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9:42:21

이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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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1998~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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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한국은행 총재
이창용
李昌鏞 | Rhee Chang-yong
파일:이창용총재.jpg
출생 1960년 5월 16일 ([age(1960-05-16)]세)
충청남도 논산군
(現 충청남도 논산시)
본관 덕수 이씨[1]
현직 한국은행 총재
글로벌금융시스템위원회 의장
재임기간 초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차관급)
2008년 3월 5일 ~ 2009년 11월 9일
제27대 한국은행 총재 (장관급)
2022년 4월 21일 ~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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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35698><colcolor=#fff> 신체 192cm
학력 인창고등학교 ( 졸업 / 25회)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 경제학 80 / 학사)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 경제학 / 박사)
병역 전시근로역[2] (질병: 슬관절인대재건술 후유증)
경력 로체스터 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
초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 이명박 정부)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장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국제통화기금 아시아태평양국장
제27대 한국은행 총재 ( 윤석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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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논란
3.1. 김은혜 후보 면담 논란3.2. 서울대 지역할당제 논란
4. 저서5. 여담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제27대 한국은행 총재. 총재직 이전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국제통화기금 아태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2. 상세

1960년 5월 16일 충청남도 논산군(現 논산시)에서 아버지 오산(梧山) 이재곤(李載坤, 1930. 10. 20 ~ 1995. 4. 6)과 어머니 남원 윤씨(1934. 5. 8 ~ )[3]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9년 서울 인창고등학교(25회), 1984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80학번)를 최우수 성적으로 총장상을 수상하며 졸업했다. 대입 재수를 해서 서울대 교수 시절 학생들에게 나는 종로학원 서울대 재수반 출신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윤종원 기업은행장,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대학 동기이며, 윤 행장은 인창고 동기이기도 하다.

학부 졸업 후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과정으로 직행, 미국의 전설적인 경제학자 로렌스 서머스의 지도를 받았다. 1989년 6월 박사 학위를 받은 직후 9월부터 미국 로체스터 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로 임용되었고, 1990년 올해의 교수상(Teacher of the year)을 수상하는 등 주목을 모았다. 박사 과정 재학 시절 전미경제연구소(NBER) 리서치 어시스턴트(1986~1989), 로체스터 대학교 재직 시절 세계은행 리서치 펠로우(1992~1993)로 활동했다.

이후 1994년 2월 33세의 젊은 나이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 교수에 임용됐다. 당시 아버지 이재곤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으므로, 임용 당시 의과대학을 제외하고 유일한 부자(父子) 교수로 화제가 됐다. 동생 이우용(李祐鏞, 1963. 2. 10 ~ )도 상당한 엘리트인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으로 삼성서울병원 부원장을 거쳐 현재 암병원장에 재직중이다.

전공 분야는 거시경제학, 금융경제학이다. 서울대학교 교수 시절에는 거시경제이론, 주식/채권/파생금융상품 2(제도) 수업이 명강의로 유명했으며, 블랑샤 저서로 거시경제학 수업을 했다. 거시경제학 강의계획서에서는 " 거시경제학의 기본 모형을 통해 현실 경제를 분석하는데 필요한 사고의 틀을 가르치고자 한다. 특히 경제 성장, 경기 변동, 실업, 인플레이션, 이자율 및 환율의 변동 등 다양한 거시경제 문제 및 이에 대한 재정, 통화 정책의 유효성을 분석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라고 서술했다. 특히 2000년 초반 거시경제학 수업에서는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거시경제의 조정 과정( 관련 논문 1 관련 논문 2)을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4]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위원회로 개편된 후 초대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이로서 정무직 공무원의 길로 들어서면서 2009년 11월 G20 정상회의 준비위 기조 단장을 지냈다.

2008년 2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수행하기 전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하였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같이 긴 기간의 확정적 임기가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는[5], 통상 교수직을 휴직한 상태에서 공직을 겸하는데[6], 사직을 한 경우는 흔치 않아 당시에 큰 화제가 되었다.

하버드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7]을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맺었고 지금도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총애하는 제자로 꼽힌다. 대표적인 일화로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직접 이 교수를 IMF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다. 출처

언론 인터뷰에서 서머스 교수를 추억하며, 논문 쓰기 방식[8]이나 "엄격한 경제 논리와 자료 수집"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으며, 로체스터 대학교 재직 시절에 서머스 교수, 블랑샤 교수와 금융 관련 논문을 같이 집필하여 1993년에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라는 탑 저널에 퍼블리시 한 적도 있다.

