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16:34:21

승리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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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목록
2.1. 제2차 세계 대전 승리의 날
2.1.1. 서방 국가들의 승리의 날
2.1.1.1. VE Day2.1.1.2. VJ Day
2.1.2. 패전국에서2.1.3. 소련의 대독 승전일
2.1.3.1. 열병식
3. 기타4. 소련의 군가5. 중국 전승절6.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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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Victory Day | 戰勝日

승리의 날 또는 전승일(승전일)은 전쟁에서 승리한 날이나 이를 기념하는 날을 의미한다. 노동절, 독립기념일 등 세계 각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명칭의 기념일 중 하나이다.

대표적으로는 서방의 Victory in Europe Day(V-E day, VE day, 대독전승일)와, Victory over Japan Day(V-J day, VJ day, 대일전승일)가 있다. 그 외의 승리의 날은 여기서.

2. 목록

2.1. 제2차 세계 대전 승리의 날

2.1.1. 서방 국가들의 승리의 날

2.1.1.1. VE Day
Victory in Europe Day
1945년, 런던
서방 국가들의 나치 독일에 대한 승리의 날은 1945년 5월 8일이다. 이 날은 카를 되니츠 제독을 대통령으로 하는 나치 독일 플렌스부르크 정부가 연합군에게 항복하며 독일의 완전한 패전이 확정된 날이다.

기념일로 규정하는 국가는 다음과 같다.
2.1.1.2. VJ Day
Victory over Japan Day

영국을 필두로 한 유럽에서는 매년 8월 15일을 대일 전승 기념일이라 하여 VJ Day를 기념한다. 이 날은 일본 제국이 항복을 선언한 날로 사실상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날로서 전쟁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벌어진다. 미국에서는 일본이 항복 문서에 사인한 9월 2일을 대일 전승 기념일로 기념한다.

2.1.2. 패전국에서

독일에서는 2차대전 종전일(Ende des Zweiten Weltkrieges)이라고 쓴다. 그리고 역사적인 의미와 정치적 맥락을 담아 0의 시간(Stunde Null)이라 말하기도 한다. 프로이센 왕국 시절부터 이어져 왔던 군국주의 이데올로기 및 나치즘과 결별하고 새로운 역사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매년 8월 15일을 “종전의 날(終戦の日)”로서 기념한다. 이 날에 전국전몰자추도식이 도쿄에서 열리며, 매년 천황 일본 총리 등 일본의 고위급 인사들이 참여한다. 천황은 매년 평화를 강조하며 전쟁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한다는 연설을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4월 25일을 '이탈리아 해방의 날'로 기린다. 나치 괴뢰 정권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이 붕괴된 날이다. 이탈리아인들 본인들 사이에도 역사적 논쟁이 격한 주제이지만, 어쨌든 이탈리아는 일본, 독일과 달리 대규모 자국 내 빨치산 세력이 암약하다 1943년 본토 침공쯤에 들어서면 이미 자체적인 반파시스트 대항 정부를 설립했기 때문에 단순한 외세에 의한 '패전'이 아니라 이탈리아인들끼리 '내전'에서 반파시스트 세력이 승리했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2.1.3. 소련의 대독 승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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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회의사당 점령 뒤, 베를린 전투가 끝나고 축하하는 제1벨로루시전선군 제3충격군 제79군단 제150 '이드리차' 소총병사단 소속 병사들.

기념일: День Побе́ды. '졘 빠볘듸'[5]
그리고 나는 외치고 싶었다.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의 땅 속에 누워 있는 이들. 우리가 거쳐온 땅에서 영원히 잠든 이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동무들, 우리가 해냈소!
- 바실리 그로스만 (소련 종군기자), "전쟁의 해들(Годы войны, Years of the war)" 중

소련 시절에 기념이 시작된 러시아 및 과거의 소련 구성국들 기념일 중 하나로, 제2차 세계 대전, 러시아 중심의 표현으로는 대조국전쟁의 승전을 기념한다. 러시아에서 거의 대부분 소련 기념일들이 사라지거나 이름이 바뀐 와중에도 이 날만큼은 여전히 기리고 있다. 러시아는 나치 독일의 침략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제질서에서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등장,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련 시기에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공휴일이었다가 해제되었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집권한 직후인 1965년부터 다시 공휴일이 되었다.

