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1:39:21

화승 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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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승 오즈
창단 2000년
해체 2011년 8월 31일
팀명 변천 IBSNET(2000)
Ideal Space(2001.01~2003.07)
KTEC Plus(2003.07~2004.01)
Plus(2004.01~2006.03)
르까프 OZ(2006.03~2009.01)
화승 OZ(2009.01~2011.08)
역대 감독 김양중(2000~2002)
김양중, 송호창, 조정웅(2002~2003)
조정웅(2002~2010)
한상용(2010~2011)

1. 개요2. 수상 경력3. 창립과 역사
3.1. 아이디얼 스페이스3.2. KTEC Plus ~ Plus3.3. 르까프 오즈 ~ 화승 오즈
4. 해체5. 평가
5.1. 팀 내부의 분위기와 소문5.2. 과한 이제동 의존도
6. 역대 선수 목록7. 역대 유니폼 변천사8. 역대 팀 성적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이다.[1]

2000년에 창단되어[2] 2011년 8월을 끝으로 해체하였으며,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통합 챔피언전에서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다.

일반적으로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서는 최장 기간 재임한 조정웅 감독과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이제동, 오영종이 소속됐던 프로게임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3]

2.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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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Round
SKY 프로리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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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
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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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 스타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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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텔레콤 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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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T1
★★★★
SK텔레콤 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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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통합 챔피언전
MBC GAME HERO
MBC GAME HERO
★★
삼성전자 칸
르까프 오즈
르까프 오즈
★★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
삼성전자 칸
★★
SK텔레콤 T1
★★★★★★
kt 롤스터
kt 롤스터
★★
SK텔레콤 T1
★★★★★★★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시즌 2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12-13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5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6
CJ 엔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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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롤스터
★★★
SK텔레콤 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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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에어 그린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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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엔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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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승 오즈
★★
SK텔레콤 T1
★★★
SK텔레콤 T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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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시즌 2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12-13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5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6
삼성전자 칸
★★★
웅진 스타즈
★★
SK텔레콤 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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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에어 그린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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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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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2007 대한민국 e-스포츠 대상
올해의 프로게임단
2006 대한민국 e-스포츠 대상
MBC GAME HERO
르까프 오즈 2009 대한민국 e-스포츠 대상
SK텔레콤 T1
준우승 기록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8-09 우승팀
대회 출범 화승 오즈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
MBC GAME HERO
경남-STX컵 마스터즈 2011 우승팀
경남-STX컵 마스터즈 2010
STX SouL
화승 오즈 대회 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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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립과 역사

3.1. 아이디얼 스페이스

전신 팀의 창단은 2000년이었고, 당시 감독은 김양중이었다. 선수들로는 임요환, 박효민(현 이효민) 등이 있었다. 그 때의 팀명은 IBSNET. 이듬해에 팀명을 IS로 바꿨고, 그 무렵 이재항 선수도 등장하였다.

이후 2002년 1월 송호창의 Game-i와 조정웅의 드림테크(DT테크)라는 이 팀이 하나의 팀으로 합병하면서 규모를 확장한다. 한 팀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는 여러 군소팀의 느슨한 집합체였다고 보면 된다. 당시 프로게이머들은 개인별 매니저를 두고 있었으며, 감독도 3명이었다.[4] 그 감독들이 소개하는 송호창, 김양중, 조정웅이다.

이윤열, 임요환, 홍진호가 한 팀에 속해있었으나[5], 2002년 말 쯤 WCG 대비 연습 문제로 불화가 생긴 임요환은 주훈과 함께 팀을 탈퇴하고, 이에 송호창도 빠지고, 이윤열과 홍진호를 KTF 매직엔스로 임대보내면서 망해가는 팀이 되었다.[6]

이후 같은 해 11월 임요환 주훈 동양제과[7] 스폰서쉽을 체결하면서 만든 동양 오리온(現 SKT T1)과 이듬해인 2003년 6월 매니저 송호창이 이재항, 김종성[8]과 함께 분파한 SG 패밀리[9](舊 위메이드 폭스)로 분리되었다.[10]

김양중 감독은 이후 슈퍼파이트의 해설을 거쳐 송호창의 뒤를 이어 위메이드 폭스 2대 감독으로 부임. 결국, 드림테크의 조정웅 감독이 남은 인원으로 이름만 남아있던 IS팀 운영을 했다.

여담으로 이 시기 임요환, 이윤열, 홍진호의 대회 실적이 화려하지만[11], 실질적으로는 이 팀의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중 임요환의 수상 기록은 온전히 T1으로 넘어갔으나 이윤열과 홍진호는 팀을 여러 차례 옮겼기 때문에 그들의 아이디얼 스페이스 시절 수상 기록은 당사자들만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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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KTEC Plus ~ Plus

조정웅은 IS라는 이름을 가지고 끝까지 버티다가 2003년 7월 15일 마우스 제조업체 케이텍[12]의 후원을 받아 KTEC Plus로 팀명을 바꾸게 된다.

하지만 케이텍이 스폰서에서 물러난 뒤 플러스는 스폰을 얻지 못한 대표적인 팀 중 하나였고, 팀 자체도 최약체 팀 중 하나여서[13] 몹시 힘들게[14] 운영을 해왔었다고 한다. 게다가 SKY 프로리그 2004 1Round에서는 꼴찌를 기록하는 바람에 2Round에 불참했고, 2Round 불참이 확정되면서 거의 혼자서 팀을 이끌다시피 했던 성학승 SKT T1으로 이적했다. 그 후 3Round 불참팀을 가리는 결정전에서 조차 헥사트론 드림팀(현 eSTRO)에게 패배하여 3Round에서조차 불참이 확정된데다가, 2005년 3월에는 설상가상으로 팀 내 에이스였던 박지호를 이고시스 POS(현 MBC GAME HERO), 박성준 삼성전자 칸으로 내주는 등 여러모로 악재가 겹쳤다.

