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23:00:42

전두환/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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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록
2.1. 제11대 대통령 취임사2.2. 제12대 대통령 취임사2.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환영사2.4. 4.13 호헌조치 특별담화문 전문

1. 개요

전두환의 인터뷰 및 발언을 모아놓은 문서. 재임 당시는 물론 퇴임 이후에도 2010년대까지 꾸준히 언론에 모습을 비췄던 지라 발언이나 인터뷰가 꽤 많은 편이다.

2. 어록

"각하, 저는 출마할 만한 돈도 지역기반도 없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군대에도 충성스러운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5.16 군사정변 직후 박정희 대통령의 국회의원 출마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하며. 이로 인해 발탁된 인물이 차지철이며, 하나회의 결성 계기가 되었다.
"각하, 프로레슬링은 쇼인데 뭐하러 보십니까?"
- 보안사령관 시절, 프로레슬링 팬이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레슬링 중계를 보다가 박정희에게. 이때 분노한 박정희에게 먼지나게 맞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김종필은 흠이 많고 경솔하며, 김영삼이는 아직 어리고[1] 능력이 부족하고, 김대중이는 사상을 도무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절대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 1980년 1월 대통령 당선 이전, 정작 여기서 언급한 인물 중 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자기 자식도 제대로 교육 못 시킨 교직원은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
- 1980년 7.30 교육개혁 조치를 통한 과외 금지령을 내리며
"지난번 광주의 시끄러운 일은 역사흐름의 불가피한 진통이므로 (전남)도민들이 80년대 새역사창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면 본인도 용기를 갖고 국민들께 충성을 다할 것이다."
- 1980.9. 전라남도 광주시 방문 당시[2][3][4]
"만약 지난 5월에 발생한 광주의 폭동사태가 또다른 2개도시로 확산되었다면 북한의 지배자인 김일성은 10만의 병력을 침투시켰을 것입니다. 사회적 불안 무질서 폭동사태가 바로 그러한 이유로 용납 안되는 이유입니다"[5][6]
- 1980.9.17 미국 언론인 로버트 노바크와의 인터뷰에서[7][8]
" 최 회장님, 이쪽 할렐루야 축구단이래요. 어때요? 나무아미타불 팀을 한 번 만들어서 같은 최씨끼리 잘 해 보시는게 어떤지..."
- 1980년 말 최종현, 최순영 두 기업인을 불러놓고 K리그 출범을 지시하며
"여러 말 필요없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 1980년 대통령 취임 직후 김재익 前 경제수석을 천거하며[9][10]
"역사적 사실과 유적은 영광스러운 것이든 굴욕적인 것이든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 국민은 영광스러운 사적에서 긍지와 자부심을 얻고, 굴욕적인 사건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역사적 유적은 어떤 것이든 소멸시켜서는 안 된다. 국민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도록 병자호란 인조대왕이 청장(淸將)에게 항복했던 장소인 삼전도를 훌륭하게 복원하라."
- 1981년 4월 삼전도비 일대 재정비를 지시하며
"범인은 들어라. 윤상이를 데리고 파출소로 와서 자수하면 최대한의 선처를 베풀겠다. 윤상이가 살면 네놈도 살 것이고 윤상이가 죽으면 네놈도 죽을 것이다!"
- 1981년 주영형 유괴 살인 사건 발생 후 방송에 출연해 범인에게 경고하면서
"우리 일본대사[11] 어디 갔어? 일본대사 축배 안 들데?"
- 1981년 1988 서울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고 중앙청에서 열린 환영만찬회 축사를 하며
"국민 여러분, 아동유괴 살인에 대해서는 앞으로 무조건 이렇게 조치할 것입니다."
- 1983년 이윤상을 살해한 범인 주영형의 사형판결 확정 후, 열흘 만에 그를 처형한 뒤 방송에 출연해 대국민선언을 하며
"사실 이런 지하시설 공사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보다 훨씬 잘합니다. 여러분들이 진작 김일성한테 땅굴 파는 기술과 경험을 배워왔더라면 훨씬 쉽게 빨리 이 공사를 마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전두환 대통령 일본국 공식 방문 당시 지하철 공사 현장을 시찰하면서
"주석님께서는 광복 후 오늘날까지 40년에 걸쳐 조국과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모든 충정을 바쳐 이 땅의 평화 정착을 위해 애쓰신 데 대해, 이념과 체제를 떠나 한민족의 동지적 차원에서 경의를 표해 마지않는다."
- 1985년 김일성에게 보낸 외교적 수사의 서신.
" 어 나 대통령인데, 아, 자고 있어? 자네는 왜 안 자나? 상황병인가? 거기는 몇 명 근무하고 있어?"
- 1987년, 육군 후방 해안대대 시찰 중 방위병[12]과의 전화통화 도중
"광주사태는 우리 근세사에 있어서 가장 불행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여기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결을 하지 못해서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1988년 대통령 퇴임 직전 기자회견에서
"고향 합천에는 집 한 칸 없는데 어디로 가란 말이냐. 나보고 들판에 나가 앉으란 말이냐?"
- 1988년 재산 반납 후 낙향을 권유하는 민정당계 인사들에게[13]
"나도 인간인데 동네북처럼 두들기지 마라. 노태우가 그런 식으로 하면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나한테 귀 싸대기 맞는다. 나를 도청하다니 내가 빨갱이냐?"
- 1988년 대통령 퇴임 후 백담사로 가기 전
"절에서 지내려면 육식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담배는 고기가 아니라 잎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까. 그렇기에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육식이 아니라 채식이지요."
- 1988년 백담사에 은둔하던 중, 승려들이 수행을 이유로 금연을 지시하자[14]
"분하고 원망스럽고 그래서 세상 사람이 보기가 싫어요... 만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 곳을 찾았는데 두 군데 있더라고요... 하나는 바닷속으로 가는 길이고 하나는 산속으로 가는 길인데 바닷속으로 가면 태풍나면 빠져 죽잖아요. (웃음) 그래서 아직까진 더 살아야 될 것 같아서 산을 택해가지고 온 곳이 여기 백담사에요."
- 1988년 백담사 은둔 중 왜 여기로 왔냐고 물어보는 방문객들의 질문에 한 대답
"아주 섭하고 원망스럽고 이래서 내가 죽기 전까지 말이야 나를 섭섭하게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꼭 한번 손을 보고 가야 되겠다! 꼭 죽기 전에 손을 봐줘야 되겠다! 이렇게 아주 독기에 독기를 품었더라니까? 그때 여러분이 나를 봤으면 눈에 아주 살기가 확~ 돋았을 거에요... (중략) 그 사람은 꼭 내가 손을 봐야 되겠어... (중략) 집사람이 냉수 한 잔 주면서 냉수 한 잔 마시고... 그니까 냉수 마시고 속 차리고 자자! 그래가지고 나는 이제 관세음보살님을 옆에 하나 모셔서 참 든든하다! 우리 집사람이 자다가 나보고 주무시냐고 그래서 안잔다 하니까 어제 그저께 당신이 말씀하신게 맞다고 하니까 그래서 내가 아니 이사람이~ 이틀 전에 관세음보살님이 왜 이리 악마가 되었어?!"
- 1988년 백담사에 은둔하던 시절 했던 강연 중
"여러분들 중에는 전직 대통령이 어떤 꼴로 지내고 있는지 구경하려고 오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밖에서는 재임기간 나쁜 짓만 한 사람이라고 저를 욕하고 있는데, 사람이 실수라도 잘한 일 하나는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소가 뒷걸음 치다가 쥐 잡는 식으로 말입니다..."
- 1988년 백담사에 은둔하던 시절 찾아온 불교 신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억울한 것도 많지만 내가 나라 재산을 다 들어먹은 것처럼 이야기들을 하기 때문에..."
-- 1988년 백담사 은둔 당시 남긴 발언
"이러한 검찰의 태도는 더이상 진상규명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저는 더 이상 검찰의 소환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 1995년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은 직후 연희동 집 앞에서 이른바 골목성명을 발표하며[15]
"억울하다. 왜 나만 갖고 그래?"
- 1995년 내란혐의로 재판 과정에서[16]
"검사, 나 처음 재판받는데 어떻게 해야 해, 좀 가르쳐 줘. 재판에서 너무 날 다그치지 마."
- 1996년 2월 25일, 첫 공판 전날 마지막 진술조사에서 수사검사에게
"자네 구치소에서는 계란 후라이 주나?"
- 1996년 내란혐의로 재판 과정에서 상봉한 노태우에게.[17]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내가 돈을 받지 않으니 기업인들이 되레 불안을 느꼈다. 기업인들은 내게 정치자금을 냄으로써 정치 안정에 기여하는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 1996년 2월 비자금 사건 첫 공판에서
" 그들은 아무 죄가 없다. 내가 다 책임지겠다."
- 1996년 1심 최후진술에서
"노태우가 일을 그르쳤어. 그렇게 쉽게 검찰에 가는 것이 아닌데. 끝까지 버텼어야지."
- 1996년 안양교도소에 구속 수감 직후
"( 현 정권이) "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구호 아래 과거 정권의 정통성을 심판하고 있으나 현실의 권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역사를 자의로 정리하고 재단할 수는 없다."
- 1996년 8월 검찰의 사형 구형 후[18]
"지금 대통령께서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하신다고 하는데 대통령 본인의 역사부터 바로잡으시길 바란다."