2011년 3월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2014년 2월부터 2022년 3월까지 한국인 최초로 IMF의 고위직인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직을 맡았다. 비슷한 경우로 국제결제은행 경제 고문 및 조사국장 직을 맡은 신현송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가 있다.

2.1. 한국은행 총재

2022년 3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이창용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하였다.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측은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인선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과 협의가 있었냐는 질문에 대해 "대통령의 인사에 관한 사안이라 자세히 답변 곤란하나, 한국은행 총재 공백 최소화[9]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의견을 들어서 내정자를 발표하게 됐다" 밝혔다. #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 관계자는 언론에 "이창용 후보는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절차적으로는 문재인 정부 인사이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쪽에서도 추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 특히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은 통의동 인수위에서 기자들과 만나 "협의를 했다? 저는 이것이 결국은 갑자기 임명을 강행하기 위한 명분밖에 안 된다. (협의) 절차는 전혀 없었다"고 일침했다. " 이철희 정무수석이 '이창용씨 어떠냐'고 해서 (제가) '좋은 사람 같다'고 했는데 이걸 갖고 의견을 받았다고 하는데 납득이 가냐"며 "화해의 제스처라고 보는데 저희는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장제원 실장은 "발표하기 10분 전 전화가 와서 발표하겠다고 해서 (제가) 웃었다"라며 "아니 무슨 소리냐, 일방적으로 발표하시려면 그건 (청와대) 마음이니까 마음대로 하시라, 저희는 그런 분 추천하고 동의한 적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자꾸 그렇게 거짓말을 하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다 공개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 각종 반응들을 조합해본다면 정황상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측하고 청와대에서 이창용 후보 이야기가 오갔던 것은 맞는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이게 임명해줄 것을 요구하는 이야기였는지는 알 수 없다. 향후 보도 자료들이 존재하지 않기에 진실은 미궁으로 빠져들게 되었다.[10]

국제통화기금(IMF)은 보도자료를 내고 “이 국장이 중요한 자리에 지명된 것을 축하하며, IMF에 대한 그의 탁월한 기여에 감사드린다”며 앞날에 성공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

이창용 후보자는 지명 다음 날인 3월 24일, 지명 소감을 밝히면서 “성장, 물가, 금융안정을 어떻게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통화정책을 운영해 나갈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이창용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4월 19일에 열기로 합의하고 4월 12일에 인사청문회와 관련한 안건을 의결했다. #

2022년 4월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인사청문회를 열고 여야 합의로 표결 없이 인사 청문 경과 보고서를 채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안을 최종 재가하면 이르면 4월 21일, 적어도 이번 주 이내에 취임할 전망이다. #

2022년 4월 20일 오후 6시 30분에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안을 최종 재가했다. # ## 다음 날인 4월 21일 오전에 이 총재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수여받았다. #

같은 날 취임사에서 "디지털 경제 전환과 더불어 세계화 후퇴 흐름이 코로나 이후 뉴노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신기술 확보 경쟁, 지정학적 경제 블록화 등으로 국가 간 갈등이 심해지고 정치·경제·안보 등 이슈도 연계되면서 국제정세는 더 복잡해질 것"이라며 한국 경제의 현실을 진단했다. #

한국은행 총재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의사봉을 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0.25%p 인상했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1.75%까지 올랐다. #

이후에도 한국을 포함해 범세계적으로 극심해지는 인플레이션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되었는데, 과거와 달리 인플레이션을 견인하는 요인이 단순히 수요 견인이 아니라 다양화된 상황에서 한미 금리 역전 가능성, 가계부채 및 부동산 대출 문제 등을 고려해 금리 인상을 '빠르지만 과속은 아니게' 해야되기 때문. 이 총재는 2022년 6월, 물가 꺾일 때까지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하되 미국 금리를 따라가기보다는 국내 외환, 채권시장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

하지만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인상률이 무려 9.1%에 달해 최대 1%p 수준의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예상되고, 한국 역시 물가 상승이 지속되자 7월 13일, 금리를 한번에 0.5%p 인상하는 소위 '빅 스텝'을 단행했다. 이후에도 점진적인 금리 인상을 예고하는 발언이 되면서 연말까지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예상된다. #

