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6:56:05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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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인 선수 선발회. 리그에 들어오려는 신인 선수를 모아 순번대로 구단에서 선수를 선택해 계약을 할 것을 정하는 것. 프랜차이즈제 리그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2. 상세

프로 스포츠에서 신인 선수를 선발하는 방식의 하나. 한 해에 프로 리그에 들어오는 모든 선수를 모아놓고, 구단이 정해진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선수를 골라 뽑아가는 개념이다. 지명당한 선수가 계약을 거부한다면 몇 년간 프로 리그 진입이 막히기도 한다. 신인 선수만이 아니라 리그의 특정한 상황에 따라 기존 선수를 대상으로 드래프트를 쓰기도 한다. 가령 리그에 신생팀이 들어온 상황에서 신생팀 선수 수급을 위한 확장 드래프트 혹은 KBO의 해외진출 선수 특별지명 따위가 이 같은 경우의 예이다. 1936년 미국의 NFL에서 처음으로 정식 도입되었다.[1]

북미권이나 아시아권 국가들의 스포츠계에서 흔히 시행하며, 유럽은 드래프트라는 개념이 약하고 하는 곳도 적다. 당장의 유럽 축구계 및 농구계만 봐도 알 수 있다. 스페인 같은 경우, 축구, 농구 할 것 없이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가 리그를 휩쓸고 있는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사안이기에, 드래프트 제도는 프로와 아마추어간의 협약과 선수의 신분에 대해 당사자가 모두 합의를 거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 이를 미국에서는 '단체교섭협약(Collective Bargain Agreement)', 약칭 CBA라고 하며,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매년 노조와 사측이 벌이는 노사협상을 말한다. 이 협상 합의문이 없으면 리그는 돌아가지 않는 직장 폐쇄상태가 되며, 드래프트, 웨이버 공시, FA 제도 등 리그 내 모든 선수 신분 관련 규정은 저 CBA 문서가 없는 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CBA를 갱신하는 연도[2]가 다가오면 매년 선수협회와 구단주 연합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몫을 더 챙기기 위해 단체행동을 하고, 이로 인해 파업이나 리그 스케줄 지연 등의 사건이 발생한다.

이런 규정이 없는 유럽의 스포츠 리그에는 드래프트가 없으며, 구단이 자체적으로 팜 또는 선수 수급을 통해 전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한 번 강팀이 되거나 인기팀이 되면 돈을 무지막지하게 쓰면서 팀의 전력을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재밌게도 자본주의의 대명사인 미국에서 시작된 이러한 사회주의 스타일의 제도(...)는 주로 미국 스타일의 폐쇄적인 프랜차이즈 체제에서 주로 사용한다.[3] 따라서 아마추어 선수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드래프트를 거부할 권리를 분명히 가짐에도 불구하고, 그럴 경우, 그 리그에 참가할 수 없게 되는 제재를 받게 된다. 물론 타 리그에서 뛰는 것까지는 막지 못하기에 자기가 원하는 팀에 지명이 되지 않으면 J.D. 드류 후쿠도메 고스케, 초노 히사요시처럼 독립리그(실업리그)로 옮겨 뛰다 원하는 팀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다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같은 경우는 드래프트를 아무리 해봤자 꽝이 나오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은 데다가, 외국의 유망주들은 '국제 아마추어 자율계약 제도'로 데려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역시도 안 터지는 경우가 터지는 경우보다 많긴 하다.

한국의 스포츠 리그는 타 리그로 가버릴 경우 선수 수급 공백이 생긴다는 이유로 졸업예정자 전원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드래프트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정상 그냥 눈 감아 주고는 있지만, V-리그 문성민 등의 사례[4]를 비롯해 이미 여러 번 문제가 된 적이 있으며, 선수에게 드래프트를 거부할 권리가 분명히 있음에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실 한국은 대부분의 스포츠 리그가 폐쇄형 리그이고, 기반이나 투자가 많이 취약하기 때문에 완전 자유계약 제도가 정착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

3. 특징

3.1. 장점

드래프트의 최고 장점이자 목적은 상위팀의 선수독점을 막고 하위팀에게 전력보강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팀 간 전력 평준화이다. 이 때문에 종목을 막론하고 드래프트 순위는 주로 지난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결정된다. 최초로 드래프트를 도입한 리그는 미국 미식축구리그인 NFL이다.[5] 드래프트, 엄격한 하드 샐러리캡과 이익공유제[6] 이 3가지 제도로 NFL은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는 치열한 경쟁을 유도했으며, 전 구단 흑자라는 전대미문의 업적을 달성했다. 이는 전세계 프로 스포츠계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사례. 가장 미국적인 리그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제도를 통해서 성공했으니, 이 또한 대단한 일이다. 물론 어떻게 보면, 보는 재미 극대화를 위한 프로리그 상품성 강화를 위한 방법이기도 하니, 하나의 기업인 프로리그 사무국이 자사의 상품인 프로리그를 벨런스 있게 관리하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7]. 이러한 제도는 비슷하게 다른 미국 스포츠에도 적용되었다. 특히 미국은 드래프트로 들어오는 신인의 연봉을 일정기간 고정하고 단계적으로 상승하게 만드는 루키 스케일-연봉 조정 기간이라는 시스템이 같이 있어서 좋은 신인을 재정적인 부담 없이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이것은 구단 입장에서는 장점이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고액 연봉을 받을 기회의 박탈이 된다.

프로구단의 숫자를 훨씬 상회하는 유소년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개방형 리그라면 수십 수백개의 프로-사회인 클럽들이 저마다 유스를 운영하면서 국경을 넘어서까지 상향식으로 활발하게 유소년 자원을 공급하지만, 폐쇄형 프랜차이즈 시스템에서는 프로구단의 숫자를 철저하게 제한하므로 직할 유스 시스템으로는 자원 수급에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드래프트라는 유인책을 통해 실제 프로리그에 필요한 규모 이상의 유스풀을 형성하고 최상위권 자원들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드래프트 지명에 실패한 선수들을 받아줄 사회인리그나 독립리그 등의 장치가 부족한 상황에서 드래프트를 폐지하고 구단 직할 유스 체제로 진입한다면 기껏 확보해놓은 고교팀들의 숫자는 급전직하할 것이다. K리그의 경우 2015년 자유계약 확대를 기점으로 초등부 등록선수가 줄고 있다. 물론 미국이나 일본처럼 프로 외에 엘리트선수들을 받아줄 제도적 장치가 풍부한 지역에서는 크게 상관이 없는 문제다.[8]

3.2. 단점

가장 큰 단점은 역시 탱킹이다. 선수를 뽑는 드래프트 순번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기를 고의로 소홀히 하는 것.[9]

탱킹이 발생하는 이유는 드래프트의 구조적 단점 중 하나인 랜덤성때문인데, 매년 들어오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재능이 일정치 않다는 것. 가끔 뛰어난 신인이 없는 시즌도 있고, 어느 해에는 그 해 FA 최고 선수보다 좋은 신인이 한 명도 아니고 여러명 나올 수도 있다.

단적인 사례가 NBA인데, 똑같이 드래프트 1순위여도 1997년 드래프트의 팀 던컨이나 2003년의 드래프트의 르브론 제임스 같이 즉시전력+프랜차이즈 스타감의 괴물 신인이 있는 반면, 앤서니 베넷처럼 결국 먹튀로 전락해 로스터 자리 하나가 아까워서 방출하는 허접들을 마지 못해 1순위로 뽑는 예정된 꽝카드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베넷을 뽑은 캐브스는 아무 이득도 보지 못했지만, 던컨을 뽑은 스퍼스는 그 단물을 20년간 쪽쪽 빨아먹으며 서부의 강자로 군림했다. 전설로 통하는 1984년 드래프트의 경우, 당장 이들의 첫 시즌에 마이클 조던 하킴 올라주원이 동서부 올스타로 선정되어 올스타전에 참가했으며, 명예의 전당 멤버가 네명에 이 클래스 출신 선수들이 MVP 트로피를 7개나 챙겨갔다.[10] 반면 실력 면에서 역대 최악으로 꼽히는 2000 클래스의 경우, 올스타로 선정된 횟수도 아니고 올스타 출전 횟수가 3회다. 1순위 케년 마틴, 19순위 자말 매글로어, 43순위 마이클 레드로 모두 2004년에 딱 한번씩 올스타에 뽑혔다. 2000년 드래프트는 하도 선수가 없어서 마이크 밀러가 11.9점 4리바운드이란 성적으로 신인왕을 탔지만 1984년 드래프트 신인왕 마이클 조던의 성적은 28.2점 6.5리바운드 5.9어시스트에 2위였던 하킴조차 20.6점 11.9리바운드로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격차가 있다. 1984년까지 가지 않더라도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카멜로 앤서니, 크리스 보시 등이 쏟아져나온 2003년 드래프트도 유명하다. 이에 따라 지명권의 가치도 천지차이인데, 위에 언급된 베넷의 경우 캐브스가 뽑을 선수가 없어서 지명권을 트레이드하려고 애썼지만 전체1순위 지명권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팀이 전혀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뽑은 것.

