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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감(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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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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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鑒
(? ~ 294년 2월 12일[1])

1. 개요2. 행적3. 평가4. 창작물에서의 등장

[clearfix]

1. 개요

삼국시대 조위, 서진의 인물. 자는 임백(林伯). 청주 악릉군 염차현[2] 청빈한 가문 출신.

훗날 진나라에서 삼공을 모두 역임했다.

2. 행적

고상한 마음을 가져 공평정직하여 위나라에서 상서랑, 어사대 시어사, 상서좌승, 어사중승을 역임했다. 이때 수많은 잘못을 바로잡는 탓에 조정에 그를 꺼렸고 때문에 지방으로 가 병주 자사, 가절, 호 흉노중랑장이 되었다.

265년, 사마염 위나라 멸망시키고 진나라 황제가 되자 당양자에 봉해졌고 중앙에서 사예교위, 상서 등을 역임했다.

270년, 독발수기능의 난이 일어나 호열 독발수기능에게 죽고 진주, 양주 등이 무너지자 안서장군, 도독진주제군사[3]가 되어 두예에게 독발수기능을 공격하게 했다. 하지만 두예가 6월은 풀이 성하여 이 살찌는 계절이므로 기병이 위주인 선비족과 싸우기엔 적기가 아닌데다, 적이 무척 강성해 지금의 병력만으론 토벌이 어려우니, 중앙에 원군을 요청하고 내년 봄까지 기다린 후 나아가 토벌해야 한다 진언했다. 석감은 이에 분노하여 두예가 군사를 일으키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상주해서 함거에 갇히게 했다. 사실 두예가 하남윤으로 있을 때 부터 묵은 감정으로 두예에 관한 상주를 올려 면직시켰을 정도로 두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두예는 황실과 친인척 관계였기에 사형은 면했으나 후작도 박탈당해 평민이 되었다. 그러나 결국 상황은 두예의 말대로 흘러가, 석감은 독발수기능의 난을 진압하는 데 실패했고, 총지휘관은 여음왕 사마준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공을 허위로 논한 것에 연좌되어 면직되었다가, 몇 년 후 다시 복직되어 진남장군, 예주 자사가 되었다.

280년에 오를 공격할 때 수급을 허위로 부풀리자, 사마염이 분노하여 직접 조서를 내려 다시 면직시켰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광록훈, 사례교위를 역임하고 점차 특진이 더해져 우광록대부, 개부가 되어 사도를 거느렸다. 전 대의 세 공은 재상을 높여 도우라는 것으로 인해 책봉을 받아 작은 집회를 베풀었다가 이것이 끝난 뒤로 폐해져 행해지지 않다가 석감이 조서를 통해 집회를 주최해 항상 열리게 되었다.

290년 3월, 사공이 되어 태자 태부를 거느렸다.

5월 무제 사마염이 사망하여 석감은 장소와 함께 산릉을 돌아보고 있었다. 당시 사마량 양준에게 의심을 받아 상에 임할 수 없어 영채에서 나와 성 바깥에 있었는데, 사마량이 양준을 토벌하고 싶어한다는 고변이 나오면서 양준이 두려워해 무도황후를 통해 혜제가 조서를 쓰게 하고, 석감은 장소와 함께 능의 병사를 인솔해 사마량을 토벌하게 했다. 장소[4]가 빨리 가기를 재촉했지만 이에 따르지 않고 이를 지키면서 가지 않았으며, 은밀히 사마량을 엿보아 이미 다른 길로 허창에 돌아갔기에 양준이 그를 공격하려던 것을 그쳤다. 논하는 자들은 이를 칭찬했고 석감은 무제의 능지까지 무사히 정하면서 창안현후에 봉해졌다.

동년 10월 6일 태위가 되었다. 나이가 팔십여 살이 되었어도 장대하면서 강개해 만나는 것이 마치 소년과 같았으니, 사람들은 이를 아름답게 여겼다고 한다.

294년 1월 1일 사망했고 시호를 원(元)이라 했다.

3. 평가

사실 사서 기록의 묘사는 조금 모순이 있지만, 개인의 성격으로 평가하자면 강직하지만 야심도, 탐욕도 있어 사회적으로는 부침을 겪었어도 시운이 좋아서 권력과 명예 그리고 천수까지 누리고 적절히 사망한, 적당히 실속있는 프로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의외로 흔하다면 흔한 보편적인 일반 정치인

4. 창작물에서의 등장

4.1. 삼국지 시리즈

파일:석감.jpg
삼국지 14 일러스트

삼국지 14부터 등장하고 능력치는 통솔 70, 무력 60, 지력 73, 정치 67, 매력 22로 개성은 징세, 친선, 공명, 탐욕, PK에서는 교사 개성이 추가되었고 주의는 명리, 정책은 화계연구 Lv 3, 진형은 어린, 장사, 전법은 화시, 도발, 매성, 친애무장은 없고 혐오무장은 두예다. 이밀과 더불어 둘 뿐인 진나라 추가인물이다. 어투가 교활남으로 설정되었다.

4.2. 삼국전투기

겨울왕국 한스 웨스터가드로 패러디되었다. 처음 등장한 독발수기능의 난 (2)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소개컷에서는 짤막하게 인성 갑이라고 알려져 있다고 서술됐다.

독발수기능의 난 편에서 처음 등장. 진주자사로 파견됐던 호열이 살해당하자 하증의 추천으로 도독진주제군사로 임명되어 진주자사 두예와 함께 서량으로 향했다.[5] 다만 파트너 두예가 첫 만남부터 기이한 모습만을 보였기에 석감은 두예를 영 좋지 않게 봐서 그를 화살받이 총알받이로 쓸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무튼 서량에 도착한 석감은 빨리 처리할수록 자신의 평가가 오르리라고 여겨 두예에게 군사를 몰고 독발수기능과 싸우라고 명하지만, 두예는 정비가 덜 됐다는 걸 이유로 석감의 명령을 거부한다. 이에 석감은 두예를 모함해 중앙으로 보내버리고 자기가 직접 군을 이끌고 독발수기능을 공격하지만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얻어터지고 간신히 목숨만 건지게 되었다. 이후 석감은 허위로 공을 보고하려 했다가 관직에서 쫓겨났다고 묘사됐다.

석감은 이후 복직했지만, 또 공을 부풀리다 쫓겨났는데(...), 놀랍게도 그러고도 또또 복직에 성공했고 최후에는 많은 사람들의 추앙까지 받으며 삼공까지 올랐다고 언급됐다. 작가는 능력도 없었던 거 같은데 저기까지 오른 걸 보면 인성이 좋긴 좋았던 것 같다며 덧붙이기도 했다.


[1] 음력 1월 1일. [2] 평원 지방에 있다. [3] 진무제기의 기록으로, 석감열전에 도독농우제군사로 임명되었다는 기록과 배치된다. [4] 양준의 생질이다. [5] 석감이 파견된 건 평판도 평판이지만 이민족 상대 경험이 의외로 꽤 있던 것도 한몫 했다. 석감은 병주자사를 역임하며 흉노와 하루가 멀다하고 싸워 온 경력이 있었기 때문. 같이 갔던 두예도 유주 출신이라 이민족 상대 경험이 제법 있었다고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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