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1 21:33:49

문벌귀족(은하영웅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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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문벌귀족 은하영웅전설 DNT[1]

1. 개요2. 권력과 문화3. 역사
3.1. 기원3.2. 무능화와 분열3.3. 내전과 몰락
4. 여담5.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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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門閥貴族/High Nobility

소설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국가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문벌귀족 집단. 여기서 문벌(門閥)이란 가문의 권위를 뜻하는 말이다.

명색이 제국의 지배층이면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적폐세력이다. 이 작품에서 보통 대귀족이나 명문 가문이라고 하면, 대부분 문벌귀족 출신이라고 보면 된다.

2. 권력과 문화

스스로 '골덴바움 왕조를 수호할 신성한 사명을 선택받은 존재'라 칭하는 집단답게, 황실로부터 수많은 특권과 복지혜택을 받고 있다. 문벌귀족들은 세금을 내지 않으며, 황실에서는 이들의 몰락을 막기 위해 고금리 채권까지 하사한다.

또한 이들은 황실에서 하사하는 영지나 작위, 재물을 받아 높은 지위와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다. 평범한 귀족 가문이라는 큄멜 남작가도 서민들의 주택 300호가 들어갈 정도로 광대한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카스트로프 공작가는 무려 5,000억 제국마르크나 되는 재산을 축적했다. 립슈타트 전역에서 패망한 귀족들이 압류당한 재산만 해도 무려 10조 제국마르크를 넘을 정도였다! 이후 로엔그람 왕조에서 귀족에게 특혜이던 면세를 폐지하고 세금을 내게하던 것까지 더하면 수백 년의 전쟁과 내부 부패로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리던 제국 정부의 재정 문제가 이 한 번으로 인해 깔끔하게 해결될 정도였다.[2] 덕분에 로엔그람 왕조의 새로운 궁궐인 뢰벤브룬을 만들 돈도 충분히 남아있을 정도였으니 말다했다.

또한 가문의 힘이나 당대 황제의 권력에 따라 크게 변화하긴 하지만, 문벌귀족들은 비공식 석상에서는 감히 황제를 모욕하여도 불문에 부친다는 표현의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 일반 평민들은 제국이나 황제를 비판하기만 해도 불경죄로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잃는 일이 흔하게 벌어졌는데 귀족들은 대놓고 황족을 모욕하고 비웃어도 처벌은 커녕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3] 그 이유는 조상으로부터 받은 특권도 특권이지만 문벌귀족 집단 사이에서는 골덴바움 왕조가 문벌귀족들의 정신적인 소유물이라는 인식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문벌귀족들은 막대한 영지와 사병을 보유하여 대단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나 카스트로프 공작가처럼 유서깊은 대귀족 가문들은 행성이나 항성계를 통째로 영지로 가지고 있으며, 그에 걸맞게 사병의 규모도 상당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막강한 재력을 이용하여 용병대를 고용할 수도 있다. 카스트로프 공작가는 자신이 모은 사병과 용병들로 제국 정부에서 파견한 토벌군을 두 차례나 격파했으며, 문벌귀족들이 대대적으로 결집한 립슈타트 귀족연합군의 규모는 제국 중앙군을 상회했다. 이렇게 막강한 무력 덕에,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중앙정부를 상대로 전쟁까지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래서 은하제국 역사에는 궁정음모만큼 지방 반란의 수가 많았다고 하며, 라인하르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에 와서는 아예 연례행사가 되었다고 한다.

은하제국의 이념 때문인지 매우 호전적이며 군대와 전쟁도 좋아하는 집단이다. 제국 귀족의 필두인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대신 오딘께 바칠 제물로 처녀를 바치겠다느니 옛 전통을 따라 금발 애송이의 해골로 술잔을 만들어 마시겠다느니 발언했으며, 휘하 귀족들도 전쟁을 하고 싶어 미쳐있다고 보일 지경이다. 문벌귀족치고 장성이 되지 않은 사람이 없고[4][5][6], 사병들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으며 부하로 직업군인들을 다수 부리고 있다. 파티와 사교와 문예, 예술활동도 자주 하지만 어디까지나 여흥이고, 파티 중에도 대귀족들끼리 따로 모여서 비밀 회의를 하는 등의 행보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취미와 달리 그들 중 상당수는 군재가 없었고, 거기에 젊은 귀족은 공명심과 자존심이 쓸데없이 비대해 상관의 명령과 군율을 따르지 않았다. 이 단점들은 이후 그들 자신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게 된다. 문벌귀족의 일원이었음에도 훗날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참여하지 않은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는 귀족들에게 군재가 없음을 간파하고 라인하르트의 승리를 확신했을 정도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군재가 있는 인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 원수만 해도 문벌귀족 출신이지만 뮈켄베르거 가문 자체는 대대로 많은 군인들을 배출한 무인 명가로 그레고르 본인은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여러 군공을 세워 원수 계급과 우주함대 사령장관까지 오른 인물. 다만 이런 그조차도 보수적인 무인 가문 출신으로 사고가 유연하지 못하고 정치적 권력 다툼이 일상인 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여기저기 눈치를 보거나 호적수를 견제하다보니 딱히 명장이라고 평가할 만한 위업을 세우지는 못했다.[7][8]

