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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캠퍼스 역사
서울캠퍼스 단과대학 개편 역사 History of College Reorganization (Seoul Camp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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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2c62> 홍익대학 (1946~1960) |
홍익미술대학 (1961) |
홍익대학 (1962~1970) |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 (197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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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 ~1960 | ~1961 | ~1963 | ~1965 | ~1970 | ~1977 | ~2006 | ~2019 | 2020~ |
법학부 | 법정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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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경대학 | 법과대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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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학부 | 상경대학 | 경제학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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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부 | 문과대학 | ||||||||
미술학부 | 미술학부 | 미술대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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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공과대학) | 공과대학 | |||||||
이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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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예술학부 | ||||||||
- | 서울캠퍼스자율전공 |
서울캠퍼스 연혁 History of Seoul Camp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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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2c62> 1946 | 홍문대학관 설립 |
1947 | 홍익대학으로 교명 변경 |
1949 | 법학부, 문학부의 주야 2부제로 설립 인가 |
인천에 분교 설치 | |
1951 | 제1회 졸업식 |
1954 | 4학부 11과로 개편 |
문학부(국문학과, 영문학과, 사학과, 경상학과) | |
미술학부(회화과, 조각과, 건축미술과) | |
법정학부(법률학과, 정치학과) | |
이학부(물리학과, 화학과) | |
1955 | 마포구 상수동으로 이전, 문학부에 지리학과, 신문학과 신설 |
1958 | 미술학부에 공예과 신설 |
1961 | 문교부 대학정비령에 의해 미술학부 4개과(공예과ㆍ회화과ㆍ조각과ㆍ건축미술학과)만 존치하고 기타 학과는 강제폐과 |
홍익미술대학으로 격하 | |
1962 | 홍익대학으로 교명을 다시 환원 |
1964 | 4학부 10과로 개편 |
미술학부(동양화과, 서양화과, 조각과) | |
공예학부(공예과, 도안과) | |
건축학부(건축과) | |
상경학부(상학과, 경영학과, 경제학과, 무역학과) | |
1966 | 건축학부를 공학부로 개칭 |
1967 | 공학부에 도시계획과 신설 |
교육학부 미술교육과 신설 | |
1968 | 상학과를 경영학과로 개칭 |
동양화과와 서양화과를 회화과로 통합 | |
공예과와 도안과를 응용미술과로 통합 | |
1969 | 도서관을 이전확장하고 중앙도서관으로 개칭 |
1970 | 공학부에 전자공학과 신설 |
