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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니코 스카를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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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1211F><colcolor=#fff>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Domenico Scarlatti
파일:1200px-Retrato_de_Domenico_Scarlatti.jpg
도밍고 벨라스코가 그린 초상화 (1738)
본명 주세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Giuseppe Domenico Scarlatti
출생 1685년 10월 26일
나폴리 왕국 나폴리
사망 1757년 7월 23일 (향년 71세)
스페인 마드리드
직업 작곡가, 음악가
악기 하프시코드
종교 가톨릭
서명 파일:스카를라티 싸인.png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로마로 돌아오다2.3. 포르투갈 궁정 악장 스카를라티2.4. 스페인 왕실
3. 작품세계
3.1. 건반 소나타
3.1.1. 특징3.1.2. 후대의 연주, 편곡, 그리고 오마주3.1.3. 건반 소나타의 작품 번호에 대해
4. 주요 작품들5. 기타
▲건반 소나타 f단조 K 183. 크리스티안 차하리아스(Christian Zacharias) 연주.
▲건반 소나타 d단조 K 141. 장 론도(Jean Rondeau) 연주.
[clearfix]

1. 개요

모든 청중들이 이 경이롭고 놀라운 곡을 듣자마자 스카를라티에게 열광했다.
― 찰스 버니(Charles Burney), 『음악 일반사A General History of Music(1789)』 中

이탈리아 출생의 작곡가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 바로크에서 고전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특히 소나타 형식의 정립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나폴리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당대 오페라 오라토리오 본좌 작곡가였던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였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음악을 매우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었다. 아버지를 비롯해 당대 작곡가이자 음악이론가, 교사들이었던 가에타노 그레코, 프란체스코 가스파리니, 베르나르도 파스퀴니 등에게 하프시코드 연주법과 작곡, 이론, 화성학, 대위법을 배운 뒤 1701년에 나폴리 궁정 예배당 전속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로 부임했다. 이때 나이가 불과 15세였으니, 스카를라티의 음악적 재능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1703년에 아버지가 나폴리를 떠나 로마로 가자 어린 스카를라티에게는 오페라 음악을 쓸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도메니코의 첫 오페라들인 《돌아온 옥타비아L'Ottavia ristituita》 및 《주스티노Giustino》가 4월 시즌에 초연되었다. 1704년에는 아버지와 로마에서 합류했는데, 아버지 알레산드로는 아들을 이탈리아 반도 북동부의 베네치아로 보내 음악적인 경험을 더 쌓도록 했다. 알레산드로가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에게 보낸 추천장을 보자.
저는 억지로 그(도메니코)를 나폴리로부터 끌어냈는데, 거기서도 재능을 발휘할 여지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의 재능은 그런 곳에 걸맞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한 로마에서도 그를 끌어냈는데, 로마가 음악을 돌보지 않아 거지처럼 지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아들은 날개가 자라고 있는 독수리입니다. 그가 둥지에서 빈둥거리며 머물러서도 안되고, 날아오르려는 것을 제가 막아도 안 됩니다...

2.2. 로마로 돌아오다

스카를라티의 젊은 시절 정확한 활동 양상이나 일화는 잘 알려지고 있지 않다. 1709년에 로마에 거주하고 있던 폴란드 망명 왕실의 여왕 마리 카시미르[1] 의 전속 쳄발리스트 겸 작곡가로 부임했다. 왕비의 위촉을 받아 작곡한 첫 작품은 오라토리오 《클로도베오의 개종La conversione di Clodoveo》인데, 아쉽게도 소실되었다. 삼년에 걸쳐 스카를라티는 왕비를 위하여 몇 개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는데, 역시 대부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스카를라티의 작곡 실력을 과시하기에 모자람이 없었고, 1715년부터는 로마의 극장들에 오페라를 제공했다.

