
데뷔시즌인 2001년, 야마쿠라 카즈히로 이후 요미우리 구단 사상 2번째로 신인 포수로서 개막전 마스크를 쓰는 위업을 달성한다. 데뷔 첫 해부터 10년 동안 주전 포수로 활약한 무라타 신이치를 벤치 멤버로 보내버렸고, 무라타는 시즌 후 바로 은퇴해버렸다...[8] 데뷔시즌인 2001시즌 성적은 0.225, 13홈런 44타점으로 뭔가 2% 아쉬운 모습이었지만, 2년차인 2002시즌에는 0.298 18홈런 73타점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고, 수비력도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베스트나인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아베의 활약에 힘입은 요미우리는 센트럴리그 우승에 이어 일본시리즈에서도 세이부 라이온즈를 4:0으로 떡실신시켜버렸다.
2003 시즌에는 부상 때문에 93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이듬해인 2004년에는 33경기만에 시즌 20홈런을 기록[9]하는 등 타격에 완전히 눈을 뜬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후반기에 페이스가 급격히 저하되며 최종 성적은 0.301, 33홈런 78타점에 그쳤(?)지만 요미우리 역대 포수 중 최초로 30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된다. 2005시즌에도 26홈런을 때려내며 팀의 공격을 주도했지만, 이승엽이 입단한 2006시즌에는 0.294 10홈런 56타점에 그치며 데뷔시즌 이후 가장 저조한 타격 성적을 기록했다.
2011 시즌에는 부상 때문에 시즌을 다소 늦게 시작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0.292, 20홈런, 61타점의 성적을 기록한다. 공인구의 변경으로 인한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그리고 2012 시즌에는 타율 0.340 출루율 .428 장타율 .565 OPS .993 27홈런 104타점이라는, 저반발 공인구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적[11]을 기록하며 데뷔 이후 처음으로 타이틀(타격왕, 타점왕)을 거머쥐었고,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압도적인 득표로 센트럴리그 MVP를 수상하고 일본 야구계 최고권위의 상인 쇼리키 마쓰타로상도 받으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2013 WBC에서 일본 대표팀의 '주장, 4번타자, 주전 포수'로 낙점받았으나, 중압감 때문인지, 시즌 초라 아직 몸이 덜 풀렸던 탓인지, WBC 기간 동안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시즌 들어가서는 135경기 0.296, 32홈런, 91타점으로 팀내 홈런 1위, 타점 1위를 차지하며 여전한 강타자의 면모를 과시했지만 정작 일본시리즈에서는 22타수 2안타 타율 0.091로 부진하며 라쿠텐에게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시즌 이후 구단측에서 마쓰이 히데키의 6억 1천만엔을 넘는 연봉 6억 2천만엔을 제안했지만 일본시리즈에서 부진했다는 이유로 고사했다고 한다. 이후 6억엔에 합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4년 들어서 부진하면서 신인 포수 고바야시 세이지에게 밀리고 8월부터 1루수 출전을 시작하게 됐다. 1루수로 출전하면서 성적이 조금씩 반등하는 중. 사실 이동안에도 줄곧 4번 타순에 들어섰는데 2014년도 요미우리 타자진 상황이 영 좋지 않기 때문이다.[12]
결국 2014 시즌이 끝나고 하라 감독과 면담을 한 이후 1루수로 완전히 전향을 선언했다.
2015년 4월 3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홈 경기에서 오래간만에 포수 포지션으로서 경기에 출전했다. 이유는 올해 FA로 영입한 대형 포수 아이카와 료지[13]가 지난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오른쪽 다리 근육 부상을 입어 주전 포수 자리가 부재중인 상태라는 비상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날 경기가 중요했던 것이 팀의 3연패라는 좋지 못한 흐름을 끊어야 되는 경기라는 부분도 있지만 자타공인이 인정하는 요미우리의 최고 라이벌 팀 한신을 상대로 상대전적 1000승이라는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경기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승리를 잡아내야만 했던 것이었다. 때문에 결국 믿고 맡길 수 있는 아베에게 포수 역할을 부탁한 것. 그리고 아베는 감독의 기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포수 마스크를 썼을 땐 1회 말 니시오카 츠요시의 도루를 저지해냈고 타격 쪽에선 4타수 2안타(그 중 하나는 2루타)라는 맹활약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팀은 패해 버렸다. "연패를 어떻게든 막고 싶었지만 팀이 져버려서 아쉬웠다"라는 것이 경기 후 코멘트. 여담으로 아베는 혹시 몰라 포수 장비를 집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날 경기에서 예전 포수 장비를 갖추고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뒤로도 1루수보다는 포수로 출전한 빈도가 훨씬 높았고, 이를 두고 네이버에 일본야구 칼럼 리포트 쓰는 키무라가 칼럼 한 편을 통째로 써서 까기도 했었다. 그러나 교류전 도중 목 부상이 재발, 결국 다시 2군으로 내려가야 했다. 2015년 시즌의 성적(타율 .242 15홈런 47타점)이 썩 좋지 못했는지 연봉이 무려 36%나 까였다. 이는 NPB 사상 4번째 최대 감소폭.
