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롯데 자이언츠/역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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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41e42><colcolor=#fff> 구단 기본 정보 | <colbgcolor=#041e42><colcolor=#fff> 모기업 | 롯데 | 롯데그룹 산하 스포츠단 | |
구단 |
롯데 자이언츠 | 롯데 자이언트(실업시절) |
|||
롯데 자이언츠 2군 | ||||
프런트 | 선수단 | ||||
경기장 |
1군 메인
사직 야구장 (
재건축) 과거 |
|||
1군 보조
울산 문수 야구장 과거 마산 야구장 |
||||
2군 상동 야구장 | ||||
현재 시즌 | 2024 시즌( 시즌 후) | |||
구단 역사 정보 | ||||
통합 역사 | 역사 | |||
우승 |
1984년 | 1992년 | |||
암흑기 | 암흑기 ( 8888577, 5788, 7A78877) | |||
선수단 | 역대 선수 | 프랜차이즈 스타 | 역대 등번호 | 역대 필승조 | |||
영구 결번 | 11 최동원 | 10 이대호 | |||
기타 | 역대 기록 | 역대 트레이드 | 역대 신인드래프트 | |||
구단 세부 정보 | 특징 | 팀 컬러 | 유니폼( 얼터너티브) | ||
라이벌리 | 상대전적 | |||
vs
|
낙동강 시리즈 vs | 클래식 씨리즈 vs | 엘꼴라시코 vs | 항구 시리즈 vs | 헤리티지 시리즈 vs | 경부선 시리즈 |
||||
지역 연고 학교 |
개성고 |
경남고 |
부경고 |
부산고 |
부산공고 |
부산정보고 | |
|||
팬덤 관련 정보 | 유튜브 | Giants TV(자티비) | ||
응원 | 응원단장 | 응원단 | 마스코트 | |||
선수 응원가 | 팀 응원가 | 마! | 부산 갈매기 | 돌아와요 부산항에 | ||||
팬덤 |
유명 자이언츠 팬 |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 |
갈매기 마당 |
샤다라빠 |
오롯이 |
꼴리건 | |
|||
기담 | 팀 관련 | 엘롯기 | 엘롯한 | 두엘롯 | 한롯기 | 헬로키티 | 기롯삼한 | 조류동맹 | ||
선수 관련 | 로나쌩 클럽 | 비갈 | 금테안경 | 턱거돼 | 마무리 브레이커 | |||
응원 관련 | 기세 | 8치올 | 봄데 | |||
라인업 관련 | 이왕기름넣을거 최대성능으로 가득염 | 죽까고마 | 롯데시네마 | 남두오성 | 홍대갈 | 2010년 롯데 전설의 라인업 | 유돈노 | 윤나고황 | |||
매직 | 로이스터 매직 | 아로요 매직 | |||
기타 | 여담 | 이야깃거리 | ||
사건 사고 |
논란 및 사건사고 ( 경기 관련 | 팬 관련 | 선수 관련 | 구단 관련) |
|||
작품 | 죽어도 자이언츠 | 나는 갈매기 | 1984 최동원 | 꼴데툰 | |||
주관 대회 | 롯데기 야구대회 | |||
틀 문서 | ||||
역대 구단주 | 역대 대표이사 | 역대 단장 | 역대 감독 | 역대 2군 감독 | 역대 주장 | 영구 결번 | 역대 외국인 선수 | 역대 응원단장 | 역대 시즌 | 역대 1차 지명 선수 | 역대 지명 선수 | 역대 은퇴식 | 개막전 선발 투수 | 프런트 | 코칭 스태프 | 선수단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군 입대 선수 | 등록 선수 | 육성선수 | 유니폼 | 응원단 | 마스코트 | 선수 통산 기록 일지 | ||||
1. 개요2. 1980년대3. 1990년대4. 2000년대
4.1.
2000년4.2.
2001년4.3.
2002년4.4.
2003년4.5.
2004년4.6.
2005년
5. 2010년대4.6.1.
김태균 ↔ 현금(
사인 앤드 트레이드)
4.7.
2006년4.8.
2007년5.1.
2010년5.2.
2012년5.3.
2013년5.4.
2015년5.5.
2016년5.6.
2017년5.7.
2018년
6. 2020년대7. 관련 문서5.7.1.
박성민 ↔
채태인(
사인 앤드 트레이드)5.7.2.
최준석 ↔ X(
사인 앤드 트레이드)
5.8.
2019년[clearfix]
1. 개요
롯데 자이언츠의 트레이드를 정리해 놓은 문서.2. 1980년대
2.1. 1983년
2.1.1. 권두조 등 4인 ↔ 임호균
트레이드 일자 | ||
1983.11.17 | ||
↔ | ||
권두조 우경하 박정후 김정수 |
임호균 |
팀의 2선발로 활약하며 1983년 삼미의 활약에 공헌했으나 장명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임호균을 털어내기 위한 차원의 트레이드였다.
롯데로 간 임호균은 84년 최동원과 영혼의 원투펀치를 이루며 후기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한다. 삼미로 간 4명의 선수 중 권두조는 4년 연속 전 경기 출전을 하면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고 우경하는 1986시즌에 타격왕 경쟁을 펼치기도 했으나 3년 뒤 아래에서 설명하는 트레이드로 다시 롯데로 돌아갔다. 박정후는 1984시즌 5승 11패를 기록하며 그런대로 던졌으나 1985시즌 초 갑작스런 시력 이상 증세를 보이며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고 김정수는 1986시즌까지 뛰었다.
2.1.2. 김호근, 김덕열 ↔ 이광길
트레이드 일자 | ||
1983.12.17 | ||
↔ | ||
김호근 김덕열 |
이광길 |
2.2. 1985년
2.2.1. 심재원 ↔ 김용운
트레이드 일자 | 1985.3.14 |
심재원 | 김용운 |
2.2.2. 이광길 등 3인 ↔ 현금
트레이드 일자 | 1985.4.20 |
김재열 이광길 이석규 |
현금 |
2.3. 1986년
2.3.1. 천창호 ↔ 현금
트레이드 일자 | 1986.2.10 |
천창호 | 현금 |
2.3.2. 양상문 등 5인 ↔ 정구선 등 3인
트레이드 일자 | 1986.10.13 |
양상문 임호균 배경환 이진우 김진근 |
정구선 정성만 우경하 |
3년 전 트레이드의 당사자였던 임호균과 우경하가 친정 팀으로 돌아갔고 청보의 간판 타자였던 정구선, 롯데 구단의 실세 박종환 전무에게 찍혀 있던 양상문이 팀을 옮기게 됐다. 사실상 정구선 ↔ 양상문 의 트레이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임호균-배경환, 정성만-우경하가 팀에서 보인 입지로 볼 때 다른 자원들도 무시 못 할 수준의 대형 트레이드라고 볼 수 있다.
팀의 간판 타자 정구선이 빠져나간 청보는 팀이 태평양으로 바뀌는 그 시기까지 완벽한 물빠따로 전락했고, 양상문은 청보로 트레이드 된 이후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해 패전이 너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임호균, 배경환 또한 87 시즌 청보 마운드를 지탱했으나 이후 노쇠화로 기량이 하락하고, 롯데 또한 정구선이 88시즌 12홈런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으며 정성만, 우경하는 아예 묻혔다. 결과적으로 규모에 비해 양 팀이 큰 성과를 못 본 트레이드라고 할 수 있으나 양상문은 93시즌까지 태평양 마운드를 꾸준하게 지키며 활약했으니 청보-태평양이 승리한 트레이드라고 볼 수 있다.
2.4. 1988년
2.4.1. 최동원 등 3인 ↔ 김시진 등 4인
트레이드 일자 | 1988.11.22 |
최동원 오명록 김성현 |
김시진 전용권 오대석 허규옥 |
트레이드의 사유에 대해서는 최동원 문서의 선수협 관련 내용을 참고바람.
KBO 역대 최악의 트레이드이자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 팬 모두에게 큰 상처를 입힌 트레이드. 그 이후 김시진과 최동원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그 두 명을 제외한 5명의 선수에게도 큰 상처를 입혔다. 그나마 그럭저럭 선수 생활을 이어간 선수가 있다면 이만수의 노쇠화로 허약해진 삼성 안방을 떠받친 김성현 정도가 유일하다.
이 트레이드는 아래에 있는 선수들로 비유하자면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이해할 수 있다.
1. 양현종 ↔ 김광현
2. 이대호 ↔ 김태균
3. 강백호 ↔ 이정후
4. 이종범 ↔ 양준혁
얼마 지나지 않아 삼성은 장효조라는 또다른 거목을 롯데 자이언츠에 넘겼다.
2.4.2. 정영기, 이충우 ↔ 박상국
트레이드 일자 | 1988.11.24 |
이충우 정영기 |
박상국 1천만원 |
결과적으로 박상국, 정영기 모두 타율 2할 1푼을 넘기지 못하며 망했다. 이충우는 단 2경기만 등판하고 방출당했으니... 이후 정영기는 돌핀스에서 코치를 역임하며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2.4.3. 김용철, 이문한 ↔ 장효조, 장태수
트레이드 일자 | 1988.12.20 |
김용철 이문한 |
장효조 장태수 |
그래도 장효조와 김용철은 위의 최동원, 김시진에 비해서는 트레이드 이후에도 그 당시 나이를 고려하면 좋은 성적을 내었다.
그렇게 삼성에 뼈를 묻고 싶어하던 장효조는 은퇴 후인 2005년에서야 스카우터로 삼성 라이온즈에 복귀하게 된다. 김용철 역시 롯데와의 서운한 감정을 여전히 드러낼 정도니 88년 말에 이루어진 이 충격적인 트레이드 2건은 아직까지도 각 구단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감이 많이 묻어나는 것 같다. 참고로 장태수는 외야수가 아닌 투수 장태수이다.
2.4.4. X ↔ 박동경
트레이드 일자 | 1988.12.26 |
박동경 |
2.5. 1989년
2.5.1. 이창원 ↔ 현금
트레이드 일자 | 1989.12.29 |
이창원 | 현금 |
3. 1990년대
3.1. 1990년
3.1.1. 김인호 ↔ 이상구
트레이드 일자 | 1990.03.21 |
김인호 | 이상구 |
롯데가 당시 부족했던 좌완투수 풀을 채우기 위해 유틸리티 플레이어 김인호를 내준 트레이드. 이상구는 금방 은퇴하며 잊혀졌지만 김인호는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2001년까지 뛰면서 명백한 태평양의 승리로 끝난 트레이드다.
3.2. 1991년
3.2.1. 허규옥 ↔ 현금
트레이드 일자 | 1991.01.16 |
허규옥 | 2500만원 |
최동원 보복성 트레이드에 포함되어 롯데로 이적했던 허규옥이 다시 친정으로 복귀했지만 이후 별다른 활약을 못보이고 2년만에 은퇴했다.
3.2.2. 전종화 ↔ 현금
트레이드 일자 | 1991.06.28 |
전종화 | 1500만원 |
전종화는 이후 김호근과 포수 자리를 놓고 경쟁했으나 쌍방울 주전 포수의 몫은 박경완에게 돌아갔다.