종교적으로는 바티칸의 명망한 성가대 카펠라 줄리아(Capella Giulia)의 부감독을 지냈고, 카시미르 여왕이 떠난 1714년부터는 감독에 임명되었다. 이 시기에 영국 런던에서 자작 오페라를 상연하는 등 명망있는 작곡가로 입지를 굳혔다.
헨델의 전기영화인 '헨델의 생애'(God Rot Tunbridge Wells)(1985)에 나온 건반 대결.
이 장면에서 콧수염이 있는 주자가 스카를라티이고 콧수염이 없는 주자가 헨델이다.
음악은 헨델의 클라브생 모음곡 7번 HWV 432의 파사칼리아.

한편 이 시기 동안 건반 명연주자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오토보니 추기경(Cardinal Ottoboni)의 저택에서 독일 출신으로 이탈리아에 유학 중이었던 동년배 라이벌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과 하프시코드와 오르간 연주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이 때 결과는 하프시코드는 스카를라티 승, 오르간은 헨델 승이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두 거장은 서로의 음악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로 지냈고, 헨델은 자신의 협주곡집에 스카를라티의 주제를 번번히 인용하기도.

1719년에 스카를라티가 로마의 직책들을 사직하고 팔레르모로 떠났는데, 그 이유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시기에 영국을 방문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증거는 없다. 다만 스카를라티의 오페라 《나르시소Narciso》가 1720년 런던에서 상영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아쉽게 이 오페라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2.3. 포르투갈 궁정 악장 스카를라티

1719년 포르투갈 왕실에서 초빙 제의를 받고[2] 리스본의 궁정 작곡가로 임명되었는데, 이 일에는 당시 포르투갈 공주였던 마리아 막달레나 바르바라와 남동생 돈 안토니오의 전속 음악교사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1727~28년에는 잠시 로마로 돌아가 일하면서 죽기 직전의 아버지와 만나고, 첫 아내 마리아 카테리나 젠틸리와 결혼했다.

2.4. 스페인 왕실

파일:Barbaradebragança.jpg
스카를라티 평생의 후원자였던
마리아 바르바라 왕비

1729년에는, 후에 페르난도 6세가 되는 스페인 황태자 페르난도와 결혼 스페인 왕실의 며느리가 된 마리아 공주를 따라다시 스페인 세비야로 갔다. 1733년에 궁정이 불타자 마드리드로 이동했다. 스페인에서는 그 지방의 민속 춤곡인 플라멩코를 비롯한 전통 음악의 강한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평생 동안 직책을 유임하면서 수백 편에 이르는 건반 소나타를 비롯한 작품들을 창작했다. 1738년 그가 출판한 유일한 악보집인 30곡의 《쳄발로 연습곡집(Essercizi per Gravicembalo)》을 스페인도 아닌 런던에서 출판했는데 당시 런던의 음악가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는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자신의 《12개의 합주 협주곡(12 Concerti Grossi, Op.6)》의 1번 협주곡의 마지막 악장에서 스카를라티의 K.2 소나타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찰스 애비슨의 협주곡 12개는 전부 스카를라티를 주제로 차용한 것이기도 하다.[3]

1739년에 첫 아내와 사별한 뒤에는 스페인 여성인 아나스타시아 마하르티 히메네스와 1742년 재혼해 여생을 보냈고, 당대 본좌 카스트라토였던 파리넬리와 친교를 맺고 그를 위해 성악 작품들을 써주기도 했다. 1746년에는 펠리페 5세가 죽고 페르난도 6세가 등극하자 왕은 파리넬리를 왕립 오페라 감독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파리넬리의 음악 활동이 더욱 왕성해졌고 덩달아 스카를라티도 바빠졌다.

1757년에 마드리드에서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고, 유해는 산 노르베르토 수도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clearfix]

3. 작품세계

3.1. 건반 소나타

그의 음악을 살펴볼 때가 왔다. 겨우 몇 마디안에 그토록 무수히 많은 음을 담아내는 그는 돈꾸밈음을 괴팍하게 사용하거나 종지형으로 음악이 막히게 하지 않으며, 허풍을 떨거나 여기 좀 보라는 시늉도 결코 하지 않는다.
― 바실 번팅, 《브리그 플래츠》 中, 1960년

현존하는 스카를라티의 550여곡의 소나타는 화려한 기교와 대담함 이베리아 반도의 색채가 물씬 느껴지는 가장 중요한 바로크 건반음악 중 하나이다. 하프시코드 연주자들에게는 ( 바흐 헨델 이외의 작곡가 중에) 프랑수아 쿠프랭이나 쟝 필리프 라모 등의 모음곡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레퍼토리로 다루어지고 있다.