2016 시즌에도 잦은 부상으로 부침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또 다시 연봉삭감을 피할 수 없었다. 기존 연봉에서 6600만엔이 삭감된 약 2억 6000만엔에 2017시즌 연봉이 책정되었다.
2017년 8월 13일,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에서 열린 히로시마와의 원정경기에서 마무리투수 이마무라 타케루를 상대로 4대 1로 뒤진 상황에서 9회 우전안타로 마침내 NPB 사상 49번째로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였다. 교진군에서만 뛴 프랜차이즈로서는 1980년의 시바타 이사오 이후 무려 37년 만에 나온 2000안타 달성자이자 역대 포수 4번째 겸 교진군 포수 최초의 2000안타 달성자이다. 요미우리, 히로시마 팬들이 아베의 2000안타가 나올 때 우레와 같은 박수와 성원을 보냈으며 먼저 2000안타를 달성한 아라이 타카히로가 2000안타 달성 꽃다발을 선물했다.
선수 본인이 TV 도쿄에서 2017년 2월 밝힌 바에 따르면, 요미우리 입단시부터 "2000안타 기록 달성은 전혀 생각치 못했다" 라고 한다. 여담으로 한때 팀메이트였던 오다 코헤이가 2017년 아베의 생일에 2000피스 퍼즐을 선물했는데 2000안타까지 38안타가 남아서 이 38조각을 뺀 상태로 선물했다고.
2000안타 달성 이후 닛폰 테레비 스포츠뉴스 프로그램 <Going>에 출연했는데, 13년 전 스프링캠프에서 자신에게 사인을 받고 운 팬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영상
2017년 11월 27일 도쿄 구단사무소에서 가진 연봉협상에서 올시즌보다 5000만엔 삭감된 2억1000만엔에 2018시즌 연봉계약을 체결했다. 올 시즌에도 주전 1루수로서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프로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지만, 최종성적은 129게임을 뛰며 지난해보다 약간 나은 타율 .262 15홈런 76타점에 그치고 만다. 천하의 아베에게도 현역생활의 끝이 점점 다가오는 모양.
2018년 시범경기에서 젊은 우타거포 1루수 유망주 오카모토 카즈마가 두각을 나타내며 개막전부터 요미우리의 1루수 자리를 차지했고, 아베는 1루수에서도 백업 역할로 물러났다. 95게임 출전에 그쳤으나 구단 신기록인 입단 첫 시즌부터 18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했다.
2019년 시즌에 포수 재도전을 선언했으며 레귤러 포수인 고바야시 세이지, 세이부에서 영입한 베테랑 포수 스미타니 긴지로와 주전 마스크를 놓고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즌 개막 후엔 작년과 마찬가지로 주로 대타 등 백업 멤버로 나오는 중이지만 출장 기회가 작년보다 더 줄었다. 거기다 개막 후 5월 때까지 무홈런에 머무르는 등 장타력이 더욱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6월 1일, 대 주니치 드래곤즈 전에서 첫 홈런을 신고함과 동시에 통산 400홈런을 달성했다. 통산 400홈런은 일본프로야구 사상 19번째 기록이자 포수로서는 노무라 카츠야와 타부치 코이치 이래 3번째 기록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내에서는 V9 당시의 레전드 오 사다하루, 나가시마 시게오 이래 구단 사상 3번째의 쾌거이다. 그 뒤 이전보다 장타력이 오르는 모습을 보이며 6월 9일, 13일에 치바 롯데 마린즈,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상대로 2, 3호 홈런을 날리면서 230명의 투수에게서 홈런을 빼앗아 홈런을 빼앗아 낸 투수의 수 신기록을 달성하였다. 9월 13일 기준 타율 .303으로 3할 타율을 웃돌고 있다. 장타력은 감소했지만 감도있는 타격은 여전한 듯. 그리고 9월 24일 이번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0년부터 지도자로 전향한다고 한다. 9월 27일,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홈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1580일만에[14] 선발 포수 마스크를 썼다. 그리고 이날 4번타자로 출전하여 4회에 시즌 7호 홈런(통산 406호)을 기록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또한 아직 포스트시즌이 남아있으므로, 아베의 모습을 조금은 더 볼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아직 은퇴하기는 아까운 활약을 연이어 펼치는 중. 한신과의 파이널 스테이지 1, 3, 4차전에서 5번 1루수로 선발출장, 1차전에선 고의사구를 얻어냈으며 3차전에서는 승리를 굳히는 1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이어지는 일본시리즈에서는 1차전 5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 센가 코다이를 상대로 2회 선제 솔로홈런을 뽑아냈다. 하지만 팀은 0-4로 패배. 그리고 4차전이 끝나고 시상식을 마친 후 양 팀 선수들이 나와 마지막 경기를 치른 아베를 헹가레쳤다.
