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03:46:51

토니 라 루사

토니 라 루사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엠블럼(1982~1992).png 파일:2006-cardinals-champions.gif 파일:STL_2011_WSChampion.png
MLB 월드 시리즈
우승감독
1989 2006 2011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c41e3a> 파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엠블럼.svg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영구결번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rowcolor=#ccac00> SL No.1 No.2 No.6
<rowcolor=#ffef00> 로저스 혼스비 아지 스미스 레드 션다인스트 스탠 뮤지얼
<rowcolor=#ccac00> No.9 No.10 No.14 No.17
<rowcolor=#ffef00> 에노스 슬로터 토니 라 루사 켄 보이어 디지 딘
<rowcolor=#ccac00> No.20 No.23 No.24 No.42
<rowcolor=#ffef00> 루 브록 테드 시몬스 화이티 허조그 브루스 수터
<rowcolor=#ccac00> No.42 No.45 No.85 🎙️
<rowcolor=#ffef00> 재키 로빈슨 밥 깁슨 어거스트 부시 잭 벅
※ 혼스비가 전성기를 보낸 시기에는 등번호가 따로 있지 않았다. 부시 스타디움 왼쪽 담장에 다른 영구 결번 야구인들과 함께 그의 이름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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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3831> 파일: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엠블럼.svg 애슬레틱스
명예의 전당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018년 헌액된 인물
<rowcolor=#003831> 등번호 이름 포지션 활동 기간
43 데니스 에커슬리 투수 1987~1995
32,38, 34 롤리 핑거스 투수 1968~1976
39, 35, 22, 24 리키 헨더슨 좌익수 1979~1984
1989~1993
1994~1995
1998
27 캣피시 헌터 투수 1965~1974
9, 44 레지 잭슨 우익수 1967~1975
1987
34, 35 데이브 스튜어트 투수 1986~1992
1995
- 찰리 핀리 구단주
단장
1960~1981
2019년 헌액된 인물
<rowcolor=#003831> 등번호 이름 포지션 활동 기간
10, 11, 22, 29, 42 토니 라 루사 내야수
감독
1963
1968~1971
1986~1995
14, 17, 21, 28, 35 바이다 블루 투수 1969~1977
19 버트 캄파네리스 유격수 1964~1976
25 마크 맥과이어 1루수 1986~1997
- 월터 A. 하스 주니어 구단주 1981~1995
2021년 헌액된 인물
<rowcolor=#003831> 등번호 이름 포지션 활동 기간
- 코니 맥 감독
구단주
1901~1950
1901~1954
- 에디 콜린스 2루수 1906~1914
1927~1930
- 홈런 베이커 3루수 1908~1914
- 치프 벤더 투수 1903~1914
2 미키 코크런 포수 1925~1933
2, 3 지미 폭스 1루수 1925~1935
10 레프티 그로브 투수 1925~1933
- 에디 플랭크 투수 1901~1914
6, 7, 28, 32 알 시몬스 좌익수
코치
1924~1932
1940~1941, 1944
1940~1945
- 루브 워델 투수 1902~1907
2022년 헌액된 인물
<rowcolor=#003831> 등번호 이름 포지션 활동 기간
30, 3 에릭 차베스 3루수 1998~2010
6 살 반도 3루수 1966~1976
15, 45, 8, 36, 26 조 루디 좌익수
1루수
1967~1976
1982
10 레이 포시 포수
해설자
1973~1975
1986~2021
- 키스 리프먼 팜 디렉터 1971~
- 스티브 부치니크 클럽하우스 매니저 1966~
2023년 헌액된 인물
<rowcolor=#003831> 등번호 이름 포지션 활동 기간
16 제이슨 지암비 좌익수
1루수
1995~2001
2009
26, 7, 4 밥 존슨 좌익수 1933~1942
5, 4 카니 랜스포드 3루수 1983~1992
24, 38, 18 진 테니스 포수
1루수
1969~1976
- 로이 스틸 퍼블릭 어드레스 아나운서 1968~2005
2007~2008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bordercolor=#c41e3a> 파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엠블럼.svg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명예의 전당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91919,#ffffff
짐 보텀리 켄 보이어 루 브록 잭 벅 거시 부시
디지 딘 짐 에드몬즈 프랭키 프리시 밥 깁슨 칙 헤이피
제시 헤인스 화이티 허조그 로저스 혼스비 토니 라 루사 마티 마리온
윌리 맥기 조 메드윅 자니 마이즈 스탠 뮤지얼 브랜치 리키
레드 션다인스트 마이크 섀넌 에노스 슬로터 아지 스미스 빌리 사우스워스
브루스 수터 커트 플루드 밥 포쉬 조지 키셀 테드 시몬스
샘 브리든 크리스 카펜터 테리 무어 조 토레 페퍼 마틴
팀 맥카버 마크 맥과이어 해리 브러킨 빈스 콜먼 레이 랭포드
모트 쿠퍼 제이슨 이스링하우젠 스캇 롤렌 톰 허 존 튜더
빌 화이트 키스 에르난데스 찰스 코미스키 맷 홀리데이 훌리안 하비에르
맥스 레이니어 호세 오켄도
}}}}}}}}}}}} ||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la-russa.png
토니 라 루사
헌액 연도 2014년
헌액 방식 베테랑 위원회 선정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8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감독 상
신설 토니 라 루사
( 시카고 화이트삭스)
스파키 앤더슨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8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감독 상
스파키 앤더슨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토니 라 루사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프랭크 로빈슨
( 볼티모어 오리올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2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감독 상
톰 켈리
( 미네소타 트윈스)
토니 라 루사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진 라몬트
( 시카고 화이트삭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올해의 감독 상
래리 보와
( 필라델피아 필리스)
토니 라 루사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잭 매키언
( 플로리다 말린스)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tablebgcolor=#000000> 파일:시카고 화이트삭스 엠블럼.svg 시카고 화이트삭스
역대 감독
}}} ||
{{{#!wiki style="margin: 0 -10px"
{{{#000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555555,#aaaaaa
1901년 ~
1대
클락 그리피스
파일:미국 국기.svg

(1901~1902)
2대
지미 칼라한
파일:미국 국기.svg
(1903~1904)
3대
필더 존스
파일:미국 국기.svg

(1904~1908)
4대
빌리 설리반
파일:미국 국기.svg
(1909)
5대
휴 더피
파일:미국 국기.svg
(1910~1911)
2대
지미 칼라한
파일:미국 국기.svg
(1912~1914)
6대
팬츠 롤랜드
파일:미국 국기.svg

(1915~1918)
7대
키드 글리슨
파일:미국 국기.svg

(1919~1923)
8대
자니 에버스
파일:미국 국기.svg
(1924)
9대
에드 월시
파일:미국 국기.svg
(1924)
10대
에디 콜린스
파일:미국 국기.svg
(1924)
8대
자니 에버스
파일:미국 국기.svg
(1924)
10대
에디 콜린스
파일:미국 국기.svg
(1925~1926)
11대
레이 샬크
파일:미국 국기.svg
(1927~1928)
12대
레나 블랙번
파일:미국 국기.svg
(1928~1929)
13대
도니 부시
파일:미국 국기.svg
(1930~1931)
14대
류 폰세카
파일:미국 국기.svg
(1932~1934)
15대
지미 다익스
파일:미국 국기.svg
(1934~1946)
16대
테드 라이온스
파일:미국 국기.svg
(1946~1948)
17대
잭 온슬로우
파일:미국 국기.svg
(1949~1950)
18대
레드 코리덴
파일:미국 국기.svg
(1950)
19대
폴 리차즈
파일:미국 국기.svg
(1951~1954)
20대
마티 마리온
파일:미국 국기.svg
(1954~1956)
21대
알 로페즈
파일:미국 국기.svg

