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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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王廣생몰연도 불명
전조의 인물. 자는 광지(廣之). 출신지는 알 수 없다.
2. 생애
영가의 난이 일어나자, 왕광은 가족들을 데리고 광문제 유연에게 귀부하여 서양주자사(西揚州刺史)에 임명되고 노양후(魯陽侯)에 봉해졌다.소무제 유총이 재위하던 시기에 만족 매방(梅芳)이 산이(山夷)를 선동하여 왕광이 수비하는 성을 포위하였다. 왕광은 100여 일간 버텼으나 외부의 구원이 아직 이르지 않았고, 성 안의 식량도 다하여 개, 참새, 쥐 한 마리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왕광의 장병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왕광이 충성을 다하는데 등질 수 없다 이르며 끝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다. 이후 성이 함락되자 왕광과 그의 장병 5,000여 명은 모두 사살당했다.
왕광에게는 15살짜리 딸이 하나 있었는데, 매방은 그녀의 모습이 몹시 아리따운 것을 보고 처로 삼아 총애하였다. 왕광의 딸은 열흘동안 매방을 상대하면서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그를 암살할 기회를 엿보았다. 이윽고 기회가 찾아오고 매방이 잠든 것을 확인한 왕광의 딸은 숨겨두던 칼로 매방을 찍었으나 빗나갔다. 놀라서 잠에 깬 매방이 일어나 외쳤다.
"무엇 때문에 반역하려 하느냐!"
그녀가 차분하게 매방을 꾸짖었다."오랑캐야, 나는 역적을 주살하려는 것 뿐이거늘 무엇이 반역이냐! 내 듣기로, 아버지의 원수는 하늘을 함께하지 못 하고, 어머니의 원수는 땅을 함께하지 못 한다 하였는데, 너는 반역하여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내 부모마저 죽이는 무례함을 범했다. 나는 너를 죽이기 위해 지금까지 죽지 않고 기다려왔지만, 오늘 너를 죽여서 그 수급을 얻지 못 한 것이 한스럽구나!"
말을 마친 그녀는 들고 있던 칼로 스스로를 찔러 자결하였고, 매방은 이를 제지하려 했으나 되살리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