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6 01:55:06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

페르골레시에서 넘어옴
서양 음악사의 주요 인물·기록물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고대 메소포타미아 음악 <colbgcolor=#FFF,#1C1D1F>후르리인의 닌갈 찬가
그리스 음악 세이킬로스의 노래 · 델포이 찬가
중세 음악 노트르담 악파 레오냉 · 페로탱
아르스 노바 비트리 · 마쇼
기타 란디니 · 던스터블 · 빙엔
르네​상스 음악 부르고뉴 악파 뒤파이 · 뱅슈아
플랑드르 악파 오케겜 · 프레 · 이자크
이탈리아 팔레스트리나 · 라수스 · 카치니 · 가브리엘리
스페인 빅토리아
영국 탈리스 · 버드 · 다울런드
독일 루터 · 스벨링크 · 프레토리우스 · 하슬러
프랑스 샹보니에르 · 륄리 · 레벨 · 마레 · 캉프라 · 샤르팡티에 · 라모 · 쿠프랭 · 드 라 게르 · 르클레어 · 루아예
이탈리아 몬테베르디 · 알레그리 · 프레스코발디 · 카발리 · 카리시미 · 스트로치 · 스트라델라 · 코렐리 · 스테파니 · 토렐리 · A. 스카를라티 · 비탈리 · 로티 · A. 마르첼로 · 칼다라 · G. 보논치니 · 알비노니 · A. M. 보논치니 · 비발디 · 사로 · D. 스카를라티 · B. 마르첼로 · 포르포라 · 제미니아니 · 빈치 · 페오 · 타르티니 · 로카텔리 · 레오 · R. 브로스키 · 로그로시노 · 셀리토 · 파리넬리 · 페르골레지
중부 유럽 비버 · 쉿츠 · 산즈 · 프로베르거 · 파헬벨 · 툰더 · 북스테후데 · 젤렌카 · 마테존 · 하이니헨 · 텔레만 · J. S. 바흐 · 파슈 · 피젠델
영국 퍼셀 · 헨델 · 애비슨
고전​주의 전고전(로코코) 하세 · J. G. 그라운 · C. H. 그라운 · 마르티니 · 아라야 · F. 벤다 · 루소 · W. F. 바흐 · 보이스 · C. P. E. 바흐 · 글루크 · 욤멜리 · J. 슈타미츠 · L. 모차르트 · 아벨
초기 고전파 G. 벤다 · 베르토니 · 트라에타 · 하이든 · 고세크 · M. 하이든 · C. 슈타미츠 · J. C. 바흐 · 파이지엘로 · 보케리니
후기 고전파와 과도기 치마로사 · 살리에리 · 클레멘티 · 모차르트 · 케루비니 · 카룰리 · 베토벤 · 훔멜 · 소르 · 줄리아니 · 쿨라우 · 리스 · 카르카시
낭만​주의 전기 낭만​주의 초기 낭만파 아구아도 · 베버 · 파가니니 · 레냐니 · F. 모차르트 · 슈베르트 · 글린카 · 슈포어 · 메르츠
독일, 오스트리아
낭만주의
멘델스존 · 슈만 · C. 슈만
미국, 프랑스
낭만주의
베를리오즈 · 코스트 · 구노 · 포스터 · 고트샬크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 체르니 · 쇼팽 · 리스트 · 탈베르크 · 알캉 · 헨젤트 · 루빈시테인
오페라 로시니 · 마이어베어 · 도니체티 · 벨리니
빈 왈츠 라너 · J. 슈트라우스 1세 · 주페 · J. 슈트라우스 2세 · 페피 · E. 슈트라우스 · 치러 · J. 슈트라우스 3세
후기 낭만​주의 독일, 오스트리아
후기 낭만
바그너 · 라이네케 · 브루크너 · 뷜로 · 브람스 · 브루흐 · 로트 · 말러 · R. 슈트라우스 · 레거 · 라블 · 크라이슬러 · 푸르트뱅글러 · 코른골트 · 슈레커 · 라프 · 라인베르거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
베르디 · 폰키엘리 · 푸치니 · 레온카발로 · 마스카니
프랑스
후기 낭만
비외탕 · 생상스 · 비제 · 오펜바흐 · 발퇴펠 · 뒤카 · 포레 · 프랑크 · 랄로 · 이자이 · 사티
러시아
후기 낭만
차이콥스키 · 라흐마니노프 · 스크랴빈 · 메트네르 · 아렌스키 · 글라주노프 · 칼리니코프 · 보르트키에비치
영국
낭만주의
엘가 · 홀스트 · 브리지 · 본 윌리엄스 · 블리스 · 핀치
폴란드
낭만주의
봉다제프스카 · 모슈코프스키 · 호프만 · 시마노프스키
미국
후기 낭만
와이먼 · 수자 · 오르트 · 고도프스키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낭만주의
이바노비치 · 페야체비치
국민​악파 러시아 무소륵스키 · 보로딘 · 림스키코르사코프 · 발라키레프 · 큐이 · 글리에르 · 랴푸노프
중부 유럽 스메타나 파일:체코 국기.svg · 드보르자크 파일:체코 국기.svg · 야나체크 파일:체코 국기.svg · 에네스쿠 파일:루마니아 국기.svg · 도흐나니 파일:헝가리 국기.svg · 흐리스토프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 블라디게로프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 모니우슈코 파일:폴란드 국기.svg · 비에니아프스키 · 파일:폴란드 국기.svg
북유럽 닐센 파일:덴마크 국기.svg · 그리그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 시벨리우스 파일:핀란드 국기.svg · 알벤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페인 사라사테 · 타레가 · 알베니스 · 라라 · 그라나도스 · 파야 · 요베트 · 투리나 · 토로바 · 사인스 데 라 마사 · 로드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쇼송 · 당디 · 레스피기
20​세기​음악
인상주의 드뷔시 · 라벨 · 고베르 · 이베르 · 호세
신고전주의 부조니 · 스트라빈스키 · 힌데미트 · 바체비치
제2 빈 악파 쇤베르크 · 베베른 · 베르크
프랑스 근현대 음악 풀랑크 · 불랑제 · 미요 · 테유페르 · 오네게르 · 메시앙 · 뒤티외 · 불레즈 · 뒤사팽 · 졸리베 · 디앙 · 페송
영국 근현대 음악 소랍지 · 월튼 · 티펫 · 브리튼 · 두아르테
앵글로아메리카
근현대 음악
바레즈 · 조플린 · 아이브스 · 거슈윈 · 그로페 · 바일 · 코플런드 · 앤더슨 · 카터 · 바버 · 케이지 · 낸캐로우 · 배빗 · 해리슨 · 번스타인 · 로렘 · 펠드먼 · 무친스키 · 크럼 · 존 윌리엄스 · 테니 · 라일리 · · 라이히 · 글래스 · 다비도브스키 · 제프스키 · 볼컴 · 애덤스 · 에바즌 · · 체르노빈 · 리버만 · 히그던 · 캐시디 · 노먼 · 비비에 · 아믈랭
라틴 아메리카
근현대 음악
로사스 · 폰세 · 브라우어 · 라우로 · 레쿠오나 · 망고레 · 빌라로부스 · 히나스테라 · 피아졸라
소련-러시아
근현대 음악
프로코피예프 · 쇼스타코비치 · 하차투리안 · 시닛케 · 카발레프스키 · 먀스콥스키 · 스비리도프 · 구바이둘리나 · 셰드린 · 카푸스틴 · 스코릭 · 아르투니안
헝가리 근현대 음악 버르토크 · 코다이 · 리게티 · 쿠르탁 · 외트뵈시
폴란드 현대 음악 루토스와프스키 · 펜데레츠키 · 구레츠키
독일-오스트리아
현대 음악
슈토크하우젠 · 치머만 · 라헨만 · 헨체
이탈리아 현대 음악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 · 노노 · 달라피콜라 · 베리오 · 샤리노 · 페델레
한국 현대 음악 백병동 · 강석희 · 나인용 · 나운영 · 이만방
기타 크세나키스 · 바인 · 아브라함센 · 김순남 · 윤이상 · 라우타바라 · 카잔지예프 · · 타케미츠 · 진은숙 · 박-파안 영희 · 요시마츠 · · 도이처 }}}}}}}}}

