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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가|
세리에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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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리그 및 대표팀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 |
FK Crvena Zvezda | |
<colbgcolor=#d90512><colcolor=#fff> 정식 명칭 |
Фудбалски клуб Црвена звезда Београд (Fudbalski Klub Crvena Zvezda Beograd) |
영문 명칭 | Red Star Belgrade |
별칭 | Crveno-beli (적과 백), Zvezda (별들) |
창단 | 1945년 3월 4일 ([age(1945-03-04)]주년)[1] |
소속 리그 |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Serbian SuperLiga) |
연고지 | 베오그라드 (Belgrade) |
홈구장 |
스타디온 라이코 미티치 (Stadion Rajko Mitić) (53,000명 수용) |
라이벌 | FK 파르티잔 - 베치티 데르비 |
구단주 |
[[세르비아| ]][[틀:국기| ]][[틀:국기| ]] 스베토자르 미야일로비치 (Svetozar Mijailović) |
감독 |
[[세르비아| ]][[틀:국기| ]][[틀:국기| ]] 블라단 밀로예비치 (Vladan Milojević) |
주장 | 공석 |
UEFA 랭킹 | 46위 # |
역대 한국인 선수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황인범 (2023~2024)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설영우 (2024~ ) |
공식 웹사이트 | |
우승 기록 | |
세르비아 인민 공화국 리그 (1부) (1회) |
1945-46 |
유고슬라비아 프르바리가 (1부) (19회 / 최다 우승) |
1950-51, 1952-53, 1955-56, 1956-57, 1958-59, 1959-60, 1963-64, 1967-68, 1968-69, 1969-70, 1972-73, 1976-77, 1979-80, 1980-81, 1983-84, 1987-88, 1989-90, 1990-91, 1991-92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리그 (1부) (5회) |
1994-95, 1999-00, 2000-01, 2003-04, 2005-06 |
★★★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1부) (10회 / 최다 우승) |
2006-07, 2013-14, 2015-16, 2017-18, 2018-19, 2019-20, 2020-21, 2021-22, 2022-23, 2023-24 |
유고슬라비아컵 (12회) |
1947-48, 1948-49, 1949-50, 1957-58, 1958-59, 1963-64, 1967-68, 1969-70, 1970-71, 1981-82, 1984-85, 1989-90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컵 (9회) |
1992-93, 1994-95, 1995-96, 1996-97, 1998-99, 1999-00, 2001-02, 2003-04, 2005-06 |
세르비아컵 (7회) |
2006-07, 2009-10, 2011-12, 2020-21, 2021-22, 2022-23, 2023-24 |
UEFA 챔피언스 리그 (1회) |
1990-91 |
인터컨티넨탈컵 (1회) |
1991 |
미트로파컵 (2회) |
1958, 1968 |
클럽 기록 | |
최고 이적료 영입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황인범 (Hwang In-Beom) (2023년, From 올림피아코스 FC, 550만 €) |
최고 이적료 방출 |
[[세르비아| ]][[틀:국기| ]][[틀:국기| ]] 고란 드룰리치 (Goran Drulic) (2001년, To 레알 사라고사, 1300만 €) |
최다 출장 |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드라간 자이치 (Dragan Džajić) - 389경기(1963-1975 / 1977-1978) |
최다 득점 |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보라 코스티치 (Bora Kostić) - 230골(1951-1961 / 1962-1966) |
영구 결번 | 12[2] |
[clearfix]
1. 개요
FK 츠르베나 즈베즈다(Фудбалски клуб Црвена звезда Београд)는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 연고지를 둔 축구 클럽이며 종합 스포츠 클럽인 SD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일부분이다.[3]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다름 아닌 ' 붉은 별'이란 뜻으로 나라마다 달리 불리는데, Red Star(영어), Étoile Rouge(프랑스어), Roter Stern(독일어), Stella Rossa(이탈리아어), Estrella Roja(스페인어) 등 다양하게 불린다. 특히 FK 파르티잔과 세르비아 축구를 양분하며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 구 유고슬라비아 시절 가장 성공한 세르비아 클럽이며 리그 우승 30회, 컵 우승 12회를 기록하며 세르비아 팀 중 통산 최다 우승팀이기도 하다. 엠블럼 상단의 별은 10회 우승 시마다 하나씩 부여되는데, 1945-46 시즌부터 2018-19 시즌까지 30회를 달성함에 따라 3개의 별이 추가되었다.[4]동유럽 클럽 중에서는 CSA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와 더불어 둘밖에 없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 클럽이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이 발표한 20세기 클럽 랭킹에서 네덜란드의 페예노르트와 더불어 27위에 랭크되었다. 90년대 해외축구 팬들에게는 챔스 우승의 레드 스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팀이다.
