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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세 말 초기 근대 유럽의 제도. 동아시아의 후궁과 유사하나, 후궁과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일부일처제가 오래전부터 자리잡아 동아시아와 같은 일부다처/축첩제가 주류로 취급되는 일은 없었다. 귀족·성직자 등 사회 유력자들이 정부를 두는 관습은 중세 초부터 있었지만 정식 혼인관계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단, 후궁에 비견될 만한 제도는 있었는데 바로 "정식 정부"(情婦, mistress)라 할 만한 존재를 두는 것이다. 왕의 정부를 영어로 로얄 미스트리스(royal mistress)[1]라고 부르며 프랑스 왕국에서는 메트레상티트르(maîtresse-en-titre)[2], 일본에서는 공첩(公妾) 또는 총희(寵姫)라는 번역어를 사용한다. 영어권에서도 후궁과 왕의 정부를 확실하게 분간하고 있어서 후궁은 'Royal Concubine'로 달리 표기하고 있다.
법적인 혼인관계는 아니기 때문에 정부와 그 자녀는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뿐더러 왕위도 물려받을 수 없었다. 중세 초기에는 이 규범이 철저하게 확립되지 않아서 정부의 자녀가 계승권을 주장하거나 적자가 없을 때 이들이 아버지의 지위를 상속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이슬람 제국의 침입을 저지한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은 피핀 2세의 사생아였으나 차별을 받았을지언정 가문의 일원임이 부정되진 않아 그가 카롤링거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있는 근거가 되었고, 정복왕 윌리엄은 미천한 어머니를 둔 사생아였으나 아버지의 유언에 의해 노르망디 공작위를 물려받았다. 슬하에 적자가 없는 카롤링거 왕조의 왕들은 정부 사이에서 난 사생아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려 시도했으며 이 중 아르눌프 왕 정도만이 사생아로서 왕위를 계승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시기의 정부는 어느 정도 정조의 의무가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나 이런 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져갔고 정부의 자녀가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예외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2. 후궁과의 차이
동아시아의 후궁은 왕비보다 지위가 낮을 뿐 엄연한 군주의 정식 아내 및 가족으로 인정받았지만 유럽의 로얄 미스트리스는 단지 공인 내연녀에 불과했다. 따라서 왕의 정부는 아내로서의 의무를 지지 않았지만 권리도 없었다.예를 들어 후궁 제도가 있는 국가들에서 후궁이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하면 불륜, 간통으로 엄중한 처벌을 받았지만[3] 정부는 오픈 릴레이션십을 행해도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 괘씸죄로 총애를 잃을지언정 대놓고 정조를 어겼다고 해서 처벌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간통을 운운할 법적 근거도 없고, 존재 자체가 공공연한 국왕의 불륜 상대이므로(...) 처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찰스 2세의 경우 정부 바바라 팔머가 다른 남자들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몇 번이나 목격했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물론 찰스 2세가 유난히 자기 정부의 남자 관계에 관대했던 탓도 있다.
대신 동아시아의 후궁은 모시는 왕이 살아 있는 한 왕의 첩이자 아내, 가족으로서 계속 궁에 거주하였고 후궁의 자식은 왕비 소생 적자녀에 비해 한 단계 낮은 지위의 서자녀이기는 해도 엄연한 왕족으로 대우를 받았다. 특히 서자는 적자보다 우선순위는 밀렸긴 해도 왕위 계승권이 있었기에 동아시아사에서 후궁의 소생으로 태어나 황위나 왕위를 이어받은 군주가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유럽의 정부는 동아시아의 후궁보다 대우가 가혹했는데 오로지 왕이 베푸는 총애와 호의에 기대 궁에 거주하는 공식적으로 묵인된 정부에 불과했기 때문에 왕이 살아 있어도 민간에서는 온갖 비웃음과 매도를 당했고 총애를 잃는 즉시 궁에서 내쳐졌고 그 자녀들도 왕위 계승권을 갖기는커녕 왕족으로도 대우받지 못하는 그냥 사생아에 불과했다. 이들은 공식적으론 왕의 자녀가 아니었다.
왕의 총애를 잃거나 왕의 사후 그 정부들이 궁에서 쫓겨나 보복받은 사례도 많다. 정부에게 있어 왕의 총애만이 권세를 누리게 해주는 유일한 이유였는데 그 왕이 사망함으로써 유일한 보호막이 사라지고 묵인받을 자격조차 없어진 것이다.[4]
이것도 뭔가 굉장히 심각한 물의를 일으키거나[5] 정비 혹은 왕세자와 척을 진 것이 아닌 이상[6][7] 정식 부군으로 모시던 왕의 사후 출궁은 하되 왕족으로 대우받고 자식이 있으면 경제적 어려움 없이 편안한 여생을 보내던 동아시아의 후궁들과 다른 점이다.
