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18:07:42

하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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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결성3. 활동과 체포, 처벌4. 이후5.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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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어: Die Weiße Rose
영어: The White Rose

나치 독일에서 활동했던 비폭력 레지스탕스 단체.

2. 결성

파일:attachment/하얀 장미/Hans_scholl.jpg 파일:attachment/하얀 장미/Sophie_scholl.jpg
한스 숄
1918년 9월 22일 ~ 1943년 2월 22일
조피 숄
1921년 5월 9일 ~ 1943년 2월 22일
파일:attachment/하얀 장미/48003.jpg 파일:attachment/하얀 장미/Kurt-Hubert.jpg
크리스토프 프롭스트
1918년 11월 6일 ~ 1943년 2월 22일
쿠르트 후버 교수
1893년 10월 24일 ~ 1943년 7월 13일

제2차 세계 대전 중이었던 1941년에 한스 숄(Hans Scholl)과 조피 숄(Sophie Scholl) 남매가 결성했다. 이들은 뮌스터의 아우구스트 폰 갈렌 주교가 나치의 안락사 정책[1]을 비판하는 강론을 듣고 충격받아 갈렌 주교의 허락을 받아 주교의 강론 전문을 전단으로 만들어 뮌헨 대학에 뿌렸다. 하얀 장미라는 단체의 이름은 스페인 소설 "하얀 장미"에서 따온 것인데 한스 숄과 조피 숄은 게슈타포의 심문을 받을 때 자신들의 이름을 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유드 네보른과 안네트 둠바흐라고 말했다. 이후 한스 숄은 전단의 표제를 하얀 장미라고 붙였고 곧 이 단체의 이름이 되었다.

이후 하얀 장미에는 한스 숄과 조피 숄 남매를 비롯해서 뮌헨 대학에 다니던 학생들인 알렉산더 슈모렐(Alexander Schmorell), 빌리 그라프(Wilhelm ,,Willi‘‘ Graf), 크리스토프 헤르만 아난다 프롭스트(Christoph Hermann Ananda Probst)와 그들의 교수였던 쿠르트 이포 테오도어 후버(Kurt Ivo Theodor Huber) 등이 가입했는데 이들 중에는 동부전선에서 귀환한 귀환병들이 있었고[2] 조피 숄은 독일청년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3. 활동과 체포, 처벌

이들은 기독교의 인내와 정의의 정신 하에서 나치의 악행을 비판하고 나치가 패망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이들의 전단은 주로 남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배포되었는데 이는 북독일에 비해서 남독일에서 반나치 활동이 좀 더 활발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히틀러는 뮌헨 근처의 남독일에서 세력을 얻었다.
1차 전단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무책임하고 어두운 충동에 빠진 통치자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지배'당하는 것보다 더 굴욕적인 일은 없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일인들 중에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정권에 대해 치욕을 느끼지 않을까요?
지금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눈을 가렸던 베일이 벗겨질 날이 올 것입니다. 극악무도한 범죄가 밝은 햇살 아래 낱낱이 드러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받을 굴욕의 상처가 얼마나 클지 예감하십니까? 독일 국민의 정신은 가장 깊은 근본에서부터 타락하고 무너졌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사의 굽이마다 '합법성'을 외치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그 '합법성'의 실체가 불확실하고 의심스러운 것임에도 덮어놓고 쉽사리 믿어버리면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숭고한 가치를,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드높여 주는 그 숭고한 가치를, 즉 인간의 자유와 자유의지를 희생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 독일 국민의 정신이 근본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저들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따라 역사의 운행에 순응하려는 이성적인 결정이었다고 말하겠지요. 그러나 독일인들 각자의 개성은 소멸하고 정신을 잃어버린 비겁한 대중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앞날은 암담할 뿐입니다. 독일인들은 멸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어도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괴테는 독일인을 유대인이나 그리스인들과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민족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비극적'이라고 부를 만한 무언가가 남아 있었지만 오늘날의 독일인은 천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의지가 없는 비겁한 기회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가장 깊은 내면의 골수와 중추를 고스란히 빼앗긴 채 스스로 몰락의 길을 재촉한 것입니다.
지금의 독일은 천천히 목을 죄어오는 폭력, 사람을 기만하는 폭력,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폭력으로 각 개인을 자유롭지 못한 정신적 감옥 속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각 개인은 자신의 자유를 폭력의 사슬에 결박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불행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됩니다.
게다가 오금이 저리는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설령 누군가가 그것을 깨달아서 동포에게 길을 돌이키라고 영웅적인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고 해도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이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운명에 관해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 누군가가 먼저 시작하기를 바라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사자들이 지체 없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살육에 만족할 줄 모르는 악마의 복수에 사로잡혀 마지막 한 사람까지 허망하게 희생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이 나라의 모든 개인이 기독교와 서양 문명의 구성원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최후의 일각까지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인간성을 짓밟는 파시즘에 저항해야 합니다. 절대국가와 유사한 모든 조직에 저항해야 합니다. 저항, 적극적인 저항이 필요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을 부정하는 이 전쟁 기계 집단의 계속되는 망동을 막아야 합니다. 너무 늦기 전에, 마지막 남은 도시들이 쾰른처럼 폐허의 잿더미가 되기 전에, 이 민족의 마지막 남은 청년들마저 비인간적인 한 인간의 망상으로 인해 피 흘리며 죽어가기 전에 우리 모두 저항의 기치를 세워야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어떤 국민이든 자신이 지지하는 바로 그 정부만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을!

프리드리히 실러의 글 <리쿠르고스와 솔론의 입법>에는 다음과 같은 단락이 있습니다.