또한 모든 문벌귀족이 부유한 것은 아니다. 마르바흐 백작가처럼 가주가 방탕해서 황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몰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OVA와 대부분 매체에서는 18세기 부르봉 왕조가 다스리던 앙시앵 레짐 프랑스 왕국 또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지배하던 말기 신성 로마 제국 정도의 전형적인 근세 귀족이 생각되는 쥐스토코르 같은 옷을 입고 머리도 기른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나중에 나온 DNT에서는 19세기-20세기 초반 산업시대 프로이센 왕국 독일 제국에 맞춰 주로 프록 코트 같은 신사 정장을 입은 융커들로 정립되었다.

참고로 문벌귀족은 오등작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작위와 권세가 꼭 비례하지는 않은지 코르푸트 자작가의 경우 자작임에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 모두와 인척관계다. 실제로도 작위보다는 영지가 더 중요했으니 고증에도 맞다.

3. 역사

3.1. 기원

문벌귀족의 기원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은하연방의 군인이자 정치가인 루돌프 폰 골덴바움은 민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은하제국을 건국했다. 제국을 건국한 루돌프는 본인의 이상대로 황실을 지탱할 세습 귀족계급을 창설하기 위해 측근을 비롯한 정치적 동지들과 고위 관료들에게 귀족 작위를 주고 지배계층으로 만들었는데, 게르만 우월주의자였던 루돌프답게 세습 귀족으로 임명받은 자들은 전원 백인이었으며 모두 게르만풍의 성을 하사받았다.

루돌프 사후 기회라고 판단한 공화주의자들은 전례없는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으나, 루돌프가 40년에 걸쳐 다진 제국의 기초는 굳건했다. 귀족, 관료, 군대로 구성된 제국의 삼위일체체제는 매우 강건했으며, 황부,皇父,이자 제국재상을 지낸 노이에 슈타우펜 공작의 통솔 아래 반란군을 분쇄했다. 공화주의자들의 시체를 딛고 제국의 지배층에 등극한 문벌귀족들은 골덴바움 왕조 38대 490년간 특권을 향유하며 제정 체제를 수호했다.

3.2. 무능화와 분열

그러나 오랫동안 군림한 문벌귀족들은 점점 썩어가기 시작했다. 수백 년 동안 책임 없이 특권만 누리며 향락과 사치에 몰두한 결과, 몇 세대가 지나자 조상 세대의 능력은 못 물려받고 이상할 정도로 높은 자존심과 오만함으로만 무장한 무능력집단이 되고 말았다. 물론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처럼 직접 제국을 이끌어가는 관료 귀족이나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 원수처럼 직접 전선에 나가 싸우는 군사 귀족들은 최소한의 능력이라도 갖추었고,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백작처럼 영민들에게 존경받는 귀족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귀족들은 선민의식과 특권으로 무장하여 민중을 착취하고 제국의 미래에는 관심없이 권력투쟁만 몰두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공화파나 민중봉기는 제국의 체제를 뒤엎을 능력을 가지지 못했으며, 외적 자유행성동맹은 제국의 침공을 방어하고 역습을 가할 뿐 전면적인 공세로 제국을 무너뜨릴 국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렇기에 문벌귀족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36대 황제 프리드리히 4세는 30년 넘게 재위하면서도 국사에 관심이 없어 황제의 외척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이 준동하는 한편 국가의 봉건화가 진행되었다. 아드리안 루빈스키는 제국이 이대로 굴러간다면 무수한 소왕국으로 분열될 거라고 전망했을 정도였다. 오랜 전쟁으로 나라가 피폐해지는 와중에도 문벌귀족들은 '성벽 속의 평화'를 누리면서 모든 부와 권력을 독점했다. 제국 정부 내에서는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귀족 과세를 골자로 한 개혁안이 몇 번 나왔지만 귀족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시행조차 하지 못했다. 무능하기 그지없는 프리드리히 4세의 무색무취한 치세에 은하제국은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주력 796년, 은하제국 36대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붕어하였다. 당시 제위 계승 후보로는 황제의 친손자 에르빈 요제프 2세, 황제의 외손녀인 엘리자베트 폰 브라운슈바이크 자비네 폰 리텐하임이 있었다. 계승권만 놓고 보면 적장손인 에르빈 요제프 2세가 가장 순위가 높았으나 당시 5세로 어린데다 어머니 쪽 가문의 배경이 약해 제위 계승 후보로 고려되지 않았고, 두 여성 후보의 제위 계승을 두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거라고 예상되었다. 두 가문은 자기 딸을 옹립하기 위해 귀족들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국무상서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은 선제의 두 외손녀 중 하나가 제위에 오를 경우, 강대한 힘을 가진 외척이 국정을 농단할 것이라 판단했다. 이를 막기 위해 프리드리히 4세의 총애를 받아 20세에 제국원수까지 오른 은하제국군 우주함대 부사령장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백작을 끌어들여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옹립한다. 리히텐라데는 자신의 작위를 공작으로 승진시키고 섭정이 되어 정치권력을 장악했으며, 라인하르트의 작위를 후작으로 높여주고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임명하였다. 두 귀족가문은 졸지에 권력에서 밀려났고 중앙권력은 라인하르트-리히텐라데 동맹이 장악했다.