(1957~1965)
22대
에디 스탠키
파일:미국 국기.svg
(1966~1968)
23대
레스 모스
파일:미국 국기.svg
(1968)
21대
알 로페즈
파일:미국 국기.svg
(1968)
23대
레스 모스
파일:미국 국기.svg
(1968)
21대
알 로페즈
파일:미국 국기.svg
(1968~1969)
24대
돈 거터리지
파일:미국 국기.svg
(1969~1970)
25대
빌 아데어
파일:미국 국기.svg
(1970)
26대
척 태너
파일:미국 국기.svg
(1970~1975)
19대
폴 리차즈
파일:미국 국기.svg
(1976)
27대
밥 레몬
파일:미국 국기.svg
(1977~1978)
28대
래리 도비
파일:미국 국기.svg
(1978)
29대
돈 케신저
파일:미국 국기.svg
(1979)
30대
토니 라 루사
파일:미국 국기.svg
(1979~1986)
31대
더그 레이더
파일:미국 국기.svg
(1986)
32대
짐 프레고시
파일:미국 국기.svg
(1986~1988)
33대
제프 토버그
파일:미국 국기.svg
(1989~1991)
34대
진 라몬트
파일:미국 국기.svg
(1992~1995)
35대
테리 베빙턴
파일:미국 국기.svg
(1995~1997)
36대
제리 마누엘
파일:미국 국기.svg
(1998~2003)
37대
아지 기옌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2004~2011)
38대
돈 쿠퍼
파일:미국 국기.svg
(2011)
39대
로빈 벤추라
파일:미국 국기.svg
(2012~2016)
40대
릭 렌테리아
파일:미국 국기.svg
(2017~2020)
30대
토니 라 루사
파일:미국 국기.svg
(2021~2022)
41대
미겔 카이로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2022)
42대
페드로 그리폴
파일:미국 국기.svg
(2023~2024)
43대
그래디 사이즈모어
파일:미국 국기.svg
(2024)
44대
윌 베나블
파일:미국 국기.svg
(2025~)
파일:시카고 화이트삭스 엠블럼.svg
: 월드 시리즈 우승 / : 월드 시리즈 준우승 / : 첫 월드 시리즈(1903년) 이전 아메리칸 리그 우승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3831> 파일: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엠블럼.svg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역대 감독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20272c,#d3dade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시대
1대
코니 맥
파일:미국 국기.svg

1901~1950
2대
얼 맥
파일:미국 국기.svg
1937, 1939
3대
지미 다익스
파일:미국 국기.svg
1951~1953
4대
에디 주스트
파일:미국 국기.svg
1954
파일: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엠블럼(1954).gif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 시대
5대
루 보드로
파일:미국 국기.svg
1955~1957
6대
해리 크래프트
파일:미국 국기.svg
1957~1959
7대
밥 엘리엇
파일:미국 국기.svg
1960
8대
조 고든
파일:미국 국기.svg
1961
9대
행크 바우어
파일:미국 국기.svg
1961~1962
10대
에디 로팟
파일:미국 국기.svg
1963~1964
11대
멜 머게이어
파일:미국 국기.svg
1964~1965
12대
헤이우드 설리반
파일:미국 국기.svg
1965
13대
앨빈 다크
파일:미국 국기.svg
1966~1967
14대
루크 애플링
파일:미국 국기.svg
1967
파일: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 엠블럼.png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시대
15대
밥 케네디
파일:미국 국기.svg
1968
9대
행크 바우어
파일:미국 국기.svg
1969
16대
존 맥나마라
파일:미국 국기.svg
1969~1970
17대
딕 윌리엄스
파일:미국 국기.svg

1971~1973
13대
앨빈 다크
파일:미국 국기.svg

1974~1975
18대
척 태너
파일:미국 국기.svg
1976
19대
잭 매키언
파일:미국 국기.svg
1977
20대
바비 윙클스
파일:미국 국기.svg
1977~1978
19대
잭 매키언
파일:미국 국기.svg
1978
21대
짐 마셜
파일:미국 국기.svg
1979
22대
빌리 마틴
파일:미국 국기.svg
1980~1982
23대
스티브 보로스
파일:미국 국기.svg
1983~1984
24대
재키 무어
파일:미국 국기.svg
1984~1986
25대
제프 뉴먼
파일:미국 국기.svg
1986
26대
토니 라 루사
파일:미국 국기.svg

1986~1995
27대
아트 하우
파일:미국 국기.svg
1996~2002
28대
켄 마카
파일:미국 국기.svg
2003~2006
29대
밥 게런
파일:미국 국기.svg
2007~2011
30대
밥 멜빈
파일:미국 국기.svg
2011~2021
31대
마크 캇세이
파일:미국 국기.svg
2022~
파일: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엠블럼.svg
: 월드 시리즈 우승 / : 월드 시리즈 준우승 / : 첫 월드 시리즈(1903년) 이전 아메리칸 리그 우승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c41e3a> 파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엠블럼.svg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역대 감독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20272c,#d3dade
세인트루이스 브라운 스타킹스 시대 (1882)
1대
네드 커스버트
파일:미국 국기.svg
1882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시대 (1883~1898)
2대
테드 설리반
파일:미국 국기.svg
1883
3대
찰스 코미스키
파일:미국 국기.svg
1883
4대
지미 윌리엄스
파일:미국 국기.svg
1884
3대
찰스 코미스키
파일:미국 국기.svg
★★★★
1884~1889
5대
토미 맥카시
파일:미국 국기.svg
1890
6대
존 케린스
파일:미국 국기.svg
1890
7대
치프 로즈먼
파일:미국 국기.svg
1890
8대
카운트 캄파우
파일:미국 국기.svg
1890
5대
토미 맥카시
파일:미국 국기.svg
1890
9대
조 거하트
파일:미국 국기.svg
1890
3대
찰스 코미스키
파일:미국 국기.svg
1891
10대
잭 글래스콕
파일:미국 국기.svg
1892
11대
컵 스트라이커
파일:미국 국기.svg
1892
12대
잭 크룩스
파일:미국 국기.svg
1892
13대
조지 고어
파일:미국 국기.svg
1892
14대
밥 카루터스
파일:미국 국기.svg
1892
15대
빌 왓킨스
파일:미국 국기.svg
1893
16대
도기 밀러
파일:미국 국기.svg
1894
17대
알 버켄버거
파일:미국 국기.svg
1895
18대
크리스 본 더 아헤
파일:독일 국기.svg
1895
19대
조 퀸
파일:호주 국기.svg
1895
20대
류 펠란
파일:미국 국기.svg
1895
21대
해리 디들복
파일:미국 국기.svg
1896
22대
알리 라트햄
파일:미국 국기.svg
1896
18대
크리스 본 더 아헤
파일:독일 국기.svg
1896
23대
로저 코너
파일:미국 국기.svg
1896
24대
토미 다우드
파일:미국 국기.svg
1896~1897
25대
휴 니콜
파일:영국 국기.svg
1897
26대
빌 홀먼
파일:미국 국기.svg
1897
18대
크리스 본 더 아헤
파일:독일 국기.svg
1897
27대
팀 허스트
파일:미국 국기.svg
1898
세인트루이스 퍼펙터스 시대 (1899)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대 (1900~)
28대
매트시 테뷰
파일:미국 국기.svg
1899~1900
29대
루이 헤일브로너
파일:미국 국기.svg
1900
30대
패트시 도노반
파일:미국 국기.svg
1901~1903
31대
키드 니콜스
파일:미국 국기.svg
1904~1905
32대
지미 버크
파일:미국 국기.svg
1905
33대
스탠리 로빈슨
파일:미국 국기.svg
1905
34대
존 맥클로스키
파일:미국 국기.svg
1906~1908
35대
로저 브레스나한
파일:미국 국기.svg
1909~1912
36대
밀러 허긴스
파일:미국 국기.svg
1913~1917
37대
잭 헨드릭스
파일:미국 국기.svg
1918
38대
브랜치 리키
파일:미국 국기.svg
1919~1925
39대
로저스 혼스비
파일:미국 국기.svg