사실 타 팀으로 옮기거나 교진에 남더라도 연봉을 대타요원에 맞게 삭감한다면 충분히 백업~대타요원으로서 현역생활을 몇년 더 연장할 수 있는 기량이지만 슈퍼스타에게 연봉은 자존심 문제라 함부로 많이 깎을 수도 없을 뿐더러 교진이 현재 마땅한 감독감이 없어서 하라 다쓰노리를 다시 불러온 상황인지라... 다카하시 요시노부가 그랬듯이 지도자 수업을 거쳐 아베를 추후 감독으로 앉히기 위한 은퇴인지라 기량에 비해 좀 이른 감이 있는 은퇴. 지명타자제도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센트럴리그의 팬들 중에서도 지명타자 제도만 있었으면 2~3년은 충분히 더 현역으로 뛰었을 수 있을 거라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2019시즌 종료 뒤 모두의 예상대로 2군 감독
3.1. 국가대표 경력
- 대학 시절이던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선발되어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결승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패하면서 은메달 획득에 그쳤다. 이때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포수로 앉아쏴를 시전하던 젊은 조인성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포수 미트에 'No Steal'이란 자수를 새겨놓을 정도로 도루저지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던 모습도 기억에 남았다고. 2017년 12월에는 조인성의 은퇴를 축하하러 아베가 한국을 찾기도 했다. 엠스플뉴스 기사
-
2000 시드니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참가했으나 2번 모두 메달획득에 실패했다.[15]
2004 아테네 올림픽에도 발탁 가능성이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당시 아테네 올림픽에 포수로 간 선수는
죠지마 켄지[16]와 아이카와 료지의 2명으로, 죠지마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전에 그 해
타격 삼관왕을 달성한
마츠나카 노부히코와 타이틀을 놓고 경쟁을 벌였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성적을 기록한 반면, 아이카와 료지는 타격 성적이 특출나진 않았고 오히려 수비형 포수에 가까웠기에 수비 보강 차원에서 데려간 것이었다. 그 해 아이카와의 성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올림픽 이전까지의 성적이 타율 .249, 홈런 6개에 볼삼비는 11볼넷/45삼진으로 크게 나빴으며 K%는 무려 22.8%였다. 거기에 아이카와 료지는 타율 .302를 기록한 2007년, 11홈런을 친 2010년을 제외하면 커리어 내내 3할 타율, 두자릿수 홈런, OPS 7할 이상을 기록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장타툴이 없고
똑딱이에 가까운 타자였다.
컨택 자체는 포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럭저럭 쳐 준다고 볼 수 있었으나 아이카와가 주전으로 뛸 당시의 일본프로야구가 극도의 타고투저에 빠진 시기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볼넷도 적어서 출루율도 낮았던 데다 그나마 가장 높게 평가받은 수비력도 아베에 비해 매우 뛰어나진 않았다. 오히려 당해년도 대다수 수비 지표에서 아베[17]가 아이카와[18]보다 크든 작든 우위를 기록했을 정도였다. 포수 리드가 사실상 허상에 가깝다는 것이 정설이 된 지금 시점에선 그냥 대놓고 아베를 쓰는게 맞다고 봐도 될 정도의 유의미한 차이.
또한, 아베는 4월 9일부터 4월 16일까지 6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고 4월 28일에는 3홈런을 기록하는 등 세계 최단 기록인 개막 33경기 만에 20홈런을 달성하며 빼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던 중이었다. 그렇기에 당해년도 8월에 있던 아테네 올림픽 발탁에도 기대가 모아졌던 것. 항간에는 아베가 당해년도 8월에 부상을 입어 라인업에서 제외된 것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아테네 올림픽 일본 대표팀 라인업 발표는 7월 6일이었다. 즉, 7월에는 부상도 아니었고 성적상 안 뽑힐 이유가 없었던 것.
그렇다고 아베가 수비가 불안한 포수도 아니었고, 정작 수비 보강용으로 데려간 아이카와 료지는 점수차가 매우 벌어진 상황에 1이닝씩[19]만 총 3경기에 대수비로 출전하였고 타석에는 들어서보지도 못했다. 당시 일본 대표팀이 대회에서 9경기를 치렀으니 사실상 죠지마만 거의 풀타임 포수로써 구르다 온 셈.
더욱 아쉬운 건 2004 아테네 올림픽 당시의 일본 대표팀은 일본프로야구 정예 1군을 데려가긴 했으나, 팀 전력 안배 차원에서 각 팀당 2명 차출 제한을 두었다는 것이다.[20] 이 때문에, 요미우리에서는 우에하라 코지와 타카하시 요시노부가 발탁된 것이며 대표팀 전체적으로 라인업이 짱짱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최정예까지는 아니었다. 애초에 최정예로 전력을 꾸렸다면 전년도 성적으로 보나, 2004년 전반기 성적으로 보나 아베가 못 뽑힐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2004년 올림픽 출전 실패와 더불어 정작 출전한 올림픽들에서도 메달 하나 못 건졌다는 점에서, 아베와 올림픽은 악연으로 남게 되었다.
-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과의 경기에서 수많은 찬스 무산, 도루 저지 실책[21] 등으로 한국에 많은 도움을 줘, 역시 승짱의 친구!라는 각인을 남겼다.
허구연 해설위원이용철 해설위원[22]은 이를 '고마워요 아베' 라고 표현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일전에서 아베의 타자의 중견수 앞 안타급으로 빗나간 2루 송구는 베이징 때가 전부가 아니었다. 2009 WBC 2라운드 순위 결정전 당시, 아베는 주전 포수로 출장하였다. 실책은 4회에 발생하였다. 4회에는 선발 우츠미 테츠야의 뒤로 고마쓰 사토시가 마운드를 이어받아 등판한 상황이었으며 2사 1루 상황에서 1루 주자 이택근이 2루 도루를 시도하였고 아베가 송구하였으나(...) 이번에도 2008 베이징 때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빗나간 2루 송구가 나왔고 이택근은 그 덕에 3루까지 진루하였다.