3. 특성
왕의 정부들은 의외로 유부녀들이 많았는데, 사실 이는 신분세탁이나 출생신고로 생긴 일은 아니다. 물론 퐁파두르 부인이나 뒤바리 부인처럼 '편의를 위해 쇼윈도 결혼을 시킨' 케이스는 분명 존재했지만, 정부들의 대부분은 귀족, 그중에서도 왕비나 공주를 직속으로 모시는 수행원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모두가 의무적으로 결혼을 하진 않았다.로얄 미스트리스의 자녀들은 왕이 확실히 친자로 인지했다면 대우를 받았다.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귀족 작위를 하사받았고 왕위계승권은 없더라도 자식으로서 국왕 개인의 총애를 받았다.[8] 왕이 요절했을 경우 총애를 얼마 받아보지도 못하고 내쳐지는 자식들도 있었다.
이들이 대중들에게 취급이 좋지 않았던 것은 외간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당대 도덕관념을 위반해서만이 아니라 법적 지위가 없었기에 높으신 분들을 비방했을 때 생기는 리스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왕과 왕비 대신 총알받이 역할을 맡으며 사회 불만을 토로받는 창구로서의 기능이 있었다.
왕의 정부가 된 유부녀들의 경우 남편과 별거하고 사실상 이혼 상태에 들어갔다. 당연히 남편들은 아내를 왕에게 빼앗기는 것이니 불만을 품었을 테지만 왕의 보복이 무서워 함부로 못하고 왕이 그 대가로 막대한 재물을 하사하거나 작위, 봉토를 주기도 해서 참고 넘어갔다. 드물게 이 재산과 지위 때문에 아내가 왕의 정부가 되는 걸 환영하는 유부남 귀족들도 있었고 애초에 왕이 정부를 신분세탁해줄 목적으로 결혼시켜놓은 귀족이나 아예 아내를 바친 귀족 같은 경우엔 자기도 그 대가로 받은 게 있으니 불만이 없었을 것이며 있어도 대놓고 드러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몽테스팡 후작부인의 남편처럼 대놓고 왕에게 분노를 표출한 경우도 있기는 했다.
프랑스의 경우엔 '메트레상티트르(maîtresse-en-titre)'라 하여 일종의 '공인 로얄 미스트리스' 제도가 있었다. 메트레상티트르는 여러 정부들 중 1명만 지정될 수 있었고, 왕궁에 거주하며 왕에게 조언을 하고 외교 사절을 접견하는 등의 공식적인 권한을 가졌다. 일부 '공식 로얄 미스트리스'의 자식들의 경우 왕들에 의해 왕위계승권을 가질 뻔한 사례도 있을 정도로 그 자녀들도 상당히 대우받았다.
동아시아에서 왕이 정치를 못하면 대놓고 왕을 비난하지 못했으니 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들이 대신 비난받은 것처럼 유럽에서 왕의 정부도 왕실을 대신해서 비난받은 샌드백이었다. 특히 정부는 후궁보다 사회적 인식이 더 좋지 못해 그 정도가 더 셌는데 유명한 로얄 미스트리스였던 퐁파두르 부인[9]과 뒤바리 부인도 실제로는 각종 후원이나 자선 사업을 많이 하는 등 선량한 성품의 소유자였지만 대중들에게 죽을 때까지 악녀, 탕녀라고 비난받았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의 백성과 귀족들에게 증오를 받은 건 그녀가 적국인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던 것도 있었으나 남편 루이 16세에게 정부가 없었기 때문에 비난을 대신 받은 것도 있었다. 왕의 정부는 단순한 백성들의 샌드백 역할 뿐만 아니라 각종 사교 행사들을 주관해야 했는데 이를 본처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직접 주관해야 하다 보니 자신을 지켜줄 방패막이가 없게 된 것이다.[10]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유럽의 작품들은 같은 유럽의 문화(?)에 친숙하다 보니 대체로 로얄 미스트리스 제도를 역사적 재현에 맞게 묘사하는 반면 동아시아는 역사적으로 일부일처다첩 제도가 일반적이었다 보니 유럽의 로얄 미스트리스를 표현한 작품들이 거의 없다.동아시아에서 제작된 유럽 배경 창작물[11]들 대다수는 후궁의 특성이 혼합되어 황비, 귀비 같은 칭호를 붙이거나 후궁과 동일시하는 등 로얄 미스트리스를 후궁으로 오해해 잘못된 반영을 하거나 복식과 배경만 유럽이지 사실상 동아시아 후궁 복사 붙여넣기로 묘사하는 재현 오류가 많다. 일본 매체에서 왕의 정부를 표현한 공첩, 총희 등의 단어[12]를 후궁으로 잘못 번역하는 사례가 많다.[13][14] 묘사될 지라도 대다수가 미혼녀 정부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으나 왕의 정부는 불문율에 따라 운영되었기에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어서 무조건 반영 오류는 아니다.
