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8 23:02:33

소뽕

국가에 대한 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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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문제점
2.1. 서방과 러시아 역사학계에서 인정된 소련의 범죄와 2000만명 이상의 희생자 간과2.2. 구 공산권, 소련권 국가 비하2.3. 역덕 밀덕
3. 관련 인물 및 단체
3.1. 러시아
3.1.1. 러시아의 소뽕과 러뽕의 관계3.1.2. 교과서 개입3.1.3. 양비론
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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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 히로뽕.

소련을 아주 좋아하는, 때때로 도를 넘어서 무비판적으로 찬양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러시아를 소련의 직접적인 후신으로 생각하는 경우[1] 간과하기 쉬운 점이 있는데, 위 목록에도 러시아와 소련이 구분되어 있듯이 소뽕이 곧 러시아빠는 절대 아니라는 것.[2][3]

소뽕 성향은 비단 러시아뿐만 아니라 구 소련에서 분리되어 나온 15개 국가의 국민들[4] 중에서 의외로 많은 부류이며[5], 현 러시아에서도 강력한 초강대국의 이미지와 든든한 사회복지체계를 추억하는 정도로 소련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주로 장노년층 이상에서 많지만 소련시절을 겪어보지 않은 젊은 층 사이에서도 의외로 상당한 수로 있다. 러시아와 그 외의 러시아 주변에서는 소련 시절을 그리워하며 소련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이 많아서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실수로 러시아 국가 대신 소련 국가가 연주되었을 때 선수들과 감독들은 당황하고 있지만 관중들은 웃으면서 좋아하고 따라부르기까지 하는 영상도 있다.[6] # 2010년 러시아 인구조사 결과 자신이 ' 소련인'임을 자칭하는 러시아인이 2만 7천 명이나 되었다. #

2010년대의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에서도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에 의용군으로 가담한 아르메니아인, 중앙아시아인 등이 적지 않은데, 이들 중 많은 수는 실제로 자신의 정체성을 여전히 소련인이라 생각하고 이 소련 국가들간의 연대를 회복, 유지하기 위해서 뛰어들었다고 주장한다.[7] 이런 독립국들을 "소련(러시아)의 식민지였다가 소련이 무너지면서 독립했다"고, 즉 대한민국 일본 제국의 관계처럼 생각해버리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8] 이런 나라들 중 다수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처럼 공산주의 망하고 민주화 된 게 아니라 투르크메니스탄의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타지키스탄의 에모말리 라흐몬, 벨라루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가문[9] 등 동네 왕초 독재자들이 등장하고, 러시아의 옐친/푸틴 치하에서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우파 민족주의도 강하게 자라나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러 민족이 같은 체제 아래 공존하던 소련 시절을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허나 소련 치하 모든 민족들이 소련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발트 3국[10], 조지아, 체첸 같은 곳은 소련 체제를 매우 안 좋게 본다. 그냥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나치 와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극도로 혐오하며 분노를 표출한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이 지역들은 소련 전부터 민족주의 의식이 강했고, 홀로도모르, 인종청소, 그리고 오만가지 소수민족 탄압으로 가장 피를 많이 보며 소련의 공산주의의 압제에 크게 고통받은 지역이기 때문. 벨라루스,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그나마 소련을 긍정적으로 보기는 하나, 모든 소련 구성 민족들이 소련을 좋아한다고 여기는 것은 크나큰 오산이다. 헝가리, 폴란드 등의 중유럽, 남유럽에 위치한 구 동구권 국가들 역시 소련의 위성국이던 시기를 굉장히 수치스럽게 여기는 듯하다. 단적인 예로 이 국가들에서는 소련의 상징들이 법으로 금지되거나 사회적으로 금기시 된다. 사실 동유럽에 한정하면[11] 소련을 혐오하는 국가가 대부분이고 소련을 긍정적으로 보는 나라들이 소수이다.

