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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벨라루스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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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벨라루스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중세2.2. 근세2.3. 근대2.4. 소련2.5. 21세기
2.5.1. 2020년대
2.5.1.1.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3. 문화 교류4. 체육 교류5. 교통 교류6. 대사관7. 관련 기사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우크라이나는 북쪽에 위치한 벨라루스와는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밀접한 사이이면서도 여러 가지 갈등을 겪고 있다. 소련 시절에는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 사이의 교류가 많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벨라루스가 반서방 정책을 취하면서 양국 정치권 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단, 그렇다 해도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를 엄연히 주권 국가 취급을 하며, 자주성을 어느 정도 존중하고 있다. 루카셴코 대통령이나 벨라루스 언론은 우크라이나를 가리킬 때 'в Украине' 라 하는데,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 언론은 'на Украине' 라고 지칭해 마땅히 다시 합병해야 할 자국의 일개 '지방' 으로 칭한다.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역사를 상당부분 공유하며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동슬라브 민족에 속한다. 양국은 둘 다 동유럽 정교회 문화권에 속한다.

2. 역사적 관계

2.1. 중세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는 키예프 루스를 같은 조상으로 두고 있다. 키예프 공국이 동로마 제국의 영향으로 정교회로 개종하는 과정에서 벨라루스 지역의 폴로츠크 공국, 투로프 공국 역시 정교회로 개종되었다. 흑해 지역에서 드네프르 강을 통해 키예프로 운송된 동방 물산은 노브고로드 방면 혹은 다우가바강 방면으로 향하여 북유럽 각지로 이동되었으며 반대로 벨라루스 일대의 꿀과 전쟁 포로 노예, 모피 등이 다우가바 강을 통해 키예프로 수출되었다.

키예프 공국이 쇠퇴하는 과정에서 벨라루스 일대의 폴로츠크 공국은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의 공격을 받아 다우가바강 수운 교역로를 상실하고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 비슷한 시기 우크라이나 지역은 몽골 제국 군대의 침략으로 초토화되었다. 키예프 공국이 멸망한 뒤에는 오늘날의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모두 라틴어로 루테니아라고 불리었다. 갈리치아, 볼히니아, 포돌리아를 포함하는 우크라이나 서부 일대와 폴란드 동남부 일대는 적루테니아라 불렸으며, 민스크, 비텝스크, 폴로츠크를 포함한 벨라루스 중부, 동부 일대는 백루테니아, 나바흐루다크를 중심으로 한 벨라루스 서부 일대는 흑루테니아라 불렸는데, 이 백루테니아(Ruthenia Alba)가 벨로루시 즉 오늘날 벨라루스 국명의 기원이 된다.

13~14세기가 지나며 벨라루스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영토가 되었고, 우크라이나 일대는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 타타르 세력이 각축을 벌여서 역사가 복잡해졌다. 13세기 벨라루스의 폴로츠크 공국은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의 침략을 받아 다우가바 강 무역로를 상실하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 동쪽으로는 타타르에게 위협을 받고 조공을 바치던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리투아니아의 여러 부족들이 민다우가스의 지휘 아래 통일하고 동진하자 벨라루스 여러 지역의 공후들은 리투아니아 대공국 측에 투항하고 기존 기득권을 상당부분 보장받았다. 본래 발트 해 연안 늪지대에 거주하던 리투아니아인들은 벨라루스의 삼림 지대와 늪지대를 넘어 우크라이나 일대로 진군하여 루테니아 왕국과 전쟁을 벌임은 물론 14~15세기에는 킵차크 칸국에 조공을 바치던 여러 우크라이나 지역 공국들을 병합하면서 일시적으로 키예프 루스 전성기의 영토를 상당부분 회복하는데 성공하였다.