1925~1926
40대
밥 오페렐
파일:미국 국기.svg
1927
41대
빌 맥케치니
파일:미국 국기.svg

1928
42대
빌리 사우스워스
파일:미국 국기.svg
1929
43대
가비 스트리트
파일:미국 국기.svg
1929
41대
빌 맥케치니
파일:미국 국기.svg
1929
43대
가비 스트리트
파일:미국 국기.svg

1930~1933
44대
프랭키 프리시
파일:미국 국기.svg

1933~1938
45대
마이크 곤잘레스
파일:쿠바 국기.svg
1938
46대
레이 블레이데스
파일:미국 국기.svg
1939~1940
45대
마이크 곤잘레스
파일:쿠바 국기.svg
1940
42대
빌리 사우스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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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1945
47대
에디 다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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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950
48대
마티 마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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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49대
에디 스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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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1955
50대
해리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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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51대
브래드 허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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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1958
52대
스탠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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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53대
솔리 헤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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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1961
54대
조니 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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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1964
55대
레드 션다인스트
파일:미국 국기.svg

1965~1976
56대
번 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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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1978
57대
잭 크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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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58대
켄 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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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1980
57대
잭 크롤
파일:미국 국기.svg
1980
59대
화이티 허조그
파일:미국 국기.svg
1980
55대
레드 션다인스트
파일:미국 국기.svg
1980
59대
화이티 허조그
파일:미국 국기.svg

1981~1990
55대
레드 션다인스트
파일:미국 국기.svg
1990
60대
조 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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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61대
마이크 조겐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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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62대
토니 라 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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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011
63대
마이크 매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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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018
64대
마이크 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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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21
65대
올리버 마몰
파일:미국 국기.svg
2022~
파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엠블럼.svg
: 월드 시리즈 우승 / : 월드 시리즈 준우승 / ★: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우승
}}}}}}}}}}}} ||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 등번호 29번
대니 맥데비트
(1962)
토니 라 루사
(1963)
호세 산티아고
(1965)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10번
웰던 보윈
(1967)
토니 라 루사
(1968)
데이브 던칸
(1968~197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11번
존 와이엇
(1969)
토니 라 루사
(1969)
후안 피사로
(1969)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22번
에드 스프라그
(1968~1969)
토니 라 루사
(1970)
대럴드 노울스
(1971)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42번
토미 데이비스
(1970)
토니 라 루사
(1971)
잭 매키언
(1978)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6번
클레테 보이어
(1967~1971)
토니 라 루사
(1971)
밥 디디어
(1972)
시카고 컵스 등번호 42번
후안 피사로
(1970)
토니 라 루사
(1973)
맷 알렉산더
(1973~1974)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10번
조 게이츠
(1979)
토니 라 루사
(1979~1986)
스티브 라이온스
(1986)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10번
데이브 킹맨
(1984~1986)
토니 라 루사
(1986~1995)
마크 벨혼
(1998)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10번
크리스 챔블리스
(1993~1995)
토니 라 루사
(1996~2011)
영구결번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22번
프랭크 메네키노
(2020)
토니 라 루사
(2021~2022)
오스카 콜라스
(2023~)
}}} ||
파일:LaRussa_Tony_Cardinals2-682x830.jpg
<colbgcolor=#c41e3a><colcolor=#ffef00>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No.10
토니 라 루사
Tony La Russa
본명 앤서니 라 루사 주니어
Anthony La Russa Jr.[1]
출생 1944년 10월 4일 ([age(1944-10-04)]세)
플로리다 주 탬파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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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 -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교
신체 183cm / 79kg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62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 KCA)
소속팀 캔자스시티-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63, 1968~1971)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1971)
시카고 컵스 (1973)
지도자 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 (1978)
시카고 화이트삭스 감독 (1979~1986)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감독 (1986~1995)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1996~2011)

시카고 화이트삭스 감독 (2021~2022)
프런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CBO (2014~2017)
보스턴 레드삭스 사장 특별보좌 (2018~2019)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수석 고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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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경력
2.1. 젊은 시절2.2. 시카고 화이트삭스 1기2.3. 오클랜드 애슬레틱스2.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4.1. 2011년, 정상에서 내려오다
2.5. 프런트 시절2.6. 시카고 화이트삭스 2기2.7. 두 번째 은퇴
3. 데이브 던컨 투수코치와의 관계4. 평가5. 이모저모6. 감독 성적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 감독.[2]

2022년 시즌까지 2,884승 2,499패를 기록하며 코니 맥[3]에 이은 역대 MLB 감독 최다승 2위에 올라있다.[4][5] 또한 2,884승의 다승 기록뿐만 아니라 전술적 측면에서도 MLB와 현대 야구에 큰 영향을 끼친 명감독이다.

2. 경력

2.1. 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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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에는 별 볼일 없는 유틸리티[6]로 뛰었지만, 자신이 선수로서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일찌감치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먹고살기 위해서 은퇴 후 공부를 시작해서 고향 플로리다 주립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 면허까지 땄다.

그래서 로펌 입사가 보장되었는데도 야구가 너무 좋아서 마이너 리그 감독으로 갈까 하는 유혹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 문제로 나름 진지하게 교수들과 상의까지 했는데 교수들은 "나이가 몇 살인데 철 좀 들어라" 라는 말만 했다고(...) 그래도 고집을 부려서 야구 감독으로의 미래를 밀고 나갔고, 덕분에 197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감독이 되면서 MLB 사상 7번째로 변호사 출신 감독이 되었다.[7]

훗날 이 결정은 변호사로 밥 벌어먹기보단 버스타고 돌아댕기며 마이너 감독을 하는게 낫다 (I decided I'd rather ride the buses in the minor leagues than practice law for a living.)는 명언으로 남게 되었다.

2.2. 시카고 화이트삭스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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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더블A 팀의 감독이 된 TLR는 1979년 중 시카고의 트리플A 감독이 되었다가 기존의 감독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빅리그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는 시즌이 ⅔에 머물던 시점에 46승 60패에 머물던 팀을 시즌 마감 때 5할 승률에 맞춰놓는 기염을 토했고, 삭스는 TLR를 계속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TLR는 성공적으로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데뷔하였고, 1983년 99승 63패를 기록하며 ALCS까지 진출시켰다. 비록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패배했지만, 블랙삭스 스캔들 이후 부진을 거듭해온 팀 역사상 의미있는 기록임에 분명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1984년에는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25이닝 연장전에서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당시 시카고의 칼튼 피스크는 25이닝 내내 포수로 뛰었으며, 이후 세인트루이스에서 역시 라루사가 육성한 야디어 몰리나가 20이닝 동안 포수로 뛰는 기록을 세운다.

하지만 1986년 팀은 초반 26승 38패로 부진을 겪었으며, 팀은 성적의 책임을 물어 TLR를 경질했다.[8] 이것은 토니 라 루사가 30년 감독생활 동안에 경질된 유일한 경우이다. 그 외에는 타의로 잘린 적이 없다. 그로부터 불과 몇 주만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TLR을 감독으로 영입한다.

