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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LG 트윈스, 넥센 히어로즈,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 소속 우완 투수 심수창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2. 아마추어 시절
1991년 10월 7일부터 21일까지 서울시 야구협회가 주최하는 서울시 국민학교 추계 야구리그전에서 변인재, 박용택, 조인성, 이재우 등과 우승했다.
2.1. 배명고등학교 야구부
배명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뛰어난 실력의 야구 유망주로 유명했다. 1997년 고등학교 1학년 때 구속이 145~146km/h 정도가 나왔다. 현 SBS 스포츠 해설위원 이동현의 말에 따르면 서울권 고교야구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투수였다고 한다. 손승락은 고교 시절 대구에서 야구를 하고 있을때 심수창의 얼굴은 몰랐지만 '서울 배명고에 심수창이라는 선수가 잘 한다더라'는 소문을 들어 그때부터 심수창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고교 시절 훗날 심수창이 은퇴할 때까지 사용하는 등 번호 67번을 고르게 된다. 야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등 번호는 아니다.[1] 이 시기의 어린 야구선수들은 상당수가 박찬호의 61번을 달기 원했다. 하지만 선배가 사용하고 있어 비슷한 67번을 선택하게 된다.
“61번 하면 박찬호 선배가 떠오르잖아요. 67번 하면 심수창이 떠오르게 해보자는 생각에서 67번을 선택했어요. 흔한 번호가 아니다 보니 대학 때도 그렇고 LG에서도 쓰는 선수가 없더라고요. 넥센으로 이적해서도 67번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역시나 쓰고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아마 지금 8개 구단에서 67번 쓰는 선수가 저랑 삼성의
이영욱밖에 없을 거예요. 영욱이도 시즌 초에 40타수 무안타라는 불명예를 안았었어요. 영욱이를 만나서 ‘67번끼리 뭐 하고 있는 거냐. 힘내자’라고 이야기를 나눴던 생각이 나네요.”- 넥센 이적 후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박찬호의 61번도 원래 그가 원하던 등 번호가 아니었다. 다저스 입단 당시 박찬호가 원했던 등 번호는 16번이었다.
공주고와
한양대 시절 달았던 등번호가 16번이었기 때문이다. 16번은 박찬호의
공주고 -
한양대 3년 선배인
손차훈으로부터 물려받았다. 1993년부터 쓰던 16번이 익숙해 다저스에서도 쓰려 했으나, 당시 다저스의 16번은 당시 투수코치였던 론 페로나스키가 달고 있어 아마추어 시절의 등 번호를 뒤집어 61번을 달게 된다. 16번이 61번으로, 또 61번이 67번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고등학교 1학년 때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진출을 고려하기도 하였다. 부모님이 쉬는 날 운동을 하러가자고 했고 중앙고등학교에 자신과 엄정욱[2]을 포함한 여러 선수가 있었다. 그곳에서 외국 스카우터들이 스피드 건을 들고 재는 등 피칭에 관심을 보였다. 그 이후 그해 실제로 외국 스카우터들이 보는 자리에서 1~3차까지의 테스트를 모두 통과했고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80만 달러에 입단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투구폼을 스리쿼터 스로에서 오버핸드 스로로 교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에게서 코치를 받았고 이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밸런스가 무너지고 급기야는 선수 생명에 큰 지장이 있는 블래스 신드롬[3]까지 발생하면서 구단의 마지막 확인차 해본 캐치볼에서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해 계약이 미루어지다가 결국 무산되었다. 이후 아버지의 정성 어린 노력 그리고 하루에 다섯 시간씩, 1,000개가 넘는 투구 연습으로 간신히 증상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린 한국인 고교 야구선수에게 메이저 리그 구단으로부터 거액의 입단 제의를 받은 사실은 절대 과장되거나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다. 박찬호의 메이저 리그 진출 성공으로 1990년대말 한국인 유망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실제로 보스턴 레드삭스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이상훈, 조진호, 김선우, 송승준, 오철희, 채태인, 총 6명의 한국인과 계약한 전력이 있고 이 중 조진호, 이상훈, 김선우는 차례로 메이저 리그에서 뛰었다. # 이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는 '코리아팀'으로 불릴 만큼 한국의 전도유망한 선수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 아마 블래스 신드롬이 아니었다면 위의 선수들 중에 한 명이 심수창이었을지도 모른다.
1997년 제52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개교 최초로 결승에 진출했지만 김광삼, 현재윤, 안치용, 봉중근[4]이 활약한 신일고에 패배해 준우승한다. #
1999년 배명고 3학년 시절에는 제3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투수 겸 타자[5]로 동기생 강타자 이명호[6]와 정재훈과 함께 경동고를 꺾고[7] 개교 최초로 대통령배 결승전, 우승 문턱까지 이끌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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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고등학교 야구부 선수시절 (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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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고등학교 야구부 선수시절 (투수) |
1999년 5월 1일 동대문야구장에서 벌어진 제3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성민국, 진종길[8], 이승엽[9] 그리고 2학년 트리오 추신수[10]와 정근우[11], 김백만이 있던 대통령배 4회 우승경력의 부산고와 맞섰다.
심수창이 2회 초 안타로 출루하고 1사후 후속타자 희생플라이로 선취 득점하며 배명고는 경기를 앞서갔으나 4회 말 추신수의 솔로 홈런과 6회 말 이승엽의 적시타로 역전을 허용했다. 7회 초 다시 동점을 만들고 2 아웃 주자 1, 2루 상황에서 6번 타자 심수창이 타석에 올랐다. 이전 타석까지 안타 2개(2루타 1개) 볼넷 1개로 100% 출루를 보여주고 있었다. 투수는 추신수. 하지만 심수창을 걸러 볼넷으로 출루한다.[12] 3-3으로 맞선 7회 말 심수창이 등판한다. 4번 타자 구인환의 적시타로 재역전당했고 3-4로 뒤진 8회 말 부산고의 공격이 시작됐다. 정근우가 안타로 출루하고 이승엽의 희생번트로 1사 2루, 안타를 허용해 1사 1, 3루가 되었다. 부산고 9번 타자 김병훈이 갖다댄 번트를 심수창이 3루 주자 정근우를 의식하다 실책하여 만루가 된다. 1사 만루에서 1번 타자 정우현의 기습적인 스퀴즈 번트를 또 실책하여 실점하여[13] 3-5, 2번 타자 진종길이 또 한 번의 스퀴즈 번트 성공해 승부의 종지부를 찍었다.[14] 8회말 3번 타자인 추신수를 투수 앞 땅볼로 아웃시켜[15] 이닝을 종료했지만 9회에 승부를 뒤집지 못하고 결국 3-6으로 심수창의 배명고는 아쉽게 패배했다. 결승 영상 결승 영상2 결승 영상3[16][17]
하지만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에서 지명될 당시 2차 11라운드로 지명되었는데, 그 당시 12라운드밖에 없었다는 것을 볼 때 실력에 비하면 굉장히 뒷순위였다.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다는 소문을 들은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이 서로 지명하지 않기로 담합하였다는 말도 있다.
1999년 11월 2일 지명 당일날, LG 트윈스가 심수창을 지명했지만, 심수창은 곧바로 프로에 직행하지 않고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신기한 것은 이때 투수가 아닌 외야수로 지명을 받았다고 한다.
