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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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趙煥생몰연도 불명
전진의 인물. 전진의 상서 조곤(趙琨)의 아들.
2. 생애
황시 원년(351년) 4월, 동진의 양주(梁州)자사 사마훈이 보•기 30,000명을 거느리고 시평(始平)으로 진군하자, 이제 막 관중 일대에 자리잡은 전진의 천왕 부건은 오장원(五丈原)으로 달려가 사마훈을 막았다.천왕 부건은 사마훈과 여러 차례 싸워서 전부 승리하여 동진군을 격퇴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여기에 참전했던 상서 조곤은 전사하였고 그 시체는 동진군에 의해 버려져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조곤의 아들 조환은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 헤멨지만 끝내 찾을 수가 없어 통곡하였는데, 그때 한 까마귀 무리가 울음소리를 내며 어떤 산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조환이 그 까마귀 무리를 따라 산으로 들어갔더니, 과연 그곳에서 아버지 조곤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