3.3. 1993년
3.3.1. 송태일 ↔ 김상재
트레이드 일자 | 1993.11.25 |
송태일 | 김상재 |
3.4. 1996년
3.4.1. 김미호, 박지환 ↔ 현금
트레이드 일자 | 1996.11.08 |
김미호 박지환 |
현금 |
쌍방울로 건너간 두 명 모두 큰 활약이 없었다.
3.5. 1997년
3.5.1. 전준호 ↔ 현금
트레이드 일자 | 1997.04.09 |
전준호 | 5억원 |
현대 피닉스로부터 문동환을 받기 위해 계약금(약 4억원)과 그 이자(약 1억원)의 반환의무를 면제받는 조건으로 단행된 트레이드. 김대익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1] 전준호를 보낸 롯데는 이후 삼성에서 트레이드로 김주찬을, FA로 정수근을 영입하기 전까지 오랜 기간동안 1번 타자 부재에 시달리며 고생을 하게된다. 전준호는 첫 해 현대에서 개인 커리어로우를 달성했지만, 이듬해 철지부심 연습을 하여 부활을 알리며, 오랜만에 우승 반지를 획득과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는 겹경사를 누리며, 현대 왕조의 일등공신이 된다.
그리고 전준호는 2022시즌을 앞두고 24년만에 코치로 롯데에 복귀하게 됐다.
3.5.2. 윤형배 ↔ 현금
트레이드 일자 | 1997.06.27[2] |
윤형배 | 3800만원 |
3.5.3. 김종훈, 박동희 ↔ 이동수, 박석진
트레이드 일자 | 1997.06.27 |
김종훈 박동희 |
이동수 박석진 |
크보 역사상 제일 불운했던 신인왕이자 사실상 최초의 저니맨 칭호를 받았던 이동수의 여정의 서막이 이 트레이드가 되겠다. 결과만 놓고 보면 양팀 다 이득을 챙긴 케이스지만 정작 트레이드 주축 선수들이 아닌 보조적으로 따라간 선수들이 더 활약한 특이한 케이스기도 하다.
삼성은 김종훈이 2007년까지 준주전으로 꾸준히 나와 준데다 큰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포스트시즌에서 적극 중용되어 활약, 우승반지를 3개나 얻었다. 롯데로 간 박석진은 1999년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 친정팀 삼성을 상대로 비수를 꽂기도 했고, 이후 전천후 투수로 자주 나오며 올림픽 국가대표까지 해봤다.
반면 두 팀 간 트레이드의 핵심으로 주목받았던 이동수와 박동희는 별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이동수는 얼마 못 가 다시 쌍방울로 재트레이드된 데 이어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이 되었고, 한때 롯데의 마무리였던 박동희 역시 삼성 이적 후에는 퇴물로 전락하며 다시는 부활하지 못했고,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갈베스, 김진웅과 더불어 삼성팬들의 뒷목을 잡게했다. 이후 2002년 시즌 도중 삼성에서 웨이버 공시당해 은퇴했다.
3.5.4. 이종운 ↔ 강대호
트레이드 일자 | 1997.10.03 |
이종운 | 강대호 |
남두오성의 몰락으로 정의할 수 있는 트레이드. 트레이드 자체는 어느 팀도 제대로 이득을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종운은 얼마안가서 은퇴를 한다. 그러나 이 트레이드로 인해 훗날 본인이 감독이 될 때 이 때 친분이 생겼던 장종훈을 롯데 타격코치로 부르게 된다.
3.5.5. 김태형 ↔ 현금
트레이드 일자 | 1997.10.07 |
김태형 | 1500만원 |
트레이드 직후 김태형이 은퇴하면서 아무 의미 없는 트레이드가 되었다.
3.6. 1998년
3.6.1. 이동수, 박계원 ↔ 박성기, 김현민
트레이드 일자 | 1998.06.05 |
이동수 박계원 |
박성기 김현민 |
쌍방울 구단의 존폐가 위협받던 시절의 트레이드임에도 불구하고 묻힌 트레이드. 이동수의 저니맨이 된 트레이드 중 하나. 쌍방울의 초창기 마운드를 지탱해 왔던 박성기가 이 때 나갔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3.6.2. 차명주 ↔ 최기문
트레이드 일자 | 1998.10.23 |
차명주 | 최기문 |
OB는 좌완 필승조를, 롯데는 주전 포수를 얻는데 성공한 윈윈 트레이드.
롯데에서 폐기물 급의 거품 투수로 악명높았던 차명주를 트레이드하기 위해 먼저 접선했고, OB도 마침 진갑용이라는 확실한 주전 포수가 있어서 유망주 최기문을 롯데로 넘길 수 있었다.
3.7. 1999년
3.7.1. 박성기 ↔ 현금
트레이드 일자 | 1999.04.20 |
박성기 | 현금 |
4. 2000년대
4.1. 2000년
4.1.1. 박보현 ↔ 김영수
트레이드 일자 | 2000.05.07 |
박보현 | 김영수 |
박보현은 두산에서 부진한 성적에도 나름 이닝을 소화하다가 2002년 방출되었고 김영수는 팀의 좌완 불펜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선발 전환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후 SK로 트레이드되었다.
4.1.2. 강성우 ↔ 손석만
트레이드 일자 | 2000.12.19 |
강성우 | 손석만 |
포수가 빈약했던 SK가 신인 손석만과 최기문에게 완전히 밀린 강성우를 바꿨다. 강성우는 99년 김영진과 함께 한시즌 최악의 포수라고 불릴 정도로 활약을 하다 김동수,박경완 등에 밀려 백업,2군을 전전하다 방출당했으며 손석만은 1군 기록 없이 방출되었다.
4.2. 2001년
4.2.1. 마해영 ↔ 김주찬, 이계성
트레이드 일자 | 2001.02.01 |
마해영 |
김주찬 이계성 |
마해영의 선수협 활동에 대한 보복성 트레이드이자 8888577의 시발점이 된 트레이드.
롯데는 당초 포수 진갑용, 외야수 강동우를 요구했다.
마해영은 2001~2003년 3년 연속 30홈런, 그리고 연 평균 .310의 타율과 평균 110타점에 이르는 엄청난 생산력을 보이면서 이마양 트리오로 대표되는 삼성의 막강 타선에 크게 기여했고, 커리어 유일한 골든글러브도 삼성 시절에 받았으며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며 팀 우승에도 크게 공헌했다. 심지어 뛴 기간이 더 길었던(7년) 롯데 자이언츠 시절보다, 불과 3년밖에 뛰지 않은 삼성 라이온즈의 선수로 자신을 인식할 정도로 엄청난 단기 임팩트를 보여줬다. 삼성을 떠나고 급격히 하락세를 탄게 아쉬울 뿐.
반대급부로 롯데에 입단한 김주찬의 경우는 2001년 자신의 잠재력을 터뜨리면서 테이블 세터로 좋은 성적을 냈으나, 2002년 백인천에 의해 무리하게 장타자로 스타일 전환을 시도하다가 부진에 빠지고 수비 문제로 여러 차례 포지션 변경[4]을 하면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다 2007년 베이징올림픽 예선전 때의 맹활약 이후 포텐이 만개하여 롯데의 테이블세터로 완전히 자리잡고, FA에서 대박을 치고 KIA로 가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위 두 사람과 대조적으로 이계성은 선수 시절엔 극소수의 올드팬들만 아는 듣보잡이었고, 은퇴 후 KBO 심판으로 전업하면서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4.2.2. 한규식 ↔ 허문회
트레이드 일자 | 2001.07.13 |
한규식 | 허문회 |
94년 LG 우승멤버이자 백업 1루수였던 허문회와 내야 유망주였던 한규식 간 트레이드. 둘 다 백업 멤버들간의 트레이드지만 이례적으로 평소 젊은 선수를 보내고 즉전감인 베테랑 선수를 데려오는 걸 좋아하는 김성근 감독 답지않게 역으로 베테랑 선수를 내주고 젊은 유망주를 받아온 특이한 케이스.
허문회는 롯데로 트레이드된 뒤 2001년 후반기에는 3할로 맹타를 휘둘렀고 2002년에는 커리어 중 가장 많은 타석에 들어서며 준주전급으로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반면 한규식은 2005년을 제외하면 사실상 2군 멤버로 보내다가 KIA로 재트레이드된 뒤 은퇴하며 롯데가 조금 더 이득을 봤다.
4.3. 2002년
4.3.1. 서한규 ↔ 노승욱
트레이드 일자 | 2002.04.03 |
서한규 | 노승욱 |
태평양 시절인 1993년에 데뷔했으나 갈 수록 출장기록이 적어지던 언더핸드 계투자원 노승욱, 당시 롯데의 터지지 않던 유격수 자원 서한규가 트레이드 되었다.
노승욱은 롯데 이적 후 등판이 많아졌으나, 경기 중후반 불안한 피칭을 자주보이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왕기름넣을거 최대성능으로 가득염 이전 "지나가던 '노승 욱' 하며 하는 말"로 롯데의 방화범 리스트에 기억될 정도... 서한규는 2004년 시즌 후 확고한 주전 유격수인 박진만이 FA로 떠난 후 유격수 주전으로 출장하였다. 수비 능력은 어느 정도 탄탄해서 주전으로 낙점되었으나, 현대가 해체된 후 바로 은퇴하여 주전으로 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박진만 이후 주전 유격수로 활약한 임팩트 때문인지 서한규가 롯데에서 트레이드 된 선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4.3.2. 임재철 ↔ 김태균, 이명호
트레이드 일자 | 2002.04.29 |
임재철 8천만원 |
김태균 이명호 |
당시 삼성 입장에서는 틸슨 브리또의 영입으로 팀 내 입지가 좁아진 김태균을 롯데로 보내고, 반대로 외야 백업자원을 보강하기 위해 임재철을 영입한 트레이드이다.
이 트레이드를 통해 김태균은 롯데에서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1군 내야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반대로 임재철은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자마자 그 해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가 되었고, 그 다음시즌에 한화로 트레이드된다. 이 트레이드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은 다름 아닌 이명호인데, 이명호는 좌타 외야 유망주였으나, 롯데로 트레이드되어 백인천에 의해 좌완 사이드암 투수로 전향하면서 커리어에 큰 피해를 입고 처량하게 은퇴하고 만다.
4.3.3. 조경환, 매기 ↔ 윤재국 등 3인
트레이드 일자 | 2002.07.20 |
조경환 매기 |
박남섭 윤재국 에르난데스 |
이 트레이드를 주도 및 실행한 사람은 부산에 들어오면 시체로 나가실 백인천이다. 트레이드 직후 금지어 백골퍼는 시즌 포기를 선언했고 이 트레이드는 롯데 구단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로 회자되고 있다.
조경환은 백인천 감독에 의해 타격폼을 교정했으나 성적이 안 나와 다시 예전 폼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백인천 감독은 조경환이 자신의 말을 거역한 것으로 알고 트레이드시켰는데 트레이드 이후 SK에서 2003년 엄청난 타격 능력으로 팀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반면 롯데가 대체자로 데려간 윤재국은 평범한 활약을 보여주며 SK 쪽으로 완전히 기운 트레이드가 되었다.