-
2000 시드니 올림픽과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4차례의 한일전에서 1경기(베이징 올림픽 예선전)를 제외한 나머지 3경기에서 경기를 마무리짓는
허용타자였다(...) 참고로 이 3경기 모두 대타로 나왔으며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두번 모두 내야땅볼(예선전때는 병살타, 3-4위전때는 2루땅볼로 1루주자 아웃되며 경기 종료), 베이징 올림픽 4강전에서는 우익수 플라이를 치며 경기 종료.[23]
시드니 올림픽 예선전 박스스코어(일본어)
시드니 올림픽 3-4위전 박스스코어(일본어)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 박스스코어(일본어)
위 3개의 링크에서 9회에 打 阿部(아베)를 찾으면 된다. 단, 시드니 올림픽 예선전은 연장 10회.
4. 은퇴 이후
2020 시즌부터 요미우리의 2군 감독을 맡게 되었는데,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방식에서 구세대적 야구관을 드러내고 있어 논란이 되었다. 잘못하면 한신의 가네모토 도모아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 실책→펑고 300개, 볼넷→30분 질책, “진짜 악마인가” 아베 감독의 지옥 훈련2020년 3월 23일 와세다대학 야구부와의 교류전에서 투수진이 9볼넷을 허용하며 패배했다고 한다. 그 후 선수들에게 쓴소리도 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그 경기 패배 후 체벌로 달리기를 지시했다고 한다. 대학팀에 패배한 日 프로 감독, 선수단 전원 '벌주' 지시 이 이후 벌주는 하지 않고 있다.[24]
2020년 4월 25일 아베 2군 감독, 주장 사카모토 하야토, 마루 요시히로, 스가노 도모유키 하라 다쓰노리1군감독 등 5명이 1000만엔씩 총 5000만엔(약 5억7000만원)을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을 위해 기부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2020년 9월 16일 도쿄돔에서 진행된 한신 타이거즈와의 경기에 1군 수석코치 대행으로 1군 덕아웃에 들어왔다. 원래 수석코치인 모토키 다이스케가 급성맹장염 때문에 응급실로 실려갔기 때문. 모토키 코치가 회복된 이후에는 다시 2군 감독으로 복귀했다. 참고로 모토키는 그 오다 코헤이 이지메 주동자 맞다.
비록 올드스쿨에 입각한 지도방식을 가졌다고는 하나 언론에서 말한대로 강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고[25] 육성 실적이 아예 전무한 것도 아니기에 아직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다만 무리한 체벌로 인해 선수단의 부상위험이 커지는 점과 이러한 강압적이고 구시대적인 지도방식은 멘탈이 약한 선수들에게 심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고쳐나가야 할 점이다.
여튼 현 2군 감독으로서, 현임 하라 감독 이후 차기 감독 후보로 가장 유력한 인사 중 하나. 경쟁자로는 전전임 감독이자 현재 해설을 하며 권토중래를 노리는 다카하시 요시노부와 와세다에서 야구행정 공부를 하다가 코치로서 현장에 복귀한 구와타 마스미가 있는데, 현재로서는 세 명 다 고만고만한 상황이다.
2021년 2월 21일 스프링캠프에서 투수의 공을 받아주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5. 지도자 경력
2022 시즌에는 2군 감독에서 1군 작전·수비 치프코치로 자리를 옮겼으며 2023 시즌부턴 수석코치로 전임했다. 이때 아베, 타카하시와 함께 차기 감독 후보군으로 거론되던 쿠와타 마스미 투수코치가 팜 총감독으로 사실상 좌천된 것과 겹치며 현임 하라 타츠노리의 뒤를 이을 감독으로 아베가 내정되어 사실상 후계자 수업에 들어간 것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이후 2023 시즌을 끝으로 하라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후임 감독으로 취임할 것이 유력하다는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가 나왔다.
5.1. 요미우리 감독 시절
2023년 10월 4일자로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함에 따라 요미우리 자이언츠 18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니혼 TV와의 인터뷰에서는 아키히로 유토, 카도와키 마코토 등 야수들의 기용책을 미리 밝혔고, 10월 27일날 열릴 드래프트에서 즉시전력감 투수를 선발하겠다고 밝혔다.6월 10일 현재 29승 27패 4무로 3위를 달리고 있지만 새로운 선수보다는 부진한 기존의 선수[26]를 계속 쓰는것 [27]과 번트를 남발하고 경기에서 패배한 날엔 선수에게 책임을 돌리는 발언을 하는 것과 지도자 커리어 내내 지적받던 강압적인 태도 등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시즌 중반이 지나면서 과도한 번트 시도를 자제하는 등 개선점을 조금씩 보인 결과 서서히 성적을 내기 시작하여 한신-히로시마와 1위 경쟁에 뛰어들더니 9월에는 1위에 등극, 매직넘버까지 점등시키며 취임 첫 해부터 리그 우승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9월 27일 현재 센트럴 리그 우승까지 매직넘버 1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 그리고 9월 28일 요미우리가 히로시마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고 매직넘버가 소멸, 센트럴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이후 펼쳐진 CS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요코하마를 맞이해서 1차전부터 3차전까지 내리 패배를 당하며 탈락 위기에 몰려있다. 특히나 타선이 3경기 동안 고작 2득점에 그치는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 사실 타선의 심각한 침체로 인하여 연패한 것이다보니 아베의 감독으로서의 실책은 딱히 두드러지진 않았는데, 포스트시즌 경력이 적은 선수들이 많은데도 파이널 스테이지 시작 전 선수들에게 알아서 타격감을 관리하도록 자율적으로 방임한 게 오히려 안 좋게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편.
