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08:45:56

아부심벨 대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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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위치
이집트 아스완
북위 22° 20′ 14″
동경 31° 37′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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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79년
등재기준 (ⅰ)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ⅲ)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ⅵ)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지정번호 88 }}}}}}}}}

1. 개요2. 역사3. 구조
3.1. 대신전3.2. 소신전
4. 이전5. 가는 길6.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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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abusimbelreconstructed.jpg 색이 벗겨지기 전 모습의 복원도[1]
이집트 아스완의 남쪽 280 km 지점에 있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2세가 건설한 신전이다. 룩소르에 있는 카르나크 신전 그리고 룩소르 신전과 함께, 람세스 2세의 왕성한 과시욕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모래에 파묻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1813년 스위스 출신의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2]가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는 신전의 입구를 찾지 못해 직접 발굴하진 못했기 때문에 지인이었던 이탈리아의 탐험가 조반니 바티스타 벨초니(Giovanni Battista Belzoni)에게 알렸고, 1817년 벨초니가 발굴한 다음에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신전이 위치한 아부심벨은 수단 공화국과의 국경 지대에 있는 마을로, 이집트 최남단에 있다. 이곳의 지명 아부심벨은 부르크하르트가 이곳에 왔을 때 안내단을 이끌었던 이집트인 소년의 이름, 아부 심벨에서 따왔다고 한다. 참고로 지금이야 '아부심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옛날에는 당연히 그 명칭으로 부르지 않았다.

1979년 '누비아 유적 – 아부 심벨에서 필레까지'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2. 역사

파일:abu-simbel-ramesses.jpg
파일:25f7c098d7be2a6faf40f3d1752f2cb4.jpg
1800년대 모래에 파묻힌 모습 1800년대 유럽 관광객
파일:1280px-John_Beasly_Greene_(American,_born_France_-_(Ibsamboul._Spéos_de_Phré)_-_Google_Art_Project.jpg
아부심벨을 처음으로 찍은 사진

이집트 신왕국 파라오였던 람세스 2세는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주이자 수많은 건축물들을 남긴 군주였다. 당시 파라오들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방법은 바로 자신의 이름을 새긴 건축물들을 짓는 것이었다. 본인을 가장 위대한 파라오라 여겼던 람세스 2세는 그 자부심에 걸맞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전과 궁전들을 지었고, 개중 하나가 바로 아부심벨 신전이었다.

특히 당시 람세스 2세는 이집트 남부, 나일강 상류의 누비아 지방에 여러 신전들을 지어댔다. 당시 누비아는 아직 완전히 이집트에 동화되지 못한 지역이었고, 누비아인들을 가장 빠르게 복속, 동화시키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거대한 건설 프로젝트들을 통해 이집트의 국력과 경제력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 신전의 원래 위치는 강가였기 때문에 누비아인들은 이집트에 가기 위해 나일강 따라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웅장한 아부심벨 대신전을 마주쳤을 것이다.

람세스 2세는 나일 강의 제2폭포 인근의 암벽을 통째로 파내어 장대한 암벽 신전을 깎아 아부심벨 신전을 축조했다. 신전은 람세스 2세 본인에게 바쳐진 대신전, 그리고 그의 아내이자 왕비인 네페르타리에게 바쳐진 소신전으로 이루어져있었다. 공사는 기원전 1264년 즈음에 시작해 기원전 1244년 즈음에 끝났다. 약 스무 해에 걸쳐 엄청난 대공사를 한 셈.

그러나 고대 이집트의 전성기인 신왕국이 몰락하면서 아부심벨 신전 역시 서서히 잊혀졌다. 이집트 왕국의 세력이 쇠하며 신전은 모래 속에 파묻히기 시작했고, 기원전 6세기 경에는 이미 신전의 거상 무릎까지 모래가 차올랐다고 한다. 그 상태로 1813년까지 아부심벨 신전은 모래 속에 그대로 묻혀있었다. 대략 2,400년 가까이 모래 속에 묻혀있었던 덕에 아부심벨은 역설적으로 다른 이집트 신전에 비하여 훼손을 덜 당할 수 있었다. 물론 도굴꾼들이 모래를 파내고 신전 내부를 도굴하기는 했지만, 아예 기둥이나 건물 구조 자체가 무너진 다른 신전들에 비하면 훨씬 보존 상태가 양호했다.

