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2 16:32:43

데이비드 로빈슨

데이비드 로빈슨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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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75th Anniversary Team
(NBA 75주년 팀) /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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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압둘자바 야니스 아데토쿤보 네이트 아치발드 찰스 바클리 밥 쿠지
데이브 코웬스 케빈 듀란트 줄리어스 어빙 조지 거빈 할 그리어
제임스 하든 엘빈 헤이즈 제리 루카스 모제스 말론 케빈 맥헤일
조지 마이칸 스티브 내시 디르크 노비츠키 하킴 올라주원 밥 페팃
윌리스 리드 오스카 로버트슨 데이비드 로빈슨 빌 러셀 존 스탁턴
폴 아리진 릭 배리 래리 버드 윌트 체임벌린 클라이드 드렉슬러
팀 던컨 패트릭 유잉 월트 프레이저 케빈 가넷 존 하블리첵
앨런 아이버슨 매직 존슨 샘 존스 마이클 조던 칼 말론
로버트 패리시 크리스 폴 스카티 피펜 빌 셔먼 아이제아 토마스
네이트 서몬드 웨스 언셀드 빌 월튼 제리 웨스트 제임스 워디
레이 앨런 카멜로 앤서니 엘진 베일러 데이브 빙 코비 브라이언트
빌 커닝햄 스테판 커리 앤서니 데이비스 데이브 드부셔 르브론 제임스
제이슨 키드 카와이 레너드 데미안 릴라드 피트 마라비치 밥 맥아두
레지 밀러 얼 먼로 샤킬 오닐 게리 페이튼 폴 피어스
데니스 로드맨 돌프 셰이스 드웨인 웨이드 러셀 웨스트브룩 레니 윌킨스
도미니크 윌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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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미국 스포츠 사이트 the Athletic에서 NBA 출범 75주년을 기념하여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75명을 발표했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 카림 압둘자바 빌 러셀 매직 존슨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윌트 체임벌린 래리 버드 샤킬 오닐 팀 던컨 코비 브라이언트
<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하킴 올라주원 오스카 로버트슨 케빈 듀란트 제리 웨스트 스테판 커리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칼 말론 케빈 가넷 모제스 말론 줄리어스 어빙 데이비드 로빈슨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디르크 노비츠키 찰스 바클리 엘진 베일러 야니스 아데토쿤보 존 스탁턴
<rowcolor=#fff>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아이제아 토마스 릭 배리 드웨인 웨이드 존 하블리첵 크리스 폴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밥 페팃 스카티 피펜 제임스 하든 카와이 레너드 조지 마이칸
<rowcolor=#fff>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제이슨 키드 패트릭 유잉 스티브 내시 밥 쿠지 앨런 아이버슨
<rowcolor=#fff>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엘빈 헤이즈 조지 거빈 클라이드 드렉슬러 윌리스 리드 월트 프레이저
<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러셀 웨스트브룩 레지 밀러 게리 페이튼 케빈 맥헤일 폴 피어스
<rowcolor=#fff>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도미니크 윌킨스 레이 앨런 앤서니 데이비스 밥 맥아두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rowcolor=#fff>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드와이트 하워드 데이브 코웬스 얼 먼로 제임스 워디 웨스 언셀드
<rowcolor=#fff>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돌프 셰이스 데니스 로드맨 카멜로 앤서니 빌 월튼 크리스 웨버
<rowcolor=#fff>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빌리 커닝햄 네이트 아치발드 데미안 릴라드 알론조 모닝 할 그리어
<rowcolor=#fff>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알렉스 잉글리시 제리 루카스 피트 마라비치 로버트 패리시 레니 윌킨스
출처 }}}}}}}}}}}}

The 50 Greatest Players in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History
NBA 역사상 위대한 선수 50인
in 1996. 파일:ESPN 로고.svg /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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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 서몬드 네이트 아치발드 데이브 빙 데이비드 로빈슨 데이브 코웬스
돌프 셰이스 레니 윌킨스 래리 버드 로버트 패리시 릭 배리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모제스 말론 밥 페팃 빌 러셀
빌 셔먼 빌 커닝험 빌 월튼 샤킬 오닐 샘 존스
스카티 피펜 아이제아 토마스 얼 먼로 엘빈 헤이즈 엘진 베일러
오스카 로버트슨 웨스 언셀드 윌리스 리드 윌트 체임벌린 월트 프레이저
제리 루카스 제리 웨스트 제임스 워디 조지 거빈 조지 마이칸
존 스탁턴 존 하블리첵 줄리어스 어빙 카림 압둘자바 칼 말론
케빈 맥헤일 클라이드 드렉슬러 폴 아리진 패트릭 유잉 피트 마라비치
하킴 올라주원 할 그리어 찰스 바클리 밥 쿠지 데이브 드부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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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1992 1996

