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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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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언어별 비슷한 표현3. 어원
3.1. '빨치산'에서 왔다는 설3.2. '빨강'에서 왔다는 설
4. 현대 대한민국에서5. 역사6. 어록7. 여담

1. 개요

빨갱이 한국어권에서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주의자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이다. 진보 민주당 계열 인사를 공산주의나 북한과 연관지어 비난하는 데 사용하거나 중국공산당을 옹호하는 조선족 등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군사독재 시절 주로 사용된 단어로 매카시즘의 일종이지만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 #

2. 언어별 비슷한 표현

언어 명칭
<colbgcolor=#6b7d84> 한국어 빨갱이
영어 Reds, Commie[1],
Pink[2], Pinko[3]
중국어 共匪(공페이), 赤色分子(츠써펀쯔)
러시아어 партизан(파르티잔), кра́сный(크라스늬)[4]
독일어 Roten(로튼), Bolschewik(볼셰비크)
프랑스어 Coco(코코)
일본어 アカ(아카)
베트남어 Bọn cộng sản(본꽁산)

3. 어원

빨갱이의 어원은 두 가지 설이 있다.

3.1. '빨치산'에서 왔다는 설

하나는 공산주의 게릴라 유격대를 부르는 말인 파르티잔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5]

파르티잔은 러시아어 단어인데 한글 표기법상으로 파르티잔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러시아어 발음상 빠르찌잔에 가깝다. 빠르찌잔이라는 단어를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빨치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해방 이후 북한이 남한에 침투시킨 유격대원들을 빨치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빨치산이 해방 초기부터 6.25 전쟁까지 한국 사회에서 큰 문제를 일으켜서 반공주의 성향의 한국인들이 이들에게 큰 반감을 가졌는데 이 빨치산이라는 단어가 후에 빨갱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3.2. '빨강'에서 왔다는 설

또 하나는 빨간색을 부르는 말인 빨강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본래 근대 이전 유럽 사회에서 붉은 깃발은 "항복하지 않고 최후의 일인까지 결사항전하겠다"는 메시지를 적에게 전달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이러한 의미의 적기가 오늘날과 같이 좌익 사상의 상징이 된 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 때의 일이다. 자코뱅이 집권한 1792년 이후에는 국기에 준하는 대우를 받기도 했으나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 자코뱅이 몰락하고 나서는 나폴레옹을 비롯한 온건파들의 삼색기 사랑에 밀려서 찬밥 대우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1820년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적기는 1848년 유럽에서 혁명의 시대가 도래하자 다시 기세를 떨쳤다. 이탈리아에서는 주세페 가리발디가 이끄는 붉은 셔츠단이 등장했으며 프랑스에서도 2월 혁명으로 7월 왕정을 타도한 뒤 새로 수립된 공화국의 국기를 더 이상 삼색기가 아닌 적기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커져나갔다.

그러나 알퐁스 드 라마르틴을 위시로 온건 부르주아들이 장악한 임시정부는 이러한 대중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기존의 삼색기를 새로운 공화국의 국기로 채택했다. 이후 좌익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적기는 사회주의보다는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굳어져 갔고 1871년 파리 코뮌은 역사상 최초로 적기를 국기로 채택했다. 19세기 말 아나키즘이 좌파 세력의 또다른 한 중심축으로 대두되면서 아나키즘도 적기를 그들의 상징으로 사용하곤 했다. 보통 아나키스트들은 흑기를 쓰는 것을 선호했다.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이 혁명군을 상징하는 깃발을 붉은색으로 정하고 혁명군을 '붉은 군대'라고 부르면서 1918년 이후 빨간색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이 되어 버렸다. 조선이 해방되던 1945년에는 붉은색은 이미 공산주의로 인식되어 있었고 반공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빨강과 쟁이를 합쳐서 빨갱이(빨강+쟁이)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설은 반공 성향의 시민들이 공산주의자에게 쓰던 멸칭을 우파 정치가들이 사용하는 좌파 정치가와 공산주의자를 부르는 멸칭으로 발전했다고 이야기한다.

