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1 22:47:01

부르봉 왕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Pavillon_royal_de_France.svg.png

1. 개요2. 역사
2.1. 시초2.2.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본가)2.3. 스페인의 보르본 왕조2.4. 룩셈부르크의 부르봉-파르므 왕조
3. 기타

1. 개요

중세부터 현대 이전까지 프랑스 등 유럽 일부 국가를 통치했고 일부는 현재도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왕조.

2. 역사

2.1. 시초

프랑스 카페 왕조의 한 갈래로 성왕(聖王) 루이 9세의 막내아들(육남) 클레르몽 백작 로베르가 시조다. 유럽 최대의 가문인 카페 왕조의 방계로, 샤를마뉴 때부터 족보를 추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가문이다. 근세의 경쟁자인 합스부르크 가문도 범(汎) 카페 가문보다 정통성과 유래 면에서는 밀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합스부르크는 원래 스위스 아르가우 지방의 듣보잡 백작 집안이었다. 다만 원래 합스부르크 가문은 대귀족 가문 에티크노이드의 방계지만 합스부르크는 곁가지였을 뿐이다. '부르봉'이라는 말의 어원은 부르봉-라르샹보 시(市). 원래는 소영주 가문이었으나 부르봉 가문의 베아트리스가 카페 가문의 클레르몽 백작 로베르와 결혼함으로써 왕족의 일원이 되었다.

로베르와 베아트리스 사이에서 나온 자식인 루이 1세가 초대 공작이 되었고, 이후 1488년 장 2세가 죽음으로써 그의 동생 피에르 2세가 영지를 계승하여 루이 11세의 왕녀 안느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의 딸인 수잔은 1505년 몽팡시 가문의 샤를과 양자(養子) 결혼을 했으며, 이 샤를은 원수(元帥)로서 프랑수아 1세의 휘하에서 이탈리아 전쟁 때에 활약하였다.

2.2.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본가)

프랑스의 역사 L'Histoire de la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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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부르봉 왕조(1589~1792, 1814~1815, 1815~1830)
샤를 이후 직계가 단절이 되었다가 그의 일족인 방돔 공작 앙투안이 프랑수아 1세의 누이 마르그리트의 딸 나바르 여왕 잔느와 결혼하여 위그노 교도들과 연합해 발루아 왕조와 경쟁하기 시작했다.

나바르의 잔느 또한 카페 왕조의 방계인 알브레 왕가 출신으로, 독실한 신교도에다 당대의 여걸이었다. 그녀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남편을 대신해서 위그노 전쟁에서 발루아 왕조의 섭정 태후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프랑스의 차기 국왕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위그노 전쟁 당시의 프랑스를 다스리던 카트린은 발루아 왕조의 직계가 끊어지면 무능한 아들들을 대신하여 가장 가까운 왕족 가문인 부르봉 가문이 왕위를 잇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잔느와 그 아들을 증오했다. 잔느 또한 아들의 왕권을 주장하며 카트린을 음험한 이탈리아 여자라고 비난했다. 어찌나 사이가 나빴던지 잔느가 파리까지의 무리한 여행과 아들의 결혼 준비로 얻은 병으로 사망했을 때 카트린이 그녀를 암살했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 그러나 아들을 프랑스 왕위에 앉히고자 했던 그녀의 노력은 결국 사후에 결실을 맺게 된다.

잔느의 자식인 나바르 왕 앙리 드 부르봉은 결국 앙리 4세가 되었다. 카트린은 앙숙의 아들인 앙리를 미워했으나, 그녀가 낳은 아들들이 후사를 볼 가망이 없자 극단적인 조치로 막내딸 마르그리트를 앙리와 결혼시켜 핏줄을 이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둘 간의 자식은 없었기 때문에 발루아 왕조의 피는 결국 단절되고, 프랑스 부르봉 왕조가 시작되었다. 이후 부르봉 왕가의 프랑스 왕의 정식 명칭은 '프랑스와 나바르의 왕'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인물이자 앙리 4세의 부인이 되는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를 다룬 영화가 여왕 마고이다. 마르그리트(별명이 마고/Margot)의 배우는 이자벨 아자니. 복잡한 과정을 통해 앙리 드 부르봉이 프랑스와 나바르의 왕인 앙리 4세가 되고,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는 여왕인 마르그리트 드 프랑스가 된다.