사실 이 부분은 내부적인 부분도 있어서, 조지아에서 소련은 혐오해도 조지아인 출신인 스탈린에 대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는 상당하다던가 우크라이나에서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초인플레이션과 양극화에 대한 반작용 때문에 소련에 대한 향수가 상당해서 정권창출에 실패하기는 했어도 공산당이 원내1당이었던 시절도 있었고 2010년대애도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소련에 대한 향수는 상당했다. 그러나 소련에 대한 향수가 있는 사람은 러시아에 대한 친밀도가 강한 경향이 대체로 있'었'다보니 이것이 정치적인 문제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작 통합 러시아당은 반공주의 정당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사실 소뽕은 반공주의 성향이 강한 대한민국에도 의외로 많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밀덕 소뽕은 워 썬더, 월드 오브 탱크 등 밀리터리 게임과 헤비 빅토르 레즈노프 같은 러시아인 캐릭터가 멋지게 연출되어 나오는 매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12] 정치적으로는, NL 계열의 온갖 사건사고를 통해 김씨 왕조를 좋아하는 종북주의자들과,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좌익의 분화가 상당히 이루어진 현대 시점에서는 우리 주위에서도 잘 찾아 보면 순수한 의미에서 사회주의를 호의적으로 보는 좌파들이 적지 않게 있다. 이 중에서는 2차대전의 소련과 냉전의 소련으로 나뉘기도 한다. 사상적으로 따지자면 러시아 민족적 관점이 아니라 레닌주의 좌익들이 이쪽에 속한다. 대신에 본인이 군복무 중인 소련빠이면 조심해야 한다. 민간에서는 북한과 관련이 없다면 법적으로는 공산주의 찬양이 자유지만 군대는 이런 것을 단속 중이다. 본인의 소빠 취향이 들키면 기무부대로 불려나갈 수도 있다. 소련이 북한 정부를 설립시키고 6.25 전쟁 때 병력도 보냈기 때문에 북한 찬양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사실 러빠가 그렇듯, 한국의 소뽕 역시 딱히 좌익 성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러빠보다는 덜하지만 우익- 극우 성향의 소뽕도 존재한다. 소련의 경제적 이념보다는[13] 그 군사력, 분위기, 간지, 통치체제 등을 동경하여 뽕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도 이런 성향을 유지하는 지역이 있다. 노보러시아,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대표적인 지역이다.

유튜브 등지에서는 강한 군사력과 철권통치, 그리고 물량공세나 러시아식 유머나 공산주의 유머에 홀려 소련을 경배하는 잼민이 소뽕이라는 존재도 있다.

2. 문제점

독빠 주화입마하면 국방군 무오설이나 네오 나치가 되듯이 소뽕이 주화입마하면 타국의 범죄는 비판하는 동시에 소련의 범죄들은 정당하다며 극단적이고 그릇된 논점일탈의 오류 확증 편향의 오류를 거리낌없이 저지르며 옹호를 하는 경우가 있다. 대숙청, 홀로도모르, 카틴 학살, 헝가리 혁명, 프라하의 봄 등과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소련이 저지른 학살들과 각종 전쟁범죄들, 겨울전쟁과 전후 동유럽의 점령 및 공산화와 굴라크 제도를 옹호하는 등 타 연합국이나 추축국 진영 국가의 전쟁범죄는 마구 비난하지만 소련의 범죄는 대충 넘기거나 회피한다. 혹여 소련에 대한 범죄를 비판하면 다른 나라의 범죄까지 끌고와서 "다른 나라도 했으니 소련도 해도 괜찮다."라며 아예 비판을 거부한다. 일부 서구권 소뽕들은 물론 대한민국의 소뽕까지 KAL 007기가 스파이기였기 때문에[14] 격추가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미친 소리를 내기도 한다( #).[15] 혹은 해당 사건에 대해 비판을 하면 다른 나라의 민간인 범죄 사건을 가지고 와서 "다른 나라도 그랬으니 소련도 괜찮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소뽕들은 스탈린 정권을 미화하기까지 한다. 악행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성과를 남겼으니 스탈린에 대한 비난은 부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그가 집권하기 이전이었던 러시아 제국 시절의 성과를 무시한 발언이며, 후술하겠지만 스탈린의 중공업 정책은 역설적으로 2차 대전이 없었으면 소련은 진작 망했을 기형적인 경제 정책이었다. 그리고 수천만 명을 학살한 엄청난 규모의 범죄를 저지른 것은 경제적 성과가 있든 어쨌든 간에 공과는 별개로 절대로 옹호받을 수 없는 반인륜적 행태다. 러시아 전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2009년 크렘린의 공식 비디오 블로그에서 스탈린을 ' 재평가'하자는 모든 움직임들을 비판하며, 스탈린의 대숙청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16][17]

