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05:31:43

다카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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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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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22 다카쓰 신고
1군 73 시마 모토히로(수석코치 겸 배터리코치) · 89 이토 도모히토(투수코치) · 98 이시이 히로토시(투수코치)
78 오마츠 쇼이츠(수석타격코치) · 74 스기무라 시게루(타격코치) · 87 후쿠카와 마사카즈(타격코치)
75 모리오카 료스케(내야수비·주루코치) · 82 마츠모토 유이치(외야수비·주루코치 겸 작전코치)
2군 88 이케야마 타카히로(2군 감독) · 77 오바나 타카오(투수 수석코치) · 72 오노데라 치카라(투수코치) · 84 마츠오카 켄이치(투수코치)
79 시로이시 노리유키(수석 겸 수비·주루코치) · 81 사토 신이치(외야수비·주루코치) · 76 미야데 류지(타격코치)
83 키누가와 아츠시(배터리코치) · 95 도바시 카츠유키(육성수석코치)
92 야마모토 테츠야(육성투수코치)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육성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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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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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쓰 신고 이노우에 카즈키 기시다 마모루 니시구치 후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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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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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쓰 신고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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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HW_2005_WSChampion.gif
MLB 월드시리즈
우승반지
2005

파일:1993야쿠르트우승.png 파일:1995yakult우승.png 파일:1997야쿠르트우승.png 파일:2001야쿠르트우승.png 파일:2021야쿠르트.png
NPB 일본 시리즈
우승반지
1993 (선수) 1995 (선수) 1997 (선수) 2001 (선수) 2021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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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쓰 신고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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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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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555,#aaaaaa
1950년 ~ 현재
초대
니시가키 토쿠오
(1950~1953)
2대
후지타 소이치
(1954~1955)
3대
우노 미츠오
(1956~1960)
4대
스나오시 쿠니노부
(1961~1962)
5대
하마자키 신지
(1963)
6대
하야시 기이치
(1964~1965)
7대
이이다 토쿠지
(1966~1967)
8대
벳쇼 타케히코
(1968~1970)
9대
미하라 오사무
(1971~1973)
10대
아라카와 히로시
(1974~1976)
11대
히로오카 타츠로
(1976~1979)
12대
타케가미 시로
(1980~1984)
13대
도바시 마사유키
(1984~1986)
14대
세키네 쥰조
(1987~1989)
15대
노무라 카츠야
(1990~1998)
16대
와카마츠 츠토무
(1999~2005)
17대
후루타 아츠야
(2006~2007)
18대
타카다 시게루
(2008~2010)
19대
오가와 준지
(2011~2014)
20대
마나카 미츠루
(2015~2017)
21대
오가와 준지
(2018~2019)
22대
타카츠 신고
(2020~)
:일본시리즈 우승 / : 센트럴리그 우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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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 ||
{{{#!wiki style="margin: 0 -10px"
{{{#000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555555,#aaaaaa
2006년 ~ 현재
초대
고토
파일:일본 국기.svg
(2007)
2대
아시자와
파일:일본 국기.svg
(2008~2010)
3대
하시가미
파일:일본 국기.svg
(2011)
4대
다카쓰
파일:일본 국기.svg
(2012)
5대
나이토
파일:일본 국기.svg
(2013~2014)
6대
아카호리
파일:일본 국기.svg
(2015~2016)
7대
카토
파일:일본 국기.svg
(2017~2018)
8대
시미즈
파일:일본 국기.svg
(2019~2020)
9대
하시가미
파일:일본 국기.svg
(2021~ )
10대
:팜 일본선수권 우승 / ☆: 팜 일본선수권 진출 / :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시절 (2007~2023년) 리그 챔피언십 우승
}}}}}}}}}}}}}}} ||