에르난데스는 어깨 부상을 당한 후 SK에서도 웨이버 공시가 예정되어 있었던 선수였다. 그러나 롯데는 그런 선수를 데려갔고 결국 시즌 중 롯데에서 웨이버 공시를 당하며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나마 박남섭이 박준서로 개명한 후 2012년, 2013년 특급 대타 자원으로 활약하며 조금은 위안거리가 됐지만, 이는 무려 트레이드 10년 후의 일인데다가 당시 조경환의 활약상을 생각하면 재평가의 여지는 없다.
4.3.4. 김인철 ↔ 현금
트레이드 일자 | 2002.07.31 |
김인철 | 2000만원 |
KIA 타이거즈는 김장현의 위협구에 얼굴을 맞아 광대뼈가 함몰된 이종범의 백업요원으로 김인철을 받고 2천만원을 롯데에게 내주었다. 여담으로 이 트레이드는 타이거즈와 자이언츠 간의 첫 선수 맞트레이드다. 과거 타이거즈의 모기업이 해태제과 였던 시절에는 동종업계 라이벌인 롯데제과가 운영하는 자이언츠와 선수를 주고 받기가 껄끄럽다는 이유로 트레이드를 하지 않았고[5] 타이거즈의 모기업이 기아자동차로 바뀐 21세기 이후에서야 선수 거래의 벽을 허물었다.
4.4. 2003년
4.4.1. 현금 ↔ 김규태
트레이드 일자 | 2003.01.14 |
현금 | 김규태 |
기사나 여러 사이트들을 통해 트레이드가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김규태가 1군 경력이 전혀 없는 선수인 만큼 당시의 기사는 확인되지 않는다.
일단, KBO 연감상에서는 무상 트레이드가 아닌 현금 트레이드로 기록되어 있다.[6]
4.4.2. 현금 ↔ 조효상
트레이드 일자 | 2003.04.19 |
4천만원 | 조효상 |
백인천 당시 롯데 감독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트레이드로 이후 백인천 감독 체제에서 기회를 받았지만 부진한 모습이었다. 감독이 양상문으로 바뀐 이후 2005년 잠시 기용되기도 했으나 이렇다 할 기록은 남기지 못하고 은퇴했고 은퇴 후 2013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을 살았다.
4.4.3. 허문회 ↔ 박연수
트레이드 일자 | 2003.04.25 |
허문회 | 박연수 |
허문회를 다시 친정팀 LG로 돌려보내기 위한 트레이드. 허문회는 2년 만에 친정팀 유니폼을 다시 입었지만,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얼마 못 가 2군으로 내려간 뒤 다시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시즌 종료 후 방출되면서 그대로 은퇴한다. 반대급부로 롯데에 건너간 박연수는 평범한 백업 내야수였으나, 그래도 선수층이 얇았던 롯데에서 2006년까지 준주전으로 뛰었다 보니 롯데의 근소 이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담이지만 허문회는 17년 뒤 감독으로 롯데에 돌아 왔다.
4.4.4. 김영수 ↔ 이용훈
트레이드 일자 | 2003.06.10 |
김영수 | 이용훈 |
조규제가 박경완의 보상선수로 이적한 2003년 SK는 좌완투수가 부족했고 이를 보강하고자 삼성에서 데려왔던 선발 유망주였으나 부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이용훈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해 좌완 파이어볼러였던 김영수를 데려왔다.
김영수는 SK에서 패전처리만 2년간 맡다가 병역비리 사건으로 망했고 이용훈은 롯데로 간 뒤 스윙맨으로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두며 이 트레이드는 명확히 롯데의 이득으로 끝났다.
여담이지만 이용훈은 이 당시 트레이드가 확정됐을 때 고향팀인 롯데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보니 부산으로 운전하면서 내려가는 내내 콧노래를 부르면서 갔다고 한다. 그리고 2011년, 2군에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
4.4.5. 엄정대 ↔ 심제훈
트레이드 일자 | 2003.07.16 |
엄정대 | 심제훈 |
흔치 않았던 타이거즈와 자이언츠 간의 트레이드로 서로 외야 자원을 교환했으나 KIA는 이미 외야가 백업까지 꽉 찬 상태였고 롯데도 외국인 타자 이시온부터 손인호, 이계성, 신종길, 시즌 중 트레이드로 영입한 박연수까지 있어 1군에는 자리가 없었다.
4.5. 2004년
4.5.1. 윤재국 ↔ 김만윤
트레이드 일자 | 2004.04.11 |
윤재국 |
김만윤 7000만원 |
정수근이 FA를 통해 롯데로 이적하면서 설 자리를 잃은 윤재국을 처리하기 위해 단행한 트레이드.
윤재국은 강봉규, 김창희, 최경환, 전상렬, 장원진과 같이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으나 6월 2일, 잠실 LG경기 중 투수 서승화의 고의 태클에 걸려 넘어져 시즌 아웃된데 이어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까지 연루되면서 선수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리고 만다.
한편 윤재국의 반대급부로 롯데에 온 김만윤은 한 때 좌타 외야수 유망주였고 최진행, 최형우 등과 함께 경찰청 야구단 창단 멤버였으나, 끝내 꽃피우지 못하고 군 제대 후인 2008년 방출되어 은퇴, 이후 잠시 국내에서 스카우트와 전력분석원 일을 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현재는 MLB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스카우트로 근무 중이다.
굳이 따지면 윤재국을 주전으로 잠깐이나마 기용한 두산이 우위긴 해도, 이득을 봤다고는 하기 어려워 결론적으로는 두 팀 모두 이득을 못 본 트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4.5.2. 박석진, 김대익 ↔ 노장진, 김승관
트레이드 일자 | 2004.07.12 |
박석진 김대익 |
노장진 김승관 |
시즌 초 삼성에서 음주 및 무단이탈 사고를 쳤던 노장진을 처리하기 위해 이뤄진 트레이드. 롯데 역시 마무리 보강을 목적으로 해당 트레이드를 추진했고, 반대급부로 박석진과 김대익이 삼성으로 건너갔다.
트레이드 당시까지만 해도 부상으로 재활하던 30대 불펜투수와 성장 한계가 뚜렷한 외야수를 내주고 검증된 마무리감을 받아온 롯데가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삼성의 우세로 끝이 났다. 박석진과 김대익은 삼성에서 각각 불펜과 대타요원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이며 2005년, 2006년 2연패에 보탬이 됐고 둘 다 롯데 시절에 껴보지도 못한 우승반지를 획득한다. 반면 롯데로 건너간 노장진은 트레이드 첫 해에는 나름 철벽 마무리의 모습을 보였으나 1년 후 다시 무단이탈을 하는 등 논란만 일으키다 2006년 FA 미아로 은퇴했고, 김승관 역시 만년 유망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출당하며 은퇴한다. 다만 이 중 박석진은 2006년 시즌 종료 후 삼성에서 방출된 뒤 다시 롯데로 돌아온다.
4.6. 2005년
4.6.1. 김태균 ↔ 현금( 사인 앤드 트레이드)
트레이드 일자 | 2005.01.31 |
김태균 | 1억원 |
해를 넘기도록 FA 계약을 맺지 못하던 김태균을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SK가 영입했다. 최정이 3루에 자리 잡기 전까지 3루 주전으로 쓰이고 최정이 3루 주전으로 자리 잡은 이후로는 내야 유틸리티로 기용되고 2007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어 은퇴했다.
4.7. 2006년
4.7.1. 최준석, 김진수 ↔ 최경환, 이승준
트레이드 일자 | 2006.05.17 |
최준석 김진수 |
최경환 이승준 |
두산 화수분야구의 일원이었던 최경환은 롯데에서는 두산 시절의 명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승준도 별 활약 없었다. 반면 두산은 최준석이 2009년부터 대활약을 하면서 김현수, 김동주와 함께 두산의 클린업 트리오를 이루었고, 김진수는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4포수까지 밀렸지만 일찌감치 코치 수업을 받고 나름 괜찮은 평을 들으며 두산에서 꽤 오래 코치로 재직중이다. 두산의 완승.
이후 최준석은 2013 시즌 후 FA를 통해 친정팀 롯데로 돌아왔다.
4.7.2. 신민철 ↔ 강영식
트레이드 일자 | 2006.11.21 |
신민철 | 강영식 |
만년 유망주 간의 트레이드이다.
신명철은 2009년에 20-20 클럽에 가입하는등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고 강영식 또한 이적 후 오랫동안 셋업맨으로 활동하며 100홀드 이상을 달성하게 되는 윈윈 트레이드.
4.8. 2007년
4.8.1. 박석진, 손인호 ↔ 최길성, 최만호
트레이드 일자 | 2007.07.29 |
박석진 손인호 |
최길성 최만호 |
LG의 백업 외야수였던 최길성과 최만호는 롯데로 넘어가고서 3년을 넘지 못하고 방출당했다.
롯데의 베테랑 투수 박석진은 LG로 넘어간 후 별다른 활약 없이 다음 해 은퇴했다. 그나마 이 트레이드에서 오래 뛴 선수가 LG에서 백업 외야수로 2012년까지 뛴 손인호일 정도로 언급할 여지가 적은 트레이드.
5. 2010년대
5.1. 2010년
5.1.1. 김민성, 김수화 ↔ 황재균
트레이드 일자 | 2010년 7월 20일 |
김민성 김수화 20억원 |
황재균 |
20억이란 엄청난 뒷돈이 오간 트레이드. 히어로즈 주축 선수 삼인방 트레이드의 연장선이다.
우리/서울 히어로즈 당시 포텐을 만개시키려던 황재균은 트레이드 직후 롯데에서 귀신같이 침묵하며 실패한 영입이라는 평가를 잠시 듣기도 했으나 주전 3루수로 도약하고 샌프란시스코와 스플릿 계약을 맺고 메이저 리그 출전도 이뤄내는 등 본인이 받던 기대 이상의 활약을 선보였다.
그리고 롯데에서 도무지 키워내질 못했던 김민성은 넥센에서 초기에 빼빼 마른 몸에 성적이 나오지 않으나 2012년 후반기 벌크업 신화의 주축 선수가 되어 국대 승선까지 하는, 롯데에 계속 있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영예를 누렸다.[7] 이후로도 꾸준한 성적을 거두고 FA가 되어 LG로 이적했다.
이 트레이드 자체는 결국 김수화를 뺀 나머지 두 명이 팀 내 주전 3루수가 되어 국대 승선과 함께 둘 다 모두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으며 성공.[8]
2017년에 황재균은 4년 총액 88억에 고향 연고지 팀인 KT로 이적하게 되었고 김민성은 이 트레이드의 무게감 때문에 현금 트레이드 여부를 조사하느라 등록되지 못한 단 1일 때문에 FA 신청이 1년 늦어지게 되었다. 황재균을 놓친 롯데측 팬덤에서는 내년 FA때 김민성을 사오자는 의견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구단의 입장으로 보면 Win-Win 트레이드가 되었고, 피해자는 상기한 이유로 김민성뿐이었다.
트레이드와는 별개로 김민성이 FA가 되자 그렇게 김민성을 사자고 외치던 롯데 팬들은 김민성이 키움과의 FA 계약을 맺고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LG에 입단했단 소식에 접하자 양상문과 프런트를 까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는 2년차 신인 한동희를 붙박이 3루수로 키운다는 전제하에 김민성을 영입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때 한동희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며 얼마 안가 2군으로 강등되고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하는 등의 이유로 대체 외국인 제이콥 윌슨이 3루를 보기도 했다. 이후 2020년에 마침내 한동희가 터지고 김민성이 부진하며 이 행보는 재평가되었다.
