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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4세기는 서력으로 1301년부터 1400년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 동서양에서 모두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이전까지 유럽은 유럽 따로, 중동은 중동 따로, 동아시아는 동아시아 따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시기부터 세계의 역사가 더 유기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2. 역사
2.1. 동아시아
중국에서는 원나라가 막장 테크를 탄 끝에 홍건적의 반란에 부딪쳐 멸망했다. 새로 세워진 명나라는 공신들의 잇딴 숙청 이후 끝내는 황족 간의 골육상쟁을 일으켰다.고려도 개판 5분전이었다. 원나라에 대한 종속의 상징인 '충'자 돌림 왕들이 잇따라 즉위하는 가운데 막장인 충혜왕이 즉위하고 이에 원나라가 내정간섭을 자행, 권문세족이 발호하는 등 혼란이 극심했다. 결국 공민왕이 즉위해 대대적인 개혁을 도모했으나 실패하면서 고려 왕조는 사실상의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되고 끝내 멸망하여 조선이 건국 된다.
일본도 유력자들끼리의 충돌 끝에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고 무로마치 막부가 세워졌으나 고다이고 덴노가 남조를 세워 막부 치하의 북조에 대항, 일본 사상 최초의 남북 왕조 대립 상태가 60년이나 계속 되어 전란이 이어졌다.
2.2. 인도
인도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여러 왕국들이 난립하여 전쟁이 계속되었다.2.3. 서양
서양에서는 중세의 전성기가 끝나고 중세의 위기라고 불리는 시기를 맞이했다. 그와 동시에 신문물이 유입되고 사상의 변화가 나타나면서 근세의 초석이 놓이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아비뇽 유수, 백년전쟁, 중세 흑사병, 르네상스이다.중세의 전성기인 11~13세기의 기온은 높은 편이었고 이에 따라 농업 생산력이 높았으나, 이미 13세기부터 기온이 점차 떨어지더니 14세기에 기온이 급락하면서 농업 생산력이 떨어지고, 농지는 황폐화되었다. 생산력은 약한데 인구는 계속 증가하다 보니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이어졌고 식량 문제가 발생했다. 더군다나 14세기에는 신무기가 유입되면서 백년전쟁과 같은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으로 농지가 더욱 황폐화되면서 식량 문제는 더욱 심해졌고, 유럽인들은 질병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백년 전쟁은 프랑스의 왕위 계승 문제와 잉글랜드의 플랑드르 양모 수출 문제가 함께 작용했다. 양모 산업이 강세였던 잉글랜드에게 있어 프랑스의 영토였던 플랑드르를 확보하는 것은 필수였다. 당시 잉글랜드는 1066년 이래로 노르망디 공작이 국왕을 겸하고 있었고, 잉글랜드 국왕은 프랑스 국왕과 대등한 군주이자 동시에 프랑스 국왕에 충성하는 영주였던 것이다. 프랑스의 카페 왕조의 샤를 4세가 사망하자 카페 가문의 방계인 필리프 6세에게 왕위가 넘어갔고 이 시기부터를 발루아 왕조라고 칭한다. 문제는 발루아 왕조의 필리프 6세보다 결혼동맹으로 태어났던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가 계보상 샤를 4세와 더 가가운 친척이었다는 것이다. 플랑드르를 확보할 겸 프랑스 왕위를 넘볼 명분까지 생긴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와 전쟁을 개시했다.
교황권도 14세기부터는 추락을 거듭했다. 1309년 (샤를 4세의 아버지였던) 필리프 4세가 교황청 소재지를 강제로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이전하는 아비뇽 유수가 발생해 1378년까지 이어졌으며, 이후에는 아비뇽과 로마 모두 교황을 선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두 교황의 대립을 막기 위해 새로운 교황을 한 명 더 선출했으나, 두 교황이 인정하지 않으면서 결국 교황이 3명이 되어버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종교적으로는 아비뇽 유수가, 정치적으로는 백년전쟁이, 경제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한 식량 문제가 발생하는 동안, 고온 다습한 지역으로부터 페스트가 유입되었다. 1340년대 중후반 동방에서 식량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쥐가 식량을 따라 선박을 타고 이동했으며, 쥐 안에 있던 페스트균 또한 무역이 활발한 도시국가로 유입되면서 중세 흑사병의 범유행으로 번졌다. 당시 유럽의 무역이 활발했기에 흑사병 또한 빠른 속도로 퍼졌고, 7년 동안 유럽의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흑사병의 원인을 유대인이나 장애인 등으로 지목하여 그들을 잡아죽이는 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유대인들은 이제 부동산보다는 휴대할 수 있는 재산을 다뤄야 했고, 유대인들이 금융업에 종사하기 시작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반면 흑사병이 자신들 스스로의 신앙심이 부족한 탓으로 여겼던 사람들은 채찍 고행단과 같은 조직을 이뤄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행위도 벌였다. 물론 과학적이지 않은 접근이었고 오히려 전염병이 빠르게 퍼지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흑사병 하면 떠오르는, 온 몸을 검은색 옷으로 뒤덮은 '역병 의사'는 오히려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질병의 원인을 분석하고자 했다.