국어사전에서도 "빨갱이의 잘못된 표현인 빨강이"라는 말이 올라와 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공산주의자에 대한 멸칭으로 빨간색과 관련된 단어를 쓴다는 것을 볼 때 빨강+쟁이 혹은 빨강이가 빨갱이로 변해서 정착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며 현재 가장 유력한 설이다.

4. 현대 대한민국에서

두 가지 용법이 있는데 하나는 대한민국 헌법 제3조를 바탕으로 이북 5도를 불법 점령한 반(反) 국가단체의 일원이거나 북한 정권의 사상을 공유하고 북한 정권에 협조하거나 굴종하는 사람을, 다른 하나는 중국공산당, 베트남 공산당처럼 국적과 상관없이 공산주의와 관련된 사람을 겨냥하는 것이다.[6]

좌파 혹은 극좌에 빨갱이를 합쳐서 좌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5. 역사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빨갱이'란 단지 공산주의 이념의 소지자를 지칭하는 낱말이 아니었다. '빨갱이'란 용어는 도덕적으로 파탄난 비인간적 존재, 짐승만도 못한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는 어떤 비난을 하더라도 감수해야만 하는 존재,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존재, 죽음을 당하지만 항변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 여순사건 반공국가의 형성』 본문 中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 종북세력'과 거의 동일한 뜻으로 사용하는 순우리말이다. 지금도 좁게는 공산주의자에서 넓게는 좌파 전체를 겨냥한 멸칭으로 종종 쓰이고 있다. 반대로 공산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비난할 때는 ' 반동\'이라고 부른다.

역사학자 주철희에 따르면 한국사에서 '빨갱이'라는 표현은 1921년 목성(牧星)이 쓴 <깨여가는 길>의 등장인물 '빨갱이'와 1925년 김기전(金起纏)이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열린 동화대회에서 소개한 <빨갱이>라는 동화에서 처음 확인된다고 한다. 두 책에서 '빨갱이'는 사회비판적이고 진보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비하적인 의미도 없었고 현재처럼 공산주의와 연관되는 이념적 색채보다는 그저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진취적인 인물상으로 그려졌다.

'빨갱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이념적 색채를 띄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해방정국이던 1948년이다. 극심한 좌우 갈등과 사회경제적 혼란을 겪으면서 우익 좌익은 서로 상대방을 반민족적이며 폭력적인 집단으로 규정했고 자연스레 많은 멸칭들이 등장했다. 우익은 좌익을 민족반역자, 빨갱이, 홍당무로 지칭했고, 좌익은 우익을 반동분자, 친일파, 회색분자, 파쇼(파시스트) 등으로 지칭했다.