1971 | 공학부에 전기공학과 신설 |
수도공과대학(8개 학과) 합병 | |
홍익대학교로 교명 변경(20개 학과) | |
1972 | 학교법인 계원학원 합병 |
1973 | 사범대학 신설, 박사과정 신설 |
1976 | 응용미술과를 공예과와 산업도안과로 개편 |
1977 | 사범대학 부속학교로 5개교 교명 변경 |
1978 | 이공대학을 공과대학으로 개편 |
1980 | 문과대학(영어영문학과, 독어독문학과, 불어불문학과) 신설 |
사범대학에 교육학과 설치 | |
1982 | 공과대학에 산업공학과 신설 |
1986 | 미술대학에 예술학과 신설 |
1987 | 법학과를 신설하며 법경대학 출범 |
상경대학을 경영대학으로 개편 | |
1988 | 문과대학에 국어국문학과 설치 |
미술대학 공예과를 금속공예과, 도예과, 목공예과, 섬유미술과로 분리 | |
2006 | 건축대학 신설 |
공과대학 건축학과를 건축대학 건축학부 건축학전공으로 개편 | |
건축대학 건축학부 실내건축학전공 신설 | |
미술대학 시각디자인학과와 산업디자인학과를 디자인학부로 통합 | |
2007 | 법경대학을 법과대학과 독립학부 '경제학부'로 개편 |
경영대학 경영학부 무역학전공을 경영학전공에 통합 | |
2010 | 공과대학 정보컴퓨터공학부 정보산업공학전공을 산업공학전공으로 변경 |
2012 | 법과대학 법학과를 법과대학 법학부로 개편 |
산업정보융합학부 신설 | |
2016 | 산업정보융합학부를 디자인경영융합학부로 개편 |
2020 | 건축대학을 건축도시대학으로 개편 |
공과대학 건설·도시공학부 도시공학전공을 건축도시대학 도시공학과로 개편 | |
공과대학 건설·도시공학부 토목공학전공을 공과대학 토목공학과로 개편 |
1.1. 홍익대학(1946~1960)
1915년 조선총독부의 '종교통제안'으로 인한 탄압을 피해 1917년 중국 지린성으로 총본사를 이전했던 대종교 인사들은 광복 후인 1946년, 서울로 돌아온 뒤 민족 사학을 설립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47년 5월 원로회의에서 이들은 단군의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 이념을 바탕으로 재단법인 홍익학원과 홍익대학관을 설립하고, 당대의 국어학자 정열모를 학관장으로 선임했다. 곧이어 홍익학원은 1946년에 비인가 사설학교로 설립돼 분규를 치르고 있던 홍문대학관을 인수해 당시 대종교 본부였던 서울 중구 저동 덕우사에서 첫 수업을 시작하였다.[4] 1948년 8월 10일 재단법인 홍익학원 및 홍익대학관 설립허가를 미군정청으로 받은 뒤, 설립자 및 재단이사장에 이흥수, 초대대학관 관장에 정열모가 임명되었다. 같은 해 12월 20일에는 교사를 용산구 문배동으로 이전하였다. 문학과ㆍ법학과ㆍ사학과와 부속 전문부를 설치하였다. 이어 1949년 6월 27일에 대한민국 정부 대학령 제1호 대학으로 법과ㆍ정치과의 법학부, 국문과ㆍ영문과ㆍ사학과ㆍ미술과의 문학부, 법률과ㆍ정경과ㆍ국문과ㆍ미술과의 초급 대학부의 4년제 홍익대학이 인가받았다.백범 김구가 사망한 뒤, 그의 운구를 홍대생이 주도적으로 거행하고 김구가 설립한 건국실천양성소를 백범 정신의 계승을 위해 건실을 홍대가 인수 개편하기로 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교세확충을 위해 인천 만석동에 분교를 설치하였다. 당시 학교의 설립 목표는 국학분야 인재를 양성하고 애국심 투철한 민족지도자를 기른다는 것으로 당시에는 국문과 역사과가 학교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6.25 전쟁으로 부산 부평동과 대신동 및 대전 성남동에 각각 분교를 설치하고 전시대학을 운영하였으며, 피난지 부산에서 제1회 졸업생 59명을 배출하였다. 환도 후에는 종로구 누상동에 대학 본부를 두고 중구 남산동과 종로구 인사동에 분산하여 운영하였다. 1955년 4월에 마포구 상수동의 현 위치로 캠퍼스를 신축 이전하였다. 그러나, 재정이 어려워졌고 1956년 5월 23일 자신의 재산 10억 환 기부를 약속한 이도영이 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이도영 이사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학생들의 반발이 발생했고 1957년 7월, 동창회와 교수단, 학생을 중심으로 동맹휴업 사태가 발생했다. 같은 해 9월 25일에는 동창회가 이도영을 업무상 배임, 횡령, 사기, 사문서 위조 및 조세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되려 간첩으로 내몰려 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오랜 투쟁 끝에 1961년 3월 10일, 이도영이 물러나고 총동창회와 학생, 교수들이 이흥수를 다시 재단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이도영은 이사로 물러났다.