신 정권에서 소외당한 문벌귀족들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마땅한 퇴물과 금발 애송이 따위가 감히 자기들끼리 작당해서 황제를 세운 것에 분노했다. 앙숙이었던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이 그간의 감정을 접어두고 동맹을 맺었으며, 여러 귀족들이 두 가문의 동맹에 동참하면서 은하제국의 귀족사회는 두 파벌로 나뉘어졌다.

3.3. 내전과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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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A[11] DNT
립슈타트 숲의 별장에서
립슈타트 귀족연합의 발족을 선언하는 문벌귀족들

우주력 797년 2월, '연합파' 귀족들이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발족하고 정식으로 제국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문벌귀족 대부분이 집결한 귀족연합군은 귀족들의 사병과 정규군이 결합하여 제국 중앙군 보다 훨씬 우월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안톤 페르너의 독단행동 때문에 싸우기도 전에 상당수 귀족들이 추축파의 쿠데타에 휘말려 수도 오딘을 탈출하지 못하고 붙잡히고 만다.[12]

그럼에도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모인 귀족들은 그 위세와 활기가 대단하여, 수도 오딘을 그대로 옮겨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귀족들 대부분은 군재가 없는데 쓸데없이 전의만 넘쳐서 메르카츠나 파렌하이트 같은 유능한 제독들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13] 거기다 선민의식만 넘치고 아랫사람 보기를 우습게 아는지라 패배와 실책만 거듭했고 결정적으로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으로 최소한의 민심마저 잃어버렸으며, 결국 마지막 전투인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에서 패배하고 근거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가 제국군에게 함락당하면서 귀족연합은 붕괴한다. 연합의 수괴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은 모두 사망했고, 그 외 수많은 문벌귀족들이 전사하거나 암울한 전황에 절망하여 자살했다. 몇몇 귀족들은 페잔 자치령이나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했고, 그러지 않은 자들은 모두 제국군의 포로가 되었다. 이리하여 추축파가 완벽하게 제국을 장악했다.

그렇지만 '추축파'의 양 축인 리히텐라데 공작과 로엔그람 후작 역시 어디까지나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대항할 목적으로 손을 잡았을 뿐 서로를 내쳐야 할 잠재적인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내전 직후 추축파 귀족들 간에 2차로 분란이 벌어져 로엔그람 후작이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을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 로엔그람 독재체제를 수립했다.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참여했다 살아남은 귀족들은 반역죄로 핵심 가담자들은 처형 혹은 감옥행을 면치 못했고, 처벌을 면했다 해도 제국정부에 전 재산과 영지를 몰수당하고 빈곤층으로 떨어졌다. 귀족들의 사유지였던 수많은 저택이나 병원 등은 평민들을 위한 복지시설로 개방되었고, 귀족들이 소유하던 미술품들은 공공 미술관으로 보내졌다. 귀족들이 소유한 장원들은 모조리 몰수되어 평민들에게 분배되었고, 농노들도 모두 해방되었다. 특권을 잃은 귀족들은 먹고살기 위해 부동산, 보석, 유가증권을 팔아치웠으나 약점을 잡힌 뒤라 헐값에 팔아야 했고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14]