국내에서는 합법적으로 세르비아 수페르리가를 시청할 방법이 없고 즈베즈다가 유럽 대항전에 밥먹듯이 나오는 팀도 아니기에 인지도는 거의 없었지만 최근들어 국가대표 주전 선수 설영우가 이적하며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2.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5년 3월 4일, 레드 스타 반 파시즘을 표방하는 청년 집단에 의하여 내무부 소속의 종합 문화 클럽으로 창단되었다. 전쟁이 종결된 후에 재개된 1946-47 시즌부터는 대략 3년 동안 FK 파르티잔, GNK 디나모 자그레브,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FK 사라예보 등등 쟁쟁한 경쟁 상대들이 많았기에 부침이 있었지만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1951년, 1953년에 리그에서 우승을 달성하였고 1956년에도 챔피언이 되어 1956-57 시즌 유러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첫 출전을 하게 된다. 여기서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준결승까지 진출하지만 피오렌티나에 밀려 결승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만다. 그 다음 시즌엔 8강에 진출하지만 맷 버스비의 맨유에 종합 4-5로 밀려 탈락하는데, 이 와중에 맨유가 뮌헨 참사를 당하였다. 그 후 1970-71 시즌 유러피언컵에서 한 번 더 준결승에 오른 것 외에는 1991년까지 기대 이하의 성적만 거뒀다. 다만 1978-79 시즌 UEFA컵(현 UEFA 유로파 리그)에는 결승에 올랐다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 1-1, 0-1로 패하며 준우승을 한 적이 있었다.'''''' | ||||||||||
츠르베나 즈베즈다 | 팀 | 마르세유 | ||||||||
대진 | 합계 | 1차전 | 2차전 | 녹아웃 | 대진 | 합계 | 1차전 | 2차전 | ||
그라스호퍼 | 5:2 승 | 1:1 무 (홈) | 4:1 승 (원정) | 1라운드 | 디나모 티라나 | 5:1 승 | 5:1 승 (홈) | 0:0 무 (원정) | ||
레인저스 | 4:1 승 | 3:0 승 (홈) | 1:1 무 (원정) | 2라운드 | 레흐 포즈난 | 8:4 승 | 2:3 패 (원정) | 6:1 승 (홈) | ||
디나모 드레스덴 | 6:0 승 | 3:0 승 (홈) | 3:0 (기권승)[1] 승 (원정) | 준준결승 | 밀란 | 4:1 승 | 1:1 무 (원정) | 3:0 (기권승)[2] 승 (홈) | ||
바이에른 뮌헨 | 4:3 승 | 2:1 승 (원정) | 2:2 무 (홈) | 준결승 |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 5:2 승 | 3:1 승 (원정) | 2:1 승 (홈) | ||
5승 3무 0패 (19득점 6실점) | 합계 성적 | 5승 2무 1패 (22득점 8실점) | ||||||||
◀ 1989-90 | 결승 | ▶ 1991-92 |
[1]
후반 23분에 디나모 드레스덴 관중의 폭동으로 경기가 중단, 2-1로 앞서고 있던 츠르베나 즈베즈다에게 3-0 몰수승이 주어졌다.
[2]
후반 추가시간때 경기장 조명이 꺼지는 소동이 일어났고, 곧바로 조명이 켜졌지만 AC 밀란이 경기를 계속하기는 것을 거부하여 1-0으로 앞서고 있던 마르세유에게 3-0 몰수승이 주어졌다.