1.2. 홍익미술대학(1961)
그러다, 5.16 군사정변이 발발했다. 군부는 이듬해 2월 2일 대학정비령을 내려 미술대학 및 미술대학 소속이었던 건축미술학과만 남기고 나머지 학과는 모두 폐교 처분되었다. 국문학과, 신문학과, 영문학과, 경제학과, 법률학과, 사학과, 화학과, 물리학과 등이 모두 폐과되었다. 교명도 홍익미술대학으로 변경되었다. 문교부 장관 김상협은 1962년 5월 30일, 이흥수 이사장을 비롯한 재단 이사들의 임원 취임인가를 취소하고 최문환 관선이사장을 선임했다.1.3. 홍익대학(1962~1970)
이후, 교명이 다시 환원되고 1963년 관선이사가 철수하고 이도영 측으로 운영진이 재편되었다. 1964년 2월 상경학부ㆍ미술학부ㆍ공예학부ㆍ건축학부에 10개 학과로 편성하였으며, 1966년 건축학부를 공학부로 개칭하고 이듬해에 교육학부를 신설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홍익대학 근처에 수도공과대학이라는 대학이 신설되었는데...1.3.1. 수도공과대학(1962~1970)
수도공과대학의 연혁 | |
1962 | 03.19. 수도공업초급대학으로 개교 |
전기공학과, 기계공학과 설치 | |
196? | 토목공학과 설치 |
1부, 2부로 나누어 운영 | |
1964 | 04.16. 수도공과대학(4년제)으로 개편 |
1965 | 토목공학과, 기계공학과, 전기공학과 신설 |
1965 | 12.31. 정밀기계과, 공업교육학과 증설(총 5개 학과) |
1968 | 화학공학과 신설 |
1969 | 금속공학과 신설 |
1971 |
12.31.
수도공과대학(8개학과, 정원1,040명)이
홍익대학으로 인수 및 통합 - 전기공학, 기계공학, 토목공학, 정밀기계공학, 화학공학, 금속공학, 공업교육, 물리학 |
홍익대학교가
종합대학교로 승격 - 3개 단과대학(이공대학ㆍ상경대학ㆍ미술대학), 20개 학과, 1개 대학원 구성의 편제 - 이공대학 신설(홍익대학 공학부 및 수도공과대학을 계승, 건축공학과 외 11개 학과) - 홍익대학(Hongik College)에서 홍익대학교(Hongik University)로 교명 변경 |
|
홍익대학교 이공대학 신설 - 12개학과, 입학정원 428명 인가 - 물리학과, 전자계산학과, 건축공학과, 도시계획과, 전자공학과, 전기공학과, 기계공학과 - 정밀기계공학과, 토목공학과, 화학공학과, 금속공학과, 공업교육과 |
|
홍익대학교 이공학관 준공(4,077평) |
수도공과대학(首都工科大學)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가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에서 설립하고 운영했던 사립 공과대학으로, 홍익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이 되는 대학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 여러 전력회사가 통합하며 출범한 한국전력은 기존의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만으로는 전문 인력에 공급에 차질을 빚는다고 판단하여 4년제 공과대학인 수도공과대학을 개교하였다. 하지만 한국전력학원은 학교법인으로서 수입원이 없었기에 수도공대, 수도공고, 수도중학, 마포여중 등 4개 학교를 학생부담과 한전의 보조금에만 의존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1970년에는 문교부가 시설기준령을 강화하고, 수도공대가 그 기준에 미달하는 바람에 한전의 보조금 삭감으로 학교운영이 어렵게 되었다.
1970년 12월에는 수도공대 학생 570명이 농성하며 홍경섭 학장을 포함한 동교이사진의 개편등을 요구하고, 학기 말 시험을 전면 거부했다. 학생대표 50여명은 한국전력이사를 겸하고 있는 이사들을 개편할 것, 한전에서 현조해온 연간 1천 3백만원이 명년초부터 중단되는데 따른 대안을 마련할 것, 문교부의 학원시설기준령에 따른 실험실 등을 보완,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할 것 등 3개 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 기사)
당시 한국전력학원 이사장인 김상복 사장은 학교동창회와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도공대를 홍익학원에 이양할 것을 결의했다. 결국 수도공과대학은 10년 남짓의 짧은 운영 뒤에 1971년, 인근의 홍익대학에 합병되었다. 이에 따라 한전 소유 쌍문동 임야 2만 16평, 실습기재 1,393점, 기타 실비 1,620점을 무상으로 홍익학원에 이양함으로써 한국전력학원의 대학교육은 끝나게 되었다. 수도공대가 홍익학원에 이양된 후 수도공고는 수도공과대학 캠퍼스 부지로 이전하고, 수도중학은 수도공고로 이전되어 한국전력학원은 수도공업고등학교, 수도중학교, 마포여자중학교만 운영하게 되었다. 이후 1978년에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가 이전한 후에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들어와서 2014년에 울산광역시로 이전할 때까지 사용했다.
