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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의회 원내 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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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리 오르포 내각 (2023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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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 여당 | ||||||
국민연합당 4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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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인당 46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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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인당 1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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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민주당 5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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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 ||||||
사회민주당 4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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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당 2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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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동맹 1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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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동맹 1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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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움직이다 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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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20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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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4a4a><colcolor=#fff> Suomen Sosialidemokraattinen Puolue[A] Finlands Socialdemokratiska Parti[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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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 sosiaalidemokraatit[A], SDP[B] |
한국어 명칭 | 핀란드 사회민주당 |
창당일 | 1899년 |
상징색 |
빨간색 (#F54A4A)
|
이념 | 사회민주주의 |
스펙트럼 | 중도좌파 |
대표 | 안티 린트만 |
비서 | 미켈 내캘래얘르비(Mikkel Näkkäläjärvi) |
사무총장 | 카리 안틸라(Kari Anttila) |
원내대표 | 티티 투푸라이넨(Tytti Tuppurainen) |
제1 부대표 | 나시마 라즈미야르(Nasima Razmyar) |
노르딕 조직 | 사회민주주의 그룹 |
유럽 정당 | 유럽 사회당 |
유럽의회 교섭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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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조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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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의원 |
43석 / 20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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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회 의원 |
2석 / 14석
|
시의회 의원 |
1,451석 / 8,859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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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사이트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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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핀란드의 정당.2. 역사
1899년 '핀란드 노동당'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당되었고, 1903년 '핀란드 사회민주당'으로 개칭했다.사회민주당은 1907년 설립된 핀란드 최초의 노총 SAJ와 밀접하게 제휴, SAJ 조합원은 모두 사민당원으로 가입했다. 이런 사민당과 노총의 관계는 21세기 현재까지 이어진다.
1905년 혁명 이전에는 지하에서 무장봉기를 준비하는 등 저항운동을 했지만, 혁명으로 의회개혁이 이루어지자 선거에 참여했다. 당시 핀란드 우파는 핀란드계 민족주의, 스웨덴계 민족주의, 러시아 제정 협조주의, 농본주의 등이 뒤섞여 지리멸렬했던 반면 좌파는 사회민주당으로 대동단결해 사회민주당은 독립 이전까지 원내 제1당을 놓쳐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핀란드 대공국 시기 정치는 거의 핀란드 총독에 의해 임명되는 핀란드 원로원에서 담당했고 의회는 거수기관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큰 힘을 가지지 못했다.
1916년 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은 200석 중 103석을 얻어 단독 과반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붕괴하면서, 그동안 의회정치를 방해해온 총독부가 없어졌다. 그 여세를 몰아 사회민주당이 주도해 핀란드 독립을 선언하려 했지만, 우파들의 사주를 받은 러시아 공화국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정부가 무력개입해 의회가 해산당해 무위로 돌아간다. 뒤이어 치러진 재선거에서 단독과반을 상실하게 되자 당의 지지기반인 노동자들이 분노, 러시아의 볼셰비키들처럼 무장봉기를 할 것을 요구했다. 사민당 지도부는 봉기 직전까지 봉기에 소극적이었으나, 노동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기에 기호지세로 끌려가게 되었다.
핀란드 내전은 독일 제국의 개입으로 우파의 승리로 돌아가고, 내전때 적군을 지휘했던 핀란드 사회민주당 정치인들은 대거 소비에트 러시아로 도피했다. 도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우파에게 학살당하거나 투옥되었다. 하지만 지도부가 날아갔을 뿐 핀란드 유권자 절반의 지지를 받고 있던 사민당의 기반은 날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친미파 개량주의자 배이뇌 탄네르의 새 지도부 하에 사민당은 1919년 선거에서 80석을 얻으며 불과 1년만에 부활한다. 한편 오토 빌레 쿠시넨 등 소련으로 도피한 이들은 핀란드 공산당을 창당했다.[5]
탄네르 지도부 하의 사민당은 수권정당의 지위를 회복했지만, 1920년대-1930년대 핀란드는 자생적 파시즘이 준동하면서 좌파가 집권할 만한 상황이 되지 못했다. 1926년 탄네르가 총리가 되어 입각했지만 소수여당내각이었기에 큰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사민당은 여러 차례 우익정당들과 함께 연정하여 '국민통합'을 거들었다.