여기서 주의할 점은 학계에서 일고 있는 스탈린의 대숙청에 대한 재논의는 정당화가 아니라 그 원인을 재분석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전통주의적 입장에서 모든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았다. 대숙청의 원인을 스탈린 개인성에 본 것이다. 하지만 수정주의적 입장에서는 이러한 개인이 원인이 아니라 다른 사회기타요인에 주목하는데, 대표적으로 당시의 사회적 혼란성과 체제의 불안정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또한 스탈린 정권의 범죄의 규모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히틀러는 이보다 더했다고 교묘하게 물타기하는 경우도 있다. 소련과 별 관련도 없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나 북한의 만행, 또는 일본의 전쟁범죄 관련 논의에서도 갑자기 나치/북한/일제의 만행을 소련과 비교해서 소련이 그나마 나았다고 주장해서 물타기하는 개소리들이 많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이며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 특성상, 공산주의에 대한 찬양은 사회에선 암묵적으로 꺼리는 경향이 많은데 이들은 이러한 경향을 아랑곳 하지 않고 아무데서나 소련군의 과대평가나 독재 정치, 소련이 일으킨 크고 작은 범죄를 모두 옹호하며 찬양하기 바쁘다. 특히나 민감한 정치적 이야기가 꺼려지는 장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거나, 6.25 전쟁을 겪고 이후에 공산권 국가에 대한 피해나 거부감을 느낀 당사자, 혹은 후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18]

역사와 정치와 별개로, 이들은 넷상에서도 여러모로 해악과 민폐를 끼친다. 대표적으로 위에서 나온 워 썬더의 가이진과 워게이밍 월드 오브 탱크 월드 오브 워쉽게임과 같은 분야에서도 이들은 민폐를 부린다. 위의 두 게임은 전자는 러시아 게임회사, 후자는 벨라루스 게임 회사인데[19] 두 회사는 공통적으로 러빠, 소뽕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회사이다. 영어로는 'Russian bias'라고 두 게임 회사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단어이다. 자국(소련)의 병기는 밸런스 파괴 수준으로 맞추아 주거나 타국에 비해 단점이 비교적 적다거나 국뽕 비판을 진탕 받지만, 이러한 게임을 하는 소련빠들은 주로 소련만 파기 때문에, 자신들이 좋아하고 자주 플레이 하는 소련 병기가 국뽕이라는 비판을 받으면 전면적으로 부정을 한다.[20] 실제로 유튜브 같은 곳에서 두 게임 회사의 소련빠 기질을 비판하면 "네 실력 문제지, 이 게임은 소련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아예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해당 게임들의 문서에서도 이들은 소련빠를 비판하는 서술을 지워버리거나 아예 그런 사실을 은폐하는 행동들을 보이기도 한다.

2.1. 서방과 러시아 역사학계에서 인정된 소련의 범죄와 2000만명 이상의 희생자 간과

국제적인 학술단체 «메모리얼» 관리국장 А.Б.로긴스코에 따르면, 1921년 이래 소련에서는 정치적 이유가 있는 형사법적 사건이 5백만건이 된다. 이들 중 약 10%가 여러 차례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을 고려하면, 정치적 테러의 희생자수는 450만명이 된다. 여기에 보충하면 강제추방된 700만명이 있다. 그러므로 소련이 정치적 이유로 광범위하게 탄압한 희생자의 수는 약 1150-1250만명이다.(내전[21] 희생자의 상당수가 빠진 숫자이다.) 또한 이 숫자에는 «라스쿨라치바니예[22]» 및 홀로도모르 피해자가 빠져 있다, 1921—1922, 1932−1933, 1946−1947년. [정치적 탄압의 숫자에]이것을 떨어트리는 것을 불가능하다, 기근의 사망률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치적 해결법과 경제적 계산 착오이다: 최소 500만명의 목숨을 빼앗은 1920년대 초반 기근,1932-1933 — 최대 6,7백만명 희생자, 1946-1947 — 최대 150만명.[중략]