하지만 후속해서 미국이 7월 28일, 두 번째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을 단행하면서 2년 반 만에 한미 기준금리가 다시 역전되고 말았다. #

2022년 한국의 원/달러 환율 폭등 추이를 두고, 한국 IMF가 적정하다고 판단하는 ARA EM Metric 100~150% 수준보다 적은 외환보유액으로 인해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하여 ' 내가 IMF에서 와봐서 아는데[11], 그런 기준은 신흥국에 적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

다만, 기준금리 역전으로 인한 환율 압박에 금리 상승에 대한 필요성은 느꼈는지 8월 25일 통화정책방향관련 기자간담회 중 "올해 3% 올리면 연말 이후로는 금리를 올리지 않을거냐?"라는 질문에 인상기조를 유지한다면서 "연말 이후로는 금리를 올리지 않을거라고 예상한 투자자가 있다면 자기 책임하에 손실을 보시던지 이익을 보셔야 될 것 같고요."라고 발언했다. 이때 지속적 금리 인상기조를 유지한다는 매파적 발언과 맞지 않게 해맑게 웃으며 발언하는 바람에 당시에는 다소 비판여론이 있었다.

미국이 다시 한번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을 단행하면서 환율은 1,400원을 돌파하였다. 이에 이창용 총재는 빅스텝을 언급하였다. #

결국 10월 12일 열린 금통위에서 금리를 0.5%p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최초의 연속 빅 스텝으로 10년만에 기준금리 3%시대를 열었다. 이날 밝힌 금통위원간 포워드 가이던스에서 금리 정점은 3.5% 수준이나 이것이 콕 집어서 정점이라고 정한 것이 아닌, 시장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겨뒀다.

2023년 2월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 출석했고, 이 자리에서 정부의 공공요금 상승과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재는 공공요금 상승에 대해서는 "공공요금이 올라 물가상승률 둔화를 막는 요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경제 전체로는 에너지 가격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에너지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경상수지 적자로 환율에 악영향을 주고 결국 물가도 오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한전 적자가 커지면 한전채 발행도 늘어 시장금리를 높일 수도 있는 만큼 전기·수도·가스요금 등을 적정 수준으로 올려 부작용을 막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또한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반드시 (물가 안정과) 상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다주택자 규제 완화 등은 거시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급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으로, 이 정책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문제지만 지금까지는 영향이 미미하고, 물가 안정은 한은이 금리정책을 통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

2023년 4월 21일로 취임 1주년을 맞게 되었다. 취임 1주년을 앞두고 4월 3일~13일 한은 노동조합이 조합원 1002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물가안정·국제적 위상 상승 등 이창용 총재의 업무능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지만, 급여 등 내부경영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 ##

2023년 5월 25일 이창용 총재는 3.5%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같은 시기 미국은 기준금리가 5.25%여서 한미간 금리 격차는 1.75%p이다. 다만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한편, 기자간담회에서 " 재정· 통화 정책은 단기적으로 경제를 안정시키는 것"이라며 "우리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는 구조개혁에 달려있는데, 거기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재정·통화정책을 통해 해결하라고 하면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한은 총재가 통화정책 외의 사회 현안에 대해 강도 높게 발언하는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 #

2023년 6월, 한은 안팎에서 차기 경제부총리에 지명될 것이라는 하마평이 한때 돌기도 했다. 추경호 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2024년 총선에 출마하면서 자리를 비울 예정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실제로는 최상목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이 후임 부총리로 임명되었다.

2023년 11월 13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BIS 총재회의에서 BIS 글로벌금융시스템위원회(CGFS) 의장에 선임되었다. 한은 관계자는 "CGFS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 등이 참석하는 세계경제위원회(GEM)의 의제를 정하고 이를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며 " 기축 통화국이 아닌 국가의 중앙은행 총재가 의장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

이창용 총재 취임 이전에는 한국은행에 대해 '조용한 절간 같다', '한은사(寺)'라는 평가도 나왔는데, 총재로 재임하면서 삼성전자, 네이버 등 민간기업들이나 정부부처와의 MOU을 늘리고 있다. 2,000여 명에 달하는 고급 두뇌를 갖춘 한은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총재의 평소 지론이기 때문이다. 법정 업무인 물가·금융 안정을 소홀히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한은 관계자는 "MOU 대상 기관을 보면 한은이 연구한 주제와 연결된다"라고 반박했다. #