나폴리 악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Alessandro_Scarlatti.jpg 파일:Domenico Sarro.jpg 파일:nicola porpora.jpg 파일:Leonardo_Vinci.jpg 파일:Francesco Feo.jpg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 도메니코 사로 니콜라 포르포라 레오나르도 빈치 프란체스코 페오
파일:Leonardo Leo.png 파일:G. Adolfo Hasse Sassone.jpg 파일:Giovanni_Battista_Pergolesi.jpg 파일:Niccolò_Jommelli.jpg 파일:Tommaso_Traetta.jpg
레오나르도 레오 요한 아돌프 하세[A]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 니콜로 욤멜리 토마소 트라에타
[A] : 하세는 나폴리 음악학교에서 배운 적은 없지만, 초반기에 포르포라와 A. 스카를라티에게 배우며 나폴리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 ||
<colbgcolor=#000><colcolor=#fff>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
Giovanni Battista Pergolesi
파일:Giovanni_Battista_Pergolesi.jpg
출생 1710년 1월 4일
교황령 안코나 예시
사망 1736년 3월 16일 (향년 26세)
직업 작곡가, 연주자
사조 바로크 음악
십이지 범띠[1]
별자리 염소자리
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3. 페르골레지의 음악
3.1. 마님이 된 하녀3.2. 스타바트 마테르3.3. 오페라
3.3.1. 파스티초
4. 여담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 작곡가이자 연주자. 음악사적으로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 옮겨가는 과도기 시기의 작곡가이다. 모차르트 슈베르트가 대표적인 요절한 작곡가로 꼽히는데 페르골레지는 이들보다 더 일찍 죽었다. 향년 26세. 그래서 '요절한 천재'로 잘 알려져 있다.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마님이 된 하녀(La serva padrona)'와 종교음악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등의 명작을 남겼으며, 그 덕분에 단순히 과도기 시절을 풍미했던 작곡가를 넘어 음악사적으로도 나름 중요한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너무 일찍 사망했고 대중적 인지도가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보다 크게 떨어져 한국같은 경우 서양클래식 음악 매니아가 아니면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2010년이 그의 탄생 300주년이었으나, 프레데리크 쇼팽 로베르트 슈만의 탄생 200주년이 더 인지도가 있을 정도였으니.