목표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리쿠르고스의 입법은 인간학과 국가학 분야의 걸작이다. 리쿠르고스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 토대를 둔, 부서지지 않는 강력한 국가를 원했다. 그가 추구한 목적은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과 그것의 지속성이었다. 리쿠르고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 속에서 가능한 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이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리쿠르고스가 염두에 두었던 목적과 인간성이 추구하는 목적을 대비시켜 본다면 서로 간에 불일치와 심각한 의견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저 스쳐 가는 눈길로 바라보더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니!"하고 신기한 기분을 느끼며 얻게 되는 결론이다.
국가 자체도 수단이 되어 섬겨야 할 최선의 가치가 있다. 어떤 희생도 그 최선의 가지를 위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그 최선의 가치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 자체는 목적이 아니다. 국가는 인간성이 가지는 목적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는 의미에서만 중요할 뿐이다. 여기서 인간성이 가지는 목적이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힘을 길러주는 것과 발전시켜주는 것을 말한다.
국가의 헌법에 문제가 있다면 기꺼이 부정하라! 인간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모든 힘을 끌어내어 발전시켜라! 헌법이 인간 정신의 진보를 방해한다면 그런 헌법은 인간에게 해로운 것이므로 얼마든지 배척해도 좋다. 어떤 경우에도 헌법은 충분히 숙고하고 또 숙고해 헌법답게 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헌법은 찬양받기는커녕 오히려 비난받아 마땅하다. 지금의 헌법은 사악함의 세월을 연장하게 하는 힘일 뿐이다. 지금의 헌법이 존속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에게 미치는 해악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정치적 업적이란 도덕적 감정을 지불할 때 비로소 얻게 되는 소득이다. 정치적 업적을 쌓는 능력도 도덕적 감정에 의해 길러진다. 스파르타에서는 진정한 남녀 간의 사랑도, 진정한 모성애도, 진정한 효심도, 진정한 우정도 없었다. 그곳에는 시민만이 있었다. 시민에게 요구하는 덕성만 있을 뿐이었다.
......국가의 법은 스파르타 시민들을 의무에 복종하는 노예로 길들이는 비인간적인 세상을 만들었다. 시민들이 이렇게 불행한 희생물로 전락하는 나라 안에서 인간성은 철저히 모욕당하고 학대받았다. 스파르타 법전 그 자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법전에는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위험천만한 조항이 버젓이 명시되어 있다. 그 법 조항을 통해 스파르타에서는 자연법과 도덕성의 기본 토대가 합법적으로 파손돼 무너져버렸다.
......용맹한 장군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어머니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차마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로마를 공격하는 군단의 막사 안에서 로마에 대한 복수와 승리를 포기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이 세상 어떤 연극이 이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리쿠르고스가 목적으로 삼은 '국가'라는 것은 민족의 정신이 활동을 멈추는 상황에서만, 그 유일한 조건에서만 영속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 '국가'란 자신의 유일하고 지고한 목적을 잘못 설정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국가'인 것이다.

여러분! 괴테 희곡 <에피메니데스의 각성> 제2막 4장에 등장하는 '정령'과 '희망'의 대화를 들어봅시다.