그러다 4차전에서 7회 말 스퀴즈에 이은 상대의 실책 덕분에 내리 3득점을 뽑아내면서 4:1로 감독 첫 포스트시즌 승리를 거두며 일단 핸디승 포함 시리즈 전적 2승 3패를 만들었다. 5차전도 타선은 1점을 뽑는데 그쳤지만 투수들의 활약으로 승리, 3승 3패로 균형을 맞추며 승부를 6차전까지 끌고 갔다.
6차전에서 초반 상대 송구 실책으로 선취점을 얻었고, 4회에는 주자 1, 3루 상황에서 토고 쇼세이에게 스퀴즈 번트를 지시하며 1점을 짜내 2:0의 스코어를 만들었다. 그러나 직후 이어진 요코하마의 공격에서 내리 2실점을 하며 동점을 허용했고, 9회 초 2사 3루 상황에서 스가노 토모유키가 마키 슈고에게 역전 적시타를 맞는 바람에 결국 2:3으로 패배하며 일본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는 수모로 감독 첫 해를 아쉽게 마무리했다.
6. 플레이 스타일
공수를 겸비한 2000년대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포수. 후루타 아츠야가 늙고 조지마 겐지가 메이저로 떠난 뒤 2010년대 초반까지도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공격형 포수 자리를 꾸준히 지켜왔고, 현재도 이 계보를 이을 강타자 포수의 등장은 다소 요원한 상황이다.[28]매 시즌 20~30홈런은 꾸준히 기록할 수 있는 파워를 지녔으며, 타율은 3할대 몇 차례와 3할에 가까이할 기록했을 정도로 정교함도 갖추었다. 그 덕분에 현재 일본 최고의 공격형 포수 1순위로 꼽히고 있으며, 그 진가는 2009년 일본시리즈나 2009 한일 클럽 챔피언십 등에서 제대로 보여줬다. 2016 시즌 종료 기준으로 통산 373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는데, 은퇴 시점에서 통산 400홈런~450홈런을 기대할 수도 있는 수치다.[29] 특히나 2011~12년의 통일구 사태로 대표되는 최악의 투고타저 시대를 정면으로 관통하면서 최고의 성적을 냈다는 점과, 동시대 공격형 포수 라이벌이라 할 만한 선수가 전무했다는 포지션 보정이 합쳐져서 일부 세이버메트릭스적 지표상으로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강의 포수, 요미우리 자이언츠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기도 한다.
다만 투수 리드, 도루 저지율 등 수비력은 다소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방망이에 가려져있어서 그렇지 수비력이 바닥인 선수는 아니고 2002시즌과 2008시즌에는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이후로 1루수로 전향할 예정이라 위의 이야기는 사실상 사어가 되나.... 했지만 요미우리 포수진 상황이 워낙 좋지 못하여 결국 잠시동안은 포수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지만 코바야시 세이지의 활약[30]으로 2016년부터는 1루수를 전담으로 맡게 되었다. 단 노쇠화된 몸으로 익숙지 않은 포지션을 소화하다보니 1루 수비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소리는 못 듣고 있다. 2018년 11월 6일 드디어 4년만에 포수로 복귀했다.
7. 기타
- 2012년 10월 28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일본시리즈 2차전에서 투수인 사와무라 히로카즈가 1회부터 선두타자를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시키고 견제 사인까지 놓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자 마운드로 가서 뒤통수를 한 대 때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시합 초반부터 터진 황당한 일이었으나, 직후 사와무라는 다시 정신을 차려 8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쳤고 요미우리도 2차전을 가져가게 되었다. 후에 당시 상황을 아베 본인이 버라이어티 방송에 출연하여 직접 해설하기도 하였다. #
이후 아베의 은퇴시즌이었던
2019년
9월 27일에
도쿄돔 최종전이자 본인의 은퇴기념 시합에서 당사자들이 이 해프닝을 그때처럼 진짜로 때리진 않았지만 직접 재현하며 마지막으로 아베의 플레이를 보러 온 팬들에게 큰 재미를 주었다.
이 광경을 보고
하라 타츠노리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웃고 말았고(...)
도쿄돔에서 그 장면이 전광판으로 리플레이되는 와중에 아베가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영 좋지 않은 곳을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31]
- 국내에는 이승엽의 절친으로도 유명하다. 이승엽과 아베는 서로 히어로 인터뷰에 나가게 되면 각각 서로의 언어로 말하기로 했는데, 둘 다 약속을 지켰다. 실제로 이승엽과 친해지기 위해 직접 한국어 공부를 하고 한국어 편지도 이승엽에게 썼을 정도의 절친이었다. 이승엽 항목 상단에 보면 아베가 쓴 편지가 적혀 있다. 이승엽의 은퇴식에 나온 영상편지에도 영상을 보냈다. 당연하게도 한일통산 400호 홈런당시 같은 팀 선발포수였다.
