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1 18:53:51

명원황후

명원황후 곽씨에서 넘어옴

三國
삼국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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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元皇后 | 명원황후
시호 명원황후(明元皇后)
곽씨(郭氏)
출생 불명
사망 263년 12월
재위 조위의 황후
238년 ~ 239년
조위의 황태후
239년 ~ 263년
부군 명제(明帝)
1. 개요2. 생애3. 평가4. 미디어 믹스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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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여성이자 성은 곽씨(郭氏)로 는 불명. 조예의 두 번째 황후.

2. 생애

양주 서평군 사람으로서 대대로 하우(河右)의 호족이었지만 황초 연간( 220년 ~ 226년)에 그녀의 군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므로, 그녀는 신분을 박탈 당하여 관노가 되어 황궁으로 들어왔다. 조예가 황제에 즉위한 후 많은 총애를 받아 부인(여관의 지위)이 되었고 명도황후 모씨가 조예의 명으로 자결한 후 조예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드디어 황후로 옹립되었다.[1] 제왕 조방이 즉위하자 황태후가 되었고, 곽씨의 가족들은 작위와 영지를 받았다.

조방, 조모, 조환 시대에는 사마씨가 정권을 잡고 있었고, 나라의 큰 일은 곽태후에게 물어 명이 떨어진 후에 시행하는 체제를 취했다. 고평릉 사변에서 사마씨가 곽태후의 허락을 받아 쿠데타를 정당화했고, 관구검 종회 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명원황후의 명령을 빙자하여 난을 일으켰다.[2] 또한 사마사가 조방을 폐위할 때도 곽태후를 명목으로 이용했다.

회황후 견씨가 죽고나서 조방이 왕씨를 황후로 삼으려는 것을 명원황후가 반대했다.[3] 조방이 폐위되고 새로운 황제를 결정할 때 사마사는 조거를 추천했지만 명원황후가 강력히 조모를 천거해서 조모가 즉위하게 되었다. 조모가 가충의 부하 성제에게 죽자 사마소는 명원황후 곽씨를 압박해 사실을 왜곡시켰다. 263년 12월, 명원황후 곽씨는 죽고 264년 2월 고평릉(조예의 능) 서쪽에 묻혔다.

명원황후가 죽던 때는 마침 위나라에게 정벌당한 직후였는데, 그 죽음을 명분으로 이용해 종회가 성도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3. 평가

기본적으로 왕조에서 황태후라는 자리는 꽤 독특한 입지를 가지게 되는데, 수렴청정 같은 제도적 실권을 가지는 형태가 아니라 할지라도 황태후란 그 존재 자체로 현 황제에 있어 효의 대상이므로, 어떤 의미로는 유일하게 황제의 윗사람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한나라 왕조를 반면 교사 삼은 위나라 왕조는 외척은 물론 황실 혈족 전반의 정치 개입을 적극적으로 억제했고, 덕분에 과거 하태후와 하진처럼 황태후가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

게다가 곽태후 본인도 사정이 상당히 미묘했다. 호족 가문이었지만 몰락하여 그 자신은 관노 신세였었고. 그마저도 황후로 인정받은 것은 이미 조예가 맛이 간 뒤였으니, 세력을 형성할래야 할 수가 없었고 황태후라고 스스로 떵떵거리기에도 좀 껄끄러운 입장. 이렇듯 '상징적 지위'와 '실질적 권력(또는, 최소한 영향력)'이 엄청난 격차가 있는 그녀는, 결국 말년까지 사마씨가 황제를 한 번 갈아 치우고 한 번 시해할 동안 열심히 그들의 정당성에 도장이나 찍어주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런 그녀가 딱 한 번 강력하게 목소리를 낸 사건이, 바로 조모의 황위 계승. 사마사는 조방을 폐위한 뒤 조거로 뒤를 이으려 했지만 곽 태후는 제사관계가 꼬인다는 이유로 조모를 밀어 붙였고, '그' 사마사도 결국 자신들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유교적 명분 앞에서는 방법이 없었는지 백기를 드는데... 결과적으로 이것이 사마사가 사마소에게 물려준 가장 무거운 숙제이자 사마씨 왕조 전체에 그늘을 드리우는 저주로 이어지고 만다.

사마씨 왕조 시대에 쓰여전 정사 삼국지 위서 후비전은 명원황후에 개인에 대해 이렇다 할 평은 내리지 않는다. 다만 위 왕조가 한 왕조의 실패를 경계 삼아 황후들의 정치 참여를 막은 것에 대해 훌륭하다 평가하며, 명원황후 곽씨 역시 그 '나대지 않고 조용히 지내준 기특한' 여인들의 하나로 보고 있을 뿐.

4. 미디어 믹스

4.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파일:전략명원황후.png
사마의가 국정을 장악하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본다.

4.2. 삼국(드라마)

배우는 王迪(왕적), 마지막화에 고평릉 사변과 함께 등장한다. 조상이 녹봉 800석 이상의 모든 관원과 조씨 황족들을 데리고 고평릉에 참배를 하러 가자. 사마의가 수하 장수를 모아 허창을 점거 후 태후를 찾아오고 사마의가 미리 작성해둔 태후의 조서를 승락해주면서 조상을 제거할 때 황제는 해치지 말라고 부탁한다.

4.3. 대군사 사마의

조예 사후 조방의 양모가 되어 어린 황제 조방을 양육하고 있다. 조예의 궁인 겸가를 취한 뒤 더욱 방자해져 자신을 일개 부인 취급하고 사사건건 업신여기는 조상에게 질려 사마씨 일족에 점점 의지하게 된다.[4] 위나라와 조씨 황실을 위해 노력하지만 대국적인 식견은 없는 인물로, 고평릉 정변 당시 조상을 면직하고 군권을 회수하는 성지를 재가하여 종국에는 사마씨 천하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5. 둘러보기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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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찬 , 진림 완우 유정, · 위기 · 유이 · 유소 · 부하 환계 · 진군 , 진태, · 진교 · 서선 · 위진 · 노육 화흡 · 상림 , 시묘, · 양준 · 두습 · 조엄 · 배잠 , 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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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 · 최림 · 고유 · 손례 · 왕관 신비 , 신헌영, · 양부 , 왕이, · 고당륭 , 잔잠, 만총 · 전예 · 견초 · 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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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의 역대 황후
명도황후 모씨 명원황후 곽씨 회황후 견씨

[1] 즉 그녀는 관노에서 황후라는 엄청난 인생역전을 보여준 인물이다. [2] 종회가 난을 일으킬 때 곽태후가 사망하기 전 사마소를 주살하라고 했다는 조서를 위조해 반란 명분에 사용했다. [3] 출처: 제왕기 주석 위서. [4] 태후가 황제를 양육하는 문제에도 스스럼없이 간섭하고, 심지어는 조방의 생모를 데려와 태후를 협박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