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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ecd21><colcolor=#00386a> 愛新覺羅 允禟 애신각라 윤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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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없음 |
별호 | 고산패자(固山貝子)[1] ⇒ 관작 삭제 |
생몰 | 1683년 10월 17일 ~ 1726년 9월 22일(42세) |
부친 | 청 성조 강희제 |
모친 | 의비 곽락라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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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명은 인탕(胤禟)이다.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의 서자이며, 5대 황제 옹정제의 이복동생이기도 하다. 강희제의 황8자 염친왕 윤사와 함께 옹정제 즉위 후 가장 가혹하게 숙청당한 황자로 유명하다.2. 생애
1683년, 강희제의 총비인 의비 곽락라씨의 두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2]강희 31년(1692), 9살에 중병으로 죽을 뻔했으나 이탈리아 선교사가 치료해주어 목숨을 구하였다. 이 일 이후로 윤당은 가톨릭 선교사들에게 호감을 보였고[3] 포르투갈 선교사 목경원과 친밀하게 지냈다.[4]
병이 나은 후 강희제와 형들을 따라 사냥에 나서 노루를 잡고 황8자 윤사와 함께 호랑이를 총으로 쏴죽여 강희제의 칭찬을 받았다.
성인이 되자 황10자 윤아, 황14자 윤정과 함께 황8자 윤사를 지지했다. 그렇지만 윤잉의 1차 폐위 당시 강희제의 명으로 황장자 윤제, 황4자 윤진과 함께 윤잉을 감시하고 있을 때 그를 도와준 적이 있다. 윤잉이 "황부가 말씀하신 죄목은 모두 맞지만, 정말로 반역을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 나를 대신해서 소명해다오."라고 부탁하니 윤제는 화를 내며 거절하고 윤탕은 윤진에게 "이 사항은 매우 크니 아뢰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동의를 구한다. 윤진은 대리 상주를 하면 책임도 짊어져야 한다며 망설였지만 결국 승낙하고 두 사람은 강희제에게 이를 상주한다. 이에 강희제는 윤잉의 철쇄를 풀라고 명한다. 이후 윤잉은 다시 복위되었고, 강희제는 대부분의 대신들의 지지를 받는 윤사를 미워하며 견제한다.
강희 48년 2차 분봉 때 친형인 황5자 윤기는 항친왕, 윤탕은 패자로 책봉되었다. 황10자 윤아는 온희귀비 뉴호록씨의 소생이기 때문에 황8자당 중에서 유일하게 군왕이라는 높은 작위를 받았다.
이후 부황인 강희제가 윤사를 미워하여도 변심없이 윤사를 지지한 형제였다. 윤사의 생모 양비 위씨가 죽자 윤아, 윤정과 함께 양비의 장례를 도왔다.[5] 강희 55년 창춘원에서 윤사가 중병에 걸렸을 때 강희제가 윤사를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명하고 황4자 윤진이 윤사를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며 다른 황자들에게도 이를 물으니 그들 역시 부황을 두려워하여 윤사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답했다. 윤탕만 홀로 화를 내며 8형이 위독하니 이렇게 돌려보내면 위험하다고 가로막았다. 이때의 일로 윤사, 윤탕은 윤진과 사이가 틀어진다.
이복형 옹정제가 즉위한 후, 옹정제의 황위 계승에 의구심을 가지며 옹정제 앞에서 반항적인 모습을 보였다.[6][7] 국상중에 또다른 마찰이 있었는데, 옹정제가 윤탕의 어머니 의비를 걸고 넘어졌다. 예부에서 의비가 병이 나서 걸을 수 없으니 병세가 완화되면 장례에 참석하도록 허락해달라고 주청하자 옹정제는 선제의 모든 비빈들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니 의비에게 가마를 태우라고 명했다. 그렇게 의비가 상에 참석하자 가마를 든 내시가 실수로 옹정제의 생모이며 성모황태후가 된 덕비 오아씨보다 앞에 서서 걸었는데 이에 옹정제는 격노하여 내시들을 벌했다.
이후 윤탕은 옹정제의 명을 받고 북경을 떠나 서녕으로 떠났다. 옹정제가 황14자 윤정을 귀경시키는 대가로 윤탕을 서녕으로 쫓아낸 것으로 다시는 북경에 돌아올 수 없다는 명을 받았다. 윤탕은 자신을 모시던 태감들에게 패물을 나눠주고 자신을 따라온 수하들에게 "나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고생한다."며 미안해했다.