14세기 초반에 잠시 프랑스와 나바르가 동군연합을 이룬 적이 있었지만 곧 해체되었던 선례가 있었는데,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한 앙리 4세가 나바르의 왕이기도 했기 때문에 프랑스 왕의 칭호에 나바르 왕이 다시 한번 덧붙게 되었다. 다만 나바르 왕위는 계속 카페 왕조로 계승되었다. 이후 부르봉 왕가는 프랑스에서는 샤를 10세까지 이어지다가 7월 혁명 때 퇴출되었다. 샤를 10세의 장남 앙굴렘 백작 루이( 루이 19세)는 자손이 없었고 샤를 10세의 차남 샤를 페르디낭의 외아들이자 샤를 10세의 손자 샹보르 백작 앙리( 앙리 5세) 역시 자손이 없어서 직계는 여기서 단절되었다.

이후 방계로 넘어가서 루이 13세의 차남[2] 필리프의 가문인 부르봉-오를레앙 가문에게 넘어가 루이 13세의 6대손 루이 필리프 1세가 이어받았으나, 2월 혁명 때 퇴출되었고 현재 프랑스 부르봉-오를레앙 가문의 수장은 루이 필리프 1세의 7대손인 파리 백작 장 도를레앙(일명 장 4세)이다. 앙리 7세는 현 파리 백작 장 도를레앙의 아버지이다.

샤를 10세의 후손들인 부르봉 직계가 단절된 이후 명목상의 계승권에 논쟁이 있어서, 정통주의자들은 펠리페 5세로부터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분가인 스페인 부르봉 가문을 지지했다. 여기서는 또 살리카 법을 적용해서 이사벨 2세로 이어지는 스페인 본가가 아니라 남계쪽인 카를리스트 쪽을 지지하게 된다. 이후 명목상 계승권이 이리저리 넘어가게 되는데, 카를리스트 남계가 단절된 이후 남계로 스페인의 알폰소 13세로 명목상 계승권이 옮겨간다. 스페인 왕위계승법대로라면 그 후계자인 후안 카를로스 1세 펠리페 6세가 왕위주장자가 되어야겠지만, 위에도 나왔다시피 스페인 왕위계승법과 따로 노는 프랑스 왕위계승법에 따라 알폰소 13세의 차남인 세고비아 공작 하이메 쪽으로 계승권이 넘어갔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알폰소 13세의 삼남인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의 아들이다. 이렇게 왔다갔다한 결과, 2017년 기준으로 정통주의자의 시점에서는 인판테 하이메의 손자인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루이 20세)이 프랑스 왕위 요구자다. 루이스 알폰소는 알폰소 13세의 증손자며, 어머니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의 외손녀로 현재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6세의 육촌에 해당하며, 앙주 공작 직함을 갖고 있다. 부모님이 나중에 헤어졌고, 생모는 그 후 두 번이나 더 재혼해서 모자관계가 썩 좋지 못하다고 한다. 게다가 1987년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발표로 아버지의 직함인 카디즈 공작을 세습하지 못했기에, 스페인 보르본 왕실과의 사이 또한 좋지 못한 상황이다. 2003년 베네수엘라 여인과 혼인하여 2남 1녀를 두고 있지만, 혼인식 때 스페인 왕족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아 스페인 왕실의 불화가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1987–1989년 당시 파리 백작 앙리 도를레앙(현재 파리 백작 장 도를레앙의 아버지)은 라이벌인 앙주 공작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을 상대로 프랑스 왕실 수장 직함 사용 금지를 청원하며 법정 공방을 벌였으나 패소했다.

2.3. 스페인의 보르본 왕조

스페인어로 부르봉은 Borbón이다. 보르본 왕조 참조.