5.1.2. 이정훈, 박정준 ↔ 고원준
트레이드 일자 | 2010년 12월 20일 |
이정훈 박정준 19억원 |
고원준 |
이 또한 비공식적으로 19억의 뒷돈이 오갔던 트레이드.
고원준은 간간히 기대치를 충족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였지만 결국은 대차게 망했다. 참고로 이 트레이드는 황재균과 달리 김시진 당시 감독의 판단이 작용한 트레이드였다. 자세한 이유는 고원준 참조.
넥센으로 트레이드 된 선수 중 이정훈은 불펜으로 기대 이상으로 쏠쏠했던 반면, 박정준은 출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팀에서 나가게 되었다.
5.2. 2012년
5.2.1. 김명성 ↔ 용덕한
트레이드 일자 | 2012년 6월 17일 |
김명성 | 용덕한 |
두산은 양의지, 최재훈을 비롯한 포수들의 성장으로 자리가 없어진 용덕한을 내보내게 되었고, 반대급부로 2010년 아시안 게임 명단에 포함되었던 김명성을 받아왔다. 롯데로 간 용덕한은 그 해 준플레이오프에서 친정팀을 상대로 엄청난 활약을 펼쳤고, 2015 시즌에 kt wiz로 이적하기까지 강민호의 백업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김명성은 두산에서도 아무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2016 시즌 종료 직전 은퇴했다. 결과적으로 롯데의 완승이긴 하지만, 두산 입장에서도 어차피 잉여화된 자원 하나 써서 로또 긁어본 셈인 만큼 큰 손해는 아니긴 하다. 물론 2012년 정규시즌 3위를 하고도 준PO에서 용덕한에게 얻어맞은 점은 적잖이 손해다.
5.3. 2013년
5.3.1. 송창현 ↔ 장성호
트레이드 일자 | 2013년 2월 1일[9] |
송창현 | 장성호 |
한화에 김응용 감독이 부임하며 야인 시절부터 주목해왔던 송창현의 영입을 위해 단행한 트레이드.[10]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지명만 받고 아직 팀에 합류조차 안한 신인 선수와 아주 유명한 베테랑의 트레이드로 당시 화제를 모았었다.
송창현은 첫 해 괜찮은 모습을 보인 후 부진했고 군제대 후에도 변함없는 성적을 찍었다. 장성호도 롯데에서는 그저 그런 성적을 남기고 kt로 이적했다.
5.4. 2015년
5.4.1. 장성우 등 5인 ↔ 박세웅 등 4인
트레이드 일자 | 2015년 5월 2일 |
장성우 최대성 윤여운 이창진 하준호 |
박세웅 이성민 조현우 안중열 |
자세한 내용은 박세웅 ↔ 장성우 트레이드 문서 참고하십시오.
5.5. 2016년
5.5.1. 고원준 ↔ 노경은
트레이드 일자 | 2016년 5월 31일 |
고원준 | 노경은 |
서로 골칫거리를 치운 트레이드.
두산 입장에서는 팀케미를 박살내서 당연히 트레이드 돼야 할 노경은을 그보다 5살 어린 선발 및 스윙맨과 바꿨고, 롯데의 입장에선 역시나 사생활 문제가 있고 포텐이 터지지 않고 있던 투수를 보내며 토종선발감이 필요한 상황에 딱 구했다. 물론 둘의 나이 차이가 있기에 롯데 팬들은 뭣하러 33살에 기량이 하락한 노경은과 아직 가능성이 남아있는 고원준을 트레이드 했냐며 논란이 일고 있다.
고원준은 트레이드 첫 해 6월 3일 vs SK 전에서 고원준이 5이닝 1실점을 기록하고 승리투수가 되었으나 6월 11일 전 소속팀 롯데를 상대로 볼질을 남발하다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하여 버렸다. 이후 불펜으로 내려갔다가 7월 2군으로 내려가 시즌을 마쳤다. 2017년 여전히 구속을 회복하지 못한 채 2군에서 불펜수업을 받고 있으나 2군 방어율 4.80으로 딱히 좋지 못하다. 애초에 선발투수로서 메리트가 있고 희망이 있던 선수였지 불펜으로 뛰기엔 패스트볼의 구위도 죽고 변화구의 제구도 좋지 못했다. 그렇게 2017년 11월 25일, 결국 방출되었다.
노경은은 트레이드 당해 6월 22일 첫 선발 등판에 2년만의 승을 따내고, 28일 날은 6이닝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이후 부진했다가 후반기 들어 세 경기 연속 QS를 기록하는 등 살아나는듯 했다. 2017년은 1군에서 부진하여 2군 선발 로테이션을 돌았다. 2018시즌 노경은은 달라진 투구 패턴을 습득하며 토종 1선발의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이후 FA 미아가 되고 롯데측과 서로 마찰 끝에 1년을 쉰 노경은은 2020년 다시 롯데와 FA 계약을 맺었다. 2020년에도 선발로 쏠쏠하게 해주면서 노경은이 2021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으나 트레이드는 명확히 롯데의 완승으로 끝났다.
5.5.2. 김성배 ↔ 김동한
트레이드 일자 | 2016년 7월 23일 |
김성배 | 김동한 |
2012년 2차 드래프트로 롯데로 이적했던 김성배가 4년 반만에 친정 팀으로 돌아왔다. 트레이드로 받아 온 선수는 김동한.
두산은 정재훈이 팔꿈치 부상을 당해서 이탈 이 후 5월 부터 6월 초 사이 불펜진이 뜬금없이 막장화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두산 특유의 불펜진들이 워낙 약하기 때문. 롯데는 내야진 강화를 위해 단행한 트레이드.
트레이드 당시에는 김동한이 팬들 사이에서 나름 기대하던 유망주였고, 김성배가 2차 드래프트로 이적할 당시 섭섭하다는 발언을 했던 전적이 있어서 두산 팬들 사이에서의 여론은 좋지 않았다. 이와 별개로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소간 엇갈렸다.
이후 두산은 김성배가 2017년 들어 패전조로 밀려난 뒤 9월 이후 거의 등판하지 못하다 방출당했으나 2016년은 정재훈이 빠진 불펜을 잘 이끌어 팀의 우승을 도왔고, 김동한은 2016년 어처구니 없는 실력에도 붙박이 2루를 보던 정훈을 밀어내고 후반기 주전으로 자리잡았고 2017년에는 용병 앤디 번즈에게 2루를 내주고 3루에서 그냥저냥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이후 한동희가 3루 붙박이로 성장하여 자리를 잃었다. 2020년 코치 제안을 수락하고 은퇴했다.
어느 쪽이 이득이라기엔 애매하지만 김성배로 우승을 얻은 두산이 우위라 할 수도 있는 트레이드.
5.6. 2017년
5.6.1. 오태곤, 배제성 ↔ 장시환, 김건국
트레이드 일자 | 2017년 4월 18일 |
오태곤 배제성 |
장시환 김건국 |
투수력에 비해 타력이 심하게 약하던 kt와 중간계투가 노쇠화된 롯데, 서로간의 합이 맞아 발생한 트레이드이다. 오태곤은 적극적으로 밀어주려던 롯데의 풀타임 기회를 부상과 자신의 능력부족으로 날려버렸던 선수.[11] 타구를 외야로 보내는 것에 재능이 있지만 삼진율이 20%후반 30%초반을 왔다갔다 하며 공갈포 기질이 있으며, 타격의 이점을 너무나도 못 볼 수준의 수비로 날려버린 끝에 결국 트레이드가 되었다. 만 30세 시즌을 맞이하는 '패동렬' 장시환은 8회 셋업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시환은 트레이드 초반 무실점 행진을 보였으나 멘탈의 문제인지 박빙인 상황에 난타를 당하며 롯데의 후반기 불펜진 개편과 함께 롱릴리프로 보직이동을 하고 이듬해까지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으나, 2019년은 양상문 감독이 시즌전 선발로 고정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닝 소화에 버거운 모습에 허리 부상까지 겹쳐 전반기를 날렸다. 하지만 후반기에는 기복은 있지만 꾸준히 로테를 돌며 활약했고 토종 선발치곤 괜찮은 성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2019년 11월 말, 롯데는 나 나랜드라는 환상의 포수 자리를 메꾸기 위해 장시환을 트레이드하여 포수 지성준과 맞바꿨다. 이후 2020년 1월 한화의 스프링캠프 출국장에서 장시환이 엠스플과 인터뷰를 가졌는데, 인터뷰 내용 도중 롯데 선수들과 팬들을 저격하고 지성준에게도 "사직에서도 힘들 것[12]"이라는 우려를 표명하면서 현재 장시환은 롯데에서는 금지어로 굳어졌다.
김건국은 트레이드 이후 두 해 동안 1군에서 거의 등판하지 못했으나, 2019년부터 전보다 1군 부름이 많아졌고 선발 롱릴 불펜 모든 보직을 오가며 1군에서 그럭저럭 쓸만한 피칭을 했다. 2020년은 후반기부터 1군에 올라왔으나 좋은 활약으로 1군에서 30이닝을 소화했다. 2021년에는 부진했고 팀의 리빌딩 계획에 따라 방출되었다. 이후 KIA에서 2023 시즌에 영입된 후 대체선발로 쏠쏠한 활약을 하기도 했다.
오태곤은 점차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가장 문제인 고질적인 수비문제를 개선하지 못하여 확실한 포지션에 정착하지 못하였고 시즌 후 황재균이 fa로 이적함에 따라 입지는 더더욱 좁아지게 되었다. 그래도 18년에는 코너외야로, 19년에는 1루수로 입지를 유지했으나 조용호, 배정대의 주전 도약, 강백호의 1루 전향으로 입지를 잃고 SK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런데 영수증 취급받던 배제성이 터졌다. 하위 라운더 출신으로[13] kt 이적후 1군에서 간혹 나오며 구속은 좋으나 어마어마한 막장 제구력을 보여주며 아직은 담금질이 더 필요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9년 롱 릴리프~6선발 위치에서 시즌을 시작해 5월 하순부터는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하였고, 후반기에는 8월 한 달간 ERA 1.80을 기록하며 사실상 팀 내 토종 1선발 역할, 5강 경쟁의 핵심 역할을 수행, 8월 MVP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결국 kt wiz 토종 투수 최초 10승 달성에 성공했고 9월에는 롯데 상대로 커리어 첫 완봉승을 따내면서 확인사살까지 했다. 롯데 입장에서는 그렇잖아도 투수력이 전 구단 최약체인 가운데 아까운 선발 유망주를 잃은 셈.
최종적으로 남은 배제성과 연관성이 있는 지시완으로만 봤을 때 kt의 명백한 승리로 끝났다. 재밌는 건 메인칩보단 영수증 취급 받던 선수들이 더 활약해줬다는 것.