그나마 MBC GAME 팀리그에서는 라이프존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는 등 어느 정도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15], 사실 팀리그에서도 LG IBM 대회와 Tuscon 대회에서는 패자 4강에서 광탈당하고, MBC MOVIES 팀리그에서도 8강 풀리그 팀들 중 최하위 순위에 해당하는 7위를 차지하였다.[16] 그리고 통합이 된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에서는 8위, 후기리그에서는 7위를 기록하였다.

3.3. 르까프 오즈 ~ 화승 오즈

Plus 시절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오영종 So1 스타리그 2005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2006년, 스포츠 용품 업체 르까프가 Plus를 인수, 르까프 오즈로서 창단에도 성공했다.[17] Plus 시절 사용하던 봉천동에서 2006년 4월 오픈하우스 행사를 갖고 방배동 서래마을로 숙소를 이전하였다.[18][19]

당시 조정웅 감독은 눈여겨 보던 이제동을 발굴하여 집중 관리에 들어갔고[20], 그 결과 오영종, 이제동 원투펀치를 앞세워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3위[21]를 거두며 팀을 급성장시켰다. 또 구성훈, 박지수 테란 선수들도 점차 발굴하기 시작하여 급기야 2007년에는 전기리그 준우승에 이어 후기리그창단 이래 첫 프로리그 우승까지 달성하며 르까프를 최강팀으로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였다. 이어 이제동의 EVER 스타리그 2007 우승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통합 챔피언전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2007년을 르까프 오즈의 해로 만들었다.[22] 곧이어 2008년 3월에는 이제동의 곰TV MSL 시즌4 우승까지 달성한다.

2008년 상반기 시즌이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는 초반에 잘 나가다가 시즌 후반에 계속된 연패로 인하여 당시 중위권에서 시작해서 무서운 상승세를 달리고 있던 온게임넷 스파키즈에게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마저 패하면서 결국 막판에 온게임넷 스파키즈에게 순위를 역전당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그나마 Arena MSL 2008 결승전에 팀원들끼리 결승전에 진출한 것은 위안거리.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에는 공군 ACE에 입대한 오영종의 공백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도리어 당시 스타판 원탑까지 찍은 에이스 이제동을 중심으로 박지수, 구성훈 등 강력한 선수층이 여전했고, 더불어서 백업 토스 손찬웅도 간간히 활약했으며, 그렇게 다시금 호성적을 내며 4라운드까지 통합 랭킹 1위를 달렸다. 또한 2009년부터는 르까프의 모기업 화승이 팀을 넘겨받아서 르까프 오즈에서 화승 오즈로 팀 이름을 개명했다.[23]

08-09 시즌 화승의 굳건한 1위 수성을 돌아보면 사실상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8-09에 기인한 바가 큰데, 이 위너스 리그에서의 이제동과 구성훈의 전적을 보면 대단히 화려하다. 2009년 3월 22일, 위너스 리그 플레이오프 KT와의 경기에서 이제동은 팀에 1승만 맡기는 것도 불안했는지 끝내 KT의 대장 이영호까지 제압하며 포스트시즌 최초 선봉 올킬을 달성, 화승 오즈를 결승전에 끌어올려 놓았다.

2009년 3월 28일,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8-09 결승전 CJ 엔투스와의 경기에서 또 다시 선봉으로 나온 이제동은 김정우, 변형태, 마모씨까지 차례로 압살하며 3:0 세트 스코어를 기록, 소속팀 화승 오즈의 위너스 리그 첫 우승에 단 1승만을 남겨 뒀었다. 하지만 4세트에서 조병세를 만나 5드론을 갈기며 뒤를 맡긴 채 내려온 이제동은 이후 팀원들 중 아무도 1승을 해 주지 못해서 귀신같이 3:4 역전패를 당하며 준우승을 하였다.

2009년 7월 7일, 청년가장 이제동이 dlwogh에게 패하면서 팀 역시 무너지고 광안리 직행의 길은 T1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 뒤 플레이오프 최종 에이스 결정전에서 이제동이 CJ 엔투스의 김정우를 잡아내면서 끝내 팀의 광안리행을 이끌었다.

그러나 결승전 1차전에서는 T1에게 4:0으로 셧아웃 패. 이로써 조정웅 감독은 광안리에서만 8전 전패를 수립했다. 2차전은 3:3 세트스코어로 에이스 결정전까지 가는 저력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이제동이 정명훈에게 패하면서 광삼패를 기록, T1에게 최강의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결국 화승 오즈는 08-09 시즌 위너스 리그 준우승, 프로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1년 동안 팀리그에서 모두 준우승을 하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다. 이 시즌 한정으로는 완벽한 콩라인이다.