- 1997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교도소 생활이라는 게, 여러분들은 교도소 가지 마시오. 그것만 내가 얘기하고 싶습니다."
- 1997년 12월 20일, 특별사면을 받아 출소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19]
" 경제도 모르는 인간이 대통령을 해서 나라가 절단났다."
-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청와대에서 주관한 전직 대통령 초청 만찬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향해. 여담으로 이 자리에 합석해있던 YS가 이 말을 듣고 상당히 불쾌해 했다고 한다.
"나 자신의 인권도 탄압받고 짓밟히면서 살아왔다. 내가 인내심이 있고 성질이 좋아 이렇게 살아 있지, 다른 사람이라면 속병이 나서 제풀에 죽었을 것이다."
- 1999년 1월 자택을 방문한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에게 대통령 퇴임 후의 마음고생을 토로하며
"( 백담사로) 쫓아낸 사람 미워하는 마음에 6개월간 이를 갈았더니 이빨이 모두 못 쓰게 됐어요."
- 1999년 2월 초 일본 방문 때 재일교포 불자들과의 자리에서
"전직 대통령은 국가에 중대사가 있을 때 국가원로로서 한 마디 하면 국민이 경청할 수 있는 그런 큰 얘기를 해야지, 여야 간의 정쟁 등 현실 정치에 일일이 참견하고 발언을 해서는 안된다. 발언해야 할 일과 침묵할 때가 따로 있지 주막 강아지처럼 시도 때도 모르고, 사람 가릴 줄도 모르고 짖어대서는 안된다."
- 1999년 2월, 자신에게 세배를 온 김정길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김영삼의 김대중 정부 맹비난을 지적하며. 이에 김영삼은 전두환의 골목성명을 비꼬아 그를 골목 강아지(...)라고 맞받아쳤다.
"조국이 분단된 이래 북측은 남측에 대해 각종의 참혹한 도발행위를 저질러 온 것에 대해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남측도 그런 도발의 동기를 조성하는데 전혀 책임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 1999년 7월, 김정일에 보내려던 서한.
"어른들이 말씀하는데 말 잘 들어야지. 빨리 뒤에 타!"
- 2000년대 초, 자기 손자에게 어퍼컷을 날리며(...)
"국민이 믿을 수 있는 그런 정치를 해야지.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거짓말하고 그러면 안 되지."
- 2000년 김대중 정부에게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달빛정책이라도 내놓으면서 비판해야 한다."
- 2001년 한광옥 새천년민주당 대표의 신임인사 방문을 받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성과를 호평하며
"하나님이 하라신다는데 부처님인들 어떻게 하겠어요? 세동이도 나이 먹으니 내 말을 안 듣더이다..."
- 2002년 10월 23일 가나아트센터의 '한국 근현대미술에 나타난 불교사상'전을 관람하고 나오던 중 장세동 대통령 선거 출마에 대해 인터뷰 하며. 여담으로 장세동은 개신교 신자이다.
"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그 폭동이야. 계엄군이기 때문에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 2003년 2월 SBS와의 인터뷰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그의 대표적인 발언 중 하나다.
"마당에 숨겨놓은 돈 있으면 가 파보면 되잖아."
- 2003년 SBS 인터뷰 중 기자가 비자금 논란에 대해 묻자
"내가 가진 예금은 29만 1천원밖에 없다. 그래서 추징금을 낼 수 없다."
- 2003년 4월, 법원의 재산공개명령에 답변하며
"요 옆에 사는데 별로 교류가 없어... 교류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뭐 더 나이가 들면 모르겠는데 참 이게 권력이라는게 정치라는게 무서운 거야... 그 사람하고 나하고 가장 친한 친군데, 제일 친했었는데 그 사람이 대통령 되자마자 날 가장 많이 해쳤어..."
- 2003년 인터뷰 중 노태우 前 대통령과는 교류를 하시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 계실 때 자주 초청을 해주셔서 얘기 많이 듣고... 국정에 대해서 정확한 '보고'를 받아야 의견을 얘기할 수 있다."
- 2004년 1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직대통령 초청 만찬에서의 발언[20]
“국가가 위기인데 우리끼리 싸우자는 거냐, 그만해라."
- 2006년 10월 10일, 북한의 1차 핵실험 다음날 노무현 대통령의 주최로 열린 전직 대통령 간담회에서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맹비난하려던 김영삼에게
"최규하 대통령은 섬세하고 꼼꼼하기 때문에 모든 걸 기록으로 유지한다고 그럽니다. 비망록 형식이 되든, 회고록 형식이 되든 이 세상에 발표가 안 되겠습니까? 발표가 되면 거기에서 여러분들이 궁금한 사항을 아마 충분히 재료를 습득하리라 생각합니다. (중략) 오늘 나는 여기 문상 왔으니까, 문상 와서 시끄럽게 하는 거 아니거든."
- 2006년 10월 24일, 최규하 전 대통령의 빈소를 조문했을 때 언론과 가진 인터뷰 中
"내가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난 많이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31년생이니까 77살이거든요. 근데 그쪽에서 인질 안 내놓으면 내가 대신 인질되고 그 사람들 좀 풀어줄 수 없을까 그런 생각하고 우리 비서(경호관)보고 함 해볼까 했더니....(중략) 난 특수훈련도 받고 해서 거기서 생활하는데 나을 거 아냐. 젊은 사람들은 전부 풀어주고… 그런 생각을 했다고."
- 2007년 8월 29일, 이명박과의 자택 회동에서 샘물교회 사태에 대해 언급하며 [21]
"5공화국은 역대 정권 중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이양을 통해 민주주의가 자랄 토양을 마련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한민국호의 승객들을 구해냈다.
5공화국은 국가 위기상황에서 마주치게 된 국가적 운명이었다.
"
- 2008년 "평화적 정권이양 20년 기념" 오찬에서[22]
"참 우리도 대단히 참 좋은 나라가 됐어요. 이제 누가 권력을 잡더라도, 헌법을 개정해서 장기집권하겠다 할 사람은, 그렇게 나오는 사람은 간덩이가 큰 사람이지...
카메라(사진기자)들 보면 (기자들이) 내 사진은 꼭 비뚤어지게 (찍는다)... 젊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아직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내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 2008년 4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마치고 취재진 앞에서
"여러분들도 국민이 화합하는 방향으로 잘 보도도 하고 해서 싸움 붙이지 말고 화합하는 방향으로, 그래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 정치인들을 싸움붙이다 보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통일 못하고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될지도 모른다."
- 2009년 2월 김수환 추기경 선종 후 장례미사에서 제 5공화국 시기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김수환 추기경과의 '악연'을 묻는 기자들에게 불편한 심정을 나타내며
"전직 대통령으로서 좀 더 버티지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
-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음을 듣고
"맨날 놀고 먹으니 건강하지.... (웃음) 산으로 들로 골프도 치러 다니고..."
- 2010년 연희동 자택을 방문한 이재오 前 특임장관이 불편한데는 없으시냐고 물어보자 한 답변[23]
"우리나라는 핵을 보유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랑 친한 미국이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고 지금 이북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빨리 없애지 않으면 자살하는 거야... 소련이 위협을 느낀다고. 또 중국 스스로가 위협을 느낀다. 김정일이가 술먹고 기분 나빠가지고 쏴버리면 북경 다 날아가는 거 아니야."
- 2012년 예일대 경영대학원 학생들과의 대담에서[24]
우리나라 군인이나 공무원을 보면 같은 날 봉급을 줘. 같은 날 봉급을 주면 허세를 부리는 남자가 있어, 허세. 야. 봉급받아 마누라 다 갖다 줄거면 우린 뭐할라고 일하느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동료를) 유인해 술을 마십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돼서 (각 가정에서) 가장 가까운 은행으로 송금하면서 부인 앞으로 보낸 거야. 봉급을. (그래서) 직장 다니는 사람들한테 욕을 많이 먹었대... 대통령 나쁜 놈이라고..."
- 2012년 예일대 경영대학원 학생들과의 대담에서 은행 전산화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며
" 전라도 섬노예 내 임기시절 같았으면...(...)"
- 2014년 JTBC와의 인터뷰에서 섬노예 등 인권유린을 비판하며.
" 이 사람아, 를 알아보시겠는가."
- 2014년 병상에 누워 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문병하며
" 자기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그거 있잖아. 인간관계라는게... 살면서 싸우면서 좋은게 많이 나오는 법인데 혼자서 자기가 어떻게 하겠어... 그 시기에 맞는 지도자가 나오셔야 국민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고 하는 건데 지금 많이 어렵습니다..."
- 2014년 육성 회고 도중 현 정국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애둘러 비판하며[25]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고생을 많이 하셨다. 애 많이 쓰셨다. 연세가 많고 하면 다 가게 돼 있으니까...
근래 언론 보도를 통해 병고에 시달린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는데,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해 애도를 표한다. 기독교 신앙이 깊었던 분이니까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 믿는다."