- 만화 크게 휘두르며의 주역인 고등학교 포수 아베 타카야는 본래 작품 구상단계에선 '아베 신노스케'라는 이름이었으나, 이 항목에서 다루고 있는 아베 신노스케가 시드니 올림픽 국대로 뽑히는 등 대활약하자 혹여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아베 타카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참고로 아베 신노스케와 아베 타카야는 실력있는 포수 + 타격능력도 좋다는 공통점이 있다.
- 일본시리즈 게스트 해설가로 자주 등판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2014년 일본시리즈에서는 아사히 방송에서 한신 코시엔 구장 경기 중계를 맡았으며 2016년에서는 TBS라디오, 닛폰 방송에서 2016년 일본시리즈 중계를 맡았다. 이때 4차전에서는 "4차전을 잡는 팀이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한다"[32]라고 했는데 정말로 4차전을 승리하며 2승 2패로 동률을 맞춘 닛폰햄이 이후 2연승을 거두며 시리즈를 제패했다. 다만 문제는 아베가 일본시리즈 게스트 해설을 맡는다는 것은 결국 요미우리가 일본시리즈를 못 갔다는(...) 이야기였다 보니 몇몇 팬들은 웃프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33]
- 타카하시 요시노부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물러날 시 차기 감독 1순위로 꼽히고 있었다. 그러다 요미우리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우에하라 코지가 다시 복귀했고 해외팀 진출 정도는 요미우리 구단측이 순혈로 인정만 해준다면 또 모르는 일이었지만 타카하시가 임기 3년 만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퇴한 뒤 하라 타츠노리 감독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요미우리 구단이 타카하시를 성급하게 감독에 앉혔다가 성적을 내지 못했기에 아베가 제왕학을 완벽히 배울 때까지 하라에게 다시 팀을 맡기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2023시즌 기준으로도 여전히 최유력 후보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고 결국 시즌이 끝나고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대부분의 프로 선수들이 그렇듯이 프로 초창기까지는 상당히 호리호리한 몸매를 하고 있었으나, 2005년 정도부터 몸매가 둥글둥글해지더니 점차 배가 크게 나오게 되었고 은퇴 직전에는 상당한 뚱보가 되어 버렸다. 다만 은퇴 후 다이어트를 해서 현재는 프로 초창기 때와 비교할 만한 수준의 몸매로 돌아왔다.
- 팬서비스가 최악이다.
- 국민적 사랑을 받은 포수인 만큼, 일본 프로야구 경기에서는 아베의 등장곡인 September만 나오면 12개 구단 팬들이 신노스케를 외친다. 영상은 치바 롯데 마린즈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간의 경기.[34]
8. 연도별 성적
역대 성적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AR | |
2001 |
요미 우리 |
127 | 428 | 87 | 18 | 0 | 13 | 40 | 44 | 3 | 31 | 79 | .225 | .293 | .373 | .666 | 0.9 | |
2002 | 127 | 511 | 133 | 26 | 0 | 18 | 62 | 73 | 4 | 46 | 81 | .298 | .377 | .478 | .854 | 5.1 | ||
2003 | 94 | 371 | 95 | 15 | 1 | 15 | 46 | 51 | 1 | 40 | 52 | .303 | .391 | .500 | .891 | 3.3 | ||
2004 | 108 | 436 | 114 | 22 | 1 | 33 | 61 | 78 | 0 | 43 | 87 | .301 | .391 | .625 | 1.016 | 5.9 | ||
2005 | 130 | 534 | 143 | 16 | 0 | 26 | 56 | 86 | 0 | 51 | 78 | .300 | .365 | .498 | .863 | 4.1 | ||
2006 | 129 | 497 | 133 | 26 | 2 | 10 | 39 | 56 | 0 | 35 | 76 | .294 | .349 | .427 | .776 | 3.5 | ||
2007 | 140 | 580 | 137 | 20 | 0 | 33 | 72 | 101 | 1 | 57 | 76 | .275 | .355 | .513 | .868 | 4.9 | ||
2008 | 125 | 484 | 116 | 27 | 0 | 24 | 60 | 67 | 1 | 44 | 66 | .271 | .350 | .502 | .852 | 4.1 | ||
2009 | 123 | 462 | 120 | 20 | 2 | 32 | 63 | 76 | 1 | 34 | 87 | .293 | .357 | .587 | .943 | 6.0 | ||
2010 | 140 | 569 | 140 | 27 | 2 | 44 | 85 | 92 | 0 | 58 | 91 | .281 | .368 | .608 | .976 | 7.3 | ||