여담으로, 2008 시즌 이후부터는 위메이드 폭스 하이트 스파키즈한테는 천적 수준으로 강했다. 위메이드의 경우 08-09 시즌에는 위메이드와 5번 만날 때마다 다 이겼고, 그 중 3번은 아예 셧아웃이었다. 특히 에이스 이제동이 위메이드 선수들 상대로 2009년 1월 3일부터 2011년 4월 30일까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무패를 기록하고, 브루드 워 단일팀 상대 역대 최다 연승 기록인 20연승을 하며 담당 일진 수준으로 막강했으니 말 다 한 셈.[24] 그리고 하이트 스파키즈는 저 때 당시 스코어 상으로는 위메이드보다는 나았으나 매번 패할 때마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제동 한 명을 막지 못해서 항상 패하고 말았다. 실제로 하이트 스파키즈는 팀이 CJ 엔투스로 흡수합병되어 해체되기 직전까지 2008 시즌 정규시즌 마지막 맞대결[25] 이후 화승 오즈를 단 한 번도 정규시즌이든 위너스 리그에서든 이기질 못했다.

08-09 시즌 후반부엔 구성훈마저 무너지며 이제동 스코어란 단어의 뜻을 바꾸며[26] 이제동은 진정한 청년가장이 되었다.[27] 그렇게 에이스 이제동만이 고군분투하던 09-10 시즌, 팀원들의 기복으로 팀 성적은 급락했고, 결국 8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후 2010년 9월 초, 조정웅 감독은 오랜 기간 쉴 새 없이 달려왔기에 이젠 쉬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자진 사퇴를 선언하였고, 화승은 10-11 시즌부터는 코치였던 한상용 감독 대행 체제로 들어가게 되었다.

10-11 시즌에는 11월 10일 기준으로 2승 5패로 공군과 함께 최하위로 쳐져 있었다. 특히 패배 경기들을 잘 보면 이제동만 한 경기를 잡고 나머지 선수들은 주로 패하는 그림이다. 그리고 1라운드가 종료된 시점에서는 2승 7패에 승점이 워낙 후달려서 승패가 같은 공군보다도 뒤에 있었다. 하지만 2라운드 들어 다른 멤버들이 조금씩 살아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어 2010년 12월 8일을 기준으로 7위를 기록하며 뒤에서 1등인 비슷한 원맨팀보다 훨씬 우월한 성적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하이트 엔투스와의 경기에서 패한 이후 STX SouL, 위메이드 폭스와의 경기에서도 연속으로 또 기어이 이제동 스코어 작렬. 이후 삼성전자 칸에게도 4:2로 패배.[28] 동병상련 신세인 kt 롤스터는 점차 중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최하위 후보였던 공군 ACE는 웅진 스타즈를 셧아웃시키고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201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단두대 매치에서는 KT를 4:2로 이기면서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29] 3라운드와 4라운드는 위너스 리그이니 KT처럼 이제동만 믿고 가야 할 듯. 그나마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10-11을 통해서는 포스트시즌에 가는데에는 성공하였다. 물론 플레이오프에서 T1에게 접전 끝에 패하면서 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기존 방식으로 돌아온 5라운드에서도 통 힘을 못 쓰고 있었고, 6라운드도 도찐개찐이었다가 결국 말미에는 STX·폭스와 6위 자리를 놓고 마지막 경쟁을 벌여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30] 6월 28일, STX에게 이제동 스코어로 패하는 바람에 자력 진출은 불가능해진 상황이었다.[31] 일단 7월 3일 삼성전은 닥치고 이겨야만 되고, 설혹 이기더라도 STX와 폭스의 경기 결과까지 다 기다려야 한다. 그날 만일 STX가 이기면 화승은 이겨도 무조건 탈락. 그나마도 폭스가 이기더라도 한 경기가 더 남은 폭스가 다음 경기에서 웅진에게 최대한 큰 득실차로 패하기를 바라야 했다. 그리고 7월 3일의 단두대 매치 결과는 화승 4:0 삼성전자, 그러나 STX 4:0 폭스. 그렇게 화승은 7위를 기록하며 폭스와 동시에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되고 만다.

하지만 이보다 더 안타깝고 중대한 상황을 맞이하고 마는데...

4. 해체

2010-11 시즌 종료가 한 달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2011년 8월 31일 화승 오즈 해체가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유는 기업 내 경영진과 경영 전략이 대대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이전에 터졌던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의 후폭풍에 따른 e스포츠의 이미지 실추 또한 영향을 미친 듯 하다. 그렇게 약 10년 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 화승 오즈는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32]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팀이 기존 10개팀에서 7개팀으로 축소되는 것이 완전히 확정됨에 따라 리그 파행이 불가피해지게 되었다. 일단 팀의 핵심 선수였던 이제동과 일부[33] KeSPA에서 꾸린 제8게임단[34]에 급하게 흡수되고 한상용 감독 또한 제8게임단으로 안착했으나, 많은 선수들의 은퇴 및 이적은 피할 수 없었다.[35][36]

5. 평가

5.1. 팀 내부의 분위기와 소문

삶이란 우리의 인생 앞에 어떤 일이 생기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생각하며 행동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화승 오즈 팀훈[37]
화승 오즈의 강도 높은 연습량과 각이 잡힌 체계적인 시스템은 타 팀 선수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고 한다. 특히 당시 스타 팬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화승 숙소의 전기의자 소문.[38][39] 여하튼 엄청난 연습량 덕에 팀원들 네임밸류 대비 성적도 좋았고 결국 프로리그에서 우승까지 차지해 본 강력한 팀이긴 했으나, 조정웅 감독의 몇몇 좋지 않은 소문들 때문에 잡음도 좀 있었음은 물론 인기도 높은 편은 아니었다.[40][41] 여담으로, 당시 팀에 대한 팬들의 시선은 비슷한 시기 전성기를 누렸던 김성근 감독 시절의 SK 와이번스 팀과 이미지가 흡사했다. 또한 프로게임단임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정말 잘 했던 팀으로 알려져 있다.[42]