5.7. 2018년
5.7.1. 박성민 ↔ 채태인( 사인 앤드 트레이드)
트레이드 일자 | 2018년 1월 12일 |
박성민 2억원 |
채태인 |
넥센이 FA 채태인과 계약을 맺은 뒤 롯데와 성사한 사인 앤드 트레이드. 넥센은 어차피 박병호가 돌아오는 바람에 자리가 없어진 채태인과 계약할 의사가 없었으나, 무소속 자유계약 선수지만 비싼 보상을 받을 권리는 붙어있어 타팀이 데려가기엔 껄끄러운 KBO의 특이한 규정에 묶여있었고, 보상선수 대신 돈(전년도 연봉 300%)만 받겠다고 공표를 했음에도 아무 팀에서도 데려가지를 않자, 자구책으로 사인 앤드 트레이드를 시도하면서 보상의 수위를 스스로 대폭 낮췄다.
롯데는 베테랑 좌타 1루수를 얻어 이대호의 체력 분담과 우타 투성이인 타선에 좌타자를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넥센은 작년에 그토록 많이 했던 좌완 투수 모으기를 올해도 계속 할 모양.
채태인은 18년 이대호 대신 1루수 역할을 제대로 해냈으나 19년은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고, 시즌 후 채태인은 다시 2차 드래프트로 SK로 건너갔다.
박성민은 2019년부터 외야수로 전향했지만 1군 출전은커녕 2군에서도 15경기에만 출전해 타율 7푼 1리라는 처참한 성적에 그쳤다. 2019년 입대하면서 아예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군제대 후 다시 팀에 복귀할 가능성도 있었으나 전역 후 파주 챌린저스에 입단하며 방출 확정.
이후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 중 뒷돈 2억원이 포함된 트레이드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5.7.2. 최준석 ↔ X( 사인 앤드 트레이드)
트레이드 일자 | 2018년 2월 11일 |
최준석 | - |
2018시즌 스토브리그 두 번째 사인 앤 트레이드. 롯데 입장에서는 채태인 영입으로 더는 필요가 없게 된 FA 최준석을 싼 금액에 계약한 후 NC로 무상 트레이드하며 자칫 FA 미아가 될 뻔했던 최준석은 극적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NC 입장에서는 지명타자 롤을 맡을 타자를 영입. 그러나 시즌 시작 전부터 천명해 온 세대교체 및 리빌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개막 이후 최준석은 역전 쓰리런을 치는등 맹활약하나 싶었으나 단타를 치게 되면 필수적으로 대주자/대수비 요원이 필요했던 탓에 엔트리 운용이 비효율적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5월 이후 채태인이 날아다니는 것과 달리 부진하며 김경문 감독이 비판받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결국 무릎/허벅지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상황.
결국 최준석이 한 시즌만에 방출되면서 성공한 영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 쌌기 때문에 딱 연봉 5,500만원 분량의 대타 값어치는 한 셈.
5.8. 2019년
5.8.1. 장시환, 김현우 ↔ 지성준, 김주현
트레이드 일자 | 2019년 11월 21일 |
지성준 김주현 |
장시환 김현우 |
롯데가 강민호의 삼성 이적 후 포수난으로 골머리가 아팠음에도 올해 FA, 2차드래프트에서 포수를 걸렀던 이유. 성민규 단장이 믿었던 구석. 반면 한화는 30대 파이어볼러 선발을 받아와 선발난에 대응했다.
이 트레이드에 대한 한화팬들의 반응이 나쁜 이유는 일단 장시환의 나이가 리빌딩 팀에 어울리지 않는 33세인데다 2019년에야 겨우 풀타임 선발로 120이닝을 간신히 넘긴지라 이 모습이 플루크일 가능성이 있고,[14] 롯데의 포수 문제가 대놓고 심각했기 때문에 한화가 주도권을 쥐고 협상할 수 있음에도 주도권을 빼앗긴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결과이기 때문.
그런데 사실 롯데의 포수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어 그렇지 한화의 토종선발도 기간적으로는 롯데의 포수 이상 가는 고질병이긴 했다.[15] 장시환의 성적이 뛰어나진 않지만 한화에서 같은 성적을 낸다면 무난하게 토종 1선발이다.[16] 포수가 중요한 건 투수의 성적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수비 포지션이어서인데, 토종 선발이 이 정도로 전멸해버리면 지성준이 백업으로 아무리 준수해도 존재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17] 2019년 롯데의 수비가 포수내외야 가리지 않고 처참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수비 잘하는 최재훈과 배터리를 맞춘다면 나아지리란 기대도 해 볼수가 있다. 또한 이우성과 윤수호의 트레이드처럼, 투수의 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한편 한화는 윤호솔, 신정락에 이어 3연속 북일고 출신 투수를 트레이드 영입했다. 아예 성민규 단장도 대놓고 연고지 투수라는 것에 한화가 혹할 것을 알고 있다고 할 정도였는데, 정범모나 송은범은 애증의 선수를 그나마 어린 선수로 바꿔왔다는 핑계라도 있지 20대 군필 선수를 30대 중반으로 바꿔온 것이 과연 한화가 외치던 리빌딩이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한편 트레이드 이후 2020년 1월 한화의 스프링캠프 출국장에서 장시환이 엠스플과 인터뷰를 가졌는데, 인터뷰 내용 도중 롯데 선수들과 팬들을 저격하고 지성준에게도 "사직에서도 힘들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면서 현재 장시환은 롯데에서는 금지어로 굳어졌다.
지성준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1군에서 올라오지 못했고 트레이드가 일어난지 1년도 채 안 된 2020년 6월 26일 지성준이 사생활 문제로 무기한 자격정지 중징계를 받는 예상 외의 상황이 발생했다.[18] 정민철이 이를 알고 트레이드시켰을 리는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의문의 1승. 징계가 풀리고 이후 지성준은 지시완으로 개명했다. 2021시즌 지시완은 절치부심하며 준비했고 문제였던 수비도 준수 해졌지만 허문회 감독에게 외면 당하면서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5월 11일 서튼 감독 취임 후 주전으로 많이 나오면서 공수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가면 갈수록 블로킹과 선구안에 문제가 생기며 플래툰 성적을 찍고 있다가 2023년 유강남 영입 이후로는 거의 2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결국 2024시즌 도중 방출되었다.
김주현은 2군에 머무르다 2021년부터 1군에 올라와 타격에서 가능성을 보이고 있었지만 2군에서 타격왕 조작 논란을 일으킨 이후 처참한 타격으로 2022년 개막엔트리 합류에 실패하며 2군 본즈임을 입증하고 있다. 결국 다시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한 채 2023년 8월 13일 웨이버 공시되었다.
장시환은 초반 2경기의 호투에도 평균 자책점 7점대를 찍고 2군으로 떨어지면서 오히려 짐이 되어버려 롱릴리프로 보직을 바꿨다. 그러나 이듬해 선발로 130이닝을 먹어주며 박살나기 일보 직전의 한화의 선발진에 큰 도움을 주었다. 2021년 아직 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 연패에 빠지며 결국 2군에 내려갔다. 2022시즌에는 정우람의 마무리 공백을 메우는 듯 했으나 귀신같이 커리어로 회귀하는 중이다. 김현우는 2020년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이후 입대하여 2022년 중 전역해 팀에 복귀했다. 복귀 후 1군 출장 기록 없이 2024년 7월 31일 육성선수 말소되어 방출되었다.
1군 경력이 적어 아직 평가를 내리기 힘든 김현우를 제외하면 2년을 플래툰 역할을 한 포수와 기복은 있지만 1군에서 그럭저럭 역할은 해내는 마당쇠를 맞바꾼 트레이드가 되었다. 그러나 지시완과 김주현이 모조리 방출된 현재 장시환이 트레이드 이후 한동안 부진하긴 했지만 선발, 불펜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얇은 뎁스로 인한 투수진의 과부하를 막은 한화의 이득으로 끝난 트레이드가 되었다.
6. 2020년대
6.1. 2020년
6.1.1. 전병우, 차재용 ↔ 추재현
트레이드 일자 | 2020년 4월 6일 |
전병우 차재용 |
추재현 |
코로나-19로 스토브리그가 연장되는 사이에 발표된 깜짝 트레이드. 키움은 군필 내야수와 좌완 투수 보강을, 롯데는 외야의 고령화를 대비해 외야 유망주를 영입했다.
키움은 '좌타 외야수'가 당장 이정후, 임병욱이란 주전급 외에도 박정음, 허정협, 김규민, 송우현, 예진원, 박준태에 신인 박주홍까지 보유해[19] 추재현에게는 기회를 주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반면 '좌완 투수'는 나이 30대 중반의 오주원에다가 김성민, 이승호, 정대현, 이영준 등이 있지만 의문부호가 있거나 군 문제가 남은 상황이라[20] 선발이든 계투든 정작 써먹을 선수가 적었다.[21] '내야수'도 당장 하위 타순 주전, 못해도 대타로 써먹을만한 우타자가 적은데다가 현재든 미래든 우려 요인[22]이 명확한 상황이기에, 군 문제가 해결된데다가 1군에서 충분히 가능성을 보인 전병우와 차재용으로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영입했다. 다만 전병우가 30살이 목전이고 차재용이 히어로즈가 이전부터 모아왔던 구속 느린 좌완 투수들과 비슷한 유형이라 우려되는 상황.
롯데의 경우 손아섭, 민병헌 두 명에게 (보상금 포함) 180~190억에 달하는 거액을 들일 정도로 확실한 외야수가 적은 상황이다. 게다가 작년 주전 좌익수 전준우는 수비 문제로 인해 FA 재계약 후 1루로 포지션 변경 중, 이병규는 나이도 있고 꾸준히 부상을 안고 있어 언제 은퇴를 선언할 지 모르는 상황, 나경민은 플레잉코치로 전향, 가장 기대했던 고승민은 사생활 논란이 일어난 후 일찌감치 입대, 허일, 강로한, 정훈은 프로 입단 후 외야수로 전업한 선수들이란 점에서 좋은 외야 유망주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허문회 감독이 키움 코치 시절 본 적이 있고 2군에서 나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추재현을 영입해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성민규 단장이 민병헌과 손아섭의 FA 이후를 대비한 트레이드였다고 밝혔다.
여담으로 3명 모두 19-20 시즌 질롱 코리아의 엔트리 멤버라는 공통점이 있다. 차재용은 들었다가 바로 삭제됐지만.
전병우는 모터가 방출되고 김웅빈이 아직 풀타임 수비를 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5월 말 1군으로 콜업된 뒤 맹활약해줬고 이후 5월만큼의 맹활약은 없으나 안정된 3루 수비로 김민성 이후 3루수 부재를 절감하던 키움의 고민을 덜어주었다. 거기에 공격력도 나쁘지는 않은 수준인데다 여차하면 2루와 1루 수비도 가능하여 활용도가 많기 때문에 전임자 장영석보다는 확실히 낫다는 반응이다. 2021년부터는 그냥 하던대로 타율 2할 언저리의 시원찮은 타격과 봐줄 만한 수비를 유지 중이다. 2022년에는 경기 막판 인상깊은 결승타를 종종 쳐냈으며, 2022년 한국시리즈 1차전 데일리 MVP를 타는 등, 승부사 기질을 보였다. 2023시즌 종료 후 2차 드래프트로 삼성으로 이적했다. 차재용은 2020년 잠시 1군에 올라오기도 했으나 2021년 1군 등판 자체가 없는 상황이었다가 정규시즌 종료 직전 웨이버 공시되었다.