2024년 8월 국회 강연에서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금융이 집값을 상승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대출이 부동산 관련 산업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강연 내용은 9월 20일 한국은행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었다. #

2024년 9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기준금리를 0.5%p 인하하면서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줄어들자, "국내 요인에 더 가중치를 두고 통화정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연준을 따라서 한국도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언론의 압박이 커지는 것이지 외환시장의 압박은 줄어든다"라며 우회적으로 선을 긋는 발언도 내놨다. #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동결할 경우 내수 부진이 이어질 수 있고,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집값과 가계부채가 상승할 수 있어, 한국은행과 이창용 총재가 딜레마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

2024년 10월 한국은행 역시 미국을 따라 기준금리를 인하해 3년 2개월만에 긴축에서 완화로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했다.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6명 중 본인을 포함한 5명은 0.25% 인하 의견을 냈고, 장용성 위원 혼자 동결이라는 소수의견을 내, 3.5%에서 3.25%로 0.25%p 인하를 결정했다. 2024년 2/4분기에 -0.2% 역성장을 기록하는 등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9월 물가상승률은 1.6%로 한국은행의 목표치인 2%를 달성했고, 급증하던 가계대출 역시 9월 들어 둔화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금리 인하의 배경으로 분석된다. # 기자회견에서 이 총재는 향후 추가 인하 여부에 대해서는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3.25% 유지' 의견, 1명이 '추가 인하 가능성'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그리고 금리 인하 속도에 대해서는 "미국이 50bp 내렸다고 해서, 우리도 해외와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라면서, "우리는 해외에는 없는 '금융 안정'이란 측면을 고려하고 있다. 이번에도 금융 안정에 대한 고려를 상당히 했기 때문에 '매파적(긴축 선호) 인하'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속도조절을 시사했다. #

3. 논란

3.1. 김은혜 후보 면담 논란

2024년 3월 11일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만나 건설경기,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기준 금리 인하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김 후보는 이 총재와의 면담 사진을 편집해 올렸으며, 이 총재가 "통화신용정책을 통해 나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한국은행에게 주어진 의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

이 총재가 김 후보 공약에 동조해 기준금리를 내릴 것처럼 비칠 소지가 있어, 한국은행의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유희준 한국은행 노동조합 위원장은 이 총재의 처신을 비판했다. 그는 '직원은 관련 법령에서 금지하고 있는 선거운동 및 여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는 한은 취업규칙을 언급했다. 이어 "지역구 이익을 추구하며 당선을 위해 금리 인하 요구를 하는 총선 후보에게는 선거운동에 도움이 될 만한 면담 등 일말의 여지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

다만 김은혜 후보와의 면담으로부터 7개월이 지나도록 기준금리는 3.5%로 동결을 유지했다가, 2024년 10월에 미국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한국은행 역시 기준금리를 0.25%p 인하했다.

3.2. 서울대 지역할당제 논란


2024년 8월,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가 서울대학교 입학 정책에 대해 지역 할당제를 제안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창용 총재는 현행 성적 위주의 입시 제도가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지역별 학령 인구에 비례한 신입생 선발을 제안했다. 한국은행의 보고서는 서울대 진학률이 학생들의 자질보다는 '거주 지역'에 따라 결정된다고 언급했다. 이창용 총재는 수도권 부동산 초과 수요와 가격 폭등의 원인으로 '입시경쟁'을 지목했고, '강남 불패 신화'의 고착화를 비판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강남에 대한 역차별이자 위헌 소지가 있다는 반발을 일으켰다. 특히 이창용 총재가 제안한 지역 할당제가 중국의 대입제도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중국 제도 도입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이 논란은 한국 사회의 교육 불평등, 지역 격차, 부동산 문제 등 복합적인 사회 문제를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은행의 역할과 권한에 대한 논의도 촉발시켰다. # 박수영 의원이 이 의견에 동조하는 의견을 낸 바 있다