5.2. 과한 이제동 의존도

파일:Hwaseung OZ_SC1.jpg

독보적 에이스 이제동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 관계로 "이제동 원맨팀" 혹은 " 청년가장 이제동"이라는 팀 이미지가 강하다. 근데 사실 이제동의 비중이 하도 압도적이라서 그렇지 받쳐주는 카드들 또한 이래봬도 상당히 강한 팀이다. GO-CJ 엔투스[43], 한빛-웅진 스타즈[44]와 함께 스타 1 개인리그에서 3종족 모두 우승자를 배출한 단 세 팀 중 하나이며, IS-Plus 시절에도 김현진, 성학승, 박성준, 박지호 등 개인리그에서 어느 정도 족적을 남긴 선수들이 소속되었던 적도 있다. 다만 김현진은 2002년 KPGA 3위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동양으로 이적했고, 나머지 선수들도 프로리그, 팀리그 예선 탈락으로 인해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2004년을 전후로 모두 타 팀으로 이적한 후에야 개인리그에서 활약한 케이스다.

르까프로 정식 창단된 직후에는 2006년을 마지막으로 개인리그에서는 더 이상 활약하지 못했지만 프로리그에서는 날아다니던 오영종과 2006 전기리그 신인왕과 후기리그 다승왕, 정규리그 MVP를 차지한 이제동 투탑 체제였고[45], 오영종의 군입대 이후에는 박지수[46], 박지수의 KT 이적 이후에는 구성훈이 이제동의 백업 역할을 제대로 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스와 그 백업 카드를 제외하고는 딱히 붙박이 주전이라고 부를 선수가 없던 것이 냉혹한 현실. 테란라인은 박지수 이적 이후로도 구성훈, 손주흥이 버티고 있었고, 저그라인은 박준오가 이제동의 백업 역할을 맡아준 것은 물론 팀플레이 폐지로 자리를 잃은 김경모가 공군에 입대할 정도였지만, 프로토스 라인은 오영종, 손찬웅 등이 줄줄이 군입대나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되면서 이들을 대체하기 시작했지만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준 끝에 은퇴한 팀플레이 유저 출신 노영훈이나 공식전 12연패를 찍는 등 처참한 모습을 보여준 김태균이나 스파키즈에서 이적해 온 팀플레이 전담 출신의 임원기가 주전으로 나올 정도로 상당히 약해졌다. 막장 종족 라인을 일컬을 때 등장하는 티원저그, 웅진테란 등과 비견되는 화승토스라는 고유명사까지 다 생겨났을 정도.

그나마 같은 잉여라인의 대명사인 T1저그는 박재혁이 나름대로 준수한 성적을 내 준데다 후기에는 이승석, 어윤수 등의 유망주들을 발굴하며 저그 엔트리를 많이 끌어올렸고, 스타 2 전환 이후로는 박령우가 스타 2 역사상 최고의 저그로 떠오르면서 잉여라인에서 완전히 탈출했다. 오히려 옛날부터 저그라인이 그렇게 부실했던 건 아닌데 테란과 토스가 워낙 넘사벽 수준으로 강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이고 박성준, 한상봉이 T1 시절 이렇다 할 활약을 못 해서 생긴 인식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었으며, 팀플레이가 존재했던 시절에는 이창훈, 윤종민 등 팀플 전담 선수들도 있었고, GO에서 스1 최강의 T1저그로 불리는 박태민이 영입되면서 저그라인이 크게 약하지는 않다는 평가였다.

과거 변길섭이 개인리그 우승을 달성한 적도 있고 나도현이 두 차례의 4강에 진출한 이후 테란 명맥이 끊겼던 웅진 스타크래프트 2 전향 직전 정종현이 개인리그 8강까지 진출하는 등 어느 정도 활약해 주었고, eSTRO 해체 드래프트로 박상우 MBC의 에이스 이재호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면서 웅테의 악명에서 완전히 벗어난 반면, 화승은 오영종의 입대와 손찬웅의 디스크 이후로 팀 해체의 순간까지 주전급 프로토스를 단 한 명도 양성해내지 못했다.

그나마 10-11 시즌에는 전역한 오영종이 활약하고 김태균도 나름대로 적절히 보조해 주었고, 김유진, 하늘, 그리고 해체된 eSTRO에서 데려온 백동준을 적극 기용해보고자 했지만, 성과를 보기도 전에 팀이 해체되며 의미가 사라졌다. 그나마 김유진과 백동준은 스타 2 전환 후 타 팀에서야 주전으로 도약했으며, 소리없이 은퇴하는가 싶었던 김태균은 팀의 해체 이후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 도중 kt 롤스터에 입단했지만 활약을 전혀 보이지 못한 채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시즌 2 도중 다시 은퇴, 아예 별다른 활약조차도 없이 은퇴해버린 하늘은 공식리그 종료 후 승부조작, 불법 도박장을 운영한 혐의로 붙잡히며 e스포츠 전체의 흑역사+ 금지어가 되었다. 이처럼 당시 화승의 빈약한 엔트리[47]는 상대팀에서 이제동을 저격하기에 매우 유리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게 날라다니던 이제동마저 패할 경우에는 팀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48][49]