루테니아 왕국이 몰락한 이후 오늘날 우크라이나 서부 갈리치아 지방은 폴란드 왕국이 그리고 자카르파탸 지방은 헝가리 왕국이 그리고 우크라이나 중부와 북부 지방 대부분 지역은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장악하였다. 그러나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우크라이나 장악은 비타우타스 대공 시절까지만 해도 확고했으나 이후 동남부 크림 반도 크림 칸국이 들어서면서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크림 타타르족들은 당시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영토에 해당하는 우크라이나 초르노젬 지역을 정기적으로 침략하여 수많은(연 평균 2만여 명에 달하는) 루테니아 주민들을 노예로 납치하면서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우크라이나 지배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부와 중부 영토 대부분이 평야 지대인 우크라이나 일대를 리투아니아 대공국 측에서 제대로 방어하기는 불가능했다. 이 와중에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대치하던 모스크바 공국에서 벨라루스 지역까지 침략하며 밀고 내려오자 결국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그동안 동군연합 상태였던 폴란드 측과 연방제 형식으로 통일하게 되었다.

2.2. 근세

파일:폴란드 왕국, 리투아니아 대공국 1561년 지도.png 파일:Irp1569.jpg
  • 루블린 조약 전후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영토 변화. 리투아니아 대공국 영토(노란색)였던 우크라이나 중부-동부 지역이 폴란드 왕국 영토(연노랑색)으로 이동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루블린 조약 이후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모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벨라루스 지역은 그대로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영토로 남았으나 공식적으로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영역였던 우크라이나 중부와 동부 지방 상당수가 폴란드 왕국 측으로 넘어갔다. 이는 오늘날의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국경으로 상당부분 이어지게 된다.

폴란드 측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정교회 신도들을 동방 가톨릭 교회로 강제 개종시키는데, 이는 근대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 및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의 기원이 되었다. 결국 코사크들이 자치를 누리던 우크라이나 중부/동부 이외 대부분의 지방은 동방 가톨릭으로 개종된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각 도시 자체는 원칙적으로는 거의 독립된 작은 개별 공화국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고립된 상황 때문에 거의 모든 소시민신분 주민들은 예외 없이 귀족이나 지주들의 행정에 완전히 종속되었다. 소시민들은 의회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입법 과정이나 방향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다. 입법 권한은 지주와 귀족들 손에 있었고, 귀족들은 지주로서의 자기 이익을 위해 소시민들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제한했다. 이렇게 되자 결국 도시는 외부에서 온 세력, 특히 유대인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이는 폴란드 귀족 경제에 다른 누구보다도 유대인들이 잘 적응했기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 / 미하일로 흐루셰우스키

한편 중세 이래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폴란드와 함께 유럽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 되었다. 본래 우크라이나는 키예프 루스 시절부터 동로마 제국 하자르 칸국 등지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했는데, 이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현지 통치자들[1]의 호의를 얻어 무역과 금융에 종사하였다. 물론 이때도 지배층으로부터 호의를 얻었다 뿐이지, 현지 주민들로부터는 눈칫밥을 얻어먹는 처지였고 종종 반유대인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2] 11세기 이래 우크라이나는 남쪽과 동쪽뿐만 아니라 서쪽에서도 유대인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유대인은 동유럽으로 보다 나은 경제적 기회를 찾아 이주한 경우도 있었으나, 대개는 서유럽에서 반유대주의 폭력[3]과 인신자유에 대한 위협이 점증하였으므로 이주했다.

서유럽 유대인의 이주 물결이 가장 빨리 닿은 폴란드 왕국에서 유대인들은 귀족과 농민들 사이의 중간계층(상인, 수공업자 등)으로 자리잡았다. 14세기 이후 폴란드 왕국이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폴란드와 연합한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폴란드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연스레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지역으로 유입되는 유대인들도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폴란드-리투아니아 시절 정착한 유대인 농민들은 농노들에 비해 훨씬 가벼운 조세 부담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반면에 농노들은 일주일에 8인일을 부역할 것이 요구되었다) 농노 계층이 상공업 종사가 제한되고 교역이 금지된 것에 비해서 유대인들은 교역에 제한이 덜했다. 근세에는 유대인의 60~80%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한 나라에만 몰려있었을 정도였고, 이들 대부분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일대에서 번영했던 것이다. 물론 중간 계급으로서 유대인 공동체는 가장 낮은 계급으로 머무른 농노들과 필연적으로 갈등을 빚게 되었고, 여기에 우크라이나에서는 농노 및 정교회 사제, 코사크들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지배층과 종교 갈등까지 겪으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앞잡이로 인식된 유대인들이 포그롬의 희생양이 되었다.