«소비에트 마을의 비극» 계획 관계자들이 숫자를 보다 정확하게 한 « 대숙청»의 희생자 수:1937-1938년에 체포자 중 총살사형으로 판결받는 현상이 현저히 더 크게 일어났다— 이전에 생각되던 68만 2천명이 아닌 72만 5천−74만명. 일부 특히 잔인하고 난폭한 징벌 정책 사항 몇개의 연구가 있다, 예를 들면, 1933년 나림스콤 지방 유형자들의 광범위한 전멸의 역사. 이 출판물은 다음 부분들을 인상적으로 생기가 넘치게 묘사한다,«청소»당한 숫자를 포함하여, 형사상으로 제일 작은 부분에 속하는 자들, 또한 강제 집단화에 반대한 사람들, 방랑자, 집시들이 시베리아 습지에서 먹을 것도 거처도 없이, 그들과 함께 추방된 상습범죄자들에 의해 테러를 당할 운명들. 망명자와 더불어, 정권 가장자리에 있는 대량의 버림받은 피압박자 집단에 대한 혁신적 성격의 전문적인 논문이다.[중략]

공산주의 테러가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음을 연구원들은 현재 인정한다.(겁을 주는 실재하거나 상상된 적대자를 제거, 볼셰비키 독재의 강화, 새로운 사회체제 편성, 적대적 사회집단의 대표자 인물들과 민족집단에 대한 청소) 보편적인 단 한가지로 설명하는 것을 거부한다.

신중한 서구의 역사가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설명에 동의한다, 테러 및 독재 형벌 기관이 레닌주의-스탈린주의 시기 에 사회적-경제적 및 군사적-외교적 해결과제를 유효하게 해결하려는 욕구를 위해 강요됐다는 것, 탄압이 사회주의적 근대화의 피할 수 없는 대가라는 것을 이해한다.[23][24]
{{{#!folding [ 러시아어 원문 ]
По мнению председателя правления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общества «Мемориал» А.Б. Рогинского, с 1921 г. в СССР на преследуемых по политическим мотивам было заведено 5 млн уголовных дел. Если учесть, что примерно 10% из них были осуждены несколько раз, число жертв политического террора составит 4,5 млн чел. К ним следует прибавить примерно 7 млн депортированных. Таким образом, количество пострадавших от массовых политических репрессий в СССР составляло около 11,5−12,5 млн чел. (без учёта значительной части жертв Гражданской войны). Также в это число не входят «раскулаченные» и жертвы голодоморов 1921—1922, 1932−1933, 1946−1947 гг. [37] От этого нельзя абстрагироваться, поскольку голодная смертность была вызвана в первую очередь политическими решениями и хозяйственными просчётами: голодов начала 1920-х гг. унёс не менее 5 млн жизней, 1932−1933 гг. — до 6−7 млн жертв, в 1946—1947 гг. — до 1,5 млн [38].[중략]
Участники проекта «Трагедия советской деревни» уточнили количество жертв «Большого террора»: к расстрелу в 1937—1938 гг. было приговорено заметно большее число арестованных — не 682 тыс., как ранее считалось, а примерно 725−740 тыс. [42] Часть особенно жестоких эксцессов карательной политики стала предметом отдельных исследований, например, история массовой гибели ссыльных в 1933 г. в Нарымском крае, на о. Назино [43]. Эти издания дают впечатляющую картину того, как в число «вычищаемых» в ходе паспортизации были включены, наряду с меньшей частью криминального элемента, также противники насильственной коллективизации, бродяги, цыгане, оказавшиеся затем в сибирских болотах, без еды и жилья, обречённые на террор со стороны высланных вместе с ними уголовников-рецидивистов и мучительную смерть. Новаторский характер носит недавняя коллективная монография о многочисленных маргинальных париях режима, в том числе ссыльных [44].[중략]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исследователи признают, что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ий террор выполнял целый ряд функций (устрашение ликвидацией реальных и мнимых противников, укрепление большевистской диктатуры, формирование нового общества, очищенного от представителей враждебных социальных, а также национальных групп), отказываясь от какого-то одного универсального объяснения. Среди серьёзных западных историков многие согласны объяснять террор и всевластие карательных органов ленинско-сталинского периода вынужденным стремлением эффективно решить социально-экономические и военно-дипломатические проблемы, видеть в репрессиях неизбежную плату за социалистическую модернизацию.}}}

Тепляков, А. Г. " Эпоха репрессий: субъекты и объекты." Между канунами. Истор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в России за последние 25 лет.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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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범죄는 서방과 러시아의 역사학자 모두가 인정하지만 소뽕들은 이 모든 것들이 서방의 주작이며 나라를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큰소리친다.