실제로 이제동이 하나대투증권 MSL 결승에서 이영호에게 0:3 셧아웃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빅파일 MSL,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 결승에서도 이영호에게 연패하며 1인자 자리를 내주고, 저저전에서 패해 연속으로 탈락[50]하고 화승의 해체와 창단 초 제8게임단의 열악한 환경까지 겹치면서 개인리그 커리어가 하락하기 시작한 시점 및 팀의 포스트시즌 연속 진출 실패가 이제동의 프로리그 비중이 더 높아진 시기(정확하게는 2010년부터)와 겹친다. 다른 팀들은 필패카드 소리 듣던 라인의 전력이 상승하는데 비해 화승은 오영종의 입대, 박지수의 이적, 손찬웅의 은퇴 등 오히려 전력이 나날이 하락하니 이제동 혼자서 버티는 것에도 한계가 온 것. 이것은 이영호 원맨팀, 노인정, 패왕사신기 소리 듣던 시절(2007 ~ 2009년)의 KTF 매직엔스가 포스트시즌 광탈을 반복하고 이영호 또한 우승 1회, 4강 1회에서 한동안 커리어를 추가하지 못했던 것과 맥락이 같다.

화승 오즈에서 이제동의 비중을 가늠할 수 있는 단적인 기록으로, 이제동은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프로리그 통산 다승 순위에서 역대 1위를 차지하였고, 무려 241승 108패 승률 69.1%란 그야말로 괴물 같은 성적을 달성하였다.[51] 덧붙여 프로리그 통산 최다 선봉승, 에이스 결정전 역대 최다승, 위너스 리그 역대 최다  올킬 등을 기록하였고, 팀에 입단 후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신인상을 시작으로 2006 후기리그에는 프로리그 역사상 유일한 저그 단독 다승왕과 정규시즌 MVP를 차지,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역시 다승왕과 정규시즌 MVP를 차지하였다. 이렇게 리그를 제패하는 수준의 선수가 되었으니 자연히 화승 오즈 내에서 커리어를 따라올 선수는 아예 없었다. 화승 소속 선수 중 이제동 다음으로 프로리그 다승 순위가 높았던 선수가 14위 구성훈이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이 같은 미친듯한 활약 때문에 화승에서 이제동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였고, 실제로 그만큼 상당히 많은 경기를 출전하였다. 상황이 이러니 자연스레 혹사 논란이 나올 수 밖에 없었고, 2009년 FA 선언이라는 우려했던 상황이 코앞까지 닥치기도 했다.[52] 여하튼 결국 이제동은 팀이 해체하는 순간까지 화승에 남았고, 현역 시절 선수 본인의 전성기[53]와 팀의 찬란했던 황금기까지 함께 보낸 화승 오즈의 상징 그 자체였다.

여담으로, 당시 화승의 규모상 타 대기업 팀의 에이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연봉이 적었으나, 이제동 본인은 은퇴 이후 개인 방송에서 회고하길 현역 시절 화승에 있어서 만족했고 팀이 잘 챙겨줬다고 한다. 특히나 구단 입장에서도 비교적 연봉을 못 챙겨주고 팀에서 고생하는 걸 아는지 개인리그 상금을 100% 수령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고 한다.[54]

6. 역대 선수 목록

7. 역대 유니폼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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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역대 팀 성적

8.1.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IS
년도 리그 리그 순위 경기 벌점 승점 포스트시즌
2003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5위/8팀 12 4 8 0 -6 진출실패
Plus
년도 리그 리그 순위 경기 벌점 승점 포스트시즌
2003 neowiz Pmang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탈락
2004 SKY 프로리그 2004 1Round 11위/11팀 10 2 8 2 -1 진출실패
2004 SKY 프로리그 2004 2Round 탈락
2004 SKY 프로리그 2004 3Round 탈락
2005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8위/11팀 10 4 6 0 -3 진출실패
2005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7위/11팀 18 7 11 0 -6 진출실패
르까프 오즈
년도 리그 리그 순위 경기 벌점 승점 포스트시즌
2006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9위/11팀 10 3 7 1 -7 진출실패
2006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2위/11팀 10 7 3 1 +7 플레이오프
2007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2위/12팀 22 15 7 0 +16 준우승
2007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1위/12팀 22 18 4 0 +28 우승
2008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6위/12팀 22 13 9 0 +4 진출실패
화승 오즈
년도 리그 리그 순위 경기 벌점 승점 포스트시즌
2008-2009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2위/12팀 55 35 20 0 +31 준우승
2009-2010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8위/12팀 55 28 27 0 +4 진출실패
2010-2011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7위/10팀 54 24 30 1 -6 진출실패

8.2. MBC GAME 팀리그

IS
년도 리그 경기 벌점 승점 결과
2003 계몽사배 KPGA 팀리그 탈락
Plus
년도 리그 경기 벌점 승점 결과
2003 라이프존 KPGA 팀리그 3 2 1 0 +5 3위
2003 LG IBM MBC GAME 팀리그 2 0 2 0 -4 7위
2004 Tucson MBC GAME 팀리그 3 1 2 0 -1 6위
2004 MBC MOVIES MBC GAME 팀리그 7 2 5 0 -7 7위

8.3. 위너스 리그

화승 오즈
년도 리그 리그 순위 경기 벌점 승점 포스트시즌
2008-2009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8-09 2위/12팀 11 8 3 0 +12 준우승
2009-2010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 7위/12팀 11 5 6 0 +2 진출실패
2010-2011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10-11 2위/10팀 18 12 6 0 +22 플레이오프