정령:
담대하게 저 심연으로부터 뛰어오른 자는
흔들리지 않는 운명으로 인해
이 세상의 절반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나
그 운명은 마땅히 심연으로 되돌아가야 하리.
벌써 소름 끼치는 공포가 목을 죄어오는 것을 보라.
그의 저항은 아무 보람도 없이 끝나리라!
그가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은
다 함께 마땅히 땅 밑으로 되돌아가야 하리.
희망:
지금 나는 내 용감한 정신을 만난다.
그 정신은 밤에는 자취를 감춘다.
잠들려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려는 것이다.
침묵 속에서 ' 자유라는 아름다운 낱말이
속삭여지고 소곤거려진다.
그 무엇에도 길들여지지 않은 새로움으로
우리의 신전
계단에 우뚝 서서
마침내 또다시 황홀에 취해 소리칠 때까지
"자유여! 자유여!"
여러분! 이 '백장미' 전단을 최대한 많이 복사해 널리 배포해주시길 간절히 청합니다!
2차 전단
국가사회주의와 정신적으로 논쟁을 벌이거나 그것을 비판할 수 없는 것은 정신적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사회주의'의 세계관에 관해 말한다는 것조차 잘못된 일입니다. 설령 그런 세계관이 있다 해도 그것이 어떤 세계관인지를 정신적 수단을 동원해 증명하거나 논쟁해야 하겠지만, '국가사회주의'의 실상은 완전히 다른 양상입니다. '국가사회주의'의 현실은 싹을 내밀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동료를 기만하는 길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국가사회주의'의 현실은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부패했고 끊임없는 거짓을 통해서만 버틸 수 있었습니다.
가장 악하고 역겨운 독일어로 쓰인 책이지만, 독일 민족의 시인들과 사상가들에 의해 < 성경>처럼 추앙받는 히틀러 저서가 있습니다. 그 초판에서 히틀러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민족을 지배하기 위해 그 민족을 기만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독일 민족에게 깊이 뿌리 내린 이 덩어리를 처음부터 자각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독일 민족이 병들어 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선한 세력들이 열정적으로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그만 종양은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결국 그 종양은 더 이상 처방조차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가는 세포들에 의해 갈수록 강해지더니 암덩어리로 팽창하고 말았습니다.
독일 민족의 온몸은 암세포로 뒤덮였습니다. 나치에게 대항하던 다수의 반대자가 몸을 숨겼습니다. 독일의 지식인들은 지하실로 도피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야음성 식물처럼 햇빛으로부터 격리되어 점점 더 숨이 가빠져 마지막 남은 호흡조차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각성하고 누구를 만나든지 상대방의 의식을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언제나 염두에 두면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이 부패한 체제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엄연한 필연성을 확신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저항의 외침 소리가 독일의 온 땅을 물결처럼 휩쓸어 간다면, 투쟁의 외침이 독일의 온 하늘을 가득 메운다면, 독일의 수많은 사람이 대동단결한다면, 저들이 아무리 발악하며 폭력을 행사한다고 해도 이 체제는 결국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끝없이 계속되는 공포보다는 공포를 감수하며 끝을 보려는 최선의 노력이 훨씬 더 나은 법입니다.
독일의 역사가 지닌 의미에 대해 결론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우리가 섣불리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러나 시대의 막다른 골목에서 역사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우리의 행복에 도움을 준다면 그런 판단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시대와 역사도 정화될 수 없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이겨내야만 새벽의 빛을 갈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떨쳐 일어나 단결하지 않는다면 이 세계를 억압하는 압제의 멍에에서 벗아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백장미'전단을 통해 유대인 문제를 강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문제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닙니다. 다만 분명한 본보기로 실제적 사실을 간략히 알려주려고 합니다.
폴란드가 나치에게 점령된 이후 이 나라에서만 약 30만 명의 유대인들이 끔찍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소름 끼치는 범죄를 목격하게 됩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을 찾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유사 이래 보기 드문 범죄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도 엄연히 '사람'입니다. 그렇게 잔혹하기 짝이 없는 범죄가 서슴없이 저질러졌기에 유대인 문제에 관심의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닙니다. 유대인은 그런 운명을 겪을 만한 민족이기 때문에 당연히 겪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주장이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이 오만방자한 태도입니다. 그 주장이 맞다면, 폴란드 귀족 출신의 모든 젊은이가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사실은 어떻게 해명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이토록 참혹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여러분은 물을 것입니다.
15세에서 20세까지 모든 폴란드 귀족 계층의 사내들은 독일로 끌려가 집단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습니다. 같은 또래의 모든 미혼 여성은 노르웨이로 끌려가 나치 친위대원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 외에도 여러분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모든 사건을 어떻게 달리 설명한다는 말입니까? 인간의 짓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소름 끼치는 범죄들을 해명할 길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우리 모두의 가슴속 깊이 와 닿는 문제 한 가지를,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 한 가지를 다루고자 합니다. 어째서 독일 민족은 추악하고 비인간적인 이 모든 범죄를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독일인을 모두지 찾을 수 없습니다. 사실을 사실로만 받아들일 뿐입니다. 독일 민족의 이성은 또다시 둔하고 약해졌습니다. 잠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일인들은 이런 군부독재의 범죄들이 활개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고 범죄자들이데 미쳐 날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현실은 독일인들의 인간적인 감정이 거칠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부인할 수 없는 사실들을 똑똑히 보면서도 그들의 목청에 자리 잡은 바이올린의 다섯 현 중 어느 것 하나 절규의 소리를 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요? 그들이 죽음이나 다름없는 잠 속에 깊이 잠겨 결코 다시는 깨어나지 못한다는 표시가 아닐까요?
만약 독일인들이 지금과 같은 아둔함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그 증거는 확실해질 것입니다. 그들이 잔인무도한 범죄에 맞서 언제든지 저항할 수 있음에도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죄 없이 죽어가는 수십만 명의 희생자들에게 일말의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는 증거가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독일인들은 희생자들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보다 더 큰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범죄에 대해 독일인들 모두가 가져야 할 공동의 죄책감입니다. 독일인은 지금까지 무심하게 방관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이 사악한 인간들에게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을 안겨주었습니다. 끝없는 죄의 짐을 자신의 어깨 위에 첩첩이 쌓아 올리고 있는 이 '정부'를 참아내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저열한 '정부'가 이 땅 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독일인들 모두의 공동 책임이 아닌가요?
하지만 독일인은 누구나 그런 공동의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만 했습니다. 죄책감으로부터 멀리 도망가 두 눈을 감은 양심과 함께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입니다.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죄를 말이지요!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역사상 잘못 태어난 정부들 중에서도 가장 가증스러운 이 정부를 세상 밖으로 퇴출시키기에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독일인들이 더 이상 죄를 가중시키지 않으려면 이 정부를 몰아내야 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감겨 있던 우리의 눈은 이제야 열리게 되었습니다. 누구와 함께 손을 잡고 이 엉터리 정부를 몰아내야 하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악독한 독재자를 몰락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이 터지기 직전까지는 국가사회주의자들에게 현혹당하는 것이 독일 민족의 일상이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들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지요.