3.1.1. 특징

스카를라티의 건반 소나타는 대부분 단악장에 A-B 2부 형식으로 되어 있고, 각 부분은 도돌이표가 붙어 한 번씩 반복된다. 길이도 짧은 것은 불과 1분 정도, 길어 봐야 10분 내외일 정도로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K.78이나 K.81, K.88~91처럼 바로크 춤곡을 섞은 모음곡이나 트리오 소나타 양식을 취한 다악장 곡들도 종종 있는데, 이 곡들은 건반악기 하나 외에 특정한 악기를 지정하지 않은 단성부 하나가 추가되어 있어서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 리코더, 플루트 등의 관악기가 해당 성부를 건반 주자와 함께 연주한다.

이렇게 고전 이후의 소나타와 비교하면 얼핏 단순유치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고향 나폴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음악 특유의 낭랑한 선율미가 녹아있는가 하면 당시 관행을 상당 부분 거스르는 반음계[4], 대담한 조바꿈[5]이나 화음 밖의 비화성음 중 하나인 강한 악센트의 아치카투라(Acciaccatura. 짧은 전타음), 기타 라스게아도 주법을 연상시키는 불협화음의 강렬한 연속 난타[6], 이베리아 반도의 전통 음악에서 많이 사용되는 선법인 프리기아 선법의 도입 같은 (당시 기준의) 음악적인 파격이 더해진 곡도 상당히 많다.[7]

이외에도 왼손과 오른손을 엇갈리게 하는 주법이나 한 음을 손가락만 바꿔가며 연타하는 주법 등 당시에는 매우 새롭고 또 어려운 연주 기교였지만 이후 건반악기 연주법 전반에 걸쳐 상용되는 여러 기교들도 선보이고 있어서, 피아노를 비롯해 건반악기 전반을 다루는 연주자들은 그냥 지나치기 힘든 곡들이 많다.

다만 워낙 곡 수가 많다 보니 바흐의 칸타타나 하이든의 교향곡처럼 전곡 연주나 녹음에 도전하는 이들은 아직도 거의 없는데, 1984~85년 동안 프랑스의 방송국인 라디오 프랑스에서 스카를라티 탄생 300주년 기념으로 미국 쳄발리스트 겸 오르가니스트 스코트 로스(Scott Ross)[8]에게 위촉해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처음으로 전곡이 녹음되었다. 이 녹음은 이후 프랑스 음반사 에라토에서 34장 분량의 CD로 발매되었고, 로스 이후에는 영국 쳄발리스트 겸 오르가니스트 리처드 레스터가 2001~06년까지 6년 동안 연속 제작한 전곡 녹음을 자국 음반사 님버스에서 출반했다. 레스터의 전집에는 롱고와 커크패트릭, 페스텔리가 발견 또는 분류하지 못한 미발표 소나타들의 녹음도 포함되어 있다.

3.1.2. 후대의 연주, 편곡, 그리고 오마주

이외에 포르투갈과 스페인 정주 시절에 남긴 소나타들은 그 지역의 전통 음악 어법의 강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종종 기타 독주 혹은 2중주로 편곡해 연주하기도 한다. 스카를라티 생전에 막 발명되어 보급되기 시작한 초기 피아노인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하는 시대연주 건반 주자들도 있고, 비교적 느린 템포의 곡은 하프시코드 대신 파이프오르간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시대연주 이전에 이 곡을 현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는 시도도 상당히 자주 있었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에밀 길렐스 등의 본좌 피아니스트들이 명연을 남긴 바 있다. 특히 크로아티아 출신의 이보 포고렐리치(Ivo Pogorelich)의 깔끔하고 투명한 음색의 연주는 많은 청취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또 독주곡인 소나타를 더 큰 편성의 협주곡으로 편곡하는 시도도 있었다. 스카를라티의 후배였던 영국 작곡가 찰스 애비슨(Charles Avison, 1709-1770)은 스카를라티의 음악을 자국에 소개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기타 등등의 동기로 적지 않은 건반 작품들을 다악장의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들로 편곡했다. 대표적으로는 합주 협주곡 5번 같은 사례가 있다. #[9]