3. 구조

파일:the-temple-at-abu-simbel-album.jpg 내부 구조도[3]

3.1. 대신전

흔히 '아부심벨'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거대한 좌상 4개가 줄지어 앉아있는 신전이 바로 대신전이다. 대략 짓는 데에 20년 정도가 걸렸으며, 람세스 2세가 즉위한지 24년 정도 되는 기원전 1265년에 완공되었다. 아문, 라 호라크티, 프타, 람세스 2세 본인에게 헌정된 신전으로 람세스 2세가 생전 지은 수없이 많은 신전들 가운데에서도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신전으로 손꼽힌다.

호루스 신과 하토르 신의 작은 입상들이 줄지어 선 입구에 있는 20 m에 이르는 좌상 네 개는 모두 람세스 2세로 각각 상, 하 이집트를 의미하는 의상을 입은 형상이다.[4] 안타깝게도 보는 방향으로 왼쪽 두 번째 좌상은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지진 때문에 상체 부분이 부서졌지만 떨어진 몸체가 바로 아래에 보존되었음도 아부심벨의 묘미다. 이 좌상들은 아부심벨 대신전의 간판이라고 해도 좋다. 네 개의 좌상들 사이사이에는 훨씬 조그만 크기로 람세스 2세의 가족들의 상이 세워져 있다. 아무리 커봤자 람세스 2세의 무릎 높이 밖에 오지 못하는데, 어머니인 투이, 아내인 네페르타리, 장남과 차남인 아문헤르케세프와 람세스 B, 장녀를 포함해 총 여섯 명의 딸들이 주인공이다.

좌상 뒤쪽에 있는 거대한 파사드는 높이 33m, 폭 38m에 달하며 파사드 위쪽의 프리즈[5]에는 스물두 마리의 개코원숭이들이 새겨져 있다. 원숭이들은 양팔을 올려 태양을 찬양하는 모습을 하고 있고, 몸에는 람세스 2세의 딸과 히타이트의 왕 하투실리 2세의 결혼을 증거하는 석판이 있다. 입구 바로 위에는 큼직한 벽감이 하나 파여있고 그 안에는 태양신 라의 입상이 들어가있다. 라는 왼손에는 깃털을, 오른손에는 정의와 질서의 여신 마아트를 들고 있는 모습. 라의 몸에는 람세스 2세의 즉위명이기도 한 '우세르 마아트 라'가 새겨졌다.
파일:f5af47d725ab9845d39e9a006bcae3db.jpg
파일:The-Inner-Sanctuary-of-Abu-Simbel-temple.jpg
내부 모습[6]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오시리스의 모습을 한 람세스 2세의 입상 여덟 개가 세워진 기둥의 방이 있는데, 벽에는 카데시 전투의 장면들을 새겼다. 크기가 무려 20m에 달하는 입상 여덟 개가 줄을 맞추어 서있기 때문에 실제로 안에 들어가면 꽤나 장중한 느낌을 준다. 방의 길이는 18m, 너비는 16.7m이며 여덟 개의 석상들이 기둥으로써 천장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입구에서 본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조각상들은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백색 왕관을 쓰고 있고, 오른쪽에 있는 조각상들은 상하이집트의 통합 왕관인 이중관 프셴트를 착용하고 있다. 조각상들 뒤의 벽에는 람세스 2세가 치른 전투들의 벽화가 새겨져 있고 대부분이 카데시 전투에 관한 것이지만 일부 누비아나 리비아 지방에서 일어난 전쟁들을 묘사한 그림도 있다.

기둥의 방을 지나면 네 개의 기둥들이 천장을 떠받치는 상대적으로 더 작은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방에는 람세스 2세와 그의 아내 네페르타리가 창조신 아문, 태양신 라와 함께 태양 방주를 타고 내세로 향하는 모습이 새겨졌다. 이 방마저 지나면 마침내 가장 안쪽에 있는 조그만 크기의 성소로 들어갈 수 있다. 가장 깊숙한 성스러운 공간에는 신(神) 네 위의 좌상이 있다. 라 호라크티, 신격화된 람세스 2세, 아문 라, 프타 신으로, 당시에는 각각 헬리오폴리스, 테베, 멤피스를 수호하는 신들이었다.

1년 중 2월 22일과 10월 22일에 가장 안쪽의 성소에 태양빛이 약 20분간 들어와 신상을 비추지만, 어둠신인 프타의 상에는 이 날에도 빛이 비치지 않는다. 원래는 람세스 2세의 즉위일인 2월 21일과 람세스 2세의 생일인 10월 21일이었는데,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기 위한 공사를 할 때, 날짜를 정확히 맞추고자 1년이나 시간을 들여 계산을 하였지만 결국 원래 날짜보다 각각 하루 늦게 할 수밖에 없었다.[7] 이 날들에는 아부심벨 대신전 주위에 사는 사람들이 전통음악과 춤을 비롯하여, 이슬람 수피즘 교도들이 추는 춤 등을 공연하는 큰 축제를 연다.