한편, 수도공과대학을 합병한 덕분에 홍익대학은 단과대학 3개라는 조건을 충족하며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수도공과대학은 홍익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오늘날의 홍익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서 발전할 수 있게 도운 대학이다.
미술대학과 건축대학을 비롯한 문과대학, 경영대학, 법과대학 등 서울캠퍼스 학과들은 대부분 1948년 인가된 홍익대학에 전신을 두고 있으며, 세종캠퍼스는 과학기술대학과 조형대학, 상경대학 모두 홍익공업전문대학에 전신을 두고 있으나 서울캠퍼스 공과대학만은 수도공과대학이 직접적인 전신이다.
수도공과대학을 합병하기 이전의 홍익대학에서는 이미 '공학부'를 가지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그 당시의 공학부는 미술학부로부터 독립해 나온 건축학부 건축과를 공학부 건축공학과로 이름만 바꾼 것이나 다름 없었고, 1966년에 공학부로 개칭된 이후 신설된 도시설계과와 함께 사실상 공학이 아닌 건축도시 분야를 다루는 곳이었다. 오늘날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과 비슷한 포지션이었던 셈이다. 이후 1970년에 전자공학과를 1971년에 전기공학과를 신설하면서 공학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변화하고 있었으나, 1971년에 홍익대학이 수도공과대학을 합병하면서 신설된 이공대학으로 홍익대학 공학부(건축공학과, 도시설계과)와 수도공과대학(8개학과, 정원1,040명)이 합쳐지게 되었다. 그러나 2006년에 건축대학이 신설되면서 공과대학 건축학과가 건축대학 건축학부 건축학전공으로 개편되어 독립해나갔고, 2020년에 건축대학이 건축도시대학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공과대학 건설·도시공학부 도시공학전공이 건축도시대학 도시공학과로 개편되면서 홍익대학 공학부 출신의 학과들은 건축도시대학으로, 수도공과대학 출신의 학과들은 공과대학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장학금과 기숙사 제공 등 파격적인 조건이 많아서 성장 이전의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재정적으로 궁핍하게 변하며 대학 자체의 인기가 떨어졌다. 결국 종합대학으로 다시 되돌아가려는 홍익대학에 눈에 띄어 합병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구 수도공과대학 졸업생 통계 |
- 수도공과대학의 학과
- 전기공학과
- 기계공학과
- 토목공학과
- 정밀기계공학과
- 금속공학과
- 화학공학과
- 공업교육과
- 물리학과[5]
한편, 한국전력공사에서는 2022년 전라남도에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를 새롭게 개교했다. 이 대학도 과거 수도공과대학과 마찬가지로 전교생에게 전액 장학금과 전원 기숙사 생활을 제공하고 있다.
1.4. 홍익대학교(1971~ )
1971년 10월에는 한국전력학원으로부터 수도공과대학을 인계받아 그 해 12월에 종합대학[6]으로 인가받았다. 초대 총장으로 이항녕이 취임하였다. 인가 당시에 이공대학, 상경대학, 미술대학의 3개 단과대학 20개 학과와 1개 대학원으로 구성되는 편제를 갖추었다. 이듬해 학교법인 계원학원을 합병하였으며, 1973년에는 사범대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신설하였다. 또, 1977년에 사범대학 부속학교로 초중고등학교 5개교를 설치하고, 1978년 이공대학을 공과대학으로 변경, 1980년 문과대학 설치하였다. 1987년 상경대학을 경영대학으로 개편, 법학과를 신설함과 동시에 법경대학을 설치하고, 2002년에는 대학로캠퍼스를 개원하고, 학교법인 경성학원을 합병하였다.2004년에는 산업자원부 산하의 국제디자인대학원대학교를 흡수합병해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을 출범시켰으며 2006년에는 건축대학을 공과대학에서 분리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 정문인 홍문관을 준공했다. 2007년 법경대학을 법과대학과 경제학부로 개편하였다. 2020년에는 건축대학을 건축도시대학으로 개편하고, 기존 공과대학의 도시공학전공을 건축도시대학 도시공학과로 개편하였다. 그리고 뮤지컬전공과 실용음악전공을 포함하는 공연예술학부를 신설했다. 공연예술학부 학생들은 서울캠퍼스 소속으로 구분되지만, 전공수업은 대학로 캠퍼스에서 이루어진다.[7]
2. 세종캠퍼스 역사