파일:FIBA 농구 월드컵 로고.svg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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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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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56 1956-57 1957-58 1958-59 1959-60
밥 페팃 밥 쿠지 빌 러셀 밥 페팃 윌트 체임벌린
1960-61 1961-62 1962-63 1963-64 1964-65
빌 러셀 빌 러셀 빌 러셀 오스카 로버트슨 빌 러셀
1965-66 1966-67 1967-68 1968-69 1969-70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웨스 언셀드 윌리스 리드
1970-71 1971-72 1972-73 1973-74 1974-75
루 앨신더 카림 압둘자바 데이브 코웬스 카림 압둘자바 밥 맥아두
1975-76 1976-77 1977-78 1978-79 1979-80
카림 압둘자바 카림 압둘자바 빌 월튼 모제스 말론 카림 압둘자바
1980-81 1981-82 1982-83 1983-84 1984-85
줄리어스 어빙 모제스 말론 모제스 말론 래리 버드 래리 버드
1985-86 1986-87 1987-88 1988-89 1989-90
래리 버드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매직 존슨
1990-91 1991-92 1992-93 1993-94 1994-95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1995-96 1996-97 1997-98 1998-99 1999-00
마이클 조던 칼 말론 마이클 조던 칼 말론 샤킬 오닐
2000-01 2001-02 2002-03 2003-04 2004-05
앨런 아이버슨 팀 던컨 팀 던컨 케빈 가넷 스티브 내시
2005-06 2006-07 2007-08 2008-09 2009-10
스티브 내시 디르크 노비츠키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르브론 제임스
2010-11 2011-12 2012-13 2013-14 2014-15
데릭 로즈 르브론 제임스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스테판 커리
2015-16 2016-17 2017-18 2018-19 2019-20
스테판 커리 러셀 웨스트브룩 제임스 하든 야니스 아데토쿤보 야니스 아데토쿤보
2020-21 2021-22 2022-23 2023-24 2024-25
니콜라 요키치 니콜라 요키치 조엘 엠비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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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83 1983-84 1984-85 1985-86 1986-87
시드니 몽크리프 시드니 몽크리프 마크 이튼 앨빈 로버트슨 마이클 쿠퍼
1987-88 1988-89 1989-90 1990-91 1991-92
마이클 조던 마크 이튼 데니스 로드맨 데니스 로드맨 데이비드 로빈슨
1992-93 1993-94 1994-95 1995-96 1996-97
하킴 올라주원 하킴 올라주원 디켐베 무톰보 게리 페이튼 디켐베 무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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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켐베 무톰보 알론조 모닝 알론조 모닝 디켐베 무톰보 벤 월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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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월러스 론 아테스트 벤 월러스 벤 월러스 마커스 캠비
2007-08 2008-09 2009-10 2010-11 2011-12
케빈 가넷 드와이트 하워드 드와이트 하워드 드와이트 하워드 타이슨 챈들러
2012-13 2013-14 2014-15 2015-16 2016-17
마크 가솔 조아킴 노아 카와이 레너드 카와이 레너드 드레이먼드 그린
2017-18 2018-19 2019-20 2020-21 2021-22
루디 고베어 루디 고베어 야니스 아데토쿤보 루디 고베어 마커스 스마트
2022-23 2023-24 2024-25 2025-26 2026-27
자렌 잭슨 주니어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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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47 1947-48 1948-49 1949-50 1950-51
조 펄크스 맥스 자슬로프스키 조지 마이칸 조지 마이칸 조지 마이칸
1951-52 1952-53 1953-54 1954-55 1955-56
폴 아리진 네일 존스턴 네일 존스턴 네일 존스턴 밥 페팃
1956-57 1957-58 1958-59 1959-60 1960-61
폴 아리진 조지 야들리 밥 페팃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1961-62 1962-63 1963-64 1964-65 1965-66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1966-67 1967-68 1968-69 1969-70 1970-71
릭 배리 데이브 빙 엘빈 헤이즈 제리 웨스트 루 앨신더(카림 압둘자바)
1971-72 1972-73 1973-74 1974-75 1975-76
카림 압둘자바 네이트 아치발드 밥 맥아두 밥 맥아두 밥 맥아두
1976-77 1977-78 1978-79 1979-80 1980-81
피트 마라비치 조지 거빈 조지 거빈 조지 거빈 애드리안 댄틀리
1981-82 1982-83 1983-84 1984-85 1985-86
조지 거빈 알렉스 잉글리시 애드리안 댄틀리 버나드 킹 도미니크 윌킨스
1986-87 1987-88 1988-89 1989-90 1990-91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1991-92 1992-93 1993-94 1994-95 1995-96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데이비드 로빈슨 샤킬 오닐 마이클 조던
1996-97 1997-98 1998-99 1999-00 2000-01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앨런 아이버슨 샤킬 오닐 앨런 아이버슨
2001-02 2002-03 2003-04 2004-05 2005-06
앨런 아이버슨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앨런 아이버슨 코비 브라이언트
2006-07 2007-08 2008-09 2009-10 2010-11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케빈 듀란트 케빈 듀란트
2011-12 2012-13 2013-14 2014-15 2015-16
케빈 듀란트 카멜로 앤서니 케빈 듀란트 러셀 웨스트브룩 스테판 커리
2016-17 2017-18 2018-19 2019-20 2020-21
러셀 웨스트브룩 제임스 하든 제임스 하든 제임스 하든 스테판 커리
2021-22 2022-23 2023-24 2024-25 2025-26
조엘 엠비드 조엘 엠비드 루카 돈치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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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53 1953-54 1954-55 1955-56 1956-57
돈 메이네케 레이 펠릭스 밥 페팃 모리스 스톡스 톰 하인슨
1957-58 1958-59 1959-60 1960-61 1961-62
우디 솔즈베리 엘진 베일러 윌트 체임벌린 오스카 로버트슨 월트 벨라미
1962-63 1963-64 1964-65 1965-66 1966-67
테리 디싱거 제리 루카스 윌리스 리드 릭 배리 데이브 빙
1967-68 1968-69 1969-70 1970-71 1971-72
얼 먼로 웨스 언셀드 루 앨신더 데이브 코웬스
제프 페트리
시드니 윅스
1972-73 1973-74 1974-75 1975-76 1976-77
밥 맥아두 어니 디그레고리오 자말 윌키스 앨번 애덤스 애드리언 댄틀리
1977-78 1978-79 1979-80 1980-81 1981-82
월터 데이비스 필 포드 래리 버드 대럴 그리핀 벅 윌리엄스
1982-83 1983-84 1984-85 1985-86 1986-87
테리 커밍스 랄프 샘슨 마이클 조던 패트릭 유잉 척 퍼슨
1987-88 1988-89 1989-90 1990-91 1991-92
마크 잭슨 미치 리치몬드 데이비드 로빈슨 데릭 콜먼 래리 존슨
1992-93 1993-94 1994-95 1995-96 1996-97
샤킬 오닐 크리스 웨버 그랜트 힐
제이슨 키드
데이먼 스타더마이어 앨런 아이버슨
1997-98 1998-99 1999-00 2000-01 2001-02
팀 던컨 빈스 카터 엘튼 브랜드
스티브 프랜시스
마이크 밀러 파우 가솔
2002-03 2003-04 2004-05 2005-06 2006-07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르브론 제임스 에메카 오카포 크리스 폴 브랜든 로이
2007-08 2008-09 2009-10 2010-11 2011-12
케빈 듀란트 데릭 로즈 타이릭 에반스 블레이크 그리핀 카이리 어빙
2012-13 2013-14 2014-15 2015-16 2016-17
데미안 릴라드 마이클 카터윌리엄스 앤드류 위긴스 칼앤서니 타운스 말콤 브록던
2017-18 2018-19 2019-20 2020-21 2021-22
벤 시몬스 루카 돈치치 자 모란트 라멜로 볼 스코티 반스
2022-23 2023-24 2024-25 2025-26 2026-27
파올로 반케로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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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950-51 1951-52 1952-53 1953-54 1954-55
돌프 셰이스 래리 파우스트
맬 허친스
조지 마이칸 해리 갤러틴 네일 존스턴
1955-56 1956-57 1957-58 1958-59 1959-60
밥 페팃 모리스 스톡스 빌 러셀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1960-61 1961-62 1962-63 1963-64 1964-65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빌 러셀 빌 러셀
1965-66 1966-67 1967-68 1968-69 1969-70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엘빈 헤이즈
1970-71 1971-72 1972-73 1973-74 1974-75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윌트 체임벌린 엘빈 헤이즈 웨스 언셀드
1975-76 1976-77 1977-78 1978-79 1979-80
카림 압둘자바 빌 월튼 트럭 로빈슨 모제스 말론 스웬 네이터
1980-81 1981-82 1982-83 1983-84 1984-85
모제스 말론 모제스 말론 모제스 말론 모제스 말론 모제스 말론
1985-86 1986-87 1987-88 1988-89 1989-90
빌 레임비어 찰스 바클리 마이클 케이지 하킴 올라주원 하킴 올라주원
1990-91 1991-92 1992-93 1993-94 1994-95
데이비드 로빈슨 데니스 로드맨 데니스 로드맨 데니스 로드맨 데니스 로드맨
1995-96 1996-97 1997-98 1998-99 1999-00
데니스 로드맨 데니스 로드맨 데니스 로드맨 크리스 웨버 디켐베 무톰보
2000-01 2001-02 2002-03 2003-04 2004-05
디켐베 무톰보 벤 월러스 벤 월러스 케빈 가넷 케빈 가넷
2005-06 2006-07 2007-08 2008-09 2009-10
케빈 가넷 케빈 가넷 드와이트 하워드 드와이트 하워드 드와이트 하워드
2010-11 2011-12 2012-13 2013-14 2014-15
케빈 러브 드와이트 하워드 드와이트 하워드 디안드레 조던 디안드레 조던
2015-16 2016-17 2017-18 2018-19 2019-20
안드레 드러먼드 하산 화이트사이드 안드레 드러먼드 안드레 드러먼드 안드레 드러먼드
2020-21 2021-22 2022-23 2023-24 2024-25
클린트 카펠라 루디 고베어 도만타스 사보니스 도만타스 사보니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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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74 1974-75 1975-76 1976-77 1977-78
엘모어 스미스 카림 압둘자바 카림 압둘자바 빌 월튼 조지 T. 존슨
1978-79 1979-80 1980-81 1981-82 1982-83
카림 압둘자바 카림 압둘자바 조지 T. 존슨 조지 T. 존슨 트리 롤린스
1983-84 1984-85 1985-86 1986-87 1987-88
마크 이튼 마크 이튼 마누트 볼 마크 이튼 마크 이튼
1988-89 1989-90 1990-91 1991-92 1992-93
마누트 볼 하킴 올라주원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하킴 올라주원
1993-94 1994-95 1995-96 1996-97 1997-98
디켐베 무톰보 디켐베 무톰보 디켐베 무톰보 숀 브래들리 마커스 캠비
1998-99 1999-00 2000-01 2001-02 2002-03
알론조 모닝 알론조 모닝 테오 라틀리프 벤 월러스 테오 라틀리프
2003-04 2004-05 2005-06 2006-07 2007-08
테오 라틀리프 안드레이 키릴렌코 마커스 캠비 마커스 캠비 마커스 캠비
2008-09 2009-10 2010-11 2011-12 2012-13
드와이트 하워드 드와이트 하워드 앤드류 보것 서지 이바카 서지 이바카
2013-14 2014-15 2015-16 2016-17 2017-18
앤서니 데이비스 앤서니 데이비스 하산 화이트사이드 루디 고베어 앤서니 데이비스
2018-19 2019-20 2020-21 2021-22 2022-23
마일스 터너 하산 화이트사이드 마일스 터너 자렌 잭슨 주니어 자렌 잭슨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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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로빈슨
헌액 연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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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 샌안토니오 스퍼스 No. 50
데이비드 모리스 로빈슨
David Maurice Robinson
출생 1965년 8월 6일 ([age(1965-08-06)]세)
플로리다 주 키 웨스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미국해군사관학교
신장 213cm (7' 0")[1]
체중 113kg (250 lbs)[2]
윙스팬 226cm (7' 5")
포지션 센터
드래프트 1987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샌안토니오 스퍼스 지명
소속 팀 샌안토니오 스퍼스 (1989~2003)
등번호 5번 -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50번 - 샌안토니오
종교 개신교