후에 심수창이 스톡킹 등에서 언급한 바로는 고등학교 2학년때 위에서 언급한 입스에 걸렸고 이 때문에 투수로서 성적이 좋지않아 11라운드에, 그것도 타자로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2.2. 한양대학교 야구부
2000년 한양대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2001년 7월 제56회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강철민, 신민기, 김민우와 함께 출전하여 8강에서 인하대 #, 7월 25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고려대학교를 4-1로 꺾고 우승했다. #
2002년 8월 2일부터 8월 11일까지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1회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 정재복, 이택근, 손승락, 조영훈 등과 함께 출전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조별 예선 A조[18]에 편성되었다. 이때 손승락과 룸메이트를 하게 되면서 둘의 긴 인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19] 4일 첫 경기에서 홈 팀 이탈리아에 패배 #, 5일 중국에 승리 #, 6일 캐나다에 승리 #, 7일 미국[20]에 패배 #하며 2승 2패(23득 23실)로 8강에 진출했으나 10일 일본과 8강전에서 6-1로 패배하였다. #. 12일 대회 5.6위 결정전에서 이탈리아를 꺾어 # 최종 결과는 3승 3패(24득 29실)로 5위[21]를 기록했다.
2002년 9월 3일,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추계리그 예선리그, 청주에서 열린 C조 예선에서는 한양대가 심수창의 완봉 역투를 앞세워 성균관대를 3-0으로 꺾고 3연승을 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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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회 전국체육대회 야구 우승 |
3회 연속 우승을 노리며 최근 강팀으로 부상한 동의대와 경기는 당초부터 힘든 경기가 예상됐다.
2회말, 이영수와 정종수의 연속 안타로 만든 1사 주자 1, 2루의 찬스에서 한양대는 양영재의 우전 적시타로 경기의 선취점이자 결승점을 뽑았다. 또한 이어진 3회말 2사 3루의 찬스에서는 동의대 2루 수비수의 실책을 틈타 추가점을 획득,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이번 전국체전 우승의 주역은 단연 선발투수로 출전한 심수창이었다. 동의대 타선에 산발 4안타만을 허용하며 8개의 삼진을 뽑아내는 눈부신 투구를 선보였다. 심수창의 구위에 눌려 이렇다할 기회를 만들지 못한 동의대는 7회초 최병수와 정보명의 연속 안타로 1사 1, 2루의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심수창은 상대 선수의 의표를 찌르는 과감한 몸쪽 직구 승부로 후속 타자들에게 평범한 플라이와 삼진을 뽑아내며 동의대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박찬호를 가장 존경한다는 심수창은 "전국체전에서 4년만의 우승을 차지해 너무 기쁘다."며 "7회의 실점 위기가 가장 힘들었지만 그 이후에는 완봉을 예상했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한양대학교 입학 후 2000년 추계리그, 대학선수권에 이어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한 심수창은 "4학년이 되는 만큼 열심히 운동해 꼭 원하는 구단에 가고 싶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
2003년 8월 18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출전 티켓이 걸린 2003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뛸 국가대표선수 1차 선발 명단 37명 중 한양대 소속으로 유일하게 아마추어 선수로서 선발됐다. 2003년 당시 우완 정통파 투수로서 8경기 2승 1무 2패에 평균자책 2.86을 기록 중이었다. #, #, #, #, #, #
2003년 9월 22일, 2차 선발 명단 31명에서도 제외되지 않고 계속 아마추어 선수로서 이름을 올렸다. #
2003년 9월 30일, 2003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드림팀Ⅵ 최종 엔트리 22명에 들며 선발을 확정지었다. #
2003년 11월 2일, 3회 연속 올림픽 본선 무대 진출을 목표로 내건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일원으로 11월 5~7일 일본 삿포로 돔구장에서 열리는 제22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를 위해 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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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시절 [23] |
이 당시 본인이 회상하기로 147km/h 정도의 공을 던졌지만 감독과 코치들은 프로 경험이 없었던 심수창을 불안해했고, 설상가상으로 연습 때 손톱이 들려지는 부상을 입었다. 결국 심수창은 대만전 하루 앞두고 3일 조웅천으로 교체되며 4일 발표된 최종 엔트리에서 하차했다. 대신 심수창은 5일 대만전에 앞서 선배들을 위해 배팅볼을 던졌다. # 조웅천은 대회시작 직전에서야 급하게 심수창과 교체되었는데, 부상을 달고 있었고 2003 시즌 SK 와이번스를 한국시리즈에 올려놓은 활약을 들어 예선전 때 뛴 심수창을 빼버리고 급하게 수혈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공을 놓고 쉬던 중이었다.[24] 결국 조웅천은 대만전 9회 말에 마무리로 등판했으나 동점을 허용했고, 10회 말 대만 가오즈강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대한민국 대표팀은 대만에 패배한다.
심수창과 조웅천의 교체 → 조웅천의 대만전 패배 → 아테네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 병역 특례를 노리던 선수들이 주축으로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라는 본인이 일으킨 나비 효과에 본인이 말려들고 말았다.
만약 당시 대표팀 감독이 최종 명단에까지 남아있던 심수창을 기용해 혹 심수창이 활약해 대만전을 승리했다면 본인의 야구 인생과 대한민국 야구계가 전혀 다른 모습이 됐을 것이 분명했다.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뒤, 2억 1천만 원이라는 2차 11라운드 선수에겐 상상할 수 없는 굉장히 높은 계약금으로 지명권이 있는 LG 트윈스로 입단하게 되었다. 보통 하위 라운드는 계약금 자체가 없고 신고선수 계약이 대부분인데, 2차 11라운드에게 2차 1라운더급 계약금을 줬다는 점에서 이 당시 LG 트윈스가 심수창에게 걸었던 기대를 알 수 있다. 같은 해 경상권 넘버원 투수 유망주였던 대구상고의 장준관이 2차 1라운드 / 2억 8천 만원,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인 경북고 배영수의 2억 5천만 원, 2차 2라운드 왼손투수 강영식( 대구상고)의 계약금 3천만원, 연봉 2천만원에 비교해보면 최고급 대우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다. 심수창의 부친인 아마야구의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중진 심태석 심판의 행보가 당시 프로구단에게 눈엣가시였고[25], 그 때문에 지명 즈음에는 심수창을 뽑지 말자는 구단 간의 담합이 있던 상황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연좌제에 담합이니 윤리적으로 용서받기 힘든 일이지만 당시는 그런 게 통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심수창을 아무도 안뽑고 계속 패스하고 있던 와중에 LG가 뽑은 사람 다 뽑고 나서 냅다 마지막 11라운드에서 지명해버린 것. 다른 구단 관계자들이 도끼눈을 뜨고 LG쪽을 쳐다보는 와중 LG 스카우트 팀장은 하늘만 보고 있었다.
3. LG 트윈스 1기
3.1. 2004 시즌
심수창의 연도별 시즌 일람 | ||||
아마추어 | → | 2004년 | → | 200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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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후 인터뷰 |
선발 진입을 목표로 하던 당시의 주무기는 145km/h대의 묵직한 직구였다. 입단 당시 신인왕을 노릴 정도로 많은 기대를 받았다.[28] 당시 고등학교 대선배이자 한국 프로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 박철순을 닮고 싶다는 신출내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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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신인시절 |
입단 후 첫 캐치볼 상대가 '야생마'로 유명했던 대선배 이상훈이었다.[29] 와일드함에 손이 떨려 입스가 올 정도였다고 한다.