4. 저서

  • 경제학원론( 이준구 공저)
    우리나라에서 맨큐의 경제학과 더불어 많이 보는 경제학원론 교과서다. 본인이 거시 파트 초안을 썼으며, 이준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문장을 다듬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서울대학교 교수 재임 시절에는 거꾸로 본인이 미시 파트인 원론1을 강의하고 이준구 교수가 거시 파트인 원론2를 강의하였다.[12] 이준구 명예교수의 저자 직강 인강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K-MOOC 링크

5. 여담

  • 서울대 대학원 재학 시절 이준구 교수와의 일화가 있다. 이준구 교수는 84년 3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당시 이창용 총재는 1984년 2월 학부 졸업 후 석사과정에 들어갔긴 했으나 하버드 대학교 박사과정 유학이 이미 정해진 상태였어서 유학 전에 실컷 놀아두자는 생각으로 수업도 안 들어가고 체력단련이나 했는데, 당시 테니스를 좋아하던 이준구 교수 눈에 걸려 첫 인상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준구 교수에게 농담식으로 많이 갈굼 당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준구 교수의 퇴임 기념 문집 <꽃보다 제자>에 의하면 이준구 교수는 나중에 이 총재의 서울대 교수 지원 당시 이로 인해 반대하려다가 많이 참았다고 하고, 이 총재가 테니스를 자주 쳐서 풀어드렸다고 한다.
  • 뛰어난 강의력을 자랑하며, 학부 동기인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에 따르면 로체스터대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올해의 교수상'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모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할 때에는 전공 강의뿐만 아니라 타과생들을 위한 교양 과목까지 맡아 명강의로 이름 높았다.
  • 키가 엄청 크다. 기사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90cm 전후라고 한다. # 나이를 생각해보면 대단한 장신이다. # 2023년 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6명이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유독 이창용 총재의 키가 돋보였다. 사진 취미는 농구, 테니스. 이준구 교수에 의하면 덩치만 컸지 허당이라서 테니스 칠 때 공을 공중으로 날리기 일쑤였다고
  • 키가 큰 만큼이나 엄청난 대식가이기도 한데, 이준구교수 말에 따르면 이창용교수와 붕어빵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붕어빵 뿐만 아니라, 학생들 식사 대접하거나 할 때도 많이 시키고 많이 먹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대식구가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먹는 가풍이 있었다고...
  • 왼손잡이로 위의 프로필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글씨도 왼손으로 쓴다. 연배를 고려하면 희귀한 케이스.
  • 조선시대 서화가인 신사임당의 넷째 아들이자 율곡 이이의 남동생인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15대 차종손이다. 여러 매체에서 무비판적으로 이전 매체에서의 서술을 답습해 15대 또는 16대 종손이라고 기재했지만 실제로는 16대손이며, 종손도 아니다. 옥산 이우는 슬하에 1남 6녀를 두었는데, 이 외아들이 성재(省齋) 이경절(李景節, 1571 ~ 1640. 7. 29)이며, 이경절은 슬하에 5남 3녀를 두었는데, 이창용은 이경절의 장남 이집(李𥠋, 1597 ~ 1671. 3. 28)의 후손이기는 하나, 이집의 차남 학정(鶴汀) 이동명(李東溟, 1624 ~ 1692. 9. 24)의 12대 주손(胄孫)이므로 차종손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종손이라고는 하기 어렵다.[13] 어쨌든, 이창용은 옥산 이우의 15대 차종손으로서, 집안에 내려오는 유물을 강원도 강릉시에 몇 차례 기증했다. 2007년 3월 유물 385점을 기증했고, 2008년 1월 유물 66점을 다시 기증했다. 조부인 故 논산(論山) 이장희(李璋憙, 1909. 1. 14 ~ 1998. 5. 20) 또한 1965년에 현행 5천 원권 화폐 도안으로 사용되고 있는 신사임당의 초충도 등 유물 12점을 기증했다.[14][15]
  • 정무직 공무원을 역임한 대학 교수이자 경제학자라는 이미지와 다르게, 패션이 캐주얼 하다는 평이다. 과감한 패턴의 넥타이도 많이 착용하는 편에, 한국은행 총재 지명 이후 공항 패션이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
  • 코로나19로 인해 6~7개월 가량 투병해야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한 건강상 문제 때문에 한국은행 총재 지명을 고사하려다, 장고 끝에 수락했다고 전해진다.
  • 이창용이라는 이름에서 창(槍)용(龍)이랍시고 스피어 드래곤(Spear Dragon) 혹은 랜스 드래곤(Lance Dragon)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이들이 있다. 물론 실제 한자는 다르다. 그리고 이재용이 재드래곤, 재디로 불리듯 창드래곤이라는 별칭도 있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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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