{{{#fff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등번호 22번}}}
미야타 유키야
(1988~1990)
다카쓰 신고
(1991~2003)
다카이 유헤이
(2006)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10번
로이스 클레이튼
(2001~2002)
다카쓰 신고
(2004~2005)
롭 맥코위악
(2006~2007)
뉴욕 메츠 등번호 10번
조 히에파스
(2004)
다카쓰 신고
(2005)
엔디 차베스
(2006~2008)
{{{#fff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등번호 11번}}}
사카모토 야타로
(2003~2005)
다카쓰 신고
(2006)
엔도 마사타카
(2007)
{{{#fff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등번호 22번}}}
다카이 유헤이
(2006)
다카쓰 신고
(2007)
마스부치 다쓰요시
(2008~2014)
{{{#ffffff [[우리 히어로즈|우리]] / [[서울 히어로즈|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33번}}}
스코비
(2008~2008.5.29.)
다카쓰
(2008.6.19.~2008)
클락
(2009)
{{{#fff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등번호 22번}}}
구라모토 하루타카
(2018~2019)
다카쓰 신고
(2020~)
현역
}}} ||
}}} ||
파일:다가쓰.jpg
<colbgcolor=#073180>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No.22
다카쓰 신고
高津臣吾 | Shingo Takatsu
출생 1968년 11월 25일 ([age(1968-11-25)]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미나미구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학력 히로시마 공고 - 아지아대학
신체 180cm, 75kg
포지션 마무리 투수
투타 우사우타
프로 입단 1990년 드래프트 3순위 ( 야쿠르트)
소속팀 야쿠르트 스왈로즈 (1991~2003)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4~2005)
뉴욕 메츠 (2005)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6~2007)
우리- 서울 히어로즈 (2008)
싱농 불스 (2010)
니가타 알비렉스 베이스볼 클럽[1] (2011~2012)
지도자 니가타 알비렉스 베이스볼 클럽 감독 (2012)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1군 투수코치 (2014~2016)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군 감독 (2017~2019)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감독 (2020~)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감독 시절
3.1.1. 2020 시즌3.1.2. 2021 시즌3.1.3. 2022 시즌3.1.4. 2023 시즌3.1.5. 2024 시즌
3.2. 감독 성적
4. 투구 스타일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일본 야구선수 출신 감독. NPB, MLB, KBO, CPBL에서 모두 뛴 경험이 있으며 은퇴 전에는 마지막으로 일본 독립리그 니가타 알비렉스 BC[2]에서 활동했다. 2013년 시즌 종료 후 투수코치로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복귀했고 2020년 시즌부터 감독직을 맡고 있다.[3] 2022년 일본프로야구 명예에 전당에 야마모토 마사와 함께 헌액되었다.

2. 선수 경력

다카쓰 신고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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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통합 선수 경력: 다카쓰 신고/선수 경력
파일:NPB 로고.svg
1991~2003년 2006~2007년
파일:MLB 로고.svg
2004년
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
2008년
파일:CPBL 로고.svg
2010년
}}}}}}}}} ||

3. 지도자 경력

2013년 시즌 종료 후, 다승왕 루키 일본프로야구 한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운 특급 거포를 데리고도 리그 꼴찌를 한 야쿠르트의 신임 투수코치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이후 몇년간 야쿠르트의 투수진이 외국인 투수들과 몇몇 불펜을 제외하면 육성이건 영입이건 말그대로 멸종상태(...)라 팬들에게 그다지 평은 좋지 않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쩌리 언더핸드 투수였던 야마나카 히로후미를 줏어와 선발로 키워낸 것, 사이드암 투수인 아키요시 료를 우수한 중간계투로 육성한 것 이외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상황.[4]

2016년 시즌 종료 후 2군 감독으로 보직을 옮긴다. 구단 수뇌부에서 지도자감으로 보고 있는 거라는 관측이 있는데, 마나카 미쓰루 감독이 2016 시즌 후 사퇴를 선언함에 따라 차기 감독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전 감독이자 마나카 감독 시절 시니어 디렉터로 프런트 업무를 수행하던 오가와 준지가 1군 감독으로 복귀함으로서 다카쓰도 2군 감독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

3.1.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감독 시절

2019년, 여름 난조로 팀이 최하위로 추락하자 오가와 준지 감독이 사임을 선택하고 다카쓰가 새로운 감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나왔고, 9월 26일 결국 후임 감독으로 내정되었다. # 다카쓰는 해외리그에서 감독을 하는 역대 2번째 KBO 출신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5] 2020년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감독직을 수행한다.