-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김현철에게. 이때 "김영삼을 용서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광주에 내려가서 뭘 하라고요?"

- 2016년 신동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오…그래? 난 오늘 처음 듣는데."
- 2016년 신동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군 침투설에 대한 반응
"내가 가서 후배들 보니 마누라한테 쩔쩔매데? 나도 매. 근데 솔직히 말해서 마누라한테 큰소리치는 놈 치고 병신 아닌 놈 없어.
마누라한테 잘해줘야 집안의 평화도 서잖아?
난 대통령 할 때도 일 끝나고 에 들어오면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며 줄어드는 목소리로) 아이고, 다녀왔습니다...(...)"

- 2017년, 대구공업고등학교 총동문회 겸 신년 하례회 자리에서
"내가 광주에 내려갔다면 작전 지휘를 받아야 했을 현지 지휘관들만큼은 나를 만났거나 봤어야 했는데 그런 증언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2017년 ‘ 전두환 회고록’에서
" 조비오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 2017년 회고록에서[26]
"아, 이거 왜 이래?"
- 2019년 3월 11일, 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출석하며 '발포 명령을 부인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광주하고 내하고 무슨 상관 있어? 광주 학살[27]다만 사람이 왜 죽었는지와 본인의 책임여부는 일관되게 부인해왔다.]에 대해 모른다, 나는.
내가 발포명령 내릴 위치에 있지도 않았는데 군에서 명령권도 없는사람이 명령을 해?
니 군대 다녀왔나?[28]
니가 대신 (추징금) 좀 내주라."'''[29]
- 2019년 11월 강원도 홍천군의 한 골프장에서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에게[30]
"말조심해, 이놈아!"
- 2020년 11월 조비오 몬시뇰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 선고공판 출석 당일, 연희동 자택에 모인 시위대를 향해[31]
" 내가 알고 있기로는 당시에 헬기에서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헬기에서 사격했다면 많은 사람이 희생됐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아들인 헬기 사격수가 계급이 중위나 대위인데 이 사람들이 그런 무모한 짓을, 헬기 사격을 하지 않았음을 나는 믿고 있다."
- 2020년 11월 조비오 몬시뇰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벌어진 1심 선고공판에서의 최후진술.

2.1. 제11대 대통령 취임사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내외귀빈 여러분!

오늘 새 역사의 장을 여는 뜻깊은 식전에서 먼저 본인을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해 주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과 국민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동시에 이 국가적 일대 전환기에 대통령의 책무를 맡게 된 데 대하여 무거운 사명감을 느낍니다.

앞으로 전개되는 80년대는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대내외적으로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조국이 광복된 후, 한 세대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 사회의 중추세력이 바뀌었고 불의의 10·26 사태는 결과적으로 한 시대를 마무리짓는 전기가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구시대의 그릇된 기풍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깨끗하고 서로 믿는 정의로운 새 사회와 부강한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눈을 밖으로 돌려 볼 때 80년대 역시 국제정치와 세계 경제질서에 격동과 격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선 미소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세계 도처에서 분쟁과 군사적 충돌이 계속될 것이며, 특히 동북아지역에 있어서는 강대국간의 전략적 균형이 구조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열강의 움직임은 한반도 주변환경에 긴장을 고조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또한 세계경제도 가중되는 자원난과 만성적인 경기침체로 계속 진통을 겪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국제환경 속에서 우리는 북한공산집단의 침략위협에 항상 대비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마저 안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생존권을 지키고 밝은 장래를 기약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결의와 단합이 요청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난 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갖가지 내외의 도전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국가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급속한 발전 과정에서 많은 모순이 부산물로 생겨났습니다. 이른바 권력형 부정축재, 부의 편재현상, 황금만능주의, 도의의 타락, 정치적 이견의 극단화, 공직자들의 무사안일주의 등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권력을 이용하여 수십억 또는 수백억원의 재산을 긁어모은 정치인이 있고 일부 부유층이 사치를 위해 낭비에 흐르는가 하면,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팽배하였으며 정직, 성실, 근면한 사람이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대우받기는커녕 오히려 못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부조리와 부패를 그대로 놓아둔다면, 외부로부터의 침략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부의 분열과 갈등으로 나라의 존립마저 크게 위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백수의 왕인 사자도 다른 맹수의 공격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병균이나 기생충에 죽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나라는 우리 모두가 피로써 지켰고 땀흘려 이룩한 국민의 것입니다.

몇몇 특혜 받은 사람들을 위한 나라가 결코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80년대에는 이같은 구시대의 잔행을 추방하고 참다운 민주복지국가를 건설해야 겠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복지국가는

첫째, 우리 정치풍토에 맞는 민주주의를 이 땅에 토착화하고 둘째, 진정한 복지사회를 이룩하여 셋째,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 넷째, 교육혁신과 문화창달로 국민정신을 개조하려는 것입니다.

본인은 제11대 대통령으로서 이와 같은 국가지표를 달성하기 위한 그 기초작업에 착수하겠습니다. 우선 참다운 민주역량의 축적은 우리의 당면과제 중의 하나입니다.

민주주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라 8·15해방과 함께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그 동안 우리 국민이 민주정치를 해 보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해 왔으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이 약해 값비싼 시행착오만을 되풀이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제도는 어렵고 정교한 정치제도이기 때문에 조건이 성숙되지 않으면 제대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 정부는 민주주의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일을 하나씩 해 나갈 것입니다.

우선 헌법개정문제에 있어서는 정치과열의 방지와 정치풍토 쇄신을 기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우리 현실에 맞는 능률적인 헌법안을 마련할 작정입니다. 이 헌법개정안은 늦어도 10월 중에는 국민투표에 붙일 생각입니다. 그리하여 정부가 누차 밝힌 대로 내년 상반기 중 새 헌법에 의한 선거를 실시하며 신정부를 출범시킬 예정입니다. 정치활동은 새 헌법이 확정된 후, 빠른 시일내에 재개토록 하겠습니다.

계엄령은 정국이 안정도고 소요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되면 어느 때라도 해제할 방침이며 새 헌법에 의한 선거는 계엄이 해제되고 자유분위기가 보장된 상황하에서 과열이 배제되고 질서와 법이 존중되는 가운데 공정한 자유경쟁을 통해 실시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정치일정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하는 바이며, 아울러 이와 같은 협조 분위기가 원만히 성숙된다면 이미 최규하 전직 대통령께서 밝혔던 정치일정이 앞당겨져 추진될 수도 있다는 점을 밝혀 두고자 합니다.

참다운 민주주의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하여는 정치풍토부터 개선되어야 하겠습니다. 과거처럼 선동, 비리, 파장, 권모, 사술, 부정부패 등이 판을 치던 풍토속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이같은 정치작태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상당수의 구정치인들을 정리하였으며, 그 외에도 이런 폐습에 물든 정치인들에게 앞으로의 정치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 본인의 소신입니다.

따라서 정세의 개편과 정치인의 세대교체는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개편과 교체를 통해 지난날 노출되어 온 정치적 이견의 극단화는 앞으로 점차 중화되고 조정되리라고 본인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착시켜야 할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하고 정치운영상의 비능률을 제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자유경쟁 원칙하에 고도의 경제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의 고유한 민족전통과 문화배경에 합치되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권한과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책임정치와 책임행정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대통령 자신부터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일정기간 맡겨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본인은 민주주의를 이 나라에 토착화하기 위하여 헌법절차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반드시 확립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규하 전직대통령께서 지난 8월 중순 평화적 정권이양의 모범을 보여 주신 데 대하여 본인은 깊이 감명을 받았습니다.

참다운 민주주의의 실현은 정부나 정치인의 힘만으로 될 수는 없으며,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일상생활을 통해, 작게는 공중도덕을 지키는 일에서부터 크게는 국가관에 이르기까지 건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뚜렷한 윤리관을 정립하고 생활화하는 것이 민주사회 건설의 첩경이라고 믿습니다.

더욱이 전쟁의 참화를 경험하지 못한 전후세대에게 공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확고한 가치관과 투철한 안보의식을 심어 주는 것은 긴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 복지사회의 기반조성을 위해서는 자유경제체제에 바탕을 두고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해 나가는 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경제발전은 사회복지의 기본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앞으로 기업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자유롭고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최대한 보장하는 동시에 지금까지의 기업에 대한 과잉보호를 지양하고 지원시책을 재검토 정비하여 기업체질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즉 경제운용방식을 민간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며 기업은 대소를 막론하고 경영 결과에 대해 스스로가 책임을 지는 풍토를 조성할 것입니다.

한편 국제경제면에서는 개방체제를 유지하면서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과감히 도입하여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외국인의 국내 경제활동을 적극 유치, 장려하고 그들의 권익을 보장하겠습니다. 정부가 추구하는 사회복지정책은 고용기회의 확대에 중점을 두어 모든 국민이 각자 자기의 능력에 따라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으며, 풍요롭고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공공투자를 확대해 나가는 데 있습니다.