2. 생애

1710년 1월 4일 당시 교황령이었던 이탈리아 중부 안코나(Ancona) 지역의 예시(Jesi)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조반니 바티스타 드라기(Giovanni Battista Draghi)[2]였는데 조상들이 살았던 지역 이름 '페르골라'에서 유래한 페르골레지(Pergolesi)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그에게는 3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4형제 가운데 어린 시절을 넘긴 사람은 페르골레지가 유일했다. 그의 집안은 모두 결핵을 앓고 있었는데 그의 3형제가 모두 결핵으로 사망했으며 페르골레지는 다행히 살아남아서 유년기를 넘겼지만 척수까지 감염된 결핵의 후유증으로 평생 다리를 절었고 결국 결핵 때문에 요절했다.

그는 어린 시절 예시의 지역 음악인들에게 음악을 배웠으며 여기서 재능을 인정받아 1725년 예시 영주의 도움으로 좀더 큰 도시인 나폴리로 일종의 음악유학을 가게 되었다. 나폴리의 음악원에서 가에타노 그레코(Gaetano Greco), 프란체스코 두란테(Francesco Durante), 프란체스코 페오(Francesco Feo), 레오나르도 레오(Leonardo Leo)와같은 당대의 유명 음악가들 밑에서 수학했으며 어린 나이었지만 바이올린 연주능력과 작곡능력을 인정받았으며 귀족들의 후원도 얻을 수 있었다. 21세때인 1731년 음악원을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나폴리에서 작곡가과 연주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1731년 그의 첫 오페라 성 굴리엘모의 회심과 죽음(La conversione e morte di San Guglielmo)를 비롯하여 사랑에 빠진 오빠(Lo frate 'nnamorato, 1732), 거만한 죄수(Il prigionier superbo, 1733), 올림피아 제전(L'Olimpiade, 1735), 플라미니오(Il Flaminio,1735) 등을 상연했다.[3]

그런데 페르골레지를 지금까지 유명하게 만든 오페라는 전술한 대형 오페라들이 아니라 막간극(intermezzo)이었던 마나님이 된 하녀(La serva padrona)이다. 오페라 부파(opera buffa)라는 장르가 유럽 전역에 퍼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 작품은 정가극(opera seria) '오만한 죄수(Il prigionier superbo)'의 상연 도중 쉬는 시간에 막간으로 상연된 40분 내외의 짧은 소극(笑劇)이었는데, 이 작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본작인 거만한 죄수는 묻혀버리고 이 마나님이 된 하녀가 단독으로 널리 상연되었다.