3.1.1. 2020 시즌

개막 이후 7월까지는 2위를 달리면서 순항했지만 팀 전력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한 8월 이후부터는 급격히 추락했고 결국 최하위에 머물러있다. 1군 감독 첫 시즌인 초짜 감독이 첫 해부터 얇은 뎁스와 약한 팀 전력을 가지고 대이변을 만드는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니...

10월 기준 그 야쿠르트 팬들에게 욕을 먹는 수준이다.[6] 9월에는 오가와 야스히로가 8이닝 1실점을 한 상태로 9회에 8대1로 넉넉하게 이기고 있자 오가와를 완투승 시키겠다고 9회에 오가와를 올리면서 아무도 불펜 대기를 시키지 않다가 오가와가 9회에만 아웃카운트 2개 잡고 6실점을 하면서(...) 8.2이닝 6실점을 기록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아웃카운트 1개를 남기고 2점차가 되자 뒤늦게 마무리 이시야마를 올려서 세이브 조작. 결국 선발의 QS를 날려먹은 데다가 다 이긴 경기를 쓸데없이 접전으로 만들어서 마무리까지 써먹게 되었다(...). 그 외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ERA 7~10점대를 찍으면서 일본에서 통하지 않음이 증명된 선발 용병 이노아와 쿡을 뜬금없이 불펜으로, 그것도 팽팽한 상황이나 살짝 부진한 상황에서 추격조, 롱릴리프로 내다가 초중반부터 경기를 말아먹는 일도 빈번하면서 초짜감독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1년차인 것을 감안하기는 해야 하지만... 감안해도 답이 없다.[7] 감독 부임 3년만에 우승경쟁을 하고 있는 이구치 타다히토도 1~2년차때는 온갖 욕먹을 짓을 하다가 3년차 때 정상적인 운영을 하면서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을 보면.. 참고로 다카쓰도 1사 번트, 쓰리번트는 당연히시킨다.[8][9]

3.1.2. 2021 시즌

하지만 2021년에는 꾸준히 A클래스를 지키고 있다. 지난 시즌보다 확실히 발전한 능력을 보여주며 팀이 안정적으로 변하면서 6년만의 리그우승과 20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넘보는 중이다. 항상 부족한 투수진 뎁스가 문제였던 팀에서 철저한 등판 간격 관리[10]로 투수진에 가해지는 부담을 완화해가며 2% 부족한 전력을 우승 경쟁권까지 끌고 간 것이 호평.[11]

10월 8일부터 한신 타이거스와 사실상 정규리그 우승을 둔 3연전을 치르게 됐는데, 첫번째 경기에서 선발투수 오쿠가와 야스노부의 호투로 4:1로 승리하면서 6년만의 센트럴리그 우승을 향한 매직넘버를 11로 줄였다.

한신과의 맞대결 이후 비교적 여유있는 상황까지는 왔었지만 10월 막바지에 일시적으로 부진하며 한신에게 승차 없는 2위까지 허용해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다행히 10월 26일 요코하마 원정에서 5:1로 승리하며 6년만의 센트럴 리그 우승을 이끄는데 성공했다. 같은날 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른 2위 한신이 주니치에게 4:0으로 패하면서 야쿠르트는 남은 2경기를 전부 지더라도 한신이 더이상 순위를 뒤집을 수 없게 되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한신을 업셋하고 올라온 요미우리를 어드밴티지 1승을 포함한 3승 1무로 완벽하게 누르고 2015년 이후 6년만에 일본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파일:b9d975e7d4bdd3495df6c21f539e6f6f_1.jpg

그리고 2021년 일본시리즈에도 오릭스를 4승 2패로 누르고 우승하면서 전년 꼴찌팀이 일본시리즈 우승을 하는 진풍경을 만들어냈다. 또한 다카쓰 본인으로서도 선수 시절에 이어 감독으로도 야쿠르트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함께하게 되었다. 스왈로즈 프랜차이즈 출신으로 선수와 감독 둘 다 팀의 세리그 우승-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사례는 와카마츠 츠토무 이후 두 번째.[12]이자 KBO 리그 선수 출신 감독으로서 최초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을 하였다.