정부는 근로자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고 임금격차의 완화와 근로자의 재산형성을 촉진하며, 기업과 근로자가 공존공영할 수 있도록 노사협력체제를 계속 확립해 나가겠습니다. 농가소득의 증대와 농촌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새마을운동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한편, 도시와 공장에도 새마을운동을 지속적으로 확산, 정착시켜 나가겠습니다.

중화학공업의 국제경쟁력 제고로 수출진흥에 주력하고 금융질서의 쇄신, 공정거래질서의 확립 등을 추진할 것입니다.

당면시책으로는 물가를 안정시키고 생활필수품을 원활하게 공급하는 등 민생안정에 역점을 두겠습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발전이야말로 복지국가 건설의 밑거름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추구해야 할 튼튼한 자주국방의 초석이 된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막강한 군사력 유지는 아직도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외면하고 있는 북한공산 집단의 무력적화야욕을 분쇄하는데 있어 필요불가결한 전제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본인은 자주국방태세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서 군의 정예화, 그리고 사기앙양을 촉진하고 방위산업의 착실한 발전을 계속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자주국방없이 민주복지사회를 구현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사상누각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국민간의 불신도 문제이지만 국민이 정부를 불신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본인은 그 일차적인 책임이 정부와 공직자에게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나 자신과 내 주변의 부정과 부패를 스스로 용납치 않을 것이며, 모든 공직자의 부정부패도 계속 척결해 나감으로써 국민의 불신소지를 가능한 한 간소히 없애는 데 주력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정직한 정부로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본인은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개혁 주도세력이 처음에는 대단한 열의와 정의감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이 부패하고 사명감을 상실하기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새 시대에는 결단코 이와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새 시대를 여는 데 있어서는 국민 개개인의 의식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가치관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새 가치관이라고 결코 고답적인 개념이나 거창한 내용이 아닙니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약속을 어기고, 남을 헐뜯고, 거짓말을 하고, 불로소득을 꾀하고, 사치와 낭비를 일삼고, 돈으로 매사를 해결하려 하고, 압력으로 이권을 청탁하는 등의 폐습을 우리 일상생활 주변에서부터 하나씩 고쳐 가려는 마음가짐, 이것이 바로 새 가치관인 것입니다.

정부는 이러한 새 가치관이 우리 국민의식 속에 뿌리를 내려 정의로운 사회가 구현될 수 있도록 새마을운동과 연계시켜 범국민적 사회정화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사회정화운동이 다만 부정적 요소를 물리적 힘으로 제거하는 데에 그쳤으나, 앞으로는 긍정적 요소를 고취하는 방향으로 계속 전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운동이 성공하려면 가정과 학교교육을 통해 어릴 때부터 정직, 질서, 창조의 정신을 생활화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기풍은 단시일 내에 정착될 수 없고 몇 세대가 걸릴 것으로 보지만 우선 그 기틀을 마련하자는 것이 본인의 확고한 신념입니다.

이상과 같은 민주, 복지, 정의사회는 획기적인 교육혁신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단순히 지식의 주입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으나 앞으로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향상, 인격의 함양, 확고한 안보의식의 정립, 창의력 개발에 역점을 둔 전인교육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선 의무교육의 내실화를 기하고, 과외의 폐풍을 근절하여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켜야 하겠습니다.

특히 대학은 앞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할 인재를 길러내는 배움의 터전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대학에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겠습니다. 그러나 대학인들이 현실정치에 뛰어들거나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로 나올 때 이것은 안보적 차원에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혀 두고자 합니다.

문화발전을 위해서는 우리의 전통적 문화유산을 보존, 계승, 발전시키는 데 힘쓰는 한편, 문화예술인들의 자주적이며 창의적인 활동을 적극 뒷받침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민주복지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의지는 궁극적으로 조국의 평화통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 민족적 지상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남북대화를 끈기있게 추진할 것이며, 쉬운 문제부터 점진적으로 풀어 나가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남북한문제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만, 한반도에서 전쟁은 방지되어야 하고 민족과 국토의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인 방법에 의해 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인의 소신입니다.

한편, 민주복지국가 건설은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지위를 더욱 높이는 길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한·미상호방위협력체제를 더욱 공고히 다지는 동시에, 교육국가로서 우리나라의 비중이 국제사회에서 증대되는 추세에 맞추어 특히 우리의 주요 우방인 미국·일본을 비롯하여 모든 우방들과 긴밀한 우호협력 관계를 계속 유지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들에 대하여도 상호주의원칙에 입각하여 문호개방정책을 유지할 것이며 비동맹국과의 실질적인 협력관계도 계속 증진해 나가겠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본인은 오늘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지금 밝힌 국정운영의 포부와 계획을 성실히 실천할 것을 국민 여러분에게 다짐합니다.

새 역사·새 시대를 창조하려는 우리의 국민적 의지와 민족사의 진운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결단과 참여와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국가 속에 내가 있고 나와 함께 국가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겸허한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우리 국민 모두가 다함께 손을 마주잡고 새로운 광명의 시대를 향하여 힘찬 전진을 계속합시다.

이 국민적 결의야말로 바로 오늘과 내일의 새 민족사의 장을 여는 원동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국내외에 계시는 국민 여러분의 가정마다 고루 행복과 번영, 그리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1980년 9월 1일 대한민국 대통령 전두환

2.2. 제12대 대통령 취임사

친애하는 국내외 동포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 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

우리는 오늘 시련으로 얼룩졌던 구시대를 청산하고 창조와 개혁과 발전의 기치 아래 새 시대를 꽃피우는 제 5공화국의 영광스러운 관문 앞에 모였습니다.

본인은 민족의 역사에서 참으로 중대하고 획기적인 이 전환의 시기에 본인에게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소임을 맡겨 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와 경의를 드리는 바입니다.

이번 제12대 대통령선거를 통하여 국민 여러분이 본인에게 압도적인 성원을 보내주신 것은 본인에게 있어 무한한 영광일 뿐 아니라 본인의 책임을 더욱 무겁게 하는 채찍질이 되고 있습니다.

본인은 나에게 맡겨진 역사적 대임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나라와 겨레에 바침으로써 여러분들의 기대에 보답할 것을 5천만 동포에게 엄숙하게 서약하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조국은 현재를 사는 우리 세대의 것만이 아니며, 우리의 조상들이 피땀흘려 우리에게 물려 준 최고의 가치일 뿐 아니라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영원히 살아갈 역사의 보금자리입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우리 민족은 이 땅 위에 반만년 면면히 역사를 영위하면서 외침 등 숱한 도전과 시련을 극복하고 독창적 문화를 꽃피워 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시아대륙의 숱한 강대한 민족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였으며, 수많은 민족이 이미 그 역사와 문화를 소멸하고 말았으나 우리 민족은 빛나는 문화전통과 동질성을 지키고 발전시켜 찬란한 동아시아 문화의 창조에 크게 공헌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얼마나 약소의 비애와 망국의 한을 간직하고 있는가를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본인은 나라를 잃은 시대에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본인은 나와 같은 세대의 우리 국민들이 겪었던 것처럼 혹독한 식민통치의 경험 속에 성장하였습니다. 우리의 말과 글을 빼앗기고 우리의 이름마저 빼앗겼습니다. 그것을 순전히 우리의 숙명으로만 돌려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지난날의 치욕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조국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이 살아 있어야 하며, 국민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치욕의 역사로 우리 자신을 채찍질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 다시 조국이 침몰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체의 만심과 안일에서 깨어나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본인은 지난번 국정지표로 민주주의의 토착화, 복지사회의 건설, 정의사회의 구현, 교육혁신과 문화창달을 제시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4대 지표가 앞으로 본인의 재임기간동안에 기초를 더욱 굳게 다져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본인은 있는 힘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은 이 자리에서 한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말해두고자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지표가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굳건한 국민안보가 토대로 되어 있지 않는 한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오늘의 주변정세와 80년대의 예측하기 어려운 국제기류, 그리고 지정학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우리는 정신을 더욱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국가안보는 다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생존의 필수요건이며 따라서 우리는 국가안보 최우선의 태세를 우리의 체질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일본의 식민통치 36년에서 광복된 지 또 다시 36년만에 우리는 오늘 제 5 공화국을 출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환기를 사는 오늘 우리의 결의를 한층 더 새롭게 해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통치하의 고난과 역경이 36년 만에 종지부가 찍혔듯이 광복 이후 독립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 겪었던 방황과 혼돈, 그리고 시행착오도 36년 만인 이 시점에서 종지부를 찍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근대사는 한마디로 자주민주국가를 이룩하기 위한 소망으로 일관되어 왔습니다. 우리 민족과 국토가 아직도 분단되어 있고, 부강하고 온 국민이 골고루 잘사는 복지산업국가를 아직도 이룩하지 못한 단계에서 우리 민족사의 이 과업은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80년대에 또 한번의 일대 도약을 통하여 풍요한 복지국가의 굳건한 바탕을 이룩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80년대는 모든 분야에서 안정과 화합의 바탕 위에 일대 국민적 전진을 이룩하는 연대이며, 자손대대 물려줄 풍요와 복지의 바탕을 위해 우리 모두가 창조하는 연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여는 새 시대는 우리의 역사가 소망하는 부강하고 복된 나라를 건설하는 위대한 창조의 시대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그토록 갈구하여 마지않았던 새 시대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제 5 공화국 헌법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오늘 취임식을 가짐으로써 새 공화국이 명실상부하게 출범하였습니다. 체제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구헌법은 이제 우리의 헌정에서 자취를 완전히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 헌법이 실시되고 새 정부가 출범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새 시대라고 자만할 수는 없습니다. 새 헌법 새 정부와 함께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어야만 우리는 진정한 새 시대를 꽃피웠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펼쳐야 할 새로운 상황은 구헌법 구정부 등의 구시대적 논리,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일체의 진통과 애증으로부터 결별할 것을 우리들에게 엄숙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터전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정열적으로 추구해 나가는 창조의 의지, 비생산적 비능률적 독소를 제거하고 국가사회에 새로운 활력소를 주입하려는 개혁의 의지, 훌륭한 전통과 민족적 정통성을 살찌워가는 발전의 의지를 함께 모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역사의 전환기를 맞는 우리의 공고한 시대정신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욱한 세월에 걸친 시련과 고뇌의 시대를 넘어서서 이제야말로 [성장과 성숙]을 통해 자기완성의 시대를 형성하여야 할 80년대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80년대는 보다 성숙한 독립국으로서의 산업민주국가의 완성이란 벅찬 임무를 우리에게 안겨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 5 공화국의 출범을 통해 성장과 성숙의 시대에 들어서는 찰나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성스러운 새시대의 서장에서 대통령이란 막중한 책무를 맡게 된 본인은 국가의 성장과 성숙이 본인에게 부과된 역사적 과제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지난 36년 간에 있었던 혼란과 전쟁과 갈등이 대단히 어렵고 괴로운 시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 모두는 스스로 겪은 체험과 역사적 교훈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것을 줄기차게 갈망하였습니다.