윤탕은 서녕으로 떠난 뒤에도 황팔자당과 서신을 주고받았다. 이때 만주 문자를 라틴 문자로 전사한[8] 서찰을 통해 내통했다가 걸리면서 옹정제의 큰 분노를 샀고 문자를 창제하다니 적국의 첩자와 같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윤탕의 서신은 대부분 가족들과 집안일을 논하는 내용이고 역모에 대한 구절은 하나도 없다. 현재 학자들은 중국어를 만주어로 옮기는 데 용이하도록 라틴 문자를 전사한 19개의 만주 문자를 추가로 만든 것뿐이라고 여긴다.
서녕에서 옹정제의 최측근인 연갱요의 감시를 받았는데 대담하게도 연갱요를 포섭하여, 산섬 행상들과의 거래로 같이 이익을 챙기고[9] 서양 선교사와 몰래 왕래하며 재산을 빼돌리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수많은 방법으로 돈을 버는 데 열중했지[10] 옹정제에게 대항하지 않았다. 옹정제가 황8자당의 측근과 소통방식을 예전부터 알고 있는데다 사실상 추방당한 처지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11] 대신 연갱요와 친밀하게 지내고 산섬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등 옹정제의 심기를 거스를만한 행동을 했을 뿐이다.
옹정 2년, 황10자 윤아에게 쓴 "기회는 이미 지나갔고, 후회해도 소용없다."라는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서신이 옹정제의 손에 들어가면서 빌미가 잡힌다.[12]
윤탕이 잡혀가기 전, 산섬의 백성들이 윤탕을 구출하고자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13] 하지만 윤탕은 "우리 형제는 천하를 다투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의 측근인 목경원은 산섬 백성들의 대표를 잡아 관아에 넘겨야 뒤탈이 없다고 권했으나 윤탕은 그러면 옹정제가 그를 처형할 것이라며 풀어주었다. 목경원의 예상대로 옹정제는 윤탕이 역적을 제멋대로 풀어줬다는 죄목을 추가했다.
윤탕은 보정으로 압송되면서 관원들에게 옹정제가 즉위 이래 한 일들을 듣고 "(옹정제는) 원래 영리했다"라며 냉소한다.
옹정제의 명으로 보정에 압송된 뒤, 옹정제에게 이름을 개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하지만 옹정제는 윤탕이 개명하려 했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만주어로 "귀찮다", "싫다"라는 뜻의 서스허(塞思黑)로 개명시켰다.[14] 윤사의 아들 홍왕은 아버지가 지어준 보살보라는 전형적인 불교식 이름으로 개명되었지만 윤탕의 아들들은 옹정제에 의해 푸시훤(천한 놈), 퍼쿠훈(비천한 놈), 우비야다(가증스러운 놈), 어이머더(미운털), 하이라칸(애석한 놈), 둥키(게으름뱅이), 두시혠(바보), 어이훈(얼간이)라는 욕으로 개명당했다.
윤탕은 좁은 집안에 갇혀 쇠사슬에 포박당한 채로 지내다가 1726년 9월 22일을 기하여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죽었으며, 종인부에 유폐된 윤사는 그 소식을 듣고 구토하는 등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고 1726년 10월 5일에 죽었다.
건륭 43년에 황족으로 복권되었다.
서양 문화에 수용적이고 선교사들과 꾸준한 친분을 유지하며 언어에 대한 탁월한 재능과 서구의 영향으로 라틴어를 전사한 만주 문자를 창제했기 때문에 청나라의 문화사, 청과 서양의 교류 연구에서도 주목받는 인물이다.
3. 가족 관계
3.1. 부인
- 적복진 동악씨(棟鄂氏): 도통 칠십(七十)[15]의 딸
- 첩 유씨(劉氏): 유대(劉大)의 딸
- 첩 주씨(周氏): 주대(周大)의 딸
- 첩 주씨(朱氏): 주대(朱大)의 딸
- 첩 동가씨(佟佳氏): 동대(佟大)의 딸
- 첩 진씨(陳氏): 진대(陳大)의 딸
- 첩 조가씨(兆佳氏): 마납합(瑪納哈)의 딸
- 첩 낭씨(郎氏): 낭도(郎圖)의 딸
- 첩 완안씨(完顔氏): 왕달(王達)의 딸
3.2. 자녀들
- 1녀(1701~1725): 첩 완안씨 生 / 액로특군왕 작락사 색포등왕포(綽絡斯 色蔔騰旺布)에게 출가
- 2녀(1702~1741): 첩 조가씨 生 / 파림군왕 박이제길특 간포(博爾濟吉特 侃布)에게 출가
- 3녀(1704~1727): 첩 완안씨 生 / 시위 엽혁나랍 영복(葉赫那拉 永福)에게 출가 = 강희 시대 권신인 명주의 손자[16]
- 4녀(1705~1726): 적복진 동악씨 生 / 조세양(趙世揚)에게 출가
- 5녀(1706~1742): 첩 조가씨 生 / 색포등(色葡騰)에게 출가
- 1남 보국공 홍정(輔國公 弘晸 1706~1787): 첩 유씨 生
- 2남 홍장(弘暲 1709~1756): 첩 유씨 生
- 3남 홍상(弘相 1710~1739): 첩 유씨 生
- 4남 홍광(弘曠 1711~1782): 첩 완안씨 生
- 6녀(1719~1767): 첩 진씨 生 / 진진포(陳陳布 ?~1744)와 허혼했으나 혼전에 진진포가 죽어서 수절
- 6남 동희(棟喜 1719~1790): 첩 주(朱)씨 生
- 7남 시위 사보(四保 1719~1771): 첩 주(周)씨 生
- 8남 도석흔(都錫欣 1720~1775): 첩 주(周)씨 生
4. 대중매체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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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희 48년 패자로 봉해진다.