2.2. 구 공산권, 소련권 국가 비하

폴란드, 벨라루스,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 냉전 시절 사회주의 정권이었거나 소련의 일부였던 나라들이 소련으로부터 당했던 피해를 부정하거나 미화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헝가리는 나치로부터 해?방시켜준 소련군에게 핍박받던 역사가 있고 폴란드도 마찬가지였는데 소뽕들은 오히려 이것을 부정, 미화하는 것이다.

몽골 소련이 예전에 키예프 루스를 침략한 악당이라는 이유로 몽골 최대 전성기였던 몽골 제국과 민족영웅 칭기즈 칸에 대한 찬양이 금지된 적도 있었다. 그저 소련 정권에게 불편한 역사고 민족주의가 공산주의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탄압한 것이다.

2.3. 역덕 밀덕

2020년부터 대숙청을 미화하거나 재평가하는 주장들이 한국의 밀덕 역덕 사이에서 돌고 있다. 대숙청이 불가피했다, 대숙청 덕분에 독소전쟁에서 이겼다, 대숙청이 필요했다는 등의 주장으로 학계의 주장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영어 논문 하나 가져오지 못했었다. 대숙청 미화의 주요 발원지인 군사 마이너 갤러리에선 관련자들이 사라지고 2022년에는 실제 영미와 러시아의 논문들이 발굴되어 대숙청을 옹호하는 소련빠들이 몰락하게 되었다. # #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공산당이 노골적인 침공전쟁의 공범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러뽕처럼 평가가 나락으로 갔다.

또 랜드리스의 효과를 과소 평가하기도 한다. 소련빠들은 소련이 1941년과 1942년 소련이 받은 랜드리스의 양이 적었다는 것을 근거로 랜드리스가 없었더라도 소련이 나치 독일을 무리없이 이겼으리라고 억측을 내놓기도 하지만 그 적었다는 1941년과 1942년의 원조가 소련군 병사 1인당 칼로리 소모량 20% (760칼로리)를 책임졌고, 1942년-43년에는 29% 1160칼로리, 1943-44년 40% 1620칼로리를 책임졌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즉 실제로는 랜드리스가 없었다면 소련이 독일을 막는 것까지는 가능했겠지만 45년 베를린을 점령하는 대반격은 성사시키지 못했거나 그보다 더 뒤로 미뤄젔을 것이다.

독빠들처럼 계급, 특히 지상군식 계급은 냅두고 함대식 계급만 쓸데없이 직역하는 부류들도 존재한다.

3. 관련 인물 및 단체

3.1. 러시아

3.1.1. 러시아의 소뽕과 러뽕의 관계

소뽕과 러뽕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존재한다. 한국의 친소들은 자의적으로 부정하려하지만 이건 실제 러시아인들의 정서와 매우 동떨어져있다.
푸틴은 자신의 정권 출범 초기부터 소련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러시아를 열강으로 재건하는 것이 그의 의제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그의 계획은 특히 소련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호응했을 때에 인기를 누렸다. 소련의 붕괴는 대다수 러시아인들에게는 굴욕이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그들에게 안전과 사회적 보장을 제공했던 경제체제, 초강대국의 지위를 갖춘 제국,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들이 학교에서 배웠던 소련 역사에 의해 형성된 민족 정체성. 러시아인들은 글라스노스트 시기에 조국의 역사가 더럽혀졌던 것에 대해 분개했다. 그들은 스탈린 시기의 자신의 혈육에 대한 질문을 강요당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가 얼마나 ‘나쁜가’에 대한 강의를 듣기를 원치 않았다. 푸틴은 1917년 이후 러시아를 자랑할 만한 업적을 가진 ‘강대국’이라고 재천명함으로써, 러시아인들이 다시 한 번 러시아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도록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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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교과서 개입