그것은 첫째, 전쟁의 위협으로부터의 해방이요 둘째,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셋째는 정치적 탄압과 권력남용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본인은 주어진 임기동안에 국민 모두가 오랫동안 갈구하고 희망하고 요청해온 이 세가지의 해방을 쟁취하기 위하여 본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과 애정을 다 바쳐 일할 것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혀 두는 바입니다.

첫째, 전쟁으로부터의 해방은 전쟁 그 자체를 방지해야 하는 것과 함께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민족전체의 삶의 조건을 정상화하며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로 가는 길을 뜻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안착과 평화통일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그동안 수차 강조한 바 있으므로 오늘은 생활의 질문제에 관해 언급을 해볼까 합니다.

북한주민은 지난 36년간 내부의 종적인 비교만 할 수 있었을 뿐 외부세계와의 횡적인 비교는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최소한의 자유도 맛볼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자유를 갈구조차도 못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능성이 완전히 박탈된 비극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즉 정치·경제·사회·문화·인도적인 측면에서 북한주민의 생활의 질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참담한 것으로써 동족인 우리들로서는 이에 대한 무한한 동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북한당국은 그들의 인간성 회복과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해 반성해야 함은 물론 세계 인류적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인 것입니다. 본인은 이 기회를 빌어 북한주민의 생활의 기본조건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하여 북한이 절대적인 폐쇄성을 지양하고, 밖으로 꽉 닫힌 북한사회의 창문을 활짝 열어 놓을 것을 민족의 이름으로 강력히 촉구하는 바입니다.

본인의 1·12 제의도 통일에 접근하기 위한 것이었음은 물론 북한주민의 인간성과 생활의 질이 향상되도록 북한의 개방을 촉구하고자 그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전쟁의 두려움에서 해방이 되어야만 민족전체의 생활의 질도 개선 향상될 수 있다고 볼 때 남북상호간의 신뢰조성은 매우 긴요한 문제이며 따라서 본인은 이 자리에 1·12제의 수락을 다시 한번 북한당국에 대하여 촉구하는 바입니다.

북한측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나는 그것을 정식거부로는 보지 않으며, 어느 땐가는 우리의 제의를 수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둘째,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은 우리 민족 대대의 숙원이자 염원입니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빈곤을 숙명처럼 체험하여 왔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년간 국민의 피땀어린 노고로 큰 성과를 쌓아올려 우리는 개발도상국 중에서 성장과 분배면의 모범국가가 되다시피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국민들 속에는 절대빈곤의 어려움을 탈피하지 못한 계층이 적지 않게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사회에서도 모든 국민이 똑같게 잘 살 수는 없으며 또 그렇게 하는 것만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적어도 이 나라에서 문명인으로서의 기본생활을 걱정하는 국민은 없어야 하며, 물질적 빈곤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빈곤의 그늘을 없애고 국민생활의 질을 드높이는 기반을 쌓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근면하고 협동해야 하겠습니다.

기업인은 기업인의 윤리를 지켜야 하고, 근로자와 농민, 그리고 소비자도 성장과 성숙의 80년대가 요구하는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이 사회의 그늘에 드리워 있는 절대빈곤을 퇴치하고 국민전체의 기본수요를 충족시키는데 최우선 순위를 둘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의 이해와 호응이 없는 정책은 공론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셋째, 정치적 탄압과 권력남용이 이 땅에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본인은 법으로 국정을 집행하고 법으로 정부를 이끌어 나갈 것을 분명하게 밝혀 두는 바입니다.

헌법에 충실하고 모든 법령을 지키는 것은 바로 정치적인 탄압과 권력남용으로부터 해방을 촉진하는 첩경이 될 것입니다.

특정인을 위한 법의 개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있어서는 아니 되며, 특정이익단체를 위한 권력남용도 철저히 배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정부의 모범과 더불어 또 한편으로 국민 모두가 법을 지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해 두고자 합니다.

법을 어기고도 정부의 관용만을 바라는 것은 오히려 권력을 법 위에 올려놓는 위험스러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개인의 주관에 맞지 않는다고 법을 어긴다거나, 또 법을 어기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경우 진정한 법치국가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입니다.

법은 어디까지나 지켜져야 하며 정부 고위관리나 정치인이라고 해서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잘못된 법이 있다면 토론과 건설적인 대화를 통하여 시정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이와 같은 3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확고한 우리의 것으로 함으로써 비로소 근대적인 산업민주국가의 기틀을 굳건히 하고 그 위에서 국민의 복지를 기약할 수 있는 유산을 후손에게 넘겨 줄 수 있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성장과 성숙은 대통령 한 사람의 힘이나 한 정부의 노력만으로 성취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은 항상 오고 가는 것이지만 겨레는 영원한 것이며 정부는 바뀌어도 국가는 영속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특정인이나 소수의 지도층만으로 국사를 창조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위대한 역사는 위대한 국민들이 총참여하는 속에서만 올바로 창조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염원인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달성하기 위한 기초이기도 합니다.

한 개인이나 소수집단만으로 국가 민족을 책임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지속적인 창조와 개혁, 그리고 발전을 기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해야 할 것입니다.

본인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성실·정직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나라의 지속적인 전진을 바라는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우리의 숙원인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꼭 확립하고야 말 것임을 분명하게 밝혀 두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생명력이 넘치는 개방사회이며,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와 능력을 존중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최대로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의견을 대화로 조정하고 종합함으로써 그것을 민족의 저력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갈등과 파쟁보다는 화해와 토론을 통해 총의를 창출해 내야 하며 그것은 새 역사의 조류를 굵게 하고 힘차게 하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총의의 형성이 아니라 그것을 방해하려 하거나 그 외곽에서 방관하려는 자세는 민족사의 전진을 위해서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이제 새 역사의 첫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표에 와 닿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지금 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국가적 난관을 극복한 단계이며 모든 것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많고 목표는 원대합니다. 7년이란 본인의 임기동안에 그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놓겠다고 나는 장담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나는 상기하고자 합니다. 시작을 튼튼하게 해 놓으면 성공은 시간문제인 것입니다. 그러한 각오와 결의로 새 시대의 초석을 확실하게 다지는 데 나의 온 힘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중대한 시기에 국정의 최고책임을 맡으면서 스스로의 제한된 능력에 비추어 두려움과 불안감이 앞서는 것이 본인의 솔직한 심경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우리 국민이 보여 준 성숙도와 협동심, 그리고 보다 나은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보고 큰 힘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의 성원은 나의 능력을 부각시켜 주고 나의 결의를 더욱 고무시켜 주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이 뜻깊은 성단에 서서 본인은 굳은 다짐을 새롭게 하고자 합니다. 본인은 나에게 절대적인 기대를 보내 준 국민 여러분의 명령에 충실할 것이며 여러분과 본인의 삶의 터전인 이 나라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본인은 본인이 공약한 새 시대를 기필코 열어놓을 것이며, 본인이 발의하고 공시한 헌법을 준수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직을 생활의 신조로 삼아온 하나의 자연인으로서 자신의 신조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본인은 이와 같은 다짐이 실현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도 전폭적인 협조를 다짐해 주실 것을 기대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될 때 1981년 3월 3일 오늘의 이 자리는 위대한 조국 건설을 다짐하는 날로서 오래오래 기록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981년 3월 3일 대한민국 대통령 전두환

2.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환영사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와 내외귀빈 여러분.

