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베르데 전투 포르투갈어: Batalha de Valverde 스페인어: Batalla de Valver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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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 1385년 10월 14일 | |
장소 | 카스티야 연합 왕국 메리다 지방 발베르데 | |
원인 | 알주바호타 전투 이후 포르투갈군의 반격. | |
교전국 | 포르투갈 왕국 | 카스티야 연합 왕국 |
지휘관 | 누누 알바레스 페헤이라 | 페드로 무니스 데 고도이† |
병력 | 3,000명 | 20,000명 |
피해 | 상당한 손실 | 궤멸. |
결과 | 포르투갈 왕국의 승리. | |
영향 |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포르투갈 왕국 영향력 박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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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385년 10월 14일, 누누 알바레스 페헤이라가 이끄는 포르투갈군이 산티아고 기사단 그랜드 마스터인 페드로 무니스 데 고도이가 이끄는 카스티야군과 맞붙은 전투. 포르투갈 공위기(1383 ~ 1385) 최후의 전투로 일컬어지는 전투이다.2. 상세
1385년 8월 14일,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와 포르투갈 무관장 누누 알바레스 페헤이라가 이끄는 포르투갈군 7,500명은 알주바호타 전투에서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국왕 후안 1세가 이끄는 카스티야군 32,000명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그 후 누누 알바레스 페헤이라는 카스티야 영내로 쳐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3,000 가량의 병력을 소집한 뒤, 에스트레모즈에서 출발해 빌라비코사와 올리벤자를 거쳐 카스티야 영내로 진입해 방벽이 없는 빌라가르시아 마을을 점거한 뒤 메리다 지방으로 진입했다. 당시 메리다 지방을 지키고 있던 산티아고 기사단 그랜드마스터 페드로 무니스 데 고도이는 징집병들을 대거 긁어모아 20,000명을 모아 반격했다.1385년 10월 14일, 양측은 발베르데에서 조우했다. 카스티야군 일부는 과디아나 강 건너편 강둑에 자리잡았고, 나머지 군대는 포르투갈군이 강을 건널 때 포위섬멸할 요량으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누누는 적군의 진형을 확인한 뒤, 부하들에게 방진을 형성하고 장비를 중앙에 배치하라고 명령한 후, 강변으로 진군했다. 이윽고 강둑에 도착한 누누는 선봉대가 강을 건너는 동안 후방 경비대에게 보급품을 보호하고 몰려오는 적군을 저지하라고 지시했다. 그 후 누누는 선봉대를 이끌고 강을 과감하게 건너서 이를 저지하려던 카스티야군을 격파했다.
누누는 강을 성공적으로 도하한 선봉대가 전열을 재정비해 도하 지점을 사수하도록 한뒤, 다시 과디아나 강을 건너 카스티야군의 화살 세례를 받고 있던 후위대에 합류했다. 그는 장병들을 일일이 격려하며 적이 화살을 다 쏠 때까지 버티도록 했다. 이윽고 적의 화살이 바닥나자, 그는 즉각 돌격 명령을 내렸다. 그 후 앞장서서 적군과 교전하던 중, 산티아고 기사단 그랜드마스터의 깃발을 보고, 그를 처단하기 위해 깃발 쪽으로 달려가며 앞을 막아서는 적병들을 모조리 제압했다. 이윽고 페드로 무니스 데 고도이와 대면한 그는 짧은 격투 끝에 적장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페드로가 전사하고 그랜드마스터의 깃발이 쓰러지자, 카스티야군은 전열을 상실하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포르투갈군은 해가 질 때까지 적군을 추격해 최대한 피해를 입혔다.
다음날 아침, 누누는 아군의 피해가 상당해서 더 이상 전투를 벌이는 건 무리라고 판단하고 포르투갈로 귀환했다. 알주바호타 전투에 이어 이번 발베르데 전투에서도 카스티야군이 맥없이 완패했다는 소식은 포르투갈 전역에 빠르게 확산되었고, 여전히 카스티야군이 점령하고 있던 포르투갈 도시들이 전부 주앙 1세에게 투항했다. 그리하여 주앙 1세는 포르투갈 전역의 군주가 되었고, 카스티야 연합 왕국은 다시는 주앙 1세에게 도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