1. 개요2. 생애
2.1. 데뷔 이전2.2. NBA 커리어2.3. 과소평가와 팀 던컨과의 비교2.4. 은퇴 이후
3. 플레이 스타일4. 평가5. 수상 내역6. 이것저것

[clearfix]

1. 개요

미국의 농구인. 1990년대 NBA 4대 센터 중의 한 명이며[3], NBA 50주년 기념 역대 최고의 50인 & 75주년 기념 역대 최고의 75인의 농구선수 중 한명이다. 4대 센터 중 다른 세 명과 달리 자신이 데뷔한 소속팀에서 은퇴할 때까지 뛴 원클럽맨이며, 그 은퇴 시즌에 우승반지를 차지하며 명예롭게 은퇴한 축복받은 선수 생활을 했다.[4]

그의 공식 별명은 올드팬들에게는 너무나도 유명하고, 국내외 언론이 자주 사용한 'The Admiral( 제독)'이다. 미국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2년 의무복무까지 마친 해군장교 출신이라서 붙은 별명이다. 2009년엔 마이클 조던, 존 스탁턴, 제리 슬로언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2. 생애

2.1. 데뷔 이전

로빈슨은 군인 집안의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도 미합중국 해군에서 복무했고, 그래서 가족들은 아버지가 전역할 때까지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살아야했고 아버지가 전역한 이후에야 버지니아 주에 정착했다. 로빈슨은 고등학교 때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여러 스포츠를 했지만 유독 농구만 하지 않았는데, 3학년까지(미 고등학교는 4년제다) 키가 5피트9인치(175cm)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4학년이 되자 갑자기 6피트6인치(198cm)로 성장했다. 당시까지 그는 조직화된 농구를 전혀 해본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그를 팀에 합류시켰고, 뒤늦게 시작했음에도 그의 학교가 속한 지역(district)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됐지만 그 정도로 대학 팀들의 이목을 끌기는 무리였다. 결국 로빈슨은 SAT 시험에 응시, 1,320점을[5] 받고 미국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다. 전공은 수학이었다고.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a842432322ffacca6685b5b29af5c213.jpg
4학년 생도 시절의 모습.

그런데 로빈슨의 성장판은 아직도 열려있었다. 신장제한[6] 때문에 겨우 해군사관학교 입학이 허락된[7] 로빈슨은 거기서 또 키가 미친듯이 자라서 무려 7피트(213cm)의 거인이 되었다. 이때문에 해군사관학교장인 찰스 라슨 해군 소장과의 면담까지 가는 등, 2학년도 못마치고 신체검사 걸려서 퇴교되나 싶었지만 존 레만 해군부 장관[8]이 그의 이야기를 접했고, 함정 근무에 부적합한 그의 신체 조건을 감안하여 육상에서만 근무하는 해군 공병 병과(Civil Engineer Corps) 장교로 임관하는 조건으로 해사에 계속 재학할 수 있는 특례를 인정받았다. 공병 소위로 임관한 뒤 조지아주 킹스 베이의 해군 잠수함 기지에서 2년 복무 후 중위로 예편했다. 해사 출신 자원은 병과별로 차이가 있으나 최소 5년의 의무 복무를 해야 하는데, 그는 여기서도 특례를 인정받은 것이다.

어쨌건 7피트에 달하는 거인임에도 운동능력을 전혀 잃지 않은 축복받은 신체 덕에 재학 4년 동안 폴 에반스[9]와 피트 허먼 감독의 지도 하에 덕 보이칙(Doug Wojcik, 전 털사 대학교 감독) 등 선배들과 함께 뛰며 평균 21.0득점, 10.3리바운드를 기록하고, 1986년 3월의 광란에서는 보이칙, 편입생 브라이언 그레고리(전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교 감독) 등과 함께 팀 역사상 유일한 엘리트 8[10]으로 팀을 이끄는 등 전미 최고의 센터 유망주로 주목받았다.[11] 그래도 로빈슨은 이 4년간의 활약으로 NBA 팀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게 되었고, 1987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지명된다.