이런 상황에서, 한 귀족은 자신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라인하르트의 신체제를 비난했다.[15]
『......아름다운 정원은 천한 것들에게 짓밟히고, 두툼한 융단에는 흙발자국이 찍혔으며, 고귀한 자만이 잘 수 있었던 천장 달린 침대에 지저분하고 불결한 아이들이 침 자국을 남기는구나. 과거 위대했던 이 나라는 이제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짐승 같은 것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바라건대 이 추태와 참상이 하룻밤 악몽으로 끝나기를......』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3권 <자복편>, 김완, 이타카(2011), p.50
문벌귀족들은 자신들이 마음껏 누리던 부귀영화가 대다수 민중의 피땀을 쥐어짠 결과라는 걸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군대는 커녕 더 이상 조직적으로 저항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힘으로 가능했던 건 기껏해야 과격파 귀족 잔당의 지지를 받아 라인하르트 일파를 향한 테러나 음모를 꾸미는 정도였으나, 그마저도 귀족 지배 체제에서 해방되어 권리를 되찾은 민중들이 이들을 자발적으로 감시했기에 어려웠다.[16]

페잔으로 망명한 일부 귀족들은 구체제 복고를 위하여 페잔 자치령의 도움을 받아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납치하고, 자유행성동맹의 지원 받아 은하제국 정통정부를 수립했으나, 그들은 황제를 납치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거추장스러운 황제를 치우고 자유행성동맹 정벌 명분을 확보하려던 로엔그람 공작과 신 제국 하에서 기득권을 보장받으려던 페잔 자치령의 밀약에 의한 결과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황제 납치 및 망명정부 수립은 도리어 라인하르트에게 이득이 되었고, 별다른 기반도 없는 망명귀족들이 만든 망명정부는 너무나도 허약했다. 결국 정통정부는 동맹이 제국에 패배하자 해체되었고, 잔당들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이후 골덴바움 왕조가 멸망하고 로엔그람 왕조가 개창되면서 은하제국의 문벌귀족 계급은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귀족 계급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로엔그람 왕조 수립을 적극적으로 도운 귀족들에게도 영지나 재산은 보전했으나 면세 등 그동안 누린 특권은 박탈했고, 국가 공신들에게도 작위는 내리지 않았다. 그나마 작위를 내린 사례가 죽은 친우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를 대공으로 추서한 것과, 자신의 누이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를 대공비로 올린 것, 황자 알렉산더 지크프리트 폰 로엔그람에게 대공 작위를 준 정도뿐이다. 사실 이들 역시 실제 귀족을 늘린 것은 아닌데, 키르히아이스에게 내린 대공 작위는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도 뭐라 하지 않는 사자의 명예와 유족에 대한 보상 목적의 사후 추서에 불과했고, 황족이자 유력한 차기 황제인 알렉산더에 대한 대공위 역시 딱히 특권 계층을 늘리는 일은 아니다. 안네로제는 일단 백작부인 작위가 있었으니 귀족이 더 늘어난 것도 아니며 황제의 누나라는 지위에 더해 키르히아이스 사후 독신으로 남을 것이 주변의 시각에서도 명백했기에 세습에 대한 걱정도 없어 반대할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로엔그람 왕조의 초대 국무상서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백작은 자신과 조금이나마 인연이 있던 이들이 비참하게 사는 걸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조금이나마 몰수당한 재산에 대해 보상해주기도 했다. 문벌귀족들에 대해 냉혹한 태도를 고수하던 라인하르트도 마린도르프 백작의 선의는 굳이 막으려고 하지 않았으나, 경제관념 없이 낭비에 익숙해진 귀족들은 얼마 안 되는 보상금도 탕진해버리는 바람에 마린도르프 백작도 더 도울 수 없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결국, 이들은 굶주림에 시달릴 정도였는데 이런 것에 대하여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냉혹하게 말을 했다.
"한 귀족이 죽어 1만 명 평민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이 짐에게는 바로 정의다. 굶어 죽기 싫다면 일을 하라. 평민들은 500년간 그리 해왔으니까."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8권 <난리편>, 김완, 이타카(2011), p.253

물론, 모든 문벌귀족들이 몰락한 건 아니다. 마린도르프 백작가를 비롯해 내전 때 라인하르트를 도운 이들,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처럼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 이들은 귀족의 특권은 더 이상 누릴 수 없을지라도 이미 가진 재산은 지킬 수 있었다. 특히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백작은 문벌귀족이면서도 영민들의 존경을 받을 정도로 인망이 있었기에 신 제국의 국무상서를 역임했고, 딸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백작영애는 내전이 벌어지기 직전 가장 먼저 합류하여 라인하르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라인하르트의 개혁과 정복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였고, 라인하르트의 아이까지 임신하면서 신 제국의 초대 황후이자 남편의 뒤를 이어 신 제국의 1인자가 될 정도로 출세했다.