겨울전쟁 이후 사민당은 계속전쟁에 대한 찬반을 두고 분열이 일어났다. 주류는 국민통합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에 반발해 평화주의를 주장한 당내 좌파가 탈당해 나갔다. 계속전쟁 이후 핀란드가 소련에 밉보이지 않는 정책을 선택하면서 소련의 의중대로 공산당이 합법화되었고, 공산당은 사민당 탈당파와 연합해 핀란드 인민민주동맹이라는 교섭단체를 형성했다. 2차대전 이전까지 언제나 1위 정당 자리를 다투었던 사민당은 이 때 지지세력을 인민민주동맹에 빼앗기면서 순식간에 당세가 절반으로 깎였다.
소련은 자신들을 적대한 사민당 대신 농민당이나 국민연합당 같은 우파정당을 대화 파트너로 선택했다. 오죽하면 1959년에는 소련이 사민당 내각을 트집잡아 핀란드에 경제제재를 가했을 정도였다. 이에 농민당의 우르호 케코넨 대통령은 소련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사민당 내각을 실각시키고 이 상황을 해결해 자기 권력을 공고히 했다. 소련의 이런 의중에 따라 사민당은 1960년대 입각을 할 수 없었다. 사민당이 소련의 용서(?)를 받아 입각할 수 있게 된 것은 1966년에 이르러서였다.
1991년 소련이 망하면서 사민당은 비로소 그 영향에서 확실히 벗어났다. 1995년 핀란드 의회 총선거에서 사민당은 200석 중 63석을 얻으며 2차대전 이후 최대 선전을 거두었다. 하지만 2015년 핀란드 의회 총선거에서는 34석으로 참패하면서 역대 최악 성적을 갱신하며 제4당으로 전락했다. 2017년에는 제2당 핀인당에 분열이 일어나 청색미래당이 분당해 나가면서 어부지리로 제3당이 되었으나 의석수는 그대로였다.
이후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꾸준히 올라가 2019년 핀란드 의회 총선거에서 핀인당과 1석 차이로 제1당을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 선거와 마찬가지로 중앙당-연합당-핀인당 연정이 이루어지면 과반을 넘기 때문에 정권 탈환은 요원해 보였으나
2023년 핀란드 의회 총선거에서는 3석을 추가로 얻었지만 국민연합당이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서면서 제3당으로 밀려났다. 결국 원내 1당을 차지한 국민연합이 핀인당의 손을 잡고 보수연정을 출범시키면서 정권을 다시 잃었다.
2024년 핀란드 대통령 선거 1차투표에서 겨우 4.34%를 얻으며 처참하게 탈락했다. 그나마 범진보 지지층이 결집해 극우 성향 핀인당이 결선에 진출하는 것을 막은 것이[6] 위안이라면 위안.