페르골레지는 오페라 외에도 종교음악에서도 중요한 작품을 남겼는데 현존하는 작품으로 미사 F장조와 살베 레지나(Salve Regina, 성모찬송), 그리고 현재까지도 자주 연주되는 걸작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 성모의 눈물, 1736) 등이 있다.

1734년 24살의 젊은 나이로 페르골레지는 나폴리 성당의 악장 대리로 부임한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어 건강에 문제가 생겼으며 1735년 말 의사의 권유로 포추올리(Pozzuoli)로 요양을 떠났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1736년 3월 16일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페르골레지의 시신은 다음날 바로 근처의 묘지에 묻혔는데, 전염병 전파에 대한 위험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한편 나폴리 성당에 취직할 무렵 그의 후원자였던 카리아티(Cariati) 가문의 영주의 부인인 마리아 스피넬리(Maria Spinelli)와 염문을 뿌렸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이런 유형의 연애가 언제나 그렇듯이 두 사람은 결국 맺어지지 못하고 헤어졌는데, 그가 요절한 후 이 로맨스는 작곡가의 유명세를 타고 각양각색으로 각색되어 퍼져나갔다.

3. 페르골레지의 음악

페르골레지는 음악인생 거의 전부를 나폴리에서 보냈으며,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오페라와 종교음악, 기압 협주곡과 합주곡을 작곡했다. 그의 오페라는 후술될 '마나님이 된 하녀'를 제외하고는 거의 잊혀져 있었으나 최근에 고전 오페라의 재발굴 분위기에 힘입어 종종 연주되고 있다.

페르골레지는 바로크 시기에서 고전파 시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활동했던 음악가이며, 그의 음악양식도 시기에 걸맞게 과도기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페르골레지의 음악에서는 바로크 음악의 특징인 통주저음이 사용되고 기악합주의 경우 빠름-느림-빠름 으로 구성되는 전형적인 콘체르토 그로소(Concerto Grosso, 합주협주곡)의 양식을 준수하고 있으며 고전기 특유의 교향악적(Ochestral)인 특징은 아직 두드러지지 않는다.[4]하지만 한편으로는 협화음을 두드러지게 사용하고 있고 바로크 협주곡에 비해 각 악장이 좀더 다채로운 전개부를 가지고 있으며 즉흥 능력과 기교가 뛰어난 연주자답게 독주악기의 활약이 좀더 두드러지는 등, 고전기 음악의 특징도 많이 보여주고 있다.
페르골레지 바이올린 협주곡(1730년경)
페르골레지 플루트 협주곡

3.1. 마님이 된 하녀

마님이 된 하녀(1733년)
페르골레지가 활동했던 바로크 후기 - 고전기 초기의 오페라의 대세는 소위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 정가극)였다. 이 오페라 세리아는 주로 영웅의 일대기나 고대 신화를 주제로 한 심각한 내용을 지니고 있었는데, 당시 이탈리아 오페라계는 매너리즘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공연되는 오페라들은 하나같이 진부하고 천편일률적인 스토리 일색이었으며, 게다가 가창력을 무기로 하는 카스트라토 가수들이 득세하면서 오페라는 무대극으로서의 극적인 요소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화려한 가창 묘기의 경연장으로 전락해 버렸다(페르골레지의 오페라들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관객들 입장에서 이런 오페라를 장시간 감상하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 관객들의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오페라 세리아 휴식시간 사이에 짧은 막간극(Intermezzo)을 공연하는 풍습이 생겨나게 된다. 이 막간극의 내용은 세리아와 정 반대로 상당히 우스꽝스럽고 풍자적인 소극(笑劇)이었다.