따라서 아마추어때부터 압도적인 실력과 포텐셜을 가진 선수가 드래프트 대상으로 나올 경우, 몇몇 하위팀이 그 선수를 얻기 위해 노골적인 탱킹[11]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를 테면 2003년 NBA에서는 르브론 제임스를 차지하기 위한 탱킹이 벌어졌고, 한국의 경우, V리그 김연경, 김민지, KBL에서는 2013년 경희대 빅3( 김종규, 김민구, 두경민)를 치지하기 위한 구단들의 탱킹이 벌어졌다. MLB에서도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브라이스 하퍼 같은 초특급 유망주가 나오는 경우 탱깅이 벌어진다. 이들은 모두 소속팀들이 전 시즌에 언론과 팬들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연패행진을 거듭해서 쟁취한(...) 선수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급선수들 중에서도 꽤나 꽝이 많이 나오니 함부로 했다가는 오히려 손해만 잔뜩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에도 구단들이 탱킹을 하는 이유는 이런 초특급 신인을 한번 뽑아서 잘 육성해 정착시키면, 이 선수가 육체적으로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리그에서 정한 최소한의 연봉만 주고 부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12] 유럽 축구계에서 호날두 앙토니 마르시알처럼 20살도 안 된데다 상위리그 검증도 안 된 어린 유망주를 단지 가능성만 보고 타팀에 뺏기지 않기 위해 수천만 유로의 이적료와 연봉을 주며 먼저 질러야 하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13] 그나마 KBO리그 같은 경우는 매년 연봉계약을 하기 때문에, 신인 시즌 뛰어난 활약을 한 류현진은 2년차에 바로 억대연봉에 들어갔다. 이런 리그에서는 슈퍼루키가 돈값하면 바로 어느 정도 비용이 상승하므로 탱킹의 가치가 엄청나게 크지는 않은 편. 하지만 그 크보도 8년간 서비스타임 동안은 소속팀과 계약만 가능해 FA 자격 획득 이전인 초특급 선수 연봉이 주전 수준의 FA선수 연봉과 비슷할 정도로[14] 왠만큼 실력이 있는 선수들은 FA가 되면 이전보다 연봉이 몇배씩 뛰다 보니 뛰어난 선수 한 명 제대로 뽑는다면 서비스타임 동안 FA선수 영입하는 것보다 몇 배로 싸게 쓸 수 있어 역시 큰 가치를 지닌다.

또 다른 문제는 '구단 직할 유스 시스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직할 유스 키워봤자 드래프트에서 뺏길 테니까. K리그에서 2006년부터 드래프트가 부활한 것도 표면적으로는 포항이 박주영을 먹튀당하고 열받아서 드래프트 재도입을 주장한 것이지만, 그 이전에 직할 유스 키울 여력이 없는 시민구단들이 줄기차게 드래프트제를 주장하고 있었고 여기에 포항이 가세하면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 것이다. 직할 유스는 1차적으로 구단들이 장기 플랜 하에 유망주들의 성장을 직접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드래프트제에서는 그저 유망주들이 각각의 팀에서 제대로 지도받으며 성장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으며 결국 선발과 계약 이후에도 마이너리그, 2군과 같은 구단 직할 육성시스템에서의 지리한 숙성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미국이야 미국-캐나다 3억5천의 인구풀에서 무진장한 유소년자원이 넘쳐흐르는데다가 남미 등지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몰려오는 자원들까지 더해지니 치열한 자체경쟁을 거쳐 올라온 드래프트 참가자들만으로도 충분히 리그를 꾸릴 수 있지만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KBO리그만 해도 만성적인 신인 자원의 부족과 기본기 부족, 리그의 질 저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K리그 드래프트 시기 유스가 학원축구 위주로 돌아가다보니 진학을 위한 공격수 몰빵과 이로 인한 개인기 부족, 수비자원 부족이 아직도 한국 축구계 전체를 좀먹고 있다. KBO 리그에서도 유스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럴 경우 지정되지 않은 고교 팀들의 무더기 해체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섣불리 도입하기는 무리다. 장점 문단 각주에서 언급했듯 더 이상 투자를 해야 할 이유가 없고 여기에 성적마저 안 나면 팀을 해체할 결정적인 구실이 생긴다. K리그는 자유계약 체제가 되면서 2014-2015년 사이 초등부 선수가 반토막이 나버렸다.

'선수의 선택권이 박탈되는 것'도 문제다. 위에서 잠깐 구단들이 루키 선수들을 싸게 부려먹는 문제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가고 싶은 구단 못 가고 강제로 지명당해 계약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양준혁이 쌍방울 지명을 거부하고 상무로 도망가버렸고[15] 일본에서는 2010년대 중반 이전까지 최고 인기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겠다고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사회인리그로 날라버리거나 타팀에 지명되었다고 1년을 쉬겠다는[16] 경우가 비일비재해서 문제가 될 지경이었으며, 결국 2010년대 이후 요미우리의 팜이 개박살나면서 요미우리 선호도가 줄어들며 입단거부는 줄어들었다. 국내 여자축구( WK리그) 드래프트에서, 보은 상무에 지명되는 순간 여성임에도 머리를 자르고 의무적으로 부사관에 입대해야 한다.[17] 이 때문에 권하늘은 2020년 현재는 상사를 바라보고 있지만 최초 지명 당시에는 펑펑 울었다고 하며, 결국 최유리가 자신의 선수 생명을 걸고 기어이 상무 지명을 거부하는 사태가 터지면서 상무는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고 별도로 지원자를 받는 것으로 제도가 바뀐다. K리그에서는 1991시즌 종료 후 황선홍, 홍명보가 드래프트를 거부하는 헬게이트가 열렸으며 완산에 지명된 황선홍은 무려 1:8 트레이드라는 초유의 편법을 통해 포항에 입단하는 등 리그 균형이고 뭐고 그냥.... 이후로도 1993년 김태영, 1997년 김대의 등 자금력 부족한 신생팀을 회피하는 드래프트 거부는 계속해서 터졌고, 2000년대 드래프트2기 시기에는 시민구단 안 가려는 유망주들이 대거 J리그로 도망쳐 문제가 되었다. 국제적으로 이동성이 높은 K리그가 드래프트로 인한 유망주 유출로 몸살을 앓았지만, 이동성이 적다는 야구의 KBO리그도 유망주 유출은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