흑사병이 끝난 후 유럽의 경제 활동은 크게 마비되었다. 그러나 흑사병으로 인해 인구가 조절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다시 맞추어졌고, 이전 추세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인력이 귀해지자 농업 조건도 개선되었고 화폐의 사용량이 늘어났다. 도시의 중요성이 다시 높아졌으며 도시국가들은 원격지 상업이라는 방식을 도입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358년 조직된 한자동맹이다. 한자동맹은 런던부터 노브고로드까지 북해와 발트해 일대에서 활동했다.
이 시기 몽골 제국의 정복전쟁의 여파로 신기술이 나타났다. 14세기 초에는 대포나 총과 같은 화약 무기가 유입되었고, 나침반이 나타나 항해 기술이 발전했다. 또한 제지술의 발전으로 종이 생산을 더욱 저렴하게 할 수 있게 되면서, 과거에는 부유층만 가질 수 있었던 책이 점차 민간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사상적 변화도 일어났다. 13세기까지는 스콜라 철학으로 대표되는, 이성과 신앙을 조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만연했으나, 14세기의 중세의 위기를 맞이하면서 신앙의 영역과 이성의 영역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신앙은 점차 이해보다는 믿음을 강조하게 되었고, 이성도 더 이상 신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닌 인간의 목적을 위한 것으로 변화했다. 종이의 확산과 사상의 변화가 맞물려, 라틴어보다는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와 같은 민간의 언어로 책이 쓰여지게 되었다. 독자층이 상류층에서 민간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예술에서는 유화와 캔버스를 활용한 그림이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고대 로마의 유산을 물려받고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했던 이탈리아에서 처음 나타났다. 이탈리아의 부유한 후원자들은 이렇게 신앙보다는 인간에 더욱 집중하는 인문주의의 기류를 파악하고 예술가들을 적극 후원하게 되었다. 이렇게 14세기 중후반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라는 경향이 나타났다.
19세기적 통념과 달리 현재 르네상스는 신앙 세계를 완전히 배반하고 이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여전히 신앙을 소재로 활용하지만 신보다는 인간을 더욱 중심으로 올려놓는 경향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르네상스 이전에도 고전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나, 르네상스 이후부터는 그 지식의 양이 늘어났고 목적도 신앙의 정당화가 아닌 인간적 목적, 국가적 목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발칸 반도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급속히 세력을 확장해 발칸 반도의 여러 나라들의 국방에 비상이 걸렸다. 이제 동로마 제국은 오스만 제국과 세르비아 제국의 공격으로 도시 국가 수준으로 축소되었으며, 기세등등하던 세르비아 제국도 스테판 두샨의 사망 이후 급격히 쇠락하여 발칸 반도에서 오스만 제국을 막을 세력은 없게 되었다. 그나마 신성 로마 제국은 룩셈부르크 왕조의 치하에서 어느 정도 세력을 유지했다.
동유럽에서는 헝가리가 명군 로요슈 1세의 치하에서 최전성기를 이룩했고,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세력을 확장해 동유럽의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한편 킵차크 칸국은 여전히 그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2.4. 중동
이슬람 세계에서는 맘루크 왕조가 번영을 누렸으며, 일 칸국이 급격히 몰락하고 잘게 분열되었으나 곧 티무르 제국에 의해 통합되었다.3. 14세기의 주요 국가
3.1. 유럽
3.2. 아시아
3.3. 아프리카
4. 주요 사건
- 1302년 - 프랑스, 삼부회 소집.
- 1307년 - 원나라, 3대 황제 무종 즉위(~1311). 잉글랜드, 에드워드 2세 즉위(~1327).