근세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농노제가 개악되고 러시아 제국이 팽창하면서 벨라루스 전역이 초토화된 적이 있었는데 때문에 많은 벨라루스인 난민들이 꾸준히 남쪽으로 탈출하여 우크라이나 코사크에 합류하였다.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 지역은 벨라루스계 조상을 둔 사람들이 많기로 알려져 있다. 코사크에 한해서 정교회를 믿을 자유를 보장하던 폴란드 측에서 다시 코사크들의 자치권을 줄이고 동방 가톨릭을 강요하자 코사크들은 보흐단 흐멜니츠키 대봉기를 일으켜 루스 차르국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2.3. 근대

보흐단 흐멜니츠키 대봉기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력은 걷잡을 수 없이 약화되었고, 이는 폴란드-리투아니아가 3차례에 걸쳐 북서쪽의 프로이센, 남서쪽의 오스트리아와 동쪽의 러시아 제국에게 각각 분할당하는 폴란드 분할로 이어진다. 폴란드 분할 과정에서 벨라루스 전 지역과 우크라이나의 대부분 지역[4]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과 소련 시기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 러시아인 사이에는 상호간의 통혼이 활발한 편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에 속한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 리비우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과 다르게[5] 전 영토가 러시아 제국에 속한 벨라루스 지역의 경우 민족주의가 발흥하기 어려웠다.

유대인을 우대했던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다르게 러시아 제국은 유대인 인구에게 이런저런 박해를 가했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상당수의 유대인 인구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떠나 미국,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러시아 제국은 자국 내 정교회 신도들의 이민은 크게 제한했던 것과는 반대로 유대인이나 가톨릭교도들의 이민은 막지 않았다.

2.4. 소련

소련 시대 양 지역에는 각각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들어섰다. 양측은 사실상 같은 국가 내 다른 지방 수준의 차이라 할 정도로 서로 이질감이 없었고 교류가 활발하였다.[6] 다른 한편 전간기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서부 지역은 폴란드 제2공화국의 영토에 속했는데 당시 폴란드 내에서 정교회 신도 혹은 동방 가톨릭 신도들이 이등시민으로 차별을 받는 과정에서,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 인구 상당수가 미국이나 아르헨티나로 이주하기도 하였다.[7]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동병상련 관계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벨라루스 점령 문서 참조.

2.5. 21세기

소련 해체 이후 체르노빌 문제를 제쳐두고라도, 오늘날 벨라루스는 아직은 친러국가로 분류되고, 우크라이나는 서부가 반러라는 점에서 사이가 껄끄러운 편이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벨라루스가 러시아와 갈등을 빚자 양국간의 관계가 개선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2020년부터 양국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유로마이단으로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쫓겨나고 러시아로 도피했을 때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

2.5.1. 2020년대

2020년 8월, 벨라루스에서 시위가 발생된 것과 관련해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갈등을 빚고 있다. 8월 27일에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와의 모든 교류와 협력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

벨라루스내의 유대인들이 우크라이나 입국을 시도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측에서 국경을 막으면서 갈등이 시작되고 있다. #

2021년 7월 2일, 벨라루스가 적대세력의 무기수입을 이유로 우크라이나 국경을 폐쇄했다. #

벨라루스의 반정부 인사가 키이우의 공원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

벨라루스와 폴란드 간의 난민 분쟁 와중에 난민들이 우크라이나 방향 가능성이 있자 벨라루스 국경 쪽에 경비강화를 가졌다. #

벨라루스가 2021년 11월 18일부터 우크라이나에 전기 공급을 중단한다. #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 반도 문제를 두고 양국이 갈등을 빚었다. #
2.5.1.1.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벨라루스군과 합동훈련을 하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벨라루스 국경을 넘어 동쪽 방면에서 진군한 러시아군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시작했다. # 벨라루스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단 보도에 대해 루카셴코 대통령은 부인했지만, 양국간 갈등은 거세지고 있다.