2.3.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파일:external/cdn.fansided.com/TonyLaRussa.jpg

오클랜드[9]에서 TLR는 현대 야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큰 실험을 단행하게 된다. 1988년에 구위가 급격히 떨어졌던 어느 투수[10]를 불러서 " 너 오늘부터는 이기는 경기 9회에만 던져라"고 명령한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9회이다. 이 장면이 1이닝 마무리의 탄생인 것이다. 2~3이닝을 던지는 다이닝 마무리, 요즘 표현으로 중무리는 당시에도 있었다.[11] 그럼 그때는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가 별 차이가 없었네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한국 프로야구는 그 역할을 선발 투수가 겸업하던 시절이다. 선발로 7이닝 던지고 이틀 쉬고 나서 7회에 구원등판 경기 마무리짓고, 다시 하루 쉬고 선발로 나오는 방식으로... 80년대 후반 한국프로야구에도 권영호 김용수 등 전문 마무리 투수가 아예 없던 건 아니었지만[12], 선동열처럼 선발 투수에게 체력적 여유가 좀 더 있으면 다음 등판 사이에 마무리로 등판시키는 전략이 90년대까지 남아있었을 정도.[13][14]

당초 전문가들은 이런 전례없던 시도에 대해 "대체 뭣하러 이런 쓸데없는 보직을 만들었냐"는 반응이었고, 에커슬리에 대해서도 다 이긴 경기 9회에만 등판하여 연봉 받아먹는 먹튀라며 혹평했지만, 이런 TLR의 개혁은 1988년 AL 우승[15]과 에커슬리의 사이영상 투표 2위와 104승 58패 시즌으로 대성공을 거뒀고 결과적으로 1988년에 AL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었다. 또한 1989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누르고[16]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뒀으며, 1992년에는 TLR의 황태자 데니스 에커슬리 사이영상 MVP를 동시에 거머쥐었다.[17] 이후 이런 전담 마무리 투수는 현대 야구의 불펜 운용에 있어 필수요소가 되었으며, 과거 브루스 수터 같은 2~3이닝 마무리들과 달리 1이닝만을 투구하는 클로저들이 나타났고 지옥의 종소리, 샌드맨 같은 600세이브급 전설적인 클로저들이 출현했다.

또한 선발 투수들의 등판 간격을 조절하던 끝에 5선발 로테이션을 제대로 정착시켰으며, 선발과 마무리 투수도 중요하지만 좌타자가 많아지고 있는 현대 야구의 특성을 꿰뚫어보고 중간계투에서 좌타자만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원 포인트 릴리프들을 기용하기 시작하여 현대야구의 불펜 운용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고 선발로서 효용가치가 떨어진 노장 좌투수들의 선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려놓았다. 불펜, 나아가 투수진 운용에 있어 TLR가 만든 이 시스템은 오늘날 전 야구계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18].

1990년에도 AL을 우승, 월드시리즈 3년 연속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으며[19], 1991년에는 감독 통산 1000승을 달성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월터 하스 구단주가 사망한 뒤 에이스는 매각 처분되어 리키 헨더슨 등 그간 에이스의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스타 선수들은 떠나기 시작했고 졸지에 돈없는 그지구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20] 결국 TLR 역시 1995년을 마치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옮기게 되었다.[21]

2.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external/cdn.theatlantic.com/epplin_larussa_post.jpg

부시 스타디움 덕아웃에서 반복해서 라인업 카드를 살펴보는 모습은 TLR의 트레이드마크와 다름없다. 아래의 영상에서 카일 로시가 TLR을 흉내낼 때에도 이 모습을 깨알같이 코스프레했다.

TLR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감독으로 남게 되었다. 전임 조 토레 감독[22]의 말년인 1994년과 1995년에 53승, 62승에 그쳤던 세인트루이스에서 첫 시즌 96년에 88승을 거두며 NLCS까지 진출시키며 호성적을 보였고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여 카디널스의 10년을 육성했다. 그리고, 마크 맥과이어가 노쇠하면서 발전이 없는 잉여를 발굴했다.

여기서도 실험은 계속되었는데, 내셔널리그가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며 주로 9번을 치는 바람에 테이블 세터들의 작전 구사에 방해가 된다는 점을 아쉬워했던 AL 출신 TLR는 투수를 8번에 기용하고 9번에 그림자 테이블세터를 배치하는 기상천외한 타순배치를 시도하기도 했다.[23] 결과적으로는 딱히 생산력이 뛰어나지는 않은 결과가 나왔지만, 작전구사와 데이터를 중시하던 TLR의 습관에서 이런 시도는 충분히 가치있는 것이었고 이후로도 정규시즌마다 종종 시도했다.

2002년 다시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었는데, 올해의 감독상을 양대리그에서 모두 수상한 역대 두번째 인물[24]이 되었다. 또한 서로 다른 세 팀에서 이 상을 수상하는 유일한 감독으로도 남게 되었다. 2003년에는 통산 2000승을 따내기도.

그리고 2004년 다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여 양대리그를 모두 우승하는 기록을 갖게 되었는데, 그해 ALCS의 사건에 의해 묻혔고 WS에서도 스윕당했다. 그래도 2006년 월드시리즈를 기어이 우승하며 스파키 앤더슨에 이어 양대리그에서 월드시리즈를 우승한 2번째 감독으로 이름이 남았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고집과 참견만 늘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는데, 실제로 카디널스에 오자마자 노쇠화 기미가 보이던 아지 스미스를 반 강제로 은퇴시켜서 지금까지도 사이가 좋지 않으며[25], 말년이 다가오면서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인물들과 척을 지며 팀 케미스트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명단장 월트 자케티 스캇 롤렌, 짐 에드먼즈 등 여러 선수들이 그렇게 카디널스를 떠났고[26][27], 심지어는 새파랗게 젊은 선수인 콜비 라스머스도 제대로 휘어잡지 못해서 콜비의 아버지와 다투다가 결국 팀에서 내보내게 되었다.[28][29][30] 또한 내야수로 활동하는 유틸리티 선수들을 억지로 외야 겸업을 시키느라 선수들이 혼란을 겪기도 했다[31]. 그 외에 2007년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흑역사도 있고, 맷 홀리데이 알버트 푸홀스가 카디널스와 협상을 진행할 때 어련히 프런트가 알아서 해줄 문제를 괜히 참견해서 이리저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32]
때문에 대상포진으로 잠시 2011년 자리를 비웠을 때 카디널스 팬들은 TLR 없으니 속 시원하다며 통쾌하게 웃었고(...) 감독이 노망이 들었다면서 비난을 퍼부었다. 게다가 대단한 역전극으로 포스트시즌에 나갔음에도 경기 후반에 외야 불펜에 전화를 걸었다가 웜업 지시를 잘못 내리는 바람에 경기를 말아먹은 사건[33] 등 여러가지로 까임거리가 많았다.



회춘한 라루사...는 아니고 대상포진으로 인해 자리를 비웠을때 팀오더 교환을 나간 카일 로시다. 부스스한 뒷머리가 똑같다 마침 카일 로시는 라루사 감독과 생일이 같다.

당시 대상포진에 걸린 토니 라루사는 제대로 출장을 할 수가 없었다. 덤으로 좀비 같다고 해서 농담거리가 되기도 했다. 좀비 이미지는 정말 혐오물이라서 링크로 대체한다.