롯데로 간 추재현은 시즌 초반 1군에서 간간히 보였으나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2군으로 내려가 경험을 쌓았다. 다음 시즌에는 타격 포텐셜이 터지면서 민병헌을 밀어내고 주전 중견수로 자리매김하고 신인왕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 좋았던 기세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후반기에 가파르게 추락하며 전반기 때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2022년에는 개막 엔트리 진입에 실패했다가 5월에야 올라왔고 활약도 없었다. 2022시즌에는 손아섭의 이적으로 공백이 생긴 외야 한자리를 고승민과 황성빈에게 경쟁에 밀려버렸고 향후 주전으로 도약하기가 쉽지만은 않아보인다.
하지만 애당초 현재를 바라본 구단과 미래를 바라본 구단 간의 트레이드였으며[23] 추재현이 전병우보다 7살이나 어려 플레잉타임이 긴만큼 롯데에게 손해를 따지기엔 한참 이르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재현이 1군에서 활약을 해야 손익계산이 가능한 것이지, 어리다고 능사는 아니다.
6.1.2. 신본기, 박시영 ↔ 최건, 2차 3라운드 지명권
트레이드 일자 | 2020년 12월 4일 |
신본기 박시영 |
최건 22년 2차 3라운드 지명권[24] |
21년 만에 나온 지명권 트레이드이다. 정확히는 KBO가 1999년 마일영(2000년 2차 1라운드 지명권) 트레이드 이후 신인지명권 양도를 금지시켰다가 최근 규약 개정을 통해 다시 허용을 해주고나서 처음 나온 지명권 트레이드이다.[25]
kt는 주전 유격수 심우준의 군입대를 대비하기 위한 내야 유틸자원과 즉전감 불펜투수를, 롯데는 미래를 보고 영입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롯데는 2022년 2차 3라운드 지명권으로 강릉고 내야수 김세민을 지명한다.
초반에는 메인인 신본기가 시원찮았지만 서서히 내야 전천후를 오가며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박시영으로, 트레이드 첫 해 추격조에서 시작해 필승조가 되어 강철매직의 철벽불펜으로 각성했다. 다음해 2022년에는 지난 시즌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수준이지만 승계주자가 있는 상황에 많이 등판해 멀티이닝을 소화하며 분식을 거의 저지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부상으로 시즌아웃 되었다.
롯데의 경우 이제 갓 군대를 다녀온 최건(개명 후 최이준)과 입단한지조차 얼마 안되는 김세민 둘 다 어려서 이렇다할 평가를 하기 이른 상태다. 2023년 최이준이 ERA 6.83 WHIP 2.00의 성적으로 부진했지만 1군에서 29이닝을 던지며 평균 구속 146의 빠른 공을 보여줬다.
다만 kt는 2021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두 선수가 기여했다는 것만으로 윈나우성 트레이드의 목적을 달성했으며 이미 트레이드를 성공한 입장이다. kt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지, 윈-윈 트레이드가 될지가 최이준과 김세민의 성장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6.2. 2021년
6.2.1. 2차 4라운드 지명권 ↔ 강윤구
트레이드 일자 | 2021년 7월 22일 |
22년 2차 4라운드 지명권[26] | 강윤구 |
도쿄 올림픽 대표팀 차출로 인한 올림픽 브레이크 도중 단행된 트레이드이자 한창 코로나 사태로 시끄러울 동안에 이뤄진 트레이드. 이후 NC는 이 지명권으로 원광대 내야수 조효원을 지명했다.
좌완 기근에 시달리던 롯데[27]가 마침 NC에서 자리를 잃은 상태였던 강윤구를 노렸다고 한다. 하지만 상당수의 롯데 팬들은 강윤구가 몇 년간 1군에서 제 몫을 못 해왔던 터라 2군급 투수를 아까운 지명권을 주고 데려왔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중이다. 물론 이전에 kt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3R 지명권을 한 장 더 획득한 만큼 롯데 입장에서도 4라운드 정도면 큰 손실은 아니긴 하겠지만. 한편 그동안 중고참을 내주며 어린 유망주를 주로 받아왔던 롯데 성민규 단장이 처음으로 한 윈나우(?) 트레이드이기도 하다.
반면 NC 팬들은 안 그래도 팀이 방역수칙 위반사건으로 어수선한데다가 김종문 단장이 직무에서 배제된 와중에 단장 대행인 임선남이 트레이드를 성사시킬 줄은 몰랐다고 놀라고 있다. 심지어는 1군에 거의 모습조차 비치지 않으면서 연봉 1억원을 받고 있는 강윤구를 신인드래프트 지명권으로 바꿔왔다는 점에서 칭찬을 받고 있다. 전년도 학폭 논란에 휘말린 김유성의 1차 지명을 철회하면서 날아갔던 지명권을 이번 트레이드로 미약하게나마 벌충한 셈이다.[28]
강윤구는
6.2.2. 김준태, 오윤석 ↔ 이강준
트레이드 일자 | 2021년 7월 31일 |
김준태 오윤석 |
이강준 |
트레이드 마감일인 7월 31일에 일어난 트레이드다.[29] 바로 위 서건창-정찬헌 트레이드와도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데, 1위인 kt 입장에서는 박경수의 노쇠화로 인해 2루수 포지션이 아쉬운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2경기차 2위의 LG가 서건창을 트레이드하면서 약점을 보강하자 선두를 수성해야 하는 kt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트레이드를 단행하게 되었다. 결국 서건창-정찬헌 트레이드가 스노우볼로 굴러가 이 트레이드까지 연결된 셈.
트레이드 당시 평가는 오윤석, 김준태 모두 kt에서도 확실한 자리가 없는 상황[30]이라 롯데의 이득이라는 의견이 많다. 성패의 관건은 21세기 들어 롱런한 잠수함 투수가 임경완 외에는 없다고 봐야하는 롯데에서[31] 이강준이 어떻게 성장할 지, 반대로 kt는 오윤석이 기존 내야 경쟁자들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김준태는 전술했듯이 2021 시즌에는 전력으로 볼 수 없으나, 시즌 후 kt의 주전 포수인 장성우가 FA가 되는 만큼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카드라고 볼 수 있다.[32]
2021년 오윤석은 내야 백업으로 자리를 잡았고 2022년 타격 성적은 다소 아쉽지만 박경수의 노쇠화로 무주공산이 된 2루 자리를 차지했다. 적어도 새로운 2루수를 세울때까지의 스탑갭 역할은 하고 있다. 2023년에는 강백호의 외야 출장 빈도가 높아지고 박병호의 부상 빈도도 높아지면서 1루수로 주로 출전하면서 지난 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김준태는 2022년에 타격이 터지고 장성우가 부상으로 이탈한 시기를 잘 메꿔주는 등 타팀에 가면 주전을 먹어도 될만큼 준수한 백업 포수로 자리를 잡았다. 2023년 타격성적은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백업 포수치고는 준수한 타격을 보여줬다. 그러나 강현우의 성장으로 포수 출장 빈도가 줄어들면서 시즌 막판에는 아예 대타로 전락했다. 일단 kt는 윈나우성 선수들을 받아와 실제 전력으로 활용을 하면서 이득을 본 셈이다.
그리고 2023년 1월 20일, 이강준이 FA 한현희의 보상선수로 키움으로 이적하며 결국 이 트레이드는 kt의 압승으로 마무리되었다. 전술했듯이 롯데는 이강준이 미래에 잘할 것이란 기대치가 남아있어 트레이드 승패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는데, 그 미래 가치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33] 고작 보상선수를 막으려고 1군 두명을 내주며 트레이드 한 셈이 됐다.
6.3. 2022년
6.3.1. 최하늘, 3라운드 지명권 ↔ 이학주
트레이드 일자 | 2022년 1월 24일 |
최하늘 23년 3라운드 지명권[34] |
이학주 |
이학주는 삼성에서 3년 동안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습을 보인데다가 워크에씩 및 팀내 부조화 문제가 불거지면서 2021시즌 막바지에 전열에서 제외되었고 플레이오프 엔트리에도 들어가지 못하며 어느 정도 이별이 예고된 상태였다. 이후 홍준학 단장이 공개적으로 '이학주를 트레이드 매물로 사용하겠다'는 언론플레이 발언을 했고, 그 대상은 딕슨 마차도를 떠나보내며 유격수에 공백이 생긴 롯데 자이언츠가 손꼽혔다. 하지만, 이미 가치가 상당히 떨어진데다 아쉬운 쪽이 삼성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이렇다할 관심을 받지 못했고, 롯데마저도 내부 육성을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렇게 삼성의 공개 트레이드 선언은 악재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으나...
스프링캠프가 가까워오자 상황은 급반전되어
아구계의 평가는, 이학주의 가치가 상당히 하락했고 ‘공개 트레이드’라는 약점을 안고서도, 각 구단이 빈자리를 더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시점까지 기다린 끝에 괜찮은 거래를 성사시킨 삼성이 잘했다는 평. 삼성 팬들은 어차피 전력 외로 분류된 선수 주고 군필 사이드암 유망주와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까지 받아왔다며 좋아하는 반면[37] 롯데팬들은 남의 전력 외 선수, 그것도 워크에씩 이슈도 있는 선수를 굳이 지명권까지 쓰며 영입해야 했냐는 의견이 많다.
이학주는 22시즌 초반에는 롯데 팬들도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타격 및 수비에서 삼성 시절보다 딱히 반등은 없었지만[38] 기존 롯데 토종 유격수 자원들( 배성근, 김민수)보다는 확실히 앞서는 데다 롯데에 부족했던 주루 및 작전 수행 역할을 잘 소화해 주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39] 그러나 5월 이후 잦은 클러치 실책을 저지르고, 공격력은 삼성 시절보다 더 나빠진 모습을 보이면서 점차 안 좋은 시선이 늘어나고 있더니 급기야 시즌 후반에는 방출 영입한 박승욱에게 주전 유격수 자리를 내주기에 이르렀다. 시즌이 끝난 뒤에 FA로 노진혁을 영입했고 2023 시즌 들어 이학주가 완전히 내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고정되면서 이제는 롯데가 실패한 트레이드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최하늘은 1~2군을 오가면서 1군에서는 패전처리, 2군에서는 선동열 놀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트레이드의 메인 칩은 3라운드 지명권(서현원)이지 최하늘은 협상 과정에서의 사은품에 가깝기 때문에, 그의 활약 여부는 잘하면 좋지만 못해도 상관없는 보너스에 가깝다. 또한 삼성 팬들은 2021년 이학주에게 데인 게 하도 많아 지명권이고 뭐고 '일단 잘 꺼졌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데다 김지찬- 이재현의 어린 키스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학주를 아쉬워하는 여론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현재까지는 무난하게 삼성의 승리에 가까워지고 있다[40].
한편 2022년 8월에는 이재현의 부상으로 이학주를 위해 2루수로 이동했던 김상수가 다시 유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기도 했는데 시즌 종료 후 FA에서 심우준 대신 유격수를 봐줄 선수가 필요한 kt로 이적하게 되는 나비효과가 생기기도 했다.