하지만 이제 모두 그들의 정체를 파악해버렸으니 주저할 게 없습니다. 이 짐승보다 못한 독재자를 제거하는 것이 모든 독일인의 유일하고도 지고한 의무이자 가장 신성한 과제입니다. 노자는 <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치가 총명하지 않고 흐릿하기만 하면 그 백성은 순박하고 어질게 된다. 그 정치가 총명하고 밝으면 백성은 욕구불만에 빠지고 거기에서 앞다투는 경쟁이 일어난다. 화, 그 곁에는 복이 기대어 서 있고 복, 그 속에는 화가 숨어 있다. 화와 복의 이런 순환 관계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정녕 올바른 것은 없는 것인가? 올바른 것은 다시 기이한 것으로 변하고, 선한 것은 다시 악한 것으로 변한다.
사람이 미혹을 받아 고통을 느끼게 된 지 오래되었다. 이렇기 때문에 성인聖人은 방형方形이지만 그 모서리로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모가 나 있어도 모난 것으로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성인은 곧게 펴져 있어도 곧은 것으로 다른 사람을 찌르지 않고, 빛이 있어도 빛으로 다른 사람을 끌지 않는다.
천하를 손아귀에 움켜쥐고 주무르고자 하는 자들이 그치지 않는 것을 나는 보고 있다. 그러나 천하는 신비한 그릇과 같아서 인위적으로 지배할 수 없다. 천하를 인위적으로 지배하려는 자는 그것을 파괴할 것이며, 천하를 인위적으로 붙잡으려는 자는 그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이 세상 만물 주어떤 것은 앞서 가고 또 어떤 것은 뒤따라간다. 어떤 것은 숨을 가늘게 내쉬고 또 어떤 것은 숨을 크게 내뿜는다. 어떤 것은 강하고 또 어떤 것은 약하다. 어떤 것은 스스로 짐을 지고 또 어떤 것은 파괴한다. 이러므로 성인은 지나친 행동을 삼가고 낭비를 피하며 태만함을 피한다.
여러분! 부디 이 전단을 최대한 많이 복사해 독일 전역에 널리 배포해주시길 간절히 청합니다.
3차 전단
국민을 존중하는 것이 최상의 법이다
모든 이상적인 국가의 형태는 유토피아입니다. 국가란 전적으로 이론적으로만 구성될 수 없습니다. 한 국가는 개인이 성숙하듯이 그렇게 성숙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상의 어떤 문화든 처음에는 국가의 원형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살아온 세월만큼 '가족'도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유사 이전의 공동생활부터 이성을 가지게 된 '인간'은 '국가'라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국가의 토대는 ' 정의'이며 국가의 지고한 법칙은 만인의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국가는 하느님의 질서와 닮은 것을 표현해야 합니다. 모든 유토피아의 지고한 가치인 '신국神國'은 국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모범상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서로 다른 갖가지 국가 형태, 즉 민주주의, 입헌군주제, 전제군주제 등을 판단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의 없이 분명하게 부각되어야 할 사실은 한 가지뿐입니다. 필요하고 합법적인 국가를 향해 개인의 자유를 전체의 유익과 함께 보장해달라고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각 개인에게 있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공동생활과 협력 관계를 이루어가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과 자신의 일상적 행복을 자주적이고 자발적으로 성취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국가'는 사악한 자의 독재국가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는 문제를 또다시 들고 나올 필요가 있소?"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어째서 떨쳐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어째서 주저앉아 참고만 있는 것입니까? 이 독재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야금야금 여러분의 눈을 속이면서 여러분의 모든 권리를 하나둘씩 빼앗아가고 있는데 어째서 여러분은 견뎌내고만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참기만 한다면 범죄자들과 흡혈귀들이 주도하는 기계적인 국가 통치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날이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정신은 폭력에 제압당해 힘을 모조리 잃어버렸습니까? 이 독재 체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는 것이 여러분의 권리이자 여러분의 도덕적 의무임을 잊었단 말입니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힘을 잃는다면 인간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토록 절망적인 시간 속에 파묻혀 있던 우리가 어둠을 떨치고 일어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우리에게 너무나 부족했던 용기를 마침내 살리고 발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온 세상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해도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설령 용기가 없다 해도 교활함의 외투로 여러분의 비겁함을 가리고 감싸지는 마십시오. 이 악마 같은 독재자에게 저항하지 않는 날이 거듭될수록, 저항을 주저하는 날이 거듭될수록, 여러분의 죄는 포물선을 그리듯이 점점 더 둥그렇게 점점 더 높이 쌓여만 갈 것입니다.
이 전단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은 저항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명확한 방법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항의 실현 가능성이나,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그 방법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혈혈단신으로 맞서는 개인적 투쟁이나 상처 깊은 망명객들의 싸움만으로는 이 '정부'를 무너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굳은 신념과 강인한 근성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일치단결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선택해야 할 수단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용해야 할 수단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바로 그것은 '수동적 저항'입니다. 외관상으로는 강해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가치를 붕괴시키는 정신적 작업을 통해 그들의 체제를 몰락시키는 '저항'인 것입니다.
'수동적 저항'의 목적과 의미는 '국가사회주의'를 몰락시키는 데 있습니다. 이런 투쟁을 전개할 때는 방향을 정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영위하는 그 어떤 영역에서도 우리의 투쟁은 가능합니다. '국가사회주의'가 아니어서 공격받지 않게 될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경우에도 '국가사회주의'는 마땅히 공격받아야 합니다. '국가'라고 규정할 수 없는 이 엉터리 '국가'는 가능한 한 빨리 종말을 맞이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이 전쟁에서 군부독재의 독일이 승리를 거둔다면 무시무시한 결과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모든 독일인이 가장 먼저 염려해야 하는 것은 소련의 ' 볼셰비즘'에 대해 군사적 승리를 거두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사회주의자'들을 몰락시키는 문제입니다. 지금은 이 문제를 무조건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모든 독일인을 향해 이토록 절실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무엇인지를 다음 번 전단에서 밝히겠습니다.
지금은 '국가사회주의'를 단호하게 반대하는 모든 사람이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현재의 엉터리 '국가'에 맞서 어떻게 투쟁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가? 어떻게 하면 나치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가?
이미 말씀드린 '수동적 저항'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입니다. 다른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투쟁을 펼쳐나갈 때 각자에게 맞는 개인적인 투쟁 노선을 따로 설정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일반적인 방향성일 뿐입니다. 투쟁을 실천하는 길은 각자 스스로 찾아가야 합니다.
군수산업과 전쟁에 필요한 모든 산업의 현장에서 파업을 합시다. 나치에 의해 일상생활이 되어버린 모든 집회, 모든 선전, 모든 의례, 모든 조직에 불참합시다. 막힘없이 쏟아져 나오는 전쟁 무기들의 생산 경로를 방해합시다. 전쟁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기계는 나치와 그 독재 체제를 지탱하고 보존하는 일에만 기여할 뿐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을 지속하도록 힘을 실어주는 모든 자연과학과 모든 인문과학 분야의 연구 활동을 중단합시다. 그 현장이 대학교든, 실험실이든, 연구소든, 기술전략 회의실이든 전쟁에 도움을 주는 모든 연구 활동을 그만둡시다. 군부독재자들의 그릇된 명성을 드높일 수 있는 문화 예술 분야의 모든 집회에 불참합시다. '국가사회주의'와 밀착되어 그들을 섬기고 있는 조형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창작 활동을 중단합시다. 이 '정부'의 오염된 돈을 받고 나치의 이념과 나치의 거짓말을 전파하는 데 여념이 없는 모든 잡지와 모든 신문의 발간을 중단합시다.
길을 걷다가 거리의 모금 활동을 보면 한 푼도 내지 맙시다. 겉으로는 자선 활동을 구실로 내세우지만 이건 위장술입니다. 실제로 적십자단이나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모금 활동을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의 재정적인 목적으로 돈을 모으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인쇄기는 지금 잠시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면서 막무가내로 엄청난 양의 지폐를 찍어내고 있습니다. 독일 국민은 긴장의 끈을 바짝 조여야만 합니다. 금속 모으기와 직물 모으기를 비롯해 그 밖의 모든 모으기 활동에 불참합시다.
상하 계층을 막론하고 모든 독일 국민은 이 전쟁을 지속하는 것이 무의미하고 가망 없는 일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국민의 정신과 경제가 나치에게 노예처럼 철저히 예속되었고 국민의 도덕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도 나치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수동적 저항'의 대열에 다 함께 참여합시다.