'''''' | ||
스타디오 산 니콜라 (바리) | ||
주심: 툴리오 라네세 (이탈리아) | ||
관중: 51,587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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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르베나 즈베즈다 | 마르세유 | |
0 | 0 | |
<rowcolor=#000,#fff> - |
|
- |
- | ||
◀ 1990 유러피언컵 결승전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1992 유러피언컵 결승전 |
승부차기 | ||||
츠르베나 즈베즈다 | <colcolor=#000,#ddd> 5 : 3 | 마르세유 | ||
선축 (GK: 스테반 스토야노비치) |
후축 (GK: 파스칼 올메타) |
|||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 1 | 마누엘 아모로스 | ||
드라기샤 비니치 | 2 | 베르나르 카소니 | ||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 | 3 | 장피에르 파팽 | ||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 4 | 카를루스 모제르 | ||
다르코 판체프 | 5 | - | - |
그러나 1990-91 시즌, 이전까지 착실히 자국 내 유망주들을 수집하며 팀 빌딩을 진행해 온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현재까지도 구단 역사상 최강의 스쿼드라고 일컬어지는 1991 유러피언 제너레이션이 드디어 구성됐기 때문이다. 유러피언컵에 출전한 즈베즈다는 류프코 페트로비치 감독을 필두로,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데얀 사비체비치의 미드필더 조합에 해당 시즌 발롱도르 2위를 차지한 다르코 판체프, 당대 동유럽 최고의 수비수로 불리던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까지 화려한 중원과 최고의 골 결정력을 지닌 스트라이커, 동유럽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를 앞세워 1라운드에서 스위스의 명문 그라스호퍼를 종합 5-2, 2라운드에서 스코틀랜드의 명문 레인저스를 종합 4-1, 8강에서 동독의 강호 디나모 드레스덴을 종합 6-0[5], 그리고 준결승에서 독일의 명문이자 유프 하인케스가 이끌던 바이에른 뮌헨까지 종합 4-3으로 격파하면서 무패로 결승전까지 진출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결승 상대가 당대만 해도 유럽 최강의 선수진을 보유하고 있었던 마르세유. 빅 이어가 걸린 경기답게 치열한 접전이 연장전까지 이어졌다. 연장 후반까지 스코어는 끝내 0-0이었으며, 결국 승부차기 끝에 마르세유를 5-3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우승의 기쁨을 누리는 즈베즈다의 선수들 |
그러나 몇 년간은 이어질 줄 알았던 전성기가 1년도 안 되어 갑자기 막이 내리게 된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1991-92 시즌이 한창 진행되던 중에 터진 거라 정신적인 부담이 컸음에도 시즌은 계속 진행되었고, 그 여파인지 유러피언 컵에서 만치니의 삼프도리아에 밀려 아깝게 결승 진출에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즌을 끝으로 유고 리그는 1997-1998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유럽 대항전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핵심 선수들은 해외로 떠났고, 유고 리그는 5개 리그로 분열되었으며 조국은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정치적, 경제적, 치안적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그리하여 오늘날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현실적으로 빅 이어는 고사하고 챔스 16강 진출조차 노리기 힘든 구단이 되었다.
전성기가 막을 내린 이후로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동네북이 된 지 오래이다. 전술했듯 유고슬라비아 리그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로 각각 찢어지면서 리그 규모가 큰 타격을 받았고, 전쟁으로 인해 90년대 중후반엔 유고 리그 상위권 팀들이 유럽 대항전에 참가할 수 없었다. 결국 핵심 선수들은 전부 해외로 뜨는 바람에 챔피언스 리그에선 32강만 가도 본전인 수준으로 추락,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와 똑같은 신세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 3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은 없지만 라이벌 파르티잔이 리그를 독식해 앞서 있던 리그 우승 횟수를 거의 따라잡혔다.
2013-14 시즌엔 오랜만에 리그 우승을 거뒀으나, 리그 재정 문제 및 UEFA 규정 위반으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 자격이 박탈되어 2위인 라이벌 파르티잔이 대신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했다.
2014-15 시즌은 파르티잔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했다. 컵 대회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다.
2017-18 시즌에 들어서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주면서 리그 우승을 했지만 컵에서는 고배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FC 크라스노다르를 승부차기로 간신히 꺾고 조별 리그까지 통과하였지만 32강전에서 CSKA 모스크바에 덜미를 잡혀 탈락하게 되었다.