[2]
의비는 강희 16년에 내무부 수녀로 입궐한 해에 의빈으로 봉해지며 익곤궁의 주자가 되었고 강희연간에 일족이 양황기 만주로 대기될 정도로 막대한 총애를 받았다.
[3]
강희 56년 선교사들의 추방 결정이 내려지면서 여러 관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윤탕만이 그들을 도왔다고 한다.
[4]
가톨릭으로 개종했는지는 불확실하다. 옹정제가 지적한 윤탕의 28대죄에도 가톨릭 개종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5]
윤탕이 장례 중 음식을 나르는 일로 황4자 윤진을 불렀는데 이 당시에 그들은 친했기 때문이었다.
[6]
옹정제는 즉위 초년에 있었던 일들을 윤탕의 죄목으로 지적했다. 강희제의 국상 중에 옹정제가 슬퍼하고 있는데 갑자기 윤탕이 다가와 마주 앉았다거나 윤탕이 눈물을 흘리지 않아 옹정제가 질책하니 손수건을 꺼내며 내 손수건은 다 젖었다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황후에게 문안을 청할 때 노재 아우(奴才弟)라는 이상한 자칭을 쓴다거나 아우라고 자칭하기도 했다.
[7]
훗날 밝혀지길, 옹정제가 즉위하자 윤탕은 측근들에게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윤탕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탓인지 일부러 옹정제의 신경을 긁는 언행을 자주했다.오늘만 사는 놈
[8]
윤탕은 몽골어, 러시아어, 이탈리어, 포르트갈어 등 외국어에 능통했다.
[9]
둘 다 숙청된 옹정 4년 5월, 이 둘이 수십 통의 밀서를 주고 받은 사실이 발각된 바 있다.
[10]
윤탕은 강희제 시대에도 재물욕이 심하기로 유명했다. 다른 황자들도 뇌물을 받고 관리들에게 금전을 갈취하기는 했으나 윤탕만큼 심하지는 않았다. 옹정제는 윤탕을 두고 "나도 잠저 시절 이기심을 버리지 못했지만 걔처럼 날강도짓은 안했다"고 깠다. 윤탕에게 의리 있고 수완이 뛰어나며 언어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는 학자들도 재물욕은 답이 없다고 깐다.
[11]
양쩬의 연구에 따르면 윤탕은 죽을 때까지 몰랐지만 그의 측근인 하도가 옹정제의 밀명을 받은 첩자였다. 하지만 윤탕에게 감화되어 임무를 다하지 않았고 옹정 3년 자결하라는 명을 받았다.
[12]
윤탕은 이 서신을 읽은 뒤에 태우라고 하였으나 윤아는 태우는 걸 잊어버려서(...) 옹정제가 윤아의 집을 수색할 때 걸렸다.
[13]
윤탕이 서녕에 있을 때 산섬 빈민들을 구제한 적이 있었다.
[14]
옹정제는 황8자당 중 자신에게 가장 반항하는 윤탕을 매우 혐오해서 그를 가리켜 뚱뚱하고 탐욕스럽다고 비난했다. 또한 윤사와 윤탕이 만나면 일가족이 죽을 것이라는 맹세를 받아낸 적도 있다.
[15]
후금오대신 호호리와 청태조
누르하치의 적장녀
단장고륜공주의 직계자손이다.
[16]
건륭제의 후궁인 서비 엽혁나랍씨와
부항의 아내인 충용공 부인의 숙부다. 영복의 딸은 강희제의 15황자인 유군왕 윤우의 아들인 홍경의 적복진이다. 즉 오촌 아저씨와 결혼한 것
[17]
산하련에서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을 맡은 배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