2.2. NBA 커리어

전역한 로빈슨은 89-90시즌에 데뷔했다. 2년의 공백이 무색하게 로빈슨은 89-90시즌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전성기를 알렸다. 무려 평균 24.3득점에 12.0 리바운드라는 괴물같은 기록을 과시하며 루키로서 올스타에 뽑히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3년차에서는 NBA에서 단 세명만 기록했던 평균 2.0 이상 블록, 2.0 이상 스틸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수비에서도 크나큰 존재감을 발휘하면서 91-92시즌에는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했다. 93-94시즌에는 샤킬 오닐과의 득점왕 경쟁으로 유명했으며, 결국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71득점을 기록했고, 이는 현재까지도 한경기 최다득점 역대 6위 기록이다. 이 괴물같은 양반 만 아니었어도 최대 3위까지 가능했다

참고로 이 경기에서 스퍼스의 동료들은 의도적으로 로빈슨에게 공을 몰아주었다. 그러나 세간의 루머와 달리 클리퍼스 선수들은 이에 동조하지 않았으며 최선을 다해 수비했다. 가끔 클리퍼스 선수들도 로빈슨을 내버려뒀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니 다음에 이 항목을 수정하고 싶다면 관련 인터뷰 등 근거 자료를 제시하고 수정하기 바란다. 사실 한 선수가 득점을 무지막지하게 쌓는 경우에 동료들이 공을 몰아주는 건 눈살 찌푸릴 만한 일도 아니며 오히려 당연시되는 케이스다. 샤킬 오닐이 커리어하이 61점을 기록할 당시에도 분위기가 심상치않자 공을 몰아주는 장면을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코비가 81점을 기록할 당시에도 레이커스의 승리가 확실시되던 막판에도 (당시 코비의 맹활약으로 지던 경기를 역전해서 점수차를 여유있게 쌓은 시점) 끝까지 코비 위주로 공격을 하는 걸 볼 수 있다. 플옵에서 기록을 위해 이러면 비판받겠지만 정규시즌에서 기록을 앞두고 있는데 공을 몰아주지 않을 이유는 없다. 사실 100득점 당시 윌트 체임벌린은 상대팀인 닉스가 기록을 내주기 싫어서 일부러 윌트가 아닌 다른 선수들을 고의로 파울해서 자유투를 주는 행위를 저지르자, 감독이 아예 체임벌린에게 볼 운반까지 하도록 지시했다. 이로 인해 이 경기 막판은 난데없는 자유투 콘테스트가 되는 촌극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건 좀 기록을 지나치게 의식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지만, 로빈슨이나 코비, 오닐의 경우처럼 그냥 공격권을 몰아주는 정도면 문제될 게 전혀 없다.

루머에 흔들릴 것 없이 직접 확인하자. 적극적으로 도움수비를 와서 더블팀을 붙이는 클리퍼스 선수들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때는 지역방어가 허용 안 되던 맨투맨 수비시절이라 포스트맨에 대한 더블팀이 지금보다 더 어려웠고, 클리퍼스가 정상급의 수비팀이 아니란 걸 감안하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막은 것이란 걸 알 수 있다.[12]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클리퍼스가 로빈슨이 뭐가 예쁘다고 71점을 헌납하겠는가? 그리고 문경은/ 우지원의 3점슛 타이틀 쟁탈전에서 있었던 "일부러 수비를 안해 상대팀의 대기록 수립을 허용하는" 짓거리는 KBL에서도 엄청나게 비난받고 그 해 3점슛왕 시상을 안 할 정도로 문제가 많은 행동이다. 하물며 더욱 치밀하게 운영되고 규모와 인기가 비교도 안 되며 역사도 깊은 NBA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간 로빈슨은 매장당했을 것이다.

로빈슨의 진정한 전성기는 다음 해인 94-95시즌이었다. 이 해에 로빈슨은 시즌 MVP를 수상했으며 팀을 리그 최강으로 이끌었다. 그렇지만 이 시즌에 서부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로빈슨은 하킴 올라주원에게 명백하게 밀리면서 시즌 MVP로서의 자존심을 구겼으며 그가 은퇴할 때까지 쫓아다닌 '새가슴'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로빈슨의 커리어는 96-97시즌에 큰 부상을 당하면서 바뀌게 된다. 이 시즌 샌안토니오는 에이스였던 로빈슨 뿐만 아니라 2옵션이었던 션 엘리엇까지 시즌아웃 당하면서 역대 최악의 승률을 기록한다. 하지만 이게 전화위복이 되어, 97년 드래프트에서 샌안토니오는 대학 최고의 센터였던 팀 던컨[13] 지명하게 된다. 막강 트윈타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둘은 이 시즌에 동시에 20-10을 합작했다. 이후 로빈슨은 팀의 리더자리를 던컨에게 물려주고 그를 뒷바침해주는 사이드킥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 결실은 98-99시즌 샌안토니오의 프랜차이즈 창단이래 최초의 우승으로 돌아왔다. 이 시점부터 로빈슨은 팀의 에이스가 아닌 2옵션으로서 던컨을 보좌했다.

02-03시즌에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겠다고 공식선언했다. 그리고 커리어를 통틀어 제일 저조한 성적을 남겼지만 팀의 든든한 기둥으로서의 역할은 변함이 없었다. 쓰리핏을 달성한 샤킬 오닐과[14] 코비 브라이언트의 레이커스를 이겨내고 파이널에 올라 뉴저지 네츠를 맞이하며, 6차전에서 13득점 17리바운드 2블록으로 맹활약하면서 팀의 두번째 우승에 일조했고, 결국 공언대로 로빈슨은 은퇴했다.

2.3. 과소평가와 팀 던컨과의 비교

조지 거빈 시대 이후 샌안토니오가 강팀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기간은 바로 로빈슨이 데뷔한 89-90시즌 부터이다. 또한 한국에서도 조던의 영향으로 nba인기가 상당했을 당시 스퍼스도 매번 서부 탑시드 급 성적을 내면서 로빈슨의 가치 또한 엄청났으나 매번 국내 방송에서는 97-98시즌 부터 지금까지 플레이오프를 진출했다는 사실만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처음 NBA를 접한 팬이라면 던컨 데뷔 이전 스퍼스를 과소평가할 여지가 상당하다.

그러나 이 문서를 보면 확인할수 있듯이 로빈슨 시대부터 스퍼스는 매 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로빈슨 개인 역시 매번 ALL NBA, 디펜스 팀, DPOY, 드림팀 1, 3 및 MVP 까지, 던컨 데뷔 전 우승을 제외한 개인 어워드란 어워드는 모두 차지했던 엘리트 센터이다.

또한 스탯으로 보나, 수상이력으로 보나, 경기력으로 보나, 전성기 로빈슨은 전성기 던컨보다 아래가 결코 아니다. 퍼스트팀이 적은 건 당시 역대 최강의 센터진 뎁쓰 때문인데, 통산 4회 수비왕인 무톰보는 이 당시 센터 뎁쓰로 인해 수비왕 수상횟수보다 적은 통산 3회 디펜시브 퍼스트팀 선정이란 기괴한 이력이 발생하였다. 패트릭 유잉은 2시즌 연속 MVP 투표 5위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 2시즌 모두 써드팀에도 선정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올라주원, 로빈슨, 오닐이 모두 MVP 투표 4위 안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로빈슨은 던컨에겐 없는 수비왕까지 있다. 그러나 로빈슨의 최전성기는 던컨보다 다소 임팩트가 딸리는데, 플레이오프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MVP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올라주원에게 밀린 것이 결정적. 이로 인해 결코 올라주원에게 약하지 않았음에도 선수 평가에서 항상 올라주원보다 아래에 놓이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실력과는 별개로 리그 내 위상이 던컨보다 낮은게 저평가의 원인이다. 제독은 동시대에 거의 대등한 실력의 센터 3명과 뛰었으며 이들 중에 가장 앞선게 (오닐이 전성기에 오르기 전이자 제독의 전성기인 90년대 기준) 올라주원이었다. 심지어 이들 모두보다 확연히 높이 평가받는 올타임 넘버원 마이클 조던에 역대 최고의 콤비로 불리는 칼 말론-존 스탁턴까지. 게다가 제독은 90년대에 MVP를 수상한 선수들 중 유일하게 1옵션으로 팀을 결승에 올려놓은 적이 없다. 반면 던컨은, 그의 전성기 당시 샤킬 오닐을 제외하면 그보다 높이 평가받는 선수가 없었다. 코비 브라이언트의 경우 던컨의 전성기 시절엔 샤킬 오닐이 팀 1옵션이었기에 다소 미묘한 위치였고, 코비의 유일한 MVP 시즌은 던컨의 최전성기가 아니였기에 전성기가 서로 달랐다. 또한, 파워포워드 포지션에선 던컨의 전성기에 역대급 선수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임에도 그를 넘어선 선수가 없었다. 던컨의 최전성기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었던 케빈 가넷이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전성기에 경쟁하던 선수일 뿐 커리어 전체는 던컨이 확연히 앞서며, 최전성기 가넷은 미네소타가 플레이오프를 턱걸이하는 팀이었기에 개인성적은 비교대상이었어도 팀의 에이스로서의 위상은 차원이 달랐다. 노비츠키는 역시 케빈 가넷의 최전성기 이후에 팀 던컨의 새로운 대항마로 파이널 우승까지 달성하였지만 역시 전체 커리어에선 한수 아래로 평가받는 건 마찬가지. 크리스 웨버는 워낙 전성기가 짧은 선수였기에 경쟁자로 평가받기 힘든데, 던컨은 이러한 파워포워드 뎁쓰에도 경쟁자들을 제압하면서 포지션 올타임 넘버원으로 평가 받게 되었다.