2024 시즌에는 최하늘이 각성했고, 이학주는 초반 반짝한 이후로 급격한 타격 부진을 보인 끝에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고 한 달 정도 지난 뒤 복귀했으나 주루 플레이 미스로 찍혀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6.4. 2023년
6.4.1. 이호연 ↔ 심재민
트레이드 일자 | 2023년 5월 19일 |
이호연 | 심재민 |
1군 좌완 불펜이 부족한 롯데와 내야진의 뎁스가 무너진 kt 간의 트레이드. 5월 19일 경기 개시를 1시간 앞두고 갑작스럽게 발표되었다.
kt는 현재 내야진들의 부상과 부진, 더디게 진행되는 리빌딩으로 속을 썩고 있는 상황이었다. 황재균과 오윤석이 부상으로 이탈한 데다, 기존의 박경수, 신본기, 이상호, 박병호로 이루어진 내야진은 노인정으로 불릴 정도로 세대교체가 상당히 더딘 모습이다. 그나마 FA로 영입한 김상수와 포텐이 터지고 있는 문상철이 잘해주고 있지만, 이들 또한 30대 중반인지라 언제 페이스가 다운될지 모르는 상황. 여기에 장준원은 부상 복귀 후 얼마 되지 않아 관리가 필요하며, 김병희는 1군에서만 오면 죽을 쑤는데다, 이들이 이탈한 자리에 기회를 받는 강민성, 문상준, 손민석, 류현인 등의 유망주 내야수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런 처참한 내야진 상황에서 이호연은 2군에서 4할 이상의 고타율을 기록하고 있는데다 내야 전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에 kt가 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망주에게 기회를 주는 모습을 보고 싶은 대다수의 kt팬들은 유망주 경험 키우기를 또 못 참고 이강철 체제에서 그렇게 많이 단행한 근시안적인 구멍 메우기식 노망주 수집이냐며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하다. 또한 안그래도 좌완 육성이 최악인지라, 쓸만한 좌완투수가 없는 팀인데, 좌완투수를 트레이드 카드로 썼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많다.
심재민의 경우, 그동안 궂은 일을 맡으며 팀 내 좌완 불펜 롤을 잘 수행했지만 올 시즌은 개막 후 4경기에서 모두 실점을 하며 구속이 130 중반대가 나올 정도로 몸 상태가 완전치 않은 데다,[41] 조현우가 복귀하고 박세진을 좌완 불펜으로 육성시키려는 팀 기조로 인해 결국 트레이드 카드로 쓰게 되었다.
반면 롯데는 현재 상위권을 달리고 있지만, 여전히 좌완 불펜 보강을 목표로 하는 상황이었다. 김진욱이 활약중이지만 풀타임 불펜은 처음이기에 체력이 바닥나는 시점이 올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졸 신인 이태연은 아직 경험이 필요하며, 방출 영입한 차우찬은 아직 재활 중인 상태. 그렇기에 김진욱을 받쳐줄 좌완 불펜이 필요한 상황에서 심재민을 데려온 것으로 추측된다.
이호연의 경우, 롯데 내야는 주전이 확고하고 백업도 박승욱, 이학주, 김민수[42]가 잘 메워주고 있다. 2군에서도 어린 유망주들인 김서진, 정대선, 배영빈에게 기회를 줘야하며 내년 군 제대 복귀하는 나승엽의 자리도 생각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2년 뒤면 30세가 되는 이호연의 입지가 상당히 애매해진 상황이라 트레이드를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트레이드 직후에 주목받은 쪽은 이호연이었는데 준수한 타격감으로 전반기 wRC+ 95.8을 기록하며 kt의 주전 2루수로 도약하여 3루수 한동희가 지독한 부진을 겪고 있고 유격수 노진혁도 부상으로 이탈하며 내야수 뎁스가 얇아진 롯데에게 뼈아픈 유출이었다. 그런데 이호연 본인도 6월 22일 코뼈 골절로 이탈하면서 평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나 싶었지만 7월 중순 복귀하여 여전한 타격감을 선보였다.
바로 등록된 이호연과 달리 심재민은 2군에서 긴 조정과정을 거치다 6월말 1군에 콜업되었다. 롯데에서 다양한 역할로 나오면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 후반에는 부진한 한현희, 이인복 대신 대체선발 역할을 해줬고 선발이 둘이나 빠지는 아시안게임 때에도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시즌 중반에서 트레이드된 이후 첫 해 쌓은 WAR이 심재민은 1.12, 이호연은 0.79으로 시즌 막판 맹활약한 심재민이 더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두 선수 모두 윈윈 트레이드라 할 만한 성적이었다. 다만 이 트레이드 이후 kt가 급격한 상승세를 탔고 롯데가 DTD를 시전하면서 오비이락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다음해에는 심재민은 부상 여파로 여전히 재활 중이며, 이호연은 1군에서 죽을 쑤고 있는 중.
6.4.2. 5라운드 지명권 ↔ 진해수
트레이드 일자 | 2023년 11월 27일 |
2025년 5라운드 지명권[43] | 진해수 |
2023 시즌 종료 후의 트레이드.
LG는 팀의 샐러리캡이 빡빡한 상황에서 좌완 원포인트 기용을 꺼리는 염경엽 감독의 성향으로 인해 활용도가 떨어진 진해수를 롯데로 보냈고, 김태형 감독을 선임하고 윈나우를 노리는 롯데는 팀에 부족한 좌완 불펜을 비교적 낮은 지명권으로 확보했다.
6.5. 2024년
6.5.1. 김민수 ↔ 김민성( 사인 앤드 트레이드)
트레이드 일자 | 2024년 1월 26일 |
김민수 | 김민성 |
2024년 오프시즌에 일어난 두 번째 사인 앤드 트레이드. 이로써 김민성은 두 번의 FA 모두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이적한 진귀한 사례의 주인공이 되었다.
오피셜 전날인 1월 25일 두 선수의 트레이드 소식이 공개되었지만 두 팀 모두 전면부인했다. 하지만 다음날 협상이 일사천리 진행된 건지 바로 오피셜이 뜨며 트레이드가 확정되었다.
롯데는 기존 자원들에 2차 드래프트로 오선진과 최항을 영입했지만, 이것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내야 전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김민성을 추가로 영입했다. 특히 김민성은 과거 히어로즈 시절 주전 3루수로 뛰었던 경험이 있기에 한동희가 부진할 경우 주전 3루수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동희의 입대를 대비해 3루수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인 김민성을 데려온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는데 실제로 3월 한동희가 상무 야구단에 합격하며 입대하게 되었다. 반면 김민수는 주전의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날렸고, 결국 앞선 오윤석과 이호연처럼 트레이드를 피하지 못했다.
LG는 김민성을 잔류시킬 계획이었으나, 구본혁이 제대 후 팀에 복귀했고 시즌 중반에는 기대주 이영빈이 상무에서 제대해 돌아오기 때문에 내야진이 포화상태가 되는 상황이었다. 특히 김민성의 나이가 많은 상황에서 젊은 선수들이 계속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출장 기회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김민성을 놔주는 선택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44] 대체자로 영입한 김민수 역시 내야 전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데다, 타격툴이 있기 때문에 내야 백업이나 대타 요원으로 요긴하게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트레이드 상대로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6.5.2. 우강훈 ↔ 손호영
트레이드 일자 | 2024년 3월 30일 |
우강훈 | 손호영 |
2024 시즌 개막 후 진행된 첫 트레이드이자 엘 꼴라시코로 엮이는 두 팀의 시즌 2번째 트레이드. 안치홍의 한화 이글스 이적을 계기로 내야 유틸리티 자원을 꾸준히 수집 중인 롯데와 정우영의 부상으로 인한 개막 엔트리 승선 불발로 사이드암 자원이 필요했던 LG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성사된 트레이드이다.
이 트레이드는 김태형 감독의 요구로 추진됐는데, 시즌 개막 후 롯데의 빈약한 공격력과 한동희의 부상 및 군입대로 인한 내야 자원 공백으로 성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롯데 팬들은 서준원이 불미스런 사건으로 임의 해지된 이후 남은 사이드암 투수라곤 한현희, 신정락 외엔 없는 데다가 이제 30세가 멀지 않은 유리몸 야수를 위해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150을 던지는 군필 사이드암 투수를 내주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손호영이 트레이드 직후부터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하며 내야의 핵심 자원으로 자리를 굳힘에 따라 트레이드 당시의 불만스러웠던 목소리들은 거의 사라졌다. 트레이드 후 1달이 지난 4월까지만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롯데의 압승이며, 트레이드 상대인 우강훈 또한 LG에서 포텐이 터진다면 윈윈 트레이드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LG 팬들 대다수의 예측처럼 거짓말같이 손호영이 또 부상으로 쓰러진 데다[45] 손호영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1군에 등록된 구본혁이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기도 해 큰 불만은 없는 상황이다. 시즌이 말미로 접어든 8월 기준으로 일단 첫해는 롯데가 좀 더 웃었다고 볼 수 있다. 손호영은 부상 이슈가 있지만 꾸준한 활약으로 하위권에 쳐진 롯데를 먹여살리고 있으나 우강훈은 고질적인 제구 난조를 고치지 못하고 1군과 2군을 왔다 갔다 하는 모양새다.
7. 관련 문서
[1]
실제로 97, 98시즌은 롯데의 기대대로 잘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시점이었던 99시즌을 반 이상 말아먹는 바람에 그 이후 약점이 간파되고 성적도 평범하여 부상과 부진으로 결국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고 역할도 대타로 한정. 그리고 은퇴.
[2]
KBO 연감 상 트레이드 날짜는 6월 30일
[3]
3년 연속 1위 달성은 현재 차명주 밖에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다.
[4]
처음에는 1루수, 그 이후에 유격수, 3루수, 그리고 외야수를 왔다갔다했다. 외야수로 포지션이 고정된 때는 공익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2007년부터다. 그러나 여전히 팀 사정상 1루수 포지션을 병행하면서 뛰었고, 내외야를 오가면서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 행동(도루 등)을 많이 했기 때문에 부상도 잦았다.
[5]
롯데에 있던 선수가 해태로 간 사례는 딱 한 번 뿐인데 1982년 시즌 후 롯데에서 방출된 후 웨이버 트레이드 형식으로 해태로 간
김일환(1954)이다. 김일환은 해태에서 왼손 대타요원으로 쏠쏠히 활약했는데
최동원과 선동열 간 선발 맞대결 3차전이었던 1987년 5월 16일 사직 경기 9회초에 극적인 적시타를 날려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훗날 이 경기는
영화로 각색됐다.
[6]
연감에서 무상트레이드일 경우에는 *조건없음이라고 따로 표시한다. 참고로, 웨이버 공시 후 트레이드일 경우, 웨이버라 따로 표시하며, 현금 트레이드일 경우에는 구체적인 액수나 현금이라 따로 적지 않고 선수가 이적한 것만 기록한다.
[7]
다만 여기서 이해를 해야 할게 하나 있는데, 황재균은 히어로즈 시절
강정호에게
유격수 자리에서 밀려서
3루수가 된 상태였는데 롯데는 3루에
이대호가 있었기에 황재균에게 처음에는 강제로
유격수를 시킬려고 했다. 결국 2011년 이대호를 다시
1루수로,
김주찬을
외야수로 보내는 교통정리 끝에 황재균을 3루수로 쓸 수 있게 된다.
[8]
황재균은 이어 어머니와 함께 최초로 대한민국 선수 중에서 사상 첫 모자(母子)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라는 쾌거를 누렸다.