당연하지만 프랜차이즈 제도로 뛰는 미국, 일본, 한국 등의 스포츠리그에서는 팀의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돈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드래프트로 좋은 신인을 골라내고 키우는 것이다. WAR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세계의 야구 재능이 몰려드는 메이저리그 야구조차 자유계약 시장에서 1년에 WAR 1을 더 올리려고 지출하는 연봉이 800만 달러가 넘는다. FA 제도는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을 데려와도 대부분 가성비가 신인급들보다 나쁘며,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빠른 시기 내에 성적 하락을 겪는다. 이 때문에 피지명 되는 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내면 낼수록 자신을 지명한 팀의 보유권이 없어지기 전까지 금전적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MLB의 인터내셔널 FA나 포스팅 시스템 제도처럼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고 입단한 완성형 선수들은 처음부터 고액을 받기도 하며, 금방 자유의 몸이 되버리는데, 신인 드래프트 출신 선수들은 그렇지 못하니 불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다만, 미국 스포츠의 경우, 어디까지나 같은 나이대의 FA보다 싸게 쓰는 것 뿐이지 최소 연봉으로 FA 자격 획득 직전까지 특급 선수를 부려 먹는 건 불가능하다. NBA의 경우, 드래프트의 순위에 따라 루키 계약액이 정해지는데 2017년 드래프트 전체 1픽인 마켈 펄츠의 루키 계약은 기본 2년 1,500만불, 옵션 2년 3,300만불로 합계 4년 4,800만불인데, 이걸로 이미 앙토니 마르시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계약한 연봉을 가볍게 능가한다. 결코 싸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이는, 마르시알이 래시포드처럼 맨유 유스에서 성장해 1군에 이적료 한푼 없이 입단했을때나 성립되는 얘기다. 맨유가 AS 모나코에서 마르시알을 영입하기 위해 지불한 이적료는 무려 8000만 유로. 드래프트로 입단한 마켈 펄츠의 이전 소속팀인 워싱턴 대학교에 지명팀인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내야할 이적료는? 단돈 0센트다.[18][19] 하지만 맨유가 마르시알을 타팀으로 이적시키면 (활약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영입할때 들어간 이적료 8000만 유로 혹은 그 이상을 받을 수 있다. 마르시알이 19-20 시즌의 폼을 계속 유지한다면 이적료가 1억유로는 그냥 넘길테니 이적료로는 오히려 맨유에 엄청난 이득이다. 그런데 마켈 펄츠는 MVP급 활약을 했다해도 타팀으로 이적할 때 필라델피아가 받는 돈은 영입할 때와 마찬가지로 단돈 0센트다. 축구 시장의 이적료는 투자개념이라 선수의 활약정도에 따라 영입비용 이상을 받고 파는 이적료 장사가 매우 흔하고 선수에게 지불되는 연봉처럼 구단이 회수 불가능한 비용이 아니므로 여기서 따질 일이 아니다.

MLB는 최대 4년까지는 최소연봉을 받지만, 4년 이후에는 연봉 조정에 들어가는데 이 연봉 조정액이 특급 선수일수록, 그리고 연차가 쌓일수록 상당히 커서 브라이스 하퍼 제이크 아리에타 같은 특급 선수의 경우, FA 이전에도 년 1300~1500만불쯤 받는다. 역시 이후에 FA 계약하면 수천만불 이상 받게 된다. 즉, 드래프트 제도라고해도 무조건 싼 값에 좋은 선수들을 마구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연봉은 시장경제의 크기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갓 프로에 입단한 20세 전후의 싱싱한 선수가 활동기간동안 최대한 창출할 수 있는 가치보다 싸게 쓰는 건 맞으니까, 이를 보상하는 겸, 입단시에 계약금을 주게 된다. 문제는 계약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원하지 않는 팀으로 가기 싫어 징징을 시전하여 계약에 난항을 겪거나 아예 입단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존 엘웨이, 일라이 매닝. 야구에서는 前 보스턴 레드삭스 외야수 J.D. 드루의 경우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지명받았다가 계약금을 더 받고 싶어서 지명을 거부하고 독립리그에 입단했다가 1년 뒤 드래프트를 재수하는 당시로써는 충공깽스러운 선택을 했으며, 그 결과 은퇴할 때까지도 필라델피아 원정만 오면 무시무시한 야유를 받는다.

한국에서의 드래프트 거부 사례는 K리그에 엄청나게 많은데, 위에서 언급된 황선홍, 홍명보, 김태영, 김대의, 김보경, 김민우, 김영권 등등....[20] 글로벌 종목인 축구답게 보통은 해외리그로 도망가거나 실업리그에서 뛰면서 기회를 노리는 식으로 지명을 피했다. V-리그 출범 전의 이경수[21] 등이 있다.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을 목표로 하여, 드래프트를 거부한 초노 히사요시, 스가노 도모유키 역시 마찬가지. 이태원 LG 트윈스에 입단하기 싫다는 이유로 지명을 거부하고 동국대학교로 갔는데 대학교 졸업 후에 또 다시 LG에 지명되면서 선수생활을 말아먹었다.[22]

NBA나 NHL 같은 리그에서는 위의 탱킹을 방지하기 위해 '드래프트 로터리'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전년도 성적 역순으로 자동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년도 성적을 기준으로 일정 수의 팀에 전체 1번 픽의 확률을 차등으로 부여하고, 드래프트 전에 추첨을 통해 1, 2, 3순위를 뽑아 순위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꼴등을 하더라도 무조건 1순위 지명권을 받아오는게 아니라서 잘못하면 성적은 성적대로 망하고, 최상위 지명권도 못얻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정규 시즌 순위가 낮을 수록 고순위를 뽑을 확률을 높게 주므로 그래도 탱킹을 하는게 현실이다.[23] KBL, WKBL, V-리그 남자부 여자부 모두 로터리 드래프트 제도를 보유하고 있다.

NBA에서는 1985년 드래프트에 최초로 시행이 되는데, 이 제도를 통해 특급 유망주들이 간혹 처음부터 빅마켓 팀에 가는 경우가 나오곤 한다. 예를 들자면 최초로 시행됐던 그 해에 최대어 패트릭 유잉이 당시 꼴찌가 아니었던 뉴욕 닉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2008년에는 1.17%라는 낮은 확률을 뚫고 시카고 불스가 1순위를 따내서 데릭 로즈를 얻게 됐다. 그렇다고는 해도 확률이 차등이기 때문에, 대부분 NBA 전문가들은 로터리 1위 경쟁팀이 되면 자기 동네 응원팀이라도 그냥 연패해서 로터리 확률이나 높이라고 할 정도다.

문제는 그럼에도 이 로터리에 대해 뒷담화나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NBA가 특급 신인을 빅 마켓에 보내 (프랜차이즈) 스타로 만들려고[24] 로터리 추첨을 조작한다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근거는 전혀 없다.

이런 이유로, 미국 프로리그에 있어서 신인 드래프트는 정규 시즌중이건 비시즌이건 중요한 이벤트이고 따라서 TV중계가 따라온다. 특히 컴바인-드래프트 연계가 잘 짜여진 NFL 드래프트의 경우 2018년 6개 스포츠채널등에서 중계되어 총합 3.57%의 시청률에 총 550만명의 시청자가 관람한 나름 중요 TV컨텐츠 중 하나다.

이것이 어쨌든 성과가 있었는지, MLB에서도 드디어 2023년 드래프트부터는 로터리를 실시했다. NBA와 달리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팀 18팀줭 6팀을 추첨으로 뽑는다.

또한 드래프트 제도가 있는 리그에서는 덕업일치가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케이스가 한신 타이거스 팬이었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지명받고 국민영예상까지 탄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는 그간 구단 레전드들이 한신 팬들인 경우가 많다 보니 대놓고 한신팬의 입단을 환영하고 있다(...).[25]

3.3. 스네이크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마지막 순위였던 구단이 다음 라운드에서 1순위 지명 권한을 얻는 유형을 스네이크(Snake) 드래프트 또는 'ㄹ'자 드래프트라 부른다.

4. 대한민국의 드래프트

4.1. 프로 농구

4.1.1. 한국프로농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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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996년부터 드래프트를 실시했다. 역대 국내선수 드래프트 현황은 당 사이트 참조.

발족서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드래프트를 여러 번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였다. 외국인 선수를 자유 계약을 할 경우에 생기는 이른바 뒷돈 문제를 고려하여 초기에는 외국인 선수를 드래프트로 선발했다가 잠깐 자유 계약으로 전환했더니 예상대로 뒷돈 문제가 터지면서 드래프트제로 환원했다. 그 외에도 귀화 선수 특별 드래프트 등 드래프트를 개최하기도 한다.

4.1.2. 한국여자프로농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WKBL 신입선수 선발회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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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프로 배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KOVO 신인선수 드래프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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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프로 야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KBO 신인 드래프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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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축구

4.4.1. K리그(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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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김종부의 지명파동을 겪으면서 1988년부터 드래프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월드컵 등을 통해 해외리그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자유로운 시장계약 방식으로 돌아가는 해외리그에 선수 유출이 시작되면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중단되기도 했었다. 1988년 드래프트가 김종부 파동으로 시작되었듯이 김동현, 박주영 계약파동으로 2006년부터 드래프트가 재개되었지만 위의 이유로 야구에 비하면 드래프트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거센 편. 게다가 소위 루키라 불리는 어린 신인의 데뷔를 막는 제도이기도 하다. 유럽권에서는 실력만 인정 받으면 고등학생의 나이에도 데뷔전을 치르며 경험치를 쌓을 수 있지만 K리그는 드래프트 제도로 인해 어린 선수들의 계약이 막히는 경우가 발생한다(그런데 이는 드래프트나 노동법의 문제가 아니라 학원축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2014년 12월을 화끈하게 달궜던 황희찬 사태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 프로축구연맹도 장기적으로 드래프트를 폐지한다고 한다.