2018-19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잘츠부르크를 상대로 1차전 홈에서 거의 잠근 전술로 0:0으로 비기고 원정에서 2:2로 비기며 원정 다득점으로 챔스 조별 리그에 진출했다. 잘츠부르크가 지난 시즌 유로파 4강까지 간 전력임을 생각하면 좋은 성적이다. 물론 챔스에서는 사실상 최약체인데 하필 파리 생제르맹, 리버풀, 나폴리와 한 조가 되었다. 헌데 4차전 홈 경기에서 리버풀을 2-0으로 이기는 이변을 보여줬다. 당연하지만 원정에선 리버풀에 0-4으로 압도당했다. 리버풀을 이긴 거와 대조적으로 1승 1무 4패로 조 4위 꼴찌로 탈락했다.
2019-20 시즌에는 스위스의 영 보이스를 이기고 32강에 진출했다. B조에 들어가서 토트넘 홋스퍼 FC, FC 바이에른 뮌헨, 올림피아코스 FC와 맞붙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조금 알려지게 되었는데 손흥민이 이 팀을 상대로 2경기 모두 2골씩 넣었기 때문이다. 토트넘에 원정에서 5-0, 안방에서 4-0으로 참패했고 1, 2위 다툼을 하는 뮌헨과 토트넘에 밀려 챔피언스 리그 16강은 거의 탈락한 상태. 그나마, 올림피아코스를 누르고 조별 리그 4차전에서 3위를 달리며 유로파 리그 진출 기회가 남아 있다. 그러나 마지막 6차전 올림피아코스 원정을 0-1로 지면서 역전당해 저번 시즌처럼 조 4위로 탈락.
2020-21 시즌부터 3시즌 연속 세르비아 컵과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2020-21시즌과 2022-2023시즌의 리그 성적은 무려 무패 우승이다.
===# 2023-24 시즌 #===
파리 프리미어 컵 2023년 7월 13일 목요일 00:30 (KST) |
||
스메나 스타디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 ||
주심: 예브게니 쿠쿠랴크 | ||
관중: 3,075명 | ||
|
3 : 1 |
|
츠르베나 즈베즈다 | 페네르바흐체 | |
1'
피터 올라인카 (A.
장필리프 크라소) 39' 미르코 이바니치 (A. 피터 올라인카) 82' 블라디미르 루치치 (A. 라자르 니콜리치) |
79' 젠기즈 윈데르 (A. 제이든 오스터펠더) |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챔피언스리그 본선 32강 탈락
-리그 우승
-세르비아컵 우승
전 시즌 리그 우승 자격으로 2023-24 UEFA 챔피언스 리그 본선 32강에 직행하였다.[23-24시즌]
이후 3포트에 배정되어 이어진 조추첨에서 G조에 배정되는데, 프리미어리그의 강자이자 전 시즌 트레블의 주인공 맨체스터 시티 FC, 분데스리가의 RB 라이프치히, 스위스의 신흥강호 BSC 영 보이즈를 만나게 되었다.
챔피언스리그 디펜딩 챔피언인 맨시티를 견제할 만한 체급을 가진 팀이 없고, 라이프치히는 맨시티에게 상성 수준으로 털려왔으나 그걸 제외해도 나머지 두 팀은 7위권 밖의 리그에서 온 팀들인지라 변수가 없는 한 라이프치히도 순조롭게 16강에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나머지 즈베즈다와 영 보이즈 두 팀이 조 3위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1강 1중 2약 구도로 예상된다.
2023년 9월 5일, 올림피아코스 FC 소속의 황인범을 구단 최고 이적료인 550만유로에 영입하였다. 이로써 황인범은 팀의 첫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
황인범이 즈베즈다 데뷔골을 넣은 경기에서 홈 122경기 무패를 달성하며 거함 레알 마드리드를 제치고 홈 경기 연속 무패 세계 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기분 좋은 기록을 달성한지 얼마 안 돼서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5패 1무라는 처참한 성적표로 탈락하고 베치티 더비에서 패하는 등 연달아 비보가 전해졌고 결국 바락 바하르 감독은 경질당했다.
