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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크라이나와 스페인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소련 해체 이후에 수교했다. 양국은 국가 대 국가 차원에서 수교한 역사는 얼마 되지 않으나 인적 자원 교류는 활발한 편이었다.2. 역사적 관계
2.1. 중세
오늘날 스페인과 우크라이나 사이의 지리적 거리가 다소 멀기 때문에 교류가 적었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서고트족이 한 때 우크라이나 초르노젬 초원 일대에 정착하였다가 이베리아 반도로 이주하여 서고트 왕국을 건설한 점. 그리고 후우마이야 왕조에서 슬라브인 인구가 대거 유입된 역사 등등 인적 자원 교류는 적지 않은 수준이었다.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직계 기원으로 여겨지는 키예프 루스 역시 후우마이야 왕조 그리고 후우마이야 왕조 멸망 이후 들어선 여러 타이파 왕조들 사이의 간접 교류는 적지 않은 수준이었다. 키예프 루스의 주 수출품은 노예였는데, 적지 않은 수의 노예들이 유대인 상인들에 의해 프라하와 베르됭을 거쳐 후우마이야 왕조로 매매되었던 것이다. 후우마이야 왕조는 기본적으로 아랍인과 베르베르인들이 중심이 된 국가였으나, 부족 사이의 알력 때문에, 노예들을 용병으로 이용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그러나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기독교 세력과 전쟁에서 얻는 포로 만으로는 필요한 노예 수요를 충당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이는 중유럽[1]과 남유럽 각지[2]에 전쟁터에서 포로가 된 슬라브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로 유입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2.2. 중세 말
이베리아 반도 내 기독교도들의 영토 탈환 운동이었던 이른바 레콩키스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스페인의 여러 기독교 왕국들은 자국 내 유대인 인구 상당수를 학살하거나 추방하였다. 적지 않은 세파르딤들이 비교적 박해가 약했던 네덜란드, 혹은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하였으나, 15세기 이전에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고 13~14세기 당시에는 폴란드 왕국 그리고 당대 폴란드 왕국의 영토였던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으로 이주한 인구가 더 많았다. 이는 근세 폴란드-리투아니아는 당시 유대인에게 가장 관용적인 국가였고 동시에 유대인 이민을 장려하였기 때문이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추방된 세파르드 유대인들 중 네덜란드나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한 경우는 세파르딤 의례 등을 그대로 고수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폴란드-리투아니아로 이주한 경우는 당대 동유럽의 상업이 독일어권과 밀접한 이유로 이디시어를 사용하게 되고, 동유럽의 여타 아슈케나짐 인구와 동화되었다.중세 레콩키스타 시대 당시 유대인들은 무슬림 지주와 가톨릭교도 농민 사이에서 마름 역할을 하였다면, 근세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일대의 유대인들은 가톨릭교도 지주와 정교회 혹은 동방 가톨릭을 믿는 농노 사이에서 마름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2.3. 근세
종교개혁 시대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스페인인들을 중심으로 예수회가 창설되었다. 예수회 회원들은 선교 및 가톨릭 세력권 보호를 위해 유럽 이외에도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각지에서 활동을 벌이던 단체였고, 예수회의 세력권 내에는 우크라이나 섭가 포함되어 있었다. 16세기 말 브레스트 연합 이후 동방 가톨릭 교회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지역에 들어서는 가운데 예수회 회원들은 현지 동방 가톨릭 신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진흥 활동에 전력하였다.대부분의 교육 시설들이 종교 기관에 종속되어 있었던 근세 당시, 정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는 중세 시대에서 더 진보하지 못하고 정체되었던 데 비해, 가톨릭 계열 학교들은 이탈리아 반도의 르네상스 문화 및 프랑스의 최신 학문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폴란드 왕국 측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의 예속을 강화하려는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는 우크라이나에 서유럽의 학문이 좀 더 원활하게 유입되는 통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예수회 선교사들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성경을 보급하고 문해율을 신장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2.4. 21세기
양국은 소련 해체 이후, 공식수교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 교류와 협력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스페인내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인 공동체가 형성돼 있다. 스페인내 우크라이나인들은 대부분이 바르셀로나에 거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경제적인 상황에 의해 스페인으로 건너가 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상당한 편이다.2.4.1.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스페인측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러시아를 비판했다. 그리고 대러 제재를 실시했다. 스페인내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지 시위가 일어났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2월 23일에 스페인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체류중인 스페인인들의 귀국을 촉구했다. # 전쟁이 일어나자 산체스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3월 3일에 스페인은 우크라이나에 대전차 유탄 발사기 1,370대를 인도한다고 밝혔다. # 3월 10일에 우크라이나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구조된 사자 6마리가 스페인과 벨기에로 각각 보내졌다. #
우크라이나인들의 피난 행렬이 이어지며 우크라이나인들의 스페인 이주가 이어졌다. 스페인에 거주하던 우크라이나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건너온 가족들과 만났다. # 마드리드의 택시기사들이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폴란드로 건너가는 경우가 늘어났다. #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키이우를 방문했다. #
2023년 2월 22일, 스페인이 우크라이나에 레오파르트 전차를 추가로 지원한다고 밝혔다. #
7월 1일, 산체스 총리가 키이우를 방문했고 우크라이나의 EU가입 등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
10월. SBU와 스페인 경찰이 합동 작전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도난당한 6천만 유로 상당의 보석류를 회수했다. #
3. 대사관
마드리드에 주 스페인 우크라이나 대사관, 키이우에 주 우크라이나 스페인 대사관이 존재한다. 스페인 정부는 키이우의 대사관을 철수했다.4. 관련 문서
- 우크라이나/외교 / 유럽연합-우크라이나 관계
- 스페인/외교
- 유럽 평의회
- 우크라이나/경제
- 스페인/경제
- 우크라이나인 / 스페인인 / 우크라이나계 스페인인
- 우크라이나어 / 러시아어 / 스페인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동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