" 소련군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 날은,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의 말에 따르면, '소련 인민의 삶에서 '영광의 순간'이 되었다. 이는 소련 역사상 사람들이 조국의 승리와 자유를 위해 감당한 상실의 의미가 명약관화했던 유일한 시기다." 역사학자이자 라디오 방송 '베스티 FM'의 정치 평론가인 안드레이 스베텐코의 말이다.

사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가 더 성대히 기념하는 기념일이다. 러시아인들의 국가적 자긍심, 긍지의 원천이다. 피할 수 없는 적과의 생사를 건 결전에서 아주 큰 희생을 치르며 승리했다. 거의 패배 직전까지 갈 정도의 어마어마한 피해에도 무너지지 않고, 결국 역으로 적의 수도를 함락시키며 완벽하게 승리했기 때문에 더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감격스러운 승리의 날인 것이다.

승리의 날이 참전국들 중 유독 러시아에서 중요하게 대접받는 이유는 단순히 한 전쟁에서 이겨서만이 아니다. 2차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쟁이었고 그런만큼 승리의 순간을 맞이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피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6]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 그 자체도 기념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목적은 그 승리를 얻기 위해 피를 흘린 순국선열들을 기린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이 때문에 실제로 전쟁에 참가했던 유가족들이나 실제 참전용사들이 아직 많이 살아있는 러시아인들에겐 매우 특별한 날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로도 5월 9일이 조국 러시아에 자긍심을 느끼는 계기가 된다고 인정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세계적으로 봐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고 러시아 역사를 봐도 역사상 비견할 예가 없는 가장 위대한 승리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러시아는 이른바 조국전쟁에서는 일단 나폴레옹을 막기는 했지만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고, 크림 전쟁부터는 열강에 얻어맞기만 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압도적으로 대조국전쟁에서의 승리라고 답한다.

정리하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에서 멸망 직전까지 몰렸던 소련의 기적적인 대역전승은 극적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신화적인 승리였고, 그런 신화적 서사를 가졌기 때문에 제1의 건국신화인 혁명보다도 신성시되는 제2의 건국신화가 된 것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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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시절 붉은 광장에서 10월 혁명 기념일(11월 7일)에는 매년 열병식이 실시되었고 1968년까지 노동절에도 매년 실시되었지만 승리의 날에는[8] 1965년, 1985년, 1990년 단 3차례만 실시되었다. 1948년부터 니키타 흐루쇼프가 실각할 때 까지는 공휴일도 아니었다. 역사학자인 데니스 바비첸코에 따르면, 이오시프 스탈린과 그 사후 소련을 이끈 니키타 흐루쇼프는 대조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사령관들이 정치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때문에 군사령관들과 참전용사들의 공적을 치하하는 일에 인색했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집권한 1965년에야 승리의 날은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열병식이 실시되었다. 승리의 날을 국가적 차원에서 전국적 규모로 성대하게 기념할 수 있도록 한 최초의 소련 지도자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였지만 붉은 광장에서의 열병식은 1968년 노동절 열병식을 폐지한 이후 혁명 기념일에만 매년 실시했고 승리의 날에는 1965년에만 치러졌다. 소련 해체 이후 10월 혁명 기념일은 없어졌고 1995년 승리 50주년 열병식 이후 매년 5월 9일에만 대규모 열병식이 실시된다. 다만 모스크바에서는 10월 혁명 기념일이 아니라 1941년의 모스크바 전투 기념일로 소규모 열병식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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Мы победили!
(우리는 승리하였다!)