페르골레지의 대표작인 '마님이 된 하녀(La serva padrona)'도 원래는 막간극이었다. 1733년 나폴리 왕국의 국왕 카를로 6세[5]의 왕비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오페라 세리아 '오만한 죄수(Il prigionier superbo)'를 공연하였는데, 이 '마나님이 된 하녀'는 막간극으로 상연되었다. 그런데, 정작 본작인 '오만한 죄수는'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반면 '마님이 된 하녀'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마나님이 된 하녀는 처음에는 다른 오페라 세리아의 막간극으로 공연되다가 나중에는 단독 상연용으로 손질하여 독립적으로 공연된다.

한편 이 작품은 오페라 부파의 전성기를 이끈 것 이외에도 프랑스에서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의 오페라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두자릿수의 공연횟수도 채우기 힘들었는데, 이 마나님이 된 하녀는 점점 인기가 높아져서 페르골레지 사후에도 지속적으로 공연되었으며 급기야는 1753년에 이탈리아를 넘어 프랑스에서도 초연되었다. 프랑스 초연은 단독 공연으로 행해진 것이 아니라 륄리의 오페라 아치스와 갈라테아(Acis and Galatea)가 먼저 상연된 이후 저녁 때 상연되었는데, 당시 프랑스의 음악가와 지식인들은 같은 날 상연된 이 두 오페라를 비교하면서, 이처럼 가볍고 자연스러운 페르골레시의 이탈리아 오페라와 장중하고 인공적인 륄리의 프랑스 오페라 중 어떤 오페라가 음악적, 예술적으로 우월한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으며 이게 바로 유명한 부퐁 논쟁(Querelle des Buffons)의 발단이 된다. (자세한 것은 링크 참조). 대중적으로 철학자로 잘 알려진 장 자크 루소 장 필리프 라모 등이 이 논쟁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막간극 답게 오페라의 공연시간은 40분 내외로 짧으며 내용도 단순하다. 나폴리의 부호이자 돌싱인 우베르트는 하녀인 세르피나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데다가 '마님으로 자신을 들이면 될텐데'라며 건방진 소리를 해대니 벙어리 시종인 베스포네를 시켜 자신의 재혼 상대를 구해오라고 하면서 세르피나를 내보낼 생각을 한다. 쫓겨날 위기에 처한 세르피나는 베스포네에게 뇌물을 주어 그를 그녀에 대한 구혼자로 꾸미게 하고, 오히려 자기에게 구혼자가 있다며 우베르토에게 질투를 유발한다. 막상 세르피나가 자신을 떠나가겠다고 하자, 우베르토는 정체모를 감정에 휩싸인다. 부호인 자신과 하녀인 세르피나가 결혼하는 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키워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세르피나에 대한 애정이 있는데 그게 불쌍한 이에 대한 동정인지 아니면 그간 재기발랄한 세르피나를 곁에 두며 키워온 사랑임을 인정해야 할지 고뇌한다. 그리고 세르피나는 베스포네를 탐페트라는 이름의 장교로 변장시켜 자기 구혼자라고 데려오고, 세르피나가 탐페트로 분한 베스포네의 메시지를 우베르토에게 전달하는데[6] 이 하녀의 결혼에 대한 거액의 지참금을 물거나, 그게 아니면 당신이 결혼해야 한다고 협박한다. 지참금을 주기는 커녕 세르피나를 놓아줄 생각도 없어진 우베르토는 얼씨구 잘됐다고 세르피나와 결혼을 하기로 결정, 피날레에서는 세르피나와 우베르토 둘 다 원하는 바가 이뤄져 행복해서 어쩔줄을 모른다. 스토리를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면 지는 거다


작중 세르피나의 아리아인 '화를 잘 내는 당신(Stizzoso, Mio Stizzoso)'[7]이 유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베르토를 상큼하게 도발하며 농락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그간 오페라 부파(opera buffa)의 효시로 잘못 알려져 있었는데, 원래 오페라 부파는 이미 1700년대 초부터 나폴리에 그 원형에 해당되는 작품들이 탄생하기 시작했으며 막간극과는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페라 부파라는 장르가 유럽 전역에 크게 유행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마나님이 된 하녀' 덕분이기 때문에 이 작품은 오페라 부파가 하나의 장르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만든 원조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로, 페르골레지는 이 '마나님이 된 하녀'를 작곡하기 전 해(1732)에 이미 '사랑에 빠진 오빠(Lo frate 'nnamorato)'이라는 희극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이 작품도 꽤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됐으나 하필 이 시기에 나폴리에 지진이 발생해서 극장이 파괴되는 바람에 공연이 중단되어 버렸다. 페르골레지는 2년 후 이 '사랑에 빠진 오빠'을 개작하여 나폴리 축제때 다시 상연했다. '마나님이 된 하녀'의 인기에 묻혀 있기는 하지만 이 '사랑에 빠진 오빠'도 나름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3.2. 스타바트 마테르