여러분! 이 전단을 최대한 많이 복사해 널리 배포해주시길 간절히 청합니다.
4차 전단
아이에게 입버릇처럼 들려주는 옛 격언이 있습니다. "들으려고 귀를 열지 않는 사람은 손으로 만져보고 느껴야 한다."라는 격언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영리한 아이라 해도 한 번쯤은 뜨거운 오븐에 손가락을 데일 것입니다.
지난 몇 주 동안 히틀러는 아프리카 전선에서도, 러시아 전선에서도 연이어 승리의 낙인을 찍었습니다. 그 결과는 좋은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독일 국민의 눈으로 볼 때 낙관적인 생각이 계속될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비관적인 전망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번져갔습니다. 히틀러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적개심이 없는 국민의 입에서도 탄식과 실망과 낙담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거야?"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사이에 이집트에 대한 독일의 공격이 주춤거렸습니다. 롬멜 장군은 위험천만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유럽 동부에서는 독일군의 진격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겉보기에는 성과를 얻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성과 역시 희생자들의 참혹한 죽음의 대가인 까닭에 이익을 얻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일 국민 사이에서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그 모든 낙관적 생각에 대해 경고하고자 합니다.
죽은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 헤아려본 적이 있습니까? 히틀러와 괴벨스, 두 사람 중 아무도 죽은 사람의 숫자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러시아에서는 하루에 수천 명씩 죽어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지금은 추수 때인가 봅니다. 벼를 베는 자는 주검의 알곡을 가득 실은 경운기를 타고서 잘 익은 죽음의 볏단 속을 누비고 있습니다. 아들을 잃은 ' 슬픔'이 귀향하듯 고향의 오두막집으로 찾아왔건만 그곳에는 어머니들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눈물은 마르지 않지만 히틀러는 거짓말로 그들을 기만하고 그들의 보석 같은 선善을 앗아갔으며 그들을 무의미한 죽음의 수렁 속에 빠뜨렸습니다.
히틀러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한마디의 예외도 없이 거짓입니다. 그가 평화를 말하면 '평화'라는 명분으로 전쟁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가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 '하느님'을 구실로 악마의 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천사 사탄의 권세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의 입은 악취가 진동하는 지옥의 아가리입니다. 그의 권력은 지옥의 밑바닥으로 던져진 타락한 힘입니다.
우리는 모든 합리적인 수단을 동원해 나치의 '테러 국가'에 맞서 싸우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아직도 악마적인 권력의 실체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독일 국민이 있다면, 그는 이 전쟁의 형이상학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것, 감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것, 논리적인 사변의 뒤에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 잠복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비이성적은 적그리스도의 전령에게 불복하는 투쟁이 필요합니다. 비합리적인 악마에 반대하는 싸움이 필요합니다.
모든 시대, 모든 장소마다 악마들은 어둠 속에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시시각각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인간이 약해질 때, 하느님이 주신 자유에 기초를 두었던 정신적 자리에서 인간이 제멋대로 떠나버릴 때, 인간이 보다 높은 정신적 질서의 힘으로부터 벗어나서 악마의 억압에 굴복할 때, 처음에는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첫걸음을 내딛지만 두 걸음 세 걸음 옮길수록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악마의 힘에 끌려다니고 맙니다.
어느 장소, 어느 시대에서나 인간은 극심한 궁핍 고난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 상황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마다 선지자들과 성직자들이 인간의 자유를 지켜주었고, 유일신이신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인간에게 가르쳐주었으며,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인간에게 경고했습니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악의 위력에 맞서지 못할 만큼 미약합니다. 인간은 바다의 풍랑 속에 내던져진 없는 배입니다. 인간은 어머니 없는 젖먹이입니다. 창공에 흩어지는 새털구름처럼 연약한 존재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이신 주님께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주님의 최고선을 지켜내기 위한 이 싸움에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머뭇거리거나 악의 간계에 놀아나거나 희망 가운데 세웠던 굳은 결심이 흔들린다면 어느 누가 주님을 옹호하기 위해 무기를 들겠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인 주님께 악과 맞서 싸울 용기와 힘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악의 힘이 가장 강력하게 활개치는 곳은 히틀러가 독재 권력을 휘두르는 바로 그곳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의 < 잠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몸을 돌려 밝은 태양 밑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의를 보았다. 보라. 그곳에는 불의로 인해 고통을 당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위로를 전혀 받지 못하는 자들의 눈물이 있었다. 그들에게 불의를 저지른 자들의 힘이 너무나 강한 까닭에 그들을 위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는 이미 고통 속에서 죽어간 그들을 더욱 찬양했다.
우리는 '백장미단'이 외국 세력과 결탁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우리는 나치의 권력이 군사적으로 붕괴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심각하게 손상된 독일 정신의 갱생을 외세의 개입 없이 독일의 내부로부터 이루어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독일 정신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독일 민족이 저지른 모든 죄를 분명히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틀러와 그를 도와주는 공범들, 나치 당원들, 매국노들에 대해 가차 없는 투쟁을 펼치는 것입니다.
독일 정신을 거듭나게 하는 전제 조건은 이 두 가지입니다. 나치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선량한 사람들을 구분하는 선을 확실하게 그어야 합니다.
지금 이 지상에는 히틀러와 그의 지지자들이 저지른 범죄를 마땅히 단죄할 만한 형법상의 처벌 조항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이 끝난 뒤의 세월을 살아갈 미래 세대의 가슴에 엄연한 사실의 증표를 사랑의 마음으로 새겨주어야 합니다. 나치가 통치하던 그 시절에는 털끝만큼의 기쁨조차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독재 체제의 불한당들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그들의 이름을 기억의 비망록에 적어두십시오! 그들 중 단 한 명에게도 달아날 퇴로를 열어주면 안 됩니다. 이 끔찍한 사건들이 끝난 후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나치의 깃발을 새로운 깃발로 바꾸어 달면서 그 당시에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것처럼 가장하는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을 안심시키기 위해 몇 마디만 덧붙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백장미 전단'을 읽는 분들의 주소는 그 어디에도 활자로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소는 주소록에서 무작위로 가져왔을 뿐입니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의에 분노한 여러분의 양심이 곧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백장미단'은 여러분과 함께 중단 없이 투쟁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전단을 최대한 많이 복사해 널리 전파해주십시오!
5차 전단
동지들이여!
우리 민족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많은 독일인이 전사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230만 명의 독일 남자들이 세계전쟁이라는 기발한 전략 때문에 아무런 의미 없이 무참히 죽고 파멸되었습니다.
독일인들은 심하게 동요하고 있습니다. 정치를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들에게 우리 군인들의 운명을 계속 맡기고 싶습니까? 한 당파의 가장 비루한 권력 본능 때문에 남은 청년들이 모두 희생되도록 두겠습니까?
결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심판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겪은 일 중 가장 비열한 폭정을 당한 독일 젊은이들에게 곧 정의의 심판이 내려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독일인의 이름으로 아돌프 히틀러의 국가에 요구합니다. 독일인에게 가장 귀중한 개인의 자유를 돌려주십시오! 히틀러는 가장 천박한 방식으로 우리를 속였습니다. 우리는 모든 표현의 자유에 대해 무자비하게 속박하는 나라에서 자랐습니다. 히틀러 유겐트, 나치 돌격대원, 나치 친위대라는 이름으로 우리 인생에서 배움이 가장 풍성하게 피어오를 시기에 우리에게 제복을 입히고, 우리를 혁명화하고 마취시키려고 했습니다.
나치의 세계관 교육은 우리 각자가 세워가야 할 자기 철학과 자존감의 숨통을 끊는 경멸스러운 방법이었습니다. 지도자 그룹은 사악하고 편협하다는 것 외에 달리 생각할 수 없는 이들로 구성되었숩니다. 무신론적이고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착취자와 살인자 소년들, 그리고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지도자들 중에서 미래의 당 우두머리가 세워졌습니다. 우리 '영혼의 일꾼들'은 이 새로운 계급의 통치자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나치 교관들은 성희롱적 말로 여대생들을 공격했습니다. 독일 여대생들은 뮌헨대학교에서 모욕을 당하면서도 품위 있게 대응했으며, 독일 남학생들은 그런 여대생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자발적이고 자치적인 투쟁의 시작입니다. 정신적인 가치가 없었다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일입니다. 앞장서서 본보기가 되어준 용감한 학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의 구호만 있을 뿐입니다. 당파적인 것에 반대해 싸웁시다! 우리를 정치적으로 무능력하게 만드는 당파적 구분에서 벗어납시다! 나치 친위대와 당파에 아부하는 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납시다!
우리는 순수한 학문과 진실한 영혼의 자유가 필요합니다. 어떠한 협박도 우리를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설령 대학문을 닫는다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국가에 대한 올바른 책임감을 가지고 각자 싸워서 우리의 미래와 자유, 그리고 명예를 지켜냅시다.
자유와 영예! 이렇게 소중한 독일의 두 가지 가치를, 히틀러와 그의 일당들은 지난 10년간 짓밟고 더럽히고 진부하게 만들고 왜곡했습니다. 국가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욕보이는 호사가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지난 10년간 모든 물질적, 정신적 자유와 독일 민족의 모든 도덕적 실체를 파괴하며 자유와 명예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이 독일의 자유와 명예라는 이름으로 유럽 전역에서 끔찍한 피의 향연을 벌여온 결과, 지금은 가장 어리석은 독일인조차 눈을 뜨고 있습니다.
독일 젊은이들이 일어나 이에 복수하고 또 속죄하지 않는다면, 독일이라는 이름은 영원히 더럽혀질 것입니다.
학우들이여! 독일 민족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1813년 나폴레옹이 몰락한 것처럼, 1943년에도 정신의 힘으로 국가사회주의의 테러가 멸망하기를 기대합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죽은 이들이 우리에게 간청하고 있습니다!
"민족이여, 깨어납시다.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자유와 영예의 회복이라는 새로운 깃발 아래 국가사회주의가 유럽을 지배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여러분! 이 전단을 최대한 많이 복사해 널리 전파해주십시오!
독일 저항 운동의 선언문(마지막 전단)
모든 독일인들에게 호소합니다!
전쟁은 종말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1918년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독일 정부는 점점 더 비중이 높아지는 U보트전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온 힘을 쏟아부으려고 합니다. 유럽의 동부 전선에서는 독일 육군이 후퇴를 거듭하고 있고, 서부 전선에서는 오히려 연합군의 역습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미국 군대의 전력이 아직 최고의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전시 상황을 보면 독일군을 압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
히틀러는 수학상의 숫자에만 확실한 믿음을 부여하면서 독일 국민을 파멸의 밑바닥으로 몰고 갑니다. 히틀러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전쟁 시간을 연장하는 것뿐입니다. 히틀러와 그를 지지하는 자들의 죄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죄의 한도를 넘어버렸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죄에 합당한 처벌의 시간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독일 국민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독일 국민은 지금의 상황을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는 말입니까? 독일 국민은 그들을 미혹하는 지배자들[3]들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며 멸망의 수렁 속으로 빨려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깃발에는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꼭 승리하자." 라는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나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히틀러는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그는 이미 전쟁에서 패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독일인들이여!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이 유대인들과 똑같은 운명을 감수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미혹한 지배자들과 똑같이 사악한 무리로 취급받는 것을 바라십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영원히 미움받고 배척받는 국민이 되어야 합니까?
안 됩니다.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하등 인간'[4]으로 취급받는 저 ' 국가사회주의자'들과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여려분이 그들과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여러분의 행동을 통해 실제로 증명해주십시오!
새로운 해방전쟁[5]이 시작되었습니다. 악에 물들지 않은 수많은 국민이 우리와 힘을 합해 싸우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우둔하게 두르고 있는 외투를 갈기갈기 찢어버리십시오! 나치의 그럴듯한 선전을 믿지 마십시오!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의 환상을 여러분의 몸속 마디마디에 심어놓으려는 나치의 선전에 속지 마십시오! '국가사회주의'의 승리가 곧 독일의 구원과 번영[6]을 가져올 것이라는 저들의 주장을 믿지 마십시오!'
그들의 범죄는 독일에 결코 승리를 안겨줄 수 없습니다.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즘과 관련된 모든 것들과 더 늦기 전에 결별하십시오! 끝내 결심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숨어 지내는 자들에게는 머지않아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정당한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한 나라에만 제한된 전쟁이 아니라 세계대전으로 확대된 이 전쟁의 종결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요?
제국주의적 권력을 옹호하는 사상은 어떤 근거를 가졌건 더 이상 인류에게 해를 입히지 않도록 영원히 사라져야 합니다. 패권에만 집착했떤 프로이센 군국주의는 두 번 다시 권력을 거머쥐어서는 안 됩니다.
유럽에 살고 있는 여러 민족이 넓은 아량으로 협력할 때 유럽을 재건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프로이센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국가가 행사하고자 했던 중앙집권적 권력은 싹이 나올 때부터 뿌리째 뽑아버려야 합니다.
다가오는 미래의 독일은 연방제가 아니고서는 갱생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쇠약해진 유럽의 몸속에 새로운 생명을 가득 채울 수 있는 힘은 건강한 연방제의 국가 질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국가사회주의'가 아닌 이성적인 '사회주의'를 통해 밑바닥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급자족적인 경제의 망상상은 유럽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어떤 민족, 어떤 개인이든 전 세계와 전 인류의 유익[7]을 옹호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상을 말할 수 있는 자유, 견해를 고백할 수 있는 자유, 제멋대로 정치하는 범죄적 권력 국가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일, 새로운 유럽을 건설하는 기본 토대가 바로 그것입니다.