[9]
트레이드는 2012년 11월 27일 시행하였으나 신인 선수에 대한 등록이 2월 1일이기 때문에 KBO에서는 이 날로 기록되어있다.
[10]
김응용 감독은 해태/삼성 시절에도 덩치 큰 선수를 매우 선호하였다. 거기에 좌완이면 더욱.
[11]
최악의 약점 중 하나는 수비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오태곤은 내야수비에 기본적으로 자질이 없으며, 남아있는 타격포텐을 위해서라도 외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태곤의 맥스포텐은 2할대 후반에 삼진을 자주 당하지만 20홈런을 치는 '좌익수'로 보는 것이 옳다.
[12]
장시환의 이러한 우려는 허문회 경질 이전까지 현실로 벌어졌다.
[13]
고교 3년 동안 공식대회에서 9이닝도 채 던지지 못했고 그마저도 3학년 때 기록이 아예 없었던 선수를 신체 조건 하나만 보고 지명했다. 하위 라운드 지명이라서 그나마 덜 까였을 뿐.
[14]
다만 그런 식이면 지성준은 장시환보다 더 보여준 것이 없는 선수고 플루크일 가능성도 마찬가지이다. 지성준은 야구팬 특유의 유망주 고평가가 섞여서 책정된 가치인데 여기엔 언제나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 식으로 치면 트레이드 무서워서 아무도 못한다.
[15]
롯데의 포수난은 2018년 강민호의 이적으로 시작된 반면, 한화의 선발투수 문제는 류현진이라는 S급 선발이 있던 시기에조차 문제였다. 패-패-패-패-류 하도 오래된 고질병이라 체감이 덜 된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 한화는 19시즌 토종 투수들 중 무려 15명이나 선발 등판을 했지만, 부상으로 이탈했던 90년생 장민재를 제외하면 죄다 실망스러운 성적을 냈다. 특히 박주홍, 김범수, 김민우, 김성훈 등 영건들의 승리 기여도는 음수였다. 한 마디로 롯데에서 어린 포수들이 나올 때의 성적을 한화의 투수들이 낸 것.
[16]
장시환의 올해 성적은 10경기 이상 출장한 토종선발 중 WAR 1.18로 16위에 해당하는데, 그위는 양현종, 김광현, 최원태, 이영하 등으로 사실상 트레이드 불가자원들. 한화 팬들이 원하는 나이 어린 선수는 더더욱 풀릴 일이 없다. 제 아무리 뛰어난 단장이 요구해도 구해올수가 없다.
[17]
선술했듯 19 시즌 토종 선발들이 모조리 이닝 이팅에 실패하면서 한화는 하위권에 박힌 가운데에도 선발이 못 먹은 이닝을 불펜이 처리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어마어마한 불펜 과부하로 이어졌다. 사실 18 시즌에도 배영수, 김재영이나 윤규진이 그나마 버텨줬지만, 토종 선발의 문제로 송은범, 이태양 등이 혹사당했고, 19 시즌 배영수는 떠나고 나머지 둘은 각기 부상으로 이탈하더니 한용덕이 준비했다는 영건들이 모두 1군에서 써먹을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던 탓에 전년도의 과부하가 겹치며 모조리 터져버린 것이다.
[18]
추후 당사자와 합의하면서 반 시즌 출장정지로 종결되었다.
[19]
게다가 임병욱을 제외하면 군 문제도 모두 해결된 선수들이다. 이정후는 자카르타 AG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았고 박정음, 박준태, 송우현은 군경팀 전역, 허정협과 김규민은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다.(허정협은 대학 재학 중 병역 이행) 거기에 박주홍은 아버지가
국가유공자라고 알려져, 사회복무요원으로 6개월 복무하면 군 문제 해결.
[20]
정대현은 윤정현처럼 소집해제 후 어떤 모습을 보일지 미지수인 점, 이영준은 2019년이 실상 첫 시즌이라 2020년 어떤 모습일지 불투명하고, 김성민은 94년생 미필이라 당장 군 문제가 급하다. 사실 이승호도 김성민보단 5살이 어리기에 도쿄 올림픽, 항저우 AG, 파리 올림픽까지 출전이 가능해 군 문제에 여유가 있다고 보이겠지만 도쿄는 승선도 불투명하고 코로나+방사능으로 안 나가는 게 나을수도 있는데다가 항저우는 병역 특례 규정이 어떨지가 불안정하고(일단 현행 규정 그대로 가기로 했지만), 파리는 아예 야구 종목이 빠질 가능성이 높기에 특례 확보가 어렵다.
[21]
과거 초창기 좌완 3대장 장원삼, 마일영, 이현승에 히어로즈 창단 첫 1차 지명 강윤구가 있던 시절과 사뭇 대비된다.
[22]
모터는 코로나19로 인한 2주간의
자가격리 후의 경기력에 대한 의문이 있는데다가 유틸리티라 포지션이 유동적이고, 송성문은 상무에 입대했고, 문찬종은 위쪽 각주에서 언급했듯이 AAA에서 마지막 실전을 치른 2016년 9월 이후 3년 동안의 실전 공백이 있는데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퓨처스리그 출전조차 없으며(7월 초에야 비로소 실전을 소화했으나 2경기 교체 출전에 그친 채 출전 엔트리에서 다시 제외되었다.), 김혜성은 미필+물방망이, 김은성은 멀티 포지션 불가, 김웅빈은 불안한 수비력과 팔 부상으로 인한 재활군 이동, 김하성은 2020 시즌 이후 포스팅을 통한 미국 진출이 유력하다.
[23]
실제로 키움은 미래의 유망주보다는 당장의 즉전감으로 구멍난 내야 수비를 보강하려는 목적으로 트레이드를 했고, 목표한 바를 이루었다. 키움 내부에서도 추재현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했다기보다는 예진원과의 교통정리 + 길터주기 + 당장의 내야수비 보강을 목적에 두었던 만큼 어느정도 예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4]
전체 28순위.
[25]
당시
마일영 트레이드는 돈이 없던
쌍방울 레이더스가 구단 재정을 위해 마일영의 지명권을 양도하고 돈을 받는 현금 트레이드였고, 이에 미래를 팔아 돈을 번다고 판단한 KBO는 지명권 트레이드를 원천 금지시켰다. 지명권 트레이드가 재개된 지금도 저런 식으로 지명권을 돈으로 바꾸는 트레이드가 나오면 KBO에서 제동을 걸 가능성이 있다. 일단 지명권끼리의 교환 및 미국에서처럼 먼 미래에 시행하는 드래프트의 지명권 교환은 막혀 있다.
[26]
전체 34순위.
[27]
김진욱이 일단 필승조 노릇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 불안한데다가 장기적으로는 선발로 키워야 할 자원이고,
김유영,
송재영,
한승혁은 추격조 역할도 제대로 못 하던 상황이었다. 7월 기준으로 롯데 좌완 중 스탯티즈 기준 WAR이 양수인 투수는 김진욱과, 투수를 아끼려고 등판한 적 있는 야수
추재현 2명 뿐이었다.
[28]
1차 지명과 2차 4라운드는 전혀 다르긴 하지만, 어차피 NC 산하의 경남 팜의 수준은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29]
여담으로 트레이드 일자인 7월 31일은 트레이드 당사자인 김준태의 생일이기도 하다.
[30]
오윤석과 역할이 겹치고 나이도 비슷한
김병희가 이미 1군에서 활약하고 있고, 백업 포수 역시
허도환과
이홍구 2명을 갖추고 있는데다가 김준태는 당장 2021시즌은 왼쪽 무릎 연골 수술로 빨라야 시즌 막바지에나 복귀가 가능하다.
[31]
이재곤은 2010년 선발로서 8승을 하고 폭망했으며
배장호는 신인 시절과 2017년을 제외하면 별 활약을 하지 못했다
김성배와
오현택 역시 2년 정도 활약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32]
롯데 입장에서 길터주기 목적이 강하다는 의견이 있으나 (김준태는 상무에서 전역한
안중열의 복귀로, 오윤석은
안치홍의 계약 연장으로 자리가 없어졌다.) 롯데가 강팀도 아니고 뎁스가 깊지도 않은데 여유롭게 길터주기를 했다는건 설득력이 없다. 롯데 역시 기존의 유망주 투수 수집의 연장선상에서 이강준을 원해서 트레이드했다는 평이 타당하다.
[33]
한현희는 트레이드가 아닌 FA로 영입한 선수기 때문에(돈으로 사온거지 이강준은 +@로 붙은 것뿐이니) 이 트레이드의 손익 계산에 한현희를 등치시킬 수는 없다.
[34]
전체 23순위.
[35]
수도권 모 구단은 두산, 엘지, 키움, SSG는 모두 유격수 자리에 주전 내지 상위권 유망주가 다 있기 때문에, 정황상
심우준이 입대를 앞둔 kt일 가능성이 유력하다.
[36]
이학주가 1차 지명이 유지되던 시기의 1라운드 (전체 12순위) 지명자였고 이 해 롯데의 2라운드가 전체 13순위였으니, 사실상 이학주에게 쓴 지명권을 그대로 받겠단 소리였다.
[37]
너무 대놓고 언해피를 띄우는 바람에 구단이 제 값을 받고 팔기는 어렵고 1년 내내 2군에 쳐박혀 있다가 웨이버되거나 하위 라운드 지명권으로 떨이 처리될 거라는 관측이 파다했기에, 이학주를 내놓고 뭔가 받아오기는 했다는 것 만으로 기대 이상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38]
시즌 개막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타격은 여전히 낮은 타율에 볼삼비가 1:3이고, 수비에서는 벌써 실책 5개를 기록했으며 그 중 다수가 클러치 실책이다.
[39]
반면 삼성 팬들은 (물론 떠난 선수 큰 상관은 없다만) 삼성 시절의 그 이학주보다 나아진 게 없는데 대체 왜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 아마도 이는 과거
박진만-
김상수로 이어지는 준수한 유격수를 보유했던 삼성 팬들과 딱
대체 선수 수준 자원인
문규현을 오랫동안 주전 유격수로 보유했던 롯데 팬들이 눈높이가 달라서 생긴 온도 차이로 보인다.
[40]
말 그대로 이학주가 잘하던 못하던 후려치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삼성에서 선수들의 활약과 관계 없이 이득을 본 것.
[41]
구속만 따지면 지난 시즌 트레이드로 SSG에 입단하게 된
정성곤의 사례와 비슷하다.
[42]
더불어 kt가 원래 원했던 트레이드 카드 또한 김민수였다. 그러나 당시 롯데 단장이었던
성민규가 김민수를 내어주는 것을 거부하며 대신 선택한 선수가 이호연이라고.
[43]
전체 44순위
[44]
본래는
염경엽 감독이 넥센 시절 애제자였던 김민성에게 넉넉한 계약과 코치 연수까지 직접 제안했으나, 김민성은 현역 연장 의지가 더 강했다고 하니 계약 기간이나 금액 면에서 서로 이견이 생겼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종적인 김민성의 계약 규모는 2+1년 9억인데, LG에서 제시한 금액은 2년 5억이었다고 한다.
[45]
손호영은 LG 선수 중 최악의
유리몸으로 악명이 높았다. 부상으로 이탈하지 않은 시즌이 이탈한 시즌보다 적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