2.4. 룩셈부르크의 부르봉-파르므 왕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56px-Armoiries_Luxembourg_Bourbon_avec_ornements.svg.png

공식적인 가문은 부르봉-파르므[3]가이며 스페인 보르본 왕가의 방계 가문이다. 룩셈부르크는 현 앙리 대공의 할아버지이자 샤를 10세의 손녀인 루이즈 마리 테레즈 다르투아의 손자인 펠릭스 공작이 샤를로트 여대공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 장 대공이 대공위를 이어받은 1964년부터 부르봉 왕가의 일원으로 봤으나...

1987년 당시 룩셈부르크 대공이던 장 대공이 부르봉 왕가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당시 보르본-파르마 가문의 수장 카를로스 우고(2010년 별세)가 장 대공들의 아들들이 평민과 결혼하자 이를 귀천상혼으로 취급하려 한 것이다. 비통치 왕가들은 오히려 지금까지도 귀천상혼을 엄격히 지키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현재 군주제를 유지하는 나라의 왕족들은 법적으로 귀천상혼을 규정하기가 쉽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분쟁일 수도. 군주제가 폐지된 나라의 왕족 후손들은 귀천상혼을 지키지 않을 경우 언젠가 군주정 복고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가문 전체가 왕족의 후손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일반인에 동화되기 쉽기 때문에 기를 쓰고 귀천상혼을 지키려 하는 반면 군주제가 계속 유지되는 나라의 왕족들은 현재까지도 자기네 가문이 대대로 군주를 배출하여 왕족으로서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상황이라 왕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분가하여 일반인에 동화되어도 자기 가문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왕위에 오르기 때문에 언젠가 군주제가 폐지되지 않는 한 왕족 전체가 남김없이 일반인에 동화되어 정체성을 잃을 걱정이 없다는 점도 한몫 하는 듯하다. 고로 현재 룩셈부르크 왕조는 나사우 가. 그러나 왕족들은 원래 대공가에서 가지고 있던 SAGD(저하 정도?) 칭호가 아니라 부르봉-파르마 가문의 후손 자격으로 가지게 된 , 즉 SAR(전하)칭호는 그대로 유지한다. 한마디로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적으로 남겼다!

3. 기타

  •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통치기가 프랑스의 여러 소설이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왕가에 배출한 왕들이 하나같이 특별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으며, 마지막 또한 프랑스 혁명같은 드라마틱한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
  • 앙리 4세 이래로 상당수의 왕들이 어쩐지 호색한이었던 전통이 있다.(...) 루이 13세 등의 예외가 있어서 전부 호색한은 아니다.
  • 왕가의 상징은 위 그림에 나오듯 백합. 왕들의 초상화에 보면 모피에 노란 백합이 수놓아져 있다.
  • 여담으로 버번 위스키의 버번과는 철자가 같은데 이 버번이 그 부르봉이 맞다. 켄터키주의 "버번" 카운티는 부르봉 왕조의 루이 16세를 기념하여 붙여진 도시 이름이기 때문.
  •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200년이 넘는 기간동안 고작 5명이 다스렸을 정도로 국왕의 평균 재위기간이 긴 왕조였다. 가장 짧은 치세의 루이 16세만 해도 18년에 달하며, 루이 14세는 72년, 루이 15세는 58년이나 왕위에 있었다.[4] 그래서 루이 15세는 루이 14세의 증손자고, 루이 16세도 루이 15세의 손자라서, 왕 댓수는 고작 두 번 밖에 안 넘어갔는데, 세대는 5번이나 넘어가서 루이 16세는 루이 14세의 5대손이 된다.(...)



[1] 프랑스어 스페인 나바라(Navarra)지역은 나바르(Navarre)다. 때문에 프랑스와 관련해서는 나바르라고 읽어야 한다. [2] 루이 14세는 장남이다. [3] 원래 스페인어로는 보르본-파르마 가문인데, 룩셈부르크가 프랑스어권이기 때문에 룩셈부르크 관련해서는 프랑스어로 표기해야 하고 관련 없을때는 스페인어로 표기해야 한다. 프랑스어로는 부르봉-파르므 가문이다. [4] 이는 두 사람 모두 어렸을 때 즉위했다는 점도 한몫했는데, 둘 다 5살에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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