3.1.3. 2022 시즌

리그 우승을 하면 다음 시즌 폭망한다는 징크스를 깨고 올해도 탑쿠르트로 이끌며 2년 연속 세리그 재패를 노리고 있다. 물론 시즌 초 요미우리에게 계속 덜미를 잡혀 4위에만 머물렀지만 5월 이후 요미우리 공포증도 어느정도 견뎌내며 1위로 상승했고 교류전까지 우승하며 또다시 Again 2021을 노리고 있다. 지난시즌 우승과 전반기 1위라는 성과를 나타내자 6월에 2년 연장계약을 맺으면서 2024년까지 지휘봉을 맡게 되었다.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둔 7월 중순, 1군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인해 주춤했지만, 2위와 11게임차를 벌리며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올스타전 세리그 감독으로 선임되었는데, 1차전부터 투수 운용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자팀 투수인 타카하시 케이지는 1이닝을 소화하긴 했지만 고작 9개를 던지고 교체시켜 준 반면에, 선발 아오야기 코요는 4일전에 정규경기 선발 등판하고도 2이닝, 끝내기 홈런을 맞은 모리시타 마사토는 불과 3일 전에 정규경기 등판을 했음에도 멀티이닝을 소화하도록 했다. 타카하시는 5일전이 마지막 등판이었는데도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세 히로무는 데드볼과 볼넷으로 흔들리면서 끝내 피안타 2개를 맞으며 동점을 허용하는 동안에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토고 쇼세이는 요미우리 구단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올스타 직전의 정규시즌 시리즈가 통째로 취소되고 격리되는 등 훈련조차 제대로 하지도 못했는데 2이닝을 던지게 만들었다. 아무리 이벤트전이라지만, 맡은 임무에 집중하지 않고 자기 팀 편의를 봐주고 정규시즌 생각이나 하는 이기적인 운용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와중에, 2차전에는 야수는 야쿠르트 선수만 출전시키겠다는 발언으로 반성은 커녕, 코로나19로 인해 출전하지 못한 자팀 1군의 기량 점검이나 하려는게 아니냐는 비판이 쇄도하며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있다.

올스타전 편파 운영 논란으로 인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끝내 9월 25일 리그 우승에 성공하면서 여론은 어느정도 개선됐다. 하지만 올스타전 편파 운영 논란 등으로 인하여 이미 요미우리, 한신 팬들은 2022년 일본시리즈에서 오릭스를 응원하게 되었다. 결국 오릭스에 패하였다.

3.1.4. 2023 시즌

투타 모두 아귀가 맞지 않으면서 처참하게 망해가고 있다. 시즌 초반에는 철벽같은 투수진으로 상위권에 머물렀지만, 주포 무라카미 무네타카의 부진과 시오미, 야마다의 컨디션 불량으로 인한 초반 합류 불발 등의 악재가 겹치며 타선이 눈에 띄게 약체화되었다. 이렇게 타선이 약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그 완벽한 투수진도 서서히 붕괴되었고, 이로 인해 잦은 연패를 하면서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잊을만하면 선수들이 부상을 입어서 이탈하는 수준이 야전병원이라 불리던 수준과 맞먹은 것도 한 몫 거들었다. 그나마 주니치가 더 망해서 5위에 머물러 있는 중.