사실 농구는 센터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시 되는데, 이 중에서도 센터 최전성 시대에 빅4로 불린 로빈슨과, 당시 기준으로 팀내 위상이 그리 높지 않던 파워 포워드 포지션을 중요 포지션으로 올려놓는데 공헌한 팀 던컨 모두 우열을 가리는 것 자체가 어려운 문제다. 이러다보니 제독은 상대적으로 임팩트가 좀 약할 수밖에 없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거고 제독 역시 당대 최강의 선수 중 하나로 꼽혔으나, 던컨만큼 끝판왕 이미지는 아니란 소리다. 추가로 제독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게 그는 전성기가 짧고 커리어가 짧았다. 사실 이는 65년생인 선수가 24세가 돼서야 데뷔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로, 그는 최정상급의 기량을 뽐낸 시기는 물론 커리어 자체도 무려 90~2010년대에 걸쳐 우승한 던컨보다 훨씬 짧았다. 이러니 전체적으로 더 훌륭한 커리어를 보낸 던컨에 가릴 수밖에 없다.

2.4. 은퇴 이후

은퇴이후 각종 구설수에 휘말린 다른 NBA 선수들과는 달리 자선사업가로 변신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다. 고향이나 다름없는 샌안토니오에 도심지의 가난한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카버[15] 학원(나중에 IDEA Carver로 개명)을 세워서 이 학교의 이사장으로 있다. 데이비드 로빈슨은 이 학교를 설립하는데만 천백만 달러가 넘는 설립금을 내놓았으며 운영비도 대고 있다. 세계에서 농구를 제일 잘하는 이사장님일듯

투자회사인 애드미럴 캐피털 그룹의 공동창업자이기도 한데 이 회사의 운용자금은 1억 달러가 넘을 정도로 성장했다. 데이비드 로빈슨은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중 상당부분을 자선사업과 카버 학원의 운용자금으로 쓴다고 한다.

투자회사 이름을 저렇게 지은 것에도 알 수 있듯, 미 해군과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해군사관학교의 간사로 있으며, 해군 관련 행사나 강연자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3. 플레이 스타일

농구를 늦게 시작한 데다 선수로서 한창 성장해야할 시기에 2년간의 군 복무를 거친 이유 때문인지 4대 센터라는 명성에 비해 기술적으로 부족한 점들이 있었으나, 가드급이라고 평가받는 압도적인 스피드와 센터 포지션 역대 최고수준의 퍼스트 스텝을 이용한 돌파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동시대의 다른 센터들과 달리 페이스업을 주무기로 삼았으며[16], 라이벌인 하킴 올라주원이나 패트릭 유잉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중거리 점퍼도 겸비한 선수였다.

포스트업 능력은 4대 센터 내에서는 말석으로 평가받는데, 물론 그 역시 수준높은 포스트업을 구사할 순 있었지만 스타일 자체가 골밑에서 부대끼며 득점하길 선호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보단 상술한 페이스업, 혹은 적극적인 속공 참여에서 더욱 강점을 보였으며, 당시 샌안토니오가 속공찬스를 잡으면 에이버리 존슨과 콤비 플레이를 펼치며 앨리웁을 꽂는 게 주로 로빈슨이었다. 던컨이 입단한 이후로 괴물 같은 하이로우 게임의 원동력이 된 패싱능력과 코트 리딩 능력은 덤이다.

4대 센터중 유일하게 왼손잡이라는 이점도 있었으며[17], 스피드는 그 빠르다는 하킴 올라주원보다도 한 술 더 뜨는 수준이었다. 하킴이 별명으로 스몰 포워드라고 불리지만 이는 화려한 기술이나 움직임, 다양한 공격옵션에 빗댄 표현일 뿐 플레이 스타일 자체는 로우포스트 위주의 정통 센터였다면, 로빈슨은 정말 7풋 스윙맨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야말로 최속의 센터.[18]

수비는 가히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높은 타점에서 나오는 블록 슛은 일품이며, 손이 굉장히 빨라서 스틸능력도 뛰어나다. 체중이 114Kg라 키에 비해 가벼워 보이지만 엄청난 근육질 몸이라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고, 버티는 힘도 좋다. 다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하킴 올라주원보다는 조금 떨어지고, 힘에서는 샤킬 오닐에게 밀리는 감이 없지 않다.[19]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지역방어 도입 10년이 넘어가고 스몰라인업이 대세화된 2010년대 중반의 리그에 오면 더 만개하고 학살자로 군림할 수 있는 플레이 스타일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스몰라인업의 핵심인 헷지와 포워드진의 기동성을 그들보다 10cm는 더 큰 센터가 보여주며 림프로텍팅까지 완벽하므로 본인 팀은 굳이 스몰라인업을 돌릴 이유가 없고, 상대팀은 도저히 돌릴 수가 없다. 거기에 미드레인지를 이용한 픽앤팝 능력까지 갖추고 있으므로 공격에서의 가짓수를 늘려준다.

4. 평가

당당한 4대 센터의 일원으로, 전반적인 평가로는 패트릭 유잉보다는 확실히 앞서지만 샤킬 오닐 혹은 하킴 올라주원 등 팀을 1옵션으로 우승으로 이끈 센터보다는 밀리는 관계로 4대 센터 중 3순위로 주로 언급된다. 아무래도 이런 순위에서는 스탯도 스탯이지만 클러치 능력과 임팩트가 중요한데 로빈슨은 하킴 그리고 샤킬과 달리 동반자 내지 조력자로 우승했기에 저 둘보다는 순위가 낮을 수 밖에 없는 것.[20] 특히나 하킴과의 맞대결에서 다소 무기력하게 당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뼈아프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로빈슨이 주로 재평가되는 부분은 바로 2차 스탯으로, 특히 Defensive Box Plus-Minus (DBPM)은 역대 1위일 정도로 뛰어나다. 특히 하킴 올라주원과의 비교에서 차이가 커지는데, 잦은 포스트업으로 다소 비효율적인 공격을 가져가던 하킴과 달리 간결한 페이스업을 주무기로 하던 제독이 훨씬 뛰어난 스탯을 기록한 것이다. 플레이오프에서는 확실히 기록이 떨어지지만 정규시즌에서는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 등의 뒤를 잇는 GOAT 라인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선수다.