지명순위별로 연봉 상한선과 의무 계약 기간이 존재하는데 연봉 상한선도 낮은편인데다가 의무 계약도 4년이었고, 계약금도 없었기 때문에[26] 많은 유망주들이 낮은 연봉으로 인해 해외로(특히 J리그) 나가게 하는 결정적인 빌미가 되고 있다.(그리고 그 결과로 많은 유망주가 망가진다.) 그때문에 계약금에서 일부 금액을 지급받는, 일명 선수장사를 하는 대학팀 감독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27]그리고 드래프트를 반대하는 축구팬들조차 이들은 까임의 대상이다. 거기다 김종부 파동+김동현 파동+박주영 파동. 드래프트 부활에는 대학팀(고려대)이 가장 큰 공헌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6년 드래프트 재개에 큰 목소리를 낸 시민 구단들 역시 최근에는 드래프트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배기종이나 염기훈과 같이 팀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실력있는 선수는 결국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아직 쓸만하지만 수도권팀들이 재계약을 하지 않은 베테랑과 조금 실력이 떨어져도 꾸준하고 충성심이 있는 유망주와 선수들, 그리고 용병대박위주의 운영을 많이 고려하고 있다.

다른 종목에서 멀쩡하게 돌아가는 드래프트가 축구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건 다른 국가의 리그와의 선수 이적이 적거나 거의 없다시피한 다른 종목들과는 달리 축구는 다른 국가의 리그들과 치열한 경쟁체제에 있다는 점이 크다. 한국에서 좋은 신인이 나오면 한국 축구팀들만 그 신인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 중국 더 넓게는 중동이나 유럽에서까지 관심을 보이니 드래프트와 같은 선수에게 불리한 제도를 제시할 경우 선수들의 해외 유출을 막기가 힘들다. 선수 입장에서는 해외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데 연봉도 적고 자신이 원하는 팀을 정할 수도 없는 드래프트는 당연히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드래프트라는 방식은 위에도 서술되어있듯 폐쇄적인 미국식 스포츠 리그에 적합한 방식이며( 메이저 리그 사커는 드래프트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활발한 선수 이동이 일어나는 축구에는 적합하지 않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전년도 성적에 따라 지명권을 주는 드래프트 방식으로는 1부리그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만한 선수가 2부리그에서 가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본적인 고찰만 해도 신인선수들에게 얼마나 불합리하게 다가올 지는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28]

때문에 2012년 승강제 도입에 맞춰 매년 자유선발 선수를 1명씩 점진적으로 늘리되, 2016년에는 드래프트를 완전히 폐지하기로 하였다. 우선지명 방식을 병행하여 운영하는 기존의 방침에 2013 K리그부터 드래프트에 앞서 자유선발 방식을 도입한 것. 자유선발 인원은 2013년도에는 자유선발로 각 구단이 한명씩 계약할 수 있으며, 2014년도에는 둘, 2015년에는 셋, 2016년도에는 모든 신인을 자유선발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단, 2016년 이전에 프로리그에 합류하는 신생구단은 자유선발 선수 제한이 2015년까지 5명씩 할 수 있도록 하여 구단의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부터는 완전 자유선발로 전환하도록 되어 있다.

4.4.2. WK리그(준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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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핸드볼(2023-24 시즌 프로 전환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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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프로 바둑

2004년 한국바둑리그가 출범한 이후 드래프트를 시작한다. 한국바둑리그의 특이한 점은 스폰서팀만 고정이고 나머지 연고지와 선수는 매년 드래프트로 정한다는 것. 따라서 한 선수가 한 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년 소속팀과 연고가 바뀔 수 있다. 매년 선수가 바뀌지만, 2007년부터 최규병 감독이 이끄는 영남일보팀이 3년 연속 한국바둑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며 3년 연속 영남일보팀에 뽑힌 김지석 6단이 MVP를 2회 수상하는 등 한국바둑리그의 에이스로 군림하고 있다.

예전에는 예선전과 랭킹을 따져가며 추려서 선수를 선발했으나 최근엔 한국기원 소속기사들 전원을 대상으로 하는 전면 드래프트로 선수를 선발하고 있고, 2015시즌부터는 보호선수 규정이 확대되면서 5명까지 최대 3시즌 동안 선수를 보호할 수 있도록 했다. 2020-21 시즌은 다시 선발전이 부활하여 1~3지명은 전면 드래프트, 4~5지명과 퓨처스리거는 선발전 통과자들을 대상으로 드래프트를 진행한다.

2015년 출범한 한국여자바둑리그와 2016년 출범한 한국시니어바둑리그도 드래프트로 매년 선수를 선발한다. 한국바둑리그와 차이점은 지역 연고 선수 보호 제도가 있어서 해당 팀의 지역연고 출신 혹은 해당 지역연고의 광역자치단체 출신일 경우 보호 선수르 지정해 보호 할 수 있다. 여자바둑리그와 시니어리그 모두 전자일 경우 5년, 후자일 경우 3년이 적용된다.

4.7. 프로 당구

2019년 9월 출범한 PBA 프로당구 투어는 2021년 5월(1차)과 9월(2차), 2021-22 시즌 PBA 팀 리그를 위한 남자부(PBA), 여자부(LPBA)에 대해 최초의 드래프트를 실시하였다. 그 이후, 매 시즌 PBA 구단 간 드래프트 제도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각 구단은 보호선수 제외한 선수 지명권을 다음과 같이 행사하게 된다:
① - 각 팀은 소속 선수 중에서 최소 3명 이상을 보호 선수로 지정해야 한다.
② - ①항을 거쳐 보유 선수가 가장 적은 팀 순서로 우선 지명권을 행사한다.
③ - ②항이 같은 경우에는, 지난 시즌 성적 역순으로 우선 지명권을 가진다.

4.8. e스포츠

4.8.1.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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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 크레이지레이싱 카트라이더

카트라이더 리그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드래프트 제도를 실시하였는데, 매 리그별로 8개의 레이싱팀이 참가하여 선수를 뽑았다. 2014년에 열린 리그에서는 8개 팀이 1~4차, 1~8순위로 한 명씩 선수를 뽑았으나, 2015년 이후 선수들이 미리 팀을 짜면 카레이싱팀이 그 팀을 통째로 드래프트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드래프트가 사실상 거의 무의미해졌다.[29] 특이한 점은 특정 선수의 소속 팀은 리그 기간동안만 적용되며, 리그가 끝날 시 그 팀은 해체되고 다음 리그에서는 새로운 팀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한, 모든 참가자 중 자율로 드래프트하는 것이 아닌, 드래프트 전에 따로 대회를 열어 뽑은 32명 중에서만 드래프트를 하는 방식이다.

한편 게임 내에서 다른 차량의 바로 뒤에서 따라붙을 경우 추가적인 속도가 붙는 기술 또한 드래프트라 불리는데, 이는 드래프팅 항목 참고.

유명한 드래프트 관련 영상은 간다 드래프트가 있다.

4.8.3. 스페셜 포스

스페셜 포스 종목도 2009년 스페셜 포스 프로리그의 도입으로 각 게임단들은 선수들을 스타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드래프트로 선발하였다. 스페셜 포스의 경우에는 팀을 구성해서 진행하는 게임 특성상 클랜 지명과 개인 지명을 병행하였다.

하지만 스페셜 포스 2 전환 후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프로리그가 폐지됨에 따라 드래프트 제도도 자연스럽게 폐지했다.

5. 미국의 드래프트

5.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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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내셔널 풋볼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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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전미 농구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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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내셔널 하키 리그

NHL 엔트리 드래프트(NHL Entry Draft)라는 명칭으로 7라운드까지 진행한다. NBA와 마찬가지로 드래프트 로터리가 있으며 상위 15개 픽을 드래프트 로터리로 정한다.

5.5. 메이저 리그 사커

MLS 슈퍼 드래프트(MLS SuperDraft)라고 부르며 2000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대학을 재학중이거나 졸업한 선수[30]에게 참가 자격을 가지며, 각 클럽이 HGP(홈 그로운 플레이어)로 지정한 선수들은 드래프트 진출을 할 수 없다. 4라운드까지 진행되지만, 전세계적으로 선수층이 풍부하게 퍼져있고 전력 상당수를 외부 선수 영입으로 채우는 축구의 특성상 드래프트가 가지는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래서 3,4 라운드 지명권을 포기하는 클럽도 상당하다.

