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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고 야구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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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사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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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1년 8월 24일 토요일 만취한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남고생 선수 7명이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귀가하던 여교사를 방망이로 때려서 기절시킨 다음 금품을 뺏고 운동장으로 끌고 가 집단 성폭행한 사건.

피해자에 대해서 여러 소문이 돌았는데 양호선생이다, 교생이다, 음악교사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다. "피해자가 결혼 날짜까지 잡아놓았으나 약혼자로부터 파혼을 당하고 자살했다"는 소문도 돌았는데 당시 한 수학 교사의 말로는 피해자의 약혼자는 청주고 동문 선배였다고 하며 그 피해 현장에 동문 선배도 있었고 그 결과 동문회를 비롯한 선배들이 대폭발해 야구부를 박살냈다고 하는데 역시 진위 여부는 불명이다.

21세기였다면 강력한 처벌 여론이 전국적으로 들끓고 범인들의 신상까지 모두 털렸겠지만 당시엔 인터넷도 없었고 비수도권에서 터진 사건이라서 인근 지역을 제외하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를 노린 청주고등학교 동문들은 이 사건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야말로 처절하게 노력했지만 워낙 큰 사건인지라 무위에 그쳤다.[1]

기사

2. 사건 이후

청주고등학교 야구부는 충분한 실력이 있음에도 이상하게 전국대회 4강에도 오르지 못하거나 충북지역 예선에서 세광고에 매번 밀리는 등 여러모로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대형사고가 터졌으니 학교 측은 물론이고 동문회와 학부모회 등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결국 야구부를 후원하던 단체들이 일제히 후원을 중단하고 외부의 시선도 차가워졌으므로 청주고등학교는 야구부를 해체하였다.

청주고 야구부 역사를 다루는 기사나 글을 보면 청주고 야구부의 해체를 그저 불미스런 일과 학교 재정난 때문이라는 식으로 두루뭉실하게 넘어가고 있다. 기사에 따라서는 '불미스런 일'이라는 말조차도 삭제하고 재정난만 이유로 드는 경우도 있다.[2]

이 사건의 여파로 [age(1991-08-24)]년이 지난 지금까지 청주고는 교생실습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피해자는 가정 과목의 교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베저장소의 모 유저가 본인이 이 사건에 간접 연루된 사람[3]을 만나서 이 사건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는데 가해자들은 몇 달만에 감옥에서 나왔다고 한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당사자들은 구속 이후 벌금형을 선고받고 석방되었거나[4] 미성년자였다는 점을 감안해 소년원 처분으로 끝난 것으로 추정된다.[5] 큰 사건이었음에도 재판 결과 등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소년원 처분 쪽이 가능성이 높긴 하다. 아무래도 살인까지는 가지 않아 비교적 약한 처벌로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가해 학생들은 현재 [age(1976-02-29)]~[age(1973-03-01)]세의 성인이다. 소년원 기록이라면 아예 전과기록에 나타나지도 않고[6], 벌금도 납부 이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일부[7]를 제외하면 공직 취임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본인들이 사건 당사자라고 떠들지 않는 이상 보통 사람처럼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주고등학교 야구부가 해체된 후 남은 선수들은 세광고, 춘천고 등에서 일부를 받아 주었지만 받아 줄 학교를 찾지 못한 선수들은 결국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1992년에 청주고등학교 진학이 예정되었던 중3 야구선수들도 갑자기 갈 길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서 같은 운명을 겪어야 했다.[8] 인간 쓰레기들 때문에 엉뚱한 사람들이 무진장 피해를 본 경우다.

이후 청주고에서 야구부 출신 동문들이 주도하여 1994년 재창단 직전까지 갔으나 불과 3년 전에 일어난 흑역사를 학교 측과 다른 동문들이 잊을 리 없었다. 결국 선수 수급을 다 해 놓고도 창단하지 못했다. 이 때 모인 선수들로 창단한 것이 청주기계공고 야구부다. 결국 청주고 야구부는 사건이 터진 지 17년 만인 2008년에야 청주기계공고 야구부 선수들을 전원 전학시켜 인수하는 형식으로 겨우 재창단할 수 있었다.

참고로 청주고 야구부는 지금까지도 전국대회 우승 경력이 없는데 청주고 야구부가 사라진 동안 청주기계공고 야구부는 전국대회 우승 1회(2001년 봉황대기), 준우승 1회를 기록했다.


[1] 소위 좋지 않은 풍문이 돌면 해당 학교의 이미지와 지역사회의 이미지가 바닥을 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추려고 했다는 설도 있지만 이것도 여론의 비판을 받는 건 똑같다. [2] 사실 동문회 등의 후원이 일제히 끊겼으니 재정난도 틀린 말은 아니기는 하다. [3] 글쓴이는 당시 고2였다고 한다. 연루자의 경우 단순 방관자였는지 처벌은 받지 않은것으로 보인다. [4] 구속 후 재판에서 벌금형을 받으면 벌금 납부 즉시 석방이 가능하다. [5] 소년범은 형사재판과 소년재판을 판사, 검사가 선택할 수 있다. 소년원에 갔다면 9~10호 처분을 받았을것으로 보이는데 몇개월만에 나왔다는 것을 봤을 때 9호 처분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소년재판을 했다면 구속까지는 당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나 재판 과정이 짧아 처분 직후 바로 소년원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감옥에 간 것으로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6] 물론 검찰, 경찰의 내부망에는 남는다. [7] 경찰, 검찰, 군인,국정원 직원등 [8] 대표적인 선수가 당시 청주중 졸업반이었던 박정진이다. 원래 청주고 진학 예정이었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야구부가 해체되면서 갈 곳이 없어졌다가 세광고로 진학할 수 있었다. 2011년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도 이 사건이 짤막하게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