농구 자체를 떠나서 보자면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선수로 자신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발언을 한 샤킬 오닐에 대해서도 쿨하게 넘어가고[21] 던컨이 도착하자 그를 지지해주고 신인인 그에게 어떤 질투심이나 경쟁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우승에 기여했다는 점, 선수생활을 넘어 인생 전체에서 사생활이나 발언에서 전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의 뛰어난 인품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다.[22]

5. 수상 내역

수상 내역
파일:NBA-Champion.png NBA 챔피언 2회 (1999, 2003)
파일:NBA 로고.svg NBA 정규시즌 MVP (1995)
파일:NBA 로고.svg 올-NBA 퍼스트 팀 4회 (1991-1992, 1995-1996)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수비수상 (1992)
파일:NBA-Allstar2021.png NBA 올스타 10회 (1990-1996, 1998, 2000-2001)
파일:NBA 로고.svg 올-NBA 세컨드 팀 2회 (1994, 1998)
파일:NBA 로고.svg 올-NBA 서드 팀 4회 (1990, 1993, 2000-2001)
파일:NBA 로고.svg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4회 (1991-1992, 1995-1996)
파일:NBA 로고.svg NBA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 4회 (1990, 1993-1994, 1998)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신인상 (1990)
파일:NBA 로고.svg NBA 올-루키 퍼스트 팀 (1990)
파일:NBA 로고.svg NBA 스포츠맨십 어워드 (2001)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득점왕 (1994)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블록왕 (1992)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리바운드왕 (1991)
파일:HOF-Logo.png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9)
파일:오륜기(여백X).svg 1988 서울 올림픽 동메달
파일:오륜기(여백X).svg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파일:오륜기(여백X).svg 1996 애틀란타 올림픽 금메달

6. 이것저것

  • 슬하에는 아내와 함께 아들 셋을 두고 있다. 아들 이름은 데이비드 로빈슨 주니어, 코리 로빈슨, 저스틴 로빈슨이다. 이중 코리 로빈슨은 노터데임 대학교에서 칼리지 풋볼선수로 2013~2016년에 활동하다가 부상을 입은 뒤 미식축구를 단념하기로 했고 일반 학생으로 마지막 학년을 마쳤다. 저스틴 로빈슨은 듀크 대학교에서 2016~2020년에 농구선수로 활동한뒤 몬테네그로로 건너가서 선수로 활약하다 스퍼스 산하의 G리그 오스틴 스퍼스에 입단했다. 등번호는 아버지의 번호를 그대로 딴 50번이다.
  •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성격은 굉장히 선량하고 착하다고 한다. 이게 실생활에서만 이렇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지만 문제는 코트위에서도 평상시 성격과 별 다를게 없다는 것. 성격이 착하다보니 동료들이 실책을 해도 싫은 소리 한번 한적이 없다. 마이클 조던이 강력한 카리스마로 "너희들은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타입의 리더라면 로빈슨은 "내가 말없이 열심히 하면 동료들이 따라오겠지?" 타입의 리더라고 볼 수 있겠다.[23] 그래서 다들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였던 라이벌에게 없던 리더쉽 부재 논란이 있었다.[24] 대체적으로 샌안토니오는 이런 분위기를 이어받아 리더들이 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팀을 이끌고 있다. 로빈슨 던컨 마누 / 파커 카와이로 이어지는 계보이다만 카와이는 아예 목소리를 내지 않고 팀을 떠났다그 과정속에 많은 논란들이 있었지만카와이 이후로는 실력면으로는 드로잔이, 경력이나 정신적인 면으로는 패티 밀스가 팀을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2021-22 시즌에는 둘 다 팀을 떠났다..
  • 가장 큰게 새가슴 논란. 시즌 MVP를 수상했던 94-95시즌 서부 컨퍼런스 결승전때 로빈슨에게 MVP를 내준 것 때문에 칼을 갈고 나온 6번 시드[25] 휴스턴 로키츠 하킴 올라주원과의 매치업에서 로빈슨이 거의 완패하고[26] 팀이 업셋당해 탈락했기 때문. 물론 이걸 가지고 로빈슨이 새가슴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6번 시드 상대로 당한 업셋이기도 하고, 그때 같이 뛰던 데니스 로드맨이 "데이비드 로빈슨이 하킴과의 정면대결을 피한다. 그는 중요한 순간 도망가는 겁쟁이다."라는 식으로 인터뷰를 해서 논란이 되었고 로드맨이 시카고 불스로 쫓겨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러가지로 이 때가 로빈슨의 농구인생에서 손에 꼽을 흑역사였다. 일부 팬들은 로드맨이 이해간다고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이 당시의 로빈슨의 표정을 보면 정말 망연자실해있는 표정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정규시즌에 비하면 플레이오프에서는 좀 힘을 못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후에 팀 던컨이 입단하고 나서 2인자 자리로 내려오면서 자연스럽게 새가슴 논란도 사그러들었다.
  • 던컨과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 2000년도에 FA로 풀렸던 던컨이 거의 올랜도 매직행으로 마음을 굳혀가고 있을때, 직접 던컨을 찾아가서 진심어린 마음으로 설득. 여기에 감복한 던컨은 이후에도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선수로 남았다.
  • 95-96시즌을 앞두고 팀과 종신계약을 맺어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이 뉴스는 당시 국내스포츠 뉴스에서도 잠시나마 언급되었다.
  • 위에 언급한 대로 정말 복된 커리어를 보냈다. 데뷔부터 은퇴까지 쭉 한 팀에서만 보냈고,[29] 다른 4대 센터에 비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덜받는 연고[30]를 한 팀에 있었지만 그것을 가지고 불만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종신계약을 맺었지만 팀은 그에게 섭섭치 않게 대우를 해줬다. 또한 아주 이상적인 세대교체를 스스로 하면서 내려놓을 때를 아는 현명함도 보여주었다. 다른 팀들이 베테랑과 떠오르는 젊은 선수간의 파워 게임으로 소모전을 펼친 것과는 대조적. 그 결과는 의 우승반지. 특히 두 번째 우승은 은퇴 시즌이자 커리어 마지막 경기에 획득했던 것이라 끝마무리도 화려하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실제로 사생활, 코트 위에서 모습, 인품 등 깔게 하나도 없고 스캔들조차 없는지라 그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입학 부정 스캔들에 대해 "스포츠 사상 가장 추악한 일"이라고 한 걸 갖고 "아들이 듀크대 가서 까는거 아니냐"고 깔 정도이다. 그 외에도 올라주원에게 플레이오프에서 압도당한 것, 71점을 넣은 걸 갖고 까는데, 사실 전자는 아쉬울 수 있어도 스포츠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후자는 위에 나와있지만 애초에 까일게 아니다. 로빈슨이 태클 걸만한 흑역사는 없는데 그에 반해 안티는 어디서나 존재하기 마련이니 별 이상한 걸 갖고 까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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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14시즌, 샌안 홈에서 우승 트로피를 가져왔을 때 친히 납시어 팀 던컨과 포옹을 나누었다. 이 때 로빈슨의 동료였던 션 엘리엇은 경기 해설을 하고 있었고 샌안토니오의 전설 조지 거빈, 로빈슨과 함께 우승 당시 동료였던 에이브리 존슨까지 경기를 관전한 뒤 후배들의 우승을 축하해주었다. 아이같이 좋아하며 펄쩍 안겨드는 던컨이 백미.
  • 득점왕과 올해의 수비상을 모두 받아본 두 명 중 한 명이다.[31] 다만 한 시즌에 동시에 수상한 선수는 조던 뿐이다.
  • 2018년 NBA 신인으로 반드시 샌안에서 뛰어야만 할 것 같은 던컨 로빈슨이라는 이름의 선수가 등장해 로빈슨의 이름도 소소하게 언급이 되었다. 이 선수는 1994년생 백인 선수로 포지션은 SG/SF이며, 드래프트에서는 지명받지 못했지만 마이애미 히트와 투웨이 계약을 맺고 2019년 NBA에 콜업되어 뛰고 있다.