해방정국 초기까지는 '빨갱이'라는 용어는 우파에서도 보편적이지 않았는데 오직 극우파만이 좌익 중에서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자를 빨갱이로, 동일한 수준에서 극좌파는 극우파를 반동분자로 불렀다. 그러나 1946년 신탁통치 찬반파동을 겪으면서 빨갱이라는 단어는 다른 어휘들과 재접합(rearticulated)되었다. 신탁통치 오보사건 미군정을 겪으면서 친일파는 민족반역자라는 등식에서 벗어났고 좌익 전체는 민족반역자에서 빨갱이로 언어코드가 바뀌었다. 극단적인 일부 좌익뿐만 아니라 전체 좌익이 빨갱이로 낙인찍힌 것이다. 더욱이 1948년 이승만이 집권하면서 우익은 좌익을 빨갱이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숙정 및 토벌 작업을 벌여나갔다. 1948년 이후 남조선로동당을 중심으로 좌익 세력의 폭력 투쟁이 본격화되고 이승만이 강력한 반공주의를 추진하면서 빨갱이라는 표현이 퍼져나갔다. 결과적으로 빨갱이라는 단어는 해방 직후 극우파에 의해서 극좌파를 지칭하는 용어였다가 신탁통치 파동에서 좌익 전체를 의미하는 단어로, 1948년 제주 4.3 사건과 이승만 집권 이후 정권을 비판하는 단어로 지속적으로 재접합되어 사용되었다. 반면 이승만 집권 이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시간 동안 정계의 중심부에서 좌익이 설 자리가 사라지면서 '빨갱이'와 대립적 언어였던 '반동분자'는 지배적인 언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냉전으로 이념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제1공화국 말기 2년 이승만 정부와 유신 체제 시기 박정희 정부, 전두환 정부는 자신들에게 방해가 될 사람은 빨갱이로 몰아 가혹하게 탄압하고 숙청했으며 이렇게 자의든 타의든 '빨갱이'로 규정된 사람들은 본인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가혹한 대우를 받아야 했다. 헌법에서 금지된 연좌제도 실질적으로는 무용지물이라 이승만 정부는 속칭 '빨갱이'의 가족들에게 취업제한 조치를 하였고 이는 전두환 정부가 폐지할 때까지 30여 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종북주의자 간첩이 아니라 단순히 좌파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잡혀가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고 살아남아 풀려났더라도 공안기관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가야 했다. 자식들과 친척들도 예외가 아니라서 이들도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고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빨갱이라는 이유로 승진, 포상, 등용 등에 불이익을 받았고 결혼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빨갱이라는 단어가 어감이 좋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대략 80년대부터는 공적인 자리[7]에서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등을 칭할때 '빨갱이'라는 단어 대신 '좌경용공(또는 좌경용공분자)'[8], '극렬좌경세력'으로 불렀다. '좌경용공' 이라는 용어는 80년대 후반에 들어서 정부 차원에서 점점 사용 빈도를 줄이기 시작했고 결국 오늘날에는 '좌경용공'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어쩌다 어른 135화[9]에 나온 바에 따르면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죽은 피해자의 유족들의 삶은 처참했다고 한다. 늘 군인들이 따라다니며 감시해 제대로 된 직업을 못 구한 데다 자식들은 빨갱이의 자식이란 이유로 심한 왕따를 당했다고 하는데 다른 아이들이 그 빨갱이의 자식이라고 알려진 아이를 철사로 묶어 놓고 돌을 던지거나 목에 철사를 감고 개처럼 끌고 다니는 등 괴롭힘의 수위가 단순한 애들 장난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거기다 건국 이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1인 독재 체제가 지속되었다 보니 사상은 알 거 없고 집권세력에 반기를 드는 순간 빨갱이로 몰려 곤욕을 치르는 사례가 여럿 있었다. 심하면 반정부 활동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군사정권의 간첩 조작사건에 억울하게 엮여들어가 하루아침에 빨갱이가 된 사례도 허다하다.

21세기 들어서 대중매체에선 종북으로 순화해서 사용하고 있다.