러시아인들의 러뽕과 소뽕은 교과서에서 영향을 끼치며 소련과 스탈린의 범죄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했다고 판단되면 통과를 금지시켜서 학교에서 퇴출시켰다.
푸틴의 계획은 학교에서부터 시작됐다. 소련 시기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표현했다고 판단되는 교과서들은 교육부의 승인이 거부됐고, 결과적으로 교실에서 퇴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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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양비론

우리 역사 속의 어떤 문제적인 면에 관해서 살펴보면, 그렇다. 우리는 그런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는 나라가 과연 존재할까? 우리는 몇몇 다른 나라보다 그런 면이 적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역사는 몇몇 다른 나라의 역사만큼 끔찍하지 않다. 그렇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는 몇몇 끔찍한 면들이 있다. 1937년에 시작된 사건들을 기억해보자. 그것들에 대해 잊지 말자. 그러나 다른 나라들 또한 우리나라 못지않게 그런 끔찍한 사건들을 갖고 있고, 심지어는 더 많이 갖고 있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미국이 베트남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화학약품을 수천 킬로미터의 지상에 쏟아붓거나 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쓴 포탄보다 일곱 배나 더 많은 폭탄을 손바닥만 한 나라에 떨어뜨리는 짓은 하지 않았잖은가. 우리는, 이를테면 나치주의와 같은 그 밖의 어두운 면도 갖고 있지 않다. 모든 국가의 역사 속에서는 온갖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짊어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2007년 푸틴의 역사학 가사 모임 발언>혁명의 러시아 1891~1991, 20장 심판 - 혁명의 후기 | 올랜도 파이지스 저 / 조준래 역 | 어크로스 | 2017년 11월 13일 http://m.yes24.com/Goods/Detail/56778294
푸틴은 스탈린의 범죄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대해 깊이 골몰하지 말아야 하며 러시아가 가진 ‘영광스러운 소련의 과거’의 건설자로서 스탈린이 이루었던 업적과 균형을 맞추어야 할 필요성을 자세히 설명했다. 대통령이 의뢰하고 러시아 일선 학교에서 강력히 추진됐던 역사교사들을 위한 지도서에서 스탈린은 “조국의 현대화를 보장하기 위해 테러작전을 합리적으로 수행했던” “유능한 경영자”로 묘사돼 있다.
혁명의 러시아 1891~1991, 20장 심판 - 혁명의 후기 | 올랜도 파이지스 저 / 조준래 역 | 어크로스 | 2017년 11월 13일 http://m.yes24.com/Goods/Detail/56778294

