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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공국 Duché de Lorraine | Herzogtum Lothringen |
||
국기 | 국장 | |
위치 | ||
파일:200px-Lorraine_in_France_(1789).svg.png | ||
959 ~ 1766 | ||
역사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중프랑크 왕국 | 프랑스 왕국 | |
지리 | ||
위치 | 프랑스 로렌 | |
수도 | 낭시(Nancy)[1] | |
인문 환경 | ||
언어 | 프랑스어, 독일어 | |
종교 | 가톨릭, 루터파 | |
민족 | 프랑스인, 독일인 | |
정치 | ||
정치 체제 | 봉건제 | |
국가원수 | 공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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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렌 공국(Duché de Lorraine) 또는 로트링겐 공국(Herzogtum Lothringen)은 오늘날 프랑스의 북동부의 로렌 지역이 크게 포함이 되던 공국이다.원래 부족 공국 시기의 로트링겐은 중세 중기까지 오늘날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라인란트 서부, 자를란트, 로렌 등을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이었지만, 점차 분할되며 서로 각기 다른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 현재 프랑스 로렌이 로트링겐의 이름을 물려받아 현대에 이르게 되었다.
2. 역사
카롤루스 대제 사후 프랑크 왕국은 루도비쿠스 1세의 아들들에 의해 3분할되었고, 루도비쿠스 1세의 장남 로타리우스 1세(로타르)의 아들인 로타르 2세가 다스렸던 로타링기아 왕국(로트링겐)이 이후 로트렝겐 공국의 모체가 되었다. 그러나 로타르 2세마저 이른 죽음을 맞이했고, 로타리우스 1세의 영지는 그의 동생들에 의해 870년 메르센 조약으로 분할되었는데, 로타링기아 왕국의 80%는 동프랑크 왕국(독일)에 귀속되었으나 저지 독일어를 사용하는 플란데런(플랑드르) 지방은 서프랑크 왕국(프랑스)에 귀속되었다. 그러나 메르센 조약 이후 한동안 로트링겐 공작들은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시도했다. 로트링겐 공작들은 대체로 프랑스 국왕과 협력했다. 물론 서로의 목적은 달랐는데, 로트링겐은 동프랑크로부터 독립하여 로트링겐(로트링기아) 왕국을 재건하기 위함이었고, 프랑스가 로트링겐을 도운 것은 로트링겐이 동프랑크에서 독립하고 나면 날로 먹으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결국 950년을 전후로 독일 왕국의 오토 1세에 의해 완전히 평정되었다.오토 1세는 로트링겐을 완전 평정한 후 959년 로트링겐을 상하 로트링겐으로 분할했다. 상 로트링겐은 현재의 라인란트 서부와 프랑스 로렌에 해당하는 지역이며, 하 로트링겐은 현재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베네룩스 3국( 저지대 국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즉 현재의 로렌은 상로트링겐의 후신 중 일부에 해당한다. 상하 로트링겐 분할 직후인 962년 오토 1세는 교황 요한 12세가 주관하는 대관식을 치러 신성 로마 제국을 세웠다.
959년 상 로트링겐과 하 로트링겐[2]으로 분리된 후 1190년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황제가 하 로트링겐의 해체를 선언한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기까지는 "상 로트링겐"이라 불리기도 하였지만 하 로트링겐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 모젤 공국"으로 지칭되었다. 하지만 하 로트링겐이 해체되고 시간이 지나자 하 로트링겐(네덜란드, 벨기에) 지역에서는 로트링겐이라는 지명이 희석되고 대신 브라반트 등 지역을 통치는 공국명 혹은 이를 통칭하여 저지대 등 다양한 명칭으로 대체되어 불리었다. 동시에 자연히 로트링겐이라는 명칭은 상 로트링겐(모젤)만을 뜻하게 되었고, 이후 상 로트링겐은 모젤이라 불릴 필요도 없이 간단히 로트링겐 공국으로 불리게 되었다.
상 로트링겐은 오늘날의 룩셈부르크, 라인란트팔츠, 자를란트, 로렌에 해당하는 지역인데, 상 로트링겐 역시 하 로트링겐처럼 빠르게 분할되었다. 상 로트링겐 공국은 978년 로트링겐 공작 프리드리히 1세의 사후 분할 상속 되어 "로트링겐 공국"이라는 주체는 존재하되 로트링겐 공국의 공토는 여러 가문들에 의해 여러 제후령으로 쪼개졌다. 이렇게 되면서 북부는 룩셈부르크 가문, 나사우 가문, 트리어 대주교 등이 나누어 통치하면서 룩셈부르크 공국, 트리어 선제후국, 자르브뤼켄 백국 등 별개의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메츠(메스), 난치히(낭시)를 중심으로 한 남서부가 로트링겐의 이름을 계속 사용했다. 이후 프랑스 왕국에 차례차례 잠식당하면서 독일 문화권이었지만, 남서부 일대가 서서히 프랑스 문화권으로 변모해 갔다.[3]
로렌 공국의 남쪽에 있는 부르고뉴 공국과 북쪽에 있는 저지대 국가들이 함께 발루아부르고뉴 가문의 통치를 받는 부르고뉴국이 되면서 부르고뉴국을 남북으로 끊어 놓고 있는 로렌 공국은 부르고뉴국의 공격 목표가 되어 일시 점령되기도 했으나, 스위스 동맹 등과 연합해 부르고뉴 전쟁을 벌여 공국을 되찾았다.
30년 전쟁 후기에 로렌 공국은 프랑스의 침공을 받아 일시 점령되기도 했다. 이때 로렌 공작 샤를 4세(카를 4세)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빈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프랑스가 물러난 이후 로렌 공작들은 프랑스의 위협으로부터 공국을 보호하기 위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실인 합스부르크 가문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이 과정에서 로렌 공작들은 합스부르크 가문과 혼맥을 맺기도 했으며, 합스부르크 가문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받기 위해 신성 로마 제국의 봉신으로서의 의무를 넘어 아예 로렌을 떠나 빈에서 살다시피 하며, 30년 전쟁 이후 근대화되던 오스트리아군에서 상설 장군으로 복무하는 등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4] 이후에도 프랑스 루이 14세가 로렌을 차지하기 위해 걸핏하면 침공했고 이는 번번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저지로 격퇴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과 가까이 지내며 제국에서 가문과 공국의 입지를 향상시키려는 로렌 가문의 눈물겨운 노력은 지속되었고, 레오폴드 공작[5](재위 1690 - 1729)은 계승자인 아들 프랑수아 에티엔(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란츠 1세)을 합스부르크 가문에 장가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736년 로렌 공작 프랑수아 에티엔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상속녀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하였는데,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가 이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결국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6세는 살리카법에 위배되는 딸 마리아 테레지아가 오스트리아 대공국과 보헤미아 왕국을 물려받는 것과 사위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선출되는 것을 프랑스가 용인하는 대가로 로렌 공국을 신성 로마 제국에서 프랑스 왕국의 관할로 넘기기로 했다. 이러한 합의에 따라 로렌 공국은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로 왕위를 잃은 전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에게 일시적으로 넘겨졌고, 당시의 합의에 따라, 1766년 2월 23일에 레슈친스키( 루이 15세 장인이자 왕비 마리아 레슈친스카의 부친)가 사망하면서 로렌은 프랑스 왕국에 합병되어, 오늘날 프랑스의 로렌 행정 구역으로 재개편되었다.
3. 역대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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