그리고 스카를라티 역시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의 연주자 학대급 마개조를 피할 수는 없었는데, '스카를라티에 대한 오마주(Omaggio a Domenico Scarlatti)'라는 제목으로 에튀드 6번에 수록되었다. # 물론 바로크적인 악상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스카를라티가 자주 활용하던 주법과 악곡의 형태를 많이 참고한 흔적이 보인다.[10] 아믈랭의 유머가 들어간 곡으로 굉장히 재미있고 우스꽝스러운 곡이지만, 연주자는 이를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어려운 기교가 사용되었다.

3.1.3. 건반 소나타의 작품 번호에 대해

스카를라티는 여러 장르에 걸쳐 매우 많은 수의 작품을 썼지만 당대의 다른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출판된 곡은 극소수이다. 생전에 출판된 곡은 1738년에 '30개의 연습곡(30 Essercizi)' 이라고 이름붙여 자가출판한 30곡의 건반 소나타가 전부. 그의 많은 작품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악보가 이리저리 흩어지거나 소실되었는데,[11] 다행히 500곡을 넘는 엄청난 수의 건반악기를 위한 소나타들은 필사본이 많이 남아 있으며 그의 사후에 종종 출판도 이루어져서 상당수가 보존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무치오 클레멘티는 영국에서 '스카를라티의 하프시코드 또는 피아노를 위한 명작들(Scarlatti's Chefs d'oeuvre, for the Harpsichord or Pianoforte)'이라는 작품집을 출판했다. 또 1839년에는 카를 체르니가 손가락 연습용으로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200여곡을 출판했다.

하지만 그의 많은 건반 소나타는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 일부 작품만 간헐적으로 출판되었으며, 1906년이 돼서야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겸 음악학자 알레산드로 롱고(Alessandro Longo, 1864-1945)가 그의 544개의 소나타를 Longo/L. 번호로 정리하여 출판했다.[12] 그런데 롱고는 작곡시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번호를 붙였기 때문에 분류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 따라서 롱고의 분류방식으로는 시기에 따른 양식상의 변화를 관찰할 수 없고 형식이 전혀 다른 작품이 비슷한 번호대에 묶여 있는 등 이런 저런 문제가 많이 있었다.

이후 미국의 쳄발리스트 겸 음악학자 랄프 커크패트릭(Ralph Kirkpatrick, 1911~1984)[13]은 롱고번호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현존하는 스카를라티 당대의 필사본들의 필사시기와 부가 기록들을 면밀히 조사하였으며, 그간 새로 발견된 작품을 포함시켜서 총 555개의 소나타에 커크패트릭 번호(1953. 약칭 K 혹은 Kk)를 붙였다. 이 커크패트릭 번호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작곡시기를 기준으로 번호를 붙였기 때문에 롱고번호에 비해 상대적으로 넘버링이 체계적이고 연구에 유용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후 이탈리아의 음악학자 조르지오 페스텔리(Giorgio Pestelli)가 이 555개의 소나타에 각 소나타의 작곡시기와 양식 등에 대한 대한 새로운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커크패트릭 번호를 수정한 페스텔리 번호(1967. 약칭 P)를 붙였다.

현재 대중적으로 많이 쓰이는 작품번호는 커크패트릭 번호이다. 다만 커크페트릭이나 페스텔리 이후에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스카를라티 혹은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자필보가 계속 발굴되고 있어서 추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건반 소나타 외에 스카를라티가 작곡한 다른 장르의 작품들도 다수 발굴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정립된 작품번호가 없는 상황이므로 이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그리고 아직 건반 소나타의 넘사벽 인지도에는 못미치지만, 2차대전 후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고전 이전의 음악 연구에 힘입어 건반 소나타 이외의 작품들에 대한 리바이벌과 재평가도 진행되고 있다.