한국 로맨스 판타지에서는 재혼 황후[15]를 시작으로 악녀는 두 번 산다[16] 등 로얄 미스트리스 제도를 반영한 작품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5. 목록
분류:로얄 미스트리스도 참고할 것.6. 캐릭터
이 문단에 열거된 일부 캐릭터는 주로 유럽 왕실을 묘사했거나 유럽 왕실에서 모티브를 따온 창작물의 정부(총희)들로 후궁이 아니다. 단 일부 동아시아 창작물(특히 한국산 판타지 소설)에서는 정부를 후궁으로 묘사하거나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확실히 정부로 묘사되거나 일본어 창작물에 한해서 로얄 미스트리스의 일본어 번역인 공첩, 총희로 표기된 경우에만 넣을 것.-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 - 이벨라 드 페퍼츠[24]
- 델피니아 전기 - 폴라 달시니
- 듄 시리즈 - 챠니 카인즈[25][26]
- 레이디 투 퀸 - 로즈몬드 메리 라 대로우
- 밤마다 남편이 바뀐다 - 리반펠의 어머니
- 악녀는 두 번 산다 - 밀라이라 로산[27]
- 알드노아. 제로 - 루엘 엔버스[28]
- 엘더스크롤 시리즈 - 바렌지아[29]
- 은하영웅전설 -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 주산나 폰 베네뮌데
- 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 - 루비나 부인[30], 이사벨라 데 마레[31], 오귀스트 공주[32]
- 재혼 황후 - 라스타 이스쿠아[33], 알레이시아[34], 소피아 백작부인[35]
- 펠루아 이야기 - 이그레인 라이슬
-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 - 총희[36], 딸(왕의 총희 엔딩만 해당)
- 황후가, 돌아왔다 - 아이리스
- 황후 자리를 버리겠습니다 - 디안 푸아티에, 베아트리체[37]
7. 관련 문서
[1]
말 그대로 왕의 정부.
[2]
영어로 번역하면 mistress in title, 즉 공식적인 칭호/작위가 있는 정부라는 뜻으로, 정확히는 프랑스 왕의 여러 정부들 중에서도 단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지위였다. 이 지위를 가진 정부는 공식적으로 왕궁에 거주할 권리를 갖고 자식을 낳으면 왕의 자식으로 인정을 받는 등, 동아시아의 후궁과 비슷한 권리를 몇 가지 공식적으로 누릴 수 있었다.
[3]
후궁 제도가 있는 나라에서
환관이 출현한 게 이것 때문이다. 공사적으로 생활을 하다 보면 남성이 필요할 일도 있는데 그렇다고 멀쩡한 남성을 데려다 놓으면 후궁과
간음을 저질러
내연남의
사생아가
태어나거나 왕실의 씨를 바꿔치우는
탁란을 당할 수 있으니 아예 남성성을 거세한 남성을 들였다.
[4]
예를 들자면
잉글랜드 왕국의
에드워드 3세의 정부로 국정을 농단하며 부를 축적한 걸로 악명높은
앨리스 페러즈는
에드워드 3세의 임종이 임박하자마자 권력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토지도 몰수당하고
잉글랜드 왕국에서 추방당했다.