2.4.1. 2011년, 정상에서 내려오다

2011년 카디널스는 이러쿵 저러쿵 하는 스캔들이 있었음에도 후반기 푸홀스의 부활[34]에 힘입어 기적적인 상승세를 보였고 2011 MLB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를 역전해서 와일드카드를 따낸 것으로 모자라 만패에 빛나는 現 MLB 최강팀, 홈워키 브루어스를 연파하고 크리스 카펜터의 역투와 데이빗 프리즈의 맹활약에 힘입어 콩사스 레인저스를 꺾고 WS 우승을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웜업 사건 정도를 제외하면 작두 탔다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제대로 된 불펜 운영을 보여주면서 새삼스럽게 한국 언론에서 주목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메이저리그의 김성근이라는 식의 표현이 많아서 메이저리그 팬들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기도 했다 2016년 현재 그 말은 라루사에게 엄청난 실례가 됐다.죽어라고 까던 세인트루이스 팬들의 반응도 '상대팀 감독을 보니 그래도 TLR는 양반인듯?'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리고 마침내 제이슨 마트의 마지막 투구를 쳐낸 데이비드 머피의 타구가 좌익수 앨런 크레이그에게 잡히는 순간 랜스 버크먼과 붙잡고 펄쩍펄쩍 뛰는 TLR의 모습은 노망났다는 비판을 받는 감독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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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TLR는 통산 3번째 WS 우승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우승과는 별개로 팬들의 여론이 자신에게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았던 TLR는 정상에서 은퇴를 선언했다.[35][36] 은퇴 기자회견에서 "서점이나 열란다"고 했다고. 이런 은퇴 선언에 카디널스 팬들은 요 몇년 실컷 욕이나 먹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우승까지 해놓고 물러나신다니 아쉽다 츤데레?면서 그동안 메이저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보여준 역량과 카디널스를 명문으로 키워낸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카디널스의 새 감독은 과거 야디어 몰리나가 등장하기 전까지 카디널스의 주전 포수로 활약했던 마이크 매시니로 결정되었다.

파일:external/cheapseatsplease.files.wordpress.com/tony-larussa.jpg
그리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16년을 재직하면서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과 세 번의 내셔널리그 우승, 7번의 지구 우승, 9번의 PO 진출, 두 번의 100승 시즌을 만들고, 야구사적으로도 한 시대의 획을 그은 명감독의 공로를 기리는 차원에서 그의 등번호 10번이 카디널스 프랜차이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2012년 5월 11일 기념식을 가졌다. 그리고 2012년 올스타전에서 내셔널리그 감독으로서 진정한 마지막 경기를 가졌는데 아메리칸리그를 8-0으로 떡실신시켰다. 이를 통해 라 루사는 최초의 양대 리그 올스타전 승리 감독이 되었다.

2.5. 프런트 시절

한동안 휴식을 취하다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자문역을 맡았다.

2014년 시즌 중반부터 토니 라 루사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새로 신설한 직책인 CBO(Chief Baseball Officer)에 취임하였다. 구단은 이 직책이 GM보다는 상위 지위이며 사장보다는 하위 지위라고 밝혔는데, 구단 전력구성에 관한 최상위 책임자의 권한을 가진다고 한다. 타 구단에서는 이 역할을 GM이 수행하고 있으니, 실질적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GM은 라 루사라고 보면 될 듯. 그가 취임한 이후 케빈 타워스 단장은 경질됐으며, 커크 깁슨 감독과 앨런 트라멜 벤치코치도 시즌 3경기를 남겨놓고 나란히 경질됐다. 본격적으로 애리조나의 리빌딩에 들어가는 걸로 보인다. 그리고 디백스는 멸망했다. 카디널스 시절의 애제자이던 셸비 밀러 영입 등 라루사가 주도한 무브들이 크게 빗나가며 2016년의 디백스는 처절하게 망했고, 토니 라 루사 본인도 권한이 대대적으로 축소되었다.

이후 2017년에는 데이브 스튜어트 단장이 경질된 후 새로 부임한 마이크 헤이즌 단장과 함께 디백스를 와일드카드에 올려놓으며 2016년의 실패를 만회하였고, 10월까지 활동한 뒤 CBO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야구계에서의 완전한 은퇴인가 했는데, 보스턴 레드삭스 데이브 돔브로스키 사장의 특별보좌역을 맡으며 야구계와 다시 연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레드삭스가 부임 첫 해에 월드 시리즈 트로피를 탈환하면서 개인 통산 네 번째 우승의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자신을 영입한 돔브로스키가 경질되자 2019시즌 종료 후 레드삭스를 떠나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시니어 어드바이저로 옮겨간다.

2.6. 시카고 화이트삭스 2기

2020년 10월 30일, 놀랍게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감독으로 복귀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음주운전으로 걸렸는데 나중에는 난폭운전으로 변하여 단단히 망신을 샀다.

2011년 카디널스를 우승시키고 현장을 떠난 이후 10년 만의 감독 복귀. 자신이 처음 감독을 시작했던 팀으로 35년만의 복귀다. 라 루사가 얼마나 나이가 많냐 하면, 이전에 최고령인 더스티 베이커가 오클랜드에서 선수로 활약하던 85-86년에도 오클랜드 감독이었다.[37]

알버트 푸홀스가 LAA에서 방출되고 나서 라루사가 있는 화이트삭스가 푸홀스를 영입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영입하지 않았다.

11점차 9회초 2아웃 3볼 상황에서 투수로 등판한 야수를 상대로 홈런을 친 본인 팀의 예르민 메르세데스를 비판했다. 메르세데스가 실수를 했으며 야구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고 인터뷰했고 미네소타에도 자신이 사과했다고 한다. 하지만 OPS 0.984를 기록하며 신인왕 후보로 꼽힐 정도로 활약중인 자기 팀의 유망주를 향한 발언이었기에 오히려 라루사가 비판 받았다. 물론 라루사가 보낸 사인을 무시하고 스윙하긴 했지만, 존 헤이먼과 제프 파산 등의 칼럼리스트, 화이트삭스 역사상 최강의 장타자였던 프랭크 토마스는 '참으로 구시대적인 사고방식'(reallllllly old school thinking)이라고 질타하며 '라루사가 정말 놀랄 만한 실수를 저질렀다'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다'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 외에도 CC 사바시아가 팟캐스트 R2C2에서 '감독 자격이 없다'(Shouldn't be fucking managing that team)이라고 하고, 트레버 바우어도 '그 홈런에 화가 났으면 야구장에서 나가세요.'라고 말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대차게 까이는 중. 랜스 린, 루카스 지올리토, 팀 앤더슨 등 화이트삭스 선수들도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리더십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만 77세의 나이에 오랜 경력을 가진 감독이니 당연하지만, 불문율에 굉장히 엄격한 올드스쿨이며 여기엔 자 팀 선수도 예외가 없는 것 같다. 이후 메르세데스는 ops 3할 찍으면서 부진하다 트리플 A로 가고, 은퇴 선언 글을 올렸다가 하루만에 불사조 이미지와 함께 복귀 선언을 했다(..)

이러한 구설수와는 별개로 팀 운영은 잘 이루어져 6월 6일 존 맥그로의 통산 2,763승을 뛰어넘어 메이저리그 감독 최다승 2위로 올라섰다. 또한 시즌 종료 10경기를 남겨두고 AL 중부지구 1위를 기록했고, 월드 시리즈 진출 가능성도 꽤 높게 점쳐졌다.

디비전 시리즈 상대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휴스턴의 감독 더스티 베이커가 현역 최고령 감독 2위고 라 루사가 1위이다. 둘 다 얼마 전에 선임된 감독이고, 과거 베이커가 오클랜드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 감독이 라루사였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었는데, 결국 제자가 스승을 꺾으며 화이트삭스가 탈락했다. 베이커 감독과의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에서 불과 1승만 거두는 부진을 보였고, 이번에도 5살 아래의 제자에게 패했다.

2022년 들어선 상황이 더 나빠졌다. 그간의 삽질에 분노한 팬들이 2022년 6월 12일 경기선 연장 10회초에 "토니를 경질하라(Fire, Tony)" 라는 연호로 홈 팬들의 야유에 가까운 소리를 듣는 최악의 지경에 이르렀고, 8월 1일(한국시간) 캔자스시티전에서는 1회부터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포착되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8월 31일(한국시간)자로 건강 악화[38]로 인해 이탈하면서 미겔 카이로 벤치코치가 임시 감독을 맡게 된다고 밝혔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다 건강, 그것도 심장 관련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올 시즌이 화이트삭스와 동행하는, 아니 지도자, 그리고 야구인으로서의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인다.