4. 여담

기본적인 모티브는 프로이센 왕국 융커로 보이나, 정확히 말하자면 창작물 속의 나쁜 귀족 스테레오 타입을 농축시킨 집합체 같은 집단이다. 현실 역사의 혁명 전 프랑스 귀족[17]이나 프로이센 융커[18] 등과는 비교하는 게 역사에 대한 모독일 정도. 사실 융커와 앙시앵 레짐 시절의 귀족들은 은하영웅전설에서 등장하는 등장인물들 중 오스카 폰 로이엔탈의 아버지와 로이엔탈과 가까운 유형의 이들이었는데(돈으로 귀족이 된 사례와 그들의 자손) 이는 혈연으로만 이어지는 문벌귀족과는 다른 점이다.[19] 한편으로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처럼 대가 끊긴 귀족가에 공훈을 바탕으로 입적되는 일도 많은 듯 하다.[20]

평소에는 제국의 상류층으로서의 우월감이 하늘을 찌르지만 궁정음모나 권력투쟁에서 패했다 싶으면 주저 없이 얼마전까지 반란군이라고 부르던 자유행성동맹으로 튀는 경우가 많다.[21] 소설 외전에서는 라인하르트가 이걸 비꼬아서 동맹이 없어지면 망명할 데가 없어지니 귀족들이 일부러 열심히 싸우지 않는게 아닐까라고 (물론 속으로)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제국에서 정치적으로 불리하면 동맹으로 망명하는 일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황자[22]마저도 동맹으로 망명했다가 복귀해서 황제로 즉위한 사례가 있었다. 아니, 애초에 다곤 성역 회전 이후 공화주의자, 반제국파 외에도 권력에서 밀려난 황족과 귀족들이 대거 망명했다는 점만 봐도 이들의 망명은 그냥 전통이다. 이 외에도 사실 어떻게 보면 자유행성동맹이 외부의 적으로써 은하제국과 문벌귀족을 존속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귀족이 군사계급인 군국주의 국가에서 외부의 적이 없으면 금방 쪼개져서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무너질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리히 4세 시절에는 카스트로프 동란같은 사건이 많이 일어나서 아드리안 루빈스키는 제국이 여러 소왕국들로 분열된다고 내다보았을 정도였다. 스스로 제국을 수호한다고 자부하며 떠벌리는 작자들의 행보라기엔 웃고 넘길 수 없는 대목.

한편으로 수많은 정쟁 속에서 여러 가문들이 몰락하곤 했으며 특히 오토프리트 5세 말기처럼 한번에 수십 가문씩 몰락할만한 대사건도 터지는데 그럼에도 수천개의 가문이 남아있는걸 보면 어쩌면 몰락하는 만큼 황실에서 분가가문들이 문벌귀족층으로 유입되는 식으로 충원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골덴바움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카타린 케트헨 1세의 아버지인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는 황실의 후손이자 문벌귀족으로 나온다.

외전에서 보면 이들이 즐기는 유흥으로 결투가 있다. 사실 이건 귀족들에게 있어서는 정식 재판을 대신하는 고전적인 갈등 해결 방법이고, 재판이 그렇듯이 남의 재산을 뺏기 위해 악용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게 본인이 직접 나서는 게 아니라 대전사를 세울 수 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정식 소송에서 승산이 없어보이면 의도적으로 결투의 명수를 고용해서 결투를 걸어버린다. 당연히 사회적/재정적으로 우위에 있는 쪽이 좋은 결투자를 얻기 유리하고, 악질적인 경우에는 아예 상대편이 제대로 된 대리인을 얻기 힘들도록 방해공작을 넣기도 한다. 이 결투는 어디까지나 유흥이자 스포츠[23]이기 때문에 상대방 결투자(본인이건 대전사건)를 죽이는 건 피한다. 상대를 죽여서 이긴다고 해서 결투가 무효화되거나 살인죄로 처벌받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시합이 아니었다고 해서 결투자는 물론 결투에 나선 가문까지 사교계에서 비웃음을 사게 된다. 때문에 상대에게 가능한 작은 상처를 입혀서 제압하는 편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24] 현역 군인은 원칙적으로 군법에 의해 결투가 금지되어 있다.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규정을 무시하고 결투를 한 죄로 대위에서 중위로 강등된 적이 있다.[25][26] 참고로 처음엔 총으로 승부를 보아 나지 않으면 검으로 검으로도 승부가 나지 않는다면 맨손으로 승부를 보는데 실제로 그렇게 과격하게 되는 일은 적다고 한다. 물론 꼭 총으로 시작하는게 아니라 합의하에 검으로 하는 것도 가능하다.