6. 기타 국가의 드래프트

6.1. 일본

6.1.1. 일본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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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 지명 완전 추첨제, 과거에 존재했던 역지명제 등 다른 나라의 드래프트와는 구별되는 특징이 많다.

7. 특별 드래프트 사례

7.1. 확장 드래프트

Expansion Draft

주로 리그에 신생 구단이 참여했을 때 참여 초기 선수 수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구단의 선수 중 일부를 풀어 신생 구단으로 보내는 드래프트 사례가 있다.

가장 최근에 개최한 확장 드래프트로는 해외에서는 2021년 신규 창단한 NHL 시애틀 크라켄의 선수단을 위한 확장 드래프트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2021년 V-리그 여자부 광주 페퍼저축은행 AI 페퍼스의 창단으로 인한 신생 구단 특별 지명이 있다.

7.2. 해체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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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보충 드래프트

Supplement Draft

특정한 이유로 드래프트가 이뤄지는 정기적 기간에 드래프트를 신청하지 못한 아마추어 선수들을 구제하기 위한 드래프트로 현재 NFL이 정례적인 보충 드래프트를 하고 있다.

7.4.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2007년 2월 KBO 리그에서 이루어진 해외리그 계약후 한국에 돌아온 선수들의 재취업 자격을 주기 위해 특별히 한시적으로만 진행됐던 드래프트.

8. 여담

  • 몇몇 해에는 정말 뛰어난 재능들이 몰리기도 하고,[31] 몇몇 해는 그야말로 흉작으로 꼽히기도 하는 등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정 몇년은 이름이 붙을 정도로 특이한 경향성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런 것 잘하는 것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이다. 1999년 드래프트는 일명 조시 드래프트라고 불리는데, 조시 베켓 조시 해밀턴이 그 해 투타 최대의 유망주였기 때문. 3년만인 2001년 드래프트는 다시 마크 드래프트라고 해서 마크 프라이어 마크 테세이라가 투타 최대의 유망주였다.하지만 전체 1순위는 조 마우어였다는게 함정 2002년 드래프트는 잭 그레인키, 프린스 필더 등 재능이 넘치는 선수들이 많은 해였지만 그런 거 없이 빌리 빈이 자신의 방식으로 선수를 영입한 일명 머니볼 드래프트로 유명하다. 이런 것은 드래프트 단계부터 유망주 선수들의 홍보를 하는 수단이기도 해서 각종 스포츠 팬들은 이런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아우성이지만...
  • NBA의 경우 농구라는 종목 특성상 드래프트 상위픽이 슈퍼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서[32][33] MLB 이상으로 드래프트를 포장하고 특히 각 해의 1번픽 예상 선수들은 근 1년 전부터 언론과 전문가들이 금칠을 해 주는데, 이 포장질의 절정이 고1 때부터 무려 3년간 포장을 해 줬던 선수가 르브론 제임스다. 특히나 2003년은[34] 조던과 코비가 뽑혔던 1984년,[35] 1996년[36]과 함께 느바 역사상 3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드래프트로 꼽히는 해이기도 하다.
드래프트의 중요성 때문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이 희박한 하위권의 경우 팀 운영을 일부러 개판으로 하는 이른바 탱킹을 시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위에 언급된 르브론 제임스를 뽑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2002-03 시즌 당시 공동 꼴찌를 기록한 덴버와 함께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개판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또한 1983시즌 후반에 기괴할 정도로 연패를 거듭한 휴스턴 로키츠[37] 역시 탱킹이 의심되는 팀이었고,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도입된 것이 하위 7개팀 들 사이에서 1~7순위를 정하는 로터리 제도이다.[38][39]
추가로 NBA의 경우 자동 참가라고 해서 신청을 하지 않은 선수들도 일정 자격을 갖추면 자동으로 지명 대상이 되어 선수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명될 수 있다.[40] 그 자격요건은 다음과 같다.
  • 미국인 선수의 경우
    • 1. 4년간 대학에서 뛰었을 것.
    • 2.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미국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을 경우, 고교 졸업 이후 4년이 지났을 것.
    • 3. NBA 외의 프로리그 팀과 계약을 해서 뛴 경험이 있을 것.
  • 외국인 선수의 경우
    • 1. 드래프트가 열리는 해 기준으로 만 22세 이상일 것.[41]
  • 2. NBA 외의 미국 리그의 프로팀과 계약해서 뛴 경험이 있을 것.

    당연하지만 뽑혔다고 해서 강제로 NBA에 끌려와 뛰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선수가 훗날 NBA에서 뛰기로 마음먹었을 경우에는 그를 지명한 팀이 그를 트레이드하지 않을 경우 무조건 이 팀과 계약을 해야 한다. 추가로 NBA팀 입장에서는 "데뷔 안 한 선수에 대한 권한" 역시 자산으로 취급되어 트레이드할 수 있다.
이 드래프트 대상자 조항은 수십 년간 계속해서 수정되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정말 생뚱맞은 선수들도 뽑히곤 했다. 마이클 조던, 하킴 올라주원, 찰스 바클리, 존 스탁턴 등이 뽑힌 전설의 1984년 드래프트에서는 조던을 3번픽으로 뽑은 시카고 불스가 208번픽으로 육상선수 칼 루이스를 뽑기도 했는데, 황당한 것은 루이스는 정식농구 경력이 없었다는 점. 당시 시카고 불스에서 서부 지역 스카우트 팀을 이끌던 론 와이스는 남아 있던 선수 중 최고의 운동선수라서 뽑았다고 설명했다. 당연히 루이스는 NBA에서 뛰지 않았다. 재밌는건 NFL드래프트에서도 12라운드에 뽑혔다는 점.

루이스의 순위를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당시만 해도 NBA는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인을 드래프트로 뽑았다. 팀이 겨우 23개인데 10라운드까지 진행돼서 매년 200명 내외가 지명될 정도. 과거에는 이 라운드수가 왔다갔다 했는데, 1960년과 1968년에는 무려 21라운드까지 간 적도 있었다. 당연히 하위 라운드에서 지명된 선수들은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었고, 이 때문에 9, 10라운드까지 가면 뛰지 않을 게 뻔한 선수들도 종종 지명되곤 했다.
1977년에서 뉴올리언즈 재즈는 루이자 해리스를 7라운드 137번픽으로 지명했는데, 그녀는 NBA에서 사상 최초로 공식 지명된 여자 선수였다.[42] 그러나 당시 시대상으로 보나 남녀 사이의 수준차로 보나 그녀가 NBA에서 뛰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끔 하위 라운드 출신 중에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다. 1979년에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3라운드 65번으로 뽑힌 빌 레임비어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트래이드된 후 훗날 명예의 전당에 오를 정도로 탁월한 커리어를 보냈는데, 그는 역사상 최악의 더티 플레이어로도 유명하다. 탁월한 득점력과 무표정한 얼굴로 유명한 "Iceman" 조지 거빈 역시 3라운드 출신이다. 이에 1990년대 이후에는 2라운드로 줄어들었는데 이 드래프트에 강한 두각을 나타내는 팀이 샌안토니오 스퍼스다. 토니 파커는 1라운드 28번재 픽, 마누 지노빌리는 2라운드 59번째 픽이다. 사실 지금 에이스가 된 카와이 레너드도 인디애나에게 1라운드 15번째 픽이었는데, 그 잠재력을 눈치챈 경영진은 그를 트레이드 해왔다.

1985년에는 7라운드로 줄어들고 1989년에 현행 2라운드로 정착되면서 지명자 수는 훨씬 적어졌지만, 일단 지명된 선수들은 거의 안전하게 계약을 하게 되었다. 1990년대에 선수노조와 구단주들이 협상한 결과에 따라 1라운드 지명선수들은 전원 계약이 보장되며 지명순위에 따라 계약액수가 정해지게 되었는데, 규정상 보장은 아니더라도 2라운드 선수들도 대부분 관행에 따라 최소 2~3년의 최소연봉으로 계약을 한다.[43]
최근 대학에 1년만 적을 두고 그 직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원앤던(One-And-Done) 전략의 확산[44]으로 인하여 NCAA 등에선 대학스포츠뿐만 아니라 대학교육이 개판이 된다고 말이 많다. 이에 NBA 사무국은 2021년경 원앤던을 폐지하고 G 리그를 통해 고졸 유망주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려 하는 중. 그러나 미국에서 NCAA 토너먼트 등의 사회적 위상 등으로 볼 때 대학농구의 위치가 워낙 확고하고, 선수들도 커리어패스를 위한 대학교육 수요가 많아 원앤던 제도가 폐지되어도 대졸 선수들이 더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운동선수가 신인선수 드래프트에 지명되는 것도 수시 붙은 고3이라 할 수 있다.