2.7. 두 번째 은퇴

2022 시즌 막바지인 9월 말에 라 루사가 조만간 은퇴 의사를 밝힐 것이라는 소식이 연이어 보도됐고 결국, 2022년 10월 3일, 공식 발표를 통해 건강 문제로 더 이상 감독을 맡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은퇴를 선언했다. 카디널스 시절의 은퇴 선언과 달리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심장 제세동기를 삽입한 만큼 더 이상의 현장 복귀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으로 59년간 이어진 그의 야구인 생활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3. 데이브 던컨 투수코치와의 관계

에이스 시절 같이 선수로 뛰었던 데이브 던컨은 은퇴 이후 1983년에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투수코치로 부임해 왔다. 그 이후 데이브 던컨은 TLR과 함께 투수코치로서 같이 일해 왔다.[39] 감독은 흔히들 '라루사이즘'이라 불리는 1이닝 마무리 시스템은 자기가 만든게 아니라 데이브 던컨이 하자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공을 그에게 돌리기도 했다.

던컨 코치는 구위가 강하지 못한 퇴물급 투수들을 상대로 투심/싱커나 커터, 커브를 전수하거나 제구를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탈삼진보다 맞춰잡기식으로 경기를 운영하도록 이끌었다. 이런 결과로 퇴물 취급받던 데니스 에커슬리를 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유망하지만 좀처럼 두각을 나태내지 못하던 유리몸 투수인 크리스 카펜터 사이 영 상 수상한 투수로 부활시켰다. 그 외에도 우디 윌리엄스, 제프 수판, 제프 위버 등의 퇴물급 투수를 주워다가(?) 잘 쓰기도 하였다. 다만 단점으로, 신예 유망주를 기르는 데에는 그다지 큰 재미를 못보는 편. 그나마 싹수가 보였던게 릭 앤키엘이지만... 블래스 신드롬이 문제야

또한 앤서니 레예스 같은 팔꿈치 부상 우려가 높고 자신의 피칭 스타일에 고집이 센 투수들에게도 자신이 가르치려는 투심 위주의 피칭을 강요하다 서로 사이가 틀어지는 등 TLR 닮아서 고집세고 성격이 괄괄한 편이다.[40][41] 그래도 MLB에서 수준급의 투수코치로서 호평받고 있다.

2013년 11월, 데이브 던컨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단장 특별보좌 및 스페셜 어시스턴트로 취임했고, 2014년 중반 라 루사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CBO로 취임하면서 다시 한 팀에 모이게 되었다.

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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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반지만 3개.[42]

축구계에서 토탈 풋볼 리누스 미헬스 압박 축구 아리고 사키와 같은 혁명을 일으킨 감독을 야구계에서 찾으라면 토니 라 루사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후대 감독들이 이들의 방식을 받아들여 보편적인 전술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결과적으로 현대 야구와 그 이전 야구의 분기점을 만든 감독으로서, 현대 야구는 라루사이즘의 색깔 아래에 자신들만의 개성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토니 라 루사의 업적을 크게 따지면 4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1. 1이닝 전문 마무리로 대표되는 투수 분업화 시스템 창조. 데니스 에커슬리의 전문 마무리 투수 전환 대성공으로 이후 좌완 스페셜리스트와 같은 투수 분업화를 완성시키며 투수들의 선수생활을 늘리고 이 결과 장기적으로 팀 성적을 향상시키는 근간이 되었다.
2. 데이터 야구를 중시하며 위를 근간으로 플래툰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3. 위의 방식들을 활용한 라루사이즘의 팀이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대성공을 이끌며 다른 팀들에게 위의 방식들을 보급하며 MLB에 혁명을 가져왔다.
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도 영광이라고 표현될 시절을 보내며 오랜 시간동안 MLB 최고의 감독 자리를 차지했다. 양대리그에서 리그 우승 6회, 월드 시리즈 우승 3회, 올해의 감독상 3회, 통산 2,884승으로 통산 승수 2위. 특히 라 루사 감독보다 승수가 높은 MLB감독들은 1900년대 초반에 활동한 감독들로 사실상 현대 야구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한 감독이다.

2013년 12월 9일, 조 토레, 바비 콕스라는 두 명장과 함께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통산 2천승을 넘긴 감독 셋이 한 해에 헌액되는 사상 초유의 기록이 나왔다. 모두 만장일치로 입성한 세 명의 통산 승수가 7558승(2013년 현재까지 메이저리그에는 통산 승수가 7558승에 못 미치는 팀들도 많다!)이니 역사적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투표가 되었다(...). 명예의 전당 입회식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팀 로고가 없는 모자를 쓴다고 한다. 이유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어느 한쪽만 선택할 수 없어서였다고.[43]

그런데 정작 본인은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은 3명이 3이닝씩 던지는 것이라는 논지의 발언을 하였다. 물론 선수 수준이나 로스터 규모, 비용 때문에 일어나기 힘든 일이지만. 아무래도 '선발투수-계투-1이닝 마무리'라는 시스템을 구축한 장본인이다보니 자신의 시스템에 자부심을 가질 법도 하지만, 이런 주장을 보면 생각이 상당히 열린 사람이다. 참고로 이 '3명이 3이닝씩 던지는 시스템'은 세이버메트리션들 사이에서도 이론상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평가받는다. 2018년 예산과 좋은 선수가 모두 부족한 탬파베이 레이스가 5~6이닝 길게 가는 선발투수들로 5인 로테이션을 구성하지 못하자, 짧은 이닝만 소화하는 '시작투수'( 오프너)를 선발로 내세우는 시스템을 채택한 후 와일드카드 문턱까지 갈 만큼 선전하자 라루사의 안목이 다시 평가받는 중.

5.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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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시절? 잘생겼다
  • 90년대 중후반 야구 게임 중 토니 라 루사 베이스볼이라는 게임이 나오기도 했다.[44] 현역 선수도 아니고 감독이 야구 게임의 타이틀로 나오는 것은 그야말로 충공깽한 일이었다. 90년대 카디널스에 오기 전부터 TLR는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 2013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감독으로서 헌액되었는데, 감독으로 데뷔한 시카고 화이트삭스,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중 어느 한 팀을 선택할 수 없다며 입회식에 팀 로고가 없는 모자를 쓰겠다고 밝혔고, 2014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이후 2020년 시즌 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감독으로 복귀하며,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 중 최초로 현장으로 복귀한 사례가 되었다.[45]
  • 동물 애호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트위터에 가보면 프로필 사진부터 개와 고양이를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고, 그가 올린 사진 대부분 역시 동물에 관한 것이다. 또한 동물에 관련한 쇼에도 출연한 것으로 보인다.
  • 정치적으로는 극우파에 가까운 성향이며, 티 파티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부시 스타디움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방문경기에 맞춰 시위를 계획한 티 파티어들에 대해 지지를 보내기도 했으며, 2010년엔 워싱턴 내셔널스 원정 때 극우 보수파 논객으로 잘 알려진 글렌 벡이 주도한 티 파티 집회가 열리자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이민자인 알버트 푸홀스를 데리고 참가하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46]
  • 권위주의적인 성격으로도 유명한데, 선수들과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 편이고 마찰도 잦았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지도력은 이 모든 트러블을 메꾸고도 남았다. 이렇게 선수들과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 지도자도 많다. 감독도 선수도 인간인 만큼 선수들과 인간적 친분을 맺게 되면 자기랑 친한 선수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어서 선수기용에 공정함을 잃을 수 있기 때문.[47]