6. 어록

지금,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련식 민주주의란 것은 이러한 독재정치 중에서도 가장 철저한 것이어서,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헤겔 변증법, 포이어바흐 유물론 이 두 가지에, 애덤 스미스 노동가치론을 가미한 마르크스의 학설을 최후의 것으로 믿어, 공산당과 소련의 법률과 군대와 경찰의 힘을 한 데 모아서, 마르크스의 학설에 일점일획이라도 반대는 물론 비판하는 것도 철저하게 금지하여, 이것을 위반하는 자는 죽음의 숙청으로써 대하니, 이는 옛날 조선의 사문난적을 대한 것 이상이다.
백범 김구, 백범일지 정치이념 편 中
너희들은 정신 개조를 해야 한다. 이의들 있는가? (수감자들: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할 게 없어 빨갱이 짓을 했나? 빨갱이가 뭔가? 부모도 형제도 없다고 난 들었다. 똑바로 해라 임마, 그 쪽에!
김두한, 야인시대 59화 中[10][11]
야이 빨갱이 새끼야!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너 정말 운 좋게 살아나는구나. 어?
상하이 조, 야인시대 65화에서
경찰이면 다 같은 경찰인 줄 아네? 니들이 뽀찌 뜯어서 이밥에 괴깃국 먹을 때, 내래 칼 맞아가면서 빨갱이 잡아댔어. 나 아니였음 이 나라... 김일성이한테 멕혔을 거야, 이 새끼들아! 알갔어!? (중략) 똑똑히 새기라우. 내래 빨갱이 잡는 거 방해하는 간나들은, 무조건 빨갱이로 간주하갔어!
박처원, 1987[12]
불원한 장래에 사어사전(死語辭典)이 편찬이 된다고 하면 빨갱이라는 말이 당연히 거기에 오를 것이요, 그 주석엔 가로되 "1940년대의 남부 조선에서 볼셰비키, 멘셰비키는 물론, 아나키스트, 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일부의 크리스찬, 일부의 불교도, 일부의 공맹교인, 일부의 천도교인, 그리고 주장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로서 사회적 환경으로나 나이로나 아직 확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잡힌 것이 아니요, 단지 추잡한 것과 부정사악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 밖에도 XXX과 XXXX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하였을 것이었었다.[13][14]
채만식, 『도야지』, 창비사 '문장' 27호. 작가는 빨갱이가 ' 사어'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21세기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있다.

7. 여담

  • 서울대학교 학생이 퀴즈 대한민국에 출연해 문제를 풀던 중 빨치산과 혼동한 사례가 있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잘 쓰이지 않는데다 첫 글자가 유사해서 두 단어가 연관이 있는 것 아닌지 착각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아진 건 사실이다. 그래도 반공 교육을 받은 나이대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인재인 서울대학교 학생의 역사 인식이 이 정도냐는 한탄도 나왔다. 본인도 말을 내뱉은 직후 실수했음을 깨닫긴 했다.
  • 사실 빨치산이란 음차가 나올 적에도 남한도 표기법이 북한의 문화어와 비슷했다. 그래서 이런 음차가 나온 것이다.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남한도 비슷하게 소비에트를 '소비에뜨'(북한은 '쏘베뜨'), 스탈린을 '스딸린'(북한은 '쓰딸린')으로 표기한 기록이 있다. 현행 러시아어 표기법대로라면 '파르티잔'이 맞는 표기다. 참고로 북한은 '빨찌산'이라고 한다.
  • 홍세화의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젊을 적 프랑스 공산당에 적을 두었다가 나이가 들면서 신좌파적[15]인 태도로 돌아선 대학교수를 두고 '루주( 프랑스어로 빨간색)에서 루주-베르(빨간색-초록색)'로 돌아섰다고 하는 것을 보면 유럽에서도 공산주의자를 빨간색에 비유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 2013년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핀란드인 따루가 나와 이야기하기를 사민당 할로넨 대통령이 집권하자 자신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빨갱이(communist)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요약글
  • 홍세화나 따루의 예를 보면 어딜 가나 빨갱이 드립은 유효한 듯. 사실 이것의 원조는 윗동네가 아니라 소련이었기 때문에 냉전 당시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빨갱이 드립을 칠 수 있다.
  • 야인시대 심영은 극장에서 공산당을 선전하던 도중 김무옥이 "야, 이 빨갱이 자슥들아, 이것은 수류탄이여. 죽지 않을라믄 까불지들 말드라고!"라고 소리치며 수류탄을[16] 던져 생명을 위협받고 백병원에서 상하이 조에게 "야이 빨갱이 새끼야!"라는 비난을 들으며 고자가 된 아랫도리를 권총 쥔 손 그대로 내리찍혔다.[17] 아울러 야인시대 82회에서 좌익의 앞잡이들이 죽창을 들고 경찰관 관사의 관리인을 끌고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앞잡이 한 명이 그에게 "잔말 말고 따라와, 이 빨갱이 새끼야!"라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했다.[18]