본인은 오늘 세계 가톨릭교회의 최고 영도자이시며 평화의 사도이신 교황 성하의 역사적인 한국 방문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온 국민과 더불어 환영하는 바입니다.

특히 본인은 바티칸 시국 원수로서 최초가 되는 이번 성하의 방한이 우리나라의 가톨릭 선교 2백주년에 즈음하여 이루어진 것을 더욱 뜻깊게 생각합니다.

성하의 방한은 양국간에 현존하는 우호관계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가톨릭 신도는 물론 신앙의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 우리 국민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의 축복을 받게 되는 소중한 기회가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하께서는 이 지구상에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헌신해 오셨으며 인류의 상잔과 빈곤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 주셨습니다.

성하께서는 또한 고난받는 민족들의 해방과 평화롭고 정의로운 인간사회의 구현을 몸소 가르쳐 오셨습니다.

인류의 평화는 곧 사랑과 관용을 바탕으로 한 화합 위에 이룩되어야 한다는 성하의 신념에 대하여 본인은 깊은 공감을 표시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이 땅에 이룩하기를 염원하는 것은 바로 그 평화와 정의이며 그러기 위하여 우리 국민이 이 땅에서 실천하고 있는 대의는 바로 반폭력과 화합의 행동지표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교황 성하.

우리 국민들은 역사적으로 자유와 평화를 파괴하는 수많은 전쟁참화의 피해자였으며 그리고 아직도 그러한 전쟁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각박한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 국민들은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뼛속 깊이 터득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자유와 평화가 이 땅에는 물론 온 세계에 충만하게 될 날을 위하여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한국민의 노력은, 새로운 시대와 정의로운 역사는 역경을 극복하고 구현된다는 그리스도교의 증언대로 반드시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고야 말 것입니다.

교황 성하.

일찍이 1930년 폴란드의 성인 막시밀리아노 콜베는 한국에 천주교 성당이 세 곳밖에 없음을 한탄했다고 합니다만, 그 천주교회는 오늘날 본당만도 660여개에 이르고 있으며 103위의 성인까지 모시게 되었습니다.

민족적 수난을 뜨거운 신앙으로 이겨온 전통과 더불어 한국의 천주교는 크게 성장하고 있으며 인간의 영혼을 구제하는 큰 사명으로 평화와 정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교황 성하의 방한은 이러한 천주교의 정신을 우리에게 더욱 굳게 깨우치는 귀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본인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교황 성하.

우리는 지난해 비무장 민간항공기의 피격과 랭군 암살폭발사건으로 무고한 형제자매들이 폭력주의에 희생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또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남북으로 흩어진 1천만 이산가족들은 서로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불의와 폭력의 위해와, 그로 인한 고통이 크면 클수록 대립이 아닌 대화를 추구하고, 복수가 아닌 화해를 모색하며 전쟁이 아닌 평화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 폭력과 증오를 주고받는 그 누구도 없고, 그 누구도 독선과 불신을 비호하지 않으며, 모두의 행복과 권리를 함께 신장시키는 화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을 더욱 굳게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반목과 이반의 미신을 물리치고 모든 분야가 제 본분을 다하는 가운데 사랑과 화해의 정신으로 서로 만나고 도우며 통일할 수 있도록 성하께서 기도하고 권면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그리고 전체주의 아래서 믿음의 자유도 없고 마음속의 신앙을 표현할 수도 없는 북한에 있는 우리 동포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황 성하.

원로에 오신 성하를 우리의 손님으로 맞게 됨을 다시 한번 기쁘게 생각하며, 성하의 이번 방한이 보람있고 성공적인 것이 되시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또한 성하의 이번 방한이 한국과 교황청간의 우호증진을 다짐하고 한반도 뿐만 아니라 동북아와 온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사랑과 평화의 빛을 가득하게 하는 축복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하는 바입니다.

본인과 우리 국민 모두는 이번 성하의 방한을 영원히 마음속에 즐겁게 간직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984년 5월 3일

대한민국 대통령 전두환

2.4. 4.13 호헌조치 특별담화문 전문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본인은 오늘 국민 여러분께서 그동안 큰 관심을 가져오신 개헌 문제에 관해서 본인이 깊이 생각해온 바를 직접 말씀드리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고자 합니다.

흔히 세월이 빠르다고 합니다만 이제 대통령의 임기를 겨우 10개월 정도 남겨놓고 있는 지금 본인은 새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 땀흘려 이룩한 성취의 보람을 키워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에 마무리 지어야 할 국가적 과제가 너무도 크고 지금 우리가 내릴 선택의 결과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현시기의 중대성과 당면한 정치일정의 촉박함을 생각할때 어떻게든 헌법문제를 매듭짓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솔직한 바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행히 지금 우리는 지난 7년간의 꾸준한 노력이 헛되지 않아 각 분야에서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이룩하고 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지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우리 정치의 모습은 국민의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한 채 오히려 실망과 좌절감만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국민이 그토록 바라던 합의개헌은 한치의 진전도 이룩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 문제를 놓고 정파간에 심각한 반목과 대립만을 거듭하고 있음은 심히 답답하고 유감스런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합의개헌의 실마리가 풀리기는 커녕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혼란이 조성되어 끝내는 평화적 정부이양마저 과연 제대로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국민의 공통된 우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인은 취임이래 지금까지 어떻게 하든지 이 땅에 민주주의의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겠다는 신념 아래 평화적인 정부이양을 기필코 실현시키기 위해 있는 노력을 다 기울여 왔습니다.

평화적 정부이양의 과제는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건국이념으로 받아들인 이후 40년 헌정사에서 한번도 이루어보지 못했으며, 지금까지 그 어떤 집권자나 정당, 그리고 그 어느 정치인도 풀지 못했던 숙제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민주발전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평화적 정부이양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진정한 민주발전을 성취하는데 있어 그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과제인 것입니다.

모두 잘 아시다시피 현행헌법은 1인 장기집권의 악순환을 단절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단임이라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지금까지의 그 어떤 헌법보다도 완벽하게 평화적 정권교체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국민적 여망이 얼마나 간절했던 것인가는 7년 전 개헌국민투표에서 국민 여러분이 보내준 압도적인 지지가 잘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본인은 온 국민의 정치적 결단으로 탄생된 이 헌법을 끝까지 준수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다하는 것이며 그 내용의 핵심인 단임을 한번 실현해보지도 않은 채 이를 고치는 것을 능사로 알아서는 안 된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1년 전인 작년 4월 30일 3당대표들과 만나 여야가 좋은 헌법안을 합의해서 건의해오면 본인의 재임중에라도 헌법을 고치는 데 반대하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합의개헌의 길을 열어 놓은 바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헌법개정 문제를 놓고 여야가 심각하게 대립한 끝에 길거리에서 밀고 당기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상황에서 국가적 혼란과 갈등을 막고 국민적 대화합을 바탕으로 성숙된 민주정치의 기틀을 마련해보자는 본인의 간절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국회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진지한 합의노력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인내와 성의를 다해 왔습니다.