[1] 올림픽 당시 측정된 맨발 실측키. [2] 커리어 초기에는 107kg으로 신장대비 매우 마른 편이었고, 늘린 체중도 216cm의 큰 키와 우람한 팔근육에 비하면 적은 편이었다. 사실 상당한 근육질인데 비해 프레임 자체는 다소 얇은 편이었다. [3] 하킴 올라주원,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 그리고 샤킬 오닐 [4] 던컨과의 우승. [5] 2021년 현재에는 사관학교 가기에 1320점은 조금 부족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있을 수 있겠지만, 80년대에는 미국 학생들이 지금처럼 SAT에 목숨걸지 않았기에 1320점은 아이비리그에 들어가기 충분한 점수였다. 참조. [6] 해군에서 군생활을 해보거나 군함에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군함의 격벽구조상 키가 지나치게 크면 언제든 철벽에 머리를 부딪힐 위험이 있다. [7] 사실 로빈슨은 입학이 결정된 이후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에 비해 1인치가 더 자라 이미 198cm 신장제한을 넘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나이, 불과 1년전에 급성장을 겪은 걸 생각하면 더 이상의 큰 성장은 없을 것이라고 여겨져 입학이 허가된 상태였다. 그런데 마치 뒤통수치듯이 2학년이 끝날 무렵 여기서 10cm가 넘게 더 큰 것. [8] 해군참모총장보다 위에 있는 문민이다. [9] 1945년 1월 31일생. 이타카 대학교 시절 농구부와 미식축구부에서 뛰었으며 졸업 후 1973년 NCAA 디비전3 소속인 세인트 로렌스 대학교에서 감독으로 데뷔해 임기 7년 동안 디비전3 전국대회에 6번 진출시켜 수완을 보였고, 1980년 미국해군사관학교로 전근가서 임기 6년 간 전국대회 진출 2회, 특히 1985-86 시즌에는 8강까지 가는 기적을 선보이며 로빈슨 외에 후술할 덕 보이칙, 브라이언 그레고리 등을 육성했다. 1986년부터 피츠버그 대학교로 옮겨 임기 8년 동안 찰스 스미스, 제롬 레인, 에릭 모블리 등을 발굴/육성했으며, 지도자 생활 내내 '파워 오펜스'를 주로 구사했다. 지도자 일선에서 은퇴한 후에는 한동안 부동산 사업에 전념해왔다.( 개인 페이스북, 2005년 워싱턴 포스트 기사) [10] 브라운 대학교, 시라큐스 대학교,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를 차례로 꺾고 8강전에서 조니 도킨스, 토미 아마커(현 하버드 대학교 감독), 퀸 스나이더(현 애틀랜타 호크스 감독), 제이 빌라스(현 ESPN 해설위원) 등이 포진한 강호 듀크대랑 맞붙었으나, 결국 패했다. [11] 그러나 미국해군사관학교는 NCAA에서는 미국육군사관학교와의 정기전 정도 외엔 주목받을 일이 없다. 대학풋볼의 경우 로저 스타우벅이라는 명예의 전당 쿼터백이 있지만 농구는 그런 인물이 그동안 없었고, 풋볼보다 투자가 낮은 농구에 제대로 학생들이 올일이 없었던 그런 아마추어급 팀을 로빈슨 본인이 하드캐리했다. 그렇게 8강까지 올랐다는 점을 생각하면 로빈슨이 제대로 된 농구부에서 뛰었다면 NCAA를 얼마나 씹어먹었을지... 재학중 해사 생도나 해군 관계자 외에 해사의 농구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은 순전히 로빈슨 개인을 보기 위해 몰려다닌 스카우트들이었다고. [12] 오히려 당시엔 이런 경우는 기록의 희생양이라도 안되려고 더 열심히 수비를 했다. 배리 본즈의 홈런 신기록 희생양이 안되려고 다들 피하던 걸 생각해보자. 희생양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박찬호, 김병현 등 한국 투수들은 정면 승부를 택해 비록 대기록을 내줬지만 언론과 팬들의 호평을 받았다. 후술되는 KBL에서 추태는 1)3점 슛 기록(문경은)과 블록 슛 기록(김주성)을 서로 밀어주는 상부상조(?)가 있었고 2) 그걸 감안하고도 말도 안되는 추태였다. 상대팀 입장에선 적극적으로 기록을 막는게 정상이고, 실제로 클리퍼스 선수들은 그렇게 했다. [13] 던컨은 대학 내내 센터였으나 로빈슨의 존재로 파워포워드로 프로 데뷔하게 되고 커리어의 대부분과 전성기를 파워포워드로 보내게 된다. [14] 이 때 오닐의 주 매치업이 바로 로빈슨이었다. 던컨이 워낙에 뛰어난 기량을 보이던 시절이라 던컨이 오닐을 제압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실제로 오닐을 온몸으로 막아낸 건 제독이었다. 던컨의 주 매치업은 로버트 오리. 물론 농구 특성상 스위치되거나 로빈슨이 벤치에 있을때 던컨이 오닐을 막은 적도 있지만 주로 막은 건 로빈슨. [15] 이름은 조지 워싱턴 카버를 기리는 뜻으로 지었다. 이 사람은 1860년 흑인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나 갖은 고생 끝에 대학교에 들어가 농업을 공부한뒤, 연구원으로 있으며 가난한 농부들을 위해 목화, 땅콩, 감자의 개량에 힘써 나중에는 세계적인 농학자가 되었다. 데이비드 로빈슨은 그가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말한 적 있다. [16] 2000년대 이후로 빅맨들이 페이스업을 주무기로 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선구자였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그 변화가 로빈슨 때문은 아니었지만. [17] 농구에서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보다 유리한가는 몇십년째 의견이 분분한 부분이지만, 적어도 찬반을 떠나서 왼손잡이라는 점 자체만으론 주는 이득은 없다고 본다는게 공통적인 의견이기는 하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오른손잡이끼리의 일대일 상황으로 가정하면 상대 슈팅핸드가 대각선 방향에 있어서 핸드체킹이라도 하려면 직선으로 가면 그만인 반대손끼리 상황에 비해 도달해야하는 거리가 한참 더 멀어지기 때문. 거기에 지지대 역할을 하기 위해 나와있는 반대팔을 건드리지 않기 위한 작업까지 감안하면 난이도는 더욱 올라간다. 이득이라면 동일한 수준의 상대를 구해서 연습하기가 어려워서 주는 생소함 정도. 왼손잡이 중에 역대급에 꼽히는 선수인 제임스 하든의 등장 이후에 왼손잡이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타오른 적이 있었지만 그냥 프라임 타임 기간동안 하든이 특출나게 기량이 뛰어났던것 뿐이라는 것으로 거의 결론지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드리블이나 패스, 점퍼는 고사하고 골밑에서 양손 마무리가 자유롭게 안되는 선수는 받아먹기 밖에 못하는 올드스쿨형 센터들도 수비나 리바운드 등으로 만회할수 없으면 주전 경쟁은 커녕 벤치 경쟁도 걱정해야하는 스포츠가 농구다. 로빈슨 역시 차라리 패널티를 안고 뛰었다면 모를까 왼손잡이라 이점을 얻었다기엔 다소간 무리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18] 사실 4대 센터는 모두 덩치에 비해 매우 뛰어난 기동력을 갖고 있었다. 