4월 20일, 잠실 두산전에서 이승호에 이어 두번째 투수로 생애 첫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9대 1로 앞서 있던 8회 말에 등판했다. 윤재국을 2루 땅볼로 잡아내며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지만 이어지는 안경현과 김동주의 연타석 안타(안타-2루타)로 위기를 맞았지만 9회 말까지 3개의 땅볼을 더 잡아내며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1⅓이닝 2피안타 2실점(1자책)을 기록하고 나머지 두개의 아웃 카운트를 신윤호에게 맡기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팀은 10-3으로 승리했다.
4월 24일, 사직 롯데전에서 박지철과의 선발 맞대결을 펼쳤다. #. 첫 선발 출장. 4⅔이닝 7피안타 3피홈런[30] 3K 4실점(3자책)으로 팀이 패배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 시즌 평균자책점 6.00
5월 1일, 군산 기아전 고우석과의 선발 맞대결에서 3이닝 8피안타 1피홈런 3볼넷 1K 4자책점으로 ND. 팀은 10대 5로 승리했다.
1회 말 두 개의 안타를 맞으며 위기에 빠졌지만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했다.
2회 말, 5번 타자 마해영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냈지만 뒤이은 심재학의 타석에서 우월 솔로 홈런을 맞았고 뒤이어 박재홍과 김지훈에게 연타석 안타를 허용하며 또 다시 위기 상황이 왔지만 서동욱을 삼진으로 이종범을 땅볼로 잡았다.
3회 말, 김종국과 장성호에게 연타석 안타를 맞았지만 병살과 3루쪽 땅볼로 실점없이 마무리했다.
4회 말, 급격히 제구가 무너지며 두 번의 볼넷 이후 안타를 맞고 9번 타자 김경언까지 볼넷으로 출루시킨 뒤 강판됐다.
5월 2일, 엔트리에서 말소되어 2군에서 구위를 점검했다.
5월 9일 동대문구장에서 막을 올려 11일간 치러진 # 제54회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舊 백호기쟁탈)에서 3경기에 나가 3승을 올리며 팀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심수창이 속한 LG 2군은 대불대, 32강 한화 2군, 16강 계명대(3-1), 8강 삼성 2군을 차례로 꺾고 4강에 진출했으나 # 상무 야구단에게 패배해 우승이 좌절되었다. 우승은 상무 #, 준우승은 건국대가 차지하였다. 이 대회에서 오승환과 나지완이 단국대학교 소속, 김종호, 허승민, 홍유택, 김효남이 건국대학교, 김백만과 이종욱이 상무 소속으로 출전하였다.
6월 2일, LG는 무너진 중간 계투진을 되살리기 위한 조치로 이동현과 심수창을 1군으로 올리고 성영재, 민경수를 2군으로 내려보냈다. 이동현은 셋업맨으로, 심수창은 롱 릴리프로 나서게 됐다. #
6월 11일, 수원 경기전 LG 덕아웃. #
6월 27일, 무등 기아전 선발 이승호에게 5회 마운드를 이어받았지만 6회말에 3점을 내어주는 등 4이닝 7피안타 2피홈런 1볼넷 2K 4자책점으로 팀이 패배했다. #
7월, 팀이 졌을 때 팬들의 사인 요청에 최대한 순진한 표정과 난처한 표정을 섞어 "죄송합니다", "선배들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등의 얘기를 하면 팬들도 적당히 비켜준다는 기사가 났다. #
7월 3일, 잠실 SK전에 앞서 서승화 김광삼 정재복 심수창 등 젊은 선수들도 9연패에 빠지면 단체로 삭발을 하기로 결의를 했다. 그렇지만 이날 쿠퍼의 호투와 모처럼 살아난 타선 덕분에 단체 삭발 사태는 면할 수 있었다. #
8월 19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팀의 다섯 번째 투수로 정재복의 뒤를 이어 등판해 14구 1⅔이닝 1피안타 1K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심수창의 데뷔 첫 승을 기록했다. #, #
8월 20일, 잠실 두산과의 경기에서 팀의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여 2이닝 1피안타 2K 무실점으로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 #
8월 22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팀의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여 1⅔이닝 1피안타 2K 무실점으로 활약했지만 팀은 6대 4로 패배했다.
8월 24일, SK와의 경기에서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하였지만 7회 1사 1,2루에서 이호준에게 초구 중앙 펜스를 넘기는 큼직한 3점 홈런을 허용하는 등 1⅓이닝 3피안타 1피홈런 1K 4실점(1자책점)을 기록하고 서승화에게 마운드를 넘겨주었다. #, #
8월 25일, 문학 SK전에서 팀의 여섯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0이닝 7구 1피안타 1볼넷 0자책점을 기록했다. 이날 안재만이 심수창의 공에 왼쪽 갈비뼈를 맞고 골절상을 입었다. #
8월 28일, KIA와의 경기에서 팀의 마지막 투수로 등판하여 1⅔이닝 1피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시즌 2승을 기록했다.
9월 5일, 한화전 팀의 여섯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⅓이닝 9구 1피안타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다.
9월 7일,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간 마무리 투수 이동현의 복귀가 늦어져 진필중·우규민·장준관·서승화·장문석 등과 함께 집단 마무리 체제를 가동하게 되었다. #
9월 10일, 정규시즌을 한 달여 남겨두고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수감 생활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가 예상 됐으나 구치소 출소 이후 재검을 받은 결과 다른 부상이 발견되어 병역 면제를 받았다.
데뷔시즌인 2004년에는 16경기를 출장했다.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4 | LG | 16 | 29⅔ | 2 | 1 | 1 | 1 | 0.667 | 4.55 | 41 | 8 | 10 | 18 | 20 | 15 | 1.618 |
3.2. 2005 시즌
자세한 내용은 심수창/선수 경력/2005년 문서 참고하십시오.3.3. 200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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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심수창/선수 경력/2006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3.4. 2007 시즌
심수창의 연도별 시즌 일람 | ||||
2006년 | → | 2007년 | → | 2008년 |
4월 8일 기아전 전병두와의 선발 맞대결에서 6⅓이닝 7피안타 3볼넷 3K 3자책점으로 QS를 기록했지만 패전 투수가 되었다. 팀의 불펜 사정으로 인해 김재박 감독은 심수창을 전격 불펜 전환했다.
4월 19일 한화전 류택현에게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를 넘겨받은 뒤 1⅓이닝(아웃카운트 4개)을 오직 5개의 공으로 세이브를 기록하였다.
5월 11일 롯데전 류택현에게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를 넘겨받은 뒤 1⅔이닝 1피안타 1K 0자책점으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2007년에는 불펜으로 강등되자 좋지 않은 성적을 보이게 되었고, 덕분에 팬들에게 '심태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즌 최종 성적은 56경기 77.1이닝 3승 5패 10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4.31를 기록,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전년도 정재복과 함께 대체선발에서 시작해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규정이닝 달성 및 10승을 거뒀음을 감안하면 연속성에 있어서는 아쉬웠던 팀의 운영이었다. 연속성을 이어가는거 없이 4강 진입을 위해 애매한 위치에서 1년을 보내 선수 성장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7 | LG | 56 | 77⅓ | 3 | 5 | 2 | 10 | 0.375 | 4.31 | 83 | 4 | 40 | 47 | 39 | 37 | 1.591 |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7 | LG 2군 | 1 | 5 | 0 | 1 | 0 | 0 | 0.000 | 5.40 | 4 | 1 | 2 | 3 | 3 |
3.5. 2008 시즌
심수창의 연도별 시즌 일람 | ||||
2007년 | → | 2008년 | → | 2009년 |
2007년 12월 30일, LG는 심수창과 연봉 7,000만원에 내년 시즌 재계약했다고 밝혔다. #
[kakaotv(8110334)]
5월 15일 우리와의 경기에서 20개월 만에 선발승을 기록했다.
