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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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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臶
136년 ~ 240년 (향년 104세)
1. 개요2. 생애3. 평가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의 인물로 자는 자명(子明).

2. 생애

기주 거록군 출신으로 마음을 수양해 관직에 나아가지 않으면서 권유가 올 때마다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 시대 사람으로서는 드물게도 105살이나 살았으며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는 가장 장수했다. 삼국지 커뮤니티에서 장수의 아이콘중 한명으로 불리는 그 사섭보다 1년 일찍 태어나서 14년 뒤에 사망했다. 조조의 아버지뻘인 인물이 조조의 손자인 조예보다 1년 더 살았다.[1] 삼국지의 시작인 황건적의 난때 벌써 49세로 곧 할아버지 소리 들을 나이였는데 삼국지의 사실상 끝인 추풍오장원보다도 이후에 죽었다. 그 생애에 일어난 굵직한 사건만 해도 권신 양기의 집권부터 1, 2차 당고의 금, 황건의 난, 십상시의 난, 반동탁 연합군, 삼보의 난, 조조의 협천자, 관도대전, 적벽대전, 한중 공방전, 형주 공방전, 삼국정립, 이릉대전, 제갈량의 북벌 전부 등 넘쳐난다. 이 사람이 겪은 황제만 해도 동한 순제, 충제, 질제, 환제, 영제, 후소제, 헌제에다가 조위의 조비, 조예, 조방까지 10명이다. 권신과 정쟁의 시대인 동한 말기에 태어나 전쟁으로 물들은 삼국시대를 겪은, 난세의 인물이었음에도 1세기 이상을 살았다. 이 시기, 아니 중국사 최고의 생존왕 중 1인이라고 불릴 만한 인물.

소년 시절 태학에서 학문을 배워 내학과 외학에 통달해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그의 소식을 들은 원소가 그를 등용하려고 했지만 장천은 첫 번째로 관직을 거부하고 상당으로 이주한다.[2]

하지만 관직을 피해 달아난 상당에서도 고간이 장천을 악평의 현령으로 추천했으나 두번째로 관직을 거부하면서 상산으로 이주했으며, 상산에서도 문도들이 수백 명이나 되자 장천은 또다시 임현으로 이사간다. 그 무렵 승상을 지내던 조조가 그를 임용하지만 장천은 당연히 부임하지 않아 세번째로 관직을 거부한다.[3]

한동안 조용히 사는 것으로 보였다가 태화 연간[4] 조예가 조서를 내려 은거하면서 학식이 높은 선비나 재난을 없애고 이질적인 것을 회복할 수 있는 자를 구했는데, 이는 장천을 가리키는 말인지라 군에서는 앞다퉈 장천을 천거해 그를 파견하려고 했지만 장천은 나이가 많고 병이 들었다는 핑계로 가지 않아 네 번째로 관직을 거부했다. 다만 당시 장천은 이미 90을 넘긴 나이인지라 늙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었다. 본인도 10년 이상을 더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고...

광평태수 노육이 관리로 임명된 지 3일 만에 측근은 전례에 따라 명함을 장천의 집에 보내고 찾아뵙기를 권했다. 이에 노소라는 장수가 이를 반대하자 노육이 훈계하길,
장 선생은 이른바 위로는 천자를 섬기지 못하고, 아래로는 제후들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사람이오. 이런 사람에게 나의 명함을 바친다고 그것이 어찌 그런 분에게 장식이나 될 수 있겠는가?
그러고는 주부를 보내 서신을 바치고 양고기와 술을 보내는 예의를 차린다.

236년 위나라 조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린다.

이 일이 천하의 사족들에게 널리 알려지니 장천이 있던 임현의 현령 우작은 예물과 함께 몇 차례 장천을 찾아가 이것에 대해 장천에게 물으니 지성이면 감천이었는지 장천은 은밀히 우작에게 말한다.
무릇 신비로운 징조는 앞날을 미리 알아볼 수 있는 것이지. 이미 지난 일을 좇아 기록하는 것이 아니오. 징조가 먼저 나타난 후에 흥하고 폐함이 그것을 따르는 것이오. 한나라 왕실은 이미 망한지 오래되었고 위나라도 이미 천하를 얻었는데, 무슨 이유로 과거의 흥기의 징조를 나타내겠소! 이 돌은 응당 지금의 변이로서 장래에 대한 서단이오.
라며 고당륭과 반대의 의견을 말한다.[5]

240년에 오디새가 장천의 집 음한 곳에 집을 짓는 것을 보고 장천은 자기 제자들에게
무릇 오디새는 양조(陽鳥)인데, 집을 음한 곳에 지었으니 이는 흉한 화가 닥쳐올 징조이다.
라며 곧 금슬을 타고 노래를 불러 시 두 편을 지었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열흘이 지나 죽으니 그의 나이 105세였다.

3. 평가

그 해에 광평태수 왕숙이 막 부임해 관할 현의 현령들에게 말하길
이전에 경성에 있었을 때, 장자명에 관해서 들었는데, 이곳에 와서 물으니 이미 죽었다고 해 매우 애통하오. 이 선생은 학문이 돈독하고 은둔생활을 했으며, 당시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고 오직 덕망으로만 자신을 즐겁게 했소. 옛날 강현 노인은 진흙 속에서 몸을 굽혔으므로 조맹이 그를 중용해 제후간의 관계가 화목했었소. 나는 그가 백 세 고령에도 이처럼 성실하게 배우고 도를 좋아했으나 오히려 황가의 총애를 받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오. 문서가 도착했다면 관리를 보내 그의 집을 위로하고 표창의 글을 써서 달고 특별한 관심을 보이도록 힘쓸 것이며, 이로써 고인이 된 자를 위로하고 장래 사람들을 권면하시오.

진수가 그를 기록한 이유를 말하길 문을 닫고 절조를 지키고, 세상의 영리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 조예가 태어나던 시기에 장천은 벌써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2] 이때 벌써 환갑을 넘어선 나이였다. 이 시대상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던 것이다. 현실은 아직 40년이나... [3] 맹모삼천지교의 노력 따위 이미 넘어섰다. [4] 227 ~ 232년이다. [5] 위나라의 멸망은 26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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