8.1. 괴담

드래프트가 활성화된 미국에서는 그동안 발생했던 수많은 사건때문에 드래프트에 대한 이런저런 뒷이야기들이 많으며, 일부는 괴담을 넘어 징크스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 NBA의 2, 3번픽 징크스 : 1984년 드래프트에서 일어난 샘 보위와 마이클 조던의 사례로 너무나도 유명한 케이스. 유독 2번픽 선수가 3번픽 선수에 비해 실패확률이 높은 징크스를 말한다. 그리고 이는 2003년 다르코 밀리시치와 카멜로 앤서니를 통해서 재현된다. 이는 이후로도 드래프트때마다 선수의 전체적 재능과 팀의 필요(특히 포지션 문제)가 충돌할때 어떤 쪽을 택하는 것이 정답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도 쓰인다. 대부분 2번픽 선수가 실패하는 이유가 드래프트 당시 팀의 필요를 우선시[45][46] 하면서 재능이 떨어지는 선수를 뽑아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 포틀랜드의 센터 징크스 : 농구 재능으로는 사상 최고라는 찬사를 받던 센터 빌 월튼은, 포틀랜드 시절 수도 없이 부상에 시달리며, 가지고 있던 재능을 절반도 못 보여줬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예의 전당 멤버[47] 위의 2픽에서 언급한 샘 보위 역시 216cm의 장신에다 뛰어난 수비력을 지녔으며, 체격이 믿기지 않을 만큼 발이 빠르고 운동 능력이 탁월해 기대치가 높았다. 다만 폭발적인 모습으로 코트를 누비던 대학 2학년 시절에 정강이가 부러지면서 2년 가까이 쉬는 바람에, 4학년에 복귀해서는 부상 이전 만큼의 압도적인 모습은 보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전에 보여준 기대치가 워낙 높아서, 당시 자타공인 대학 No.1 센터 패트릭 유잉, 성장 잠재력과 유연성은 유잉을 능가한다는 하킴 올라주원에 이은 대학 센터 No.3의 위치였다. 따라서 센터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포틀랜드 입장에서는 샘 보위가 부상 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픽이었으나...보위는 건강하기만 하면 팀이 기대했던 빠른 스피드와 운동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문제는 발이 부러져 4년 동안 5차례나 수술을 받는 등 건강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 그 사이 훗날 무시무시한 이름들이 된 드래프트 동기들은 리그의 스타를 넘어 NBA의 역사를 빛내는 존재가 되어 포틀랜드의 선택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24년 전 보위의 경우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포틀랜드는 이번에도 케빈 듀란트대신 희대의 유리몸 그렉 오든을 전체 1번으로 뽑는다.(..) 그러나 오든은 르브론 제임스의 고교 시절에 필적하던 역대급 재능으로 고교 시절부터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만큼, 현재 케빈 듀란트의 모습만 보고 그를 뽑지 않았던 포틀랜드를 비난하긴 어렵다. 당시의 케빈 듀란트는 최고의 2순위였을 뿐, 2007년 드래프트는 '그렉 오든 드래프트'라고 불리며, 팀들이 대놓고 오든을 얻기 위해 노골적인 탱킹을 불사하던 시기였다. 그도 그럴것이 오든은 괴물같은 운동 능력과 당장 NBA에서 센터로 뛰어도 디펜시브 팀 수상은 맡아뒀다는 탁월한 수비력은 물론, 높은 BQ와 팀 플레이어로 재질도 훌륭하다는 극찬이 쏟아지던 초대형 정통센터 재목이었다. 게다가 전설중의 전설 빌 러셀마저 아예 자신의 후계자로 가장 가까운 스타일이라고 대놓고 애정을 드러냈으며, 농구계는 드래프트에 막 나온 루키에게 드와이트 하워드와 라이벌 구도로 리그를 양분할 것이라는 성급한 평가와 함께, 데이비드 로빈슨의 재래, 패트릭 유잉 수준의 기대치를 공공연하게 드러냈고, 심지어 망해도 디켐베 무톰보라는 단정까지. 이런 오든을 안 뽑는다? 그야말로 정신나간 짓 이었다. 드래프트 당시 완성도가 높은 듀란트도 매우 후한 점수를 얻었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해에 나왔으면 1순위 감'이고 '오든을 제외한 1순위' 였지, 전체 1순위는 오든이 고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 드래프트 직후 오든은 무릎 미세골절로 수술을 받게 되어 시즌 아웃. 이후 화려한 부상 이력 속에 사이버 센터라는 오명과 명예의 전당급 노안으로 개그 소재로나 간혹 등장할 뿐, 듀란트보다 높은 평가를 받던 때는 아득한 기억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NBA의 6번픽 필패 징크스 : 1978년 래리 버드가 전체 6번픽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뒤[48] 그 이후 NBA에서 전체 6번으로 입단한 선수들이 하나같이 망했다. 그보다 높은 픽의 선수들도 망할수 있는게 거친 프로세계지만 1988년 6번 허시 호킨스, 2001년 6번 셰인 베티에같이 괜찮은 선수정도로 남은 것이 그나마 선방이고 드라마틱하게 망한 선수가 한둘이 아니다. 심각한 유리몸으로 전락하거나 반쪽 주전, 심지어는 잘 뛰다가 멘탈이 망가지면서 훅가는 선수(ex:앤트완 워커) 등 유독 안좋게 망하는 사례가 잦아서 거의 징크스 수준까지 올라갔다. 거기다 2006년 전체 6번픽으로 지명된 후 신인상 수상 및 3년 연속 올스타에 뽑히며 맹활약해 6번픽 징크스를 깨줄거라 믿었던 포틀랜드의 브랜든 로이도 무릎 부상때문에 조기은퇴 크리를 맞고 6번픽 징크스는 현재진행형이 되고 있다. 그리고 포틀랜드의 2012년 6번픽 데미안 릴라드가 2013년 신인상을 수상하는데... 아까부터 유난히 포틀랜드가 많이보이는데 기분탓이겠지 릴라드 이후로도 2022년 NBA 수비선수상을 수상한 마커스 스마트를 필두로 버디 힐드, 조시 기디 등 리그에서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이 나오면서 6번픽 징크스는 잊혀지는 분위기.
  • 주사위 징크스 - 드래프트 순위와 직접 연관이 있는건 아니지만, 과거 프로야구의 1차지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던 시절 OB 베어스에 존재했던 징크스. 잠실 라이벌이었던 OB 베어스와 LG 트윈스는 연고가 서울로 같기 때문에 1차 지명할 유망주가 서로 겹칠경우 주사위로 우선순위를 정했었다. 1991년부터는 1차 지명이 팀당 1명으로 줄었기 때문에 서울에 대어급 선수가 나오면 필연적으로 주사위승부를 해야했다. 그리고...두산은 주사위게임에서 매년 졌다. 이때문에 두산이 원하는 선수를 LG에게 줄줄이 뺏긴 역사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잠실시리즈 항목 참조.

8.2. 기타

2014년 NFL의 신인드래프트를 소재로 한 영화 ' 드래프트 데이'가 개봉하였다. 주연은 케빈 코스트너.

스포츠가 아닌 분야에서는 일본의 아이돌 그룹 AKB48이 드래프트를 실시한다. 자세한 것은 AKB48/드래프트항목 참조.

WWE에서는 RAW와 SMACKDOWN 둘로 나뉜 후 간혹 드래프트를 터트렸다가 이후 흐지부지 로스터를 통일했다. 2016년 7월달 다시금 드래프트를 통해 로스터가 나뉘어졌다.