6.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전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79 CHW 54 27 27 .500 지구 5위 중도 취임
1980 160 70 90 .438 지구 5위 -
1981 106 54 52 .509 지구 3위 -
1982 162 87 75 .537 지구 3위 -
1983 162 99 63 .611 지구 1위 CS 탈락
1984 162 74 88 .457 지구 5위 -
1985 162 85 77 .525 지구 3위 -
1986 64 26 38 .414 지구 5위 중도 해임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86 OAK 79 45 34 .570 지구 3위 중도 취임
1987 162 81 81 .500 지구 3위 -
1988 162 104 58 .642 지구 1위 WS 준우승
1989 162 99 63 .611 지구 1위 WS 우승
1990 162 103 59 .636 지구 1위 WS 준우승
1991 162 84 78 .519 지구 4위 -
1992 162 96 66 .593 지구 1위 CS 탈락
1993 162 68 94 .420 지구 7위 -
1994 114 51 63 .447 지구 2위 -
1995 144 67 77 .465 지구 4위 -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96 STL 162 88 74 .543 지구 1위 CS 탈락
1997 162 73 89 .451 지구 4위 -
1998 162 83 79 .512 지구 3위 -
1999 161 75 86 .446 지구 4위 -
2000 162 95 67 .586 지구 1위 CS 탈락
2001 162 93 69 .574 지구 2위 DS 탈락
2002 162 97 65 .599 지구 1위 CS 탈락
2003 162 85 77 .525 지구 3위 -
2004 162 105 57 .648 지구 1위 WS 준우승
2005 162 100 62 .617 지구 1위 CS 탈락
2006 161 83 78 .516 지구 1위 WS 우승
2007 162 78 86 .481 지구 3위 -
2008 162 86 76 .531 지구 4위 -
2009 162 91 71 .562 지구 1위 CS 탈락
2010 162 86 76 .531 지구 2위 -
2011 162 90 72 .505 지구 2위 WS 우승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2021 CHW 162 93 69 .574 지구 1위 DS 탈락
2022 128 63 65 .492 지구 3위 중도 이탈
<rowcolor=#373A3C> 총계 5387 2884 2499 .536 WS 3승3패 6CS 3DS
PS 통산 72승