이창용
( 한국은행 총재 당연직)
부의장
유상대
( 한국은행 부총재 당연직)
위원
이수형
장용성
( 한국은행 총재 추천)
황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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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화
(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추천)
신성환
(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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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당공파(春塘公派)-옥산공파(玉山公派) 28세 용(鏞) 항렬. [2] 1983년 8월 25일 3을종 보충역 판정을 받았고, 1986년 7월 8일 질병(슬관절인대재건술 후유증)으로 인한 5급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았다. [3] 윤훈(尹薰)의 딸이다. [4] 이창용 교수의 거시경제이론, 주식/채권/파생금융상품2 (약칭 '주채파2') 수업은 모두 서울대 경제학부 최고의 명강의로 유명했다. 수강생이 많았기에 멀티미디어 강의동(83동) 대형 강의실을 사용했음에도 수강생으로 가득 차 복도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통상 75분인 3학점 수업으로는 한 학기 내에 거시경제학의 내용을 모두 다루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수업을 1시간 먼저 시작해서 진행하고, TA Session 등을 통해 추가 강의를 진행하는 등 열정적인 강의로 유명했다. 이 쯤 되면 학생의 불만이 많을 법도 하지만, 학기 시작부터 종강까지 거의 모든 시간에 강의실이 가득 찬 상태로 유지되었다. [5] 이들은 모두 임기가 6년으로 정해진 공직이다. 양창수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권영준 대법관 등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였으나, 이들 모두 국회에서 대법관 임명동의안이 가결되고 사직 처리를 한 뒤 대법관에 취임하였다. 양창수 대법관은 임기 종료 후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김재형 대법관은 임기 종료 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돌아갔다. [6] 폴리페서 방지법 이전에는 안민석 국회의원을 3선을 하면서 무려 12년간 휴직한 경우도 있었으며, 현재도 정치인이 아닌 장관, 차관 등 공직은 보통 교수직을 사임하지 않는다. 교수가 장기간 휴직하면 티오만 차지하고 강의는 하지 않아 수업을 퀄리티가 보장되지 않는 시간강사로 때우거나 개설되는 수업 자체가 부족해지는 부작용이 있는데, 휴직으로 학생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가 돋보인다. [7] 빌 클린턴 행정부의 마지막 재무장관(1999~2000)이었고, 조지 W. 부시 당선 이후 하버드 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나 2005년 1월 성차별적인 발언을 내뱉는 바람에 사퇴 요구에 직면, 2006년 총장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또한 그는 버락 오바마 1기 행정부의 재무 장관으로도 유력시되었지만, 역시나 이 발언 때문에 장관으로 복직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 [8] "학위 논문을 쓰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네. 하나는 대가(大家)의 논문을 읽으며 개선점을 찾는 것이고, 둘째는 현재 논란이 되는 경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 통계 자료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지. 나는 후자를 권하고 싶네." [9] 전임 이주열 총재의 임기는 4월 1일까지였고, 이창용 총재의 임명이 늦어져 한은은 결과적으로 20일 가까이 부총재 직무대행 체제로 굴러가야 했다. [10] 다만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이창용 총재에 대한 정권 차원의 압박이 딱히 들어가지 않았던 것을 보면, 인수위 측에서도 이창용 총재 임명에 반대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11] 이창용 총재는 IMF 아태국장을 지냈다. [12] 전공과 반대로 강의를 한 이유는 2학년부터 자기에게 거시경제학을 수강할 텐데 원론 거시 파트 배울 때도 본인에게 배우면 지겨울 것 같아서라고 한다. [13] 이집의 장남으로 교은(郊隱) 이동야(李東野, 1617 ~ 1667. 11. 21)가 있고, 이동야의 11대 주손(胄孫)이자 옥산 이우의 14대 종손은 이재경(李載敬, 1949. 4. 2 ~ )이라는 사람으로 덕수이씨세보 지편(智編) 上 875쪽에 버젓이 올라가 있다. [14] 출처 [15] 결과적으로는 할아버지 댁에 모셔왔던 그림이 들어간 손자가 도장을 찍어 발행하는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