[1] 과거 Plus 시절에는 워크래프트 3 팀도 운영하였다. [2] 이는 전신이었던 IS 시절을 포함한 것이며, 본격적으로 르까프 기업의 후원을 받아 르까프 오즈가 공식 창단된 시점은 2006년 3월 23일이다. [3] 그 외에도 MSL 우승자 출신인 박지수 위너스 리그에서 활약했던 구성훈 등도 비교적 인지도 있는 화승 출신 선수였다. 화승 해체 이후 스타크래프트 2에서 꽃을 피운 이병렬, 백동준, 김유진, 김도욱 같은 선수들도 화승 출신이었으나 사실 브루드 워에서는 활약이 거의 없었고, 화승 연습생이나 2군에 있다가 일찍이 스타2로 전향해서 성공한 송현덕, 변현우 같은 사례도 있다. [4] 당시 IS의 감독들은 지금의 감독이라는 개념보다는 선수들의 개인 매니저의 성향이 더 강했다. 주훈도 본래 임요환의 개인 매니저로 시작했었다. 임요환과 조우한 것은 2001년 말 사이에서 2002년 초기. [5] 이레나, 김사비나 등의 여성 프로게이머도 존재했다. [6] 결과적으로 이것이 문제였는지 코카콜라배 스타리그에서 임요환이 우승을 하였고 홍진호는 준우승을 하였다는 지적도 있는데, 코카콜라배 스타리그 결승전은 그 이전이였다. [7] 이미 동양제과는 선수 개인에게 스폰서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99 PKO에 출전한 봉준구와 장경호 2명이였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두 명의 게이머는 다른 스폰서와 계약을 맺은 뒤 은퇴했다. [8] 홍진호, 이윤열도 임대 기간이 끝나면서 이 팀에 합류한다. [9] 중간에 투나(Toona) 쇼핑몰이 후원해주면서 잠시 투나 SG가 된다. [10] 공교롭게도 훗날 창설된 제8게임단도 이 세 팀과 인연이 있다. 우선 선수단은 해체된 옛 화승 오즈와 위메이드 폭스 선수를 중심으로 창단되었으며, 감독인 주훈 또한 SKT T1 감독 출신이다. 또한 위탁 운영을 맡은 KeSPA의 경우 회장사가 SK텔레콤이기도 하다. [11] 스타리그 우승 2회/준우승 3회, MSL(KPGA 투어) 우승 3회/준우승 2회, WCG 우승 2회. [12] 이미 IS 시절부터 후원을 하였으며, 임요환이 광고 모델을 한 것으로 유명했다. 이외에도 MBC GAME에서 개최된 KPGA 위너스 챔피언십의 스폰서로 참여한 적이 있다. 현재는 사라졌다. [13] 운영 자금이 부족했으니 당연하다. [14] 리얼스토리 프로게이머 Plus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숙소가 되게 열악했다. [15] 박성준 김민구 상대로 보여준 저저전 울트라 관광은 Tucson 팀리그에서 나왔다. [16] 참고로 이 당시 팀리그는 온게임넷 프로리그에 비해 위상이 낮은 대회로 취급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그 이듬해부터 프로리그에서 흡수된다. [17] 한편 팀명 '오즈'의 유래는 꿈과 모험을 상징하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따 왔으며, 동시에 One & Zero의 약자이기도 하다. # [18] 당시 MBC '심야스페셜'에서 프로게이머와 관련된 내용을 방영했을 때 이 당시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19] 또한 온게임넷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리얼스토리 프로게이머 화승 오즈 편이 촬영되던 시기와 정확히 겹치기도 했다. [20] 그냥 발탁한 게 아니라 이전부터 이제동을 눈여겨 보고 있다가 성실성과 인격, 게임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가 조정웅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 친구라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이제동은 노력을 가장 많이 하는 선수,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였다고 조정웅 감독은 칭찬하였다. [21] 정규리그에서는 CJ 엔투스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MBC GAME HERO에게 패하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 [22] 우승 포상으로 7박 8일 간 유럽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다. [23] 현재 르까프의 모기업 화승은 화승그룹에서 분리되었고, 로고와 브랜드 정도만 공유하고 있다. 화승 오즈가 있었을 때에는 화승그룹 소속이었으나, 팀 해체 이후인 2015년에 화승그룹이 르까프 등을 유통하는 화승만 경영권을 따로 매각하였다. 원래의 화승그룹은 자동차 부품, 화학 제품, 신소재 산업 및 신발 ODM 생산 등 사실상 B2B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는 상태. 한편 화승은 2020년부터 사명이 디앤액트로 바뀌었다. [24] 다만 08-09 시즌 당시 위메이드는 eSTRO보다도 약체 취급을 받았던 팀이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화승이 주춤하고 위메이드가 강해지기 시작한 09-10 시즌에는 반대로 상황이 역전되어서 위너스 리그만 아니면 화승이 위너스 외에 4판 붙어서 1판 빼곤 다 패했다. 그리고 위너스와 위너스 외에 한 판 이긴 것도 순전히 이제동 한 명 때문에 이겼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25] 아이러니한 건 이 때 당시 에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신상문이 에이스 결정전에서 승리해서 스파키즈가 이겼는데, 당시 스파키즈를 상대로 에이스 결정전에 나갔던 선수는 스파키즈 담당일진 이제동이 아닌 구성훈이었다는 거다. 