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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년전쟁 시기인 1351년 6월 6일, 프랑스군이 프랑스 북부에서 약탈 행진을 벌이고 있던 잉글랜드군을 섬멸한 전투.2. 상세
1351년 5월, 칼레의 총독이자 프랑스 북부 방면 잉글랜드군 사령관 존 드 뷰챔프는 300명의 맨앳암즈와 300명의 장궁병을 이끌고 생 오메르 주변 지역을 돌며 슈보시(Chevauchée: 약탈 행진)를 벌였다. 보주와 몽펜시에의 영주이자 프랑스 원수인 에두아르 1세 드 보주는 그런 적의 동태를 살피다가 그들이 너무 많은 약탈물을 챙겨가느라 행군 속도가 매우 느려졌고 경계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이들을 공격해 섬멸하기로 하고 수천 병력을 동원해 출진했다.1351년 6월 6일, 프랑스 북부 파드칼레의 아르드르(Ardres)에서 양군이 조우했다. 잉글랜드군은 즉시 고지대에 올라가서 원형 방진을 결성했고, 에두아르 1세는 모든 기사들이 말에서 내리도록 한 뒤 고지를 향해 공격했다. 이리하여 벌어진 전투 도중 에두아르 1세가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었지만, 프랑스 병사들은 꿋꿋이 공세를 이어갔다. 늦은 오후에 생 오메르 수비대가 지원하러 오자, 잉글랜드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존 드 뷰챔프와 측근 몇 명 만이 가까스로 탈출했고, 나머지는 프랑스군에 사로잡혔다. 프랑스군의 승리를 이끈 에두아르 1세는 전투가 끝난 직후 사망했고, 벨빌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잉글랜드군은 이후에도 프랑스 북부에 기마 약탈을 벌였지만 모조리 격퇴되었고, 1351년 8월엔 가스코뉴 북부 국경 요새인 생장당젤리가 함락되었다. 아직 프랑스를 대대적으로 공격할 준비가 안 되었던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는 휴전을 맺자고 제의했고, 프랑스 국왕 장 2세는 생장당젤리의 지배를 정식으로 인정받는 등 유리한 조건으로 휴전에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