- 1308년 - 고려, 26대 충선왕 즉위(~1313). 룩셈부르크 왕조의 하인리히 7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선출됨(~1313).
- 1309년 - 교황의 아비뇽 유수.(~1377)
- 1311년 - 원나라, 4대 황제 인종 즉위(~1320).
- 1313년 - 고려, 충선왕이 양위하고 원나라로 떠남. 27대 국왕 충숙왕 즉위(1차 1313~1330, 2차 1332~1339).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4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선출(~1346).
- 1314년 - 충선왕, 베이징시에 만권당 설치. 중국의 고급지식인들과 교류 시작.
- 1316년 - 아비뇽 교황청에서 선출한 첫 교황인 요한 22세 즉위(~1334).
- 1320년 - 원나라, 5대 황제 영종 즉위(~1323).
- 1321년 -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 《신곡》 발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단초. 로마제국, 제1차 팔레올로고스 내전 발발.
- 1323년 - 원나라, 영종이 폐위되고 6대 황제 태정제 즉위(~1328).
- 1326년 - 오스만 술탄국의 2대 술탄 오르한 즉위(~1362). 오르한은 동로마 제국 영토인 부르사를 정복하여 수도로 삼음.
- 1327년 - 잉글랜드, 에드워드 3세 즉위(~1377).
- 1328년 - 원나라, 7대 황제 천순제가 요절하고 8대 황제 명종이 즉위. 프랑스 카페 왕조(987~ )가 단절되고 필리프 6세(~1350)가 즉위하여 발루아 왕조 수립(~1589).
- 1329년 - 원나라, 9대 황제 문종 즉위(~1332).
- 1330년 - 고려, 충숙왕이 양위하여 28대 국왕 충혜왕 즉위(1차 1330~1332, 2차 1339~1344).
- 1332년 - 고려, 충혜왕이 폐위되고 충숙왕 복위(~1344). 원나라, 10대 황제 영종을 거쳐 11대 황제 혜종 즉위(~1370).
- 1336년 - 일본, 무로마치 막부 성립(~1573).
- 1337년 - 백년전쟁 발발(~1453).
- 1339년 - 고려, 충숙왕이 사망하여 충혜왕이 복위(~1344).
- 1344년 - 고려, 충혜왕이 폐위되고 29대 충목왕 즉위(~1348).
- 1346년 - 룩셈부르크 왕가의 카를 4세가 황제로 선출(~1378).
- 1347년 - 유럽에서 흑사병의 대유행 시작. 14세기는 물론 이후에도 수백 년간 유럽인을 괴롭혔다.
- 1348년 - 고려, 30대 충정왕 즉위(~1351).
- 1350년 - 프랑스, 장 2세 선량왕 즉위(~1364).
- 1351년 - 고려, 충정왕이 폐위되고 31대 공민왕 즉위(~1374). 원나라에서 홍건적의 반란.
- 1354년 - 오스만이 유럽의 갈리폴리에 무혈입성. 이후 갈리폴리는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오스만 해군의 중심지이자 오스만 제국이 유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발판이 됨.
- 1356년 - 고려, 원나라가 강탈한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탈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4세, 황금 문서 발표.
- 1358년 - 프랑스, 파리와 루앙, 랭스 등에서 자크리의 농민반란 발생.
- 1359년 - 고려, 홍건적의 잇따른 침입을 받음(~1361).
- 1361년 - 고려가 홍건적을 개성에서 몰아냄.
- 1362년 - 오스만 술탄국 3대 술탄 무라트 1세 즉위(~1389). 이후 그는 에디르네(아드리아노플)을 정복하여, 부르사와 함께 공동 수도로 삼음(정확히 몇 년의 일인지는 불명).
- 1364년 - 프랑스, 샤를 5세 현명왕 즉위(~1380).
- 1368년 - 중국, 원나라 멸망. 명나라(明) 건국(~1644). 태조 홍무제 즉위(~1398).
- 1370년 - 티무르 제국 성립(~1526). 북원 왕조의 소종 즉위(~1378).
- 1373년 - 오스만에 패배한 동로마 제국과 발칸 국가들이 오스만에 종속당함.
- 1374년 - 고려, 공민왕이 피살되고 우왕이 32대 국왕으로 즉위(~1388).
- 1376년 - 고려 장군 최영이 홍산에서 왜구를 대파.