이후 블라단 밀로예비치 감독을 재선임, 2024년 들어 리그 무패행진을 달리며[7] 정규 라운드 종료(30경기) 기준 승점 77점으로 1위 탈환에 성공했다. 반면 라이벌인 파르티잔(2위)은 3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하는 등 부진에 빠지며 둘의 승점차가 7점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스플릿 라운드 3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파르티잔이 연패를 기록하며 무너지는 동안 즈베즈다는 베치티 데르비를 비롯한 3경기에서 2승 1무로 승점 84점을 확보하며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8] 이후 남은 4경기를 전승하며 최종 승점 96점으로 시즌을 마감했다.[9]
세르비아컵에서도 준결승에서 파르티잔에, 결승전에서 보이보디나에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 4시즌 연속 도메스틱 더블을 달성했다.
2.1. 2024-25 시즌
리그 : 1위(진행중)세르비아컵 : 진행 전
챔피언스 리그 : 본선진출
2024년 6월 30일 울산 HD FC로부터 설영우를 영입하면서 한국인 선수가 2명으로 늘었다. 다만 같은해 9월 2일에 황인범이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으로 이적하며 설영우만 남게 되었다.
전 시즌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2024-25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10] 상대는 노르웨이의 FK 보되/글림트. 1차전 원정에서 2:1로 패했다. 2차전 홈경기에선 경기 초반부터 압박강도를 강하게 가져가며 FK 보되/글림트의 빌드업을 방해했고 전반 24분 pk에서의 득점과 후반 코너킥에서 세트피스 득점을 기록 2:0으로 승리해 챔피언스리그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바뀐 챔피언스리그 포트에선 3포트에 배정됐다.
리그 9R 현재, 한 경기를 덜 치른 상태에서 7승 1무로 유일한 무패를 기록중이며 모든 경기를 치른 2위와는 3점차로 1위이다. 라이벌 파르티잔과의 첫 번째 베치티 데르비를 0:4로 압도해버린 것은 덤.
20R 현재 19승 1무(!)로 무패행진 중이며 이 시점에 이미 상위 스플릿 진출을 확정지은 상태다. 양강 라이벌인 파르티잔이 거하게 자멸한 덕에 올해도 리그 우승은 수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3. 선수 명단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2024-25 시즌 스쿼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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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K 츠르베나 즈베즈다 2024-25 시즌 스쿼드 | |||||
번호 | 한글 성명 | 로마자 성명 | 포지션 | 국적 | 비고 | |
1 | 마르코 일리치 | Marko Ilić | GK | |||
2 | 코스타 네벨코비치 | Kosta Nedeljković | DF | |||
3 | 밀로시 데게네크 | Miloš Degenek | DF | |||
4 | 미르코 이바니치 | Mirko Ivanic | MF | |||
5 | 우로시 스파이치 | Uroš Spajić | DF | |||
6 | 라데 크루니치 | Rade Krunić | MF | |||
7 | 요반 슬리비치 | Jovan Šljivić | MF | |||
8 | 겔로르 캉가 | Guélor Kanga | MF | |||
9 | 셰리프 은디아예 | Cherif Ndiaye | FW | |||
10 | 알렉산다르 카타이 | Aleksandar Katai | MF | |||
13 | 알렉스 비고 | Alex Vigo | DF | [A] | ||
14 | 피터 올라인카 | Peter Olayinka | FW | |||
15 | 실라스 | Silas | DF | |||
17 | 장필리프 크라소 | Jean-Philippe Krasso | FW | |||
18 | 옴리 글레이저 | Omri Glazer | GK | |||
19 | 네마냐 밀루노비치 | Nemanja Milunović | DF | |||
20 | 킹스 캉와 | Kings Kangwa | MF | |||
21 | 티미 엘시니크 | Timi Elšnik | MF | |||
22 | 달시오 고메스 | Dalcio Gomes | FW | |||
23 | 밀란 로디치 | Milan Rodić | DF | |||
24 | 나세르 지가 | Nasser Djiga | DF | [B] | ||
25 | 니콜라 바실예비치 | Nikola Vasiljević | GK | |||
32 | 루카 일리치 | Luka Ilić | MF | |||
33 | 스르쟌 미야일로비치 | Srđan Mijailović | MF | |||
37 | 블라디미르 루치치 | Vladimir Lučić | MF | |||
41 | 니콜라 크네제비치 | Nikola Knežević | MF | |||
45 | 니콜라 미툴리키치 | Nikola Mituljikić | MF | |||
55 | 안드리야 막시모비치 | Andrija Maksimović | MF | |||
66 | 설영우 | Seol Young-Woo | DF | |||
70 | 우로시 카비치 | Uroš Kabić | MF | |||
73 | 예고르 프루체프 | Egor Prutsev | FW | |||
77 | 라자르 니콜리치 | Lazar Nikolić | DF | |||
80 | 스테판 미트로비치 | Stefan Mitrović | MF | |||
<colbgcolor=#ffffff> 구단 정보 | ||||||
구단주: 스베토자르 미야일로비치 / 감독: 블라단 밀로예비치 / 홈 구장: 스타디온 라이코 미티치 | ||||||
출처: 공식 홈페이지 / 마지막 수정 일자: 2024년 9월 4일 |
[A]
CA 리버 플레이트에서 임대
[B]
FC 바젤에서 임대
}}}}}}}}} ||4.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스타(Star)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창단 직후 50여 년의 역사 동안 활약한 5명과 1991 유러피언 제너레이션에게 각각 별[11]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첫 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라이코 미티치(Rajko Mitić)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창립 멤버이자 초대 주장으로서 팀의 첫 번째 전성기를 연 인물.