2011 | 114 | 437 | 114 | 21 | 0 | 20 | 45 | 61 | 1 | 35 | 66 | .292 | .363 | .500 | .863 | 5.5 | ||
2012 | 138 | 556 | 159 | 22 | 1 | 27 | 72 | 104 | 0 | 69 | 47 | .340 | .428 | .565 | .993 | 8.6 | ||
2013 | 135 | 529 | 125 | 17 | 0 | 32 | 81 | 91 | 0 | 86 | 59 | .296 | .427 | .564 | .991 | 7.5 | ||
2014 | 131 | 526 | 114 | 24 | 0 | 19 | 49 | 57 | 1 | 58 | 77 | .248 | .340 | .425 | .765 | 2.7 | ||
2015 | 111 | 419 | 83 | 14 | 0 | 15 | 44 | 47 | 0 | 64 | 84 | .242 | .370 | .414 | .784 | 3.2 | ||
2016 | 91 | 387 | 104 | 13 | 0 | 12 | 43 | 52 | 0 | 44 | 55 | .314 | .394 | .457 | .853 | 1.5 | ||
2017 | 129 | 512 | 119 | 13 | 0 | 15 | 41 | 76 | 0 | 41 | 67 | .262 | .329 | .389 | .719 | 0.1 | ||
2018 | 95 | 223 | 49 | 6 | 0 | 11 | 22 | 46 | 0 | 21 | 55 | .247 | .324 | .444 | .769 | 0.2 | ||
2019 | 95 | 192 | 47 | 8 | 0 | 7 | 15 | 27 | 0 | 28 | 53 | .297 | .411 | .481 | .892 | 1.1 | ||
NPB 통산 (19시즌) |
2282 | 8651 | 2132 | 355 | 9 | 406 | 996 | 1285 | 13 | 885 | 1306 | .284 | .368 | .495 | .863 | 75.7 |
9.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전적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무 | 승률 | 정규시즌 | 포스트시즌 |
2024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43 | 77 | 59 | 7 | .566 | 리그 1위 | CS2 탈락 |
총계 | 143 | 77 | 59 | 7 | .566 | |
10. 관련 문서
[1]
원래는 오른손잡이지만
한신 타이거스의 레전드인
카케후 마사유키를 동경해
타격할때 만큼은 왼손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참고로 카케후도 아베와 마찬가지로
치바현 출신.
[역지명]
[3]
吠えろ慎之助 オオオオッオ 行けよ慎之助 熱くなれ(외쳐라 신노스케 오오 오오오 가자 신노스케 뜨거워져라), 링크는 음원 버전이라 48초부터 가사가 나온다.
[4]
最高の笑顔 見せてくれ 慎之助 明るく逞しく 導けよ 永久に(최고의 미소를 보여줘 신노스케 밝게 씩씩하게 이끌어줘 영원히)
[5]
다카하시가 감독직을 수행하는 기간 동안 아베는 선수생활 말년 → 은퇴 → 해설자 → 코치로 복귀해서 감독수업의 일정이 거의 들어맞는다. 현재 요미우리의 현역 내지는 코칭 스탭 중에 아베와 견줄만한 위상을 가진 인물이 없기 때문에 큰 변수가 있지 않는 한 미래에 감독이 될 것이 거의 확실시 되었으며 결국 감독직에 앉았다.
[6]
베이징 올림픽때 2루 송구라든지..
[7]
주전은 당시
주니치 드래곤즈 백업포수이자 현재
SSG 랜더스 배터리코치인
스즈키 후미히로의 몫이었고, 한국과의 3·4위전에서 9회 2아웃 상황에 대타로 나와서 경기를 끝내는 땅볼을 쳤다.
[8]
하지만 무라타는
순혈주의 때문에 빠른 은퇴를 선택했다고 보는 쪽이 맞다. 은퇴 이후 커리어가 딱 그렇다. 문제는 그동안 요미우리가 굴곡이 심해서 하라가 2번이나 그만뒀다 다시 돌아오는 혼란기를 거치는 동안 감독이 될 시기를 놓쳤고, 아베와 다카하시 요시노부라는 40대 스타들로 빨리 물갈이 돼버린 것이다.
[9]
이는 시즌 20홈런 최단경기 세계기록이다(!).
[10]
다만 타점은 67타점에 불과하다.
[11]
WAR이 9.3이다. 포수로서는 NPB 역대급 시즌.
[12]
3할, 50타점을 넘긴 선수가 단 한명도 없다. 그래서 그나마 예전에 해준게 있는 아베가 4번 타자로 나서는것.
[13]
남동생은 배우 주리
[14]
2015년 5월 31일 라쿠텐 이글스전
[15]
팀동료
스기우치 토시야도 같은 케이스이다.
[16]
2004 아테네 이전 0.343의 타율과 무려 34홈런을 쳐내고 있던 중이기에 아베 신노스케가 뽑혔더라도 조지마의 후보 포수였을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17]
108시합 출장, 894자살 56보살 10병살 2실책 수비율 .998/38허용 18저지 도루저지율 .321
[18]
102시합 출장, 624자살 44보살 9병살 2실책 수비율 .997/40허용 18저지 도루저지율 .318
[19]
대표적으로
이탈리아전에서 11-1로 일본이 크게 앞서고 있던 상황에 이탈리아 타자의 타구에 죠지마가
영 좋지 않은 곳을 맞자, 곧바로 교체 포수로 아이카와가 들어왔고 직후 아웃 카운트 1개만 잡은 채 일본이
콜드게임으로 승리했다.