독일인들이여! 저항 운동을 지지주십시오! 이 전단들을 배포해주십시오!
[8]

1942년 7월의 활동 이후 주춤하던 하얀 장미의 활동은 다음해인 1943년 2월에 재개되었다. 이들은 2월 18일 마지막 전단을 뮌헨 대학의 수업 종료에 맞춰 공개적으로 배포하다가 나치당원인 뮌헨 대학의 경비[9]에게 발각되었고 숄 남매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이후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이 조직에 가담했던 다른 멤버들도 잇달아 구속되었다. 마지막 전단에서는 나치에 맞서 파업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체포되어 인민재판소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았다. 한스 숄, 조피 숄, 크리스토프 프롭스트는 검사보다 더 피고를 추궁하고 욕설과 모욕을 서슴치 않았던 나치의 악질 판사인 롤란트 프라이슬러에 의해 단심제로 치러진 공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한스와 조피는 재판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을 발언했으나 프롭스트는 남겨진 갓난아기와 아내를 참작하여 재판장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청원하기도 하였다. 사형은 선고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단두대(Fallbeil)로 집행되었으며 한스 숄은 동부전선 참전 자격으로 총살형을 요구할 수 있는지 물었으나 거절당했다. 조피 숄은 그들이 공개처형(교수형)으로 나치의 선전도구로 사용될까 봐 걱정했으나[10] 비공개 처형이란 말을 듣고 안도했다고 한다.