9 мая 1945 г. Разгромаена Германия завершена 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
(1945년 5월 9일 독일을 물리치고 대조국 전쟁을 완료하였다)

3 сент. 1945 г. Повержена Япония окончена Вторая мировая война
(1945년 9월 3일 일본을 물리치고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냈다)


Слава Нашему великому народу, Народу-победителю!
(우리의 위대한 인민, 승리자 인민에게 영광을!)
대조국전쟁 당시 소련의 동맹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화민국의 국기도 뒷배경에서 같이 펄럭이는 것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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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병은 과연 얼마나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을까?[9][10]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한 뒤 나치 독일 대통령이 된 카를 되니츠는, 병력을 동부전선에 집중시켜 소련군을 막아내거나, 적어도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를 맺을 생각으로 아이젠하워 휘하의 서방 연합군에게만 항복하려 했지만, 서방도 소련도 이를 절대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기에 스탈린이 되니츠를 베를린으로 소환하여 항복을 받아냈다. 바로 이때가 베를린 표준시로 1945년 5월 8일 23시 43분이었는데, 이는 모스크바 표준시로 1945년 5월 9일 0시 43분과 같다. 이로 인해 소련의 전승기념일은 5월 9일로 정해진다.

2015년 기준으로 공휴일로 지정되어있는 나라는 당연한 러시아 외에 벨라루스, 우크라이나[11],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조지아, 몰도바, 그리고 친러 성향이 강하고 여러차례 반나치 빨치산 투쟁을 이어갔던 세르비아이다. 이들도 전쟁에서 나치 독일군과 싸우며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까지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기에[12] 러시아만큼 중요시하고 성대하게 기념하지는 않아도 승리의 날을 자신들의 기념일로 여긴다. 심지어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이른바 GUAM 국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러시아와 전쟁까지 했던 조지아에서도 여전히 기념되고 있는 것은 승리의 날이 러시아 외의 구소련 국가들에게도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13] 물론 남오세티야, 압하지아, 트란스니스트리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등 러시아로의 통합을 추진하는 친러시아 미승인 국가들에서도 공휴일로 지정되어 기념되고 있다.

예외로 소련 구성국 중 5월 9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 국가는 소련 시절 착취당한 발트 3국인데, 이들 국가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종결로 서유럽은 해방되었지만 자국은 해방되지 못했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14] 따라서 5월 8일을 종전기념일로 인정하고 있고 추모식을 비롯한 대부분 기념행사도 5월 8일에 열린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도 실제로 전쟁이 끝난 건 5월 9일이기 때문에 참전 노병들과 러시아계 주민들을 중심으로 9일에 종전을 기념하고 있다.
2010년 5월 9일 승리의 날 열병식
러시아의 붉은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이다. 영상의 27:32부터 보면 2010년 당시의 독립국가연합 소속국 중 일부인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몰도바, 타지키스탄, 우크라이나, 폴란드, 영국, 미국, 프랑스, 투르크메니스탄 순서로 연합국의 주요 국가들이 참여했다.[15] 특히 미국, 영국 등 서방세력이 붉은 광장에서 행군하는 모습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유명한 열병식이다. 2010년 당시엔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기에 같은 날 러시아군이 키이우에서의 열병식에 참여하기도 했고, # 우크라이나군 러시아군과 함께 벨라루스의 민스크에서의 열병식에 참가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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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에서 행군하는 미군[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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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9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열병식. 그러나 2014년 유로마이단 이후 크림 위기와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를 겪으면서 반러 경향이 강화된 우크라이나는 2014년 4월 9일 의회에서 채택된 법안에 따라 5월 8일을 '추모와 화해의 날'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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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9일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노병들과 거리 행진 퍼레이드에 참가한 알략산드르 루카셴카 대통령. 벨라루스는 공식으로 승리의 날인 5월 9일과 함께 7월 3일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하는데, 이 독립기념일은 사실 소련군이 나치 독일으로부터 민스크를 해방한 날이다. 그러니까 전승기념일이 2개인 셈이다. 열병식과 대규모 공식행사는 주로 7월 3일에 열린다. 러시아와 워낙 가까운 나라인지라 열병식이 열리면 거의 매번 러시아군 보병, 기갑부대, 항공기들도 함께 참가한다. 영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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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7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열병식.[17] 카자흐스탄은 5월 7일을 조국 수호자의 날 겸 남성의 날, 5월 9일을 승리의 날로 각각 기념하고 있다. 열병식 같은 대규모 행사는 주로 5월 7일에 열린다. 영상 링크 5월 9일에는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열리는 열병식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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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9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참전노병들을 맞이하는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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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9일 아르메니아 예레반 전몰용사 추모비에 헌화하는 정부 인사들. 아르메니아에서는 5월 9일이 '승리와 평화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기사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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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9일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전몰용사 추모비에 헌화하는 노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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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9일 몰도바 키시너우에서 전몰용사 추모비에 헌화하는 니콜라이 티모프티 대통령, 이고르 코르만 국회의장(좌), 유리 랸케 총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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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9일 타지키스탄 두샨베에서 전몰용사 추모비에 헌화하는 타지키스탄군 의장대