4. 주요 작품들

네이버캐스트 : 스카를라티 키보드 소나타
  • 건반 소나타 555곡[14]
  • 신포니아 약 17곡
  • 종교음악 (스타바트 마테르, 살베 레지나 등)
피아노로 연주한 8곡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15곡

5. 기타

스카를라티 본인의 연주에 대한 언급은 아일랜드의 음악가였던 토마스 로젠그레이브가 전하는 이야기가 유일하다. 로젠그레이브는 스카를라티가 위엄 있게 건반 앞에 앉았는데 악마 천명이 악기 앞에 있나 싶었다고 말했다.


[1] 오스만 제국을 물리친 얀 소비에스키 3세의 미망인이다. [2] 아마 스카를라티가 로마 시절 포르투갈 대사를 위해 일한 게 큰 작용이 되었을 것이다. [3] 출처를 알 수 없는 주제들도 있는데 아마도 스카를라티의 소실된 소나타 일 수 있다. [4] K 547. 듣기 [5] 한 예로, 소나타 G장조(K. 513). 중간에 D장조 종지 뒤에 바로 f단조가 나온다. 듣기 [6] 예를 들어 K.175 같은 경우 악보에 불협화음이 무슨 탑처럼 쌓여있는 모습(특히 마디 25부터)을 볼 수 있다. 다만 이 곡을 피아노 연주로 들으면 시끄러운 난타 효과가 훨씬 약하게 느껴진다. 듣기 [7] 찰스 버니에 따르면 스카를라티 본인도 작곡의 법칙에서 자주 벗어났다는 사실을 자주 말했다고 한다. [8] 스코트 로스(1951~1989)는 스카를라티 외에도 프랑수아 쿠프랭, 장 필리프 라모의 하프코드음악 전곡도 녹음하였다. 대단히 촉망받는 하프시코드 연주자였으나 한창때인 38살에 AIDS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이때문에 동성애자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아직 그가 게이였다는 증거는 없다. [9] 1악장은 직접 작곡. 2악장은 K.11, 3악장은 K.41, 4악장은 K.5 [10] 대표적으로 K. 119의 음형들을 많이 참고했으며, 대다수의 피아노 소나타처럼 AA-BB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곡의 경우 워낙 B의 마지막 부분이 끝내는 느낌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모든 부분을 도돌이표 지켜서 연주하는 스카를라티의 소나타와는 다르게 B 파트를 한 번만 연주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아믈랭도 한 번만 연주했다. [11] 현재 스카를라티의 자필 악보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스카를라티 악보의 수기본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필사한 것이다. [12] 20세기가 되기 전에는 체르니 출판본에 사용된 체르니 번호(.cz)를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를 분류하는데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는 체르니 번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13] 이 분에 주장에 따르자면, 스카를라티는 소나타들을 짝지어 두 세곡씩 묶어 연주할 것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즉 일종의 다악장 형식으로 곡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 [14] 이하의 목록은 그의 수많은 명작 중 극히 일부만 소개한 것이며,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스카를라티 음악세계에 처음 발을 내딛는 청취자들이 많이 접하는 곡들을 우선적으로 소개한 것이다. [15] 단, K.32도 그렇지만, 바로크 시대의 건반 작품을 이처럼 낭만적인 접근 방식으로 연주하는 것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연주자의 "이 곡에 가장 잘 어울리리라 생각되는" 해석일 뿐이다. [16] 상술한 아믈랭이 에튀드 6번을 쓸 때 대부분 이 곡에서 표현 기법을 따 왔다. 이 소나타와 에튀드 6번을 비교해서 들어보자. 다만 아믈랭의 에튀드는 아크로바틱을 하는 것처럼 과장된 면이 있으니 이 점을 유념하자. [17] 게임 문명 4에서 프랑스 루이 14세와 대면하면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 원곡을 그대로 하프시코드와 기타로 연주한 것과 원곡을 기반으로 편곡한 것 세 종류가 있다. 편곡판의 소리는 하프시코드가 아니라 그리스 민속악기인 부주키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