많은 문벌귀족들이 군 계급을 가지고 있으며 비중 높은 인물들은 그래서 언뜻보면 문벌귀족은 전부 (실력과는 관계없이) 무(武)에 치중된 집단처럼 보일 수 있지만 클롭슈톡 가문이 일곱명이나 되는 국무상서를 배출했다거나 프리드리히 4세 말기의 실권자인 리히텐라데도 문벌귀족 가문에는 속하는 점 등을 보면 무가 뿐 아니라 문(文)에 관심을 가지고 이쪽으로 진출한 가문들도 많을 것이다. 특히 상서급으로 가면 귀족 외에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도 은하제국 특성상 군사력이 없으면 젬병이다 보니 무인인 브라운슈바이크는 어쨌든 반란이라도 일으켜봤지만 관료인 리히텐라데는 너무 쉽게 쓸려나갔다.

한편으로 립슈타트 전역 당시 아무리 문벌귀족 집단이 썩어빠져도 그렇지 군사적인 능력이 하나같이 개판인 것을 볼 때, 명목상의 계급이 아니라 전문적인 군사 교육을 받고 제국군의 일선에서 활동하며 경험을 쌓은 군사 귀족들은 정작 립슈타트 내전에 참여하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는 해석도 있다. 이를 반영한 부분으로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의 경우 우주함대 사령장관에서 물러나 퇴역한 뒤에는 언급 자체가 없지만 미디어믹스에서는 처음부터 립슈타트 연합의 참가를 거절하고 은퇴하여 무사히 노후를 보내는 모습이 나온다.

게임에선 쓰레기 같은 능력치가 특징인 집단. 사실 해당 시나리오에서도 숫자상 은하제국의 함대의 절반, 제국내의 3대 주요 요새와 많은 면적을 점유하고, 사실상 정부 소속 영역을 두동강 내놓은데다가 수도성계인 발할라 성계를 바로 침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놈의 능력치 때문에 다 말아먹는다. 한 자리수 능력치들과 없느니만 못한 스킬[27] 보유가 특징이다. 플레이하다보면 요툰하임 성계나 트라바흐 성계 하나둘 점령하는 것으로 끝이다.

5. 명단

원작에서는 문벌귀족의 범위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여기에 수록된 귀족들은 오등작을 가졌다고 확인된 귀족들이라 보면 된다.