- 1377년 - 교황 그레고리오 11세(1370~1378)의 결단으로 교황청이 아비뇽에서 로마로 복귀. 아비뇽 유수가 끝남. 잉글랜드, 리처드 2세 즉위(~1399).
- 1378년 - 교회 대분열 시대(~1417). 로마에서 뽑은 교황( 우르바노 6세)과 아비뇽에서 뽑은 교황( 클레멘스 7세)이 대립했다. 마지막에는 제3의 교황까지 나타나 그야말로 막장이 된다. 룩셈부르크 왕가의 벤첼이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선출(~1400).
- 1380년 - 고려, 최무선이 처음으로 화약을 이용해 진포에서 왜구 대파. 이성계도 황산에서 왜구를 대파하여 명망을 얻음. 프랑스, 샤를 6세 친애왕 즉위(~1422).
- 1381년 - 잉글랜드, 와트 타일러의 반란.
- 1388년 - 장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이전까지의 최고 실력자 최영을 제거하고 고려의 최고권력자가 됨. 우왕이 폐위되고 창왕이 33대 왕으로 즉위.
- 1389년 - 고려, 창왕이 폐위되고 34대 국왕 공양왕 즉위. 박위의 쓰시마 정벌. 오스만 제국, 4대 술탄 바예지드 1세 즉위(~1402), 발칸 십자군을 괴멸시키고 발칸 반도의 패권을 장악.
- 1390년 - 고려 신정권, 과전법을 공포해 신진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을 확립하고 권문세족에 일격을 날림.
- 1392년 - 이성계가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왕으로 즉위. 명목상 '고려'라는 국명은 남았지만 이 시점에서 고려 왕조는 사실상 멸망. 일본에서 남북조시대가 끝남.
- 1393년 - 태조가 국호를 고려에서 조선으로 변경.
- 1394년 - 조선이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
- 1395년 - 경복궁 창건.
- 1396년 - 2차 불가리아 제국, 오스만 술탄국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됨. 이로써 불가리아는 1878년까지 500년 동안 오스만의 지배를 받게 됨.
- 1397년 - 무로마치 막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 로쿠온지킨카쿠를 건립.
- 1398년 - 조선, 1차 왕자의 난. 태조가 퇴위하여 2대 국왕 정종 즉위(~1400). 명, 2대 황제 건문제 즉위(~1402).
- 1399년 - 잉글랜드, 랭커스터 가문[1]의 헨리 4세 즉위(~1413).
- 1400년 - 조선, 2차 왕자의 난. 정종이 양위하여 3대 국왕 태종 즉위(~1418). 룩셈부르크 왕가의 루프레히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선출(~1410). 파라메스와라가 믈라카 왕국 건국.
5. 연도 목록
- 1301년 - 1302년 - 1303년 - 1304년 - 1305년 - 1306년 - 1307년 - 1308년 - 1309년 - 1310년
- 1311년 - 1312년 - 1313년 - 1314년 - 1315년 - 1316년 - 1317년 - 1318년 - 1319년 - 1320년
- 1321년 - 1322년 - 1323년 - 1324년 - 1325년 - 1326년 - 1327년 - 1328년 - 1329년 - 1330년
- 1331년 - 1332년 - 1333년 - 1334년 - 1335년 - 1336년 - 1337년 - 1338년 - 1339년 - 1340년
- 1341년 - 1342년 - 1343년 - 1344년 - 1345년 - 1346년 - 1347년 - 1348년 - 1349년 - 1350년
- 1351년 - 1352년 - 1353년 - 1354년 - 1355년 - 1356년 - 1357년 - 1358년 - 1359년 - 1360년
- 1361년 - 1362년 - 1363년 - 1364년 - 1365년 - 1366년 - 1367년 - 1368년 - 1369년 - 1370년
- 1371년 - 1372년 - 1373년 - 1374년 - 1375년 - 1376년 - 1377년 - 1378년 - 1379년 - 1380년
- 1381년 - 1382년 - 1383년 - 1384년 - 1385년 - 1386년 - 1387년 - 1388년 - 1389년 - 1390년
- 1391년 - 1392년 - 1393년 - 1394년 - 1395년 - 1396년 - 1397년 - 1398년 - 1399년 - 1400년
[1]
에드워드 3세의 아들 존의 가문. 흑태자 에드워드의 아들이 리처드 2세이므로, 헨리 4세는 리처드 2세의 사촌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