한스 숄과 조피 숄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기 직전 각각 "자유여 영원하리" 와 "태양은 아직도 빛난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다른 멤버들이었던 쿠르트 후버와 빌리 그라프, 알렉산더 슈모렐은 두 번째 공판 이후 그해 여름까지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그들의 가족도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고 심지어 전단을 인쇄하는 것을 도왔거나 멤버 중 한 명인 크리스토프 프롭스트의 부인과 아이들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까지 체포해 6개월에서 1년의 실형을 선고할 정도로 하얀 장미에 대한 나치의 탄압은 극렬했다.

이때 이들의 목을 친 사람은 전설적인 사형집행인 요한 라이히하트였는데 그는 수많은 목을 쳤으나 미군정에 의해 사면된 후에는 나치 전범들의 목을 쳤다. 라이히하트는 대대로 내려오는 사형집행인 가문의 자손으로, 죽는 날까지 이들의 목을 친 것에는 아무 감정도 없고 자기 할 일을 했다고 주장하였다.[11]

이들의 활동은 쿠르트 후버 교수의 친구인 작곡가 칼 오르프에 의해서 알려졌다. 칼 오르프는 종전 직후 연합군에 전범으로 체포되었는데 자신이 하얀 장미의 창설 멤버 중 한 명이었고 쿠르트 후버 교수와 친구였다고 주장해 무죄로 석방되었지만 오늘날에는 하얀 장미의 활동과는 무관하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며 심지어 그의 자식들까지 아버지의 주장을 부인했다. 칼 오르프가 살기 위해서 자신이 알고 있던 하얀 장미의 활동을 이용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편 쿠르트 후버 교수가 생전 교류했던 인물 중에는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인 이미륵도 있다. 당시 이미륵은 나치 사상이 일본의 제국주의와 다를바 없다고 보고 같은 생각을 가졌던 후버 교수는 물론 그의 제자인 숄 남매와 반 나치 사상에 대해 토론을 해왔었다. 하얀 장미 사건 이후 이미륵은 나치 당국의 한층 엄혹해진 감시 하에서 전시 배급도 후순위로 밀리는 등 어렵게 살아갔지만 이미륵은 나치의 횡포에도 아랑곳하지 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켰고 도리어 어렵게 받은 배급을 후버 교수의 유가족들에게 나눠주었다. 이로써 이미륵은 얄궃게도 일본 제국 나치 독일 체제를 모두 겪었으며 양측으로부터 모두 탄압받았고 거기에 저항한 흔치 않은 이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런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에는 뮌헨에 후버 교수의 이름을 딴 쿠르트 후버 거리에 이미륵의 기념 동판이 새겨졌는데 바로 옆에는 후버 교수의 동판이 자리한다. 동판에는 이미록이 생전에 자주 하던 "사랑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가시동산이 장미동산이 되리라"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4.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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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청사 출판사에서 처음 발행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참고로 책 서문에 독일연방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테오도어 호이스(Theodor Heuss, 1884년 1월 31일 ~ 1963년 12월 12일)의 추도문이 수록되어 있다. 관련 글

종전 후 나치의 연좌제식 탄압과 감시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숄 집안의 맏딸 잉에 숄이 "하얀 장미"라는 책을 출간해 이들의 활동을 널리 알렸고 전후 하얀 장미의 멤버들은 동서독 양쪽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순수한 정신에서 나치에 반대한 활동을 한 인물들로 존경받게 되었다. 잉에 숄의 책은 한국에서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1970년대 출판되었는데 '아미자'라는 줄임말로 유명하며 10월 유신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기에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운동권 대학생들의 필독서이자 입문서였다.

뿐만 아니라 현대 독일, 특히 뮌헨 시내에서는 하얀 장미단의 흔적을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뮌헨의 거대 공립 기숙사 단지인 Studentenstadt는 하얀 장미단 단원들의 이름을 딴 Christoph-Probst-Str.(크리스토프 프롭스트 길), Willi-Graf-Str.(빌리 그라프 길)에 위치해 있으며 루트비히-막시밀리안 대학교(Ludwig-Maximilians-Universität München) 역시 메인 캠퍼스 근처의 광장들을 "Geschwister-Scholl-Platz"(숄 남매 광장) 및 "Professor-Huber-Platz"(후버 교수 광장)라고 명명하였다.[12] Karlsplatz의 광장 바닥에는 하얀 장미단 단원들의 이름과 생애, 추모사, 그리고 처형당하던 당시의 신문들을 조각 형태로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2003년에는 독일 역사의 위인들을 부조로 만들어 기리는 레겐스부르크[13] 발할라 기념사원에 반나치 운동가로는 최초로 조피 숄이 선정되어 화제가 되었으며 2012년에는 멤버 중 정교회 신자였던 알렉산더 슈모렐[14]의 희생과 수난을 기념하기 위해 해외 러시아 정교회는 그를 신순교자, 수난자로 시성하였다.

이들을 기리기 위해 여러 형태의 문화예술 작품도 창작되었는데 1983년에는 한국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박영희가 하얀 장미의 유인물과 조피 숄이 인민재판소에서 남긴 최후 변론, 쿠르트 후버가 남긴 마지막 편지 등의 문장을 조합해 '봉화(Flammenzeichen)' 라는 성악 독창곡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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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쿠르트 후버 슈트라세에 설치된 기념 동판. 좌측은 백장미단의 리더 쿠르트 후버 교수이며 우측이 이미륵이다.