선발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보직의 변경에 적응을 못 했는지 역시 변변찮은 성적을 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6경기 66.1이닝 6승 5패 평균자책점 5.16을 기록했다.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8 | LG | 16 | 66⅓ | 6 | 5 | 0 | 0 | 0.545 | 5.16 | 97 | 4 | 26 | 20 | 42 | 38 | 1.794 |
3.6. 20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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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과의 어린이날 7이닝 무실점 승리투수를 한 날 |
자세한 내용은 심수창/선수 경력/2009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3.7. 2010 시즌
자세한 내용은 심수창/선수 경력/2010년 문서 참고하십시오.3.8.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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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심수창/선수 경력/2011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4. 넥센 히어로즈
4.1. 2011 시즌
심수창 2011년 8월부터 참조.4.2. 2012 시즌
심수창의 연도별 시즌 일람 | ||||
2011년 | → | 2012년 | → | 2013년 |
1월 1일 MBC 룰루랄라에서 박규리에게 '심창수'로 불리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
1월 13일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연봉협상을 마쳤는데, 그 상승률이 116%라는 꽤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2011 시즌 연봉인 3000만원보다 116% 인상된 6500만원에 재계약을 맺었다. 관련기사
4월 15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 전에 선발로 출장했다. 1회말에 2점이나 내어주었다. 허나 3회초에 넥센 타선이 분발해 5점을 획득했다. 그러나 다시 3회말에 김상수에게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여 나와 1사 만루를 채웠고, 배영섭에게 안타를 맞아 다시 한 점을 헌납했다. 4회말에는 이승엽, 최형우, 박석민을 연속으로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활약을 보였으나 투구수가 많아 5회까지 111개를 던지고 스코어 7:3으로 팀이 앞선 6회말 첫타자부터 이보근과 교체되었다.
이날 심수창의 기록은 5이닝 111투구수 8피안타 4사사구 3K 3실점 3자책점. 타선빨로 선발승을 어찌저찌 먹나 했더니 또 승리가 날아갔다. 이번 블론세이브의 주인공은 손승락이었다.
그 이후 왠지 그가 선발로 등판 예정인 날에는 경기가 우천 취소되는 일이 많아 오랫동안 등판을 못 하다가, 426 대첩 때 팀이 1:6로 지던 6회말 3번째 투수로 컨디션 점검차 등판하여 2이닝 31투구수 1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고 스코어 1:6인 상황에서 내려가서 승패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역전승의 발판이 되어 팀은 9:7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5월 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하였지만 4⅔이닝 5실점하면서 패전 투수가 되었다.
5월 6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도 선발로 나왔지만 3이닝 9실점하면서 말그대로 탈탈 털렸다. 그리고 이날도 역시 패전 투수가 되었다.
5월 30일에는 9회초 손승락이 임훈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블론세이브를 한 뒤 최정에게 역전 적시타를 맞으며 스코어 4:3이 된 상황에서 등판했다. 하지만 이때도 3실점하면서 배팅볼 기계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8월 10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는 9회초 주자 2명을 출루시키고 강판되었으나 후속 투수 손승락이 분식회계를 하면서 또 패전투수가 되었다.
9월 13일까지 16경기 출전에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3패에 평균자책점 7.03으로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다가 9월 14일에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3회초 선발 투수 김영민의 뒤를 이어 구원등판하여 5회까지 3이닝 동안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팀도 스코어 5:3으로 앞서나가며 승리 투수가 되는가 싶었으나, 6회초에 한화 타선에 또다시 털리면서 단 1개의 아웃카운트도 잡지 못하고 폭투로 인한 실점까지 하며 5:4인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다음에 올라온 한현희와 박성훈이 이대수와 장성호에게 각각 희생플라이와 안타를 허용하며 2실점을 당하는 바람에 또 승리가 날아갔다. 이날 팀은 8:7로 패하여 승리 투수가 아니라 또다시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날 심수창의 기록은 3이닝 55투구수 2피안타 2K 3실점 3자책점.
9월 21에도 역시 한화 이글스전에 9회말 4:4 동점 상황에서 구원 등판하여 0⅓이닝 15투구를 던지는 동안 1볼넷과 함께 한화 하주석에게 결승 3루수 스퀴즈 번트로 1실점을 하며 팀이 4:5로 패하여 또다시 패전 투수가 되며 올 2012시즌 1승도 없이 5패째만 적립하였다. #
그리고 그렇게 심수창은 멸망했다.
2012년 성적은 21경기 40⅔이닝 0승 5패 평균자책점 7.30. 그야말로 폭망한 수준이다.
결국 내년 2013시즌 연봉 계약에서 1,000만 원이 깎인 5,500만 원에 재계약하게 되었다.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2 | 넥센 | 21 | 40⅔ | 0 | 5 | 0 | 0 | 0.000 | 7.30 | 58 | 3 | 21 | 24 | 36 | 33 | 1.943 |
4.3. 2013 시즌
심수창의 연도별 시즌 일람 | ||||
2012년 | → | 2013년 | → | 2014년 |
2013 시즌 내내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2군에서만 등판하였다. 2군 최종 성적은 12경기 54이닝 0승 6패 평균자책점 6.83으로 문자 그대로 탈탈 털렸다. 1군과 2군의 실력차를 생각해보면 이건 꽤 심각하다.
결국 이런 기사까지 떴다.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3 | 넥센 | 1군 기록 없음 |
5. 롯데 자이언츠
11월 22일 2014년 2차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롯데가 지명하여 또 다시 김시진 감독과 함께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포텐 터질 것도 없고 2군에서도 처참히 털리는 선수를 데려오는 것 보고 김시진이 또 학벌잔치 벌이는 거 아니냐고 불신을 가지는 의견도 꽤 있었다.[31] 넥센 감독 시절부터 한양대 출신들을 챙긴다는 비판이 인터넷에서 종종 나왔다.11월 26일 개명했다고 밝혔는데 '밝을 창(昶)'[32]에서 '창창할 창(昌)'으로 바꾼 것. 기사
5.1. 2014 시즌
심수창의 연도별 시즌 일람 | ||||
2013년 | → | 2014년 | → | 2015년 |
3월 8일 오후 창원시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시범경기 NC 다이노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4회말 2사 1루 마운드에 올라 역투하였다. #
[kakaotv(57391703)]
3월 21일 기아와의 경기에 등판하였다.
4월 6일 울산 문수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5:0으로 지던 7회초 2사 상황에서 4번째 투수로 등판하였다. #. 8회초 무사 1루 상황에서 최형우와의 풀카운트 승부에서 좌중간 투런포를 맞았다. 비거리는 120m였다.[33]. 2⅓이닝 34투구수 2피안타 1피홈런 2사사구 1탈삼진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7:1로 패했다.