9. 관련 문서



[1] 전력 균형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만년 약체팀이던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오너에 의해 제안된 것이 커미셔너에 의해 받아들여져 도입되었다. [2] 리그 별로 다르나 보통 5~6년 정도가 갱신 주기. [3] 미국 주요 리그들도 신인 드래프트 제도를 도입하기 전까지는 자유계약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양키스와 같은 빅마켓 구단들의 리그 독점이 꽤 문제가 되었다. 다만 MLB의 경우는 1921년부터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분배를 위한 드래프트를 시행하고 있었다. [4] 2008년 드래프트는 한국전력의 프로화와 우리캐피탈의 창단이 맞물린 드래프트로, 저 당시의 드래프티들이 신영석, 박상하, 황동일 등으로 2013년 드래프트 전까지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로 언급되기도 할 정도였다. 당시 한국전력과 우리캐피탈은 각자의 이유로 신인들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첨예한 대립이 발생했고, 결국 '한전-우캐-우캐-우캐-우캐-한전-한전-한전' 순으로 지명 순서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문성민은 드래프트를 거부하며, 독일 리그로 진출하게 된다. [5] 상술했듯 1936년에 처음 도입된 후 ,1950년대 각 구단별 재정 불균형 때문에 불과 10여 년 사이에 50여 개 팀이 사라지는 막장을 경험하고 나서 팀간 전력 평준화를 위해 정비되었다. [6] 모든 구단 수입의 40%를 리그 사무국이 일괄 징수하여 전 구단에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 [7] 각 구단과 리그 및 대회를 주최하는 경기단체의 관계를 두고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의 관점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종목 대회를 운영하는 단체 역시 하나의 기업이며 대회를 구성하는 각 팀은 영리법인의 사원, 즉 주식회사의 주주와 비슷한 관계로 인식하고 있기에 경기를 주관하는 사무국이 대회의 전반적인 흥행을 위해 각 구단의 운영에 대해 보다 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딱히 사회주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제도는 아니라는 것. 게다가 각 팀이 자체적인 유소년 선수 수급 체계를 갖추고 있는 유럽식 프로스포츠와는 달리, 미국의 경우 학원 스포츠가 발달해있다는 차이점도 있다. [8] 반대로 말하자면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 늘려놓은 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인이나 독립리그 등의 보완책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 야구계가 최근 실업리그, 독립리그 확충에 목을 메는 이유. [9] 져주기 게임과는 다르다. 일부러 패배를 위해 한다기 보다는 이겨야 한다는 의지가 없는 경우로, 먹튀로 전락한 선수를 출전시키거나, 타 팀에서 긁을 대로 긁어본 중고 선수들로 로스터를 꾸리거나, 농구 등 타임아웃이 있는 스포츠에서는 기상천외한 작전을 시험해 보는 행위들을 보통 탱킹이라고 부른다. [10] 조던 5개, 하킴 1개, 찰스 바클리 1개 [11] Tanking : 굳이 이기려고 하지 않고 적당히 시즌을 운영하는, 심하게 말하면 고의로 패배를 적립하는 것. [12] 미국의 스포츠들은 전술한 루키 스케일로 인해 연차에 따른 연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슈퍼루키라고 하더라도 그저그런 10년차 선수보다 많은 돈을 받지는 못한다. 역으로 말하면 슈퍼루키들이 꾸준히 롱런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돈을 벌수 있으니 선수들도 다소 불공정해보이는 시스템에서 게을러지지 않고 누구보다도 노력하게 된다. [13] 언급한 선수는 극소수의 대성공 케이스일 뿐, 돈 값을 못하는 선수라면 팀에 미치는 금전적 피해 수치는 막대한 수준이다. 이런 선수들은 대부분 먹튀 항목에 이름을 올린다. [14] 외국에서 뛰고 오든지, FA 기간 커버하는 장기 계약을 맺은 선수를 제외한 순수 비 FA 단년 계약 선수들은 아무리 미친 활약을 해도 연봉 10억 이상 받는 선수는 거의 없는 반면, FA 계약을 한 선수들은 초특급 선수가 아니더라도 계약금까지 감안하면 연봉 10억 넘는 선수가 흔하다. [15] 정확히 말하자면 쌍방울을 피해 도망갔다기보다는 그냥 삼성 입단하려고 처음부터 작정했던 것. 초노 히사요시와 비슷한 경우. [16] 그리고 스가노의 선택은 닛폰햄이 스가노에게 거절당하고 뽑은 오타니 쇼헤이가 대박을 치면서 스가노에게는 악재가 되었으며, 요미우리는 그가 입단한 이후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한 적이 없다. [17] 여군의 경우 국군간호사관학교, 학사장교 등의 임관 제도도 있어서 입대 선호도가 떨어진 편이었다. [18] 사실 그래서 유럽축구판에서도 유스 시스템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래야 좋은 선수를 적당한 가격에 쓸수 있으니. [19] 대학교와 프로구단간의 관계인데 이적료가 웬말?이라고 주장해봐야 소용이 없다. 드래프트라는 제도는 처음부터 프로,대학교,선수등 이해관계자 다수가 합의해서 가능한거지, 그 합의가 없으면 선수 보유권을 가진 대학교가 프로에 선수보낼때 이적료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것때문에 20세기 실업배구판에는 이적동의서라는 한장의 문서때문에 문성민,이경수등 수많은 톱스타들이 스카우트 파동을 겪었으며 아래 k리그의 수많은 선수들처럼 드래프트가 있는 리그에서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해외리그로 도망가는 선수가 적지 않다. 이적동의서 없이는 대학과 실업 사이에서도 선수이동이 불가능했던 배구판에서는 일명 배구육성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대학팀이 실업팀에 이적료를 대놓고 요구했었다. 그때문에 문성민, 이경수 모두 드래프트 파동이 일어났다. [20] 스카우트 파동 사례로 많이 언급되는 김종부 박주영은 자유계약 체제에서 계약 상대를 두고 마찰을 빚었던 것이며 이 때문에 드래프트 도입의 원인이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서정원과 신태용은 드래프트를 거부한 적이 없다. [21] 이경수는 LG화재 입단에는 성공했지만 팀은 이경수에 매달리느라 팀 전력 보강 및 체질 개선을 등한시하면서 V-리그 출범 이후 16시즌 동안(2005 시즌부터 2019-20 시즌까지) 단 3번의 봄 배구에 그치는 시련기를 보내야 했다. [22] 박세혁도 2008년 드래프트에서 고려대학교 진학으로 인해 LG 입단을 포기했다. 근데 박세혁은 성공. 다만 이태원은 LG를 극혐해서 거부한 경우고(이쪽은 워크 에식도 엉망이어서, 다시 LG에 지명되자 오만상을 찌푸렸고 입단 후에도 불성실한 태도를 보인 데 이어 상무 입대 후 사고를 쳐서 일반 부대로 전출된 뒤 전역하기도 전에 방출당했다. 이후 이적한 NC에서도 말썽을 일으킨 끝에 쫓겨났다.) 박세혁은 원래 고려대 진학이 확정인데도 LG가 그냥 오면 좋고 아님 말고하는 식으로 찔러본 경우다. 박세혁과 비슷한 사례로는 KIA의 나성범. 원래 연세대학교 진학으로 인해 LG에 지명받았음에도 거부하고 입단을 포기했다. 대졸 후엔 NC 다이노스에 입단했다. [23] 이 때문에 욕을 지독하게 먹는 팀이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Trust The Process라는 기치 아래 샘 힝키 GM이 탱킹을 통해 드래프트 1픽을 미친 듯이 모으고 있고 조엘 엠비드, 벤 시몬스라는 성과를 얻었다. [24] 실제로 NBA는 스타 선수에게 원 소속팀이 다른 팀보다 유리한 계약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일명 designated player rule. [25] 심지어 카도와키 마코토는 아버지가 이름을 이마오카 마코토에서 따서 지었다고 밝혔다. [26] 2012년도 리그가 종료된 이후부터는 드래프트와 우선지명에 한해 3년부터 5년사이에서 선수와 구단간에 조정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계약금에 대해서도 '계약금 우선지명 선수'와 '자유선발 선수'는 계약금을 설정하도록 되어 있다. [27] 선수가 유스시절 이미 계약한 계약서의 우선협상권을 씹어버리고 자기가 보내고 싶은 구단으로 보낸게 한두번이 아니다. 대표적인 피해팀은 모두가 예상 가능하듯이 포항. [28] 그나마 타 리그 선택지가 적은 프로야구도 2000년대 초중반에는 적지않은 수의 유망주들이 MLB 직행에 도전하면서 흥행에서 상당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들을 어떻게든 수용하기 위해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까지 실시했다. 