2014년 5월 9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전몰용사 추모식에서 조포를 발사하는 우즈베키스탄군 의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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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9일 남오세티야 츠힌발리에서 열린 열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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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9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도네츠크에서 열린 열병식



2015년 5월 9일 트란스니스트리아 티라스폴에서 열린 열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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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9일 압하지야 수후미에서 열린 열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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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모스크바에서 행진 중인 러시아군. 이날 러시아를 방문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열병식 때문에 공항에 갇혔다. 푸틴은 오후에 위기의 크림반도로 가서 흑해함대를 사열했다. #

약 4년간의 독소전쟁 동안 군인과 민간인 합쳐서 대략 2,8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모른다. 참고로 다른 나라는 독일 900만, 폴란드 600만, 프랑스 60만, 영국 45만, 미국 40만 정도이다.[18] 전쟁 막바지에는 스탈린조차도 게오르기 주코프에게 "이제 우리나라엔 전쟁으로 친지를 잃지 않은 사람이 없을 걸세."라며[19] 그의 몇 안되는 진실로 침통한 표정을 보였다고 한다. 이오시프 스탈린도 큰 아들을 독일군에게 잃었다.[20] 스탈린은 종전 후 승전 축하연에서도 "우리의 승리에 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모든 것은 소련 인민들의 피와 땀이 이룩한 것입니다."하고 연설을 했다.

이날이 되면 참전했던 노병들에게 꽃을 선물하고 꺼지지 않는 불 앞에 꽃을 바치며 전쟁 당시 사망한 전몰용사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관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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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념하는 러시아군 장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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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 벽에 위치한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각국 정상들.

러시아 대표 TV 뉴스보도 프로그램인 브례먀(Время)도 이날만큼은 특수 오프닝을 사용한다.

http://www.youtube.com/embed/LNoYKyZvNjA

러시아 도시 튜멘에서 촬영된 영상. 방송이 나올동안 대부분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전몰용사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차에서 내려 묵념에 동참한다.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여파로 인해 5월 9일 전승 기념행사를 연기하기로 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가 오늘 마주하고 있는 위협에서 벗어난 뒤 5월 9일 예정돼 있던 모든 행사를 확실하게 열 것”이라고 밝혔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중 소련/러시아의 침략과 전쟁범죄를 옹호하기 위한 선전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전후 처음으로 '소련의 대독 승전 기념'에 대한 재평가와 반감이 특히 동유럽을 중심으로 퍼졌다. 관련 기념물들도 철거되거나 훼손됐으며, 러시아와 가까운 국가들에선 전승절을 기념한다고 나온 러시아계 주민들이 체포되기도 했다.

2022년에는 러시아에서 외국 정상들을 초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

2023년에는 우크라이나 4개 지역 점령지까지 행사했다. #

한편 우크라이나는 기존 승리기념일을 5월 8일로 변경하고 9일은 유럽통합의 날로 바꿨다. #
2.1.3.1. 열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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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타

참고로 이 날은 히틀러 생일과 마찬가지로, 네오 나치 스킨헤드들이 극성인 날 중 하나이긴 한데, 그렇다고 승리의 날 러시아 전역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날은 자국민에게 린치당할까봐 스킨헤드가 짜져 있는 날 중 하나이고, 극동이나 시베리아 같이 유색인종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의 위험 요소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왜 스킨헤드가 극성이냐고? 이런 축제 분위기에 사람들이 들떠 있을 때 원래 깽판부리고 관광객 시비 걸기 더 좋은 법. 특히 사람들이 기뻐서 술 취하고 돌아다니는 야밤에 그렇다. 그렇게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아도 된다.