4월 11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서 6이닝 3실점 3자책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한 쉐인 유먼에 이어 팀이 무려 스코어 15:3으로 앞선 7회초부터 등판하였으나 3이닝 61투구수 4피안타 1피홈런 3사사구 1K 5실점 5자책점으로 상당히 부진했다. 그리고 타선이 폭발하여 20점이나 뽑아내며 스코어 20:8로 승리하여 심수창은 이날 7년만에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리고 심수창 덕택에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3이닝을 던져 마무리를 하면 이 기록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았다.
5월 8일 두산전에 7회 초에 등판하여 2⅔이닝동안 58투구수 5피안타 3피홈런 1사사구 4실점 4자책점을 기록했다. 홍성흔 영상(초구, 홈런거리:120M) - 양의지의 중견수 뒤 백투백 홈런 (홈런거리:125M) 포함 3홈런을 얻어맞은 게 압권. 해당 기사 심지어 은퇴 후 홍성흔은 이때 홈런을 치고 한 빠던을 자신의 역대 빠던 중 TOP3로 꼽기도 했다. # 팀은 스코어 15:6으로 완패했다. 이리하여 이날까지 성적은 159투구수 8이닝 11피안타 5피홈런 6사사구 2K 11실점 11자책점. 이쯤 되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5월 9일 2군으로 강등되었다.
8월 15일,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간만에 2⅔이닝 무피안타 5탈삼진의 준수한 투구를 했고, 8월 19일 1군에 콜업되었다.
그 후 간간이 등판하여 1, 2이닝씩 꾸역꾸역 막아내다가, 9월 12일 NC 다이노스 전에서 3이닝 4피안타 2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면서 2세이브를 따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1경기 19⅔이닝 0승 0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9.15. 2군에서도 16경기 24⅔이닝 1승 2패 1홀드 평균자책점 6.57으로 부진했다.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4 | 롯데 | 11 | 19⅔ | 0 | 0 | 2 | 0 | 0.000 | 9.15 | 24 | 7 | 8 | 14 | 20 | 20 | 1.627 |
5.2. 2015 시즌
자세한 내용은 심수창/선수 경력/2015년 문서 참고하십시오.5.3. FA
2015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 롯데 자이언츠와의 우선협상이 결렬되어 시장에 나오게 됐다. 보상선수가 없었다면 300%의 보상금+적절한 계약금과 연봉으로 영입이 가능한 준척급이 되었겠지만, 아직 보상선수를 줄 필요가 없는 어드밴티지가 있는 kt wiz가 아닌 다른 팀은 보상선수가 아깝기 때문에 주워 갈 팀이 없을 줄 알았는데..
11월 30일 4년 총액 13억 원에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면서 조인성과 참된 약속 배터리를 이루게 되었다. [34]
저에게 야구란 인생의 파도와 같습니다.
#
한화 팬 입장에선 "이딴 투수를 FA로 사오냐!"라며 울분을 터뜨릴만 하긴 한데, 프런트가 2015년 투수 FA 최대어로 평가받은
정우람[35]을 가져오면서 병주고 약주고를 시전한 덕분에 분노할 타이밍을 놓쳐 버린 감이 있다. 일부 팬들, 특히나 한화 팬들은 좋든 싫든 자기팀 선수가 되었으니 "
이종운 밑이 아니니까 반등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위안을 삼으려 하지만 역대 기록을 보면 글쎄올시다. 당장 보상선수가 더 아깝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롯데팬들은 딱히 그에게 애착이 없었기도 했고, 심수창도 별 말 없이 조용히 나갔기에 너네는 잘 쓰고 우리는 감사히 보상선수를 받아 가겠다는 입장.
게다가 2015 시즌 순위의 역순으로 롯데가 SK보다 먼저 보상선수를 뽑아가게 된다. 그렇게 롯데의 부름을 받게 된 보상선수는 1994년생 우완 투수 박한길. 김성근 감독이 재미있는 투수라고 말한 적이 있는 투수 유망주인데, 팔꿈치 수술 전력에도 불구하고 무려 1994년생이기에 심수창보다 훨씬 높은 기대치를 자랑한다. 박한길과 심수창을 1:1 맞트레이드해도 손해보는 느낌인데, 롯데에 웃돈까지 얹어 주면서 데려온 꼴이니 롯데가 이익을 봤다는 평이 많은 편. 그러나 박한길은 아무것도 못하고 은퇴하게 되었다.
한편 심수창 본인은 한화 팬인 배우 조인성과 떳떳하게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초등학생 때 같은 리틀야구팀에서 뛰었던 이재우와도 함께 뛰게됐다.
6. 한화 이글스
6.1. 2016 시즌
자세한 내용은 심수창/선수 경력/2016년 문서 참고하십시오.6.2. 2017 시즌
자세한 내용은 심수창/선수 경력/2017년 문서 참고하십시오.6.3. 2018 시즌
심수창의 연도별 시즌 일람 | ||||
2017년 | → | 2018년 | → | 2019년 |
3월 17일 NC 다이노스와의 시범경기에 중간으로 올라와 1이닝 동안 볼넷 하나만을 주고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3월 2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개막전에 5회 2사에서 김범수를 이어 올라와 0.2이닝을 잡고 박주홍에 공을 넘겼다. 그러나 이날 무실점한 6명의 불펜투수 중 가장 많은 2피안타를 허용한 것은 불안 요소.
[kakaotv(384025364)]
3월 27일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는지 손시헌의 시즌 1호 3점 홈런으로 1이닝 3실점해 경기를 완전히 NC에 내주고 말았다.
이틀 뒤인 3월 29일 NC전 박주홍 뒤를 이어 만루상황에 등판해 분식집을 개업하며 패전 요건은 피해갔다.[36]
결국 3월 30일 말소됐다. 이후 한화 불펜이 송은범을 필두로 단단해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박종훈 단장을 필두로 리빌딩 기조로 인해 심수창에게 더 이상의 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kakaotv(384886293)]
5월 들어 퓨처스에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며 몸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37] 박주홍이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면서 누가 콜업될지 관심이 쏠린 가운데, 같은 좌완인 김경태 등이 올라올지, 몸상태 좋다는 심수창이 올라올것인지 의견이 갈리고 있다.[38] 하지만 결국 올라온 투수는 김범수였다.
한화에선 김성근의 혹사지수가 가장 높던 2016년엔 그나마 꾸준했고, 2017년 후반엔 불펜의 중심(?)이었지만 2018년엔 그야말로 식빵 찾게 만드는 성적을 보여주곤 소식이 없다.[39] 팬들은 2년간 고생해준 건 고마워하지만, 딱히 그리워하지는 않는 듯 하다.
6월 현재는 5월 5일부터 6월 12일 까지 10경기 등판 중 8경기 세이브를 기록하며 2군 정우람 놀이를 하고 있다.
6월 14일 기준, 23.2이닝을 던지면서 10세이브, 22삼진, 8사사구 8실점, ERA 2.66을 기록하고 있으며, WHIP는 1.01에 불과하다.
2군 세이브왕(18개)를 따냈다. 본인 피셜 서산의 심장
[kakaotv(388278885)]
결국 8월 29일자로 정재원과 함께 웨이버 공시가 되면서 한화 이글스에서의 커리어도 끝이 나고 말았다. 후속 기사에 따르면 1군에 오른손 계투가 너무 많아 로스터 등록이 어려워지자 7월경부터 트레이드를 요청해 한화 구단측에서 알아봤지만 많은 나이가 걸림돌이라 실패했고 결국 웨이버로 풀어준 것이라고 한다.[40]
라고 당시에 보도되었지만 후에 심수창이 본인 유투브에서 밝힌 바로는 1군에서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하자 감독과 단장의 대답은 트레이드 카드를 맞춰오라는것. 한마디로 셀프 트레이드하라는 굴욕적인 답변이었다. 하지만 심수창이 5개 구단에 연락해 맞춰오자[41] 단장이 오히려 다른 구단에 연락해 심수창을 받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심수창이 보살이라고 느껴지는 부분.