세종캠퍼스의 단과대학 개편 역사 History of College Reorganiz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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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2c62> 홍익공업전문대학 (1963~1988) |
홍익대학교 세종캠퍼스 (198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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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공업전문대학) | 산업대학 | 과학기술대학 | 과학기술대학 | |||
상경대학 | ||||||
조형대학 | ||||||
- | 광고홍보학부 | |||||
- | 산업스포츠학과 | |||||
- | 게임학부 |
세종캠퍼스 연혁 History of Sejong Camp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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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2c62> 1963 | 홍익공예고등전문학교로 개교 |
1967 | 홍익공업고등전문학교로 변경 |
1971 | 홍익공업전문학교로 변경 |
1979 | 홍익공업전문대학으로 개편 |
1989 | 홍익공업전문대학 폐교 |
홍익공업전문대학을 계승하는 홍익대학교 조치원캠퍼스 설립 | |
조치원캠퍼스 산업대학(11개 학과) 신설 | |
1991 | 산업대학을 과학기술대학과 조형대학으로 개편 |
1992 | 상경대학 신설 |
2008 | 상경대학 국제경영학과를 상경학부 국제경영전공으로 통합 |
2010 | 과학기술대학 화학시스템공학과를 바이오화학공학과로 변경 |
상경대학 상경학부 경영정보학전공을 E-마케팅전공으로 변경 | |
조형대학 광고커뮤니케이션디자인전공을 커뮤니케이션디자인전공으로 변경 | |
2011 | 조치원캠퍼스를 세종캠퍼스로 명명 |
2015 | 과학기술대학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를 전자전기공학과와 컴퓨터정보통신공학과로 변경 |
건축공학과를 건축공학부로 변경 | |
상경대학 국제경영학과 신설 | |
2016 | 상경대학(E-마케팅전공 및 국제경영(중국, 일본)전공을 글로벌경영전공으로 통합 |
조형대학 애니메이션전공과 영상영화전공을 영상애니메이션전공으로 통합 | |
과학기술대학 재료공학부의 세부전공을 폐지 | |
2017 | 교육부의 세종캠퍼스 분교 지정 철회 |
2.1. 홍익공업전문대학(1963~1989)
홍익공업전문대학(弘益工業專門大學, Hongik Technical College, 준말 : 홍익공전(弘益工專))은 학교법인 홍익학원 산하의 전문학교에서 출발해 전문대학으로 승격되었다가 1989년에 홍익대학교 조치원캠퍼스(세종캠퍼스)로 계승 및 합병된 사립 전문대학이다. 학교 캠퍼스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강로 77 ( 창전동)에 있었다. 당시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는 와우산 서쪽(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 94 상수동)에 자리잡고 있었고, 홍익공업전문대학은 와우산 동쪽에 있었다. 홍익공업전문대학 부지는 합병 이후 이랜드 본사 사옥으로 쓰다가 청년 임대주택 건설로 인해 철거되었다.정규 고등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특성화고와 전문대학 과정을 합친 5년제 학교로 운영되었다. 현재의 위상으로 보면 대학 과정을 추가한 마이스터고와 비슷한 학교였다. 법률 개정으로 고등전문학교, 초급대학 등이 모두 전문대학으로 개편되며 교명이 변경되었다. 그러다가 홍익공전의 학생들이 학내에서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학교 기물을 파손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자 홍익학원은 전문대학을 운영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폐교 처리되었고 대신 홍익대학교가 홍익공전을 모두 인수하고, 조치원캠퍼스(현 세종캠퍼스)를 신설하여 홍익공업전문대학의 학생들을 조치원캠퍼스로 이전하기로 결정한다. 폐교 당시 홍익공업전문대학에는 600명 가량의 학생이 있었으며, 1989년에 폐교되면서 330명 정원의 4년제 대학인 홍익대학교 조치원캠퍼스로 설립 및 일부 이전하게 되었다.