가장 큰 문제는 선발진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12개 구단 중 선발 방어율이 3.94로 최하위이다. 오쿠가와 야스노부가 토미 존 수술로 못 나오는지라 나머지 오가와 야스히로, 타카하시 케이지, 사이 스니드, 피터즈 등이 선발 로테를 돌고 있는데, 투고타저인 리그하에서 죄다 방어율이 3점대 이상이다. 이 외에도 전반적으로 몸에 맞는 볼을 던지는 횟수가 12구단 1위를 먹을 정도로 급격히 늘어났고 이 때문에 타팀에게 항의를 받는 빈도도 늘어났다. 5월 요코하마 원정에서 3사구로 벤치 클리어링이 발발한다던가, 8월에 한신의 우메노를 시즌 아웃시킨것도 모자라 9월 초엔 치카모토에게 부상당한 부위에 공을 던져 오카다 감독이 항의하기도 했다.

결국 9월 2일 한신과의 홈경기에서 6:5로 지면서 리그 3연패 실패가 확정되었고, 9월 14일 히로시마와의 홈경기에서 패배하면서 B클래스가 확정되었다. 4위와의 경기차보다 6위와의 경기차가 훨씬 더 적은지라 삐끗하면 최하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는데, 주니치의 분위기가 살아나고 야쿠르트는 여전히 부진하는 와중에 기어코 9월 30일에 최하위로 전락했다.

10월 1일 기준 주니치와의 경기차는 1이고 두 팀 다 남은 경기 수는 1인데, 무조건 10월 3일 경기에서 주니치가 지고 10월 4일 경기에서 야쿠르트가 이겨야만 5위를 되찾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야쿠르트의 최종전 상대가 상대전적에서 크게 밀리는 한신과의 맞대결이라 전망은 어둡다. 이대로 최하위가 확정되면 리그 2연패 후 최하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센트럴 리그 최초로[13] 쓰게 된다.

그나마 다행히 주니치기 3일에 지면서 유리해졌고, 결국 4일에 한신과의 최종전을 이기면서 가까스로 5위로 마감했다.

3.1.5. 2024 시즌

지난해에 이어 잇단 주축들의 부상과 투수진 붕괴를 겪으며 일찌감치 B클래스로 추락해 우승 경쟁은 꿈도 못 꾸는 신세가 되었고 교류전 이후 주니치와 5~6위 경쟁을 벌이다 최종전에서 주니치가 무너지며 근소차로 주니치를 제치고 5위를 기록하였다. 작년과 비슷한 전개로 4년 만의 최하위는 면했다.

이와는 별개로 구단에선 다카쓰를 신임하여 2025년에도 재계약을 확정했다.

3.2.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전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2020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120 41 69 10 .373 6위 -
2021 143 73 52 18 .584 우승 일본시리즈 제패
2022 143 80 59 4 .576 일본시리즈 진출
2023 143 57 83 3 .407 5위
2024 143 62 77 4 .446 5위
통산 692 313 340 39 .452 센트럴리그 우승 2회
일본시리즈 제패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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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투구 스타일

일본 시절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기교파 마무리 투수" 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활동하던 15년 동안 4번의 최다 세이브를 기록했고, 2012년까지 286세이브로 이와세 히토키가 경신하기 전까지 일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큰 경기에서 활약이 컸다. 그가 현역 생활을 하는 동안 야쿠르트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의 헹가레 투수는 항상 다카쓰였을 정도. 그의 일본시리즈 통산 성적은 11경기 16⅔이닝 2승 0패 8세이브 평균자책점 0.00.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야쿠르트 팬들은 신고를 "미스터 제로"라고 불렀고, 훗날 임창용이 야쿠르트의 철벽 마무리로서 이 칭호를 물려받게 된다.

클로저로서는 이례적으로 구위가 상당히 안 좋은 투수이다. 사이드암에 매우 느린 구속을 자랑하며 싱커와 커브가 주무기라 그렇다. 평균 패스트볼 구속은 120km/h 중반 정도로 프로에서는 매우 느린 축에 드는 편. 다만 젊은 시절 최고 구속은 140km이 나온 적도 있었다. 야쿠르트가 다카쓰의 후임 마무리로 데려온 임창용은 150km/h 이상을 던지는 사이드암 강속구 투수였다는 점에서 절묘한 대조가 이뤄진다.