3.2. 소신전

파일:아부심벨 이집트 3.jpg
전경
파일:아부심벨 이집트 1.jpg
야경
규모가 작아서 소신전이라 불리지만 정식 이름은 ' 하토르 네페르타리의 신전'이다. 대신전에서 북동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장소에 세워졌고 사랑의 여신 하토르와 람세스 2세의 왕비인 네페르타리에게 바쳐졌다. 참고로 이 신전은 아케나텐이 왕비인 네페르티티를 위해 신전을 지어준 이래 고대 이집트 역사상 두 번째로 왕비를 위해 지어진 신전이다.

대신전과 마찬가지로 암벽을 그대로 깎아 입구를 만들었고, 정면에는 람세스 2세의 입상 네 개와 네페르타리의 입상 두 개가 세워져 있다. 두 사람의 입상의 크기는 거의 같으며 그들의 입상 아래에는 왕자와 공주들의 입상이 작은 크기로 세워져 있다. 신분이 높을 수록 인물의 크기를 크게 묘사했던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와 왕비의 크기를 거의 비슷비슷하게 조각해놓은 경우는 아부심벨의 소신전이 거의 유일하다. 전통적으로 왕비의 조각상을 세우긴 했어도 파라오의 조각상 무릎 정도까지의 키로 깎아놓는 것이 전통적인 관례였기 때문. 파라오와 왕비의 조각상들 바로 곁에는 왕자와 공주들의 상이 세워져 있다.

소신전의 구조배치는 대신전을 축소해놓은 것과 비슷하다. 다만 대신전의 경우 입구를 통과하면 여덟 개의 거대한 파라오 입상이 세워진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반면 소신전은 입구를 통과하면 여섯 개의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방이 나온다. 기둥에는 사랑의 여신 하토르의 머리모양이 새겨져 있고, 벽과 기둥에는 네페르타리 왕비가 , 크눔, 콘수, 토트, 이시스, 마아트 등의 신과 노니는 장면이 있다. 또한 람세스 2세가 신들에게 향료를 바치는 장면도 있다.

여섯 개의 기둥이 있는 방을 통과해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세 개의 문이 있는 벽과 조그만 방이 나온다. 이 곳에도 역시 신들을 찬미하는 내용의 벽화가 가득한데, 주로 소의 모습을 한 하토르 여신에게 네페르타리 왕비가 공물을 바치고 숭배하는 모습이 주를 이루고 있다. 소신전 맨 안쪽에는 조그마한 크기의 성소가 있다. 이 곳에도 대신전처럼 신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남아있지 않고, 성소에 남은 것은 하토르 여신과 합일을 이루어 신격화된 네페르타리 왕비를 그린 벽화 정도 밖에 없다.

4. 이전

파일:Abu_Simbel_relocation_by_Zureks.jpg
아스완의 누비아 박물관에 있는 신전의 옛 위치 (아래쪽)과 현 위치 비교 조감도

20세기 중반에 이집트 공화국을 건국한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아스완 하이 댐'을 지으며 상황이 급변했다. 이집트 정부가 나일 강 상류에 큰 댐을 짓자, 점차 물이 차오르면서 나일 강변에 자리한 아부심벨 신전이 침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결국 1959년에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초대형 규모의 문화재 보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아부심벨 신전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전문가들은 아부심벨 주위에 소규모 방파제를 지어 아예 통째로 격리하거나, 거대한 돔을 지어 수중에서 보존하는 방안 등 여러 대책들을 제시했으나 예산상의 문제로 결국 암벽을 포함한 신전 전체를 뜯어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는 안이 채택되었다.
파일:아부심벨 신전 공사4.jpg
파일:아부심벨 신전 공사8.jpg
파일:external/eandt.theiet.org/640_abu-simbel-t.jpg
파일:아부심벨 신전 공사18.jpg
공사 당시 사진들

1964년에 아부심벨 신전을 해체하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당시 기준으로 4천 2백만 달러, 2017년 기준으로는 3억 달러, 한화로는 3,600억 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아부심벨 신전을 뜯어 위쪽의 고지대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고고학자들은 신전을 포함한 암벽 전체를 평균 20톤에 달하는 거대한 돌덩어리들로 조각조각 잘라냈다. 이렇게 신전을 해체한 뒤에는 강에서 200m 정도 더 떨어지고 고도 상으로는 65m 정도 더 높은 고지대에서 다시 신전을 조립했다. 물론 모든 유적들을 모조리 해체해 옮기지는 못했기에 일부 유적은 나일 강 속에 수몰되었지만, 아부심벨 신전을 포함한 핵심 유적들은 모두 안전히 이동했다고 한다. 아부심벨을 자세히 보면 공사 당시 신전을 분할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파일:Abusimbel.jpg
이전 작업의 마무리 단계