홍익공전의 설치 학과는 모두 홍익대학교 조치원캠퍼스(현 세종캠퍼스) 산업대학(현 과학기술대학, 조형대학, 상경대학, 광고홍보학부 등)에 계승되었으나 학적은 계승되지 않고 따로 존치된다. 현재 홍익공전 졸업자가 관련 서류를 발급받으려면 홍익대학교에 따로 전화하여 신청해야 한다.
- 연혁
- 1963년 : 홍익공예고등전문학교로 개교
- 1967년 : 홍익공업고등전문학교로 변경
- 1971년 : 홍익공업전문학교로 변경
- 1979년 : 홍익공업전문대학으로 개편
- 1989년 : 홍익대학교에 합병 및 조치원캠퍼스 신설이전
2.2. 홍익대학교 세종캠퍼스(1989~ )
교내에서 분쟁이 잦았던 홍익공전을 폐교한 뒤, 해당 정원을 모두 인수한 홍익대학교는 충청남도 연기군에 새로운 부지를 결정하여 제2캠퍼스를 설립하게 된다. 출범 당시에는 조치원캠퍼스로 불렸으며, 이칭으로 신안캠퍼스라고 불리기도 하였다.[8] 이후 정부의 지방대학 육성 정책에 힘입어 정원이 늘어났고 산업대학이 과학기술대학과 조형대학으로, 다시 과학기술대학에서 상경대학이 또 분리되며 대학 규모가 커졌고, 광고홍보학부와 게임학부가 차례대로 설치되며 현재와 같은 체제를 갖추었다.2017년에 교육부가 세종캠퍼스가 교지 분할 방식으로 세워진 캠퍼스임을 확인하고 세종캠퍼스를 제2캠퍼스로 인정함으로써 세종캠퍼스의 법적 지위가 분교가 아닌 제2캠퍼스임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쪽 캠퍼스 간 비슷한 학과가 존재하는데, 세종캠퍼스의 설립 방식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70년대 서울 지역 대학들이 대학 정원을 늘리기 위해 모두 분교를 만들기 시작하자 입학 인원을 늘리고자 홍익대도 분교를 설치하고자 했지만, 분교설립 신청을 너무 늦게 하는 바람에 교육부로부터 거절당했다. 그러자 마침 2년제 전문대학인 홍익공업전문대학의 재학생들이 학내에서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학교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키자 이를 사유로 전문대학을 1989년 폐교 결정하고, 인원을 축소하여 홍익대학교가 인수한 후, 해당 홍익공업전문대학 정원을 이용하여 제2캠퍼스 설립 인가를 받아내 설립한 것이 조치원캠퍼스(현 세종캠퍼스)이다. 이에 따라 설립 당시 모태가 되었던 홍익공업전문대학의 전공을 그대로 계승하여 조치원캠퍼스의 전공을 설치했기 때문에 공학과 미술(디자인) 분야가 겹치게 된 것이다. 세종캠퍼스는 설립부터 캠퍼스로서 인가를 받았지만, 교육부에서는 공시자료에 세종캠퍼스를 분교로 잘못 기재하여 그동안 대내외적으로 분교로 인식되어왔으며, 교육부도 지난 10여 년간 지방대학특성화사업 등을 시행하면서 세종캠퍼스에 분교 기준을 적용해왔다. 또한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 당시에도 홍익대학교 측은 조만간 평가가 이루어질 것을 알게 된 즉시 세종캠퍼스가 평가에서 불리해질 것을 예상하고 교육부에 세종캠퍼스가 설립 당시 제2캠퍼스로 설립되었음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교육부는 이에 대한 답을 하지 않고 세종캠퍼스를 분교로 평가하여 서울캠퍼스와 세종캠퍼스에 각각 다른 등급을 부여했다.