쿠르트 후버 교수와 반나치 사상을 논의하던 사람 중에는 한국 독립운동가이자 '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인 이미륵이 있었다. 당시 이미륵과 후버 교수, 그리고 언어학자인 프란츠 티어펠더 교수 셋은 자주 모여서 나치를 비판하면서 의논하곤 했다. 이미륵 본인과 주변인, 티어펠더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미륵은 후버 교수의 깊은 이해자였으면서도 그의 활동을 상당히 우려스럽게 바라본 모양이다. 결국 그가 처형당하자 이미륵은 이 시대의 가장 고귀한 사람을 잃었다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건 이후 후버 교수의 가족들은 연좌제와 감시에 시달리면서 전시 배급도 제대로 못 받고 있었고 알던 지인들은 연루될까 두려워 이들과 연락을 끊었다.[15] 그러나 이미륵은 전술했듯이 나치의 횡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이 끝날때까지 친구의 가족들을 돌봐 주었으며 후버 교수의 유가족들은 물론 독일 사람들도 이미륵을 유일하고 진정한 친구이자 고결한 사람으로 기억하게 된다. 이렇듯 이미륵은 일본 제국 나치 독일 양쪽의 지배를 모두 겪으면서도 그에 모두 반대했던 몇 없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16] 이로 인해 2019년 뮌헨에 후버 교수의 이름을 딴 쿠르트 후버 거리에 이미륵의 기념 동판이 새겨졌으며 바로 옆에는 후버 교수의 동판이 자리한다. 동판에는 이미륵이 생전에 자주 하던 "사랑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가시 동산 장미 동산이 되리라"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2023년에 마지막 생존자였던 트라우테 라프렌츠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자택에서 향년 103세로 사망했다. #

5.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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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미 조피 숄의 마지막 날들
독일에서는 1982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이들의 이야기가 영화화되었는데 바로 1982년작인 "백장미"와 2005년에 개봉되어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영화 "조피 숄의 마지막 날들"이다. "백장미"가 활동을 시작하기 전의 이들의 일상적인 삶부터 활동을 하고 체포되고 처형되기까지의 과정을 전반적으로 그린 반면 "조피 숄의 마지막 날들"은 이들이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처형당하기까지의 과정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조피 숄의 마지막 날들"의 감독은 1982년 이후 이들에 대해 추가로 연구된 내용들을 꼼꼼이 검토해 영화 내용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TEAM D.O.C가 하얀 장미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꽃과 늑대의 제국」이라는 만화를 출판하기도 했는데 5권은 동인지로 나왔다고 한다.

히틀러의 마지막 비서였던 트라우들 융에는 2002년의 다큐멘터리 '맹점'에서 하얀 장미에 대해 언급하였다.[17] 종전 직후에는 '난 그때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나치에 부역했던 것을 합리화했지만 길을 걷던 중 우연히 조피 숄의 동상을 보고 자신과 같은 나이에 나치에 항거한 소녀가 있었단 사실에 충격을 받아 "젊음이 죄의 변명이 되진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증언했다. 전차 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가 이들을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독일군 참전자들이 이들을 곱게 보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참가자들과 달리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 데다 카리우스가 이들에 대한 폄하 발언을 했다는 증거도 없고 그냥 뜬소문일 가능성이 높다.[18]


[1] T4 작전. 말이 안락사지 사실상의 학살이었다. [2] 한스 숄은 의대생으로 동부전선에 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다. 덕분에 당시 참혹한 전장 상황을 이미 경험했다. [3] Verführer [4] Untermenschentum [5] Befreiungskrieg, 반히틀러 활동을 나폴레옹 전쟁에 비유한 것. [6] Heil [7] Güter [8] 이상의 전단 번역본들 출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2012, 평단) [9] 이 인간은 전후 연합군의 지령을 받은 독일 경찰에 체포되었고 나치 협력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재판에서 자신의 업무가 대학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광고물 살포를 저지하는 일이고 이걸 수행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5년형을 선고받았고 그대로 확정되어 1951년까지 복역했다. [10] 무장친위대의 특임대들이 저지르고 다닌 학살로, 특히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들을 이렇게 공개처형해 놓고 목에 팻말을 걸어 매달아 놓은 채 방치해 두었다. [11] 단두대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그는 처형 시 전통적인 프로이센 왕국 처형인 복장인 연미복에 실크햇, 가죽구두와 흰 장갑을 착용하고 예의를 갖추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극렬 나치로는 보지 않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전범 기소 시에도 제4단계인 단순가담으로 기소되었다가 약간의 형만 산 후 풀려났으며 심지어 계속 교도소에서 근무하며 나치 전범들의 목을 쳤고 전쟁 후에도 약 100여 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그런 연유인지 전후에도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었다. 묘비도 호화스러운데 매우 유복한 삶을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12] TUM과 LMU 등 뮌헨 내 주요 대학들의 메인캠퍼스가 근처에 있어 사실상 대학로 역할을 하는 Universität 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볼 수 있다. [13] Regensburg. 뮌헨에서 기차 타고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도시. [14] 출생지가 러시아이며 어머니가 러시아 정교회 사제의 딸이었다. [15] 대표적인 사람이 후버 교수의 친구였던 작곡가 칼 오르프인데 그는 게슈타포가 들이닥치기 직전에 후버 교수에게 우연히 연락했다. 이때 후버 교수의 부인이 그에게 나치 쪽에 어떻게 손을 좀 써 달라고 빌었지만 그는 엮이기 싫어서 이를 거절했다. 결국 후버 교수는 처형당했고 후버 부인은 이후 오르프를 두 번 다시는 보지 않았다. [16] 일본에는 저항하면서도 나치는 좋게 바라보던 독립운동가들이 몇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초대 국방장관 이범석과 초대 교육부(문교부) 장관 안호상(공자 한반도인설 등 대한민국의 유사역사학자의 거두라는 악명으로 각광(?) 받고 있다.)으로 두 명 다 이미륵처럼 1930년대에 독일에 있으면서 히틀러 정권을 몸소 겪었다. [17] 이 인터뷰는 후일날 부분적으로 다운폴에서 인용되었다. [18]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에도 유명한 앗! 시리즈의 2차대전 편에선 '차라리 나치들에게 나를 잡아가달라고 하지 그랬어'라고 비꼼을 당하는 등 여러 가지로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있기도 하다. 오토 카리우스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