1967년 신전을 언덕 지형으로 이전하면서 신전이 매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언덕과 언덕 내부 사이에 대형 을 설치하였다. 신전 오른쪽에 돔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 이 곳으로 들어가면 신전이 콘크리트 돔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천년의 시대를 사이에 두고 세워진 고대와 현대의 건축 양식이 공존하고 있는 기묘한 모습이다.

아스완 댐으로 생겨난 나세르 호 위쪽 언덕 평평한 지대로 이전했기 때문에, 협곡 사이의 웅장한 모습을 기대했다면 예상과 다른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 # 그래도 좌상 크기가 커서 유적 자체의 압도적인 분위기는 있다.
파일:덴두르 신전 1850년 4월 7일.jpg
파일:덴두르 신전 1860년대.jpg
1850년 덴두르 신전 1860년대 덴두르 신전
파일:덴두르 신전 1974년.jpg
파일:덴두르 신전.jpg
1974년 조각난 덴두르 신전 현재 덴두르 신전

아스완 하이 댐을 건설할 당시 초기에는 미국이 자금 지원을 하였지만 나세르가 아랍 사회주의를 주장하자 미국이 자금 지원을 중단하였다. 하지만 이집트와의 관계 개선을 위하여 아부심벨 대신전을 이전할 당시 미국이 특히 많은 지원을 하였고, 이집트 정부는 고마움의 표시로 아스완 하이 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있었던 덴두르 신전을 미국에 기증하였다. 미국은 이 신전을 분할하여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안으로 옮겨 다시 조립하여 전시 중이다.[8]

다른 서방국들 역시 이 사업을 지원하였고 마찬가지로 이집트 정부는 고마움의 표시로 수몰될 위기에 있던 다른 중고대 신전들을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서독 정부에 기증하였다.
사실 서방국들에 증여한 신전들의 경우 아스완 댐이 건설되면 아부심벨 대신전과 같이 수몰될 운명이었다. 그래서 수몰되는 것보다는 다른 나라에서라도 보존되는 것이 더 나았다. 어차피 비교적 가치가 떨어지는(?) 소규모 신전이라 이집트 정부 입장에서는 크게 아쉬울 것이 없었다.

대한민국도 아부심벨 대신전 이전을 위하여 1만 달러를 지원하였고, 1963년 10월 1일에는 3원, 4원권의 누비아 유적 보호운동 기념우표를 발행하여 그 수익금의 일부를 유네스코에 기부하였다.

아부심벨 대신전 이전 사업을 계기로 1972년에는 세계문화유산협약이 생겨난다.

5. 가는 길

기차로는 이동할 수 없다. 카이로 룩소르에서 비행기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지만, 주로 관광객들은 인접한 도시 아스완에서 버스로 이동한다. 아주 드문 케이스지만 렌터카를 빌려 직접 운전해 갈 수도 있긴 하다. 다만 난이도가 상당한 편. 도전하고 싶다면 한상기 기자의 유튜브 여행기 #를 참고해보자. 어느 시간에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아스완에서 아부심벨로 가는 지방 버스의 출발 시간은 08시와 17시이며, 이 밖에도 새벽 2~3시에 여행사들이 제공하는 버스들이 출발한다. 아스완에 있는 대부분의 호텔들이 아부심벨 대신전으로 가는 버스 여행객을 모집하고 있다. 여행객들은 가격 흥정 뿐 아니라 버스의 성능, 그리고 출발할 때 아침 식사를 위한 도시락을 제공하는지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워낙에 접근이 어렵고 멀어서 이집트 최대의 랜드마크이자 관광지들 중 하나지만, 그 명성에 비해서 찾는 사람은 하루에 몇 백명 정도로 적은 편에 속한다.