7. 관련 문서



[1] 이 성은 The Russian이란 뜻이다. 또한 이탈리아/스페인 혈통으로, 영어 외에 스페인어도 능숙하다고 한다. [2] 이름의 이니셜인 "TLR"로도 자주 불린다. [3] 통산 3,731승. [4] 1위인 코니 맥이 활동했던 시기가 오늘날과 무려 반세기가 훨씬 넘는 시간 차이가 있음을 고려하면, 현대 야구 기준 최다승 감독은 토니 라 루사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좋은 성적으로 계속 감독 직위를 유지할 수 있다면 통산 3,000승 돌파도 가능한 페이스였으나 2022 시즌을 안 좋은 성적으로 마감한 후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사실상 은퇴를 선언하며 이는 무산되었다. [5] 특히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는 무려 16년간 감독직에 머물며 팀을 두 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어 영구 결번이 되었다. [6] 하지만 18세의 나이로 선발출장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 3명의 유격수 중 한 명이다. 다른 2명은 로빈 욘트 알렉스 로드리게스. [7] 단장이나 에이전트들의 경우에는 테오 엡스타인이라든지 스캇 보라스 같은 여러 로스쿨 출신 인사들이 많지만 현장 경험이 그 무엇보다 중시되는 지도자들의 세계에서 변호사 출신 감독이 나왔다는 것은 매우 이색적인 일이다. [8] 이때 단장이 오랫동안 화이트삭스 전속 중계를 맡은 선수 출신의 해설가 'Hawk' 켄 헤럴슨이었다. 원래도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 구단 경영자를 맡겨본 건데, 단장을 맡는 동안 TLR을 자르고, 부단장 데이브 돔브로스키를 자르고, 유망주 바비 보니야를 타 팀으로 보내는 등 실정만 저지르다 일찌감치 잘리고 허구연마냥 다시 중계진으로 돌아갔다. [9] 지금이야 머니볼을 앞세운 깨우친 사기꾼이 돈 없는 구단을 운영하는 정석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당시 월터 하스 구단주가 있을 때에는 돈 많이 쓰기로 유명한 팀이었다. [10] 에커슬리는 그 전까지 20승 시즌 한 번에 올스타 2회, 통산 151승을 거뒀으나 급격한 구위 난조로 1988년 이전에 중간계투로 보직을 바꾼 상태였다. 1987년에 에커슬리는 중간계투로서 괜찮은 구위를 선보이긴 했다. [11] 대표적인 선수로 호이트 윌헬름, 브루스 수터, 리치 고시지 등이 있으며 중무리였던 탓인지 400세이브 내외의 적은 세이브 개수로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12] 사실 권영호는 원래 선발이었고, 이 당시의 전문 마무리라는 말을 지금과 같은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선발 투수진에 여유가 좀 더 있던 삼성 라이온즈가, 당시 삼성 선발 중에서 이닝 소화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권영호를 중무리로 굴렸다는 이야기다. 대략 포스트 시즌이 되어서 뒤가 없는 상황이 되면 선발투수가 불펜 대기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걸 정규리그 상황에서 한 것.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야구에서 이건 일상이었다. 그 당시에는 선발 로테이션이라는 개념도 불완전했던 시기다. 다만 김용수는 그 시대에 정말 드물게 전업 마무리 투수로 선수생활을 시작했으나, 말만 마무리지 86년에 선발 등판을 한 번도 안 하고 178이닝을 던지는 등 굴려지다가 90년부터 선발 투수와 마무리 투수를 번갈아 맡는다. [13] 이렇기 때문에 투수분업체계( 라루사이즘)을 내세운 이광환 감독의 LG 트윈스가 1994년 우승을 차지한 것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를 두고 혹자는 한국프로야구는 LG의 1994년 우승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주장할 정도. [14] 5일 로테이션을 도는 선발 투수들은 휴식 기간 중에 몸풀기용 불펜투구를 하는데 2000년대 이후에도 어차피 불펜에서 던질걸 실전에서 던지면 더 좋지 않냐면서 선발 중간중간에 불펜 알바를 시키는 감독들이 있었다. LG의 박종훈, SK의 이만수, 한화의 김성근 감독이 대표적인 사례였는데, 불펜알바 이후 투수들이 하나같이 컨디션이 무너지면서 팀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쳤다. [15] 이 해 월드시리즈에서는 LA 다저스에게 패했다. 에커슬리는 발을 절뚝이며 들어선 대타 커크 깁슨에게 백도어 슬라이더를 구사하다 홈런을 얻어맞고 말았다. [16] 당시 월드시리즈를 전후로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그 지진의 광경이 경기 도중 생중계로 전국에 방송되는 등의 사태가 벌어져 월드시리즈가 취소될 위기까지 있었으며, 결국 그 어느 때보다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시리즈가 치러졌다. 자이언츠는 이 지진 이후로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21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17] 이는 2011년 저스틴 벌랜더 이전까지 투수가 MVP를 수상한 마지막 사례로 기록되었다. [18] 현대 야구에서는 이에 대해서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세이버메트릭스 쪽에서 나오고 있기는 하다. 성적이 좋지 않은 타자들이 좌완 우완 안 가리고 못 치듯이(...), 잘 던지는 투수들은 그냥 좌타자 우타자 안 가리고 잘 막아낸다. 대표적으로 좌완임에도 오히려 우타자에 매우 강했던 17시즌 종료 후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한 강영식. [19] '10월의 사나이'(Mr. October) 레지 잭슨이 군림하던 1976~78년 뉴욕 양키스만이 리그 3연패를 이뤄낸바 있고 TLR의 애슬레틱스 이후에는 1998~2000 월드시리즈 3연패와 200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명승부까지 총 4년 연속 리그 제패에 성공한 뉴욕 양키스만이 이런 기록을 달성했다. [20] 이후 샌디 앨더슨 세이버메트릭스에 주목하며 돈을 아낄만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고, 빌리 빈이 이를 계승하여 역사에 남을 명단장이 되었다. [21] 또한 데이브 던컨 투수코치가 세인트루이스로 따라갔으며 이후에도 마크 맥과이어, 데니스 에커슬리가 카디널스로 옮긴다. [22] 훗날 뉴욕 양키스를 제국으로 재건시킨 그 명감독이다. 다만 카즈 시절에는 아직 초보 감독으로 전임 화이티 허조그 시절에 월드 시리즈 3회 진출, 1회 우승을 기록했던 것에 못 미치는 부진으로 '답 없는 조'(Clueless Joe)라고 비난을 받던 시절이었다. [23] 대표적인 예가 1990년대 중반 카디널스의 에이스였던 토드 스토틀마이어의 8번 타자 배치였다. 이런 실험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영웅에서 약쟁이로 전락한 어느 타자의 홈런 생산력을 늘리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섀도우 리드오프로 나선 9번 타자의 성적이 시망이라... [24] 순서대로 바비 콕스, 토니 라 루사, 짐 릴랜드, 루 피넬라, 데이비 존슨. [25] 국내로 치면 선동열- 양준혁의 관계를 생각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아지는 카디널스 프랜차이즈 최고의 레전드로 대접받고 있음에도 유독 구단 행사에는 잘 나타나지 않아왔는데 이는 TLR 감독과 마주치기 싫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26] 이들 중 많은 선수들은 자케티 단장을 따라 신시내티 레즈로 갔고, 이후 레즈와 카디널스 간의 잠재되어있던 라이벌리가 매우 격해졌다. [27] 다만 엄밀하게 따지면 자케티와 라루사는 재임기간의 대부분은 잘 지낸 편이었고, 직접 대립도 자케티와 TLR의 대결이었다. 롤렌은 자케티의 라인에 섰던 경우. 이후 성적이 떨어진 에드몬즈는 TLR에게 문자를 보내면서 데꿀멍한 전례도 있었다. [28]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이 트레이드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온 마크 젭진스키, 에드윈 잭슨 등의 선수들이 2011년 우승에 큰 기여를 하게 되고 라스머스는 캐나다에서 1할대로 삽질을 하여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하지만 라스머스가 3할과 20홈런의 포텐셜과 준수한 중견수 수비를 기대할 수 있는 하이 실링의 선수임을 생각하면 못내 아쉬운 트레이드. [29] 그리고 이 트레이드의 큰 이유중 하나는 또 하나의 라루사의 아이들 존 제이를 키우기 위한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맷 할러데이 랜스 버크만이라는 거물 외야수가 들어서 있는 외야에 한자리를 두고 기존의 거물 유망주 콜비 라스무스와 라루사가 아낀 외야수 존 제이를 함께 기용하면서 콜비 라스무스의 출장시간이 줄어든 것이 이 대립의 커다란 이유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여러모로 생각할 것이 많은 장면이다. [30] 콜비 라스무스는 타격코치인 마크 맥과이어의 코칭제안도 거부한 것이 이후에 드러났다. 마크 맥과이어는 콜비 라스무스의 어퍼 스윙에 문제가 있다고 봤는지 라인드라이브형 타자로 키우려고 했지만,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인 아버지를 개인 코치로 두고 있던 콜비 라스무스는 이를 거부한 것이다. 감독과 코치에게 모두 밉보인 콜비 라스무스가 버틸 재간이 있을리가 없다. 토론토로 트레이드 된 이후 콜비 라스무스는 소위 공갈포형 타자로 자리를 잡았고, 콜비 라스무스를 보낸 존 제이는 교타자로 세인트루이스의 주전 중견수가 된다. [31] 반면 어중간한 외야수였던 선수를 억지로 내야 유틸리티로 만들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바로 스킵 슈마커. 다만 이 경우는 나름대로 평작은 된다고 봐야할 듯하다. [32] 푸홀스에 대해서는 역대급 계약을 따낼 것이 기정사실로 다가온 푸홀스 계약의 규모와 파급효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MLB 선수노조가 푸홀스에게 너무 부담을 준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33] 정확히 말하면, 지시한 내용이 관중들의 응원소리가 워낙 커서 불펜 코치가 잘못 알아듣고 다른 투수를 웜업시켰다고 한다. [34] 물론 시즌 막판 대기록에 부담을 느꼈는지 .299 37홈런 99타점에 그치며 구홀스가 되고 말았다(...) 11년 연속 .299 29홈런 99타점 99득점 대기록 작성 구구구구 [35] MLB 역사상 WS 우승 이후 은퇴한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절친 짐 릴랜드 감독은 이런 은퇴에 대해 야구 역사상 최고의 은퇴라 칭하기도 했다. [36] 엄밀하게 말하자면 시즌 중에 은퇴 결정을 하고 단장에게 이야기했고, 그 내용을 코칭스테프에게까지 숨기다가 월드시리즈 우승이 결정된 다음에 발표했다. 하지만 앞의 은퇴 배경이 뭐였던 간에 우승을 하면 다 용서가 되는 법이라 은퇴 철회 이야기가 주위에서도 당연히 나왔을 것인데 그냥 처음 계획대로 은퇴했다. [37] 실제 나이 차이는 5살로 생각보다 많이 차이가 나지는 않는데, 이는 베이커가 20년 가까이 선수로 뛴 반면 라루사는 감독직을 일찍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38] 심장 쪽의 문제라고 한다. [39] 대부분의 투수코치들이 투수출신인데 반해 데이브 던컨은 포수 출신의 투수코치라는 점이 상당히 독특한 이력. [40] 이러한 성격이 제대로 발휘된 사건이 2009년 크리스 던컨 트레이드 사건이다. 자신의 막내아들인 크리스 던컨이 보스턴으로 트레이드되자 이에 대해 구단 내부의 음모론을 제기하며 불만을 표시했는데, 하마터면 그 해 던컨 코치는 재계약을 하지 못할뻔 했었다. [41] 레예스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된 뒤 팔꿈치와 어깨 부상으로 몰락한 반면 레예스와 비슷한 역W형(inverted-W) 투구폼으로 지적받았던 아담 웨인라이트의 경우에는 던컨 코치의 조련 하에 뛰어난 무브먼트의 투심을 장착하고 리그 최고 수준의 커브와 슬라이더까지 장착하며 사이영급 에이스로 거듭났다. 물론 2011년에 레예스처럼 토미 존 수술을 받긴 했다만. [42] 보스턴 레드삭스의 프런트로 우승하여 얻은 반지까지 더해 현 시점에서는 4개의 우승반지를 소유하고 있다. [43] 같은 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그렉 매덕스도 전성기가 시카고 컵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겹치는 이유 때문에 팀로고가 없는 모자를 썼다. [44] 베이스볼 모굴 그리고 몇몇 시뮬 게임과 당시 유행한 하드볼이나 하이히트 베이스볼과 같은 야구 게임들 사이의 어딘가라고 해야 할 애매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기에 4편까지 시리즈물로 출시되었다. 한국에도 동서게임채널을 통해 정발된 바 있다. [45] 명예의 전당 선수들이 코치로 전향하는 것이 아닌 선수-선수나 감독-감독 등의 동일한 포지션으로 복귀한 사례는 없었으며, 선수 중에서는 짐 파머가 복귀를 시도했었으나 무산되었다. [46] 사실 푸홀스는 이미 미국 시민권자가 된 지 오래이고, 여러 정황 상 본인의 스탠스 자체도 기독교 보수주의자 내지는 극우일 확률이 높으니 그리 문제될 것은 없다. 아버지 부시가 서거했을 때에도 장례식장에 둘이 같이 참여한 것을 보면 저 때도 딱히 억지로 끌려오거나 하진 않은 것 같다. [47] 이런 유형의 대표격이 김응용으로, 그 역시 사심을 두지 않기 위해 선수들과 개인적 인간관계를 지양했고 팀 역시 권위주의적으로 운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