그리고 이 맞대결의 패배는 당시 르까프 오즈(後 화승 오즈)에게 매우 치명적이었는데, 이 패배 이후 하이트 스파키즈가 해당 시즌 포스트시즌 막차 탑승을 확정지은 반면 르까프 오즈는 이 경기 결과로 포스트시즌 진출 좌절이 완전히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26] 원래는 이제동이 EVER 스타리그 2007 결승전부터 다섯 번의 5전제를 모두 패승승승으로 잡아내면서 패승승승으로 이기는 것을 이제동 스코어라고 하였다. [27] 이영호 혼자서 소년가장짓하던 KT가 프로토스 쪽에서 김대엽, 우정호 등을 발굴하고 저그 쪽에서 김성대, 임정현 등을 영입하며 원맨팀에서 벗어난 것과는 반대의 행보를 보여준 것이다. KT의 이지훈 감독이 이영호 외에 백업 선수들을 꾸준히 발굴하고 육성시키고 영입한 것과는 달리 화승의 조정웅 감독은 09-10 시즌 내내 새로운 카드 발굴이라고는 박준오가 고작이었을 정도로 신인 육성을 소홀히 하고 이전 시즌과 전혀 다를 게 없는 고정적인 엔트리만을 고집해 왔으니 전 시즌 이후 처지가 완벽히 뒤바뀐 두 팀의 행보는 어찌되면 지극히 당연지사인 셈이다. 실제로 화승이 백동준, 김유진, 방태수 등 신인 선수들을 활발히 키우기 시작한 것은 조정웅 감독이 감독직에서 물러난 10-11 시즌부터였다. [28] 결국 공군 ACE에게도 밀려 12월 18일을 기준으로 4승 11패로 꼴찌. [29] 그러나 그것도 잠시 12월 28일, SKT T1에게 4:2로 패배하면서 결국 2라운드는 꼴찌로 마감했다. [30] 2라운드까지만 해도 동병상련이던 KT가 위너스 리그를 시발점으로 해서 상위권으로 차고 올라간 뒤 5라운드와 6라운드도 상위권을 유지한 끝에 6라운드 초반에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된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한편 KT는 6월 20일 경기에서 CJ에 패하면서 3위가 확정되었다. [31] 같은 날 엠겜은 KT한테 패하면서 자동으로 나가리 확정. [32] 후에 김경모가 개인방송에서 푼 썰에 따르면 이제동, 박준오에 밀려 주전 자리를 잡지 못해서 공군 입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팀에서는 공군에 가지 말고 선수로 남아 은퇴 후 코치를 맡아달라고 했지만 당시 공군에 입대해 있던 팀 선배 오영종이 무조건 공군으로 오라고 조언해 줘서 가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오영종의 말대로 입대 후 불과 1년이 지나 화승은 해체되고 말았다. [33] 이때 흡수된 선수는 이제동, 박준오가 보호 선수로 흡수되고, 김도욱, 이병렬이 추가로 합류하였다. [34] 창단 당시 르까프가 유니폼을 후원해줬다. 다만 트레이닝복마냥 후줄근해서 평이 안 좋았고, 이내 다른 유니폼으로 교체되었다. [35] 이 중 구성훈 진에어 스타리그 2011 본선에 진출하여 차기 대회 시드를 얻어 무소속 신분으로 듀얼에 직행했다. 결과는 이경민에게 패하여 탈락. [36] 그래도 당시 주력 선수단과 유망주들은 어떻게든 다른 팀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이후의 역사는 진에어 그린윙스를 참고. 프로리그 12-13 종료 후 전태양 FA를 통해 KT로 이적하고 박수범, 김재훈 등이 은퇴하면서 Prime에서 이적해온 조성주 등을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화승 출신이었다. 이들이 개인별로 집결해서 그렇지, 진에어는 사실상 화승 오즈의 후신팀 대접을 받았다. [37] 출처는 위에서 언급했던 MBC '심야스페셜'. [38] 화승 오즈가 패배한 날에는 숙소 주변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난다고 한다. 고기 굽는 냄새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9] 이 전기의자는 사실상의 후신팀 진에어 그린윙스가 물려받았다 카더라. 집행인은 싸패좌라나 뭐라나? [40] Plus 시절 팀을 사실상 먹여살렸던 오영종 공군 ACE 입대가 조정웅과의 불화 때문이라는 이야기, 박지수 역시 조감독의 스파르타식 연습을 못 이겨 이적을 요구했다는 이야기 등. [41] 이제동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 규율이 상당히 엄격하고 훈련량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구보를 했고, 이후 잠들 때까지 게임만 줄창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인터넷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스타크래프트가 IPX와 다이렉트 케이블로도 멀티플레이가 가능해서 가능한 것. 즉, 수면 - 운동 - 식사 - 게임이 하루 일과의 전부라는 것. 이러한 스파르타식 훈련을 통해 르까프가 팀원들 네임밸류 대비 성적이 잘 나오자 eSTRO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도 연습 시스템을 르까프처럼 바꿨다고 한다. 한편 한상용 코치의 명언으로 알려진 "인터넷하다 걸리면 뒤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화승은 인터넷을 막아뒀으니 애초 걸릴 일이 없었다. [42] 당시에 프로게임단 간의 친목 도모를 위해 여가 시간에 축구 대회를 자주 했는데, eSTRO와 견줄 정도로 화승은 축구를 잘 하는 팀이었다고 한다. 훗날 염보성이 개인방송에서 밝히길 당시에 화승과 축구를 맞붙을 때는 체감상 08-09 바르셀로나로 느껴졌다고 한다. 참고로 이 지분의 80%는 코치 한상용이라 카더라. [43] 테란: 서지훈, 저그: 박태민, 마재윤, 김정우, 신동원, 프로토스: 강민 [44] 테란: 변길섭, 저그: 김준영, 프로토스: 김동수, 박정석 [45] 창단 직후부터 팀의 최전성기인 2007 전/후기 시즌까지는 오히려 오영종이 팀의 최고 에이스였다. 