옛날에는 모든 버스들이 무장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해야 했었고 때문에 오전에 출발해 당일치기만 됐으나, 이제 그렇지 않다.[10] 심지어 탑승객들의 신원조차 확인하지 않는다. 물론 그와 무관하게 여행 중 여권과 신분증은 늘 가지고 다녀야 한다. 아부심벨에서 아스완으로 가는 지방 버스는 08시와 14시에 출발하며, 터미널에서 내린 뒤 아부심벨 대신전까지 1.5km를 이동해야 한다. 비행기로 이동할 경우, 왼쪽 앞자리 좌석에서는 창가에서 아부심벨의 공항에 착륙할 때 아부심벨 대신전과 아스완 하이 댐이 만든 낫세르 호수를 하늘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00년부터 밤에는 소리와 빛의 쇼를 상영한다. 컴퓨터에 의해 상영되는 아부심벨 대신전을 비추는 각양각색의 레이저와 빛과, 아부심벨 대신전과 람세스 2세를 웅장하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쇼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입장료는 55이집트 파운드이며, 아직까지는 한국어로는 상영되지 않는다. 다만 이 쇼를 감상하려면 아부심벨에서 하루 묵어야 하는데, 아부심벨에는 호텔이나 레스토랑의 수가 적고 가격도 비싸므로, 관광객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유적 보호를 위해서 내부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물론 대부분 이집트 유적들이 그렇듯이 300EGP 또는 17달러[11]를 내고 사진 촬영이 되는 티켓을 사면 플래시를 쓰지 않는 조건으로 사진 찍어도 된다. 다만 신전 안이 아주 어둡기 때문에 조리개 값이 아주 낮은 렌즈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좋은 품질의 사진을 찍기는 어렵다.

6. 매체에서

  • 2024년 9월 9일 JTBC 톡파원 25시에 등장. 이 날도 더운 날씨에 알파고가 고생했다. 그런데 JTBC는 바로 옆에 있는 아부 심벨 소신전은 통편집해버렸다.(...)

6.1. 영화

6.1.1. 나일 강의 죽음

작중의 배경으로 나온다. 다만 실제 아부 심벨은 아니고, 대단히 비슷하게 만든 세트. 1978년에 개봉된 나일강의 죽음에서는 아부심벨 대신전이 실제로 배경으로 등장한다.

6.2. 게임

6.2.1. 도미네이션즈

전설 유물로 등장한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전설 유물/람세스 2세의 아부 심벨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2.2. 심즈 3

좌충우돌 세계모험 확장팩을 설치했을 때 이집트의 탐험할 수 있는 여행지 중 하나로 나오며, 탐험 난이도는 게임 안에서 가장 어렵지만 못할 만큼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정확히는 아부 심벨이 아니라 그와 몹시 비슷한 가상의 유적인데, 애초에 심즈 시리즈 자체가 실제 현실이 아니고 그에 따라 작중에서도 빼도 박도 못하게 이집트이긴 하지만 "이집트" 라고 나오지는 않는다.

6.2.3. 시드 마이어의 문명

피라미드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등대 등 다른 이집트산 유적들에 밀려 아직까지 불가사의로 나온 적은 없다. 다만 문명 6의 시나리오 중 하나인 나일의 선물에서 정책 카드로 나오며, 리더 패스에서 추가된 이집트 문명의 지도자 람세스 2세의 지도자 특성 이름으로 나왔다.
[1] 배경의 언덕은 아래에 서술된, 수몰 위기 이후 이전한 현재의 인공 언덕 모습이다. [2] 이 사람은 페트라를 발견한 인물이기도 하다. [3] 신전을 이전할 때 만들어진 거대한 콘크리트 돔이 신전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돔 안쪽은 완전히 비어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원한다면 돔 내부에 들어가볼 수도 있다. [4] 여담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은 의외로 신상은 이렇게 거대하게 제작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커다란 상들은 늘 파라오가 대상이었다. [5] 고대 건축 양식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건물의 기둥이나 회랑 위에 새겨진 가로띠 형태의 양각 장식. [6] 왼쪽 사진은 입구를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첫 번째 홀, 오른쪽 사진은 맨 안쪽에 있는 성소이다. 프타, 아문, 람세스 2세, 라 호라크티의 순서로 앉아있다. [7] 게다가 지난 3천년 동안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 때문에 태양빛의 각도가 미세하게 차이가 나면서 더욱 오차가 축적되었다. 당시에는 아마 이보다 훨씬 정확했을 것이다. [8] 덴두르 신전은 기원전 15년에 건설되었다. 이 신전은 역사상 최초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해외로 반출된 이집트의 문화재 가운데 하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입수한 유물들만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9] 통째로 옮겨진 다른 신전들과 달리 이 신전의 경우 규모가 워낙 커서 독일이 대문만 가져갔다. [10] 한상기 기자의 아스완에서 아부심벨로 가는 여행기에 따르면 본인도 인터넷에서 투어버스에 경찰이 붙어 호위를 받으며 간다고 봤지만 실제로는 한번도 못봤다며 꼭 그런것은 아닌거 같다는 얘기를 하였다. 참조 [11] 2018년 5월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