[1] 왼쪽부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플레겔 남작, 리텐하임 후작 [2]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천문학적인 액수조차 제국 귀족들의 전체 재산보다 작다는 점이다. 립슈타트에 가담한 귀족들은 가혹한 처벌을 받아 하루아침에 알거지로 전락했지만, 귀족이라고 해도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가담하지 않거나 오히려 라인하르트측에 협력한 귀족들도 상당수 존재했다. 더구나 립슈타트에 가담했다고 해도 도중에 투항한 이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처벌은 받았어도 관대한 수준에 그쳤으니 제국 귀족들이 수백 년간 독점한 부가 얼마나 거대했는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3] 물론 이건 대귀족에만 해당되는 특권. 힘없는 귀족 나부랭이가 감히 황제나 황족을 모욕했다간 불경죄 이전에 이들을 지지하는 대귀족들에 보복을 당해야 했다. [4] 전문적인 군사교육도 받지 않았고, 실전 경험도 없지만 귀족 가문의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문벌 귀족들은 군대를 이끌어야 할 일이 생기면 군 계급을 정식으로 수여받는다. 이것도 가문이나 귀족 본인의 권력에 따라 계급을 차등 수여받는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같은 최고 대귀족은 상급대장 계급을, 브라운슈바이크의 친족인 플레겔 남작은 소장 계급을 가지고 있고 힘없는 귀족들은 대령이나 중령, 하다 못해 위관급 자리까진 보장받는다. [5] 다만 이들이 무능한 것은 사실. 더구나 이들이 멋대로 나대다가는 골수 무인들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고 반란군이 귀족 나으리들을 상대로 고분고분하게 나와줄 이유는 없다보니 계급을 수여받되 어디까지나 예비역이며 실제로 함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서거나 하는 일은 최대한 자제되고 있다. 귀족들은 높은 계급장과 번듯한 제복을 착용하는건 좋아해도 전장에 나서서 싸우는 건 싫어하기 마련이라 이런 조치에도 큰 불만은 없었고, 덕분에 제국 정부로써는 제국군의 전투 능력을 어느 정도는 지킬 수 있었다. [6] 다만 이들도 압도적인 군세로 승리가 보장된 전투에서 화려한 군복을 쫙 빼입고 나서서 지휘를 하는 간지나는 짓은 당연히 싫어하지 않는다. [7] 라인하르트는 뮈켄베르거 원수도 무능하다며 무시했지만, 원수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다. 능력은 없는데 대귀족이랍시고 휘하에 플레겔이나 슈타덴같은 멍청이들이 득실거리고, 전장에 나설 때마다 귀족이나 황실의 이런저런 요구들이 빗발쳐서 전장 지휘에 온전히 집중하기도 힘들다. 반플리트 성역 회전 당시 황제 본인이 나서서 지휘 능력은 커녕 오늘 살아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리하르트 폰 그림멜스하우젠를 휘하 함대 사령관에 임명하라며 명령을 내렸고, 뮈켄베르거는 이 무능한 연장자를 어디에 써먹어야할 지 고민해야 했다. 뮈켄베르거의 능력이 어떻고 이전에 능력을 편하게 발휘할 환경이 주어지질 않는다. [8] 주인공 라인하르트 입장에서 보면 무능한 빌런이지만 사실 라인하르트도 평소 하는 꼴을 보면 윗사람 입장에서 좋게 봐줄 수가 없다. 능력은 별개로 자기 군공을 세우는게 혈안이 되어 내리는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려하지도 않고 동료나 상관에게 부드럽게 대할 생각조차 없으니, 좋게 평가하는게 이상한 일이다. [9] 본디 중립을 희망했으나 제국의 귀족이라는 의무감 때문에 연합파에 가담하려 했다가 딸 힐데가르트의 설득으로 추축파의 편에 섰다. 그 덕분에, 백작 본인은 로엔그람 왕조 초대 국무상서가 되고 딸은 황후가 되는 영예를 누린다. [10] 세상사나 권력 다툼에 관심이 없거나, 건강이 너무나 좋지 못하거나 등등. [11] 이 장면은 자크루이 다비드의 그림 테니스 코트의 맹세 패러디한 것이다. 원본이 문벌귀족과는 대척점에 있는 현대 민주주의의 시발이 된 사건이란 게 아이러니하다. 사실상 대놓고 조롱한 셈이다. [12] 그렇다고 페르너의 독단이 없었다면 문벌귀족들의 대규모 체포를 피할 수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추축파가 실권을 장악한 시점에서 라인하르트가 이끄는 군부는 연합파의 동향을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있었으며, 낌새만 있었다면 바로 체포 작전에 돌입할 준비를 갖췄기에 페르너의 라인하르트 암살 시도가 없었어도 결과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13] 특히 메르카츠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직접 전권을 위임하고 지시에 복종하겠다고 약속하고 데려왔는데, 그 브라운슈바이크 본인을 비롯한 귀족들이 지시를 무시하고 대놓고 대드는 바람에 제 능력을 발휘하기는 커녕 직속 함대만 통솔하는 허수아비 총사령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4] 그나마 운이 좋게도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의 친척은 그의 탄원으로 재산을 몰수되지 않았다고 하지만(다만 문벌귀족 출신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극소수의 예외적 사례일 것이다. [15] DNT에서는 이 귀족이 중년에서 장년 정도 되는 남성으로 나오며 골방에서 얼마 안 되는 재산을 가지고 글을 쓴다. 