이후 2016년 말에 교육부에 대한 정기 기관운영감사에서 세종캠퍼스의 법적 지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이에 대해 교육부는 홍익대학교의 일부를 현 세종캠퍼스로 이전 인가한 사실은 있으며 분교로 설립 인가한 사실은 없다는 내용의 공문을 학교 측에 보냈다. 이후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는 세종캠퍼스가 제2캠퍼스임을 반영하여 서울캠퍼스와 통합 평가하여 A의 상위 등급을 부여함으로써 지난 1주기 평가에서 세종캠퍼스가 D+의 하위 등급을 받음으로 인해 적용된 모든 불이익을 철회했다. 그러나 그동안 교육부가 잘못된 분교 지위를 적용하여 생긴 문제와 홍익대학교 측에서도 설립 당시부터 세종캠퍼스를 분교로 설립 인가받는 데 실패하고 제2캠퍼스로 설립 인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제2캠퍼스 답지 않게 서울캠퍼스와 홍익공업전문대학 간의 유사 학과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운영하여 생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가 결국 2017년에 이르러서야 캠퍼스 간 분쟁의 씨앗이 되어 돌아오고 말았다.
HIBS 홍대방송국이 취재한 바에 의하면, 2017년에 세종캠퍼스가 제2캠퍼스임이 확인되었을 당시 서울캠퍼스 학생들은 설립 과정과는 무관하게 세종캠퍼스가 제2캠퍼스로 확정된 이상 학교 측이 유사학과들을 이전하거나 통폐합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으며, 학교 측에서는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통폐합이나 이전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확답을 내놓았다. 수도권정비사업법에 의하여 충청도에 위치한 세종캠퍼스의 인원이 서울캠퍼스로 올라오는 것은 절대 불가하며, 학교가 자발적으로 서울에 있는 학생들을 세종으로 보낼 필요가 없으므로 통폐합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한, 그동안 분교로 인식되던 세종캠퍼스가 분교가 아닌 캠퍼스라면 서울캠퍼스의 입시 결과가 낮아지는 등의 피해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회적인 인식에 대한 우려가 나옴에 따라 졸업 증명서나 재학 증명서에서 캠퍼스를 명시해달라고 요구했다. 두 캠퍼스에 이름으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유사학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 관계자는 캠퍼스를 명시하면 서울캠퍼스 학생들은 득이 되는 게 없는 데 반해 세종캠퍼스 학생들은 실이 있고, 지금까지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서울캠퍼스 학생들이 세종캠퍼스에서 수업을 듣는 일은 흔하지 않은 반면, 세종캠퍼스 학생들이 서울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서울캠퍼스의 수강신청 경쟁률이 높아져 원하는 수업을 듣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점에 대해 지적했으나 이에 대해서 학교 측에서는 단과대학이나 교수 차원에서 반을 증설하거나 수강인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반면 세종캠퍼스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는데, 세종캠퍼스가 제2캠퍼스로 확정됨에 따라 서울, 세종캠퍼스의 예산을 통합하여 편성하게 되자 캠퍼스 간 균등한 지원의 의무가 사라지므로 학교 측이 한쪽 캠퍼스만을 편중 지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에 대하여 학교 측에서 학생들과 원활히 소통하며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HIBS 취재 1부 HIBS 취재 2부 베리스타 알파 기사
[1]
정치학과.
[2]
지리학과,
사학과,
신문학과
[3]
물리학과,
화학과
[4]
인수한 교육시설의 설립일이 더 빨라 설립년도를 다르게 보는 시각이 있다. 현재는 가장 빠른 날짜인 1946년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5]
수도공대 시절에는 졸업생이 없어 수도공대 졸업생 명단에는 없으나 대부분 합병 이후 졸업하여 홍익대 졸업생 명단에 올라가 있다. 이후 학부생 모집을 중단한 뒤 기초과학과로 전환하여 공과대학의 기초과학 수업을 담당하도록 변경되었다. 현재는 물리학과 대학원생만 모집하고 있다.
[6]
당시 종합대학이란, 단과대학 3개 이상으로 이루어진 4년제 대학을 의미하였다. 이전에는 4년제 단과대학으로 처리되었다.
[7]
대학로캠퍼스 자체가 통합공시 이원화캠퍼스이기 때문에 공시자료상 서울캠퍼스와 동일캠퍼스로 공시된다.
[8]
이 경우 위치인 신안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세트로 서울캠퍼스는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와우캠퍼스라고 호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