4. 같이 보기



[1] 물론 소련의 유산을 러시아가 15개 독립국 중 특히 많이 물려받은 건 명백하기 때문에 소련이 곧 러시아가 됐다는 식으로 알거나 그렇게 믿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본래 소련이 보유하고 있던 UN 안전보장의사회 상임이사국 자격 역시 러시아가 물려받았기도 하고. [2] 일부 역사적, 객관적인 사실을 조목조목 따지는 역사책이 아니라면 소련을 러시아로 설명해 놓은 매체가 많기 때문. 아마도 정치색을 띄지 않게 하기 위함이거나, 냉전시기 서방에서 러시아를 소련과 같은 의미의 단어로 사용한 것의 영향으로 보인다. [3] 러빠이면서 소뽕인 일부는 우크라이나 등 소련 해체하면서 갈라져 나온 국가들을 들러리나 심지어 우크라이나 영토에 존재해서 현재 우크라이나 소유가 된 지역이나 설계국, 공업시설 등을 소련의 유산을 날로 먹은 양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 [4] 물론 탈소련화( 탈공산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우크라이나, 발트 3국, 몰도바, 조지아는 예외이다. [5] 2000년대 들어서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복지가 소련 당시보다 후달리는 상황이고, 거의 무료로 주택을 받을 수 있었던 시절에 비하면 집을 억 단위를 주고 사야 하고, 월세도 상당히 비싼지라 젊은 층 사이에서도 소련 시절에 대해 그리워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사실 소련에서도 진짜로 험난했거나 궁핍했던 시절은 러시아 내전으로 국토전체가 전장이 된 레닌 시절이나 중간중간에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 대기근과 대숙청, 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갈려나간 스탈린 시절의 일로, 흐루쇼프~고르바초프 시절의 소련인들은 생활수준은 (비록 생필품 부족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상위권 중진국 정도의 삶을 살았고,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많이 여유로운 삶을 살았는데(물론 지역별로 차이는 있어서 우즈벡에서는 목표달성을 위해 억지로 목화농장에 동원시킨 예도있다.) 소련에 대해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후반기에 태어나고 생활했고, 젊은층에서도 소련에 대해 그리워하는 계층들도 바로 이들세대로부터 얘기를 들으며 그렇게 된것이니 흔히 소련에 대해 묘사하는 비밀경찰이나 숙청에 대한 공포가 적을수벆에 없다. 또한 러시아나 발트 3국 정도를 제외하면 소련 시절보다 경제력이 못한 나라들이 많아서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경우가 많다. 주택의무보급제도,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사회복지제도나 일하기 좋은 작업환경, 든든한 연금, 주택과 별장 배정정책, 치안 같은 걸 추억하는 경우가 많고 미국과 맞짱뜨는 초강대국이라는 이미지도 한 몫한다. [6] 만일 독일에서 독일인의 노래가 1절부터 그대로 나온다면 그 자리에서 독일 국민들은 표정이 굳어버리고 멘붕이 왔을 것이다. 심한 경우 폭동을 연상하게 하는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7] http://www.theguardian.com/world/2014/jul/15/separatist-fighter-russia-eastern-ukraine-interview 예를 들면 이 아저씨. [8] 명목상으로는 소련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었다. 소련(СССР)을 러시아어로 풀어 쓰면 첫 번째로 오는 단어가 'Союз(싸유즈)'인데, 이 단어는 진짜 한 나라인 '연방(Федерация)'라기 보다는 연합, 연맹 쪽에 가깝다.( 러시아СФСР에서 Ф가 바로 연방의 변화형 Федеративная이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한마디로 '식민지'처럼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그냥 여러 국가를 (연합보다는 조금 강하게) 뭉쳐 놓았다.'정도로 생각하는 게 편하다. [9] 헤이다르 알리예프와 그의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가 해당된다. 과거에는 알리예프라고 말하면 아버지인 헤이다르 알리예프를 가리켰으나, 요즘에는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를 가리킨다(물론 경우에 따라 둘 다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헤이다르 알리예프(1923년 5월 10일 - 2003년 12월 12일)는 1993년에 3대 대통령이 되었으나 10년동안 강압적인 정치를 하면서 제 3대 대통령직을 했으며, 2003년 병으로 사망하기 전에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1961년 12월 24일)에게 세습(물론 형식은 선거를 총해서 선출)을 하고 2003년 12월 12일 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들인 알리예프는 4, 5대 대통령으로 지금도 독재가 진행중이다. [10] 이곳만큼 소련 혐오가 극심한 곳도 없다. 발트 3국은 애초에 소련에 편입된 과정부터가 1940년 소련의 불법 침공으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 오죽했으면 이 세 지역에서는 지금까지도 네오 나치와 무장친위대 부역자들이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하켄크로이츠는 자유로이 쓰이지만 소련 국기는 철저히 금지된다. [11] 코카서스 포함. [12] 이런 부류는 소련을 희화화하는 밈적 측면이나 군사분야 같은 소련의 일부분만 좋아할 뿐 소련 체제나 공산주의에 대해선 비판적인 경우가 많다. 