평민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발작하는 게 압권. [16] 당장 은하제국 정통정부의 출범이 발표되고 문벌귀족들은 아무리 그래도 황제가 있는 우리에게 장병들이 총구를 겨누겠냐며 자신들에게 동조해줄 거라고 기대했지만, 5세기에 걸친 문벌귀족을 향한 증오에 빠져 있던 제국 민중들은 지지는 커녕 문벌귀족과 동맹을 타도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자진 입대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17] 앙시앵 레짐 문서에서도 결국 장교단의 문제를 이야기 할 정도다. 당연하지만 중세유럽만이 아니라 전세계 역사 대부분에서 귀족이란 전쟁수행의 핵심을 담당하는 계층으로 특정 수준 이상의 전쟁 수행능력을 항상 요구받아왔고, 유럽 최강의 군대라는 자부심과 실질 실력도 보유한 프랑스군 장교를 떠받치는 프랑스 귀족들의 전쟁수행 능력이 은영전 문벌대귀족과 비교될 수준이 결코 아니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 이전에 프랑스가 수행한 가장 대표적인 전쟁은 미국독립전쟁으로 이 전쟁에서 프랑스군의 활약은 대단했으며 전쟁의 종결도 프랑스군이 주도한 해군에 의해서 종결될 정도로 프랑스 귀족들의 전쟁수행 능력은 결코 낮지 않았다.(물론 다른 나라들 역시도 귀족은 기본적으로 전사 집단이었다) 또한 전공(戰功) 등을 세워서 새롭게 귀족 사회에 들어서는 신입들은 꾸준히 나왔기에 기존 귀족들도 까딱하다가는 몰락하기 십상이었다. 당연히 평민보다야 안락하게 살았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치열한 생존 경쟁을 위해서 자기 개발과 돈 관리를 열심히 해야했다는 소리. 실제로 이런 귀족들조차 없어졌던 초기 프랑스 공화정은 패배를 많이 해서 결국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에는 공화국에 충성하는 귀족들은 살려주어 전선을 맡도록 해야 했다. [18] 융커 출신 군인들의 전략적 식견은 대부분 히틀러와 동급 혹은 그 이하일 정도로 처참했지만 전술적으로는 매우 뛰어난 능력을 지닌 명장들을 다수 배출하였다. [19] 물론 앙시앵 레짐 시기의 프랑스에서도 대검 귀족이라 하여 문벌귀족과 유사한 귀족이 있었다. 하지만 절대다수는 이른바 '법복 귀족'이라 불리는 돈으로 작위를 사는 등 후천적 귀족과 그 자손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이 시기는 절대왕정시대로 대부분의 영지를 가진 귀족들은 그 영지를 국가에 반환하고 법복귀족으로 전환하던 시기라 영지를 가진 귀족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삼총사의 아토스인데 영지를 가진 귀족이라는 것만 해도 희귀한데 작위가 백작이라는 점은 더 희귀한 인물이다. 당시에는 영지가 있는 귀족은 대부분 후작이나 공작이었기 때문. [20] 라인하르트가 로엔그람 백작가를 물려받을 때도 리히텐라데는 좀 찜찜해했어도 이미 이전에도 여러 번 있던 일이라 넘어갔고, 브라운슈바이크나 리텐하임이 분통을 터뜨린 이유도 라인하르트 같은 (자기들이 보기엔) 근본도 없는 자를 문벌귀족에 집어넣는다는 것뿐이었다. [21] 프리드리히 4세의 동생이던 클레멘스 역시도 음모가 실패하자 자유행성동맹으로의 망명을 꾀하다 우주선 폭발로 죽었다. [22] 만프레트 2세는 선황제 헬무트의 서자였다. [23] 관중들이 승부에 돈까지 건다. 이쯤되면 검투 경기와도 다를바 없어보인다고 할 수 있다. [24] 결투자들이 사용하는 사격 표적도 손>팔>어깨 순으로 점수가 낮아진다. 가장 점수가 낮은 부위가 심장과 머리 같은 맞으면 즉사하는 급소다. [25] 라인하르트는 하고도 처벌받지 않았는데 대리인으로 참가했기 때문으로 대리인은 도구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26] 참고로 같은 시기 미터마이어는 소위에서 중위로 승진했다. 둘이 만난 것도 중위이던 시절. [27] 대표격인 스킬이 반다이남코판의 필부지용. [28] 헤르베르트 대공의 원정에 반대했다가,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심기를 건드려 작위가 강등됨. [29] 로엔그람 백작과 연합하여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옹립하면서 공작으로 승격. [30] 본래 제국기사 작위를 받은 하급귀족 가문 출신이었으나 황제의 총비가 된 후 그뤼네발트 백작 가문의 성을 받아 문벌귀족에 편입. [31] 라인하르트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대공비로 승격. 여성 대공을 의미. [32] 에리히 2세 즉위 이후 후작으로 승격. [33] 차남 필립의 사고로 황녀가 죽으면서 후작 작위를 반납. [34] 본래 제국기사 작위를 받은 하급귀족이었지만 로엔그람 백작가를 이으면서 문벌귀족에 편입. [35]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을 견제하기 위해 리히텐라데 후작이 로엔그람 백작을 끌어들이면서 후작 작위를 하사. [36] 립슈타트 전역 이후 리히텐라데 공작을 숙청하고 스스로 공작이 됨. [37] 본래 은하연방 출신이라 작위 따윈 없었지만, 은하제국 건국 이후 공화파 탄압에 큰 공을 세워 백작 작위를 수여받음. [38] 포르겐 백작가의 자제이나, 4남이라서 백작 작위를 계승할 자격이 없었다. [39] 뮈켄베르거 백작가의 차남. [40] 카타린 케트헨 폰 페크니츠가 황제가 되면서 황제의 아버지로서 위엄을 갖추기 위해 공작으로 승격. [41] 본래 평민이었으나 샤프하우젠 자작과 결혼하면서 자작부인 칭호를 얻음. [42] 후지사키 류 코믹스 한정. 원작에서는 제국기사였다. [43] 남작의 아내로서가 아닌 여성 남작이기 때문에 남작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