벨라루스측이 우크라이나 외교관들을 추방시켰다. #

벨라루스가 긴급군사훈련을 실시하자 우크라이나는 대응을 한다고 밝혔다. #

벨라루스가 우크라이나 접경지 3곳에 특수부대를 파견해 주둔시켰다. #

10월 14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벨라루스가 '대테러 작전'을 선포했다. #

12월 20일, 벨라루스 측이 러시아와의 연합훈련을 고려해 우크라이나 국경지역의 출입을 제한했다. #

12월 23일. 양 국 간의 4개 협정을 종료한다. #

12월 25일, 벨라루스는 러시아에서 받은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 S-400 방공미사일을 운용할 준비가 됐다고 밝히며 우크라이나가 사정권에 들어섰다. #

12월 29일, 벨라루스에 우크라이나제 미사일이 떨어졌다. #

2023년 7월 1일, 바그너 그룹 쿠데타가 실패한 뒤에 바그너 그룹이 벨라루스의 군사기지를 이용할 것이란 가능성이 나오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부 전선에 대비한다고 밝혔다. #1 #2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력을 보강하기로 했다. #

3. 문화 교류

양국은 정교회 문화권, 동슬라브 문화권에 속해 있기 때문에 공통점이 많으며, 민간 차원에서는 우호 관계 및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내에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등 동방 가톨릭교 신자들이 존재한다. 다만, 벨라루스내에는 소수의 신자만이 거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는 양국에서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소련 러시아 제국의 영향으로 러시아어도 널리 쓰이고 있다. 다만 벨라루스에서 러시아어가 벨라루스어와 함께 공용어에 포함된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어가 공용어에 포함되지 않았다.

오늘날 우크라이나-벨라루스 국경 지대의 주민들은 우크라이나-벨라루스 전이형 방언을 사용한다. 아마도 중세 무렵에도 이러한 발언들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전근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루스 공국들에서 서로 다른 별개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4. 체육 교류

유로 2016 예선 C조에서 만났고 총합스코어 5:1로 우크라이나가 이겼다. 현재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유럽축구연맹이 두 국가를 강제로 다른 조로 분리시켰기 때문에 두 대표팀이 만날 수 없다.

5. 교통 교류

양국을 잇는 항공노선, 철도, 도로가 존재한다. 다만, 항공노선은 2020년에 양국이 갈등을 빚자 축소됐다. 그리고 2021년에 벨라루스측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폐쇄하면서 철도, 도로로의 이용이 중단됐다.

6. 대사관

벨라루스는 키예프에, 우크라이나는 민스크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에서 대사관을 철수시켰지만,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에서 대사관을 철수하지 않고 업무를 계속하고 있다.

7. 관련 기사

8. 관련 문서



[1] 단순히 하자르 칸국이나 몽골 제국같은 '외부' 지배자들 뿐만 아니라 현지의 수많은 루테니아계 공국의 지배자들을 포함함. [2] 예를 들어 1113년에는 키예프의 유대인이 현지 주민에게 재산을 약탈당했다. [3] 예를 들어 흑사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은 포그롬이 빈발했다. [4] 리비우를 필두로 한 서부 5개주 제외 [5] 러시아 제국 영토에서 수배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오스트리아 영토로 피신하거나 아니면 반대의 경우도 가능했다. [6] 벨라루스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만 해도 부모 한 쪽이 우크라이나계이다. [7] 우크라이나계 아르헨티나인 문서 참조. 그리고 한 때 시카고에 극소수 잔류했던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 공동체 역시 이 당시 이주한 벨라루스인들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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