[kakaotv(390203248)]
[kakaotv(390049411)]
한화에서는 자리가 없다 해도 기량 자체는 아직 1군에서 통할 가능성이 있고, 웨이버 영입이므로 전력 면에서는 딱히 손해볼 게 없기 때문에 보직무관 한 명의 계투도 아쉬운 넥센 히어로즈나 LG 트윈스 등이 영입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있다. 이들과 함께 포스트시즌 진출을 경쟁하는 롯데, KIA도 불펜 사정이 영 좋지 않기 때문에 함께 거론되고 있으며, 심지어 꼴찌 자리만은 필사적으로 피하고자 하는 kt가 영입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다만 액수가 크지는 않다 해도 FA계약을 승계해야 한다는 점과, 이번 포스트시즌에는 나설 수 없다는 것이 걸림돌. 일단 KBO 웨이버 공시 규정상 9월 5일이 되어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결과와 관계없이 심수창은 FA계약때 보장된 금액을 모두 받을 수 있으며, 어차피 포스트시즌에 뛰지 못하는데다 웨이버 승계가 무산되어도 시즌을 통으로 쉬는 게 아니고 잔여시즌인 한달 남짓한 기간만 무적 상태로 때우고 나서 자유계약 자격으로 새 팀을 찾으면 그만이므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선수 본인에게는 크게 손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심수창을 절대 받지말라고 몰래 다른 구단들과 작당한 박종훈과 한용덕의 뒤통수로 인해 웨이버 기간이 끝날 때까지 아무 팀도 영입 의사를 밝히지 않아 잔여 시즌 출장이 불가능해졌다. 뒷사정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당시에는 선수 자체의 불안요소도 있었고, 웨이버 공시가 더 일찍 이루어졌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수도 있었겠지만 전 소속팀 입장에서는 굳이 일찍 방출하여 포스트시즌 부메랑을 걱정하고 싶어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는 가정이 있었다. 웃긴 건 같이 방출된 정재원은 새 팀을 구했다. 물론 정재원은 1984년생으로 심수창에 비해 젊은데다 올시즌 연봉도 4000만원밖에 하지 않으므로 [42] 사정이 크게 다르긴 하다. 다만 감독과 단장이 아예 작당하고 심수창에게 엿을 먹인만큼 심수창도 뾰족한 수가 없기도 했다.
10월 8일 진행한 [DUGOUT Interview] 심수창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8 | 한화 | 3 | 2⅓ | 0 | 0 | 0 | 0 | 0.000 | 15.43 | 7 | 2 | 0 | 2 | 4 | 4 | 3.00 |
7. LG 트윈스 2기
2018년 11월 23일, LG에서 심수창과 장원삼을 영입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 LG가 부실한 계투진때문에 2018시즌 내내 악전고투했으며 1군급 계투가 금값인 KBO리그 상황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영입.[kakaotv(393180146)]
12월 2일 시즌 종료 후 롯데호텔 월드 크리스탈볼룸 #에서 결혼식을 올렸다.[43]
본인의 인스타를 통해 예전에 쓰던 67번을 다시 달기로 했음을 알렸다.
추후 밝힌 바로는 한화에서 연봉을 받으면서[44] LG에서도 5,000만원 정도를 받았다고 한다.[45] 본인 회고로는 19시즌에 한화에서 봉급이 나오는 날과 LG에서 봉급이 나오는 날이 달랐다고 한다.
7.1. 2019 시즌
심수창의 연도별 시즌 일람 | ||||
2018년 | → | 2019년 | → | 은퇴 |
3월 27일 고양 히어로즈와의 퓨처스리그에 구원등판하여 1.2이닝 동안 무실점, 4탈삼진을 잡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4월 6일 SK 와이번스 2군과의 경기에 선발출장하여 4이닝 무자책(1실점) 투구수 49개 5K로 빼어난 피칭을 보였다. 1실점은 자신의 실책으로 인한 실점이다.
4월 13일 한화 이글스 2군과의 경기에서 5이닝 무실점 6K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임찬규가 발톱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져 대체선발이 예상되었지만, 대체선발로 먼저 기회를 받은 것은 김대현. 대신 1군에 콜업 후 롱릴리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kakaotv(397642109)]
4월 19일 잠실 키움전에서 팀의 두 번째 투수로 4회초 등판했다. 대체선발로 기회를 얻은 김대현이 9실점으로 터져버리는 바람에 사실상의 패전처리 투수로 올라왔고, 4 ⅓이닝 4실점 6K로 LG 복귀 후 첫 1군 등판을 마무리했다.
[kakaotv(397640851)]
마지막 이닝이었던 8회에는 3타자 모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LG는 13실점이라는 최악의 경기에도 불구하고 심수창의 분투로 투수를 단 3명밖에 쓰지 않으며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4월 30일 잠실 kt전에서 연장 11회초 9:9 최동환에 이어 등판하여 0.2이닝 1볼넷 무실점으로 막았고 이어진 공격에서 이천웅의 끝내기 밀어내기로 승리하며 2009년 6월 14일 SK전(7 ⅓이닝 3실점 QS) 이후 LG에서의 17연패를 끊어내고[46] 3,607일 만에 LG에서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이 승리는 심수창의 현역 마지막 승리가 된다.
[kakaotv(398026271)]
5월 2일, 잠실 kt전에서 선발투수 장원삼을 이어 나왔다. 2 ⅓이닝 동안 57개를 투구하며 3피안타 2볼넷 1자책점 4삼진을 기록했다.
[kakaotv(398243594)]
5월 8일, 고척에서 열린 키움전에서 역시 선발투수 장원삼을 이어 나왔다. 2 ⅓이닝 동안 47개를 투구하며 1자책점을 내줬는데, 1자책점은 박병호에게 솔로홈런을 맞은 것이다.
우천 취소된 4월 25일부터 5월 8일까지 장원삼과 1+1 선발로 투입되었고 5월 8일엔 둘이서 6이닝을 소화했다.
5월 17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47][48] 2군 성적은 준수하지만, 비슷한 유형의 투수인 송은범이 트레이드로 합류해왔고[49] 한선태, 이우찬 등 여러 유형의 신인들이 가세하면서 전반적으로 탄탄해진 불펜에 자리가 안 나고 있다. 1~2이닝 정도 소화해주는 불펜으로서 가치는 있지만, 류중일의 성향은 쓰는 선수만 쓰는 것이다.