프로축구는 그동안 주요 유출지였던 일본, 중국, 중동리그에 더해서 최근에는 동남아 1부리그만 가도 그럭저럭 괜찮은 대우를 기대할 수 있는지라 더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29] 왜냐면, 뛰어난 선수들이 자신들끼리만 팀을 미리 짜서 올라오고,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의 경우는 실력이 부족한 선수들로만 팀을 짜서 올라가기 때문에 이미 팀 간의 밸런스가 매우 벌어져 있다. 따라서 1,2위로 우선순위를 얻은 팀과 7,8순위 등으로 밀린 팀이 경기를 할 경우, 6:0이나 6:1 등의 정규 리그 본선답지 않은 압살경기가 속출하고 있다! [30] 다수의 선수는 MLS 리저브팀 혹은 USL 등 하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다. [31] 대표적으로 NBA의 1984년 드래프트에서 마이클 조던, 하킴 올라주원, 찰스 바클리, 존 스탁턴 등이 쏟아져 나왔으며, 1996년 드래프트에서는 코비 브라이언트, 앨런 아이버슨, 스티브 내쉬 등이 배출됐고,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카멜로 앤서니 등이 등장한 2003년 드래프트가 손꼽히는 초대형 드래프트로 꼽힌다. 현재 전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있는 레전드 선수들이다. 그 외에 NFL의 1983년 드래프트 1라운드가 있다. [32] 농구는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이 거의 절대적인 스포츠로 뽑힌다. 반면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의 영향이 보다 적은 야구의 경우, 1라운더조차 메이저로 콜업될 확률이 절반도 안 될 정도. [33] 여담이지만 농구에서 야구와 같은 팜시스템이 정착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대로 신체능력이 절대적이다 보니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들은 벤치롤이라도 맡는 것이 보통이지, 경험을 위해 하위리그에서 뛰는 경우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49] 이 때문에 NBA G 리그가 출범하고 사실상 G 리그와 연계가 된 NBA팀들은 자유롭게 선수이동이 가능하게 된 현 시점에도 신인들을 G 리그에 보내 경험을 쌓게 하거나 부상에서 회복 중인 선수를 실전감각을 위해 G 리그에서 뛰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34] 1픽 르브론 제임스, 3픽 카멜로 앤서니, 4픽 크리스 보시, 5픽 드웨인 웨이드. [35] 1픽 하킴 올라주원, 3픽 마이클 조던, 5픽 찰스 바클리, 16픽 존 스탁턴. [36] 1픽 앨런 아이버슨, 5픽 레이 앨런, 13픽 코비 브라이언트 15픽 스티브 내시. [37] 당시는 동서부 컨퍼런스 꼴찌팀들 사이에서 동전 던지기를 통해 1, 2순위를 결정. [38] 현재는 팀 수가 늘어나 14개팀이 로터리에 참여하며, 승률별로 각자 다른 갯수의 탁구공을 넣은 추첨기를 통해 추첨한다. 당연히 꼴찌팀이 가장 많은 탁구공을 넣는다. [39] 그리고 이 제도 덕분에 1993년 드래프트 때 올랜도 매직이 대박을 터뜨렸다. 전 해에 샤킬 오닐(이때는 뒤에서 2위였다.)을 뽑아서 w41l41 로 괜찮은 성적을 보였기에 역으로 드래프트 순위는 꼴지였는데... 그 하나 넣은 탁구공이 그만 1순위에 나온 것이다. 드래프트를 중계하던 앵커조차 Oh my god.. 그리고 올랜도 구단주는 희희낙락.. 그리고 뽑은 이가 크리스 웨버 [40] 참고로 이 자동 참가로 지명된 선수들 중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선수는 래리 버드였다. 버드는 1978년 당시 인디애나 주립대에서 3학년 시즌을 갓 마친 상태였지만 인디애나 주립대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인디애나 대학에 입학했다가 적응실패로 자퇴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연차상으로 이미 미국대학에 4년을 뛴 것이 된 셈이었다. 그러나 이 자동 참가의 대상자 대부분은 해외 유망주들이라 대부분의 팀들은 어차피 내년에 드래프트에 참가할 게 뻔한데다가 4학년을 마칠 예정이라 뽑아봤자 뛰지 않을게 뻔한 버드를 지명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버드의 재능을 탐내던 셀틱스의 단장 레드 아워벡은 이를 간파하고 비교적 낮은 픽인 6번 픽으로 버드를 1978년에 선점했다. 물론 전력보강의 기회를 포기한 대가로 1978-79시즌은 바닥을 헤메어야 했지만 그 덕에 버드란 역대급 선수가 합류한 1979-80시즌엔 단숨에 61승으로 동부 1위이자 우승후보로 뛰어오를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때는 드래프트가 TV로 중계되지 않던 시절이라(최초 중계는 1984년 드래프트였다) 버드는 자기가 셀틱스에 뽑힌 걸 지인에게 듣고 알았다고... [41] 즉, 드래프트가 2015년 6월 25일에 열린다면, 2015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만 22세가 되는 1993년 12월 31일생까지 자동 참가대상이 되는 것이다. [42] 1969년에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즈가 데니스 롱을 지명했지만 리그가 이를 무효화했다. [43] 최소연봉은 연차에 따라 달라지는데, 신인 최소연봉은 2014-15시즌 기준 507,336달러이다(한화 약 5억7천5백만 원). 1라운드 지명 인원에게 추천되는 연봉기준은 Rookie scale이라고 하는데, 동시즌 기준 1순위 467만 달러에서 마지막 30순위인 92만7천 달러까지로 나뉜다. 다만 꼭 이 액수로 계약해야되는 것은 아니고, 팀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이 액수의 80~120%까지 받을 수 있다. [44] 반면 사관학교는 의무복무 규정이 있고, 무엇보다 국립학교라서 원앤던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45] 그 문제의 1984년 드래프트때 하킴 올라주원은 전체 1위 지명이 확실했고, 센터보강이 절실했던 2순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가 누구를 지명해야 되느냐라고 논란이 일었을때 일부 전문가들은 이렇게 답했다. 마이클 조던을 지명해 센터로 써라. 포틀랜드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대학스타들이 모두 얼리엔트리를 신청했으나 전체 1번픽이 대놓고 확정이었던 초대형 센터가 대학 4년을 모두 마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 선수와 하킴을 제외한 최고의 센터를 지명했던 거지만.... [46] 앞서 언급된 다르코 밀리시치와 카멜로 앤서니의 경우에도 84년과 거의 똑같은데, 다만 이 땐 2번픽을 가졌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파이널 우승을 노릴법했고 실제로 우승을 차지한 초 강팀이었음에도 트레이드를 잘해서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2번픽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미 완성된 팀에 굳이 옵션을 하나 더 추가하느니 상대적으로 높이도 낮고 나이도 있는 인사이드진에 유망주를 추가해서 그 선수가 보고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하고자 하는 구단의 의도가 있었다. 물론 망했지만... 2009년 드래프트 전체 2번픽인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하심 타빗도 당시 잭 랜돌프라는 에이스 파워 포워드와, 마이클 콘리,O.J 메요, 루디 게이라는 젊고 유망해보였던 1,2,3번 유망주를 보유했기 때문에 유일한 약점이었던 센터 자리를 보강하기 위해 지명한 프로젝트형 빅맨이었는데 정말 역대 최악의 2픽 수준으로 폭망하고, 3번픽이었던 제임스 하든이 올스타 가드로 성장하면서, 최근엔 팀 사정보고 키우지 말고 그냥 잘하는 놈 뽑아 쓰자는 분위기가 대세. [47] 월튼은 부상으로 얼룩진 커리어만으로도 NBA 역대 최고의 50인에 뽑힌 선수지만, 그가 건강했을때 카림 압둘자바와 대등하게 매치업하는 괴물이었단 걸 생각하면 부상이 조금만 적었어도 훨씬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48] 참고로 래리 버드는 애초에 78년 드래프트에 참가할지, 대학 4학년을 다닐지 선택을 못한 상태여서 다른 팀들이 계속 넘기다가 보스턴 셀틱스가 버드 정도의 재능이라면 당장 합류 안해도 1년 정도 기다릴 수 있다며 그냥 무대뽀로 지명한 케이스다. 버드는 결국 4학년을 마치고 셀틱스에 합류했는데 만약 버드가 드래프트에 참가하겠다고 했다면 78년 1번픽은 버드였을 것이고 4학년을 마치겠다고 했다면 79년 드래프트에서 평생의 라이벌 매직 존슨과 1,2픽을 나눠가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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