-
두 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드라고슬라브 셰쿨라라츠(Dragoslav Šekularac)
지능적이고 창의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인기를 얻었으며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의 전성기를 함께한 선수. 1996년에는 부산 대우 로얄즈의 감독을 지냈다.
-
세 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드라간 자이치(Dragan Džajić)
츠르베나 즈베즈다 역사상 통산 득점 1위, 통산 경기 출전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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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 "피존"( Vladimir Petrović "Pižon")
츠르베나 즈베즈다 주장으로서 최초로 유럽 대항전 결승(1978-79 UEFA컵)으로 팀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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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픽시"(Dragan Stojković "Pik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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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들: 1991년 유러피언컵 우승 세대(The 1991 European Cup Winner Generation)
츠르베나 즈베즈다가 처음으로
빅 이어를 들었던 영광의 시절.
등번호 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No. 2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No. 3
슬로보단 마로비치, No. 4
레픽 사바나조비치, No. 5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 No. 6
일리야 나이도스키, No. 7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No. 8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No. 9
다르코 판체프, No. 10
데얀 사비체비치, No. 11
드라기샤 비니치. 그 외에 골키퍼 No. 1
스테판 스토야노비치가 있다.
5. 서포터즈
델리예(Delije)라는 이름이 있다. 세르비아어로 '영웅들'이란 뜻.세르비아 국내에서는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한다. 세르비아의 축구 팬 중 절반 정도가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응원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같은 베오그라드를 연고지로 하는 라이벌인 FK 파르티잔과의 더비 매치는 특히 고조를 보이곤 하는데, 2009년 4월에는 파르티잔과의 경기 도중 서포터가 경찰과 충돌하여 95명이 체포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전쟁, 보스니아 전쟁 당시 세르비아 마피아 젤리코 라즈나토비치 "아르칸"(Жељко Ражнатовић Аркан, 1952~2000)이 이 서포터 그룹을 장악하고 준군사집단으로 키워놔 전쟁에 참여했는데, 이 당시 이들의 전술인 ' 크로아티아 도시에 잠입, 로켓포 폭격 후 빠지기'는 당시 크로아티아계들이 이를 갈기에 충분했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벌인 약탈, 학살, 강간은 하도 사례가 많아 정확한 조사,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이들이 벌인 대학살극의 실상은 스레브레니차 학살 문서 참조. 사라예보 시민들을 무차별 저격하고, 보스니아계 마을을 불질러 초토화시키는 끔찍한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했다. 이들은 이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하지만 우습게도 이 팀 구단주가 되려고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1996년에 베오그라드에 연고지를 둔 FK 오빌리치(FK Obilić, 이름부터가 1389년 1차 코소보 전투에서 전사한 기사인 오빌리치에서 따옴) 구단주가 되면서 츠르베나 즈베즈다에 테러를 가했다. 이로서 그를 지지하던 극우 즈베즈다 서포터들도 아르칸은 오로지 본인의 이득을 위해 우리를 써먹은 것이었다고 치를 떨게 된다.