물론 그렇다고 전혀 걱정 없이 낮에 으슥한 곳을 지나가거나 밤에 유흥가 돌아다니지는 말자.

그리고 매년 열병식 영상에 헬마치 또는 소비에트 마치를 넣은 영상이 유튜브에 나온다.[21]

러시아에선 2020년 승리의 날 열병식이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되었다. 2020년의 행사가 완전히 취소될지, 아니면 9월 3일(대일전승일) 등 다른 날짜로 연기될 지는 불확실하다. 한편 벨라루스는 열병식을 강행했다.

러시아는 우선 항공 열병식만 실시하였으며 # 6월 24일 행사를 진행하였다. 그래도 인도, 구 소련권, 중국, 몽골, 세르비아 등에서 자국 군대를 파견을 많이 했고 특히 러시아와 거리를 두던 몰도바와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군대의 모습이 보였고 몰도바는 당시 대통령이던 이고르 도돈이 참석 하기도 했다. 다만 이후 현 대통령이 친서방이라 한 동안 이런 모습은 보기 힘들듯 하다.

아직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2021년 열병식은 전체적으로 차분해졌다. 외국정상도 타지키스탄에서만 온 것이 전부.

2022년에 카자흐스탄이 국제정세와 코로나19 이유로 승리의 날 열병식을 하지 않았다. #

4. 소련의 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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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중국 전승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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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 외

튀르키예의 경우 튀르키예 독립전쟁 당시 둠루프나르 전투에서 그리스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8월 30일을 승리의 날로 삼는다. 공무원들은 8월 29일은 오전까지만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점심에 퇴근하는 식으로 1.5일을 쉰다. 별거 없는 앙카라가 이 날 만큼은 꽉 찬다나 뭐라나. 아타튀르크 묘는 뭐...

아제르바이잔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결정적인 계기인 아르차흐의 제2도시 슈샤를 탈환한 날인 11월 8일을 승리의 날로 삼는다. 물론 그렇다고 5월 9일도 승리의 날로 안 삼는게 아니다.

북한의 경우 6.25 전쟁이 끝난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이라는 승리의 날로 기념한다.정신승리의 날 또한 2013년 7월 27일 자칭 대미승리 60주년을 맞아 동명의 군가를 발표했다. 소련 군가 승리의 날과는 관계가 없다.

크로아티아의 경우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크라이나 세르비아 공화국의 수도인 크닌을 점령한 8월 5일을 승리의 날으로 기념한다.

그리스와 같이 추축국 중 독일이 아닌 대 이탈리아 항전을 기념하는 나라들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전승절 참조.