2.1. 역대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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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54a4a,#FFC0CB> 초대 닐스 로베르트 아브 우르신 |
제2대 요한 아돌프 살미넨 |
제3대 카를 프레드리크 헬스텐 |
제4대 타비 타이니오 |
제5대 에밀 페르틸래 |
<rowcolor=#f54a4a,#FFC0CB> 제6대 에드바르드 발파스해니넨 |
제7대 마티 파시부오리 |
제8대 오토 빌레 쿠시넨 |
제9대 마티 파시부오리 |
제10대 쿨레르보 만네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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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54a4a,#FFC0CB> 제11대 배이뇌 탄네르 |
제12대 마티 파시부오리 |
제13대 카를로 하르발라 |
제14대 배이뇌 살로바라 |
제15대 온니 힐투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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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54a4a,#FFC0CB> 제16대 에밀 스코그 |
제17대 배이뇌 탄네르 |
제18대 라파엘 파시오 |
제19대 칼레비 소르사 |
제20대 페르티 파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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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54a4a,#FFC0CB> 제21대 울프 순드크비스트 |
제22대 파보 리포넨 |
제23대 에로 헤이낼루오마 |
제24대 유타 우르필라이넨 |
제25대 안티 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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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54a4a,#FFC0CB> 제26대 산나 마린 |
제27대 안티 린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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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향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까진 친러 성향이 강한 정당이었으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계기로 사민당 내부의 여론은 급격하게 반러시아로 바뀌었고, 결국 사민당은 NATO 가입의 주력이 되었다. 반대로 말하면 이전까진 NATO 가입 반대 입장이었다.
- 화력발전 반대. 원자력발전 옹호.
- (취업) 이민 반대. 극우라고 알려진 핀인당보다 더 엄격한 입장이다. 난민 같은 인도적 이주나 결혼이민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지만 핀란드 문화를 이해하고 핀란드 사회에 동화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단다. 취업이민은 직접적 타격을 받는 노동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이라 그런지 부정적인 편이다. 사실 핀란드 사민당이 좌파답지 않게 이민에 적대적이라기보다는, 핀인당이 극우답지 않게(...) 이민에 덜 적대적이라고 보는 게 맞다.[7]
4. 각종 기록
- 현존 핀란드 정당 중 가장 오래된 정당 (1899년 창당)
- 세계 최초의 여성 의원 배출정당 (1907년)[8]
- 사회주의 정당으로서[9],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단독과반 달성 (1916년)
- 핀란드 최초로 연정 없이 자당 의원들로만 내각 구성 (1926년)[10]
- 핀란드 최초의 여성 국가원수 배출 (2000년)
- 세계 최연소 여성 정부수반 배출 (2019년)
5. 역대 선거 결과
5.1. 핀란드 의회 총선거
연도 | 선거명 | 총 의석 | 전체 의석 | 결과 |
1995 | 1995년 핀란드 총선 | 200석 | ||
1999 | 1999년 핀란드 총선 | |||
2003 | 2003년 핀란드 총선 | |||
2007 | 2007년 핀란드 총선 | 45석 | 3위 | |
2011 | 2011년 핀란드 총선 | 42석 | 2위 | |
2015 | 2015년 핀란드 총선 | 34석 | 4위 | |
2019 | 2019년 핀란드 총선 | 40석 | 1위 | |
2023 | 2023년 핀란드 총선 | 43석 | 3위 |
[A]
핀란드어
[B]
스웨덴어
[A]
[B]
[5]
1920년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 대통령이 내전기 대사면령을 내리면서 일부 사람들은 핀란드로 재귀국했다. 하지만 끝까지 소련에 남은 사람들은 1930년대
대숙청 때 쿠시넨을 제외하고 모조리 목숨을 잃는다.
[6]
그래도
유시 할라아호는 19%를 얻으며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다.
[7]
여담으로
뉴질랜드 노동당도 이민 문제에서 비슷한 입장을 취한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
[8]
핀란드는 1906년 세계 최초로 '제대로 된' 여성참정권을 보장했다. 핀란드보다 앞서 여성에 참정권을 수여했다고 알려진
뉴질랜드는 선거권만 주고 피선거권을 주지 않았기 때문. 1906년 의회개혁으로 핀란드에서는 24세 이상의 모든 남녀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모두 가졌다.
[9]
개량주의 정당인 현재의 핀란드 사민당과 달리, 당시 핀란드 사민당은 독일 사민당의 에어푸르트 강령과 대동소이한
카우츠키주의 강령을 채택하고 있었다.
[10]
핀란드 내전 당시 핀란드 적군 측 정부인 인민대표단도 사회민주당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지만 여기서는 1918년 건국 이후만 카운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