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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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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魚遵
(? ~ 357)

전진의 인물. 자는 불명. 옹주(雍州) 빙익군(馮翊郡) 출신.

2. 생애

영화 6년(350년) 정월, 본래 포홍을 따르던 어준은 포홍이 대장군, 대선우, 삼진왕(三秦王)을 자칭하자 우장군에 임명되었다.

영화 6년(350년) 8월, 멸망한 후조의 옛 장수 두홍(杜洪)이 장안(長安)을 점거하고 자칭하며 할거하고 있었다. 부홍 사후 그 무리를 거느리던 부건은 장안을 근거지로 하여 관중 일대를 장악하기 위해 옹주자사를 자칭하고, 무리를 통솔해 서쪽으로 진격하였다. 어준은 선봉에 서서 맹진(盟津)에 먼저 도착한 후, 부교를 놓아 본대가 황하를 건널 수 있게 하였다. 이후 어준은 부청과 합류하여 황하 이북을 휩쓸면서 지나는 곳마다 성읍을 모두 함락시켰고, 그 소식을 들은 두홍은 두려워 장안을 더욱 굳게 닫아 지켰다.

황시 원년(351년) 정월, 마침내 장안성을 함락시킨 부건이 천왕(天王), 대선우에 즉위하면서 전진 정권이 세워졌다. 어준은 개국의 공을 인정받아 태자태사에 제수받았다가 얼마 안 지나서 상서좌복야로 승진하였다.

황시 3년(353년) 7월, 사공(司空)에 임명되었다.

황시 4년(354년) 6월, 동진의 대사마 환온이 북벌에 실패하고 돌아가자, 어준은 환온을 막은 공로가 있어 태위로 승진하였다.

황시 5년(355년) 6월, 병에 걸려 위독해진 경명제 부건은 어준 등을 불러 태자 부생을 보정해달라는 유조(遺詔)를 내리고 얼마 안 지나서 붕어하였다.

수광 3년(357년) 5월, 황제 부생이 잠을 자다가 거대한 물고기가 부들을 먹는 꿈을 꾸었는데, 전진의 황성인 '부(苻)'씨는 본래 부들을 뜻하는 '포(蒲)'씨에서 개성한 것이었기에 부생은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마침 당시 "동해(東海)의 거대한 물고기가 용이 되니, 남자는 모두 왕(王)이 되고 여자는 모두 공(公)이 된다."라는 구절의 동요가 유행한다는 소문을 들은 황제 부생은 어준과 그 아들 7명, 손자 10명을 잡아들여 전부 주살하였다.

영흥 원년(357년) 9월, 정변을 일으켜 황제 부생을 몰아낸 대진천왕(大秦天王) 부견은 억울하게 멸족당한 어준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관직을 태사로 추증해 태사의 예로써 다시 장사를 지냈으며, 추시하여 '광녕공(廣寧公)'이라 하였다. 또, 살아남은 어준의 자손들은 재능에 알맞게 발탁해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