그러나 이 모든 단점을 절묘한 컨트롤과 완급조절만으로 커버하는 것이 다카쓰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싱커를 이용한 범타처리에도 능하며, 패스트볼과 여타 구종의 구속 차이가 무려 40~50km/h 가까이 나기 때문에 타이밍을 뺏기면 속절없이 헛스윙이나 범타가 된다. 배트를 휘둘렀는데 공은 한참 뒤에 지나가는 귀신같은 광경을 한국에서도 몇 번 볼 수 있었다.[14]

또한 뚜렷한 투구습관이 없는 것도 장점. 패스트볼과 커브, 싱커가 모두 완전히 똑같은 팔각도에서 나오기 때문에 타자로서는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OX퀴즈를 하는 기분. 땀을 뻘뻘 흘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던졌는데 정작 던진 공은 80km/h짜리 초슬로커브라 보는 이는 만감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경을 느끼게 된다.

또 한 가지 특징이라면, 주자를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점. 투수, 특히 마무리투수로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는 부분이나 결국 실점은 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내 대작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점은 전성기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팬들은 다카쓰가 등판하여 장작놀이하는 모습을 다카쓰 극장이라고 부른다. 애가 타지만 대체로 엔딩은 해피엔딩. 주자를 많이 내보내지만 실점하지 않는다는 점은 위기 관리능력과 더불어 장타를 맞지 않는 요령을 안다는 이야기도 된다. 또한 느린 구속으로 인해 반발력이 약해 쉽게 장타가 나오지 않는 점도 한 몫 한다.

하지만 안정감이 중요한 마무리 투수로서 주자를 내보내는 것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큰 단점이다. 실제로 2008년 히어로즈 감독이었던 김시진은 준수한 성적을 남기고도 재계약을 하지 않은 사유를 "마무리 투수로서 구속이 너무 느려서 주자를 내보낼 시 도루 허용률이 높아져서 안정감이 부족하다"라고 밝혔다.

5. 여담

  • 야쿠르트 스왈로즈 팬으로 잘 알려진 성우 마츠자키 레이가 다카쓰의 오랜 팬이라고 한다. 일반인 신분으로 다카쓰에게 보냈던 팬 레터가 2000년 팬북에 실리기도 했다.
  • 우리 히어로즈와 입단 교섭을 위해 한국에 왔을 때 목동 야구장 부근의 식당에서 구단 관계자와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일본인 관광객들이 식당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를 본 구단 관계자가 일본인들 같다고 하자, “일본인이라면 나를 몰라볼 리가 없다.”라고 말했다는데 실제로 잠시 후 그 일본인들이 테이블로 찾아와 “혹시 다카쓰 선수 아니신가요?”라고 물어보고 맞는다고 했더니 놀라며 반가워했다고 한다.
  • 조용훈 박명환야구TV에서 밝히길 생맥주를 엄청나게 좋아했다고 한다. 당시 히어로즈의 수석코치였던 이순철이 같은 사이드암 스로인 다카쓰에게 한 수 배우라고 방졸로 붙여줬는데, 정작 배운 거라고는 술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술을 좋아했는데도 나이 마흔셋까지 프로에서 뛴 것을 보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15][16]
  • 야쿠르트에게 20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안겨주면서 감독으로서도 성공하였고 이후 2022년 일본야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면서 최고의 영광을 연이어 누리고 있다.
  • 키움 히어로즈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다카쓰 감독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축하하기도 했다. #
  • 이름 때문에 신고선수라는 개드립이 종종 나오기도 했다. 물론 다까쓰는 정식으로 지명 받은 선수다.