로빈슨, 하킴은 말할 것도 없고 유잉 역시 전성기 때는 7푸터 평균을 훌쩍 뛰어넘은 스피드를 갖고 있었다. (팻 라일리 부임 이전 닉스는 달리는 농구를 했고, 유잉은 속공에서 트레일러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이들 중 유일하게 평범한 센터의 스피드를 가진 선수는 샤킬 오닐이었는데, 오닐도 300파운드를 훌쩍 넘는 덩치에 비하면 매우 빠른 편이었다. 사실 오닐은 워낙 크고 강해서 그 정도의 스피드로도 속공에서 매우 위협적이었다. 승용차가 100km로 달리는 것과 트럭이 100km로 달리는 건 충돌시 임팩트가 다른 것과 같은 이치. 그리고 대부분 덩치가 육중한 오닐에 익숙하지만 올랜도 시절의 오닐은 레이커스의 오닐과는 달리 육중하지는 않고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중 가장 운동능력이 뛰어난 로빈슨의 경우 속공할때 마이클 조던을 제치고 덩크를 꽂아넣은 적도 있다. [19] 로빈슨은 오닐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하고는 사실상 대등하게 몸싸움을 할 수 있었지만 굳이 파워로 치면 네명 중 가장 약했다. 독보적인 오닐을 제외한 파워는 (근소한 차이로) 유잉, 올라주원, 로빈슨 순이었고, 스피드는 로빈슨이 단연 앞섰으며, 기술적으론 올라주원이 독보적이었다. 유잉은 근소하게 앞서는 자유투 성공률 정도를 제외하곤 어느 하나 독보적이진 않았지만 밸런스가 좋아 가장 정통센터에 가깝게 플레이했으며, 이 넷의 전성기가 겹치는 편이었던(굳이 따지면 유잉은 전성기가 지났고 오닐은 오지 않았지만) 93-94시즌, 94-95시즌은 역사상 유례없는 센터들의 전성기였다. [20] 오닐은 코비가 있긴 했지만 쓰리핏 동안 모두 파엠을 가져갔고, 하킴 역시 백투백 우승동안 파엠을 가져갔다. 그에 비해 로빈슨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파엠은 모두 던컨이 가져갔다. [21] 물론 오닐은 예능을 위해 과장했다고도 하고 실제로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더 그랬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가장 위대한 선수 75명 세레모니에서도 로빈슨에 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은퇴하기 전까지는 로빈슨에 대해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유지했고, 심지어 "로빈슨이 내가 어렸을 때 나를 무시했다"는 거짓말을 자서전에도 쓰고 여러번 발언한 것까지 웃어넘어간 것은 엄청난 대인배적 행보다. [22] 로드맨이 그에 대해 비평하긴 했지만 이건 그와 로드맨이 상성이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 그의 인격이 나빠서가 아니다. 실제로 로드맨은 로빈슨이 교회 같이 가자고 하는 등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간섭한 것 때문에 그와 같이 지내기 불편했다고 했다. [23] 유잉도 비슷한 타입의 리더라고 볼수 있다. 참고로 유잉 역시 리더쉽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사실 이런 스타일의 조용한 리더는 티가 안나기 때문에 팀 던컨처럼 실적이 확실하지 않은 이상 호사가들의 먹이감이 되는 경우가 잦다. 다만 유잉은 조용한 편이긴 했지만 플레이 스타일도 그렇고 성격도 순동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 오닐은 자신이 성장하던 시절 유잉을 보며 "사나움"을 배웠다고 한 적이 있다) 플옵에서 존 스탁스 레지 밀러의 도발에 넘어가 그에게 박치기를 하고 퇴장 당하는 뻘짓을 하자 마구 화를 내며 코트 위에서 대놓고 혼을 낼 정도. 그러나 로빈슨은 너무 착하고 순했기 때문에 더욱 논란이 되었다. [24] 가장 문제가 된 게 데니스 로드맨과의 관계였다. 로드맨이 은퇴후 한 인터뷰에 따르면 로빈슨은 종종 로드맨에게 "하나님에 대해 얘기하자"고 접근했으며 그의 지나친 기행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참고로 스퍼스 관계자들 역시 로드맨이 오토바이 사고로 어깨를 다쳐서 나타나는 등 통제가 어려운 모습을 보이자 그의 뛰어난 기량에도 재계약을 주저했다. 이런 답답한(?) 모습에 후술할 플레이오프에서의 약한 모습까지 더해 급기야 로드맨이 공개적으로 로빈슨을 까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데니스 로드맨 항목 참조. [25] 16강 플레이오프 시스템에서 가장 낮은 시드의 NBA 파이널 우승 사례이다. [26] 올라주원은 그 시즌 MVP를 자신이 아닌 로빈슨이 탔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나 있었고, 이 시리즈에서 자기가 로빈슨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작정하고 온갖 화려한 기술을 총동원해 역대급 빅맨 수비수인 로빈슨을 압도했다. 올라주원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 이 시리즈에서 하킴이 구사한 기상천외한 무브들이 많이 나온다. 로빈슨은 (적어도 정규시즌에서는) 절대 하킴에게 약한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를 비롯해 임팩트 있게 당한 몇몇 경기 때문에 하킴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하킴 본인 제외 최다 출연자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27] NBA 사이트들에서 가끔 나오는 " 아비다스 사보니스가 로빈슨을 발랐다"는 떡밥이 있는데 실제 경기에선 비등비등한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로빈슨과 사보니스의 대결로만 본다면, 득점의 양에서도 그렇고 로빈슨의 상대적인 우세로 보인다. 절대 누가 누굴 바르거나 압도한 그런 경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두 선수보다 가드진과 슈터들의 활약의 차이에 의해 승부가 갈렸다. [28] 이때 로빈슨은 아직 NBA 선수가 아니었는데 이 올림픽에서 소련에게 동메달에 그친 후에 NBA 측은 "왜 다른 나라 선수들은 프로 선수들을 내보내는데 우리는 대학생들을 내보내서, 우리 대학생들이 상대국가 프로선수들에게 괴롭힘당하고 오게 하느냐!" 라고 불평이 일기 시작했다. 결국 4년후에 로빈슨도 포함된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드림팀이 결성되었다. [29] 같은 4대 센터들 중 패트릭 유잉은 말년에 소속팀에게 팽당하고, 하킴 올라주원은 계약 파투로 이적, 샤킬 오닐은 레전드급임에도 소속팀 개수로는 저니맨급 커리어를 보유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30] 사실 샌안토니오는 도시 규모가 절대 소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한 주(state)인 텍사스의 대도시이고, 미국 내에서도 주요 도시로 꼽힌다. 하지만 텍사스에는 다른 대도시 지역들도 많기에 샌안토니오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다. [31] 다른 한 명은 마이클 조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