테러 및 상대 주전 납치, 감금 같은 화려한 노력으로 오빌리치는 1997~98 시즌 세르비아 리그(당시 이름은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우승도 차지하며 98-99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바이에른 뮌헨에겐 이런 방법을 쓸 수도 없어서인지 안방에서 1-1로 비기고 원정에서 0-4로 패해 탈락했다.그리고 이런 범법 행위들이 드러나서 오빌리치에 대한 승점 삭감 및 벌금형이 내려졌고, 팀은 리그에서 중하위로 밀리기 시작했다.
아르칸은 2000년 1월 15일 베오그라드의 5성급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23세의 도브로사브 가브리치가 쏜 총에 눈과 얼굴을 맞고 사망했다. 가브리치는 뒤에서 아르칸에게 접근해 CZ-99 권총을 연사했으며, 총을 맞은 아르칸은 현장에서 혼수상태에 빠졌고 가브리치는 아르칸을 살해한 후 권총을 추가로 난사해 아르칸의 친구 밀렌코 만디치와 드라간 가리치 형사를 살해했다. 현장에 있던 보디가드였던 즈본코 마테오비치가 가브리치를 쏘아 중상을 입힌 뒤 아르칸을 차에 태웠지만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가브리치는 징역 19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에서 두 공범과 함께 각각 징역 30년 형을 받았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달아났고 20년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공에서 살면서 송환을 요구하는 세르비아 측 요구를 무시 중인 남아공과 서로 재판 중이다.
아내인 체차. 1973년생으로 아르칸과 나이 차가 21살이나 되었다. |
츠르베나 즈베즈다 서포터들은 극단적인 극우가 아닌 한, 아르칸을 비난하고 싫어한다. 오빌리치 구단주가 되면서 서포터라고 하고 극우 민병대를 부하로 부리며 츠르베나 서포터들을 쏘거나 구타하던 작자이니 츠르베나 역사에서도 이가 갈리는 짓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97-98 시즌에도 오빌리치 구단 막장 짓으로 단 승점 2점 차로 츠르베나 즈베즈다(84점)는 오빌리치(86점)에게 리그 우승을 빼앗겨 버렸으니 오히려 극단적인 서포터들은 원래 우승팀은 츠르베나인데 더러운 수법으로 우승을 훔쳐간 아르칸이 어떻게 츠르베나의 자랑이냐고 분노하고 혐오하게 만들었다. 참고로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가 사라지고 2020년까지 츠르베나와 파르티잔이 우승을 독점한 가운데, 딱 1번 다른 팀 우승이 바로 이 오빌리치의 97~98 시즌 우승뿐인데 이렇게 불미스러운 수단으로 우승했던 것이다.
6. 기타
- 푸마는 독일의 스포츠 용품 회사이지만 푸마의 스폰서 구단 중에 동유럽의 유고슬라비아를 연고로 했던 츠르베나 즈베즈다만이 유일하게 푸마의 저지를 입고 챔스에서 우승을 차지했었다.[15] 다만 우승 직후 유니폼 스폰서가 험멜로 바뀌었고 디아도라, 카파, 아디다스, 나이키, 레게아를 거쳤다가 2013-14 시즌에 다시 푸마로 회귀하였다. 그리고 2013-14 시즌 세르비아 쉬페르리가에서 7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1980년에 푸마와 유니폼 스폰서를 체결한 후 1991년까지 6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컵 우승 그리고 챔스 우승까지 이뤄낸 후, 유니폼 스폰서가 바뀐 후에는 성적이 추락하다가 푸마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리그 우승을 이뤄낸 것을 보면 푸마와는 천생연분인 듯하다.
- 2018년부터 e스포츠 팀을 만들어서 활동하는 중이다.