물론 워썬더, 월탱 하다가 진짜로 명예 소련군으로 빙의해서 미 제국주의자를 운운하는 주화입마한 미치광이 전쟁광 성향의 빌런들도 생긴다. 당장 워썬더 소련군 관련 유튜브 동영상을 보자. 대부분의 댓글러가 공산주의 찬양 발언을 한다.(앞에 나온 밈적 측면의 연장선으로 장난으로만 그렇게 발언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13] 다만 반자본주의 우파의 경우에는 경제적 이념까지 동경하는 경우가 많다. 반자본주의 문서 참조. [14] 당연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15] 음악은 소련 방공군 행진곡이지만, 뒷배경이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이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지적하자, " KAL 007기는 미군 스파이기였고, 요격기 조종사의 경고사격도 수 번 무시했으며 소련 영공을 진입했기 때문에 정당한 격추"라든지, "격추된 것은 명령에 따른 것 뿐인 요격기 조종사의 잘못이 아니라 영공에 들어온 007기의 기장의 탓"이라든지, " VVS(정확히는 소련 방공군)가 보여주는 한국산 표적연습!" 등의 악플들이 쏟아지고 있다. [16] 간혹 스탈린의 평가가 여전히 갈리고 험악한 시대의 필요에 따라 스탈린의 가혹한 정치는 어쩔 수 없었다는 옹호론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매우 심각한 맹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스탈린의 측근으로서, 누구보다도 소련의 절박한 상황을 경함한 자들 조차 스탈린이 죽자 마자 그의 정책을 중지하고 비난했다는 점이다. 그 악명 높은 베리야조차도! 실제로 스탈린이 죽고 얼마 안 돼서 소련 지도부는 스탈린식 폭정을 대부분 폐지하고, 스탈린을 파렴치한 범죄자로 격하시켰다. 만약에 스탈린 정권에 정당성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복권 논의라도 있었겠지만, 그런거 없었다. 최근 들어 제기되는 스탈린 재평가(?)론은, 끔찍한 스탈린 시대를 몸으로 직접 경험한 소련 지도부가 집권하던 시대가 끝나고, 역사책으로 스탈린의 영광만 기억하는 세대가 현재 초라한 러시아의 상황을 보고 한탄해서 나오는 것에 가깝다. [17] 또한 스탈린의 공과 과 운운하면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에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게 아주 골 때리는 주장인게, 이들은 물론 정적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많은 과오를 저질렀어도, 스탈린에 비교할 바는 절대 못 된다. 숫자로 따지면 스탈린 정권이 비교도 안 되게 많이 죽인 건 당연하고, 악행의 ‘질’적으로도 적어도 이들은 스탈린처럼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수백만 단위의 대량학살을 저지른 적은 없다. 또한 스탈린은 다른 공산주의 정권의 만행에 크게 기여했는데, 레닌 시대에는 적어도 일말의 합법성과 온건함이 존재했지만, 스탈린은 그걸 다 뭉개버리고 우상화, 대량학살, 인종청소, 개인성 말살, 무자비한 숙청을 추구하는 쓰레기 같은 이념을 소련에 보편화 시켰다. 공산주의의 본산인 소련의 이런 사례들을 다른 공산주의 정권들이 그대로 벤치마킹 했고, 결국 공산권 전반에 끔찍한 피바다가 도래했다. 특히 북한의 막장화에는 경우에는 스탈린이 아주 크게 기여했는데 다른 온건한 공산주의자들을 제치고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 자리에 앉혔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모두가 잘 알 것이다. 정작 소련에서는 적극적으로 스탈린의 망령을 걷어차서 더 이상의 피를 안 본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다. [18] 근데 일부는 저렇게 소련의 사회주의를 찬양하면서 문재인 정부 더불어민주당 공산주의자 빨갱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다만 공산주의자 프레임이 아니더라도 민주당계 정당에 부정적인 사회주의자도 많다. [19] 단, 워게이밍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루어지자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바로 발을 뺐다. 절대 워게이밍의 소뽕적 행위(소련 장비만 유독 강함 등...)을 은폐하려는 서술이 아니다. [20] 다만 워썬더의 경우는 소련은 지속된 패치와 고티어로 올라갈수록 타국가에 비해 열세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저티어(2-3티어)에선 소련이 여전히 강세를 보이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저티어마저 소뽕이라는 것을 부정하거나 혹은 독빠 유저들이 과거 자신들이 하던 행동을(예:독뽕을 부정한다) 현재 똑같이 보여 주고 있는데, 이들은 과거 자신들이 한 태도를 잊고 소련이 열화된 사실이 밝혀지자 마자 독빠들의 태도를 가지고 비판을 한다. [21] 레닌시기 러시아 내전 [22] 내쫒음, 강탈 [23] '근대화'는 '현대화'로도 번역가능 [24] 소괄호는 논문 저자가 논문에서 쓴 글. 위 논문에서 말한 희생자는 사망자를 가르키는 게 아니라 사망자 포함하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