이 곡을 듣고 아무런 감동을 받지 못했다면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다.
―요한 아담 힐러(Johann Adam Hiller)
이 작품은 1736년 페르골레지가 죽기 직전에 발표된 작품으로 소프라노, 알토 2중창과 통주저음이 있는 현악 합주로 구성되어 있다. 그간 이 스타바트 마테르는 페르골레지가 죽기 직전 단 며칠만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8] 하지만 연구결과 페르골레지는 이 작품을 죽기 2년 전에 착수 했으며 죽기 직전까지 꼼꼼하게 손질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렇게 공을 들인 덕분인지 이 작품은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죽음을 앞두고 쓴 작품답게 선율이 아름다우면서도 매우 비통하고 애절한 느낌을 주고 있다.[9]

이 스타바트 마테르도 당시부터 큰 인기를 얻었으며 뛰어난 작품성에다 요절한 작곡가의 최후 작품이라는 이미지가 더해져서 더더욱 유명세를 탔다. 바흐는 이 스타바트 마테르를 바탕으로 시편 51편(독일어) 가사를 적용한 칸타타 '하나님 나의 죄를 없애 주소서(Tilge, Höchster, meine Sünden, BWV 1083)'를 작곡하기도 했다.
페르골레지, 스타바트 마테르

3.3. 오페라

  • 살루스티아 (La Salustia, 1732)
  • 사랑에 빠진 오빠 (Lo frate 'nnamorato, 1732)
  • 해방된 죄수 (Il prigionier superbo, 1733)
    • 마님이 된 하녀 (La serva padrona, 1733)
  • 시리아의 아드리아노 (Adriano in Siria, 1734)
    • 리비에타와 트라콜로 (Livietta e Tracollo, 1734)
  • 올림피아 제전 (L'Olimpiade, 1735)
  • 플라미니오 (Il Flaminio, 1735)

3.3.1. 파스티초

4. 여담

20세기 중반까지 페르골레지는 겨우 26세의 나이에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수백곡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잠재능력을 가졌던 작곡가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채 6년이 되지 않는 음악 경력에 비해 지나치게 작품 수가 많고 스타일이나 수준도 제각각이었던 탓에 그의 작품으로 사칭한 위작이 많을 것이라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었다. 20세기 이후에 진행된 면밀한 연구결과, 페르골레지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던 작품 다수가 당대의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확인되면서 이 의혹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페르골레지의 유명세를 이용하기 위해 그의 작품으로 사칭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심지어 도메니코 갈로(Domenico Gallo, 1730~1768경)와 같은 작곡가의 경우 한때 그의 작품 절반 이상이 페르골레지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기도 했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는데,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 경향의 발레음악 '풀치넬라(Pulcinella)'는 페르골레지의 기악음악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스트라빈스키 사후 이 풀치넬라에서 차용한 음악들 중 상당수가 도메니코 갈로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외에도 카를로 몬차의 작품도 있다.


[1] 니콜라 포르포라와 같다. [2] 1640년에 태어나 1708년에 죽은 작곡가 조반니 바티스타 드라기와는 동명이인이다. [3] 올림피아 제전은 로마에서 초연됐으며 다른 오페라는 모두 나폴리에서 초연됐다. [4] 고전파 교향곡 양식을 정비한 사람은 조반니 바티스타 삼마르티니(Giovanni Battista Sammartini, c. 1701 ~ 1775)다. [5] 그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 일시적으로 나폴리 왕국 시칠리아 왕국을 손에 넣었다. [6] 베스포네는 벙어리역이다. [7] 우리 성미급한 주인양반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8] 페르골레지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관계로 후대에 그의 행적이나 작품에 각종 이야기가 덧붙여지고 각색되었는데, 이 스타바트 마테르 속작설도 그 중 하나이다. [9] 다만 곡 전체에 나타나는 슬픈 분위기는 스타바트 마테르 자체가 일종의 애가(哀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