[20]
참고로
프로야구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이 처음으로 허용된
2000 시드니 올림픽은 한술 더 떠서 프로-아마 간 알력 문제나 프로 구단의 전력 유출 반대 등으로 인해
센트럴리그는 6구단 다 합쳐서 고작 2명,
퍼시픽리그는 1구단 당 1명씩만 출전하는 데 그쳤으며 그마저도 예선에서 주요 전력으로 참가했던
후루타 아츠야 등이 본선에서는 프로구단 측의 차출반대로 출장하지 못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결국 이렇게 프로와 아마추어가 어정쩡하게 혼합된 대표팀은 프로와 아마추어가 각자 다른 숙소를 쓰며 연습, 시합 때만 얼굴을 마주치는 등 팀이 전혀 화합되지 못했고 끝내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한민국에 패해 4위에 그쳤다.
[21]
조별예선 한일전 경기 당시,
이종욱의 딜레이드 스틸 때 2루 송구를 하였으나 굉장히 빗나갔다. 거의 타자의 중견수 앞 안타 수준의 송구 실책이었고 이를 틈타 3루 주자였던
김현수는 홈을 밟고 이종욱은 3루까지 진루하였다. 유격수였던
나카지마 히로유키가 벙찐 표정으로 바라봤을 정도로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진 송구였다.
[22]
아베가 포일을 한 풀리그 한일전 당시는 KBS에서 중계했다.
[23]
시드니 올림픽의 예선전 형식이었던 1999년 아시아 야구대회 결승전에서도 대타로 나와 마지막 타자로 삼진을 기록했다.
1999년 아시아 야구대회 결승전 박스스코어(일본어)
[24]
2023년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콘도 렌 투수에게 외야 폴과 폴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벌주를 200회(약 30km) 시켜서 논란이 되고 있으며, 아예 DeNA의 외국인 선수들도 이건 인간이 할 수 없는 훈련이라면서 주니치를 저격했다.
[25]
선수들을 지도할 때 질책을 하지 않고 소통을 통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충분한 피드백을 하는 모습이 2군 영상에서 잡혔다. 그리고 2군 경기를 보러간 요미우리 팬들 사이에서도 아베가 그렇게까지 강압적인 모습은 아니었다는 목격담도 있다.
[26]
사카모토 하야토,
코바야시 세이지
쵸노 히사요시
[27]
특히 감독되기 이전에 2군 감독이여서 그동안 선수 안키우고 뭐했냐며 비판을 받고 있다.
[28]
그나마 옆 리그에는 세이부의
모리 토모야, 닛폰햄의
콘도 켄스케 등 타격 재능이 뛰어난 포수 유망주들이 있지만 수비력의 성장이 더디다는 이유로 포수로서 출장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고, 세리그에서는 아이자와 츠바사가 나타나긴 했지만, 경기수가 너무 적다. 국대경기에서도 2000년대의 아베-
조지마 겐지-
사토자키 토모야-
아이카와 료지 이후에는 수비형 포수인
시마 모토히로나
스미타니 긴지로 등이 주전 마스크를 썼다. 결국
모리 토모야가 2018년부터 주전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고 콘도가 외야로 정착하며 당분간은 모리가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공격형 포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9]
참고로 일본프로야구 포수 통산 홈런 1위는
노무라 카츠야의 657개다. 수비형 포수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일본에서 저 정도의 누적스탯은 대단하다. 워낙에
먼치킨스런 성적이니 논외로 하자.
[30]
2016시즌 양 리그 포수 중 유일하게 규정타석 진입
[31]
보통 저런 상황을 대비해
중요 부위에도 보호대를 착용하지만, 저렇게 보호대를 착용해도 맞을 땐 엄청나게 아픈 경우가 많다. 당장
KBO 리그에서도
이만수가 선수 시절
영 좋지 않은 곳에 투구를 세게 맞아 보호대가 깨졌다는 무서운 일화가 전해져올 정도.
[32]
재밌게도 아베 본인의
첫 일본시리즈와
마지막 일본시리즈는 모두 4차전에서 막을 내렸다. 다만 차이점은 2002년엔
요미우리가 우승을, 2019년엔 요미우리가 스윕패를 당했다는 것. 그리고 은퇴한 다음 해엔
26-4가 기다리고 있었다
[33]
특히 요미우리가 리그 3연패를 달성해놓고 정작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스윕패를 당하는 바람에 진출에 실패한
2014년 일본시리즈가 절정이었는데, 하필 같이
해설을 맡았던 사람들이 다름아닌
한신 타이거스의 레전드
요시다 요시오,
히야마 신지로여서 일본 웹에서 웃프다는 반응이 나왔다. 반대로 한신의
노미 아츠시는
2013년 일본시리즈,
2016년 요미우리와 DeNA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게스트 해설로 등장하여 웃픈 모습을 보여주기도..
[34]
사실 아베는 롯데의 연고지인 치바현 출신이기도 하다.
분류
- 일본의 야구 선수
- 일본의 야구 코치
- 일본의 야구감독
- 우라야스시 출신 인물
- 1979년 출생
- 2001년 데뷔
- 2019년 은퇴
- 포수
- 내야수
- 우투좌타
- 요미우리 자이언츠/은퇴, 이적
- 원클럽맨/야구
- 주오대학 출신
- 명구회 멤버
- 일본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일본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일본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
-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
-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