경기 전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은 신인 이민호가 시구를 하기 위해 마운드에 오면서 선배 심수창에게 인사를 하자 따라 공손히 인사를 했다. 20년 후배에게 깍듯이 인사한 것은 자신은 이제 떠날 사람이고 이민호는 단지 어리고 철없는 후배가 아니라 앞으로 LG 트윈스의 마운드를 책임져줄 사람이기에 잘 부탁한다는 마음에서 그랬다고 한다. 한 때는 같은 팀 선배에게 얼굴을 붉히며 마운드를 내려와야만 했던 맹랑한 어린 시절의 심수창은 어느 순간 20년 전의 자신과 너무나도 닮은 후배를 따뜻하게 맞아줄 수 있는 어엿한 선배가 되어있었다.[50]
팀의 4위가 확정된 이후 1군 코치에게 갑작스럽게 선발 등판이 가능하냐는 연락이 왔는데 순간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선발 제의를 겸허히 수락한다.[51] 엄밀히 말하면 공식 은퇴경기를 해줄 정도의 커리어를 남긴 것도 아니고 말년에는 저니맨 생활을 하며 여러팀을 오갔다. 하지만 팬들의 아픈 손가락 중 하나이며, 대표적인 애증이 가득 담긴 선수이다. 이 때문에 비공식이지만 은퇴 경기를 마련해줬으며, 그것도 선발로 등판할 수 있게 해줬다는 것은 팀에서 최대한의 예우를 해준 것이다.
9월 27일 잠실 NC전에 선발 등판했다. 상대 선발투수는 신인 김영규. LG 트윈스 복귀 후 첫 선발 등판, 1119일 만의 선발 등판, 3003일 만의 LG 소속 선발등판, 그리고 심수창의 현역 마지막 등판이 되었다. 1회 1사 2, 3루의 위기를 야수진의 도움으로 무사히 막았지만, 2회 3연속 피안타를 내주며 1실점, 진루타와 희생타로 추가실점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의 도루자로 이닝이 끝났고 2이닝 2자책을 기록한 뒤 배재준과 교체되었다. 사실상 오프너 역할을 하고 내려간 셈. 이 날 경기는 신인 김영규에게 3 대 0 완봉패를 당하였고 심수창은 현역 마지막 경기를 아쉽게 패전투수로 끝냈다.
[kakaotv(414376145)]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9 | LG | 5 | 11⅔ | 1 | 1 | 0 | 0 | 0.500 | 6.17 | 17 | 1 | 7 | 12 | 8 | 8 | 2.06 |
10월 7일, 은퇴를 선언하면서 긴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마지막 등판, 나만의 은퇴식이었다" 방송 쪽을 알아보고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해설자나 방송인의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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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기빙데이 행사에 참석한 심수창 |
11월 16일 구단 러브기빙데이 행사에 참석해서 LG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일단 제가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처음 마운드에 섰고 맨 마지막 날도 마운드에 섰습니다. 팬들의 환호성을 받고 처음과 끝을 맞이했는데 너무 행복했고 너무 감사했고.. 팬분들에게 인사 못하고 떠난 게 저도 좀 안타까웠는데 저 혼자만의 은퇴식이라고 생각하고 마운드에 올라갔지만 그날 마침 시구가 이제 막 신인으로 들어온 이민호 선수였어요. 그래서 이제는 "내가 바톤터치를 해야 될 시기구나" 해서 제가 예우를 갖추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너무 행복했고 제가 가을야구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었지만 시즌 캠프 때 욕심이 과했는지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제가 좀 보탬이 미미하게 밖에 못됐습니다. 앞으로는 밖에서 팬분들하고 같이 팬으로서 같이 힘을 실어주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 러브기빙데이에서 팬들에게 전한 마지막 인사 -
- 러브기빙데이에서 팬들에게 전한 마지막 인사 -
12월 15일 2019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 참가하여 크루즈 투어 상품권을 획득했다. 영상
8.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4 | LG | 16 | 29⅔ | 2 | 1 | 1 | 1 | 0.667 | 4.55 | 41 | 8 | 10 | 18 | 20 | 15 | 1.618 |
2005 | 19 | 32 | 0 | 1 | 0 | 1 | 0.000 | 4.22 | 33 | 1 | 18 | 21 | 18 | 15 | 1.563 | |
2006 | 29 | 135⅔ | 10 | 9 | 0 | 0 | 0.526 | 4.38 | 147 | 17 | 60 | 56 | 73 | 66 | 1.467 | |
2007 | 56 | 77⅓ | 3 | 5 | 2 | 10 | 0.375 | 4.31 | 83 | 4 | 40 | 47 | 39 | 37 | 1.591 | |
2008 | 16 | 66⅓ | 6 | 5 | 0 | 0 | 0.545 | 5.16 | 97 | 4 | 26 | 20 | 42 | 38 | 1.794 | |
2009 | 21 | 122 | 6 | 12 | 0 | 0 | 0.333 | 5.31 | 143 | 21 | 64 | 57 | 74 | 72 | 1.639 | |
2010 | 12 | 35⅔ | 0 | 4 | 0 | 1 | 0.000 | 7.57 | 58 | 3 | 19 | 7 | 30 | 30 | 2.047 | |
2011 | 17 | 53⅔ | 0 | 6 | 0 | 0 | 0.000 | 5.03 | 67 | 5 | 21 | 25 | 30 | 30 | 1.641 | |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1 | 넥센 | 11 | 56 | 2 | 7 | 0 | 0 | 0.222 | 4.98 | 71 | 7 | 21 | 27 | 37 | 31 | 1.641 |
2011 시즌 합계 | 28 | 109⅔ | 2 | 13 | 0 | 0 | 0.133 | 5.01 | 138 | 12 | 42 | 52 | 67 | 61 | 1.641 | |
2012 | 넥센 | 21 | 40⅔ | 0 | 5 | 0 | 0 | 0.000 | 7.30 | 58 | 3 | 21 | 24 | 36 | 33 | 1.943 |
2013 | 1군 기록 없음 | |||||||||||||||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4 | 롯데 | 11 | 19⅔ | 0 | 0 | 2 | 0 | 0.000 | 9.15 | 24 | 7 | 8 | 14 | 20 | 20 | 1.627 |
2015 | 39 | 73⅓ | 4 | 6 | 5 | 3 | 0.400 | 6.01 | 99 | 9 | 32 | 76 | 56 | 49 | 1.745 | |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6 | 한화 | 66 | 113⅓ | 5 | 5 | 2 | 6 | 0.500 | 5.96 | 138 | 14 | 62 | 76 | 86 | 75 | 1.73 |
2017 | 48 | 57 | 3 | 1 | 2 | 2 | 0.750 | 4.74 | 71 | 8 | 24 | 54 | 32 | 30 | 1.63 | |
2018 | 3 | 2⅓ | 0 | 0 | 0 | 0 | 0.000 | 15.43 | 7 | 2 | 0 | 2 | 4 | 4 | 3.00 | |
연도 | 소속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9 | LG | 5 | 11⅔ | 1 | 1 | 0 | 0 | 0.500 | 6.17 | 17 | 1 | 7 | 12 | 8 | 8 | 2.06 |
KBO 통산 (15시즌) |
390 | 926⅓ | 42 | 68 | 14 | 24 | 0.382 | 5.37 | 1154 | 114 | 441 | 536 | 605 | 553 | 1.67 |
[1]
물론 한국 야구에 정통한 팬이라면 6만 봐도 대충 눈치챌 수 있겠지만
[2]
엄정욱은 고2때 애리조나, 고3때 텍사스에서 보러왔었다.
[3]
흔히 입스로 잘 알려져 있다.닭발 패스트볼...