당시 르까프 오즈를 상징하는 말로 오영종 - 이제동의 원투펀치가 있었는데, 여기서 우선시되던 선수가 바로 오영종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럴 수밖에 없었는데, 르까프가 Plus 팀을 스폰싱하게 된 계기부터가 오영종의 So1 스타리그 2005 우승이며, 당시의 이제동은 신인 시절로 아직 프로리그에서만 활약헀지 개인리그에서는 곰TV MSL 시즌1에서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했을 뿐 빛을 확 보기 전이었다. 이후 이제동이 온게임넷 스타리그 로열로더가 되던 시점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팀 자체가 리즈 시절을 맞게 되었다. [46] 한때 화승의 개인리그 우승 경력이 있는 3인방 이제동 - 박지수 - 오영종 셋을 뭉쳐 쓰리펀치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만 제대로 가동된 기간은 매우 짧았다. 박지수의 짧은 전성기와 오영종 - 조정웅 간의 불화 때문에 결국 이제동만 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악재로 돌아왔다. [47] 엔트리에 자주 보이는 선수들이 여전히 이제동, 구성훈(or 손주흥), 박준오, 임원기(or 김태균) 뿐이었다. [48] 대표적으로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8-09 결승전 對 CJ전. 선봉이였던 이제동이 올킬에 딱 1경기만 남겨두고 조병세한테 패하자 바로 역올킬 당해 준우승했고,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결승전에서는 정명훈, 박재혁에게 광삼패를 당하며 팀 준우승의 원흉이 되었다. [49] 물론 이제동은 전적으로 보나 승률로 보나 말 그대로 날라다녔던 수준이였지만, 같은 택뱅리쌍의 멤버들을 포함한 타 팀 에이스들과의 전적에서는 이런 이유로 인해 은근 손해를 많이 보았다. 특히 상성 종족인 택뱅 상대로 이런 면이 두드러지는데, 송병구를 상대로는 개인리그 다전제에서는 다 이겼지만 프로리그를 포함한 상대전적은 열세이며, 김택용을 상대로는 프로리그에서 노오버 6해처리 관광을 당하기도 하는 등 이 2명에게 상성 종족임에도 상대전적이 밀리는 가장 큰 원인이 프로리그였다. [50]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박카스 스타리그 2010 16강에서 이미 2패로 탈락이 확정된 김상욱에게, 진에어 스타리그 2011 16강에서도 김현우를 상대로는 승리했지만 박재혁에게 패해 1승 1패가 된 상황에서 역시 2패로 탈락이 확정된 신대근 물귀신 작전에 당해 1승 2패로 동반 탈락했으며, 스타 1 마지막 개인리그였던 tving 스타리그 2012 듀얼에서도 또 신대근에게 발목이 잡히며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였다. MBC GAME 스타리그에서도 피디팝 MSL, ABC마트 MSL 4강에서 신동원, 김명운에게 1:3으로 패해 결승에 올라가지 못했으며, 차기 MSL 방송국 장르 변경 선언으로 인해 전격 취소되면서 MSL 통산 승수도 99승에서 중단되며 MSL 100승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었다. [51] 그것도 다승 1위이자 동시에 저그 종족으론 유일하게 개인전 다승 TOP 10 안에 들었다. 심지어 이제동은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부터 병행리그 전 마지막 순수한 스타1 프로리그였던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까지 모든 시즌에서 저그 다승 1위를 기록하였다. [52] 당시 이제동은 아직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협상권은 이제동의 양친이 가지고 있었고, 양친이 더 이상 아들 혼자서 고생하는 걸 볼 수가 없다는 몹시도 납득 가능한 이유로 계약을 철회한 것이다. FA 선언 후 실제로 SK텔레콤 T1 웅진 스타즈에서 오퍼가 왔지만, 정작 이제동은 화승이 성장 기회를 주며 처음부터 함께 걸어온 팀이기 때문에 당시에 타 팀으로 가기 싫었다고 한다. 그 결과 8월 31일, 극적으로 화승 오즈와 재계약을 맺으면서 잔류하게 되었다. [53] 이제동은 앞서 말한 프로리그에서의 활약 뿐만 아니라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양대리그( 스타리그, MSL)에서도 5회 우승, 4회 준우승을 달성하며 역대 저그 1위 커리어를 찍었다. 다시 말해 선수 본인의 최고 전성기 또한 화승 시절에서 보냈단 말이다. [54] 단적으로 이제동의 라이벌이자 최강의 게이머였던 이영호조차도 개인리그 상금을 과 분할해서 가져갈 만큼 당시 소속 팀과 상금을 쪼개서 가져가던 게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55] 무소속으로 tving 스타리그 2012 듀얼 토너먼트에서 김현우를 잡는 파란을 일으켰으나 아쉽게도 최종전에서 이경민에게 탈락했다. [56] STX SouL 김윤환의 친형. 아발론 MSL 2009 당시 코치나 주변인물들이 코멘트를 남기는 코너가 있었는데 군입대 전 동생에게 "내가 못 이룬 꿈, 네가 이뤄주길 바란다."라는 말을 남겨 스덕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동생은 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2010년 5월 의병 제대했다는 소식을 끝으로 그 이후는 불명이었다가 2016년 9월에 결혼하였다. [57] 위 박성준과는 동명이인으로 종족은 프로토스였다. [58] 프랑스 소재 다국적 프로게임단 [59] 우선 EG-TL에 1년 간 임대 후 EG로 완전 이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