야당이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요구했을 때 이에 응해준 것도 그렇습니다만, 특히 그 구성을 여야동수로 한 것은 다수당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운 큰 양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당이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종전의 당론을 변경하면서까지 의원내각제 개헌안을 마련해서 내놓은 것도 진정한 타협의 자세를 실천해보인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밖에도 여러차례의 여야 대표회담을 통해 헌법특위의 정상화를 위한 온갖 노력을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기회 있을 때마다 야당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여 진지한 협상을 모색해 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대통령직선제라는 당론만을 고집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차례의 양보도 한일이 없습니다. 도대체 소수당이 일체의 타협을 배제하고 어떻게 헌법문제를 해결하며, 또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있는 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헌법만 고치면 하루아침에 민주주의가 다 될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이만저만한 환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 여덟차례나 헌법을 고친 우리의 정치사가 여실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만, 본인의 단임 의지가확고한 이상, 사실 헌법과 관련하여 본인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관계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물러나는 대통령으로서의 헌법은 누구보다도 더 허심탄회하고 공정하게 국가와 민족의 먼 장래를 내다보면서 헌법문제를 볼 수 있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제도나 장단점은 있게 마련입니다만 대통령 직선제는 과거에 우리가 수차례 경험한 바 있어 비교적 익숙한 제도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경험은 결코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고 바람직한 것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국민이 원한다는 명분아래 집권연장을 위한 개헌이 여러차례 이루어져 1인 장기집권의 폐해가 누적되었고 결국에는 평화적인 정부교체에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전국적인 과열선거로 테러와 폭력이 난무하고, 감당할 수 없는 선심공세와 막대한 자금살포로 경제파탄의 어려움을 초래하였으며, 더구나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나라와 국민을 분열시킨 그 폐단을 우리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날 여섯차례의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선거가 모두 여당의 승리로 끝나 이 제도는 여당에 유리한 것이라고 평가되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선거가 끝난 후에도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아 그 후유증이 심각하였으며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극한투쟁만 되돌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과오와 위험 때문에 대통령 직선제는 우리의 불행한 헌정사와 더불어 역사 속에 매몰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나라의 급속한 발전과 국민의식의 성숙한 변화가 이루어진 오늘에 와서 이미 지나가 버린 제도를 다시 들고 나오는 것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이 지구상에서 170여개국 가운데 약 40개국이 넘는 개발도상국들이 대통령직선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평화적 정부교체가 제대로 실천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따라서 이왕 헌법을 고치려면 보다 나은 헌법으로 고치자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나라마다 헌법이나 제도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그 나라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전지(傳紙), 그리고 정치적 상황과 당면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참작하여 현행제도에 대한 타협안으로 민정당이 의원내각제를 내놓은 것으로 본인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오늘날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여야가 극한대립이 아닌 국정운영의 동반자로서 공존할 수 있으며, 자율과 개방 속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하고 있는 시대적 추세에 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제도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원내각제는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본산인 유럽을 비롯해서 선진민주주의 국가의 대부분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되고 있으며 과거 우리나라의 정통 야당들이 내각책임제 개헌을 소리높여 주장해 왔던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다른나라들의 정치사에서도 집권여당이 스스로 권력구조를 대통령제에서 내각책임제로 바꾸자고 한 실례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여당이 스스로 내각책임제를 내놓고 있는데도 야당은 이를 한사코 거부해 왔을 뿐만 아니라 최근 극심한 내부의 혼란과 갈등 상태를 보임으로써 합의개헌의 전망을 극히 어둡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의 내부문제조차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은 파국으로 몰아간 그러한 상대와 더불어 합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 회의를 갖는 국민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오늘의 혼미한 야당의 모읍에 비추어 볼 때 이대로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정치일정의 원만한 진행에 큰 차질이 올 것이라는 사실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여는 평화적 정부이양을 제대로 성사시킬 수 있을지 다함께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여당이 다수표가 있다고 해서 단독으로 개헌안을 강행 통과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개헌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일방적으로 밀어 붙여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무리가 따르는 일방적인 방식이나 변칙적 방법으로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나라와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며 과거 우리 정치사의 경험과 우리 국민의 성숙한 정치의식에 비추어서도 용납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모두의 염원을 담은 헌법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터에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을 그러한 방식을 무리하게 취할 긴박한 이유도 발견하기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민정당이 그동안 합의개헌을 위해 끈질긴 노력을 다해왔으나 이제 합의개헌의 전망은 절망적이고 더 이상 기다릴 시간적 여유도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특히 단임 약속을 이행하고자 하는 본인의 입장에서 볼 때 실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를 이양하는 정치일정을 순조롭게 추진해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일정의 준거가 될 헌법이 우선 확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인은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합의개헌의 성사를 염원하면서 그 결과를 기다려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까지 그 어떤 결과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약속을 꼭 이행하고자 하는 본인의 처지에서 시일은 자꾸 흘러만 가는데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지 않으니 그 안타까움이 어느 정도일까 하는 것은 여러분께서도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가 남겨두고 있는 기간은 정부를 이양하기 위한 실질적인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정치 일정을 추진하는 데에도 결코 넉넉한 시간이 아닙니다.

헌법을 개정하는 데에는 국회에서의 토의 및 결의와 국민투표에만도 수개월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설령 개정이 된다 하더라도 여야의 이해가 크게 엇갈리는 선거법 개정을 비롯하여 수많은 부수 법안을 정비하고 그에 따라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또다시 수개월의 시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새정부의 출범과 관계되는 문제를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처리하는 것은 그 자체가 시비와 혼란의 원인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도 실로 무책임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본인은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임기와 현재의 국가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중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이제 본인은 임기 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내년 2월 25일 본인의 임기 만료와 더불어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할 것을 천명하는 바입니다.

이와 함께 본인은 평화적인 정부 이양과 서울 올림픽이라는 양대 국가 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하는 소모적인 개헌 논의를 지양할 것을 선언합니다.

본인의 이 결단은 오늘의 난국을 타개하고 국가 목표를 수행하는 데 현실적으로 최선의 길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전폭적인 호응과 신뢰를 보내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자 합니다.

두 가지의 국가 대사를 완성한 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개헌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한 좋은 방안이 발견될 수 있을 것으로 본인은 확신하는 바입니다.

본인은 오늘 여러분에게 밝힌 결단에 따라 앞으로 평화적 정부이양을 위한 정치일정을 신속하게 진행시켜 나가야만 합니다.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금년안에 공정한 선거관리를 통해 자유경선의 분위기가 보장되는 가운데 차질없이 실시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민주정의당의 후임 대통령 후보는 조속한 시일 내에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물 중에서 당헌절차와 민주방식에 따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도록 할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평화적 정부이양이란 단순히 집권자가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것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납니다.

여야 정치인은 물론 모든 국민의 적극적인 동참속에서 그야말로 평화스럽고 축복이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정권담당임무가 교체되어야 비로소 평화적 정부이양의 참뜻이 실현되는 것임을 우리는 확실하게 꺠달아야 하겠습니다.

이 지구상의 많은 나라 가운데 선거에 따라 평화적으로 정부를 교체하면서 제대로 민주주의를 하고있는 나라가 이십여개국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본인이 헌법을 지키고 물러나는 그 자체로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본인이 거듭 강조하고 싶은것은 이 결단의 참뜻은 어떻게 하든지 파국을 막고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헌정절차에 따라 명예로운 퇴임을 매듭짓고자 하는 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질없는 개헌타령에만 골몰하여 불법과 폭력으로 사회혼란을 조성하고 국민생활을 불안하게 하는일이 있다면 본인은 국민생활의 안전과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해서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는 모든 권한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할 것임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그동안 누차 강조해왔습니다만 우리는 이 지금 이 순간 민주와 선진과 통일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창조하느냐, 아니면 후진과 빈곤의 악순환으로 되돌아갈 것이냐를 판가름하는 막바지 갈림길에 서있습니다.

이처럼 한 민족의 향방을 가름할 중요한 시기를 더이상 낭비적인 갈등과 대립 그리고 반목으로 허송해서는 결코 안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내부분열을 심화시키고 국력을 소모시켜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존권마저 위협하게 될 우려가 크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한 걱정은 최근의 국제정세가 주변 강대국간의 이해관계 변화로 착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함으로써 더 한층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지난 40년간 우리의 안보를 위협해 온 북한공산집단은 정권교체기의 진통을 그들의 적화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결정적 시기로 오판하고 있으며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시기한 나머지 갖은 방해책동을 다 하고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정치불안과 사회혼란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국민이 그동안 피땀흘려 쌓아올린 자력성장의 토대마저 파괴해 버릴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무역전쟁 속에서 우리 사회가 불안하고 혼란할 때 수출이나 투자가 잘될 수 없고 경제가 제대로 풀려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올 것은 물가고와 실업과 불황과 빈곤과 침체 뿐입니다.

이에 따라 경제후퇴와 국가위기의 악순환이 시작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 일각에서는 과격한 좌경세력이 민주화라는 가면 아래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고 불법과 선동으로 공산주의 세상을 세우겠다고 준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본인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폭력좌경 세력을 엄정하게 다스리고 전환기에 해이해지기 쉬운 사회기강을 업격하게 확립함으로써 국기를 튼튼히 다져 나갈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기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환기인 만큼 오늘의 정치와 나라의 모읍 뿐 아니라 내일의 정치와 먼 국가장래를 내다보면서 남은 기간동안 대통령으로서 본인이 해야할 일은 참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물려받은 우리 정치사의 유산이 너무도 힘겹고 불행했던 것이기 때문에 다음에 누가 국정을 담당하든 그 후임자와 국민여러분이 더욱 순탄하게 전진할 수 있도록 좋은 전통과 튼튼한 자산을 물려주고 싶은 것이 본인의 꾸밈없는 소망입니다.

본인이 지금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단임을 준수하여 평화적 정부이양을 실현하려는 참뜻도 도저히 과거의 낡은 정치유산을 그대로 넘겨줄 수는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정치도 나라와 사회의 성장 발전에 부응하는 선진 정치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념에서 본인은 남은 기간 동안 민주발전의 기반을 더욱 넓히고 사회 안정과 국민 화합을 다지기 위한 조치들을 더욱 과감하게 추진해 나가고자 합니다.