앙리 2세가 죽을 때까지 가장 총애한 정부이자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넘어서는 권력을 누린
디안 드 푸아티에도 앙리 2세가 죽자마자 그녀를 싫어한 카트린의 명에 의해 왕에게 선물받은 왕가의 보석부터 슈농소 성을 환수당하는 걸 시작으로 모든 권세와 입지를 상실하고 그나마 쇼몽 성과 그 외 몇몇 성만을 보위한 채로 남은 평생을 조용히 살아야만 했다. 또 하나의 예시로는
러시아 제국의
알렉산드르 2세의 정부이자 후처였던 예카테리나 돌고루코바는 유리옙스카야
여공작 작위를 하사받고 비공식적인 황후로 대우받으면서 잘나갔으나 알렉산드르가
폭탄 테러로 사망하자마자 바로 자식들과 함께 러시아 황실에서 내쳐졌고 연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건 물론, 황실 거주지에서 살 권리마저 잃고 평생 동안 해외를 전전해야만 했다. 유리옙스카야 일가는 러시아를 떠난 뒤에도 해외에 있던 로마노프 황족들에게 외면받고 알렉산드르 2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그의 차남
알렉산드르 3세가 보낸 비밀경찰들에게 감시당하기까지 했다.
대영제국의
에드워드 7세의 정부인
앨리스 케펠도 에드워드에게 경제적으로 풍족한 지원을 받는 것은 물론 그의 정치 고문으로서도 상당한 입지를 자랑했지만 에드워드 7세의 사후 아버지의 정부를 꺼린
조지 5세에 의해 모든 궁중 행사에서 배제되고
사교계에서도 소외되면서 단번에 모든 입지를 상실했다. 총애해주던 왕의 사망으로 뒷배를 잃은 정부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지 알 수 있다.
[5]
조선
인조의 후궁
귀인 조씨가 이 사례. 인조의 사후
효종과
장렬왕후를 저주했던 게 들통나면서 조씨는 사사당했고 그녀의 자식들도 전부 폐서인이 되어 유배를 가야만 했다. 영조의 후궁
숙의 문씨는
사도세자를 모함했다는 죄목으로 영조가 승하하자마자 바로 폐서인이 되어 사사당했는데 이쪽은 숙의 문씨가 처신이 부적절하긴 했으나 실제로 사도세자를 모함했다기보다는 정치적 희생양으로
숙청당한 거라고 보기도 한다.
[6]
유방의 후궁
척부인이 그 예시. 유방의 총애를 업고 자신의 아들
유여의를 황태자로 만들기 위해 유방의 적장자이자 본래 황태자였던
유영의
폐위에 찬성하는 등 일개 후궁 신분으로 명백한 무리수를 두다가 거의 모든
조정
대신들에게 외면받고 질타만 받으며 아들을 황태자로 만드는 데도 실패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유방의 정비이자 유영의 모후로서 권력욕이 강했던
여후와 노골적으로 대립하면서 원한을 샀고 결국 유방의 사후 기다렸단 듯이 폐서인이 되다시피 하여 온갖 고초를 겪다가 끝내 아들 유여의와 함께
끔살당했다. 그것도 통칭 인간돼지로써 동서고금 역사에 비슷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잔혹하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앞서 서술한 척부인의 실책도 만만치 않았는데도 억울한 피해자 이미지가 생겼고 여후의 평판은 크게 깎였다. 여후 생전에 기세등등했던 여씨 가문은 그녀가 죽은 후
한나라
고관대작들에 의해 거의
멸문을 당하는데 핵심 원인은 지나친 여씨 일족 우대지만 여후가 여러 실책으로 반발심을 부채질하기도 했는데 척부인을 과할 만큼 잔인하게 죽인 것도 그중 하나였다.
[7]
다만
유영의 폐위를 노린 것은
척부인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유방 본인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미 여후의 노골적인 권력욕과 그녀의 가문인 여씨가 나라를 망칠 징조를 보고 미리 견제하려 했던 것. 하지만 적장자라는 엄청난 정통성과 이미 오랫동안 태자 지위에 머물러 있는 유영을 아무런 명분도 없이 그냥 자기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폐위시킨다는 것은 황제인 유방조차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런 유영의 대항마로 내세운 게 하필 평민이나 다름없는 한미한 출신의 후궁에 불과한 척부인이 낳은 서자이자 당시 10살도 안 된
유여의였기 때문에 태자 후보로는 가당치도 않아서 유영이 차기 황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정작 유영은 황위에 오른 뒤 이복동생인 유여의와 서모인 척부인을 친모인 여후에게서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8]
프랑스의
발루아 왕조만 보더라도 마지막 왕인
샤를 9세에게 아들이 있었지만 정부가 낳은 사생아였기 때문에 앙굴렘 공작위만 주었을 뿐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부계로 20촌이 넘고, 모계로는 6촌인
부르봉 왕조의
앙리 4세가 프랑스의 왕을 계승하여 결국 발루아 왕조는 대가 끊겼다.