6. 관련 문서


[1] 독립리그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소속 야구단. [2] J리그 축구팀인 알비렉스 니가타와는 모기업(NGS그룹)과 연고지( 니가타)가 같은 팀이다. [3] 블로그 [4] 아키요시는 2018년 시즌 후 내야수 야치 료타와 함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2:2 트레이드 되었는데, 이때 야쿠르트로 입단한 2016년 파리그 신인왕이었던 타카나시 히로토시가 망한 반면(당연한 수순이다. 이 선수 삿포로 돔에서 피홈런 1위 찍을 정도로 홈런을 많이 맞던 선수였다. 나루세 요시히사 같은 케이스인데 왜 데려간건지.), 아키요시는 마무리를 맡으면서 니혼햄의 불펜 주축으로 자리잡았다. [5] 최초는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이자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감독이었던 미키 캘러웨이 [6] 이 팀은 17년에 100패를 하냐마냐 할 때도 그냥 욕을 안 하고 응원해줄 정도로 호구수준의 팀이었다. 물론 일본인들이 튀는 것을 워낙 싫어하다 보니까 최대한 참고참다가 한 명이 폭발하니까 다같이 폭발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17년보다 더 운영을 못 하는 듯. [7] 전임 감독이었던 오가와 준지도 꼴찌를 2번이나 해도 여러 건질요소가 많았고 이것이 잘 풀려 포스트시즌 진출에 공을 세우기라도 했다. 반면에 다카쓰는 건질 요소만 비교해도 오가와에 비하면 거의 없다. [8] 이구치가 감독 2년차에 1사 번트에 꽂혀서 제대로 말아먹은 적이 있는데, 3년차에 들어서면서 1사 번트는 병살과 삼진 둘 중 하나밖에 못하는 선수가 타석에 있는 경우같이 아주 가끔 한다.쓰리번트 아웃당해서 빡치면 다음 타자 번트시키기도 한다 번트특타 [9] 다만 다카쓰는 1군 투수코치로도 딱히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고, 2군 감독을 하면서 야쿠르트 팜이 더 나빠졌다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2군 감독으로도 한 게 없었다. 선수 은퇴하고 바로 감독이 된 이구치와는 달리 이미 코치, 2군 감독 시절 지도자로써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거기다가 독립 리그긴 하지만 다카쓰는 1군 감독도 해 본 사람이다.) 팬들이 더 빠르게 폭발한 게 아닌가 싶기도. [10] 예를 들어 팀에서 애지중지 키우는 영건 유망주 오쿠가와 야스노부는 열흘에 한 번 등판하는 간격을 칼같이 지켰다. [11]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연장전 축소가 뎁스가 얇은 야쿠르트에 호재로 작용한 부분도 있다. [12] 선수로는 1978년에, 감독으로는 2001년에 우승을 안겨준 적이 있다. [13] 양대리그 최초 사례는 1981년의 긴테쓰 버팔로즈가 쓴 적이 있다. [14] 이는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도 여과없이 드러난다. 구속이 20대라서 팀덱+12를 받아도 구속이 40을 못 넘는다. 대신 구위 제구 변화구 정신력이 모두 80을 넘는 컨트롤과 완급조절만으로 커버하는 모습을 그대로 적용 시 놓았다. 물론 재평가 이후엔 대폭 너프가 되어 예전 모습을 볼 수 없다. [15] 문제는 항상 다카쓰의 전담 통역도 술자리에 동석했는데 이게 한두번이 아닌데다가 억지로 끼게 되니 통역이 엄청 고생했다고 한다. 한때 야쿠르트에서 신고와 한솥밥을 먹고 한국에서도 잠시 선수로 뛰었던 이리키 사토시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다. 함께 두산에서 뛴 구자운 정수근이 박명환야구TV에서 밝히기를 이쪽은 아예 욕조에 얼음과 물을 부어놓고 맥주를 가득 담근 후에 주변 동료들에게 마시자고 꼬셨다고. 이 이후 두산에서는 이리키같은 스타일의 외국인 선수는 절대 데려오지 않게 되었으며 야쿠르트 출신 선수는 최대한 뽑지 않게 되었다. [16] 한국에서 뛰던 시절 인터뷰 기사.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