[1] 5월 9일도 소련의 대독전승일로서 같이 기념하고 있다. [2] 정식 명칭은 Victory in Europe Day이지만 이스라엘에 상당수 거주하는 러시아 출신 유대인의 영향으로 5월 9일에 기념한다. [3] 5월 9일 대독 전승일을 기념했으나 2023년부터 Victory in Europe Day로 5월 8일에 기념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4] 정치적인 이유 말고도 키이우 시간대에서 독일 항복은 5월 8일이였다는 역사적 근거도 존재한다.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 시간대와 다른 시간대를 쓴다. [5] 구개음화 및 모음의 강세 때문에 이렇게 발음이 난다. 마지막 모음이 '의' 발음이 나고 구개음화가 없기에 마지막 발음은 지가 아니라 듸다. [6] 서방 국가들도 전쟁에서 피해를 본 건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독일의 전력이 워낙에 넘사벽이다 보니 대부분 얼마 못 가 조기에 함락당하거나 항복해서 소련만큼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며, 영국은 유럽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 덕분에 본국에 입은 피해가 미미했고, 미국은 아예 본국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졸지에 소련이 독일의 막강한 육해공군을 혼자서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탱커가 되어버렸기에, 그리고 전쟁 후반기에는 대일전쟁에도 참여했기에 말 그대로 수많은 인민들을 갈아넣으면서 싸워야 했다. 전후 소련에게 랜드리스로 많은 물자를 지원한 미국에게 소련이 실제 대여한 물자 비용의 1/10도 안되는, 그나마도 자기 재정에서 지출한 게 아니라 러시아 제국 시절 황가의 금고를 따서 꺼낸 금괴와 귀금속들만 건네주고 입을 싹 닦았어도 미국이 별 말 안 한 것은 소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도 쉽지 않았던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만약 소련이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독일에게 조기에 항복했더라면 소련이 입었어야 했던 피해가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왔어야 했었음을 알았기에 소련이 자신들을 대신하여 피해를 입은 것만으로도 빚을 다 갚은 것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7] 소련 붕괴 이후 제1의 건국신화였던 러시아 혁명이 부정당하며 이제 독소전쟁 승리는 러시아의 유일한 건국신화가 되었다. [8] 1945년 6월 24일을 제외하면 [9] 러시아 한 신문은 네오 나치를 비판하려 이 사진과 함께 나치식 경례를 하는 네오 나치의 사진을 대비시켰다. [10] 이 사진의 주인공은 레프 기체비치(Лев Гицевич, 1928.04.30.~)이며, 1941년 어머니가 SS에게 총살당한 것을 계기로 입대했다고 한다. 1945년 일본군을 상대로 하는 뤼순 전투에도 참여했다. 이 사람이 찍힌 다른 사진. [11] 2023년 5월 28일 우크라이나의회에서 서방과 마찬가지로 5월 8일로 승전기념일을 변경하는 안이 통과되었다. 다만 친러성향 주민들도 의식해서인지 5월 9일은 나치즘을 기억하는 날로 결의되었다 [12] 특히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몰도바는 전국토가 전쟁터가 되어 전쟁의 참화를 그대로 입어야 했다. [13] 2011년 조지아 외무부가 승전기념일을 5월 9일에서 5월 8일로 옮기자고 제안했고, 2013년 몰도바도 집권당이 국가 수준의 기념을 중단하자고 제안했지만 둘 다 무산되었다. 물론 시간이 더 흘러 대조국전쟁과 소련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조지아의 구세대가 사라지고 반러 경향이 가속화된다면 이들 국가에서는 다른 날로 옮겨질 가능성이 있다. [14] 일례로 에스토니아는 2007년 수도 탈린의 소련군 동상을 외곽으로 이전하고 이에 반대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의 시위를 진압했다가 러시아 해커로 추정되는 세력에 의해 사이버테러를 당해 국가기간망이 거의 마비된 적도 있다. [15] 열병식에 참여했던 우크라이나는 4년 뒤인 2014년에 CIS에서 탈퇴했다. [16] 당시의 현역 군인. 뒤에 멀리 보이는 군대는 프랑스군이다. [17] 역시 소련의 향수가 강하게 남아있는 나라여서 러시아, 벨라루스와 함께 열병식에서 소련 시절 군가를 그대로 연주하는 등 소련 시절 열병식과 비슷하게 진행한다. 위 사진에서도 오른쪽에 소련 승리의 깃발이 보인다. [18] 중국 사망자는 소련과 비슷한 수치로 추정되고 있다. 다만 중일전쟁의 기간은 독소전쟁의 2배가 넘는다. [19] 러시아의 거의 모든 가정마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2010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승전 6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언급한 바 있다. [20] 장남 야코프 주가시빌리는 포병 대위로 참전했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자는 반역죄로 취급하고 가족들도 처벌하라"는 스탈린의 지시대로 야코프의 가족들을 투옥시켰다. 야코프는 포로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스탈린은 야코프가 사망했다는 공식 정보를 받은 뒤에야 야코프의 가족들을 석방했다. [21] 더욱 아이러니한건 MBC 뉴스에서도 소비에트 마치를 브금으로 넣은 뉴스를 보냈다는 것이다! 심지어 후반의 독소전쟁 기록영상에서는 걸즈 앤 판처 버전의 카츄샤를 브금으로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