그러한 노력의 하나로 본인은 국민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지방자치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 문제가 조속히 매듭지어져서 본인의 임기 내에 지방 자치가 시작된다면 민주 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튼튼한 토대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우리의 정치도 시대의 변천과 사회의 발전에 따라 꾸준한 신진대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낡은 시대의 낡은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인물에게 발전하는 나라의 장래를 의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전환기의 정치를 이끌어나갈 참신하고 유능한 정치 신진들을 광범위하게 포용하고 육성하는 정당의 노력은 매우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정치가 시대조류에 맞게 올바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과 국민 모두가 의식의 개혁을 통한 정치풍토의 개선에 더욱 많은 정성을 쏟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굴절된 40년 정치사가 남긴 악순환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할 단계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정치세력간의 불신과 적대의식, 대화와 타협을 두려워하는 기이한 정치풍토, 그리고 폭력과 선동으로 국력을 낭비해온 극한투쟁의 후진적 양상은 하루속히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1인 장기집권의 폐해가 청산되고 있는 이 마당에서 신뢰와 호양, 그리고 인내와 절제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정치의 모습이자 오늘의 전환기에 국민 모두의 행동지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이 정치의 목표는 국리민복을 증진시키는데에 있습니다.

우리의 정치도 이제는 국민의 다양한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대결을 중시하면서 중요한 국가문제에 당리당략을 초월하여 국민에게 봉사하고 나라를 살찌우는 새로운 전통을 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정치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국민에게 불안과 걱정을 주는 정치가 아니라 공익을 위해 정치인 자신의 이익을 희생함으로써 모든 국민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는 성숙한 정치로 발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본인은 오늘의 정치인 모두가 본인의 결단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고 그 토대위에서 새로운 정치의 앞날을 설계하고 건설하는 데 적극 동참해 줄 것을 기대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국민여러분께서는 안정속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민주시민으로서 계도적인 책임을 다해주시기를 당부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든 노력이 합쳐져서 착실한 민주발전이 계속될 때 그간 국민여러분의 참여와 협조로 이룩해온 경제와 사회의 성장이 가속화되어 이 땅에는 위대한 새역사의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인은 굳게 믿고 있읍니다.

실로 우리국민과 정부, 그리고 모든 정치인들이 합심협력하여 평화적인 정부이양을 순조롭게 진행시키고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게 되면 우리는 전쟁의 공포와 후진의 굴레에서 벗어나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는 희망찬 90년대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앞으로 2~3년이야말로 우리가 당당하게 선진국대열에 들어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동안 더 큰 어려움 속에서도 위대한 저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입증해온 우리가 민족사상 처음으로 맞이한 이 소중한 기회를 어떻게 놓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본인은 이제 불과 열달 후면 이 중책을 벗고 청와대를 떠나게 됩니다.

그동안 여러분의 뜨거운 참여와 협조로 본인이 약속했던 바를 실천해 올 수 있었음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면서 끝까지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국민여러분의 축복 속에 대임을 마무리짓고 여러분과 더불어 기쁨과 괴로움을 나누면서 융성하는 나라의 시민으로서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 싶은 소박한 소망 이외에 본인은 지금 아무런 정치적 사심이 없습니다.

그러한 개인적인 소망이 여러분의 애정과 보살핌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 날이 바로 우리 민주주의의 새 아침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본인은 거듭 여러분의 협조를 충심으로 기대하는 바입니다.

오늘에 사는 우리 국민 여러분의 성숙한 지혜가 밑거름이 되어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의 꽃이 피고 선진과 통일의 자랑스러운 신화가 반드시 창조될 것을 본인은 확신합니다.

새봄을 맞아 국민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깃들이기를 기원합니다.

[1] 1929년생 김영삼이 1931년생 전두환보다 연상이지만 당시 대통령은 전두환이 아닌 1919년생 최규하였기에 이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최규하에 비해 어리다는 뜻으로 발언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 물론 약 11개월 뒤 정작 김영삼보다도 어린 본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 [2] 5.18 항쟁이 벌어진지 4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광주를 방문하여 했던 발언이다. [3] 전두환대통령 지방 나들이 1980.9.5 동아일보 [4] 전두환대통령 지방나들이 이모저모 1980.9.5 경향신문 [5] 1980.9.17 동아일보 전두환대통령 인터뷰 [6] 1980.9.17 경향신문 WP전문 전대통령 세련되고 자신감 넘쳐 [7] 1980.9.17 동아일보 전두환대통령 인터뷰 [8] 1980.9.17 경향신문 WP전문 전대통령 세련되고 자신감 넘쳐 [9] 전두환의 발언 중 꽤 유명한 말이며, 제5공화국에도 나온다. [10] 이후 전두환이 2014년 간담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재익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과 개인적인 인연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사람을 쓸 때 자신이 아는 사람만 쓰면 발전적인 분위기에 제한이 걸리지 않을까 싶어서 주로 보좌진들이 아는 사람들을 추천받아서 썼다. 참고로 5공 인사들의 회고에 따르면 김재익은 학자로서의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지 생각보다 정치력도 뛰어난 사람이였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타인에게 관철시키는 언변이 굉장히 뛰어났다. [11] 당시 주한일본대사는 마에다 토시카즈였다. [12] 당시 전남 등 후방 향토사단에서는 해안소초경계, 대간첩작전 임무에 방위병을 동원하는 경우가 있었다. [13] 전두환의 뒤를 이어 취임한 대통령 노태우는 전두환의 동조자라는 핸디캡 무마를 위해 전두환과의 거리를 두고자 하고 있었다. [14] 불교에서는 오신채 외에도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흡연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더 웃긴건 교도소 출소 이후에는 건강을 위해 술과 담배를 모두 끊었다고. [15] 골목성명을 발표한 뒤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했고, 고향인 합천으로 사실상 도주해버렸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검찰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 안양교도소로 압송되어 수감됐다. [16] 해당 발언은 한때 희극인들의 성다모사 소재로 쓰이기도 했으며, 제5공화국에서는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는 대사로 반영되었다. [17] 노태우는 "안 준다."라고 대답했고, 이에 전두환은 "우리도 안 줘."라고 답했다. [18] 전두환 12.12 군사반란 5.17 내란이라는 두 번의 쿠데타를 통해 권력의 정점에 섰고 그 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이라는 큰 과오를 저지른데다 결정적으로 체육관 선거로 불리는 껍데기 간선투표로 대통령이 된지라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정통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다. [19] 당시 출소현장에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를 비롯해 5공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다 투옥되었던 이들의 가족들이 시위를 나와있었다. [20] 이 때 함께 참석했던 노태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묘한 웃음을 짓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돌발영상에서도 개그소재로 나온다. [21] 이명박이 연희동에서 찾아와 전두환을 예방하던 날 탈레반에 납치됐던 샘물교회 선교사들과 신도들이 석방됐다. [22] 전두환은 자신이 7년 단임제를 하고 정상적으로 내려왔다는 말을 죽을 때까지 강조해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직선제는 6월 항쟁을 비롯한 시민의 투쟁으로 이루어낸 것이지 전두환은 일절 기여도가 없다. 오히려 전두환은 4.13 호헌조치를 통해 민주정의당의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자신이 점찍어놓은 후임자인 노태우를 간선 투표로 대통령에 앉히려고 했다. 게다가, 단임제를 실천하려고 했다는 본인의 주장과 달리 국가원로자문회의라는 기구를 만들어서 퇴임 후에도 사실상 상왕으로 군림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23] 정작 이 무렵에 추징금 낼 돈이 단 한푼도 없다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여서 돈없다는 사람이 골프는 어떻게 치러 다니냐고 비판 받았다.[32] [24] 실제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5공 출범 전후로 이전에 추진되었던 핵 개발 계획을 모두 백지화시킨 바 있다. [25] 앞선 예일대 학생들과의 대담에서 전두환은 용인술, 즉 비서진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들이 아는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추천받아서 인재를 등용한 것이 1980년대 초 경제위기 극복과 압축성장의 핵심이라는 주재로 강연을 했었는데 박근혜에 대해서는 본인은 똑똑하고 경험도 많지만, 인간관계가 폐쇄적이라는 취지의 악평을 남겼다. 그리고 그의 말은 불과 1년 후 현실이 되었다. [26] 조비오 몬시뇰의 유가족이 이 발언을 근거로 전두환을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후 출판된 재판본에서는 이 부분이 검은색 마커로 가려져서 나온다. [27] 본인도 학살이라는 워딩을 사용한 것이 포인트. 사실 전두환은 광주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진 않았다. [28] 임한솔 부대표는 육군 25사단에서 복무하였으며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29] kbs 뉴스 2019 [30] 그간 상대적으로 이슈가 없다가 이 일로 간만에 얼굴을 비췄는데, 이전보다 급속도로 노화되고 야윈 모습을 보여 놀란 이들이 많았다. [31] 당시 시위대는 전두환을 향해 5.18 발포 대국민 사과하라!고 소리쳤다. 여담이지만 위의 임한솔 부대표와의 말싸움도 그렇고 이 시기의 전두환은 치매 증상이 심해져서 이성적인 판단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한다. 손자인 전우원도 2014년 이후부터는 치매가 심해져서 5분 전에 한 말도 까먹을 정도였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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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여담으로 이재오는 보수 정치인으로 나타나기 이전 제5공화국 정부 시기에는 용공 혐의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