[1] 파생어 Charlie를 가장 많이 쓴다. [2] 1950년 '핑크 레이디(Pink Lady)' 사건을 고려하면 그 이전부터 쓰던 단어로 추정된다. 핑크 레이디 사건은 1950년 상원 선거에서 배우였던 헬렌 G. 더글라스가 출마했는데 경쟁 후보였던 리처드 닉슨(미국 37대 대통령)이 그녀가 공산주의와 연관이 있다며 비방한 사건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당시 닉슨은 더글라스를 가리키며 '속옷까지 다 빨갛다(pink right down to her underwear)'는 성희롱 발언을 공공연히 내뱉고 다녔다. [3] 주로 미국에서 쓴다. [4] 빨갛다는 뜻으로 남성형 명사다. 여성형은 Красная(크라스나야). [5] 원어인 파르티잔 자체는 원래 비정규 유격전요원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파르티잔을 운영한 대다수의 나라가 공산주의 국가였던 데다 비정규 유격전요원을 운영한 비공산주의 군대는 보통 다른 말로 지칭한다. (예를 들어서 프랑스 저항군은 레지스탕스, 조선의 독립군은 독립군이나 의병이라고 쓴다.) [6] 특히 보수 우파 측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의견과 맞지 않는 사람을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몰상식한 짓을 벌이기도 한다. [7] 특히 뉴스, 신문, 정부 브리핑 등 [8] 오늘날 표현으로 해석하자면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좌파'정도 된다. [9] 당시 강사는 심용환 [10] 야인시대 59화에서 감방에서 자신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려 했던 좌익 계열 수감자들을 때려눕힌 후 얼차려를 부여하는데 이 사건의 배후는 다름 아닌 심영이다. 좌익 계열 수감자들을 매수해서 김두한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려 했지만 실패한 후 심영은 한 순간에 습격을 당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 [11] 여담으로 김두한이 쓰러진 1972년 11월 21일에는 빨갱이들의 문화대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12] 첫 번째로 나온 빨갱이는 김일성과 북한을, 두 번째와 세 번째로 나온 빨갱이는 자신과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참고로 이 대사는 극중에서 박처원이 자기 상관을 두들겨 패면서 하는 대사다. 자신의 상관이 고문에 가담한 부하들을 잡아서 갈구자 열받은 박처원이 치안본부장을 협박해 위치를 알아내고 자기 상관을 찾아내 두들겨 패버린 것으로, 당시 썩을 대로 썩어 있던 공직자들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경찰 수뇌부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던 남영동의 위세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13] 해방 이후에는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의 단점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해방 이후 독립운동가 중에는 사회주의를 추종한 경우가 꽤 있다. [14] 채만식의 예상은 일부 들어맞은 것이 민주화가 되면서 진짜 종북과 간첩을 제외하고 빨갱이란 타이틀은 색깔론을 당했던 민주화투사, 노동운동가들이 억울하게 쓴 누명이자 훈장처럼 된 상처로 남게 되었다. [15] 젊은 시절에는 계급투쟁을 근간으로 삼는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나이가 들면서 환경운동 같은 넓은 의미의 진보운동에 관심을 갖는 신좌파가 되었다는 뜻이다. [16] 실제로는 연막탄이였다. [17] 심지어 한 번만 찍힌 게 아니라 이후에 또 걸리면 그땐 진짜로 죽이겠다고 협박당하면서 또 맞았다. [18] 엑스트라의 실수인데 빨갱이(=극좌)들은 그들 입장에서 경찰로 추정되는 사람(좌익의 반대세력=우익)을 끌고 갔으므로 그가 빨갱이가 될 순 없다. 그 NG가 그대로 방송을 타고 나갔으니 시청자들은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