[9]
퐁파두르 부인의 생모인 마들렌 드 라 모트는 위장결혼한 코르티잔이었다. 이 때문에 퐁파두르 부인은 친부가 어머니의 후원자 중 하나인 르 노르망 드 투르넴이라는 의혹이 있었다.
[10]
마리 앙투아네트는 평민들에게까지 공개된 공개 저녁식사에 참가하지 않고 귀부인, 귀공녀들과만 어울리거나 아예 프티 트리아농 궁에 칩거하면서 소 치고 닭 치는 목가적 취미생활에 몰두하게 되면서 자기에 대한 루머를 만회할 기회를 회피하고 민중과 점점 괴리되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이후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이미지가 결정적으로 실추되며 현재에 이른다.
[11]
역사물,
로맨스 소설,
판타지물(
서양 판타지),
로맨스 판타지,
할리퀸 등등.
[12]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의 왕의 정부가 되는 엔딩들,
은하영웅전설의 정부 캐릭터인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
주산나 폰 베네뮌데에 등장한다.
[13]
다만
은하영웅전설 같은 경우는 황제가 이런 정부들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은 사생아가 아니라 서자로서 엄연한 왕위 계승자로 인정받는다는 점과 외간 남자와의 불륜이 금지된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의 후궁 제도가 섞여 있는 상태로, 유럽의 로얄 미스트리스를 제대로 반영한 것은 아니다.
[14]
이런 건
반영 오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문화적 전유 문제가 될 수도 있다.
[15]
이와 관련한
반영 오류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16]
밀라이라 로산 참고.
[17]
찰스 3세의 왕비가 된
카밀라 파커 보울스의 증조모다.
[18]
사실 정부라고 하기 애매할 정도로 가벼운 사이였으나 애정관계였던 것은 사실이다.
[19]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의 후임.
[20]
후에 루이 14세와
비밀결혼했다.
[21]
자매라고 되어있는 이유는 5자매 중 4명을 애인 삼았기 때문이다(...)
[22]
루이 15세 및 프랑스 왕국의
마지막 로얄 미스트리스
[23]
카롤 2세가
폐위된 후 그와
귀천상혼으로 결혼했다.
[24]
외전에 등장하는 아르첸 국왕의 정부. 외전 후반엔 리플리의 설득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국왕과의 관계를 정리한다.
[25]
원작 한정. 영화에서는 폴에게 실망해 갈라섰다.
[26]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의 모친
제시카 아트레이데스도
레토 아트레이데스 1세의 정부였으나 레토는 황제가 아니었기에 로얄 미스트리스 캐릭터에 기재하지 않았다.
[27]
공식적인 신분은 로산 후작부인이지만
그레고르 황제의 공공연한 정부다.
[28]
길젤리아 버스 보르돔의 정부이자 2기의
히로인
렘리나 버스 엔버스의 생모. 본편 시점에서는 고인으로 외전에만 등장한다.
[29]
던머 여성으로 모운홀드의 공주이자 흐랄루 가문의 여왕. 셉팀 왕조의 초대 황제
타이버 셉팀(탈로스)의 정부였다. 서적
진정한 바렌지아에서는 탈로스의 아이를 임신했다 낙태를 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30]
체자레 데 코모의 어머니이자 레오 3세의 정부.
[31]
중후반에 레오 3세의 공식 정부가 된다.
[32]
친오빠인
필리프 4세의 애인으로, 궁정에서 왕비 대행 및 국왕의 최측근 노릇을 맡고 있다.
[33]
동대제국의 황제
소비에슈의 정부. 나중에 이전 황후였던
나비에랑 이혼한 소비에슈와 정식으로 혼인하면서 황후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 그동안 저지른 악행과 도망 노예 출신이었다는게 들통나면서, 황후 자리에서 폐위된 뒤 감옥에 유폐되었고 결국 그곳에서 자살한다.
[34]
소비에슈의 아버지 오시스 3세의 정부 중 하나.
[35]
오시스 3세의 정부 중 하나. 그가 가장 총애한 정부였다고 언급된다.
[36]
프린세스 메이커 2의 등장인물. 성을 방문할 때 예의범절이 85 이상이면 대화를 허가해주고 화술 수치당 인맥을 높여준다.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귀비(윈도우즈 판), 후궁(리파인 판)으로 번역되었다.
[37]
카를의 생모로, 선대 황제의 정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