- 2023-24 시즌 여름 이적 시장 막판 황인범을 영입하며 팀 역사상 첫 한국인 선수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로써 세르비아 양강으로 불리는 FK 파르티잔과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모두 한국인 선수를 보유해본 이력을 가지게 되었다.[16]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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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 우승 | 국가 | 첫 우승연도 | 우승 횟수 | ||
1 | <colbgcolor=#00008b> 레알 마드리드 CF | <colbgcolor=#eeeeef,#191919> | 195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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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15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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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SL 벤피카 | 196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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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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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AC 밀란 | 196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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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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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196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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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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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셀틱 FC | 1967년 |
★ 1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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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1968년 |
★
★
★ 3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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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 1970년 |
★ 1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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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AFC 아약스 | 197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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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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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FC 바이에른 뮌헨 | 197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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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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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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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리버풀 FC | 197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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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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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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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노팅엄 포레스트 FC | 1979년 |
★
★ 2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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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아스톤 빌라 FC | 1982년 |
★ 1회 |
||||
13 | 함부르크 SV | 1983년 |
★ 1회 |
||||
14 | 유벤투스 FC | 1985년 |
★
★ 2회 |
||||
15 | CSA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 1986년 |
★ 1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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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SB | |||||||
16 | FC 포르투 | 1987년 |
★
★ 2회 |
||||
17 | PSV 에인트호번 | 1988년 |
★ 1회 |
||||
18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 1991년 |
★ 1회 |
||||
19 | FC 바르셀로나 | 1992년 |
★
★
★
★
★ 5회 |
||||
20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 1993년 |
★ 1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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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1997년 |
★ 1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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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첼시 FC | 2012년 |
★
★ 2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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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맨체스터 시티 FC | 2023년 |
★ 1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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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승 횟수에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구단은
UEFA 배지 오브 오너를 부착할 수 있는 구단이다. ★은 우승 트로피를 영구 소장하게 된 시즌이며 ★은 오리지널 유러피언컵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시즌이다. |
1990-91 시즌 참가 클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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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
'델리예(Delije)'라는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공식 서포터즈를 위해 12번을 영구 결번.
[3]
농구 팀 역시 세르비아의 강호로 KK 파르티잔과 라이벌리를 형성 중이다.
[4]
(유고슬라비아 1부리그 우승 19회+세르비아 몬테네그로 1부리그 우승 5회+세르비아 수페르리가 우승 7회=31회/별 3개)
[5]
디나모 드레스덴과의 1차전은 3-0 승리, 2차전에선 78분경까지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2-1 리드로 가다가 디나모 드레스덴 팬들의 난동으로 인해 경기는 중단되고 UEFA는 츠르베나 즈베즈다에 3-0
몰수승을 선언한다.
[23-24시즌]
시작 기준, UEFA 11위인 세르비아는 리그 1위에게 UCL 본선 직행권을, 리그 2위에게 UCL 3차예선 진출권을, 국내컵 우승팀에게 UEL PO 진출권을, 리그 3위에게 UECL 3차예선 진출권을, 리그 4위에게는 UECL 2차예선 진출권이 주어졌다.
[7]
두번째 베치티 데르비를 무승부로 마친 것 외에는 전승이다.
[8]
4경기가 남은 현재 파르티잔이 획득 가능한 최대 승점은 82점으로 즈베즈다의 84점을 넘을 수 없다.
[9]
여담으로 스플릿 라운드 7경기 중 유일하게 무승부를 기록했던 상대는 세르비아컵 결승 상대이기도 했던 보이보디나였다.
[10]
세르비아의 UEFA 리그 협회 순위는 변동이 없으나(11위), 36팀 체제로의 개편으로 인해 본선에 바로 진출했던 작년과 달리 플레이오프를 거치게 되었다.
[11]
세르비아어로 즈베즈다(звезда).
러시아어에도 동일한 뜻을 가진 동일한 단어가 있다.
[12]
가수 시절 연예 활동에만 전념하며 이를 통해서만 돈을 벌던 사람이었기에 축구팀 구단 운영이나 나머지 사업 경영에 관해서는 경험이나 돈 버는 능력이 전혀 없었다.
[13]
나중에 석방되었다.
[14]
모델은 구형
T-54로
[15]
AS 모나코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맨체스터 시티가 각각 2004년, 2013년, 2021년 챔스 결승에서 푸마 저지를 착용했지만 준우승에 그쳤다. 그러다가 2023년에 푸마 저지를 착용한
맨체스터 시티가 우승을 하여 이제 유일은 아니게 되었다.
[16]
파르티잔의 경우 과거
인천 유나이티드 FC와
자매결연 관계였고, 인천에서
김치우 선수를 임대 영입해 쏠쏠히 활용했던 경험이 있다. 또한, 2024년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서
포항 스틸러스의
고영준을 영입하면서 파르티잔은 다시 한번 한국인 선수를 영입하였고, 즈베즈다도
설영우를 24-25시즌 여름 이적시장에 영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