[4]
대회 MVP
[5]
6번 타자, 67번
[6]
4번 타자 10번
[7]
홈런 4개를 앞세워 경동고를 7-0, 7회 콜드게임으로 제압
[8]
2번 타자 15번
[9]
7번 타자
[10]
3번 타자 17번, 당시 별명은 불꽃남자
[11]
16번
[12]
프로 은퇴 이후 인터뷰에서 농담스런 말투로 170m짜리 홈런을 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13]
이때 정근우가 홈으로 빠르게 뛰어와 실책을 하지 않았더라도
포스 아웃 시키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일성 해설위원은
수어사이드 스퀴즈 작전이라고 설명했다. 심수창은 은퇴 이후에 밝히길 만루에서 번트대는 게 어딨냐고 장난스럽게 푸념했다.
[14]
정면승부로는 심수창을 상대로 승부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연속 스퀴즈 번트로 집요하게 실책을 파고든
조성옥 감독의 작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정근우가
스톡킹에 출연하여 술회하길 부산고 당시 번트 훈련 연습량이 많았으며 심지어 번트만 댈 수 있는 야구게임까지 했다고 한다.
[15]
은퇴 후 심수창은 이걸 두고두고 써먹었다.
[16]
부산고는 대회 최우수선수와 우수투수는 추신수
[17]
다음 해인 2000년 대통령배에서도 부산고는
이동현과
오승환이 활약한
경기고에 10-3 대승을 거두고 대회 2연패를 차지했다. 추신수는 2회 연속 최우수선수를 차지했다. 참고로 2021년까지 배명고는 대통령배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18]
미국, 이탈리아, 대한민국, 중국, 캐나다
[19]
은퇴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심수창은 당시 2학년이던 손승락과 조영훈에게 숙소를 지키라고 말한 뒤, 비키니를 보러 시칠리아 섬을 배회(?)하고 다녔다고 고백했다. 손승락은 매번 어딜 나가는 건지 궁금했다고 한다.
[20]
선발
필립 험버
[21]
1위 쿠바, 2위 미국, 3위 일본
[22]
심수창과 대표팀의 활약이 더 궁금하다면
삿포로 참사(야구) 문서를 참조
[23]
왼쪽 선수는,
조인성선수이다.
한양대를 우승으로 이끌며 국가대표팀에 발탁, 지역예선에서 뛰었지만, 대만전 하루 앞두고 3일
조웅천과 교체되며 최종 엔트리에서 하차했다.
[24]
조웅천 본인에 의하면 한국시리즈 종료 후 별다른 일정이 없어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하던 중 급하게 호출받고 대표팀에 합류했다고 한다.
[25]
평소 프로야구와 관계가 썩 좋지 못했던데다, 심수창 지명에 관해서도 많은 교섭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6]
이중 천만 원은 부모님께 받아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써서 금방 사라졌다고 한다.
[27]
원래는 2억 6천만 원 이상이었지만 10승 달성 옵션을 추가하느라 덜 받은 것이라고 한다. 만약 3년 내에 10승 달성 옵션이라면 지급받을 수 있었기에 매우 아쉬웠다고 한다.
[28]
하지만 신인왕은
현대 유니콘스의
오주원(당시 이름 '오재영')이 수상했다.
[29]
정작 이상훈은 2004년 시즌 개막 전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심수창과 같이 뛰지 못한다.
[30]
페레즈, 이대호, 김태균
[31]
김시진-
정민태-
심수창 라인은 전부 한양대 선후배 관계이다. 여기에 넥센에서 같이 따라온
박흥식 타격코치도 한양대.
[32]
밝을 창이 아니라 원래는 해길 창이 맞다.
[33]
최형우의 시즌 2호
[34]
후일 스톡킹에서 말하길 실제 보장금액은 15억이었다고 말했다.
[35]
단 아무리 잘 던진다고 해도 겨우
중간계투 투수인데, 80억 이상의 거대 계약을 안기는 게 과연 효과적인 영입인지 의구심을 표하는 야구 팬들도 있다. 한화팬들은 대체로 통큰 투자라며 기뻐하는 분위기지만...그러나 시즌이 끝나고 보니 둘의 입장이 반대가 되어버렸다. 둘 다 만만치 않은 혹사에도 부상이 없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긴 하다만...
[36]
모창민 희생플라이 + 최준석 쓰리런 홈런. 그리고
정우람은 그 상황에 자신을 쓰지 않고 심수창이 나가자 황당해했다. 변명을 해주자면 김민우가 헤드샷 퇴장을 당해 모든 투수들이 총동원되었으니 다음 3연전을 위해 하나라도 아낄 필요가 있었다.
[37]
한용덕 감독이 2군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는 기사에서 나온 말인데,
송창식,
권혁,
박정진, 심수창 등이 몸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38]
심수창 올라올거면 작년에 잘했던
김경태나 어쨌든 좌완인
이충호나 올라오길 바라는 사람도 꽤 있다.
[39]
최정이 홈런공장 공장장이면, 심수창은 식빵공장 공장장
[40]
이때 한화 단장이 LG에 있을 당시 넥센으로 보냈던 감독과 같은 사람인
박종훈이다.
[41]
당시 LG 김용의 <-> 한화 심수창 트레이드 썰이 엠팍 등 다수의 커뮤니티에서 돌았던 적이 있다. 추측성 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시기가 일치하며 심수창이 사무실로 트레이드 카드를 제시했다고 한걸 보면 신빙성이 높다고 볼 수도 있었다.
[42]
그나마도 잔여 시즌에 대한 연봉만 주면 된다.
[43]
여담으로 당시 김용의가 심수창 결혼식에 초대를 못받았다는 것이 스톡킹에서 알려지자 아무도 모르게 잠실 롯데호텔에 현수막 쫙 걸어놓고 뭐?? 아무도 모르게?? 심수창 결혼식 초대 여부가 스톡킹의 필수 질문거리가 되었다.(…). 또 후에 나온 최동수가 결혼식 얘기를 듣고 '너 결혼했냐?'라고 물었던 적도 있다.
[44]
심수창은 2015시즌 종료 이후
한화 이글스와 계약금 3억원을 포함하여 4년 간 연봉 2억 5,000만원에 FA 계약을 맺었다(4년 총액 13억원). 따라서 한화에서 방출 당했을 지라도 계약이 종료되는 2019시즌까지는 연봉 2억 5,000만원이 보전된다.
[45]
이 정도면 심수창 정도의 고참급 선수에겐 거의 최저 연봉이나 마찬가지긴 한데 뭐 한화쪽 연봉도 여전히 받으니 별 상관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LG에서 보너스를 챙겨준 셈.
[46]
참고로 심수창이 LG로 돌아오기 전에 LG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활동한 날은 2011년 7월 31일이다.
[47]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때 어깨부상을 당해 말소되었다고 한다. 사실 스프링캠프때 어깨부상을 당했고 시즌때는 주사를 맞아가며 던졌지만 결국 한계가 와서 본인이 2군으로 가겠다고 말했다고. 심수창 본인은 선수 시절, 이 때 어깨 부상을 처음 당해보았다고 한다.
[48]
2016년 김성근의 살려조를 겪은 뒤에 피로가 쌓인 것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어 노쇠화가 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은퇴 직전의 부상이 가장 큰 부상인걸 보면...
[49]
2018시즌, 한화 이글스에서도 송은범에 의해 밀려났었는데. LG로 와서도 송은범에게 밀려났다.
[50]
말이 선후배지 감독과 선수의 나이 차이에 가깝다.
[51]
부모님께만 조용히 이 사실을 알렸지만 경기 당일 차마 오시지는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